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디에서든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했던가. 신앙을 위해서 세상을 거슬러가는 영성의 아름다움-이것이 위스콘신에서 내가 본 아미쉬의 알짬이었다.

아미쉬-그들은 어떤 그리스도인인가

아미쉬의 뿌리는 재세례파이다. 재세례파에서 메노나이트와 후트라이트와 아미쉬가 갈라져 나왔다. 쉽게 설명하면 메노나이트는 자동차도 타고 다니고 전도사업도 한다. 후트라이트와 아미쉬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데-후트라이트는 공동체에 통장이 하나가 있고, 아미쉬는 가정마다 통장이 하나씩 별도로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미쉬공동체는 철저하게 사유재산의 기반 위에 서있고, 후트라이트공동체는 사유재산이 허용되지 않는다. 재세례파 가운데 아미쉬는 철저한 종교개혁을 주장한 극좌파적인 태도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 종교개혁의 역사 흐름 가운데서 아미쉬가 주장한 개혁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아미쉬의 개혁에 대한 관심은 교회의 구조나 제도가 아니었다. 그들의 관심은 교회의 역사에서 실종되었던 잃어버린 초기원시교회의 신앙을 되살리고,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순결한 성체로 교회공동체의 아름다운 영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 홀스세일(말 경매장)에 나온 아미쉬 모녀가 악세서리를 둘러보고 있다.(사진 남재영 목사)

교회가 세속에 물드는 것을 막고 세상에서 교회공동체가 거룩한 성경말씀으로 순결한 영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고 또 그렇게 믿는 바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기독교인의 중요한 삶의 자세가 순종과 겸손과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것을 실천하는 것을 공동체의 덕목으로 삼고 있다. 그들은 종교개혁 당시 박해를 받으면서 지켜온 조상들의 믿음과 영성을 지금도 자신들의 삶으로 지켜가야 할 공동체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종교개혁 당시에 과격한 개혁에 대한 요구로 가혹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아미쉬들은 전혀 무력을 사용하여 대항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던 그 모습을 그대로 따라 실천했다. 종교개혁 당시에 극좌파적인 개혁의 입장을 가졌던 아미쉬들이 지금은 말씀을 다른 해석 없이 그냥 그대로 믿는 가장 보수적인 신앙인들이 되어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아미쉬는 장식품을 달거나 목걸이나 귀걸이를 하지 않는다. 용모를 가꾸는 것을 금하고 있어서 여자들은 거울도 보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아미쉬가 유일하게 보는 거울이 하나있다. 바로 <순교자의 거울>이다. <순교자의 거울>은 아미쉬의 고난과 박해와 순교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백과사전처럼 묵직한 이 책은 아미쉬 가정마다 성경책과 함께 놓아두고 틈틈이 들여다보는 아미쉬의 역사이다. 조상들이 흘린 피로 얼룩진 이 <순교자의 거울>은 아미쉬의 일상의 삶을 가다듬게 하고 깨우치고 성찰하게 하는 일깨움의 거울이다. <순교자의 거울>에 기록 된 이야기들은 모두 순교자의 이야기들이다.

▲ 아미쉬의 빨래 건조대-사일로 상단에 도르레를 이용하여 빨래건조대를 만들었다.(사진 남재영 목사)

종교개혁 당시에 재세례파는 급진적인 개혁요구로 파문을 당하고 체포를 당하면 화형에 처해지던 그런 때가 있었다. 그 때 <더크 윌렘스>라는 재세례파 교도가 재세례파 사냥꾼들에게 추격을 당하면서 쫒기고 있었다. <더크 윌렘스>는 얼어붙은 호수를 건너 도망을 치던 중에 뒤를 돌아보니 자신을 쫒던 그 추격자가 호수의 깨어진 얼음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더크 윌렘스>는 추격자에게서 완전하게 벗어나 멀리 도망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그는 익사 직전에 있는 추격자를 구하기 위해서 다시 돌아 선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추격자는 정신을 차리자 그 자리에서 배은망덕하게 <더크 윌렘스>를 체포하였다. 이렇게 해서 <더크 윌렘스>는 화형을 당했다. 1569년 북유럽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 이야기는 <순교자의 거울>에 실려 있는 수많은 순교자들의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이다. 아미쉬들은 성경 말씀과 <순교자의 거울>을 가지고 신앙의 잣대로 삼고-이 텍스트에 자신을 맞춰 가며 살아가고 있다.

