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문명은 잿더미 위에서 시작된다.

개혁은 정치·사회적 변화 및 조직의 변화를 위해 인위적으로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치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개혁은 기존의 질서나 제도, 기구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그것이 기능을 상실했다고 판단될 때 추진된다.

인류역사에서 큰 개혁은 늘 철저한 파괴와 잿더미 위에서 이루어졌다. 회복이 불가능한 자연재해로 인하여 기존의 모든 시스템이 무너지고 파괴될 때 그 잿더미 위에서 새로운 방재 시스템과 도시계획이 추진되고, 전쟁 등으로 인하여 기존의 사회질서가 무너지거나 기존의 제도나 기구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대폭적인 사회개혁이 추진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쟁으로 전 세계를 전쟁터 만들었다. 이 전쟁으로 고통 받지 않은 국가가 없을 정도였다. 그 결과는 철저한 파괴였다. 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수천만 명에 이르렀고, 산업과 시설은 철저하게 파괴되고, 심지어 인간성에 대한 신뢰마저 철저하게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파괴 뒤에 건설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그 잿더미 위에서 새로운 인류 문명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

2차 세계대전 후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전쟁 이후 미국 중심의 경제 체제가 성립했고, 세계는 새로운 경제발전의 역사를 썼다. 1945년 10월 24일 국제연합이 창설되고, 세계는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 동유럽,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진영으로 재편되었다. 첨단 과학기술 발전의 기초를 놓았다. 패전국의 지배 아래 있던 상당수의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국제 관계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고, 왕조국가는 붕괴하고 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정착되었다. 새로운 국가개념이 도입되어 국민은 모름지기 국가의 주인으로 대접받으며 저마다 자신의 권리와 권익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낯설었던 개념인 복지국가는 북유럽을 중심으로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탄생했다. 이런 변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니었더라면 쉽지 않았을 변화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질서가 철저히 무너지고, 기존의 제도와 기구 등이 무력화되는 것은 기존 질서가 유지되기를 원하고 또 그 질서를 통해서 이익을 얻는 이들에게는 절망이지만 새로운 질서와 제도의 도래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희망이자 새로운 기회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말이 있듯이 깊은 어둠은 역설적으로 그 어둠의 깊이와 크기만큼 커다란 빛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 감리회는 지금, 폐허의 잿더미 위에 서있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교회개혁에 대한 요구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감리회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때문에 개혁을 위한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성공한 예는 많지 않다. 개혁은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인위적으로 추진되어 그로 인해 손해를 보는 집단의 저항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또 기존의 교회질서나 제도가 문제가 있어도 그나마 작동하고 있고 또 일정한 효능을 발휘하고 있어 교회 내의 개혁 요구가 절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한국교회는 개혁을 외면할 수 없는 물리적 환경 아래 놓여있다. 성장은 정체되고 한 세대 후인 2050년이 되면 한국교회 신자는 300-400만 명으로 줄어든다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사회가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 인구의 고령화는 사회의 고령화를 훨씬 앞질러 가고 있다. 인구변화에 관한 통계분석에 따르면 한 세대 후 한국교회 신자의 70% 정도가 은퇴자로 채워질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는 <개독교>로 불리고 <목사>는 <먹사> 불리는 등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맨 앞에 감리회가 서있다.

감리회는 오늘 지난 130년 간 경험해보지 못했던 깊은 어둠의 터널 속에서 헤매고 있다. 그동안 일제 강점기의 신사참배, 해방 후 재건파와 부흥파 분열, 1954년 '호헌파' 분열, 1974년 '갱신파' 분열 등 부끄러운 역사는 있었다. 하지만 신사차배의 경우 일제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재건파와 부흥파의 분열이나 갱신파의 분열은 교회개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분열이었다는 점에서 일견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감리회는 어떤가? 감리회는 지금 스스로는 교회의 수장조차도 선출하지 못하는 식물교회로 전락했다. 감리회 재판은 재판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타락하고 부패하여 재판으로서의 기능은 이미 무력화 되었다. 교회 안에서 세상의 그 어떤 법보다 권위가 있어야 할 교회법은 오히려 교회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감리회 최고위 성직자인 감독회장이나 감독 그리고 목회자는 지도력과 권위를 잃어버렸다. 감독과 감독회장 선거는 돈으로 얼룩진 지 오래고 이제는 교회 담임마저 돈으로 사고파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명백한 성직매매가 아무렇지도 않게 성행하고 있다.

