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사순절의 끝 고난주간에 그는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반평생 살아온 대관령 옛 길 옆 그의 농막 앞 소나무 아래 재를 묻었다. 평생 괴롭히던 육신마저 한줌 거름으로 남긴 것이다.

맏상주 박철이 울먹이면서 “아버지 이제 새벽에 일찍 일어나지 않으셔도 돼요”라고 말하더라. 그날 일산 장례식장에서부터 대관령까지 끝까지 함께 한 30여명이 빙 둘러서서 돌아가며 소감을 나누었다. 행복한 장례식이었다.

지금 눈 덮인 대관령은 그가 없어 참 허전할 것이다. 늘 밟고 다니던 길가에서 편히 쉬고 있을 테지만 만약 생전 같으면 그는 얼마나 조바심이 들었을까? 봄이 다가오면 대관령을 향하던 그의 발걸음도 분주하였다. 그런데 그의 순례는 여기에서 멈추었다.

▲ 박흥규 목사님 장례식. 그가 심고 바라보던 대관령 농막 앞 소나무 아래에 고단한 몸을 의탁하였다.

- 수호천사

박흥규 목사(1938-2013)는 남들이 새 천년을 맞아 들떠 있던 2천년 봄에 질병 때문에 조기 은퇴하였다. 자주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그는 여전히 현직과 다름없었다. 가장 무서운 꿈을 꿀 때가 느닷없이 설교할 때란다.

“어젯밤에는 사도행전 16장 마게도냐 사람 이야기가 본문이었는데, 또 어떻게 썰을 풀어야 하나 근심하다가 잠에서 깼어”.

꿈에서 조차 그는 목사로서 부담을 떨치지 못한 채 여전히 볼모로 잡혀있었다. 은퇴하고 소천할 때까지 반복해온 일상이었다.

마지막 설교는 색동교회에서였다. 설교자로서 남다른 강박감을 지녔으면서도, 가장 즐거워하던 기억은 설교를 부탁받을 때였다. 그는 청소년이 모인 1부 예배와 성인들이 모이는 2부 예배를 위해 각각 다른 원고를 준비해 왔다. 특히 2부 예배에서는 색동교회 비전을 제시하며 평화통일에 대한 소원을 강조하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무거운 숙제를 떠 넘겼다.

몇 차례 색동교회를 다녀갔지만, 나는 이번에 이렇게 소개하였다. “박흥규 목사님은 내 수호천사입니다. 천사가 아름다울 것이라는 환상을 버리십시오”. 모두 웃었다. 박 목사는 지난 30년 가까이 내게 심술궂은 멘토였다.

지금 곁을 떠난 지 일 년도 채 못 되어 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고맙게도 얼마나 과분한 존재였던가? 정말 수호천사가 있다면 바로 그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 병상에서. 그는 침대에서도 항상 무거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2013.1)

- 빨갱이 목사

박 목사와 만남은 김포에서였다. 1984년 봄, 나는 이른바 시국사범으로 겨울감옥을 지낸 후였고, 마음도 정리할 겸 주말이면 김포 동을산리에 있는 시골교회 교육전도사를 생활의 피난처로 삼아 지냈다. 이웃 교회 담임인 그는 나에게 이런 말로 꾀었다.

“고생한 놈을 도와주고 싶다”.

그는 김포를 떠나던 나를 만나 월곶면 포내리에서 교회를 개척할 것을 권하였다. 마치 교회개척을 애국운동처럼 믿던 전형적인 목회자처럼 말하였다. 당시 학생운동 출신들은 열이면 아홉 거의 대부분이 현장으로 들어가 노동자가 되는 것을 자연스러운 ‘투신’으로 여겼다. 내 생각도 그 지점에 머물러 있었는데, 박 목사에게 붙잡혀서 전향 아닌 전향을 한 셈이었다.

그 때 참 세상이 삐뚤었다. 박 목사 역시 1970년대 동해안의 간성에서, 또 강릉에서 빨갱이 목사 소릴 듣던 처지였기에, 젊은 내게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었나보다. 사실 김포에서도 가장 초라한 면소재지였지만, 월곶면 중심지에서 목회하는 일은 박 목사에게 고생한 평생에 처음으로 얻은 과분할 만큼 안정된 임지였을 것이다.

