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예배 설교 2014. 4. 20

부활은 빚진 자들의 책임입니다!

최소영 목사

부활의 기쁨으로 들떠야 할 이 때, 우리는 참담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많은 고난주간을 보냈지만 지난 며칠간 우리가 직면해야 했던 시간만큼, 우리를 온통 헤집어 놓은 고난주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셨는데 우리는 천하보다 귀한 수백의 생명을 죽음의 자리에서 아직도 구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레, 이렇게 허망하게, 이렇게 공포스럽게 죽음에 직면해야 했던 세월호 희생자들과 실종자들 앞에 우리는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기다려라” 어른들의 말을 믿고 침착하게 기다리던 아이들의 무고한 죽음 앞에… 자기 구명조끼를 양보했던 젊은이들의 죽음, 여섯 살 오빠의 실종 앞에… 사랑하는 딸, 사랑하는 아들, 사랑하는 어머니, 사랑하는 아버지,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은 이들의 무너진 삶 앞에, 피가 마르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간절한 기다림, 절절한 무사귀환의 울부짖음 앞에… 그리고 구조활동 도중 사고로 생명을 잃은 젊은 해경의 죽음 소식 앞에… 우리는 무력하게 그저 서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기적’을 바라며 온 마음을 모아 기도했고, 그들이 죽음의 암흑을 가르고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아이들은 “죽은 사람도 살리신 하나님께서 친구들을 구원해주시길” 울며 기도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도… 우리의 간절한 기원은 죽음을 이기고 돌아올 생명들, 천하보다 귀한 그 생명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이들을, 우리 가족들을, 우리 벗들을 온전한 생명으로 되돌려보내 주십시오! 일상의 삶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그들의 작은 꿈, 평범한 내일, 따스한 사랑, 사소한 고민거리들까지도 하나님! 회복시켜 주십시오! 하나님! 작은 자들의 하나님!

그러나 또한 무력한 우리들은 분노합니다. 그 귀한 생명들을 오롯이 책임져야 했던 선장은 오로지 자기 생명 하나만을 책임지고자 했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위기 상황에 대처해야 했던 이들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대통령조차 책임은 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 합니다. 그런 대통령을 맞이하는 의전을 위해 구조도, 수색도, 장비 투입도 중지됐었답니다. 해양경찰청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도… 우왕좌왕하며 발표와 번복을 되풀이하는 동안, 정작 중요한 생존자 구조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대책본부는 실수투성이였고 구조활동을 위한 지원들은 엉망이었습니다. 이를 지켜보아야 하는 실종자 가족들은 가슴을 찢고 있습니다. 바다 위 가로누워 있던 배는 어느새 밑바닥만 보이더니 그새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천금 같은 시간이 지날수록 세월호에 갇힌 이들을 다시 만날 가능성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이 끔찍한 비극의 원인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허황된 해석, WCC 총회와 활동에 대한 심판이라는 끔찍한 망언을 접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실종자, 희생자 부모들에 대한 참람한 망언은 입에 담을 수도 없습니다. 해외 언론이 해수면 온도와 생존가능시간을 분석하는 동안 한국 언론은 보상금을 분석하고 있는 처참한 현실에도 마주해야 했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이유를 이제 우리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무모한 선실 증축, 무모한 화물 선적, 무모한 출항, 무리한 운항, 참으로 황당한 사고 대처와 거짓, 속임수들…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세월호와 승객 전체를 책임져야 할 선장부터 1년 계약의 비정규직, 대체인력이었다는 것, 선원의 반 이상이 비정규직이었다는 것, 심지어 출발 1시간 전에 구두로 채용된 선원이 있었다는 것… 안전이나 사람 자체보다는 인건비 절감과 더 많은 돈벌이에 집중된 비정상적 구조였다는 것… 안전망을 철저하게 만들기보다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규제개혁, 아니 규제완화만을 추구한 결과 선사도, 선원들도, 그리고 쇠사슬에 묶여 있던 구명정들도… 저 소중한 생명들을 초기에 구하는 데 쓸모없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구조장비들이 제때 투입되지 못한 이유가 구조장비 사용료를 누가 낼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이었을지 모른다는 것을… 세금 1590억을 들인 최첨단 구조선은 아무런 역할을 못했고 정부는 구출 의지가 없거나 무능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난 밤, 현장지휘사령부가 퇴근인지, 철수인지 모두 사라져버린 후 청와대를 향해 하소연하고 항의하기 위해 출발했던 실종자 가족들은, 경찰에 의해 가로막혔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정부와 공권력은 주인인 국민 대신, 대통령과 권력자들을 지키기 위해서만 제대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저 바다 속만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 곳곳에도 제도에 의해, 권력에 의해, 자본에 의해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한 죽음의 위협들, 아니 죽음들이 계속되고 있음 또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길 가다 넘어진 단순한 사고로 세 목숨이 끊어지기도 합니다. 제도와 국가는 소외되고 절망에 빠진 세 모녀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화재와 화상의 고통 속에 스러져간 ‘장애등급제’의 희생양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회안전망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삶터, 일터에서, 그리고 삶터, 일터에서 쫒겨난 이들이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는 죽임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한국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이 괴물들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무한경쟁과 성공주의, 탐욕과 허영, 술수와 거짓, 냉혹한 이기주의와 맘몬 숭배… 신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만들어낸 이것들이 우리 사회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니 우리 자신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습니다. 신자본주의 체제의 노예로 살고 있는 기성세대인 우리들은 그 누구도 이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가끔 뒤돌아보며 혀를 찼을 뿐, 제때에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갈망하면서도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 신뢰할 만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죽임의 사회를 바꾸는 대신, 우리 아이들이 시대에 순응하여 생존하기를, 아니 웬만하면 성공한 갑이 되어 잘 살기를 바랐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회는, 무한질주를 거듭하는 자본의 성공신화를 멈추게 하고, 우리의 영혼이 우리를 뒤따라올 시간을 기다리며,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 성찰하게 하는 대신, 성공한 물질에 축복을 내리고, 번영의 신학을 되뇌었습니다. 우리 예수쟁이들은, 모든 생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누군가 고통과 좌절에 몸을 뒤틀면 모두가 아프다는 사실을 쉽게 잊었습니다. 우리는 제국의 평화에 길들여지고 맘몬의 우상에 찌들대로 찌들어, 히브리 노예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공감하며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떨렸던 하나님의 자궁들, 하나님의 라하밈이 지금, 온통, 고통당하는 이들의 울부짖음에 응답하여 떨리고 있음을 외면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잘못입니다. 이것이 무감각할대로 무감각해진 우리의 죄악입니다.

