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현대사를 다루는 역사교과서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우리 현대사에서 두 가지 큰 사건은 일제의 강점과 6.25 전쟁인데,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동족상쟁은 한국인들이 잊을 수 없는 크나큰 아픔이었다. 그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아베의 야스꾸니 신사 참배로 인한 한일간의 외교적 갈등 그리고 북한과의 정치적, 군사적 대립으로 인해서, 오늘도 일본의 행태가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고 핵을 개발하는 김정은 정부가 위협적인 존재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8.15 해방과 9.28 수복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다.

우리 힘으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던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배하면서 끝났다. 그리고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에게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서 풍전등화 같던 민주국가의 운명이 U. N.의 도움으로 극적인 반전을 이룰 수 있었다. 이렇게 한 번도 아니고 연이어 우리가 죽음의 골짜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한국인들의 힘으로라기보다는 외부의 도움 덕택이었다.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유대인들이 애굽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도록 그리고 가나안 땅에 이르도록 그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아주 비슷하다.

문제는 이러한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한국교회가 그 은혜를 별로 감사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

교회에서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성령강림절, 종교개혁주일은 지키지만, 6.25 혹은 8.15 기념주일은 교회 달력에 나와 있지 않다. 우리 현대사에서 우리가 경험한 이 큰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거나 그 은혜를 잊은 듯하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인들은 우리가 직접 경험한, 우리를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시고 공산주의자들의 침공으로부터 구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한 번은 우연이지만, 두 번은 필연이라는 말이 있다. 특별히 공산주의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남북의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아 목숨을 잃었는가. 이 땅에서 기독교 신앙이 설 자리를 완전히 잃을 수도 있는 위기상황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주셨다. 다시 말하지만, 이렇게 연이어 고통으로부터 우리가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두 가지 기념 절기를 맥추절이나 추수감사절 이상의 대대적인 감사의 절기로 지켜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두 가지를 기념하는 기념주일은 교회 달력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유월절과 초막절에서 대대적인 공동체적 감사 절기 행사를 발견한다.

구약에 기록된 가장 중요한 감사 절기는 유월절이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전적인 하나님의 도움으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의 압제 밑에서 고통 중에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셨다. 유대인들은 1월 15일부터 7일간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으면서 그들을 해방시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들이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는 것은 그들의 조상들이 애굽을 급히 빠져 나올 때 시간이 없어서 누룩을 넣지 않은 딱딱한 빵을 먹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이 절기에는 가족끼리 모여서 각 음식에 부여된 상징적인 의미를 되새기면서 음식을 먹는데, 그 식사에는 기도와 전승의 내용을 암송하는 의식이 포함된다. 유월절 절기에는 식사법을 엄격하게 지키고 절기의 시작과 끝에는 특별한 규정에 따라서 성회로 모일 뿐 아니라 노동을 제한하기도 한다.

유월절에 버금가는 감사 절기는 초막절이다.

이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며 유랑하던 때를 기념하는 일종의 축제다. 첫날부터 8일간 성회로 모이고 노동하지 않으며 매일 제사를 드린다. 이 축제를 통해서 그들은 광야에서 유랑하던 그들의 조상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긴다. 유대인들은 이 절기 동안 그들이 살던 집을 떠나 종려가지 같은 무성한 나뭇잎으로 만든 초막에서 지내면서 그들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살았던 때를 기념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왜 그들은 이렇게 대대적으로 유월절과 초막절을 기념하는가?

그 이유는 그들의 조상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민족 전체가 기억할 뿐 아니라 자손들로 하여금 그 사실을 잊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속담에 ‘은혜는 물 위에 쓰고 원수는 돌 위에 새긴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실상 이스라엘인들은 애굽에서 나온 후에 그들을 노예생활로부터 해방시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내 잊고 당면한 고생에 대해서 불평하는가 하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금송아지를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매년 대대적인 절기 행사를 통해서 대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이 두 절기의 7일 혹은 8일 동안에 이루어지는 음식, 기도, 전승의 낭독, 제사, 성회, 초막집 체험 등을 통해서 온 가족이 그리고 공동체 전체가 모여서 역사적 사실을 낱낱이 되새기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해마다 반복되는 철저하고 대대적인 두 가지 감사제는 역사교육 기간일 뿐 아니라 신앙교육 기간이다. 유대인들이 지닌 강한 민족의식은 그들의 공동체적 감사 절기 행사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절기 행사들을 통해서 유대 젊은이들에게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몸에 배게 된다.

유대인들의 추수에 관련된 감사 절기 행사는 역사적 절기 행사에 비해 미미했다.

그들에게도 우리의 맥추절이나 추수감사절에 해당하는 맥추절과 수장절이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경우 추수에 관한 감사절은 유월절이나 초막절 같은 민족적인 감사 절기에 가려 있었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는 해방과 수복에 관한 감사가 추수감사 행사에 밀려 그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구약을 통해서 유대인들의 신앙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구약의 시대는 율법의 시대이고 신약의 시대는 은혜의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가 유대인의 율법을 그대로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는 우리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 되어 왔다.

