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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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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5월 07일 (일) 00:00:00 [조회수 :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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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뿌듯한 날이기도 하고, 찝찝한 날이기도 했다. 율법을 모독한 자를 처단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여서 뿌듯했지만 피로 범벅된 일그러진 죽어가는 그의 눈과 마주친 것이 괜시리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내일 아침이면 괜찮아지겠지....

가말리엘 스승님의 부탁으로 천막을 짜고 있는데 클락이 다급히 달려들어 왔다.
"선생님! 스데반이 저작거리에 나타났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용수철이 튀어오르듯 단숨에 현장으로 뛰어나갔다. 스데반 주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는 설교를 하고 있었다.
듣던 바대로 그의 목소리는 우렁찼고 성서에 밝은 자였다. 설교는 꽤나 길었다. 아브라함부터 내려온 신앙 이야기는 결국에는 유대민족을 모욕하는 것으로 끝났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이제 당신들은 그 의인을 배반하고 죽였습니다. 당신들은 천사들이 전하여 준 율법을 받기만 하고,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경악했다. 옷을 찢어야할 정도의 분노가 끓어올랐다.
'감히 율법을 조롱하다니! 뭐~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미친 녀석 아니야!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우리를 보고, 율법을 받기만하고 지키지 않았다고!!!'
용서할 수 없었다. '게다가 우리가 의인을 죽였다고? 그는 죽어 마땅한 자였어! 하나님을 모독한 자였고, 특히, 율법을 파괴하는 자였어! 그런 자를 죽인 것은 하나님 보기시에도 좋은 일이었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었어! 그런데....'

피가 거꾸로 솟았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저런 자는 돌로 쳐 죽여야 한다.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분노를 느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돌을 던졌다. 나도 있는 힘껏 돌을 던졌다. 그가 큰소리를 질렀다. 고통스러워하는 목소리에 더욱 희열을 느끼며 응징을 가했다. 죽어가는 그의 입에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 소리가 들렸다.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주십시오"하더니, 무릎을 꿇고는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하고 외쳤다.
그래서 나도 외쳤다. "그래! 니 입장에서 우리가 죄짓는 것 같겠지만, 이것은 네 죄 때문에 죽는거지, 우리의 죄가 아니야!그러니 죽어가면서 알량하게 우리를 용서한다는 만용은 부리지마라"
그 순간 그와 얼굴이 마주쳤다. 그 눈빛은 선해보였다. 솔직히, 순간 나는 당황했다. 당황하는 모습이 들킬까봐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알수 없는 이상한 느낌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일기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 느낌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머리가 맑지 못하다. 차라리 증오하며 죽어갔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율법! 그것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문이다. 모세를 통해 수여된 율법이야말로 하나님이 내린 인류 최대의 선물이다. 모든 사람은 율법 아래에 모여야하고, 율법대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야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늘의 뜻이다! 내일부터는 모든 일을 제쳐놓고 이 자들을 색출하는데 발벋고 나서야겠다.

이로부터 한달 후


2.

나는 대제사장에게 정식으로 예수를 믿는 자들을 잡아들일 권한을 달라고 요청했다. 나를 잘 아는 대제사장은 나의 율법수호에 대한 열정을 높이 사며 다마스쿠스의 회당에 보내는 편지를 써주었다. 나는 성전 경비병들을 대동하고 위풍당당하게 다마스쿠스로 향했다. 뜨거운 날씨도 나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 뜨거운 한낮에도 우리는 강행군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다마스쿠스 도시가 보일때쯤 갑자기 나는 쓰러졌다. 일사병에 걸린 사람처럼 맥없이 쓰러졌다. 일행들은 의욕에 앞선 나의 과욕이 몸을 해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를 쓰러뜨린 것은 태양이 아니라 낯선 어떤 음성이였다. 그 소리는 내 귀에만 들렸으며, 멀찌기 떨어져 걸어오던 일행들의 왁짝지껄한 소리를 삼켜버렸다.

내 이름이 반복해서 불려졌고 나를 추궁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그래서
"누구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신기한 일이었다. 내가 던진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의 원혼이 나타나 "니가 죽인 스데반이다"라고 했어야 할 것인데, 그가 전한 예수가 직접 나타나 "핍박받았다"고 하였다.

야소교를 믿는 자들은 우리와 달리 일심동체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쟁이를 잡아들이는 것이 곧 예수를 핍박하는 일이며, 예수가 고통받고 있다는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율법주의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정죄하기를 좋아했다. 남들이 율법을 잘 지키는지, 무얼 어기는지 보고 그것을 지적하며 추궁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야만 율법을 잘 지키는 나의 의(義)가 돋보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너나 할것없이 나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좋아했다. 내가 금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얼굴을 일부러 상하게 만들었고, 시장 거리에서 기도하며 나를 자랑하는 걸 즐겨했다. 이럼으로서 대해 율법을 지키지 않는(저자 주-정확하게 말하면, 율법을 지킬 처지에 있지 못하는) 죄인들은 더욱 주눅들게 만들며 율법주의를 더욱 공고히 했다.

'느그들, 나의 이 경건하고 거룩한 모습을 좀 배우고 닮아라! 이런 나의 모습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 참 모습이야! 내게서 배워라! 내가 교본이고, 내가 길이다!'하며 저 무지한 자들을 개화시키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 믿고 그렇게 행동하면서 내심 우월감과 같은 희열을 느끼며 살아왔다.

모두가 율법만이 최고의 선이요, 구원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이 하신 가장 위대한 일은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것과 모세를 통해 율법을 수여하신 것이라고 믿었다. 나도 그랬다.
태어나서 한번도 이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쟁이들만은 율법을 몽학선생이라고 폄하하고 다녔고, 율법의 시대는 가고 사랑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며 우리의 율법을 미완성작이라고 감히 떠들고 다녔던 것이다.

그런 가르침의 괴수가 지금 내 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나는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의 음성이 또 들려왔다.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해야할 일은 분명했다. 예수쟁이들을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압송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일 말고 '다른 일'이 있다고 음성이 알려줬다. '다른 일이란 무엇일까?' 찰라같은 짧은 시간에 나는 그 음성에 흡수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앞을 볼 수가 없었다. 마치 번데기가 나비가 되기 위한 시간처럼, 새로운 세계를 보기 위해서 새로운 눈이 필요한 것처럼 나는 사흘간 눈이 멀었으며,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이 사흘은 지금까지 나를 지배했던 모든 신념과 욕구를 닫아놓는 시간과 같았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갈 때 사흘 길을 걸어갔던 것처럼 나도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사흘간 눈이 멀었던 것 같았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간 기도하며 회개했던 것처럼 내게도 '새로운 일'을 위해 사흘간의 물고기 뱃속같은 체험이 필요했던 것 같다.

주님이 사망의 어둠을 벗어나오기 위해 사흘이 필요했던 것처럼 나도 율법의 무덤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사흘이 필요했던 것 같다. 사흘 후에 나는 전혀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있었다. 사흘 전에는 상종도 하지 않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지내며 내 마음의 틈 속으로 들어온 '그리스도 예수'가 율법의 부족한 모든 것을 해석하고 있었다. 스데반의 눈빛을 통해 갈라진 틈을 비집고 들어온 율법의 완성은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이것이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그랬다. 죽어가는 스데반과 마주쳤던 눈빛이 열어논 틈 사이로 예수의 음성이 들어와 나를 전혀 새로운 존재로 뒤바꿔놓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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