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이 밝았다. 지난 한 해가 너무 형편없었기 때문일까? 올해에 대한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하긴 하지만 그래도 작년에 바닥을 쳤으니 더 이상 칠 바닥이 있을까, 뭔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기대감을 갖고 싶다. 하긴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루의 연장이라지만, 사람이라면 새해라는 인위적 시점을 새출발의 계기로 삼고 어제보다는 더 나은 오늘을 기대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 시점에 조선은 조선대로 한국은 한국대로 신년을 맞이하면서 나름의 중대발표를 했다. 조선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라는 형태로, 한국은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이라는 형태로.

조선의 신년사는 며칠 전 열린 ‘2014년 신년사 분석과 전망 토론회’에 다녀와서 쓴 글에 대략 나와 있다. 다른 내용은 다 생략하고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의지를 표명한 부분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자 한다. 신년사 말미에 보면 이런 부분이 나온다.

“북남 사이 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외세에 의해 갈라져 살고 있는 것만도 가슴 아픈 일인데 동족끼리 비방하고 반목질시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으며 그것은 조선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 세력들에게 어부지리를 줄 뿐입니다.
백해무익한 비방중상을 끝낼 때가 되었으며 화해와 단합에 저해를 주는 일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남조선 당국은 무모한 동족대결과 종북소동을 벌이지 말아야 하며 자주와 민주, 조국통일을 요구하는 겨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북남관계 개선에로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민족을 중시하고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과거를 불문하고 함께 나아갈 것이며 북남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 것입니다.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참다운 애국의 기치, 우리민족끼리 이념 밑에 굳게 단합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거족적 투쟁에 힘차게 떨쳐나섬으로 올해의 자주통일과 평화변영의 새 국면을 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수십 년을 분단돼 살아온 반쪽 당사자이기 때문일까, 한국에 대한 비난조의 발언은 빠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비방중상, 종북소동, 동족대결 등에 대한 언급이 그렇다. 그러나 과거를 불문하고 통일과 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하자는 언급은 자신들의 아량을 강조하는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한국이 천안함 사태 등의 과거 사건에 얽매이지 말 것을 촉구하는 느낌도 없잖아 있다. 아무튼 관계개선을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하자는 입장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하게 분석을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현재 북한 입장에서 남북관계 개선이 그렇게 큰 이슈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관계가 개선되면 좋은 점이 분명 많겠지만 개선되지 않아도 큰 손해 볼 것은 없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이 신뢰프로세스를 강조하는데 그게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지 간을 보기 위한 수준의 관계개선 언급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말 그대로 험악한 상황에서 관계개선을 언급한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원론적인 차원의 언급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위 글을 보다시피 원칙만 있지 세부적인 방안들은 없다. 그러나 신년사 자체보다는 신년사에 언급되지 않은 숨겨진 부분이 항상 더 크기 때문에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편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갖고 회견문을 발표했다. 이 회견문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남북관계에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기로 하자.

“올해 국정운영에 있어 또 하나의 핵심과제는 한반도 통일시대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지금 남북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상황입니다. 작년에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전쟁위협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개성공단을 폐쇄상태로까지 몰고 갔고 어렵게 마련된 이산가족 상봉을 일방적으로 무산시켰습니다. 그리고 최근 장성택 처형 등으로 더욱 예측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내년이면 분단된지 70년이 됩니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대립과 전쟁위협, 핵위협에서 벗어나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어가야만 하고, 그것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시대를 준비하는데 핵심적인 장벽은 북핵문제입니다. 통일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개발은 결코 방치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주변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하여 북한 핵능력의 고도화를 차단하고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걸음을 내딛는다면 남북한과 국제사회는 한반도의 실질적 평화는 물론 동북아의 공동번영을 위한 의미 있는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는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남북관계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지속해왔습니다. 올해도 이러한 인도적 지원을 강화하고 민간교류도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작년에 이산가족 상봉을 나흘 앞두고 갑자기 취소된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이번에 설을 맞아 이제 지난 50년을 기다려온 연로하신 이산가족들이 상봉하도록 해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해주기를 바랍니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으로 첫 단추를 잘 풀어서 남북관계에 새로운 계기의 대화의 틀을 만들어 갈 수 있길 희망합니다.
앞으로 통일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DMZ 세계평화공원’을 건설하여 불신과 대결의 장벽을 허물고 ‘유라시아 철도’를 연결하여 한반도를 신뢰와 평화의 통로로 만든다면 통일은 그만큼 가까워질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분량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일단 조선에 대한 비난조로 시작하고 있으며 분량도 절반 정도나 된다. 그리고 핵문제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 했다. 그러면서 관계개선을 위한 이산가족 상봉 재개, DMZ 세계평화공원, 유라시아 철도를 제안하고 있다. 어찌 보면 원칙을 고수한 것이지만 외교적으로 보면 여전히 이명박 식의 두 손 들고 투항하라는 논조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동안 해온 이야기와 달라진 것은 없다. 비핵화를 하기 전에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역시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사실 조선은 핵무장한 것을 국가적 자부심으로 삼고 있으며 실제로 비대칭 무기를 확보함으로 재래식 대칭무기의 군비경쟁을 하지 않아 인민생활을 위한 내수를 확대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사로잡혀 있다. 조선에게 있어 한국의 비핵화 요구는 판을 깨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박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그런 이유에서인가 비판적인 많은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사실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다’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문 낭독 후에 질의와 응답을 했나본데 ‘이때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말이 나왔나보다. 그렇다, 통일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 대박이다. 그런데 그걸 지금 알았는가? 그리고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대박이라면 그 대박을 누려야 한다. 대박을 앞에 놓고도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오히려 상실감은 배가된다. 과연 대박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주판을 튕겨 봤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세간에는 이번 박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 발언이 철저하게 지방선거를 위한 발언이며 더 나아가 통일세 신설을 위한 꼼수라고까지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새누리당의 이인제 의원이 라디오 방송국과 했던 인터뷰(노컷뉴스 기사보기) 내용을 보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어제(7일)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의원과 당협위원장 225명을 초대해서 대규모 저녁만찬을 가진 이야기로 시작된 이 인터뷰 중간에 장성택 처형이 북한의 변화로 보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이 의원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건 말하자면 크게 보면 균형이 상실돼 있는 거거든요. 상실되거든요. 모든 게 다. 건물도 균형이 상실되면 아무리 큰 건물도 무너지지 않습니까? 어떤 사회체제, 특히 북한처럼 저렇게 아주 보기 힘든 전체주의 체제 저게 언제까지 계속되겠어요. 무너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사회자가 “무너지는 과정... 비슷한 맥락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이 최근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2015년에 통일 가능할 거다. 사람들이 이게 과연 가능할 거냐라는 얘기들을 다 했거든요? ” 라고 질문을 하자 이 의원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가 점을 치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볼 때 이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은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모든 전재산을 통일되면 한반도에 투자하겠다 그분은 짐 로저스라는 실물투자가인데요. 그분은 한 4년 내지 6년 안에 통일이 될 것이다, 또 하버드 대학의 세계적인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 교수 같은 사람은 8년 안에 반드시 통일이 된다, 이런. 학자들이니까 점치는 분은 아니잖아요. 그분들은 어떤 객관적인 변화를 객관적으로 보면서 한반도 통일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분석하고 있죠.”