성장의 정체와 사회적 신뢰의 급격한 하락 등 교회의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가득하지만 이에 대해 대책을 세워야 할 본부는 그 기능이 무력화 되었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위기의 파도를 앞에서 개체교회는 스스로 살아남을 방안을 찾아야 하는 실정이다. 거룩해야 교회에서 거룩은 사라졌고, 고백과 용서 그리고 화해와 일치가 예수의 가르침이지만 감리회의 어디를 가나 고백도 용서도 화해도 일치를 위한 몸부림도 없다. 가는 곳마다 싸움판이다. 이렇듯 오늘의 감리회는, 시스템은 다시 고쳐서 쓸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망가지고 기존의 질서는 무너졌다. 바야흐로 감리회는 폐허의 잿더미 위에 서있는 것이다.

• 잿더미 위에 서있는 감리회, 지금이 개혁의 기회다.

하지만 감리회가 철저한 파괴 후의 잿더미 위에 서있음이 오히려 희망이다. 지금 감리회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개혁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개혁을 누가, 또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다. 그렇다면 감리회를 개혁할 사람은 누구인가? 종교는 타락하고, 권력층은 부패하고, 재판관은 불의를 행하고, 백성은 도탄에 빠져 더 이상 인간에 의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를 기다렸다. 마찬가지로 오늘 감리회 안에서 누구나 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감리회 개혁을 희망하는 이들은 힘 있는 누군가를 통해서 개혁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고 그런 감독회장, 그런 감독을 기다린다. 하지만 한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개혁은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

지난 입법의회를 보라 모든 감리회 구성원이 지난 입법의회가 감리회의 개혁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믿었다. 때문에 입법의회의 최대 관심은 개혁입법 실현여부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했듯이 그 입법의회는 감리회 역사상 최악의 입법의회였고, 개혁이 아니라 반개혁적인 입법의회였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 의존한 개혁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지난 입법의회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또 개혁은 힘 있는 개인이나 기득권 세력의 힘에 의존해서가 아니라 개혁에 대한 열망을 가진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또 그들이 중심에 설 수 있는 시스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또 개혁은 현장 즉 아래로부터 추진되어야 한다. 개혁은 기존 질서와 제도 혹은 체제에 획기적인 변화를 줄 목적으로 추진되기 때문에 기존질서와 체제 혹은 제도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집단은 손해를 보게 된다. 때문에 이들의 강력한 저항을 피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들 기득권 세력에 의해 추진되는 개혁은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진정한 개혁은 밑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감리회 개혁은 감리회 구성원의 개혁에 대한 욕구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하고 그 방식은 감리회 구성원들의 지지와 여론에 기대어 추진되어야 한다. 개혁에 따르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광범위한 감리회 구성원의 지지와 여론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가 감리회가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이루어 낸 세습금지법 제정이다. 당시 누구도 세습금지법이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감리회 내에 힘 있는 이들 대부분이 세습을 이미 마쳤거나 계획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들 중 상당수가 입법의원인 상황에서 시도는 좋지만 실제 세습금지법이 입법의회에서 통과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세습금지법은 통과됐다. 그것은 여론의 힘 때문이었다. 당시 감리회 내의 여론은 물론, 교계언론과 심지어 일반 언론까지 감리회 장정개정위원회가 마련한 세습금지법의 필요성과 그 의미를 전파했다. 입법의회 현장에서 수많은 언론이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취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세습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은 웬만한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했고, 법안에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것도 어려웠다. 다시 말하면 감리회의 세습금지법은 이런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여론의 힘에 기대어 이루어진 것이다.

앞으로의 감리회 개혁도 마찬가지다. 감리회 일부에서 감독회장 재선거가 이루어지면 정상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착각하고 이를 준비하거나 추진하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교권욕을 교묘하게 개혁으로 포장하고 또 거기에 빌붙어 작은 이익을 얻어 보려는 사람들의 탐욕을 그럴듯한 논리로 속이는 행위다. 단언컨대 재선거는 감리회의 정상화가 아니라 정상화를 빌미로 개혁의 기회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은 감독회장 명함을 이 사람에게서 빼앗아 저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부도에 직면한 사람이 카드로 빚을 돌려 막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감리회 개혁은 누군가를 감독회장으로 세운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감독회장 선거에 입후보하는 이들이 그 나물에 그 밥인 상황에서 그들에게서 감리회 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산 위에서 물고기를 찾는 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시스템, 감리회 바닥의 여론을 반영해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철저한 개혁에 동의하고, 개혁에 대한 의지가 있고, 개혁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 분명한 의지가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개혁이 가능하다면 그가 누구라도 상관이 없다. 그만큼 감리회 개혁이 시급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