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6일 뉴욕 옵스테이트 폴링산장에서 산상문학회가 있었습니다. 송정장석렬박사가 회장으로 있는 미동부 펜클럽이 주관하는 연례문학행사입니다. 주제는 “나의 문학 나의 삶”. 곽상희 최정자 임혜기 정재옥이 나와서 문학간증을 했습니다. 할머니들입니다. 지금도 예쁜데 여고시절은 오죽했을까? 그녀들의 아름답고 눈부셨던 문학소녀시절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문학소년 시절을 생각해봤습니다.

6년 반장을 하면서 초등학교를 다닌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자 공부를 때려치웠습니다. 친구들은 서울중 경복중 용산중 경동중을 찾아 상경했는데 난 시골 안중중학교에 다녀야했기 때문입니다. 창피했습니다. 낙향한 낙방거사처럼 나는 3년을 울분으로 지냈습니다. 공부시간에 소설책만 읽었습니다. 중학시절에 삼국지를 10번이나 읽었으니까요. 학과가 끝나면 안중시장에 들려 샛별소주를 한병 샀습니다. 귀가길입니다. 나팔 불듯 입에 털어 넣고 7킬로 길을 갈지자로 걸어갑니다. 성룡이 나오는 영화“취권(醉拳)”처럼 취생몽사인생길이 그렇게 즐거울수가 없습니다.

여름방학 숙제가 많았습니다. 친구것을 베껴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방학일기를 써오라는 국어숙제가 문제입니다. 이혼녀인 이재열선생님은 남자선생님 보다도 무서웠으니까요. 개학을 3일 앞두고 친구일기장을 빌렸습니다.

“너, 일기까지 베끼려고 그러니? 똑같아서 금방 들통 날 텐데”

벌벌 떠는 친구를 달랜후 한달치 날자 요일 날씨만 베꼈습니다. 그리고 “안나의 일기”를 흉내내어 일필휘지로 가짜일기를 써내려갔습니다. 어느날은 토끼를 잡겠다고 이쁜 여학생과 산속을 헤매기도 하고, 어느날 밤에는 남자친구들과 닭서리 하다가 들켜 엉덩이를 맞기도 하고...거짓말로 쓰는게 여간 재미있는게 아닙니다.

검사하는 날 가짜일기가 들통날까봐 나는 제발이 저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내 일기가 최우수일기로 뽑혔습니다. 그런데 이건 또 뭡니까? 아침 조회시간에 낭송을 했습니다. 난 주홍 글씨 A를 감추고 설교하는 간음목사 딤즈데일처럼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습니다.

(간음한 사실을 고백하고 죽은 딤즈데일처럼 가짜일기인걸 고백할까?)

그러면 국어선생님 입장이 더 난처해집니다.

(후일 기회가 오면 선생님께 석고대죄하고 용서를 빌자)

그런데 기회가 오기전에 이재열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난 문학의 원죄를 용서 받을수 있는 길을 영영 놓쳐 버린 셈입니다.

더 큰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짜일기 덕분에 내가 문예반장이 된 겁니다. 이런 엉터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건 반장은 엉터리이지만 반원들은 각반의 우등생들입니다. 후일 경기도의회의장을 지낸 이계석박사, 서울대교수가된 이계준박사, 대한생명부회장을 지낸 이강웅사장, 영리한 이규찬이 문예반이었습니다.

나는 미국에 와서 미주기독문우회회장을 지내면서 문명(?)을 날렸습니다. 그러나 나의 문예부흥전성기, 찬란한 르네상스시대는 안중중학교문예반장 시절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한후 책을 안 읽었습니다. 품꾼들 틈에 끼어 1년반 동안 농사일을 했는데 밤마다 허리가 끊어지도록 아팠습니다. 고2로 편입해보니 교과서 따라잡기가 힘들었습니다. 목사가 된 후 부터는 문학보다는 성경을 읽어야 했습니다.

(삼국지는 10번 읽었지만 성경은 40번 읽었다. 그러니 이젠 읽고 써도 괜찮겠지?)

미국 와서 슬슬 독자투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일보 5년, 중앙일보 5년, 라디오낭송 1년 동안 “사랑방이야기”를 발표했습니다. 어쩌다 읽은 선배목사님이 책을 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책이 “멀고먼 알라바마”입니다. 내글은 신문 방송칼럼이라 짧습니다. 긴 이야기를 넣고 싶었습니다. “글갱이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고향의 어린시절이야기를 썼습니다. 생전처음 써본 단편소설이지요. 이게 소설인지 르뽀인지 다큐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마침 LA에서 나오는 월간 “광야”에서 신인문학작품을 모집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심사위원이 맘에 들었습니다. 이문열 이호철 김지연이니까요.

‘천하의 이문열이가 내 글을 어떻게 읽는가 보자’

둘째딸 은범이 이름으로 몰래 보내봤더니 당선됐습니다. 무면허 운전을 하다가 면허증을 딴 기분입니다. 얼떨결에 등단작가가 됐지만 단 한번도 ‘필자’는 ‘필자’는 하면서‘작가연’ 한적이 없어요. 언제나 ‘나는’ ‘나는’입니다. 나는 영원한 독자투고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왜 문학을 합니까? 재미있어서 합니다. 도둑이야기도 살인음모도 사랑도 비극도 문학으로 걸러내면 재미있습니다. 홍길동전 수허지 임꺽정 로비후드 진홍의도적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도둑들 이야기인데 말입니다. 문학은 인생을 재미있게 만듭니다.

12월 3일 밤 6시에 후러싱 대동연회장에서 김종회교수의 문학강연이 있습니다. 장석렬박사의 펜클럽이 주관하는 문학생사입니다. 경희대학교교수인 김종희박사는 문학계의 안철수로 알려진 문학전도사입니다. 한국평론가협회회장인 김박사는 북한문학연구의 권위자이기도 합니다.

지난번 폴링산장 산상문학회에 따라나섰던 아내도 같이 가겠답니다. 그때 아내에게 기분 좋은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시간 단풍길 드라이브도 황홀했는데 가보니 동부문협의 미녀들이 즐비하지 뭡니까? 아내는 촌색시처럼 기가 죽어 있는데 동부미녀 양정숙이 아내에게 달려와 속삭였습니다.

“어머, 젊고 아름다우시네요.”

70이 된 아내는 얼굴이 빨게졌지만 문학소녀라도 된 듯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모처럼 문학모임에 구경 갔다가 미녀대접을 받은 겁니다. 그래서 또 가겠답니다.

“그때 그분들이 또 올까?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백옥 같았던 그 여자, 리즈의 눈동자를 닮은 그 여자, 서구적인 마스크를 하고 있는 그 여자....”

“동부문협의 미녀들 이야기군. 꼭 올거야. 그녀들은 얼굴만 예쁜게 아니라 글도 예쁘게 쓸 줄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