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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헌금 안내면 교인자격 정지한다?한국 교회 교우님들께 드리는 류상태의 주일편지 - 2013년 9월 8일
류상태  |  sham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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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09월 06일 (금) 22:39:57
최종편집 : 2013년 09월 07일 (토) 00:43:01 [조회수 : 9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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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헌금을 내지 않으면 교인 자격을 정지한다.”는 규정을 만들겠다는 교단이 있어 세간에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십일조를 비롯한 헌금문제와 더불어 헌금의 사용 등 ‘한국 교회의 재정 문제’에 대해 교우님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1. 십일조 헌금과 교인의 자격 문제에 대하여

지난 8월 12일자 한국일보에, “1만여 교회가 소속된 국내 최대 개신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예장 합동총회ㆍ총회장 정준모 목사)가 소득의 10%를 헌금으로 내는 '십일조'를 하지 않는 교인에 대해 자격 정지를 추진해 빈축을 사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동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인용하면 “교인 자격 정지는 교회 출석을 막는 건 아니고 장로, 권사 등 교회 내 선출직에 대한 선거권, 피선거권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교인 가운데 30% 정도만 십일조를 헌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장 합동총회 헌법전면개정위원회(위원장 배광식 목사)는 지난달 18일 서울 대치동 총회회관에서 정치 및 권징 조례 개정안에 관한 '전국 노회장 공청회'를 열어 이 같은 방안을 마련했으며, 9월 총회에서 투표에 부칠 예정이다. 헌법 개정은 재적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가결한 뒤 각 노회에서 결의해야 확정되므로 적어도 2, 3년 정도의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교단에서 사회의 비웃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십일조를 의무화하려는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난 1970~80년대에 비약적인 팽창으로 덩치를 키운 한국 교회가 1990년대 이후 양적 팽창(‘성장’이 아니라 ‘팽창’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이 정체되자 재정적인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책으로 ‘십일조 사수’를 들고 나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서 십일조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여전히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규율’처럼 간주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십일조가 정말로 오늘날 교인들이 반드시 교회에 납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사항’일까요?

십일조 헌금은 개신교 태동 이전부터 그리스도 교회들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고, 교회의 권력화를 가능하게 했으며, 급기야 교회를 부패하게 만든 주요 자금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한국 교회, 특히 일부 대형교회에서는 교회의 재정을 살찌우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초대형 건물 짓기 경쟁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십일조 헌금에서 나오는 막대한 수입이 기본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십일조 헌금을 교회수입의 기본으로 삼는 풍토는 기독교의 본고장인 서구 교회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습니다. 국가와 교회의 역할이 분리된 현대사회에서는 이치에 맞지 않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2. ‘십일조’는 제정일치 사회의 ‘세금’으로, 오늘날 교회에 납부하는 ‘헌금’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개신교 목회자의 대부분은 성서의 기록에 의거하여 “십일조 헌금은 교인의 의무사항”이라고 강변합니다. 심지어 “십일조를 내지 않는 교인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사람”이라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참에 개신교 헌금의 기본처럼 되어있는 ‘십일조’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구약성서에는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내용이 수없이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십일조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인용하는 구약성서의 내용은 아마도 말라기에 나오는 다음 본문일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속이면서도, '사람이 하느님을 속이다니요? 어떻게 하느님을 속이겠습니까?' 하는구나. 소출에서 열의 하나를 바친다고 하면서도, 그대로 바치지 않으니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니냐? 이 천벌받을 것들아, 너희 백성은 모두 나를 속이고 있다. 너희는 열의 하나를 바칠 때, 조금도 덜지 말고 성전 곳간에 가져다 넣어 내 집 양식으로 쓰게 하여라. 그렇게 바치고 나서 내가 하늘 창고의 문을 열고 갚아주는지 갚아주지 않는지 두고 보아라.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말라기 3:8~10, 공동번역)

이 본문이 기록된 시대와 사회 배경을 무시하고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으면 “십일조를 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이라는 논리가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성서시대의 이스라엘은 제정일치 사회였으며, 십일조는 ‘헌금’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면 누구나 나라에 내야하는 ‘세금’이었다는 점입니다. ‘십일조’라는 말 자체가 ‘십분의 일 세금’이라는 뜻입니다.

