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론'의 오류

은혜를 받은 자라야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고, 세상에서 성공한 자라야 그리스도의 계명을 제대로 지키면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이른바 '고지론'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매우 그럴 듯 하다. 그러나, 영적인 관점에서 생각할 때 철저히 반성경적이며, 의미를 주의깊게 헤쳐보면 사실상 '탐욕'을 부추키는 위장된 '기복신앙'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고지에 오르기 위해서 필연적인 조건이 있다. 그것은 언제나 소수의 승리자를 염두에 두기 때문에 사랑과 화해, 조화와 일치의 상생적인 인간관계가 아니라, 경쟁과 다툼, 승리와 패배의 갈등을 유발하는 상극적인 인간관계를 상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 신앙에서 '나눔' 의 의미와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주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신 사랑의 실천과 부자청년에게 가르치신 '영생'의 조건이 곧 나눔일 뿐 아니라, 야고보 사도가 말한 살아있는 믿음의 실현으로서 '행함' 또한 나눔을 통해서 비로서 실천할 수 있다. 이는 굳이 성경을 인용하지 않아도 익히 알고있는, 당연한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 한국교회의 수많은 강단에서 설교를 통해 나눔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내세우는 타성적인 전제가 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나눌 수 있으려면 주는 자가 먼저 많은 것을 지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럼직하다. 아무리 주고 싶어도 줄게 없으면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

따라서,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교인들이 세상의 축복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기발한 논리를 마치 교리인양 주저없이 내세운다. 그러나 많이 가진 자라야 나눠줄 수 있다면, 나눔을 실천하는 자, 다시말해 주의 계명을 지키며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자는 반드시 부자여야 한다는 반성경적인 결론을 엄연한 사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부자라야 사랑을 실천할 수 있고, 사랑을 실천하는 자라야 주의 계명을 지켰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결국 천국과 구원은 부자를 위한 전유라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성경은 일관되게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진다"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가난한 자가 천국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지 않던가...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나눔은, '고지'에 오른 부자가 세상을 내려보며 적선하듯 가난한 자에게 호기있게 나눠주는 것이 아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의 열매, 즉 변화의 증거로 제시하는 것처럼 비록 가난한 자일지라도 예외가 아니다. 예컨대, 그것은 옷 두 벌 있는 자가 한 벌을 옷이 없는 자에게 기꺼이 주는 것이며, 빵 두 조각 있는 자가 한 조각을 주저없이 나눠주면서 함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말한다.
 
그 뿐인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넣은 변변찮은 두 렙돈을 보시고 주께서 "이 과부가 가장 많은 돈을 넣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돈 많은 부자들에 견줘 오히려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신 진정한 이유를 아는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 그러하듯이, 나눔을 통한 사랑의 실천 또한 재물의 많고적음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희생을 아랑곳 하지 않는 진실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고지론은 얼핏 보기에 이성적인 논리로는 완벽하게 느껴지지만 영적인 잣대로 본다면 허구일 뿐이며, 오늘날 인간의 영혼을 탐욕의 수렁으로 이끄는 맘몬의 유혹에 지나지 않는다. 나눔을 실천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많은 재물을 탐하는 사람들의 속내는 사실상 나눔이 목적이 아니라, 훗날의 불확실한 나눔을 영적인 미끼로 지금의 확실한 부요를 탐하는, 게걸스런 욕망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의 본질은..., 많이 가진 자가 남아도는 재물 가운데 일부를 없는 자에게 나눠주며 은연중에 자기 의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지금 가진 재물이 적을망정 가진게 없어서 아파하는 자의 고통에 함께, 그리고 기꺼이 동참하는 < com-passion>이다! 즉, '지금, 여기에서'(hic et nunc) 실천하는 구체적인 나눔이 없는 그리스도인에게 사실인즉 사랑 또한 없을 뿐이다. 

요컨대 고지론은 탐욕의 복음이다. 선한 나눔을 빙자해서 악한 탐욕을 정당화시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