우리의 현대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경험한 한국기독교는 유대인들의 유월절과 초막절에서 공동체적 감사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유월절과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하셨다. 그리고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에서 그 절기들의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하셨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그 말씀에 순종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유월절과 초막절 절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우리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을 뿐 아니라,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지켜주시고 전쟁의 폐허를 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강토로 바꾸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잊고 있다. 지금 우리는 영적 귀를 열고 ‘은혜를 모르는 가증한 백성’이라고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광복절이나 수복절은, 유대인들의 유월절이나 초막절과 마찬가지로, 공동체적 감사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맥추절이나 추수감사절에도 공동체적 의미가 없지 않지만, 그 절기들에는 내가 추수한 것에 대한 감사라는 개인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 우리는 나에게 주신 개인적인 은혜에 대한 감사에 치우쳐 왔는데, 공동체적 감사는 우리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동력을 지니고 있다. 여당과 야당의 갈등이 날을 세우고, 지역적인, 이념적인 갈등으로 머리가 아프고, 기독교 안에서도 교파간의 갈등이 첨예한 우리의 경우, 해방과 수복이라는 민족적인 사건에 대한 관심과 감사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고 있는 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줄 것이기 때문이다.

광복절과 수복절은 교회절기들 중에서 순수한 감사절기이다.

맥추절이나 추수감사절이 한국교회에서 순수한 감사절기로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지만,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현대에 와서는 농경사회에서의 추수절기가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데서 나온다. 농사를 짓는 농촌교회에서는 추수절의 의미가 살아 있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도시교회에서는 그들의 삶과 거리가 먼 추수절기가 뜬 구름에 불과하다. 도시에서는 추수절들을 광복절이나 수복절로 대치하는 것이 좋겠다. 교인들의 경험과 맞닿지 않는, 교인들의 삶과 거리가 먼 감사 절기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교인들의 신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이 중요하지만, 현실과 거리가 먼 전통은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을 필요가 있다.

광복절이나 수복절의 감사 절기는 순수하게 한국적이다.

맥추절이나 추수감사절은 구약에 기록된 절기에서 기원했다. 추수감사절이 미국에 정착한 청교도들에게서 연유했다고 말하지만, 청교도들은 구약의 수장절에서 추수감사절을 착안했을 것이다. 추수 절기 외에 교회에서 기념하는 큰 절기로는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이 있다. 성탄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서 오신 것을 감사하고 부활절에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주신 것을 감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 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절기이고 부활절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을 마음에 새기면서 우리도 부활하게 된다는 믿음을 다지는 절기이다. 이 두 절기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기념하는 만국 공통의 절기이다. 그러나 광복절이나 수복절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자유와 평화를 주신 그리고 전쟁의 폐허 위에 풍요의 꽃을 피워주신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를 감사하는, 우리의 경험에 바탕을 둔, 순수하게 한국적인 절기이다.

그동안 한국의 신학자들은 한국인의 정서와 경험에 맞닿는 한국적인 신학이 필요하다고 말해 왔다.

광복절과 수복절의 감사예배에서 우리는 한국의 역사, 한국인의 경험에 와 닿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다. 이것은 작은 것이지만, 한국적 신학을 찾으려는 노력은 이러한 한국인 전체가 받은 은혜에 감사할 수 있는 절기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유대인들의 신앙 중심에는 유월절과 초막절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 한국 기독교인의 신앙 중심에도 우리에게 자유, 평화, 풍요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굳건히 자리했으면 좋겠다.

일제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것, 공산주의자들을 물리친 것, 오늘날 우리가 풍요를 누리게 된 것은 얼마나 감격스러운 하나님의 은혜인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동안 우리는 개개인에게 허락하신 축복에만 감사하는 데에 치중했다. 그리고 우리 민족 전체가 받은 은혜,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죽음의 골짜기에서 우리 민족을 구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는 소홀히 해 왔다. 혹시 광복이나 수복이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인가? 이제라도 우리 민족을 지금까지 인도해 오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공동체적 감사를 회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유대인들처럼 우리도 자녀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가르치고 그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공동체적 감사를 회복할 때 역사교육, 신앙교육, 감사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감사하는 사람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데서, 하나님이 전능자이심을 믿는 데서, 하나님이 지금도 역사하고 계심을 믿는 데서,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데서 나온다. 구체적인 체험에서 나오는 감사는 우리가 이론적인 교리에 회의를 느낄 때 그 회의를 떨쳐버릴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유대인들이 혹독한 시련 가운데서도 신앙을 잃지 않는 것은 그들의 감사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감사하는 사람의 체험적인 신앙은 절대 진리를 부정하고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신앙을 붙들어 주는 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