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김택규 칼럼
‘감독’(επισκοπος) 직분의 기원 및 발전 ( I )- 집사, 장로, 감독의 직분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4) -
김택규  |  petertk28@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3년 08월 24일 (토) 11:48:51
최종편집 : 2017년 11월 11일 (토) 21:04:45 [조회수 : 4438]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감독’(επισκοπος) 직분의 기원 및 발전 ( I )

- 집사, 장로, 감독의 직분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4) -

들어가는 말:

한국 감리교회의 감독 제도는, ‘감독’(bishop)이라는 명칭은 같지만, (1)성서적 관점에서의 ‘감독’직분도 아니고, (2) 교회 역사 및 전통상의 감독제도 아니고, (3)미 연합감리교회의 선교교회 시절에 미UMC의 제도를 본받아 시작했지만, 현재의 제도는 모교회엿던 미 UMC의 감독제와도 전혀 다른, 이상한 형태의 감독제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짧은 글에서는 전체적으로 충분히 논리를 전개할수는 없으나, ‘감독’직분이 신약교회 시절에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가하는 문제와 그후 교회역사에서 어떻게 감독직분이 발전 되었으며, 감독직분의 성격, 기능 등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한국 감리교회 직제 제도 개선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마음입니다.)


신약교회에서, ‘감독’(episkopos) 호칭은 어떻게 시작이 되었나?

‘감독’이란 직명은 바울의 선교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면 왜 바울의 선교교회에서는,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은, 생소한 직명인 ‘감독’(episcopos, overseer)이란 호칭을 쓰기 시작했는가? 이미 앞에서 말한대로, 바울은 그의 이방인 지역 선교 교회에 처음부터 양떼를 돌볼 책임자로서 ‘장로’들을 임명하였다.(행14:23) 베드로전서에 보면 소아시아의 이방인교회들에 ‘목회’ 사역적 역할을 하는 ‘장로’들이 있었다.(벧전 5:1-5)

그런데 이 ‘장로’라는 호칭이 이방인 지역에 세워진 교회의 사역자로서의 직분명에 적합한 것이 될수 없음이 나타나게 되었을것이다. 몇가지 이유를 들수 있다. 우선 바울의 선교교회들은 처음에는 대체로 유대인 중심이었으나 세월이 가면서 점점 이방인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혹은 처음부터 이방인 중심으로 시작된 회중도 있었다.(주1.),

해서 교회 지도자를 유대 회당적 용어인 ‘장로’ 라는 칭호로 쓰는것이 맞지않게 되었을것이다. 다음으로 장로라는 호칭은 유대 커뮤니티뿐 아니라 헬라, 이집트 문화권의 커뮤니티에서도 나이많은 어른을 ‘장로’라고 불렀다. 따라서 바울의 신생 이방인교회에서 신앙적 지도자를 단순히 ‘장로’로 호칭하는것도 좀 문제가 있었을것이다. 또한 바울의 신생교회에는 젊은 지도자들도 많이 나왔을것임으로, 흔히 장로는 나이많은 사람을 지칭한다고 볼때, 더 이상 바울의 교회에서 지도자를 ‘장로’로 호칭하는데는 문제가 있었을것이라고 추정된다. 또 중요한것은 장로의 직능이 모교회인 예루살렘교회에서는, ‘회당’의 장로제같은 것으로, ‘목회 사역적’ 직분이 아니었으나 ,바울의 이방 교회에서는 그 기능이 달라젔기때문일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직명 혹은 호칭 사용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헬라-로마 문화권에서 그당시 통용되고 있던 용어인 ‘감독’이라는 호칭이다. 히랍어로 ‘감독’(επισκοπος)은 ‘관리’, ‘감시, 감독’, ‘다스림’ ‘검사, 관찰, 조사’등의 뜻에 해당되는 단어이다. 히랍권에서는 지방 행정관 특히 새로운 식민도시를 관리하기 위해 파견되는 정부 관리를 의미하는 칭호로 쓰였다. 로마에서는 어떤 도시의 특별한 업무를 감독하기 위해 왕이 임명하는 ‘특별관원’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했다. 때론 정치적 혹은 종교적 집단의 감독자를 의미하기도 했다. 쿰란, 에세네 공동체에도 이와 비슷한 직능을 가진 고위직이 있있었다는것이 연구에서 발견되었다. (주.2.) 하지만 유대 기독교인들은 이 용어를 별로 사용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바울의 선교교회들은 모두 헬라-로마권 지역에 속해 있었으므로, 교회 지도자의 직명으로서,‘ 장로’라는 유대적 칭호보다, 히랍-로마권 용어인 ‘감독’이란 새로운 명칭을 사용하는것이 교회를 다스리는 지도자로서 더 이해가 잘되고 적합한 명칭이었을것이다.