세금을 10%로 정한 것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시행한 보편적 제도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로마제국도 속주민에게 10%의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직접세는 소득별로 세분화되어 있지만, 우리가 물건을 사거나 자동차 연료를 넣고 카드로 결제할 때 10%의 부가가치세가 포함됩니다.

당시 재정일치 사회였던 이스라엘에서 직접세로 ‘십분의 일’을 책정한 것은 공동체 유지를 위한 합리적인 세금이었습니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소득의 10%씩을 모아 공동체 운영과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의 공공복리를 위해 사용하면 모든 구성원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세금징수의 보편적 취지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세금을 탈세하는 것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도 감당하지 않는 범죄로 인식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정당한 절세가 아니라 수입이나 지출을 속이는 탈세는 범죄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위의 말라기 본문에서 “소출에서 열의 하나를 바친다고 하면서도, 그대로 바치지 않으니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니냐?”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십일조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기본세금으로 드려지던 신정국가 이스라엘에서 탈세에 대해 책망하는 말씀이기에, 오늘날 이 본문에 의거하여 설교한다면 ‘헌금’이 아니라 나라에 마땅히 내야 하는 ‘세금’을 정직하게 내라고 설교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어떤 조직체건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운영비가 필요합니다. 교회 역시 아무리 영성을 추구하는 특수공동체라 하더라도, 교회 건물을 비롯하여 직원들의 임금 등 현실사회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운영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운영비를 요청할 때는, 효력이 상실된 ‘십일조’가 아니라 교회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합리적으로 세운 다음, 교인들의 동의를 얻어 회비나 후원비의 명목으로 요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는 성서 본문을 근거로, 십일조가 신약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목회자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다음은 해당 본문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마태복음 23:23, 공동번역)

위의 본문에 “십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이라는 구절이 등장하기에, 또한 이 구절이 복음서에 기록되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지금도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개역성경에는 ‘십일조’로 번역되어 있는 위의 본문을 공동번역성서에서는 ‘십분의 일세’로 번역한 데서도 나타나듯이, 본문의 예수님은 ‘사회구성원으로서 공동체 유지를 위해 세금을 내는 것’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사는 삶’의 조화와 실천을 촉구하신 것이지, 오늘날 교회에서 요구하는 ‘십일조 헌금’을 긍정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처럼 십일조는 헌금이 아니라 세금이기에, 오늘날 교회 헌금에 ‘십일조’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모든 조직체에는 운영자금이 필요합니다. 교회 역시 사회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합니다. 교회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구제와 사회사업 등의 일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하고 그 자금은 구성원이 부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들을 위해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헌금에 참여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기준이 반드시 십일조가 되어야 한다든지, 십일조를 ‘하나님의 것’이라든지, ‘안내면 도둑질하는 것’이라는 등의 무리한 요구로 십일조를 마치 하나님께 마땅히 바쳐야 하는 세금인 것처럼 의무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는 십일조와 자발적으로 내는 헌금 이외에는 어떤 헌금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저는 “교회는 십일조를 포함하여 어떤 헌금도 강요해서는 안 되며, 모든 헌금은 자발적으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십일조’라는 말 자체를 이제는 교회에서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라에 세금을 내는 현대인들이 교회에도 소득의 10%를 또 내는 것이 적절한가 여부를 떠나서, 굳이 이 용어를 사용하려면 ‘십분의 일 헌금’ 또는 ‘10% 헌금’이라고 표현해야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 ‘10% 헌금’을 의무화할 것이 아니라, 먼저 교회 짓기 경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 서울 서초동에는 엄청나게 큰 교회 건물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사랑의 교회> 신축 건물입니다. 이 교회는 교리적으로는 보수지만 비교적 열린 사고와 인품으로 교계의 큰 사랑과 존경을 받으셨던 원로목사님이 은퇴하신 뒤로, 새롭게 담임을 맡은 젊은 목회자와 성장논리에 고무된 일부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교회를 새로 짓고 있습니다.

