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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기 목사는 한국교회 사회선교 롤 모델”상동교회, ‘서거 100주기 추모사업회’ 창립예배 갖고 본격 재조명 나서
이병왕  |  wanglee@newsn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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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12월 06일 (금) 02:08:50
최종편집 : 2013년 12월 06일 (금) 09:52:29 [조회수 : 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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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은 물론 종교계마저도 좌우로 나뉘고,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기보다는 세상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는 시기에 ‘민중목회’와 ‘민족운동’으로 민중 계층과 지식 계층 모두의 신망을 받았던 전덕기 목사(1875∼1914).

그가, 가까이는 일제의 고문으로 세상을 뜬 지 100주기가 되는 2014년, 멀게는 그의 영향을 받은 상동교회 교인 4명이 3ㆍ1운동 주역으로 참여한 지 100주년 되는 2019년을 맞아 재조명 받고 있다.

   
▲ '전덕기 목사 서거 100주기 추모사업회' 창립 감사예배 모습
학술대회, 특집방송, 추모예식 등 다양한 행사 전개키로

지난 4일 정오 기독교대한감리회 상동교회(서철 목사) 대예배실에서는 각계각층 인사 150여명으로 구성된 ‘전덕기 목사 서거 100주기 추모사업회’ 창립예배가 드려졌다.

추모사업회 회장인 서철 목사는 “지금 한국교회는 이념대립과 정쟁으로 분열되고 있고, 사회는 그런 기독교를 보며 강한 불신과 반감을 갖게 됐다”며 “이런 시대에 전덕기 목사의 정신이 새로운 출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서 목사는 이어 “서거 100주기를 맞아 고인의 모범적 삶을 세상에 전하고자 고민하던 중  ‘2014년 3월의 독립운동가 인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이를 계기로 재조명을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 기독교의 좋은 모델을 제시는 기회로 삼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추모사업회는 학술대회, 특집방송, 추모예식 등 다양한 행사를 전개해 전덕기 목사를 한국교회 사회선교의 모델로 알려나갈 계획이다.

먼저 서거 100주년이 되는 내년, KBS와 공동으로 전덕기 목사의 나라사랑을 담은 3ㆍ1절 특집 다큐멘터리 제작을 추진할 계획이다. 성사될 경우 영상 선교를 통해 기독교의 선한 영향력이 회복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추모사업회는 기대하고 있다.

3월 13일에는 ‘왜 전덕기인가’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며, 기일인 같은 달 23일에는 추모예식을 가질 예정이다.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을 돌봤던 민중목회자로서의 생애를 알리기 위해 사회선교대회도 계획 중이다.

한편 추모사업회는 내년 10월에 ‘전덕기 기념사업 재단’을 창립해 전 목사의 사회선교 정신을 교회와 사회에 더욱 널리 알리며, 3ㆍ1절 100주년이 되는 2019년 또 한 번 추모행사를 예정하고 이를 준비토록 할 계획이다.

전덕기 목사 그는 누구인가

   

전덕기 목사는 한말 격동기에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위해 자기 자신을 바쳤던 큰 인물이다.

기독교인으로서 교회의 울타리에서만 활동했던 인물이 아니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몸소 실천한 민족의 지도자였고 애국자였다.

민족운동 전면에 나선 적은 없으나 그는 상동청년회와 상동청년학원을 중심한 민족주의자들의 조직과 활동을 가능케 한 결정적인 인물이다.

그는 이시영, 김구, 주시경 등 그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을 후대에 상동파라고 부를 정도로 강력한 인맥을 형성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그는 전국감리교청년회연합회(당시 엡웰청년회)를 소집해 이들을 중심으로 을사조약 무효투쟁을 전개했다. 1907넌에는 이준과 더불어 상동교회 지하실에서 헤이그거사계획을 성사시켰다.

같은 해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도산 안창호와 함께 비밀결사 민족독립운동단체인 신민회를 결성했다. 그러나 1911년 105인 사건으로 투옥됐으며, 석방된 후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14년 옥중 고문 후유증으로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39세였다.

이렇듯 지식인계층의 인사들이 상동교회로 모여들고 전덕기 목사를 중심해 구국운동을 하게 된 이유는 그가 모든 애국인사들을 품어줄 수 있는 큰 그릇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실례로 그의 사후에 나타난 민족 지도자들의 분열현상은 이를 잘 반영한다.

그의 이러한 포용력은 민중 계층이 상동교회로 많이 몰린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는 민중 속에서 출발해 민중 속에서 생을 마친 철저한 민중 목회자였다. 민중을 위한 실천적이고 헌신적인 삶은 당시 교회와 사회에서 그의 지도력을 높여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조실부모해 숯장사 하던 숙부 밑에서 자라다 17세 때 스크랜턴 선교사를 찾아가 심부름꾼으로 있으면서 기독교 신앙 가진 그는 이후 신학을 공부해 1902년 전도사, 1907년 목사 안수 받고 스크랜튼이 설립한 상동교회의 제6대이자 최초 한국인 담임목사가 됐다.

