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에 서술된 구원의 논리(4) “하나님의 의론”

6.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모든 자에게 미치고 믿는 모든 자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해방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의롭게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그의 피 안에서 그 신실함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예수의 신실함으로부터 말미암은 자를) 의롭다 하려(의롭게 하려) 하심이라(롬3:21-26)”

새 언약의 시대에 이르러 하나님께서는 옛 언약에서 예언되었던 새로운 의를 드디어 나타내셨습니다. 이 새로운 의는 모든 자를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피스티스/ 개역 성경에서 믿음, 충성, 신실함, 미쁘심 등으로 번역)을 보내주시고 그 신실하심을 받아들이게 되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저질렀던 죄악된 행위들을 용서하심은 물론 의인으로 재창조하시는 은혜를 베푸시는 의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이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존재임을 상술한 후 이어서 신약 시대를 여는 하나님의 새로운 의를 논술하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의는 모세 오경과 여러 선지서들에서 여자의 후손, 아브라함의 씨, 이새의 가지 등으로 표현된 그리스도의 강림과 여호와의 신, 하나님의 신 등으로 표현된 성령의 강림으로 예언되었던 것으로서, 사도 바울은 이 의를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시고 그 신실하심을 받아들이게 되는 자들을 의인으로 재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의라고 논술하고 있습니다.

옛 언약에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내셨던 하나님의 의는 이와는 다른 의로서 율법을 기준으로 신상필벌하시는 준엄한 의와 속죄 제사를 드리는 자들은 용서해주시는 자비로운 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싸르크스(human nature, 인성 / flesh, sinful nature, 육체 등으로 번역)의 종이었으므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율법을 준수하기는커녕 왜곡하기에 급급했고(3.율법론 참조) 그 결과 이스라엘은 범죄와 속죄를 끝없이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때가 이르자 모세 율법보다 43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 즉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하여금 공의(쩨다카)와 정의(미쉬파트)를 행하며 살아가는 의인들의 집단인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를 이루게 하신다는 약속을 성취시키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모든 사람들에게 부어주기로 하셨고 이것이 바로 신약 시대에 새롭게 나타난 하나님의 의라고 사도 바울은 논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 “디아 피스테오스 예수 크리스투”,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스티스로 말미암아”를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durch den Glauben an Jesum Christum)”로 번역한 사람은 루터였습니다. 루터의 독일어 번역 이전의 번역 성경들은 라틴어 성경을 포함해 모두 이 구절을 주격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스티스(fidem, faith)로 말미암아”로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루터 이후 번역된 KJV조차 “by faith of Jesus Christ”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물론 1979년에 발간된 개정판인 NKJ는 아쉽게도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로 바꾸었지만 말입니다.

루터가 최초로 이 구문을 주격 소유격이 아닌 목적격 소유격으로 번역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 자신의 이신칭의론을 견고케 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을까요? 루터가 자의적으로 왜곡 번역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디모데전서 3장 13절의 번역에서 더욱 깊어집니다. 개역 성경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그리고 KJV에서 “in the faith which is in Christ Jesus”로 번역된 “엔 피스테이 테 엔 크리스토 예수”라는 분명한 표현까지도 루터는 “im Glauben an Christum Jesum”, 즉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 안에서”로 번역했던 것입니다. 이 구절은 NKJ조차도 루터를 따르지 않고 KJV의 “in the faith which is in Christ Jesus”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격 소유격이냐 목적격 소유격이냐의 문제는 위 본문의 마지막 26절의 “예수를 믿는 자”라는 표현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인 “톤 에크 피스테오스 예수”를 루터는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는 자(der da ist des Glaubens an Jesum)”로 번역하고 있으나 이를 주격 소유격으로 직역하면 “예수의 신실함으로부터인 사람”이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KJV마저도 루터의 번역을 따라 “예수를 믿는 자(him which believeth in Jesus)”로 번역하고 있으나 2005년에 발간된 NET는 “예수의 신실함 때문에 살아가는 자(the one who lives because of Jesus' faithfulness)”로 번역하면서 각주에서 그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세기부터 신학계의 논란이 분분한데 우리는 이를 “피스티스 논쟁”이라고 부릅니다. 어느 쪽이 합당한 번역인지는 로마서 전체의 논리만이 아니라 성경 66권 전체의 논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주격 소유격,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에 의해서”로 번역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연재글들에서 계속 언급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사도 바울의 구원의 논리 전체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위 본문 전체는 서론에서 말씀드렸던 로마서 1장 17절에 대해 사도 바울이 상술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다시 1장 17절과 비교하면서 본문의 사도 바울의 논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서론에서 저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 번역된 문장에서 피스티스(히, 에무나 / 개역 성경에서 믿음, 충성, 신실함, 미쁘심 등으로 번역)가 하나님의 신실함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의인의 신실함을 가리키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면서 “의인은 자신의 신실치 못함이 이미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바뀐 존재이므로 이 불일치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사도 바울이) 여긴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단서는 “에크 피스테오스 에이스 피스틴”, 즉 “피스티스로부터 피스티스에 이르게 하나니”에 있습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새로운 의에 의해 그리스도의 신실함(피스티스)을 받아들이게 된 자는 신실한(피스토스) 의인이 된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하나님의 의론이므로 두 가지 소유격 인칭 대명사 중 굳이 하나를 선택하면서 혼란을 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의 약속의 핵심인 하나님의 의를 논술하면서 하박국 2장 4절을 인용함으로써 신실함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인간이 율법을 지킬 수 없는 것은 싸르크스, 즉 인간의 본성이 신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논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새로운 의는 신실치 못한 인간을 신실한 인간으로 바꾸어줌으로써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의인으로 변화시키시는 의라고 논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 신실할 수 없는 이유는 오로지 자신에게만 신실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희구하는 공포와 탐욕에 함몰되어 있는 인간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 신실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인간의 윤리적 행위와 비윤리적 행위는 모두 자신에게 신실하기 때문에 취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모두가 치밀한 계산 끝에 내린 결정에 따른 행위인 것이지요. 율법의 선함과 거룩함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인간의 “신실할 수 없음”에 대해 논술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7:7)”

율법에 대한 깊은 깨달음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자신 안의 모든 거룩하고 윤리적인 생각과 마음들까지도 탐심이고 죄였다는 것을 알게 만들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신실한, 그래서 하나님과 이웃에게 전혀 신실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실존이라는 진술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바로 인간의 “신실할 수 없음”의 문제를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으로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계시하고 있다고 사도 바울은 논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스티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은 어떤 과정을 거쳐 받아들이게 되며, 받아들이게 된 자들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신실한 존재로 재창조되며, 그 신실한 존재들의 특징은 무엇이며 또 그들이 살아가는 신실한 삶이란 어떠한 삶인가에 대한 사도 바울의 논술을 앞으로 이어지는 글들에서 하나씩 상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