신약에서 교회 직분명과 관계되어 ‘επισκοπος'(overseer, 감독자)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것은 사도행전에서다. 바울은 그가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여정 중에, 밀레도에서 만난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그들을 ‘감독’(επισκοπος)으로 세워, 교회를 돌보게 했다라고 말하고 있다.(행20:28) 물론 여기에서 바울이 말한 ’감독‘이란 용어는 그 당시 교회의 공식 ‘직명’으로 보기보다 에베소 교회 장로들의 업무의 성격을 나타낸것이라고 볼수 있다. 하지만 이런 용어가 등장한것을 보면 이미 55년경, 바울의 선교교회에서는 ’장로‘를 ’감독자‘란 칭호로 부르기 시작했다는것을 암시하는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신약에서 두 번째로 ’감독‘이란 직분 명칭이 등장하는것은 ’‘빌립보서’에서다(1:1). 바울의 서신들(목회서신은 제외하고)중에는 오직 이곳에만 이 용어가 수신인으로 사용되어 있는것은 이상하다. 빌립보서가 쓰여지던 시대(53년경)에는 교회에 ‘감독과 집사’라는 직제가 공식적으로 아직 없던 때이다. 그래서 그것을 교회의 공식 직분명이 아니고 그와같은 사역을 하고 있던 지도적 위치에 있던자들을 그렇게 부른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후대 편집자가 자기 시대 당시의 교회 직제를 반영한 편집의 산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런 용어 사용의 등장은 그 당시 바울의 선교교회에서 ‘장로’라는 직명이 ‘감독’이라는 칭호로 바뀌었음을 뜻하는것은 아닐것이다. 여전히 ’장로‘라는 직명이 사용되고 있으면서도, ‘감독’이라는 호칭이 함께 병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런 호칭 ‘병용’ 의 사유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들이 설명되고 있다. Campenhousen은 이 직분명 병행 사용을,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나 목회서신의 저자가 ‘유대 크리스챤(’Judaeo-Christian' tradition) 전통’인 ‘장로’ 명칭과 ‘바울적 감독’('Pauline-episcopal' tradition) 호칭을 ‘융합’시켜 기록해놓은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3.)

이 주제에 대하여 Robert L. Williams는 그당시의 교회 모임과 관련하여, 실제적인 상황을 제시하며 설명한다. 즉 그 당시 바울의 선교교회들은 모두 어떤 개인집에 있었던 ‘가정교회'(house church)였다. 자연히 그 집의 ’가장‘(head of the family)이 그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를 지도하고 관리는 위치에 있었다. 그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 ’가장‘되는 사람을 ’장로‘라고도 부르고, 또는 그집에서 모이는 교회를 돌보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감독자‘(overseer)로 부르게 되엇다는것이다. (주.4)

고구엘과 제라미아스(Goguel and Jeremias)는, ‘장로’(presbyteros) 직명은 마게도니아 지역 교회에서 많이 사용되어졌으나, 감독(episkopos)용어 사용은 특히 아시아 지역 교회들이 선호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목회서신’시대 교회의 '감독‘직분에 대한 이해

흔히 바울의 서신으로 알려저 있지만, 후대에 쓰여졌을것으로 추정되는 ‘목회서신’은, 물론 어떤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지는 않지만, 그 서신이 쓰여지던 시대의 교회 직제를 이해하는데 약간 도움을 제공해 준다. 하나 그것은 또한 목회서신이 언제 쓰여졌는냐에 따라 그 관점이 달라질수 있다. 목회서신의 저작 연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론들이 있고, 한마디로 결론내릴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또한 그것은 본 논문의 주제와는 다른 문제임으로 여기서는 자세히 다룰 필요가 없지만, 그것과 관련하여 한두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근거해서 연대 추정을 해보는것은 의미있다고 본다.