아미쉬 목사 알리이 집에서

아미쉬공동체에서 나는 열흘동안 농장과 목장을 돌아다니며 일을 했다. 그 가운데 아미쉬 목사 일라이 요더의 집에서 이틀 숙식을 하는 행운도 있었다. 그들과 함께 일하고 같이 식사를 하고, 또 그들 가정에서 잠을 자기도 하면서 보낸 시간으로 느끼고 깨닫는 은총이 있었다. 일라이 목사는 아미쉬공동체의 목사이다. 그러나 그의 일상은 여느 아미쉬와 똑같았다.

첫날 일라이 목사 집에서 잠을 잘 때 이동수목사는 내게 플라스틱 깡통을 하나 손에 쥐어 주었다. 용도는 요강 대용이었다. 밤에 배설에 대한 욕구가 생기면 그 깡통에다 해소하라는 것이었다. 이 기묘한 부탁에 대해서 처음에는 웃었지만, 잠을 자면서 왜 그게 절실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아미쉬 화장실은 우리 시골의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우리는 푸세식 화장실에 ∐형 발받침대 위에서 볼일을 보지만, 아미쉬 화장실은 ◯형 위에 조준을 잘해서 걸터앉아야 했다. 한밤중에 일어나서는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집안에서 화장실을 찾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밤에 플라스틱 깡통이 절실한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구세주(?)였다.

▲ 일라이 목사의 집에서 숙식을 할 때 침대위에서 셀카로 찍은 사진(위/왼쪽)과 아미쉬 화장실(위/오른쪽) 그리고 침대(아래)-왼쪽 프라스틱 깡통으로 밤 사이에 용변을 해결한다.<사진:남재영 목사>

막내 아들을 데리고 사는 일라이목사는 막내 부부와 모든 생활은 독립적으로 했다. 그러나 목장의 일은 언제나 같이했다. 매일 새벽5시30분에 일어나 가축에게 밥을 주고 젖소의 젖을 짰다. 첫날, 아침을 먹기 전에 일라이 목사 내외와 나는 함께 앉아 성경을 읽었다. 아미쉬들은 매일 성경을 1장씩 읽었다. 일라이 목사 부부는 독일어 성경을, 나는 킹제임즈 영어판으로 예레미야32장을 한절씩 돌아가면서 성경을 읽고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식사는 식사 전 기도와 식 후 기도를 드렸다. 풍성한 식탁에서 아침을 먹는 도중에 커피를 마시겠느냐는 말에 깜짝 놀랐다. 나는 아미쉬는 커피를 안 마시는 줄 알았다. 그래서 좋다고 했더니 일라이 목사 부인이 3잔의 커피를 타왔다.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아미쉬는 커피를 당연히 안마실거라고 생각했던 내 편견과 무지로부터 아미쉬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어 갔다.

커피뿐만 아니다. 내가 가진 편견 가운데 돈에 대한 그들의 태도이다. 그들은 악착같이 일해서 그 수확을 현금으로 교환했다. 최고의 농산물을 생산하여 이를 잘 다듬어서 시장에 내어놓거나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팔았다. 성실하고 열심히 일해서 일라이 목사만 해도 사는 것은 그렇게 궁색하지 않았다. 일라이 목사의 자녀들 가운데서 3명이 같은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었다. 아미쉬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어른은 자녀들이 모두 아미쉬로 살아가고, 아미쉬로 살아가는 자녀들이 모두 농토를 가지고 농사를 짓는 그 자녀들의 아버지를 공동체가 어른으로 존경하고 섬긴다. 우리로 치면 출가한 자녀들이 모두 아버지가 섬기는 교회에 출석하여 다함께 신앙생활하는 그 가정의 아버지를 교회공동체가 어른으로 존경하고 섬긴다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 일라이 목사의 축사 전경<사진 :남재영 목사>

