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 이래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수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가장 큰 사건이라면 공산혁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에덴 동산에 아담을 유혹한 뱀의 속삭임같은 것이었다. "Eritis siccut Dei." (창세기 3:5)

따라서 공산 혁명은 세상을 지나치게 얕잡아보고 단순하게 처방을 내려서 결과적으로 도저히 숫자로는 계산할 수 없는 미증유의 인적, 물적 낭비를 치루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의 발전단계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세상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로 나눠질 수밖에 없고 그 사이에는 어떤 형태로든 긴장과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구태여 편 가르기를 해본다면 영성에도 좌익과 우익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좌익은 땅에서 벌어지는 일이 관심이 있고 우익은 하늘에서 벌어질 일(천당, 지옥, 자기들이 받을 상급)에 관심이 많다. 그렇기 까닭에 좌익을 하려면 몸이 바빠야 하지만 우익은 입만 바빠도 된다.

땅의 문제는 당장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걸려 있기 때문에 매우 민감하고 성급하다. 그러나 하늘 이야기는 누가 함부로 틀렸다고 시비를 걸지 못하고 당장 증명할 수도 없으니 죽을 때까지 여유도 있다. 오히려 잘못 보면 거룩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예언자를 보내서 인간의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더욱이 신약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예수가 하늘에서 땅으로 왔는데 사람들이 그게 부담스러워서인지 하늘로 돌려보냈다. 나중에 한 번 더 오시라고 하면서…….

좌익은 언제나 소란스럽다. 왜냐하면 구름 속에 떠다니는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의 현실의 문제를 들고 나와서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난리를 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나는 영락 없는 좌익이다. 그래서 좌익답게 이번에 사고를 한 번 치기로 했다. 그것은 내가 한국에 나갈 일이 있을 때 마다 미국에 있는 홍정수 교수와 시간이 맞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공교롭게 같은 시기에 나가게 되어 토크쇼를 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주제는 '야매기독교와 잡복음'이다. 20 년 전에 교권주의자들에 의하여 '딴소리를 한다.'고 감리교 신학대학의 교수직에서 쫒겨나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홍정수 교수는 스스로를 한국 교단과 교계에서 탈출한 도망병으로 표현한다. 그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최초의 신학적 순교자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딴생각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날부터 현실목회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길을 잃어버린 것을 발견 하게 된 나는 영낙 없는 낙오병인 셈이어서 홍 교수나 나는 같은 과로 분류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에서는 일용직과 임시직, 파견·용역 등 간접노동으로의 변화가 전 세계적인 경향이다. 이를 통틀어 비정규직이라고 하는데 이를 가리키는 말로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즉 불안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안정적인 고용 전망을 갖지 못한 사람들, 별다른 직업 경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 등으로 구성된 집단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들을 프레카리아트(Precariat·‘불안정한’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Precari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라고 부르는 것이다.

불안정한 직업들을 전전하면서 불안한 노동 생애를 날마다 보내고 있는 프레카리아트는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 명에 이른다. 이들은 대부분은 ‘도시 유목민’처럼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미래에 어디에 있을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내 생각에는 직업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군대에 정규군과 비정규군(게릴라)이 있는 것처럼 기독교에도 정규기독교와 홍 교수와 나같은 사람이 속한 비정규 기독교가 있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정규기독교인들보다 성격상 조직이 되지 못해서 그렇지 비정규기독교인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번에 전형적인 프레카리아트 기독교 신자인 홍 교수와 내가 만날 자리에서 나는 카톨릭 신학자 매튜 폭스의 창조영성을 소개하려고 한다.

기독교 교리에서 대주주는 어커스틴이다. 그가 행사하는 주식은 ‘원죄-타락-구원’이란 주식이다. 타락/구속 모델은 이분법적이며 가부장적인 모델이다. 그러나 이 주식의 원조는 어거스틴이 아니고 플라톤이라고 할 수 있다.

초대교회의 신앙이 형성되고 전파되던 당시에는 희랍의 세계관이 세계를 지배하는 풍토였었다. 희랍 세계관 중에서 기독교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은 골자는 이원론이었다. 그러므로 초기의 기독교는 이원론이라는 안경을 통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이원론은 이 세계를 거룩함과 세속의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개의 범주로 나눈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은 신적이며 영생 불멸한 것이고 육체는 인간적인 것으로 변화무쌍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영혼은 마땅히 육체의 구속에서부터 해방되기를 갈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원론에 기초한 신앙은 근대 이후 점점 힘을 잃다가 21 세기인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힘을 못 쓰는 하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호주통계청의 사회추세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센서스에서는 호주인 전체 인구의 22%(480만명)가 "무종교"라고 답변하는 등 무신론자 증가가 가속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100년 전인 1911년의 센서스 조사지에 서부터 시민들이 "무종교"라고 답할 수 있는 선택 항목을 만들어 놓았는데 당시에는 인구의 0.4%에 불과한 1만명 만이 그렇게 답변했다. 그 후 무신론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가운데 1971년부터는 10년마다 약 4%포인트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종교인에 대한 분석을 보면 동성애 커플의 경우 거의 반수가 무신론자여서 전체 인구 대비 비율(22%)의 2배 이상 높았다. 또 15세 이상 여성의 경우 무종교인이 자녀를 갖는 확률이 낮고 무종교인이 4명 이상의 자녀를 갖는 경향은 종교인의 절반 정도이다. 석. 박사 학위 소지자는 31%가 무종교라고 답변한 반면 고졸 학력자는 5분의 1에 그쳤다. 대학 전공별로 보면 창작예술과 과학 전공자가 무종교 경향이 가장 높았다.

이제는 어느 날 갑자기 지구가 두 조각이 나는 종말이 오더라도 사람들이 구원을 받으려고 교회로 달려가지는 않을만한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고 기독교에 다른 대안이 없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언제나 역사에는 비주류가 대안을 제시했듯이 기독교에도 대안을 가지고 있는 비주류가 있다. 대표적인 존재가 11 세기 사람인 에카르트였는데 그는 죽은 다음 카톨릭에서 이단으로 단죄되었다. 한국 검찰이 박근혜가 무서워서 선거부정을 못 밝히는 것처럼 교황청이 그가 무서워서 죽은 다음에 판정을 내린 것이 아니라 심판이 오래 걸려서 판결이 나기 전에 죽은 것이다.

20 세기에 들어와서 에카르트를 신학적으로 부활 시킨 사람이 매튜 폭스이다. 현대에 와서는 전통적으로 종교가 담당하고 있던 역할을 심리학이 점점 많이 대신하고 있다. 매튜 폭스의 창조영성은 기독교와 심리학을 포함한 과학과 예술이 연결될 수 있는 다리를 놓는다. 매튜폭스의 창조영성의 시각에서 보면 어떤 학문, 심지어는 뉴에이지까지 갈등 없이 이해가 가능하다.

에카르트의 그리스도론은 전통적인 그리스도론과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에서는 예수만이 그리스도일 수 있었다. 예수와 인간 사이에는 ‘질적’ 차이가 있다. 원죄를 안고 태어난 인간은 어떤 노력으로도 그리스도의 분량에는 이를 수 없다. 그러나 에카르트에게서는 예수와 인간 사이에 ‘질적 차이’가 없다. 다만 ‘인식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이 기독교의 전통 안에 갇혀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에카르트의 평등주의적 사랑은 인간 사이의 평등뿐만 아니라 우주로까지 확대된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기독교가 살아 남으려면 기독교에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그동안 낯설었던 ‘창조영성’을 재 복원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