우선 본문 내용에 바울적인 요소가 일부 있다고 해도, 문체, 용어, 신학사상, 교회 직제, 시대적 배경 등이 바울이 활동하던 시대의 상황이나, 또한 여러 바울서신과 다르기 때문에 바울 자신이 썼다고 주장하는데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사도 후기의 초기 시대 교부들과 관련하여 이 문제를 간략하게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이 목회서신이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에 활동했던, 로마의 클레멘트, 안디옥의 익나시어스, 폴리갑 등에게 알려저 있었거나 일부분 인용되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주.3)

특히 110년에서 17년간에 쓰여진 것으로 보는 익나시어스의 편지에 나타나있는(주.4) 당시 교회 직제 및 상황들은 목회 서신의 연대를 추정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익나시어스의 편지들에는, 목회서신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비교할수 없을만치 훨신 더 발전된 교회 조직이나 직제등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것에 비하면 목회서신에 나타나 있는 직제나 상황은 원시적이다. 익나시어스의 편지에는 이미 ‘카톨릭’ 교회라는 말이 나오고, 성직자의 위계질서(hierarchy)가 나타나 있으며, 군주적 감독제가 표현되어 있다.(주 4)


익나시어스가 그의 편지에서 언급했던 교회 직제나 제도가 그시대에 이미 정착된 제도가 아니고, 다만 익나시어스의 ‘감독권’ 확립을 위한 투쟁 및 주장이라는 설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익나시어스 시대의 교회 제도나 상황은 분명히 목회서신 시대 것보다 훨신 발전되어 있는 후대인 것으로 추정된다. 해서 목회서신은 바울이 순교한 때(65년경) 이후부터 익나시어스의 편지가 쓰여지던 때(110-17) 이전의 시기로 말할수 있다. 여러 가지 연구들과 정황들을 고려하면 1세기 말이나 2세기 초 경(더 늦게 잡아도 2세기 중반 이전)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목회서신’에 나타나 있는 교회의 직제나 상황은 1세기 말경 시대 전후의 교회 상황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것이라고 할수있다. 목회서신은 물론 사도시대보다는 발전된 직제 등의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 ‘성직의 3중’ 계급제도 같은것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목회서신의 연대를 2세기 중반으로 추정하는 학자들은 목회서신에 나오는

감독, 장로, 집사를 ‘3중 성직 목회 구조’로 설명하려고도 하고, 목회서신 시대에 이미 군주적 감독제도가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주.5)

하지만 목회서신은 다만 그 직분들의 ‘자격’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고, 직분의 성격이나 직무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어서, 그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찾아볼수는 없다.

그리고 감독의자격을 제시한후 집사의 자격을 얘기했다고 해서 감독과 집사 간의 종속 관계를 단정지을수도 없다. 만일 그 당시 ‘3중 목회 구조’가 정착되어 있었다면 딤전 3장에서 직분의 자격을 논할 때, 감독, 장로, 집사 순서로 되어야 하는데 장로에 대한 언급은 없다. (딤전 3:1-13참조) 목회서신에서 ‘감독’이라는 단어가 정관사가 붙은 단수로 나타난다고 해서, 감독은 개교회에 장로들의 수장으로 1명만 있었다고 하는 주장도 있으나, 반드시 그렇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목회서신 기자가 ‘감독’직의 임무가 무엇이었는지, 교회내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딤전 5:17-18에, ‘잘 다스리는 장로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들’을 함깨 말한것 등을 보면, 감독과 장로는 같은 직분임을 나타내는것이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개체교회들(가정교회)의 초기에는 1명의 장로-감독이 있었을것이나, 교회가 성장하여 한 교회에 ‘장로-감독’이 여러명 있을때는, 말씀사역을 주로 하는자들도 있었고 또 ‘다스리는’(행정) 임무를 주로 하는자들이 나뉘어 있었던 같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수 있는것은 목회서신 시대에는 아직 ‘제왕적’ 1인 감독 제도 개념은 없었으며, 단순히 장로를 감독이라고 바꿔 불렀을것으로 추정된다.