아미쉬들은 보통 한 가정에 10-15만평의 농사를 짓는다. 이 정도의 농토가 아미쉬 한 가정이 자력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규모라고 했다. 위스콘신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1.5배이나 인구는 600만명이다. 농토가 비교적 저렴하여 아미쉬들이 많이 살고 있는 편이다. 위스콘신의 아미쉬들은 자녀들이 결혼을 하면 아버지가 농토를 사준다. 일라이목사도 자녀들이 결혼하자 농토를 사줬다. 그러나 그냥 사주는 것이 아니다. 매년 4%의 이자를 쳐서 땅을 받은 자녀는 아버지에게 다시 갚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둘째가 결혼을 하면 둘째에게 땅을 사주고 또 둘째도 그렇게 해서 땅값을 갚는다. 아미쉬들은 부모가 막내를 데리고 산다. 막내는 경험이 제일 미숙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데리고 살면서 농사를 가르친다. 돈을 벌어서 자기 자녀들에게 농토를 사주고 자녀들이 농사로 그 땅값을 다 갚으면 그때 그 돈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공동체 안에 가난해서 농토를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하는 형편에 있는 이웃들에게 같은 방법으로 땅을 사주고 또 같은 이자로 갚도록 한다고 했다. 아미쉬공동체는 철저하게 신앙공동체이지만 이 신앙공동체는 경제적으로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이기도 하다는 말이 감동적이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교회

한국의 미자립교회는 생존의 위협을 느낄 만큼 곤궁한 목회자들이 있다. 자녀들이 대학을 진학할 나이가 된 4-50대 목회자들 가운데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가장이라는 자괴감 속에서 목회현장을 지키는 목회자들이 적지 않다. 감리교회는 공교회이다. 파송제도는 파송된 교역자에 대해서 파송한 감독이 그 생활을 책임지는 제도이다. 그러나 한국감리교회는 파송은 하지만 그 생활은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회자 개인이 알아서 살길을 만들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수완이 부족한 목사는 살길이 막막하다. 대형교회는 넘쳐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서 재앙을 만들고 있지만 미자립교회의 목회자들의 생활고가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미자립교회의 목회자들의 생활비를 한국감리교회는 충분하게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오늘 감리교회는 미자립교회 교역자들이 겪는 생활고에 대해서 이를 방치하고 있다.

▲ 홀스세일이라 불리는 말 경매장-아래 사진은 말을 경매에 붙이고 있는 중이다. 위 사진 말경매장에 말을 팔고 사기 위해서 나온 사람들 가운데서 밀짚모자를 쓴 사람들이 아미쉬들이다.<사진 남재영 목사>

몸의 중심은 어디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심장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뇌나 배꼽이라고도 대답한다. 모두 아니다. 사람 몸의 중심은 고통이 있는 곳이다. 새끼발가락이 아프면 온 몸의 신경이 새끼발가락에 쏠리기 때문에 새끼발가락이 당연히 몸에서 중심이 되는 것이다. 죽은 몸은 아니고 생명 있는 몸이면 당연히 그렇게 된다. 몸의 중심이 그렇듯-기독교의 건강한 영성도 아픔이 있는 현장이 영성의 출발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고전 12:23)몸 가운데서 덜 귀하다고 생각하는 지체들을 더욱 귀한 것으로 입히고, 볼품없는 지체들을 더욱더 아름답게 꾸며]준다는 성경의 말씀이 아니라도 감리교회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당연히 미자립교회가 공교회의 중심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생활고에 신음하는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오늘 감리교회의 영성이 건강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고통에 연대하는 영성적인 성찰이 없는 교회는 죽은 몸이다.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이라 할 수 없다.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의 고통을 끌어안지 않고서는 감리교회가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제자리를 잡을 수 없다. 아미쉬들에게는 죄송하지만-공교회안의 미자립교회의 고통을 당연히(?) 외면하고 있는 우리는 아미쉬만도 못한 족속들이다. 공동체 안의 어려운 이웃들의 경제를 위하여 넉넉한 이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일라이목사의 말이 내게는 저리도록 감동이었다.

