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전혀 본의는 아니겠지만 주사파의 교주가 되어 버린 이석기 라는 인간에 대하여 대단한 흥미를 느끼고 있다.

교주의 소질을 우선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관적, 자기중심적으로 해석을 하는 것이다. 거기다 종교적인 감각을 가지고 하나님과 직통 핫라인을 개설하고 있는 것처럼 말과 행동을 한다. 그런 형의 공동적 특징은 자기만의 세계와 논리에 갇혀 살아가는 자폐적 성향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들과 소통이 안 된다고 해서 과격하거나 거칠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 속에 갇혀 살아간다.

대부분의 교주들은 추종자들에 희생과 충성을 요구하지만 이석기 류의 사람들은 희생과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2, 3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추종자들이 따라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석기가 개인으로서는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모범적인 인간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석기가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 되고 나서 강제 구인 직전에 지지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역사는 정방향으로 전진 한다"고 역설 했다고 한다.

정통주의 맑시즘에서 계급은 경제적 하부구조에 의해 선험적으로 정해져 있고 혁명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예정돼 있으니 다만 할 일은 기다리는 것 뿐이라는 믿음으로 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은데 그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기독교의 예정설을 떠올렸다.

예수나 맑스는 진리를 설파했는데 제자들은 스승의 오묘한 진리를 교조주의적으로 따라서 세상을 선과 악, 죄인과 구원 받은 자,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갈랐다. 그리고 때가 되면 오리라고 스승이 말한 혁명 혹은 재림을 기다렸다. 그때 구원 받은 자/프롤레타리아는 자명하게 하늘로 오를 것이고 새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아! 놀라운 닮음이 아닌가?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혹은 피억압 계급은 헤게모니적으로 구성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자녀 또한 애초에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결단으로 실천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석기 씨는 자신을 대단한 혁명가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도 그랬으면 좋을 뻔 한 일이 있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기성 교회를 떠나 1986년부터 광명시 하안동 철거민촌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춥고 배고픈 입장에 서게 되었지만 구체적인 계획이나 대책이 전혀 없는 막막한 처지이었다. 주변에 이해를 해 줄 수 있는 사람도, 누구의 도움도 받을 길이 없었다. 마치 망망대해의 외딴 섬에 갇혀서 구원의 손길만을 기다리는 난파선 같은 처지였다.

밖으로는 아무런 보장도 없이 모진 비바람을 맞아가며 사는 삶, 항상 형사들에게 감시를 당하면서 살고 안으로는 무지몽매한 주민들을 어르고 달래면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가야 하는 일들, 인간 사회의 가장 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잡스런 사건들에 부딪치면서 사는 것은 너무도 힘이 겨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당장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이 때 하와이에 살던 여동생이 오빠가 너무 고생을 한다고 자기 교회 목사에게 부탁을 해서 초청장을 보내주었지만 미국 비자는 두 번째 문제이고 당장 여권이 문제였다. 당시에는 오늘처럼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는 복수 여권은 커녕 나같은 사람은 일회용 단수 여권도 얻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당시 야당 총무의 추천서를 받아 달라고 김영삼 씨 비서실장이었던 김덕룡 씨에게 부탁을 했다. 김 실장으로부터 추천서를 받았다는 연락을 받고 영삼 옹의 사무실로 찾아 갔더니 평소에 항상 기자들과 국회의원. 정치지망생들로 북적이던 사무실에 김 실장과 여비서만 달랑 있었다.

웬일인가 했더니 당시 전두환이 이상한 짓을 해서 국회에서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서 모두 국회로 갔다는 것이다. 당시 영삼 옹은 국회의원이 아니었다. 추천서만 챙겨 가지고 돌아오려는데 김 실장이 "총재님이 지금 굉장히 우울해 계시니 들어가서 기도라도 해드려야지 않겠냐?"면서 나를 '영적인 기쁨조'로 들여보냈다.

김 옹은 30대 후반의 젊은 나를 그래도 목사라고 대우를 해 주면서 기도를 청했다. 내가 간절히 기도를 드리자 김 옹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한참 힘없는 야당 원외 당수로서 당하는 자신의 처량한 신세한탄을 했다.

당시 미국 비자를 받기가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려울 때여서 비자를 신청하는 사람들은 미국에 남지 않고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별별 증명을 다 해야 했었다. 그러나 집도 차도 아무 것도 없던 나로서는 입증할 것이 없기에 너절한 주변 이야기를 좀 과장해서 썼는데 4명의 영사 가운데 제일 까다롭다는 여자 영사가 두 말 않고 잘 갔다 오라며 도장을 꽝꽝 찍어주었다. 그러나 사실은 하루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현실, 그야말로 앞으로 험한 길을 어떻게 헤쳐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안 때문에 미국에 가서 오지 않을 수만 있다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마음이 간절했었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이번에 가면 혹시 못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출국 전에 김대중 선생의 비서실 차장으로 있던 남궁 진 선배에게 하직 인사를 하러 동교동을 찾아 갔다. 나중에는 국회의원,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도 했지만 당시에는 언제나 술이 덜 깬 것 같은 몽롱한 상태에 있던 남궁 진 선배가 멀리 가버릴 후배에게 해줄 것이 없으니 미안했던지 "선생님이나 한 번 뵙고 가지?"하면서 김 선생님이 사는 본채로 안내했다.