목회서신이 그당시의 직제에 대해 분명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해도, 사도들의 활동시대보다는 발전된, 어느정도 제도화가 된 교회 직분제가 정착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사도나 예언자 등은 나타나지 않으며, 그런 사도나 ‘순회 사역자’들에 의해 교회가 돌보아지는것이 아니라, ‘각 지방 개체교회에 정착되어 있는 개교회 사역자들의 목회와 리더쉽에 의해 교회들이 이끌어저 가는 시대가 된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교회 시대’에서는 교회 내에 ‘성직’, 과 ‘평신도’를 구별하는 ‘성직자’제도는 아직 없었다. ‘장로-감독’직분을 가진자들이 교회의 지도적 위치에서 양떼들을 인도했으나, 그들도 여전히, 사도바울의 표현으로 하면 ‘성도’들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선교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낼때, ‘장로나 감독’을 수신자로 한적은 한번도 없다. (빌립보서에 대한 설명은 이미 했다) 다만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란 표현을 썼다.

그런데 익나시어스 시대 혹은 그 이후 시대부터 2세기 말경에 가서는 ‘집사’, ‘장로’, ‘감독’ 직이 교회 성직의 ‘3중 목회 구조(3 fold ministry)로 정착이 되었으며, 대표 ’감독‘ 1명이 한 지역 교회들의 수장이 되는 ’제왕적 감독제도‘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_____________________

1.) 바울은 대체로 각도시에서 전도할 때 처음에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찾았다.(행 13:5,,14,43; 14:1; 16:13; 17:1 등) 그러나 빌립보같은 도시는 유대인이 거의 없는 지역이었고, 따라서 유대인 회당도 없었다. 더 나아가 유대인에 대해 반감을 들어 내 기도 했다(행16:20-21).

2) James K. Mathews, Set Apart to Serve, p.28


3)Campenhausen, Ecclesiastical authority, 77, 81, 107, 116.

Rudolf Bultman,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Macmillan, New York, 1980, 2:102

4) Robert L. Williams, Bishop Lists Gorgias Press, 2005, P.48



주.3) The Interpreters Bible ,vol XI p369


4)The Epistle of Ignatius to Smyrnaeans, Source from Ante-Nicene fathers, vol.1, Edited by Alexander Roberts, James Donaldson and A. Cleveland Coxe, Buffalo, NY: Christian Literature Publishing Co. 1885 (익나시어스의 서머 나 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들도 있다. 감독이 없는 상태에서 혹은 감독의 승인받지 않고 하는 세례나 애찬식(agape)은 불법이다. 감독을 영화스럽게 하는자는 하나님에게서 영광을 받을것이다.” )


5)Donale G. Bloesch, The Church, Sacraments, worship, Ministry, Mission, (Inter Varsity Press, Downers Grove, Il, 2002) P.204

 

김택규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133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2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포이멘 (183.109.98.59)
2013-08-24 13:36:08
'감독직분의 기원과 발전'이란 제목을

'감독직분의 기원과 발전에 따른 기독사상의 퇴보'라고 바꾸어봅니다.

--------------

사회는 결코 진보하지 않는다. 다른 한 편에서 하나를 얻으면 그만큼 빨리 무언가가 퇴보한다

사회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야만적이었다가, 문명화되었다가, 종교적이었다가, 과학적인 세상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개선(改善)이 아니다. 무언가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기 마련이다.

사회는 새로운 기술을 얻는 대신 오래된 본능을 잃는다.

----- 랄프왈도에머슨
리플달기
3 2
최Ray (220.118.20.85)
2013-08-24 12:11:37
말씀 해석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필승 !!!
리플달기
3 3

김택규 목사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