공사를 적극 추진한 교회 관계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교인들에게 이렇게 큰 경제적 부담을 주면서까지, 또한 사적 소유가 될 수 없는 도로의 지하부분까지 잠식할 정도로, 그렇게 큰 규모의 건물을 꼭 지어야만 했는지요? 이 사업을 시행하기 전에 교인들과 충분히 상의하고 고민하는 시간은 가지셨는지요?

사랑의 교회를 비롯하여, 엄청난 건물을 경쟁적으로 지었거나 짓고 있는 일부 대형교회들은 어디서 그런 천문학적인 돈을 모을 수 있었을까요? 교회가 장사를 하여 큰돈을 벌거나 도둑질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수익단체가 아닌(현실을 보면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교회의 재정은 교인들이 내는 헌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텐데 말입니다.

‘헌금’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자발적으로 내는 돈’을 의미합니다. 순전히 자발적으로 내는 돈으로 그렇게 어마어마한 건물을 지을 수 있을 정도라면 구성원들이 엄청난 부자들이거나 자기희생정신이 매우 강한 분들이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부분 교회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담감과 두려움으로 무리를 해가면서 어쩔 수없이 헌금을 내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교회 헌금은 교인들의 정성을 모은 것이기에, 수입과 지출에 대한 처리를 투명하게 하고, 사회의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떳떳하게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인건비와 운영비는 최대한 절약하여 검소하게 사용해야 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사회의 복지를 위한 일에는 아낌없이 지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수입금은 교인들이 자유롭게 정하여 납부하는 회비와 후원금으로 그 종류를 단순화해야 하며, 가난한 교인이라도 부담을 갖지 않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수입금을 부동산이나 동산에 투자하는 일은 반드시 피해야 하며, 가능하면 그 해 예산은 이듬해에 꼭 필요한 이월금 외에는 그 해에 모두 지출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의 연간 사업 예산은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서로 충분히 의논하고 함께 고민하며 세워야 합니다. 또한 사업 예산은 물론이고 결산도 교인들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다면, 우리 한국 교회도 사회의 존경을 받는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4. 지금 한국 교회가 결의해야 할 문제는 ‘교인들의 십일조’가 아니라 ‘목회자들의 소득세’

마지막으로, 교회의 재정문제와 관련하여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목회자도 소득세를 내야 하는가?”하는 문제입니다.

저는 목회자들도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갖습니다. 이 사회적 합의를 거부하고 피해갈 명분은 없습니다. 목회자들이 아무리 영적 초월적 세계를 추구하더라도, 사회간접자본을 이용하며, 정권의 적합 부적합 여부를 떠나 국가조직의 보호를 받고 살아간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세속과 분리해야 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성직자에게는 세금을 걷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도로를 건설하거나 유지 보수하려면 당연히 돈이 들어가고 이용자들이 그 비용을 대는 것은 당연합니다. 목회자들도 사회 인프라를 이용하고 그 혜택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세금을 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은 인프라를 이용할 자격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직자가 하는 일을 ‘근로’로 보아서는 안되고, 영적이며 종교적인 ‘봉사’로 보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분들도 있습니다. 만일 직업종교인이 별도의 직업을 갖고 있고 순수하게 무보수로 봉사한다면 그 논리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이 일정한 기준에 의해 급여를 받는다면 그것은 소득일 수밖에 없습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것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상식입니다.

