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 전, 내가 불혹(不惑)의 나이에 접어들면서부터 줄곧 씨름하는 화두(話頭)가 있다면 길, 나무, 등불 등이었다. 그 중에 ‘등불’은 기독교의 새로운 이미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수의 산상수훈 말씀 중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마, 5:15)를 전제하지 않아도 우리 민족에게 등불은 대단히 친근한 이미지이다. 

등불에 대한 아름다운 이미지가 내 마음에 각인되어 그동안 ‘등불’에 관한 시나 수필을 쓰기도 했고, 설교도 했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하다 이제 나도 아호가 필요하겠다 싶어 아호를 ‘愚燈’이라 짓게 되었다. ‘愚’자는 어리석을 ‘우’자로, “바보, 정직하고 고지식하다” 그런 뜻이다.

나는 잔머리를 못 굴리는 사람이다. 사람 이름도 잘 못 외운다. 명색이 그래도 어쭙잖은 시인인데 내 자작시 한 편을 암송하지 못한다. 똑똑하고 현명한 것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왔다. 또 어렸을 적 아버지가 나를 ‘미련곰탱이’라고 부르셨다. 내가 얼마나 굼뜨고 상황판단을 못했으면 그렇게 부르셨을까? 또 앞으로도 똑똑하고 현명하게 살 것 같진 않다. 그래서 어리석을 ‘愚’자를 가져오게 되었고, 거기에다 등잔 ‘燈’를 붙여 ‘愚燈’(우등)이라 한 것이다.

꼭 풀이를 한다면 ‘바보 목사’쯤 되지 않겠는가. 나는 내 아호에 불만이 없다. 또 한글로 일등은 아니지만, 열등이나 꼴등도 아니고 우등이니 제법 근사하지 않은가. 내 친구 조언정 목사는 내가 강원도 정선에서 살 때 우등열차 타고 싶은 게 소원이서 그리 지었다고 하지 않던가.

사기 치는 목사가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왜 자꾸 약장사 같은 목소리로
과장을 하게 되는 걸까?
다정다감한 목사가 되어야지 하면서도
왜 무뚝뚝하고 내가 보기에도 험한 인상으로
사람들을 대하게 되는 걸까?

양 떼들을 진심으로 아끼며 돌보는
선한 목자가 되어야지 하면서도
왜 건성건성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걸까?
하느님의 눈치 보며 살아야지 하면서도
사람 눈치 보다가 사람 꾀임에 빠져
골탕 먹고 마음 상해하는 것일까?

돈에 욕심 없는 목사가 되어야지 하면서도
결국은 속물근성의 인두겁에서 벗어나
자유롭지 못한 걸까?
연하디 연한 쑥처럼 고요한 성품을
가져야지 하면서도
왜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성을 내고 요란하게 되는 걸까?

아, 빈 듯하여라
허한 게 속이 빈 듯하여
아, 영락없는 나는 낙제 목사다
얼치기 목사다
-박철 詩. <낙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