정낙추 시인과 아미쉬

일라이목사의 목장에서 일을 하던 날, 아침식사 후 일라이 목사와 함께 파트너가 되어 창고에 겨울 땔감을 쌓는 일을 했다. 2톤 트럭만큼 되는 아미쉬 마차에 가득 쌓아 올린 땔감들을 창고 벽에 난 창문을 통해서 던져 넣고 안에서 차곡차곡 쌓는 일이었다. 그 일을 하면서 나는 죽는가 싶었다. 내가 아미쉬와 손발을 맞춰가며 일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단련된 농사꾼인 아미쉬와 육체노동을 모르게 수 십년을 지내다보니 어느 듯 나도 모르게 골샌님이 된 한국의 목사가 아미쉬와 함께 손발을 맞춰 일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일을 해야 했다. 손발이 안맞다보니 상처도 많이 생겼다. 통나무에 내 손가락이 찍혀 상처가 나고 피를 흘리자 그제서야 작업을 잠시 중단했다. 소독약으로 상처를 씻고 밴드를 감는 동안-손가락에서 피를 흘리는 아픔보다 짧은 휴식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더 고마웠다.

▲ 일라이 목사의 옥수수 밭에서 두 고랑을 낫으로 자르느라 거의 탈진상태(왼쪽/오른쪽 위)에 빠졌고, 일라이 목사가 자른 두 고랑으로 추수 기계를 장착한 마차를 몰고 옥수수를 추수했다.<사진 이동수 목사>

이렇게 오전 작업을 마치고 오후에 옥수수 밭에서 옥수수를 낫으로 자르는 일을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옥수수밭 한고랑 밭은 2킬로가 족히 되는 것 같았다. 두 고랑의 옥수수 대를 잘라야 말에 기계를 달아서 옥수수를 자르는데-말이 들어갈 두 고랑은 낫으로 잘라야 했다. 가을 햇살아래 끝도 보이지 않는 옥수수 밭고랑에서 낫으로 옥수수대를 자르면서 나는 완전 녹초가 되었다. 죽는가 싶도록 힘든 옥수수밭에서 나중에는 낫을 휘둘러도 옥수수대가 넘어가지가 않았다. 육체적인 한계점에 가서야 날마다 이렇게 힘든 육체노동을 하고 있는 농민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었다. 농담이지만-그 날 하루, 나는 정말 요단강을 건너가는 줄 알았다. 이렇게 힘든 육체노동을 하면서도 밝게 살아가는 아미쉬들이 존경스러웠다.

그 힘든 와중에 내가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태안 출신의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정낙추라는 시인이었다. 사실 나도 그의 시집만 읽었지 한 번도 만난 적은 없다. 그는 가진 것 없고, 힘없고, 남들 앞에서 행세할 만한 완장하나 없는 민중들의 끈질기고 건강한 삶을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시인이다. 그리고 그 역시 별 볼일 없는 민중 가운데 하나이다. 어느 시집에나 있는 시인의 프로필에 ‘태안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시를 쓰고 있다’는 말만 있을 뿐 학력이 전혀 없다. 그의 시집을 읽으면서 학력을 적지 않은 까닭은 본래 적을 수 있는 학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시집제목이기도 한-<그 남자의 손>이라는 시는 이렇다.

그 남자의 손은
무쇠 뚜껑보다 투박합니다
소나무 옹이보다 억센 손마디로
여린 싹도 키우고 고운 꽃도 피우게 하는
요술쟁이 손
그 손바닥엔 딱딱한 못이 박혀있습니다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을 단단한 못 속에는
서러운 세월을 안으로 삭힌
땀과 눈물이 고여 있는 걸 아시는지요

잘 썩은 두엄냄새와 구수한 곡식 냄새가 납니다.
비누로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그 냄새는 그 남자가 지쳐 쓰러질 때마다
일으켜 세우는 신비한 힘입니다

그 손은 욕심 없는 정직한 손입니다
이 나라 만백성을 먹여 살리고도
생색 한 번 안 낸 위대한 손입니다

그 남자의 손이 요즘 들어
희고 부드러운 손앞에 주눅 들어
자꾸 주머니 속으로 숨습니다
아내의 가슴을 보듬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거친
그 남자의 손이 가엾어 죽겠습니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내 손을 자주 들여 다 보게 된다. 내 손이 이 땅의 위대하고 건강한 농민들의 투박한 손을 부끄럽게 만들고 주눅 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손을 보면서 오늘 목사로 살아가는 내 생각과 삶을 살피고 성찰하게 된다.