그런 소굴에 나를 끌어 들인 까닭은 내가 적임자라서가 아니라 아마 그가 외로워서 말이 통하는 후배를 찾았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나도 이제 외로울 나이에 접어들면서 깨닫게 되었다.


- 문수산성

그해 초겨울, 개척 예정지인 문수산 아래 마을을 홀로 답사하였다. 이미 추수가 끝난 텅 빈 포내리 들판은 정말 을씨년스러웠다. 해주 앞바다에서 염하강을 따라 불어 내려오는 북풍은 코끝을 얼어붙게 하였고 온몸을 진저리치게 만들었다.

집도 절도 없는 이곳에서 밭을 세내 천막을 치고 교회 간판을 내걸라는 그의 제안이 점점 잔인하게 느껴졌다. 알량한 소명감은커녕 기성 교회에 대한 한 가닥의 애정조차 희미한 내가 언감생심 교회 개척이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답사에서 돌아와 그의 집에 들러 나는 냉정하게 개척 제안에 대해 치 받았다.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고, 그래서 개척할 의사도 없다고 분명히 말하였다. 그러자말자 그는 큰소리를 지르며 나를 노려보았다.

“요즘 젊은 놈들, 그래 운동권이라고 용기가 있는 줄 알았더니 천막교회 하나 지을 배짱도 없느냐?”

한술 더 뜬 박 목사의 목소리는 내내 나를 궁지로 몰아 세웠다. 그 앞에서는 거창한 논리도, 진지한 고백도 모두 용기 없는 자의 한낱 변명처럼 들렸을 것이다. 마침내 사흘 뒤 나는 용기가 있음을 보여주겠다는 듯, 반발감과 오기로 대책 없이 개척교회를 결심하였다. 문수산성교회는 그렇게 태어났고, 나는 그의 심술궂은 순례길에 동행이 된 셈이다.

그는 목회자로 나선 내게 이런 충고를 덧붙였다.

“종교는 환상을 만들어 낸다. 환상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면 건강한 환상을 만들어 내라”.

▲ 문수산성교회 개척을 도운 박내수 목사님(신일교회), 박흥규 목사님(월곶제일교회)이 필리핀 목사님과 한국의 농촌교회 견학을 위해 내방하였다. 참 젊은 분들이었는데, 벌써 두 분 모두 고인이 되셨다(1986년 여름)

- 동자승 노릇

나는 박흥규 목사에게 붙잡혀 겨우 25살에 일찍 목회의 길에 들어섰다. 문수산성교회를 개척하라고 권유한 사람도, 나를 10년 동안 그 자리에 눌러 앉힌 사람도, 힘들 때마다 같이 풍파를 겪은 사람도 모두 박흥규 목사였다. 1984년 12월, 아직 졸업하려면 한 학기를 남겨둔 채 김포에 내려가 살았다. 그 세월이 어느덧 30년이다.

박 목사를 상좌로 모시고 월곶제일교회에서 이른바 목회수업을 받았다. 비좁은 방에서 둘이 지내면서 이른 바 동자승 노릇을 했다. 방에 요도 깔지 않고 자는 그의 잠버릇대로 나도 요를 깔지 못하고 머슴처럼 새우잠을 잤다.

새벽 4시면 일어나 새벽기도회를 위해 난로를 피우는 그를 따라서 나도 조개탄 먼지를 뒤집어썼다. 그는 요령부득이었다. 종종 약삭빠르게 구는 나를 닥달하여 몰아세웠고, 막무가내로 몸으로 때울 것을 강요하였다. 그는 심방을 데리고 다니면서 나를 책망하듯 다그쳤다.

“이놈아, 얻어먹기 좋아하는 목사가 되지 말고 심방 갈 때 애들 줄 사탕 한 봉지씩은 챙겨가지고 다녀라”.

목사가 들고 다녀야 할 사탕 한 봉지, 그것은 박흥규의 목회철학이었고, 내가 처음 배운 목회의 기본기였다. 대접받는데 익숙한 목회자의 처신에 대해 그는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정말 박 목사는 기득권을 누리는 일을 전쟁 치루 듯 내팽개친 사람이다. 목사라면 당연시 여기는 적당한 허세와 꾸밈을 단호하게 부정하면서, 동료 목회들에게도 같은 철저함을 요구하였다. 융통성이라고는 눈 곱 만치도 없고, 타협할 줄 몰랐다.