김 선생님은 내가 미국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나에게 LA 가면 아들 홍걸이를 만나서 좀 도와주라고 부탁을 하면서 이름을 묻더니 자서전을 꺼내서 붓을 들어 일필휘지로 뭐라고 휘갈겨 써주었는데 지금도 무슨 글자인지 모르고 있다.

하와이에 있는 동안 경희대 한의대 학장을 지내고 하와이로 와서 한의원을 하고 있는 나와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노 광우 박사를 만났다. 노 박사는 내 상황을 이해하고서 자기 환자 중에 한 사람인 하와이대 정치학 교수인 페이지를 소개해 주면서 그의 도움을 받아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라고 강력하게 권했다. 그러나 어느 모로 따져 보아도 내가 전혀 정치적 망명씩이나 신청할만한 위인이 못되는 것을 설명하느라고 오히려 애를 먹어야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1979년 11월 발생했던 대표적인 공안사건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에 망명생활을 한 홍세화 씨도 망명을 신청하는데, 막상 활동내용을 설명하려다 보니 전단을 뿌린 것 말곤 한 일이 없어서 매우 어려웠다는 것이다. 당시로서 나는 고작 전단 뿌린(?) 홍세화 씨보다 한 일이 훨씬 많지만 홍세화 씨처럼 재수 좋게(?) 공안당국에 쫒기는 신세가 아니어서 망명신청이 가당치도 않았던 일이었다.

만일에 당시의 중앙정보부가 내가 도미 직전에 김영삼, 김대중 양인을 접촉하고 온 사실을 알았다면 뭔가에 이용을 했었을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나의 망명 신청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 그들은 나 같은 송사리에게 까지 관심을 갖기에는 그들은 너무 바빴을 것이다.

2010년도에 시애틀에서 열린 북한 선교를 위한 세미나에 참석해서 공교롭게도 하와이 대학 교수 출신인 남북관계의 원로학자인 서대숙 박사와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서 교수에게 하와이에서 있었던 옛날이야기를 했더니 “그런 일이라면 나한테 왔어야지.”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은 당시에 나는 서 박사에 대하여 의구심을 품고 경계를 하는 입장이었다. 이미 지난 옛날 일이기에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더니 서 박사는 비록 박정희 정권으로 부터 지원을 받아 하와이 대학에 한국학 센터를 건립 하기는 했지만 북한과 접촉 가능성 때문에 항상 남한 정부와도 긴장 관계를 유지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하여간 과대망상은 본인에게만 해를 끼치는 것을 넘어서 주변까지 민폐를 끼치게 된다. 물론 모름지기 사람에게는 품고 있는 이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균형이 맞지 않을 때 왕따 내지는 손가락질을 받는다든지, 내부적으로는 좌절과 절망, 혹은 과대망상에 빠질 수도 정신병원 신세를 질 수도 나의 월남전 전우인 허경영 같이도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이석기 처럼 될 수도 있다는 새로운 실례가 나왔다.

80년대 외세에 의해 강요된 민족 분단, 미국의 독재 정권 지원, 두환이 형님의 피괴력 강한 주먹과 같은 일련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 어떤 이들에게는 당시 북한은 엘리아데가 말하는 영원의 회귀이자 원초적 공간인 신화의 세계로 자리 잡았고 주체사상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빈민촌에서 내가 하는 일을 돕던 대학생들이 MT를 하겠다고 해서 집을 빌려 주었더니 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하는 책의 제목이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었다. 뭔가 했더니 소위 주체사상이라는 것인데 사람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 사회를 올바르게 바꿔 가는 ‘주체’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이 쓰여 있기에 “이런 내용이면 성경에다 부록으로 붙여도 되겠다.” 싶었는데 ‘수령론’에 가서 그만 뒤로 나가자빠질 뻔했다.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숱한 사람의 힘이 결국은 수령 한 사람을 위해 바쳐져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북한으로 들어와서 한 단계 레벨 업 된 것이 주체사상이고 남한으로 들어온 기독교가 가장 천박한 기복 신앙적인 모습으로 레벨 업 된 것이 어찌 그리도 똑 같은지 모르겠다. 하여간 우리 민족은 극단적으로 치우치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유교의 한 극단인 주자학이 종주국인 중국보다 조선에서 극성을 부려 나라 망하는 일에 큰 목을 했던 것이 이씨조선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주체사상은 봉건 이념 위에 세운 신흥 종교일 뿐이었다.

경직되면 부러지기 쉬운 것은 물체만 그런 것이 아니고 사고도 마찬가지이다. 사랑과 평화’를 말하던 예수의 조직이 중세기를 거치면서 ‘독선과 권위’의 교회가 되었듯이.

기독교에서 종말에 대하여 특별히 예민한 종파들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흔히 안식일 교회라고 알려진 제 7일 예수 재림 교회라는 것이 있다. 그들의 관심은 종말에 집중되어 있지만 흔히 종말론에 매몰되어 있는 다른 교파와는 달리 좋은 점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늘 종말에 징조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건강에 좋은 것만 먹고 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던지 혁명만 생각하고 사는 것 같은 이석기와 동지들이나 항상 재림만 생각하고 사는 안식일 교인들이나 기본적인 사고 구조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