새 정부가 종교인에게도 근로소득세를 걷겠다고 했고 이에 대해 찬반양론이 있지만, 한국 교회가 먼저 나서서 목회자의 근로소득세 납부를 교단 차원에서 결의하고 실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목회자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끝내 회피하려 한다면, 의무는 감당하지 않고 권리만 챙기려는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목회자가 납세를 면제받는 합당한 요건이 있다면, 급여가 법이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합의에 의한 것으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며, 가난한 이웃에게도 공정하게 돌아가는 혜택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세금을 적게 내거나 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그 세금을 대신 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목회자들이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것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어긋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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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별곡 (1.224.240.167)
2014-10-23 18:40:59
님의 글을 늘 정독하는 일인입니다.
님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것은 자정능력을 상실한 한국교회에 한 줄기 빛입니다. 아마도 삵꾼들의 엄청난 비난이 쏟아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초지일관하시는 님의 신앙에 한 없는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다만 한 가지
딴지는 아닙니다만, 님의 글 중 오타가 있기에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즉, "당시 재정일치 사회였던 이스라엘에서..."라는 대목 중 재정일치가 아니라 제정일치(祭政一致)로 바로잡으시기 바랍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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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믿음=실상 (121.166.10.107)
2013-09-28 17:31:46
드리는 것보다 사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십일조는 성경에 기록된 제도입니다.
이것을 해석하는 구절들은 다양하게 많습니다.
물론 반대적 구절이나 해석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십일조의 기본정신이 공동사회의 구성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이라는 것입니다. 십의 일이 하나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 하나님 것입니다. 개인의 건강 재물 시간 등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한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입니다. 모든 인생의 주인이며 재물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담아 드리는 재물이 십일조이며 헌금의 정신입니다.

교회들이 재정을 투명하게 사용하지 않고 목회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 부분은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하지만 모든 목회자들이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수의 목회자들은 어전히 적은 사례를 가지고 생활하며 노후대책도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의 문제를 모든 교회의 문제로 보는 것은 일단 잘못된 시각이며 그런 시각으로 성경을 해석하거나 지금에 일어나고 있는 기독교의 문제를 해석하는 것은 현명한 해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십일조의 문제는 드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용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연구하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십일조와 헌금을 더 성경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에 함께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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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김기성 (59.27.173.97)
2013-09-14 11:44:01
동감입니다.
그런데 기억하것이 있습니다. 십일조의 문제라기 보다는 헌금에 대한 문제인데, 윗 글도 그렇고 지금 이야기는 전체교회의 10,20%로 안되는 이야기 인듯요. 60% 이상이 미자립(3000만원 이하)인 교회 교인들에게 교회 재정을 함께 세우고 미국처럼 십시일반 회비를 내서 사례하고 교회 운영에 사용한다. 교인들 짐이 너무 무겁습니다. 대부분이 작은 교회들인데 이 교회 이야기도 해주고 대안도 얘기해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이 일을 하라고 한다든지 사모님이 일하든...위 이야기는 큰교회들한테 가서 장로들 모아놓고 이야기 하고...대부분 교회들을 위한 대안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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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Philip Im (70.62.49.64)
2013-09-09 08:13:37
어이없는 약속이라?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성경 해석이로다.

나 자신 십일조에 관하여는 의문이 많으나
말라기 그 당시에는 적법하게 십일조가 시행되되 사람들이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고 치자.
그래서 십일조를 하라고 하는 구절에 대하여
해석하는 관점 둘.
하나는 하나님이 정하신 일에 대하여 사람들이 순종하지 않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로 돌아오라 권면하시며 그 방법을 제시하신 것이 십일조로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십일조가 없어서 생활하기 어려운 제사장들이 십일조를 하게되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약속을 제시한 것.

전자는 하나님 중심으로 말씀을 바라보며
후자는 사람 중심으로 말씀을 바라본다.
후자는 결국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 글 정도로 격하시키고 있다.