현실의 색안경으로 보면 그의 충직스러움은 무능하기 짝이 없는 시골 목사의 옹고집이었고, 분수를 지키려는 철저한 생활태도는 쩨쩨함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한국 교회의 관행과 상식을 거스르려고 한 돈키호테였다. 돌아보면 그 시절은 그에게는 찬란한 르네상스였고, 내 전성기의 출발점이었다.

▲ 독일 내 목회지를 찾아와 준 박 목사님 (2002.5). 베를린 '케테 콜비츠' 미술관에서.

▲ 박흥규 목사님의 고희 문집 '대관령 숲에서 맞는 새벽'(신앙과지성사) 출판기념회(2008.4.15~김포 푸른언덕교회)

- 푸른 언덕

박 목사는 나무 목사였다. 그 자신을 포함하여 푸른 숲을 가꾼 사람이었다. 그 다운 조림사업의 진면목은 월곶제일교회에서부터 만든 <푸른언덕>이란 동호인 수준의 회보에서 발견할 수 있다. 회보는 목회지를 고향 근처 선장교회로 옮겨가서도 계속 발행하였다. 회보를 만들면서 주변의 후배들을 끌어 들였고, 그들 역시 나처럼 좋든 싫든 붙잡혀 살았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이야기를 찾아내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평범한 일상조차 남들이 찾지 못하는 따듯한 미담으로 가득한 경이의 세상을 이야기 속에 살려냈다. 별 것도 아닌 것을 별다르게 대하면서 사람 안에 있는 소중함을 찾았고, 사람사이의 뜨개질을 도탑게 만들어 나갔다. 과묵한 이야기꾼이란 별명이 어울릴까?

박 목사의 <푸른언덕>은 한껏 멋들어진 몇 그루 소나무의 한가로움이 아니고, 횡대와 종대로 거침없이 빽빽한 독일식 전나무 숲도 아닌 그렇고 그런 굽은 나무들과 풀과 들꽃들이 어울린 그저 그런 언덕배기였다. 그럼에도 들풀이나 돌맹이조차 후하게 값을 쳐주는 넒은 마음이 ‘푸른 언덕’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동시에 <푸른언덕>이 평생 촌티를 벗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였다. 자신을 꾸미거나, 상품화시킬 줄 모르는 미련함 때문에 박흥규의 ‘푸른 언덕’이 얼마나 눈부신 줄은 아는 사람만 안다.


- 아! 대관령

박흥규의 고향은 충남 홍성이지만, 아마 본향은 대관령일 것이다. 그는 60세에 공상 은퇴한 후 아예 강원도 심심산골인 대관령에서 살았다. 강원도에서 목회하던 70년대에 어쩌다 대관령의 한 귀퉁이를 장만하였고, 은퇴 후에는 자신의 대관령을 가꾸면서 살았다. 그는 40여 년 전에 대관령 옛길에 낙엽송 숲을 조성한 당사자인데, 자신이 심은 숲길을 즐기면서 그 나무들을 완상하던 참 복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와 동행하면서 지난 30년 동안 가장 자주 들었던 이야기는 단연 대관령이었다. 화전민이 터를 파묻고 돌아간 너른 빈터에 새로 농막을 짓고 겨울나기가 무섭게 대관령으로 달려가서 그는 풀과 씨름하며 농사를 짓고, 과일나무를 심었다. 밤이면 태양전지로 불을 밝히고 책을 읽었다.

대관령은 평생 그와 더불어 지내더니, 마지막까지 그를 품어주었다. 무뚝뚝한 박 목사는 기대와 달리 유난히 외로움을 잘 탔다. 물론 겉으로는 그러지 않은 척하였다. 그러다가 늙고 병들어 외로워진 것일까? 박흥규 형도 변하더라. 사람을 그리워하였고,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였다.

“홀로 지내다보니 전화 온 것 까지 기록하게 되더라. 내가 초라해지는 걸까? 정리가 안 돼”.