부활은… 빈 무덤의 예수 부활은 하나님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에게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곁을,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가를 찾았던 여성 제자들 속에서 처음 시작됐습니다. 인간들에게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버리고 도망쳤던 비겁하고 나약한 제자들 속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예수처럼 살기 시작한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고, 이 부활의 행진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활은… 무고한 희생자들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깨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오늘도 시작될 것입니다. 부활은… 빚진 자들의 기억입니다. 책임입니다. 부활은… 고통과 절망, 죽음과 비탄에 빠진 사람들과 함께 계신 하나님께서 “살려내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사람들의 울부짖음과, 차마 소리조차 내지 못한 이들의 억눌린 한숨소리에 응답하여 죽임의 세상을 생명 가득한 평화의 세상으로 바꾸어낼 때 오늘의 부활, 이 시대의 부활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비탄에 빠진 이들과 함께 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죽음의 배에 갇힌 이들의 생명을 구원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오늘 이곳에 서 있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아멘!

시간은 멈추고, 소녀는 우리를 바라보고

 이규성 



주님.
어찌하여 이러한 죽음을 우리에게 주십니까?
그날 이후 눈앞을 떠나지가 않습니다.
주황색 구명복을 걸치고
두려운 눈망울로
기울어진 선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소녀 소년들의 모습이…
하염없이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주님.
어찌하여 우리를 이 깊은 심연에 가두시나요?
그날 이후 머릿속을 떠나질 않습니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말해왔듯이
어른들의 말을 잘 들으면 안전할 거라 믿으며
끝내 자리를 지키던 학생들이
90도로 꺽인 선실로 차가운 바닷물이 차오를 때
소녀 소년들이 경험한 그 잔인한 배반을…
갈갈이 갈갈이
가슴이 찢겨져 나갑니다.

주님.
어찌하여 옴짝할 수 없게 우리를 시간의 감옥에 가두시나요?
그 순간 우리의 시간은 모두 멈추었습니다.
24시간, 48시간, 72시간...
그러나 그 검은 바닷물 속으로
시간은 영원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방에 갇히던 그 사람들의 눈망울도 그랬었나요?
철문이 잠기고 가스가 차오를 때 그 사람들의 가슴도 그랬었나요?

주님.
다시는 경험치 않을 것 같았던
그 시퍼런 죽임을
왜 우리 생활 앞에 펼쳐놓으시나요?

그래요.
그토록 우리는 깨끗한 눈망울들을 외면했습니다.
그토록 우리는 헛된 말들을 늘어놓았습니다.
그토록 우리는 그저 앞을 향해서만 치달았습니다.

정말
우리의 이 차가운 가슴이
모든 선진 기술로도 꼼짝하지 않는 쇳덩어리가 되어
시커먼 바닷속에
소녀 소녀들을 가두어버렸나요?

시간은 멈추었고
또다시
하염없이 하염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주황색 구명복을 걸치고
기울어진 선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소녀 소년들의 두려운 눈망울이
언제까지나
우리를 바라봅니다.

주님
이 눈물이 그저 멈추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 연약한 생명들을 우리가 온몸으로 보듬을 수 있을 때까지는…
이 아픔이 그냥 잦아들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 푸른 생명들을 기만하는 거짓의 성찬이 끝나기 전에는…
이 죽음들이 다시 소갱하기를 감히 소망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의 물욕과 이기심, 무관심과 공포.
옆 사람의 발을 밟고, 어깨를 채며 돌진하는 우리들의 무한질주가
끝없이 죽음을 다시 불러들이는데
한없이 생명을 희롱하는데…

주님
그냥 땅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아 있으렵니다.
그러다 겨우 용기를 내어
선실 구석에서 빤히 우리를 바라보는
소녀 소년들의 눈망울을 마주 보겠습니다.
거기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거기서 다시 일어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