말라기 그 당시 종교와 신앙이 부패했기 때문에
오히려 십일조를 하지 않은 것이지
제사장들이 부패했기 때문에 십일조를 하면 복을 받는다고 거짓 약속을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일부 목회자들이 부패하여
십일조를 하면 복을 받는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오늘날에 비추어 말라기 시대를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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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
무릇돌 (218.38.160.207)
2013-09-07 22:25:47
십일조의 비애
“말라기의 탄식하는 예언은 학개-스가랴에 의해 강조되었던 성전중심의 종교로는 당연한 결과물이다. 이미 이스라엘의 종교사에서 생명이 다한 성전제도를 추종(追從)할 때에 수많은 오류가 발생되는 것은 당연했다. 당시 명목뿐인 성전제도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제사장들의 생계의 밧줄인 십일조가 걷히지 않자 십일조를 내어 하나님이 대가로 복을 주시는지 시험해보라는 말라기의 설교는 당시의 성전종교가 그 중심되는 제사장들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온통 부패의 가운데 있었음을 알게 한다.” <「한울성서연구」에서>

구약성서의 십일조는 일종의 사회보장제도의 제원을 담당하는 것이었을 뿐 아니라 제사장 계급의 생활보장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자율적인 십일조 납부가 원활하지 않게 되자 당연히 제사장 계급의 생활은 궁핍하게 되었다. 이에 말라기에서처럼 제사장들은 십일조를 내게 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고 ‘어이없는 약속’을 하게 되었다. 종교와 신앙이 부패하면 하느님의 이름으로 못하는 게 없 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십일조 주장자들이 이 말라기서를 인용하며 지금도 여전히 이 십일조를 내어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그들은 성서-성경을 지독히도 모르는 소경들이다. 종교가 부패하여 선한 목적의 십일조제도조차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생활의 곤궁함을 겪게 된 제사장 구룹은 신의 이름으로(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십일조 납부에 축복을 보장하여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성서-성경에 기록되어 있음은 또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짐은 종교의 부패가 어떠한 모습으로까지 이르게 되는지를 경종하기 위하여서다. 모름지기 하나님은 인간의 시험의 대상이 결코 아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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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포이멘 (183.109.98.143)
2013-09-08 07:08:53
말라기의 십일조와 타락의 결과 예수님의 탄생과 초대교회시대가 열림.
중세의 십일조와 면죄부의 결과 천주교의 몰락과 개신교의 시대가 열림.
한국의 십일조 결과 한국개독교의 몰락과 초대교회로 돌아감.

예수님의 재림과 천년왕국
새 하늘과 새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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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
악수 (72.196.234.24)
2013-09-09 13:00:52
몇 십년이나 가는지 두고 봅시다.
거짓을 은폐하려고 계속 악수를
두고있는 듯 합니다.

내 눈에는 끝이 환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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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Philip Im (70.62.49.64)
2013-09-10 01:27:10
육안?
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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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삼청교육대 (39.7.10.27)
2013-09-07 21:35:21
요즘 교회의 십일조의뜻은
요즘 안티기독교인들은 십일조를 씹일좆이라고 부릅니다


씹 (교회목사에게 여자성기를 바치고)
일 (일 열심히 하고 돈십원짜리 한장 못받고)
좃 (남자들 좆빠치게 교회에서 고생한다)


심한 표현을 일단 죄송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현실이 이런데도 반성못하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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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김재헌 (175.223.17.154)
2013-09-07 18:04:19
십이조
주님은 율법의 정신을 완성하는것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성도들의 헌신으로 세워져갑니다
일부 목사님들의 비성경적 행태가 문제되는것은 사실이지만 본질을 왜곡해선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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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0
포이멘 (183.109.98.143)
2013-09-08 07:30:15
십일조로 돌아감은 율법의 완성이 아니라 성령의 법에 어긋납니다.
바울도 율법은 죄를 알게하는 기준에 불과함을 말합니다.

신약성경에게 십일조를 지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이 죽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유대인으로 율법을 따름은 유대인으로 당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 부활 후에는 십일조에 대한 말씀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연보라는 말이 나옵니다.
어렸을 적에 목사님들이 연보함에 연보를 걷어 드린 것을 기억합니다.
세월이 지나 어느새 연보가 헌금으로 변했고 헌금의 종류가 십일조를 비롯해 수십종류가 됩니다.