우리 집 둘째는 장래 꿈이 농사꾼이다. 둘째가 농사를 짓고 싶다고 했을 때 정말 마음으로 격려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 그러나 그 누군가는 가야할 농민의 길을 가고자 하는 둘째가 자랑스러운 것은 내 아들이라서가 아니다. <목사님! 요즘 젊은 사람들 가운데 누가 농사를 지으려고 합니까. 농사가 얼마나 힘든지 목사님이 뭘 몰라서 그렇지요. 목사님이 농촌을 제대로 알면 절대 아들을 농사짓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내게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 사람들의 말처럼 농촌의 실상을 속속들이 모른다. 내가 아는 농촌은 농업인구의 평균연령이 65세(13.9.19, 인터넷신문-이데일리)이고. 이 점을 감안하면 한국농업은 이렇게 가면 10년이면 자연사로 도태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스무 살 젊은이가 농사를 짓겠다는 꿈을 가지고 실제로 그 길을 찾아가고 있는 모습이면-그가 내 아들이 아니라 누구라도 나는 칭찬과 격려에 헤프고 싶을 따름이다.

▲ 일라이 목장에서 첫날 겨울 화목을 창고에 쌓는 일을 했다. 창문(오른쪽 위 사진)으로 통나무를 던져 놓은 다음에 안으로 들어가 차곡차곡 쌓는다. 오전에 2톤 트럭분량의 마차 4대의 통나무를 처리했다. <사진 남재영 목사>

그래서 나는 농사를 짓겠다는 둘째에게 많은 격려와 칭찬을 해주고 있다. 나는 이 땅의 농민들은 <생명의 근본을 가꾸는 성직자>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한국 농촌은 지금 젊은이들이 다 떠나오고 노인들만 농촌을 지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적으로 귀농/귀촌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귀농하는 사람들보다 농촌에서 빠져나오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가지 않는 그 길을 가는 둘째가-아버지로써 매우 자랑스럽다.

한국 주류교회의 수준

지난 해 우리 교회 중고청년들이 안면도에서 열리는 중고청캠프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마지막 시간에 강사목사들이 아이들에게 자신의 미래와 관련하여 결단하고 축복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을 저만큼 뒤에 떨어져서 지켜봤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아이들의 신심은 예민해져있고, 강사 목사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여러분들 가운데 위대한 과학자가 될 사람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일어섰다. 강사 목사는 그 아이들을 위해서-꼭 하나님께서 위대한 과학자의 길로 인도해주시라고 열광적으로 축복기도를 해줬다. 이렇게 해서 위대한 정치가, 위대한 예술가, 위대한 학자, 위대한 기업가, 위대한 선교사, 위대한 사역자…<위대한>이라는 수사를 붙일 수 있는 세상 많은 직업들이 다 나왔다.

그 시간에 끝내 나오지 않았던 직업이 <위대한 농부>였다. 그리고 <위대한 노동자>였다. 중고청 아이들이 장래의 소망을 가지고 헌신하게하고, 또 그 아이들을 위해서 축복기도를 해주는 그 자리에서 우리 집 둘째는 끝내 일어설 기회를 얻지 못하고 눈물로 그 자리를 파해야 했다. 마이크를 든 강사목사의 ‘위대한 농부가 될 사람 일어서라’는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들을 여름수련회나 캠프에 보내지만-나는 늘 그런 캠프마다 강사목사들의 수준은 한국교회 목사들의 평균적인 의식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의 그 나이에는 강하고 예민한 영적인 감수성이 있음을 알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보내게 된다.

농민과 노동자들을 귀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말씀을 보는 눈이 오염되어 있으면 귀천(貴賤)의 가치를 참되게 분별하는 능력이 생길 수가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참된 생명을 헤아리는 예민한 영적 감수성이 없다면-비록 그가 목사라 할지라도-결코 농민과 노동자 앞에 위대한 이라는 수사를 붙여줄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가 없다. 나는 이 점이 오늘 한국 주류교회의 과오라고 생각한다. 정낙추 시인의 눈에는 농민의 손이 <이 나라 만백성을 먹여 살리고도 생색 한 번 안 낸 위대한 손>이다. 이 손의 가치에 대해서 절절하게 노래하는 것은 정낙추 시인의 몫만은 아니다. 그 가치를 제대로 헤아리는 것이 한국교회의 몫이 되어야 한다. 지나친 기대일까?