이 의원의 답변은 계속 이어진다.

“지금 몇 년 전에, 30년, 40년 이상 됐던 아프리카, 아랍 세계 철권체제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역사의 필연적인 흐름이고 또 법칙입니다. 그래서 한반도의 통일은 크게 보면 이제 유일하게 남은 냉전의 잔재 아닙니까? 이것은 이제 봄의 눈처럼 녹아서 더 큰 통일 대한민국이 만들어지는 것은 필연이고요. 우리가 그런 미래를 향해서 최고지도자를 중심으로 힘과 지혜를 모아서 밀고 나가야 되지 않습니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통일대박론을 이해하는 이 의원의 입장이 북한의 붕괴와 흡수통일임을 알 수가 있다. 이 의원이야 워낙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람이라 앞뒤 안 맞는 소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궁금한 것은 이 발언이 이 의원 평소의 소신인지, 아니면 어제 열렸었다는 아군끼리 모인 저녁만찬에서 밝힌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내밀한 입장인가이다. 대통령이 새해벽두에 발언한 내용을, 대통령과 만나서 저녁만찬을 한 여당 의원이 제 멋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공식적 언론에 나와서!

한국에서 북한은 ‘원래 그런 놈들’이니까 그러려니 한다 쳐도 점잖 빼는 한국의 박근혜 정부가 설마 앞에서는 관계개선을 이야기 하면서 뒤에서는 흡수통일, 북한붕괴를 기다리는 그런 소리를 했을꺼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여러 정황이 도무지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사실 박 대통령 집권 일 년을 되돌아보면 이미지 외에는 특별하게 남은 것이 없다. 가끔 언론 카메라 앞에 나타나서 고상하게 몇 마디 말만 남기고 질문도 받지 않은 채 치고 빠지는 식으로 일 년을 지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 밝혀지는 사실들은 그렇게 고상하지 않았다. 이번 관계개선 발언도 석연치 않다. 통일은 대박이니 관계 개선하자고 하지만 말머리부터 조선에 대한 부정적인 비난과 고발로 시작했다. 서해안 평화수역도 못하는 마당에 DMZ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하자고 하고 조선의 동의가 없으면 결코 성사될 가능성이 없는 유라시아 철도를 제안이라고 내놓았다. 도무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차라리 김 위원장의 신년사처럼 ‘관계개선 하면 좋고 안 하려면 말어’ 하는 식이 진정성은 더 있지 않겠는가!

박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폄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왕 그렇게 말했고 통일이 대박이라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행보를 해달라는 것이다. 이제 말 발언 했는데 벌서 뭘 보여달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억지이다. 그러나 그동안 지속적으로 5.24조치를 철회할 때도 되었다고 다양한 방면에서 건의했다. 그렇게 묵묵부답 끌어온 게 벌써 일 년이다. 5.24조치야말로 이명박 정권이 남긴 과거의 유물이 아니던가? 그리고 정말 관계 개선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소극적으로 나오고 있는 조선이 알아듣게 말해주면 된다. 어차피 처음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통일은 물으나마나 대박이다. 삼척동자도 이제는 다 안다. 주판알 튕겨볼 것도 없고 이미 수많은 연구자들이 통일비용 연구를 해서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라는 것은 2014년이 국정원 선거대입 등의 곤란에 처한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늙은이들, 그리고 새누리당의 노회한 정치인들만의 대박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국민과 동포, 민족의 대박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마다의 꿈을 꾸며 각각 발표한 신년사와 신년기자회견문, 그러나 우리민족은 오직 한 가지 꿈만 꾸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화해와 통일, 교류와 협력이라는 평화의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