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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평범함이란?- 그린파파야 향기(1993년 / 트란안홍 / 프랑스, 베트남)을 보고
장세현  |  jams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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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년 03월 26일 (수) 17:57:37
최종편집 : 2014년 03월 26일 (수) 22:46:20 [조회수 : 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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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평범함이란?

- 그린파파야향기(1993년 / 트란 안 홍 / 프랑스, 베트남)를 보고

나는 역설을 좋아한다.
웃고 있지만 울고 있고, 따듯한 듯 하지만 차가운….
그리고 ‘그린파파야향기’는 또 다른 의미에서 역설의 극치를 보여준다.
사실 ‘그린파파야향기’의 포스터나 혹은 전체적인 분위기만을 생각했을 때, 이 영화는 엄청나게 따듯하고 아름다운 영화인 듯 싶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따듯한 듯 표현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그려내고 있는 모든 일상은 사실 모든 것이 불편하다.

이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1951년 베트남의 어느 마을, 그곳에 무이라는 아이가 한 집안에 하인으로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무이라는 아이의 삶과 그 아이가 살아가는 집안을 배경으로 모든 이야기가 이어진다. 너무 단순한 이야기 속에 감독은 스토리가 아닌 화면을 통해 본인의 말을 하고 있다.

그런 면에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 속에는 인위적인 조명도 음향도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 자연광에 많은 것을 의지하고, 음향효과 대신에 자연의 소리와 극 중에 배우들에 의해 연주되는 악기 소리들을 이용해 많은 것들을 표현한다. 그런데 이 시점에 당황스러운 것은 이 극 중에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에는 대화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무언극은 아니다. 그냥 대화가 없을 뿐이다. 영화는 대화 대신에 자연의 소리나 음향을 이용해 극 중 인물의 감정선을 표현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그러한 듯 한 장면이 등장하는 것 같아 유심히 보지만 감정선을 표현했다고 하기에는 등장인물들의 표정에 변화가 거의 없다. 극 중 주인공이 되는 배우들에게는 감정이 사라졌으며, 단지 음향과 음악은 전지적 작가 시점의 감독의 설명일 뿐이다. 1인칭이 되어야 할 모든 표현들은 사라졌다.
다시 말해 이 영화 속의 등장인물은 하나의 작은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가고 있는 가족공동체와 그 집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임에도 등장하는 인물 중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이가 없다.

이렇듯 화면은 자연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듯 하지만 이 영화 속에 등장인물과 그 관계 속에는 그 어떤 자연스러움도 없다. 그래서 그들의 이러한 불통의 관계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자연스러움이 무엇인가와 인간관계를 대비적으로 비춰줌으로서). 소통이 깨져버린 상태이건만 그 누구도 그 상황에 대해 불편해 하지 않는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은 소통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모르고 있다. 자신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그 속에서만 감정과 표현을 삭힌다. 이들이 하고 있는 대화는 “누구 올라오라고 해라.”, “밥 먹자.”, “청소해라.” 그 외에는 거의 없다.

무이가 좁은 울타리에 갇혀 있는 귀뚜라미에 먹이를 주며 웃고 있는 것은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의 현재 상태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회라는 울타리에 있을 때는 울타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그 안에서 나는 나의 감정에 충실하게 말할 수 없다. 울고 싶어도 혼자서 그 안에서 울어야 한다(그나마도 들킬 새라 몰래). 그래서 그런가 우리의 표현에는 언제나 한계가 온다. 그래서 언제나 아쉽다.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아쉽고, 충분히 미워하지 못해서 아쉽다. 충분히 기뻐하지 못해 아쉽고, 충분히 화를 내지 못해 아쉽다.

반면에 갇혀 있지 않는 모든 존재들은 그들의 감정을 충실하게 표현한다. 파파야나무는 줄기에서 열매가 따여진 이후에 하얀 진액은 흘리며, “나 지금 아파요”라고 말한다. 새는 싱그럽게 지저귀고, 심지어는 개(사람들과 가장 가까운)조차도 자신이 하고 싶은 행동과 소리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유일하게 그 집의 큰 아들인 쿠엔의 약혼녀만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사랑하는 남자의 머리를 쓸어올리고(대사에서도 나오듯 이러한 행동은 당시 베트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바람이 난 약혼자에게 집안의 물건을 집어 던지고 화를 내며 과감하게 떠난다.
그 와중에도 쿠엔과 무이(불륜의 대상자였던)는 아무런 말도 표현도 없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무이는 임신한 몸으로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다.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결국 트란 안 홍 감독은 원래 자연스러워야 했을 인간이 베트남의 문화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말하고 싶어한 듯 싶다.
이 영화는 수채화 같은 화면과 자연을 때로는 역설적으로 때로는 대비적으로 보여주며, 우리가 지금 ‘평범’이라 생각하는 것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울타리가 무엇인지.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표현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이다.

ps. 파파야는 동남아에서 가장 흔하고 평범한 과일입니다. 용도도 매우 다양해서 버릴 것이 없는 과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처럼 언제나 옆에 있습니다. 아주 평범하게.제목은 그린파파야 향기이고, 제목 아래 포스터는 온통 싱그러운 푸른색이지만,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소녀는 무표정으로 알 수 없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미 포스터 속에서 감독은 이야기하고 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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