죄사함은 예수님의 보혈로 가능한 데
다시 율법의 속죄제와 속건제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기독교에서 유대교로 돌아가자는 말씀입니까?
예수님의 죽음으로 율법의 제사법은 폐하여졌습니다.

신약교회는 구약의 유대교와 다릅니다.
목사는 제사장도 아니고 레위인도 아닙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제사장입니다.
하나님나라에 하나님이 왕이시며 성도들이 제사장이 될때
제사장의 탈을 쓴 교회의 지배계급(니골라당)과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야심적 지도자 디오드레베와 같은 자들이
교회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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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헌 (175.223.17.154)
2013-09-07 18:00:01
십일조보다 십이조가 필요합니다
십일조는 십분의 일세가 아닙니다 첫열매의 성격입니다 즉 첫열매를 드림은 전체를 드린다는 의미의 상징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첫열매되신 주님때문에 거듭난 우리는 십일조를 통해 구원을 고백하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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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 (72.196.234.24)
2013-09-09 14:03:39
본인이 그렇게 시범을 보이시고 살면 됩니다.
본인의 신앙명세서를 대중에게 공개하시면
많은 도움이 될 듯 합니다.

이웃을 위해 수입의 십이조를 내고 계시는
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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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 (39.7.10.27)
2013-09-07 21:38:04
김재현님 하나물어보겠습니다
성경그대로 첫열매를 교회에 갔다 바치면 목사들이 좋아할까요
가락시장에 가서 배추 과일등을 사서 십일조요 하면 목사들이 뭐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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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 (112.163.185.142)
2013-09-07 16:43:58
헌금내라 하기 이전에 먼저 목회자 자신부터 돌아 보시길,,,,
십일조를 안내면 교인자격을 정지하기이전에 목회자들이 먼저 헌금의 사용용도에 대해서 투명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낸 헌금이 하나님의 일을 교위해서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목회자가 부정하게 사용한다면 그 헌금을 내고 싶겠는가?

현금을 부정한 부패한 목자들 부터 먼저 짤라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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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183.97.6.228)
2013-09-07 15:32:21
십일조는 성경적이다.
레 27;30 십일조는 주의 것이니 주깨 거룩한 것이며 민 18;24 흔드는 제사로 드리는 십일조는 레위인의 유업이며 26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드려 아론제사장에게 주라하시며 신 12;11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거하게 하시려고 선정하신 장소로 가져와서 드리라 하셨다. 28 3년마다 모든 십일조를 레위인과 타국인과 아비없는 자와 과부에게 주어 먹고 배부르게 하라하셨다.삼상 8;15 왕이 십일조를 취하여 관원과 신하들에게 줄것이라 하였다. 이 십일조는 유대인들이 십일조외에 별도로 바치는 세금이었다. 대하 31;12 예물들과 십일조들과 신실하게 봉헌된 것들 느 10;44 보물들과 제물들 그리고 첫열매들 즉 헌금의 종류들이 나오며 느 10;37 땅의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주었으며 38 그들의 십일조 중의 십일조를 성전 보물 창고에 보관하엿으며 느 10;44에 그것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임명하였으며 레위인들은 하나님이 율법으로 정하신 몫을 거두게 하셨다. [말라기 3:8]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내 것을 도둑질하였도다. 그래도 너희는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니, 십일조와 제물들이라.
[말라기 3:10] 만군의 주가 말하노니,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와 내 집에 식량이 있게 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의 창문들을 열어 너희에게 복을 부어 주지 않나 보라. 그것을 받을 만한 충분한 장소가 없으리라.하셨다.마 23; 23 십일조보다 율법과 공의와 자비와 믿음이 더 좋은 것이라 하시면서 십일조도 마땅히 드려야 한다. 말씀하셨다.눅 11;42 십일조를 바치면서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을 소홀히 한다고 책망하시면서 십일조를 마땅히 드려야 한다고 하셨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반드시 드려야 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와 왕에게 바치는 십분의 일의 세금과 성전세를 누구나 드렸다. 이 십일조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의 사례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교회가 시급히 개혁해야 할 부분은 부교역자들의 사례비가 이사회의 기초생활 수급자의 월급보다 더 나아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3년마다 대대적인 구제활동을 했던 것처럼 교회에 드려진 헌금은 영혼의 구원과 치료를 위해 사용되므로 결국 사회의 건강과 안녕을 도모하며 행복을 편만케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봉사를 베푸는 일에 우리나라의 어느 종교들보다 교회가 더 많이 지출하고 있다 그러나 더 많이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말씀따라 바른 헌금을 드려야 한다. 또한 드려진 헌물은 말씀대로 사용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자와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잘 할수있도록 충분히 제공되어져야 한다. 그로인해 교회가 성장하면 결국 이 나라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차고 넘치는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한 세금은 이중 과세이므로 명백한 위헌이며 비 성경적인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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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3
박창진 (42.82.71.52)
2013-09-07 17:27:30
성경 바르게 읽기 훈련을 하시지요.
그 구절들이 오늘날 교회에게 문자적으로 적용된다고요?
그럼 왜 안식일을 지키지 않지요?
다 율법의 한 조항인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을 철저히 지켰지요.
그 당대의 유대인 지도자들과 달리 그 의미를 바르게 살리시면서요.
안식일도 지켰거든요.