스크랜턴의 민중목회에 감화를 받은 그는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을 위한 목회를 실천했다. 항상 북적이던 남대문시장 사람들을 대상으로 노방전도에 힘썼으며, 연고자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러 주었다.

당시에는 장티푸스로 죽는 사람이 많았는데 전덕기 목사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구분하지 않고 가족들도 꺼려하는 장티푸스 환자들의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의 죽음 소식이 전해지자 남대문 일대의 불량배들까지 몰려와 죽음을 슬퍼했고 상여행렬은 10리에 늘어섰고 행렬 중에는 기생, 백정, 상두꾼들이 많이 끼어 상여행렬을 더욱 숙연케 했다.

전덕기 목사가 떠난 후에도 그의 민족운동은 계속됐다. 3ㆍ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 중 최석모, 오화영, 이필주, 신석구 등 4명이 상동교회 출신이다.

이러한 삶이 재조명돼 전덕기 목사는 정부 기관인 국가보훈처에 의해 ‘2014년 이달의 독립운동가’ 12인 중 ‘3월의 인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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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나누기(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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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은 (59.12.53.248)
2013-12-08 18:56:51
겸손을억지로라도.. .
신앙을 본받는것은 성숙을 본받는것이며 아비지의 품성을 닮는것입니다.
상동교회가 감리교회와 한국교회의 신앙뿌리를 온전히 내린 교회이지요.
호헌파의 대부 느릇 하면서 변잘된교회와 협성 산학교를 만들었던박설봉.
이제야 정통성을 찾아가는 민족산앙 선배를 계승하는 상동교회 모습이다.
서철목사께서 교만을 사과 하는것을 보면서 감리교의 참 목사상을 보였소.
전용재목사께서 참으로 신앙적인 자리에 참산앙 안의 모습도 보이셨어요.
중앙연회 감독이라며 거만한 모습을 드러낸것을 진정 으로 회개할 자 요.
지금 감리교회는 감독칼라들 때문에 병들었는데도 그 칼라벗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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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Philip Im (70.62.49.64)
2013-12-07 07:21:25
하나님 중심
독립운동은 기독교(인)만이 한 것은 아니다.
그 운동을 하게 된 원동력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전덕기 목사님을 기리고 그를 등에 업어 기독교를 전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 현재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른 신앙생활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도록 해야 한다.
전 목사님의 모든 사회 활동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일들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신 하나님을 드러내는데 주력해야 한다.
자칫 인간 우상화로 흐를까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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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서철 (211.36.146.203)
2013-12-06 12:04:42
상동교회 현충시설 지정
상동교회 예배당이 국가보훈처에 의해 국가현충시설로 지정되었습니다. 12월 5일 국가보훈처는 독립기념관을 퉁해 현충시설 표지판을 설치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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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의아 (61.33.27.221)
2013-12-06 11:01:28
겸손과 오만
기념사진을 보노라니, 그럴듯한 어른들 다 계시는데요
뭔가 좀 아쉽다고 할까요?
잔뜩 올라간 어깨, 짝벌린 다리,,, 겸손한 모습이 녹아 있는건가,
요즘 내 시력이 나빠져서인지 안력이 흐려져서인지 암튼 그렇고 그러네요.
잘못 봤다면 용서해 주시구요,
용서도 하나님의 명령이니깐요
모두 평안들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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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서철 (211.36.146.203)
2013-12-06 11:59:43
죄송합니다상동교회 담임목사 서철입니다. 전덕기 목사님을 추모하면서 진정성을 가지고 전목사님의 겸손과 낮음을 따라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더 겸손과 낮음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의 모습은 전적으로 제가 사려깊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구합니다. 서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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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의아 (61.33.27.221)
2013-12-06 13:10:18
존경
목사님의 진실하심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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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포이멘 (183.109.98.143)
2013-12-06 10:36:41
.....
개신교 역사상 가장 부패한 교회를 만든 요즈음 목사들은 좀 배워라.

설교 강단에서

성도들 보고 '성경도 잘 모르면서...'라고 빈정거리지 말고

성경을 넘어서 예수의 모습을 좀 보란 말이다.


이런 목사님을 보면 성경을 변개하면서 까지도

성경책에 목사라는 직분을 집어 넣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요즈음 금대가리 목사들이

자신의 권위와 명예를 위해서 교권 다툼을 하는 것과

교회안에서 권위를 즐기며 사치하고 세습하면서

성도들을 가렴주구하고 교만을 떠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성경책에서 목사라는 직분을 지울 날이 멀지 않았음을 감지한다.


세상의 금대가리들만 들어라!

성경을 넘어서 예수님을 보아라.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금대가리들도 용서하신다.

그러나 금대가리들이 죽으면 둘째사망을 면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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