▲ 일라이 목사의 목장에 있는 사료 배합기<사진 남재영 목사>

우리는 어떤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나? 말씀을 붙잡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비록 그 길이 모든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길이라도-거기 생명의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지어놓으신 뜻을 헤아리면서 그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가는 그 사람들이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 깨달음에 눈을 뜨지 못하면 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점점 외면당하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길은 돈 되는 길이다. 그 길은 교회가 가라고 하지 않아도 약삭빠른 세상이 먼저 가라고 선동하고 있다. 그런데 그 길을 교회가 약삭빠른 세상과 짝하여 가라고 부추기는 것은 갈릴리의 목수였던 노동자 예수가 누구인지를 전혀 모른다는 말이다.

<위대한 농부><위대한 노동자>는 생각조차 못하는 목사들과 교회들은-돈이 되는 그 길이 축복의 길 인양 선동하고 있다. 더 심하게는 돈에 대한 탐욕을 절제하지 못하여 교인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세상으로부터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체인 교회를 비난받게 하는 죄악의 당사자가 되기도 한 목사들도 적지 않다. 교회를 파괴하는 악의 세력이 된 목사들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는 오늘 교회의 현실은 참으로 가슴을 아리게 한다.

위스콘신을 떠나며

위스콘신의 아미쉬를 방문 중에 모든 일정은 이동수목사가 디자인을 했다. 아침마다 아미쉬 농장에 데려다 주고 저녁에는 다시 데리러 오는 일을 감사하개 해줬다.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특별히 잊을 수 없는 것은 아미쉬 일정 마지막에 크리스틴센터라는 수도원에서 가진 2박3일 동안 피정은 기대하지 않았던 큰 은총이었다. 크리스틴센터는 사슴들이 숙소 문밖까지 찾아오는 우거진 숲속의 아름다운 수도원이다. 수도원 건물 본관에도 숙소가 있었고 또 깊은 숲속에도 숙소가 있다. 본관에 현대씩 숙소가 아닌 숲속 깊은 곳에 있는 방값이 싼 그 방에는 이동식 변기와 작은 침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 2박3일간의 고요와 침묵의 피정은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값진 은총과 신비가 있었다.

▲ 2박3일 피정을 했던 크리스틴센터(수녀원)-위 왼쪽 사진이 내가 묵었던 숲속의 숙소이고, 그 숙소 안에는 작은 책상 하나와 침대 그리고 이동식 용변기(위/오른쪽)가 있다. 아래는 수녀원 예배당(왼쪽)과 뒤쪽에서 본 수녀원 전경(아래/오른쪽)<사진 남재영 목사>

또 위스콘신을 떠나오는 날 위스콘신연회 정희수 감독은 집으로 초청해 주셨다. 저녁 식사와 밤늦게 까지 감독 내외와 함께 여러 가지 주제로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이동수목사로부터 정희수 감독의 일정이 굉장히 바쁜 것으로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어주신 것이 감사하고, 특별히 그 다음날 새벽에 2시간 거리에 있는 공항으로 직접 운전을 하시어 밀워키까지 데려다 주신 그 배려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공항에서 정 감독은 내가 마지막 검색대를 통과할 때까지 지켜봐 주셨다. 정말 황송했고 감사했음을 지면으로 말씀드린다.

또 감사한 몇 사람들이 있다. 크리스틴수도원에서 피정을 할 때, <그레이스 비잔틴>이라는 이름을 가진 할머니는 78살의 무용선생이다. 퀘이커교도이기도 한 이 할머니는 스스로 품을 팔아서 매디슨에서 하루 밤 묵을 가정을 수소문해주었다. 그 가정이 이정자목사 가정이었다. 마침 이정자목사는 한국에 가고 없었지만 그 남편 <덕>과 딸 현지와 함께 매디슨에서 하루를 보낸 것은 계획에 없던 이번 여정의 보너스였다. 위스콘신을 떠나면서 이분들 모두가 내가 감사의 가슴으로 품은 사람들이다.

▲ 크리스틴센터의 숲속 숙소에는 사슴들이 자주 찾아왔다. 숙소 안 유리창에 사진기를 대고 찍은 사진<사진 남재영 목사>

▲ 남재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