박 목사가 대관령에서 쓴 산중일기에는 병든 몸으로 사는 삶의 괴로움과 영혼이 누리는 자유로 가득하다. 여기에서 쓴 일기와 그의 별별스런 친구들이 쓴 이야기들을 묶어 일흔이 훨씬 넘어 고희 문집 <대관령 숲에서 맞는 새벽>으로 묶여졌다.


- 심술궂은 스승

지금도 흐믓한 것은 거의 십 년 만에 들은 칭찬 때문이다. 잊혀 지지 않는 것은 독일을 떠나는 내게 어렵게 한 말이다.

“너는 참을성이 많은 놈이다.”

이를테면 격려사인 셈이다. 세상에는 참아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문수산성교회를 떠나면서 들었던 이 말은 그 후 내가 외국에서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었다. 사실 지난 30년 동안 그는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었다. 남들 앞에서 늘 나를 추어주는 억지가 돌아보니 여간 고맙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 그는 심술궂었다. 자신에게 금욕적이었던 박 목사는 내게도 자신의 미덕을 강요하였다. 역사의 반면교사로부터 길들여진 책임감과 어제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인내심이 그것이다. 얼마나 자주 다투고, 맞섰는지, 그 때마다 우리는 나이를 잊었는데, 그런 내가 얼마나 괘씸했을까? 속 좁은 나는 그를 별로 높여 드리지 못하였다.

▲ 평생 설교자로 살아온 박흥규 목사님이 마지막으로 강단에 선 모습

▲ 대관령 농막과 그가 마지막 흔적을 남긴 소나무 아래(2013.3.28, 장례식)

- “네 사는 이야기를 들려다오”

장례식 내내 호상 노릇을 하였다. 그와 한 약속 때문이다. 몇 년 전 신촌에서 만나 놀다가 김포로 내려가던 강화 행 신촌 버스터미널에서 그의 버스가 떠나기 까지 오래 서서 기다렸다. 나중에 만났을 때 이런 말로 고마워하더라.

“네가 오래 동안 기다려주는 걸 보니 내 마지막 길은 네가 배웅해 주는 것이 좋겠다. 네가 맡아줘야겠다”.

그렇게 뚝심으로 살더니 마지막 길은 왜 그리 서두르던지. 그는 만날 때나, 전화를 할 때에 일단 5분간 입씨름을 한 후 늘 똑같은 질문을 한다.

“네 사는 이야기를 들려다오”.

나는 늘 따지는 듯한 그의 물음이 싫었다. 꼭 시험을 치루는 수험생 같아서다. 날마다 후렴처럼 반복하는 일상 속에서 그가 요구하는 것은 그런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라는 추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런 거창한 기대도 아닌, 다만 박흥규 식 애정표현 방식이었을 것이다.

“내가 보고 싶어 했다는 것만 알아둬!”.

그는 심술궂은 얼굴로,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던 아주 무뚝뚝한 사내다. 김포로부터, 대관령으로부터, 사랑하던 사람들로부터 그가 떠난 후 나는 내 하루일지의 제목을 바꾸었다. 이전에는 ‘오늘 내가 뭘 배웠지?’였는데, 그 후로는 ‘네 사는 이야기를 들려다오’다.

그를 오래 기억하기 위해 나도 23살 연하의 후배 하나를 동생 삼아야겠다. 평생 그가 나를 아우 삼아 든든히 편들어 주었듯이 나도 수호천사로 살기를 배워야겠다.

송병구 목사(색동감리교회)

고 박흥규 목사님 1주기 추도식

사랑하는 박흥규 목사님을 추모하고, 생애를 추억하며, 그와 더불어 나누었던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기위해 고인의 1주기를 맞아 소중한 자리에 여러분을 모십니다. 함께 하시면 큰 위로와 기쁨이 될 것입니다.

<추도식>
때: 2014년 3월 22일(토) 12:00(정오)
곳: 푸른언덕교회 (김포시 월곶면 고막리 394-2)

<묘소 방문>
때: 2014년 3월 25일(화) 13:00(정오)
곳: 대관령 그가 살던 농막

대관령 옛길(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입구 ‘만나가든’ 주차장에서 12시에 만나 점심 식사 후 함께 걸어감.

문의:
김명준 목사 010-4706-2155
송병구 목사 010-7664-2132
정훈영 목사 010-2786-0063
최병천 장로 010-4228-8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