님의 논리라면 제칠일 안식교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하고 따라야 하겠네요.
왜 님은 안식교를 따르지 않는지요?

예수님은 유월절을 포함한 율법의 절기도 철저하게 지켰거든요.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답니다.
님의 논리를 따르면 그들의 주장도 옳은 것이 되는데, 왜 따르지 않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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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18.38.160.207)
2013-09-13 14:23:11
박창진 님께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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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183.97.6.228)
2013-09-07 19:59:57
말씀대로 따라야지요
예수님은 십일조도 마땅히 드리라 하셨지 안식일을 마땅히 지키라 하지 않으셨습니다...기록된 말씀에 없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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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9
맞습니다 (72.196.234.24)
2013-09-09 14:36:52
주위에 율법을 어기는 사람들을 모두
구약율법에 따라 처단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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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9
최Ray (220.118.20.85)
2013-09-07 13:14:22
칼 안든 강도가 생각난다.

우리 목사님은 바늘 귀 통과 못한다.

북한 3대 지도자가 영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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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1
맞습니다 (72.196.234.24)
2013-09-07 16:52:16
늘 진리만 말씀하십니다.
맞습니다. 목사님들은 바늘 귀를 통과할
의사가 없습니다. 옆에서 구경하시는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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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Ray (220.118.20.85)
2013-09-08 23:49:18
나를 넘어지게 하는군요.

'진리'라는 단어는 쉽게 사용하는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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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7
포이멘 (183.109.98.143)
2013-09-07 10:38:14
헌금의 명목도 중요합니다. 그것에 못지않게 헌금의 쓰임도 중요하지 않을까합니다.
즉, 재정의 투명성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교회의 예산과 회계보고를 보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돈을 여러 항목으로 나누어서
성도들이 돈이 어디로 흘러들어가는 지를 모르게 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회계보고 자료도 회의 시 당일 제출되었다가
회의가 끝나면 모두 걷어갑니다.

회의 시에도 재정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면
한 사람이 은혜를 강조하며 덮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는 교회 내에서
왕따를 당합니다.

단독의 목회에서 공동의 목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누구든지 사랑하는 사랑이시며
하나님의 경륜은 민주주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경제는 투명성입니다.
아니니아와 삽비라가 왜 죽었습니까? 투명하지 않아서입니다.

투명하지 않은 자는 정녕 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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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9-07 14:33:39
포이멘 님께 조언 하나만 올립지요^^
그런 교회에 무슨 미련이 있길래 거기에 남아 있으려 하십니까?
하루라도 지체하지 마시고 얼른 나오십시오.

한국에 건강한 교회들..
찾아 볼 의지만 있으면 보이기 시작합니다.



중이 싫으면 절을 떠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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