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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느리게 살면 어떨까요?한국 교회 교우님들께 드리는 류상태의 주일편지 - 2013년 8월 11일
류상태  |  sham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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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08월 10일 (토) 11:06:12
최종편집 : 2013년 08월 10일 (토) 21:51:41 [조회수 : 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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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길었다는 장마가 끝나자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교우님들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지요. 그리고 피서는 좀 다녀오셨는지요. 현대인들 중에는 너무나 바쁜 일상에 휘둘려 살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삶의 여유가 없기에,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인생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최소한 우리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또한 우리의 삶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생각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하여 오늘은 삶의 무게에 지친 현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러나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살기를 바라는 예수사람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행복한 삶인지, 교우님들과 생각을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1. 지상에서 가장 빠르고 무서운 맹수

열대야가 계속되는 요즘 저는 밤잠을 설칠 때가 많습니다. 에어컨이 없는 저의 집에서는 창문을 열어놓고 자는데,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오토바이나 자동차 소음이 수시로 잠을 깨워놓기 때문입니다. 자동차가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지 오래 되었지만 자동차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는 잠자리를 방해하는 것 이외에도 적지 않습니다.

자동차는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환경문제도 심각합니다. 또한 자동차로 인해 세상이 더욱 빠르고 편리해지기도 했지만, 오히려 삶의 여유를 빼앗고 사람을 더욱 이기적으로 만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매우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을 가진 제 지인 중에도 핸들만 잡으면 난폭하게(?) 돌변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저 역시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때 가장 이기적인 심리상태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자동차가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익숙한 습관을 바꾸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의 운전자 가진 한계인 것 같습니다. 언제 아이들이나 애완동물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골목길에서조차 과속을 일삼는 사람들을 보면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운전을 할 때는 주변상황을 잘 살펴야 합니다. 다른 차들의 움직임도 살펴야 되고, 장애물은 없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특히 어린아이는 아무데서나 뛰어나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운전하는 사람이 주변상황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속도 자체에 심취하면 여러 가지 위험한 상황이 발생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위험에 처할 수 있지만, 애꿎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녹색교통정책연구소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2011년에 89만7271건의 교통사고가 일어나 144만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하루 평균 2458건의 크고 작은 교통사고에 3945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5229명이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만 하루 평균 14명이 교통사고로 숨진 것이므로 지구마을 전체에서 하루에 자동차로 인해 숨지는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많을까요?

교통사고는 차량이 망가지거나 사람이 다칠 경우를 문제 삼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아니라도 달리는 자동차에 희생되는 짐승이나 곤충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교우님도 가끔 도로에서 차에 치어 버려진 고양이나 개, 또는 야생동물의 사체를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문명과 속도에 희생된 불쌍한 동물들입니다.

사실 그 동물들에겐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냥 제 갈 길을 간 것뿐입니다. 거기는 자동차만 다니는 길이라는 걸 그들이 알 리 없습니다. 그건 우리 사람들이 (그들과 아무 협의 없이, 또는 거의 아무런 배려도 없이)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사람들만의 매우 이기적인 규칙’이니까요.


2. 빠른 것은 좋은 것일까요?

그런데 자동차와 도로와 속도, 즉 인간이 만든 문명의 이기에 힘없는 동물들이 희생되는 그런 현상이 바로 우리들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현대인은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도 차에 치일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씀을 드리려는 건 아닙니다. 물론 차조심 길조심도 해야겠지만, 우리들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남에게 뒤쳐지지 않으려고 뛰어드는 속도 경쟁이 우리의 행복한 삶을 방해하고 파괴하는 길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단거리 육상경기 하듯 정신없이 달리고 있습니다. 경쟁사회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앞만 보고 너무 급히 달리다 넘어지면 심하게 다칠 수 있습니다. 또 앞만 보고 달리면, 눈앞에 있는 작지만 함께 살아가야 할 미물들을 밟아 죽일 수도 있습니다.

하여 저는 교우님들께 조심스럽게 건의하고 싶습니다. 우리 예수사람들은 좀 천천히, 느리게 살기로 하면 어떨까요? 달려야 할 때는 달리더라도, 때로는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주변을 살펴가면서, 천천히 산책하며 살면 어떨까요?

그러다가 뒤떨어지면 어떻게 하냐구요? 뒤쳐지면 안되는 절대적인 이유라도 있나요? 차라리 좀 뒤쳐지면 어떨까요? 앞서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 먼저 보내드리고, 우리가 뒤처리 좀 하면 어떨까요? 부지런히 달려나간 사람들에 의해 밟히고 치이고 쓰러진 미물들을 일으켜 세워주고, 보듬어 안아주고, 상처를 씻어주고, 다시 살게 해 주면 어떨까요?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는 미물들은, 실제로 도로에서 질주하는 차들에 치어 죽는 힘없고 작은 생명체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딘가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현대사회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같이 뛰다가 지쳐 쓰러지거나, 뒤쫓아오는 그 무엇엔가 치여 쓰러질지도 모르는 우리들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앞에 떨어진 목표물을 붙잡으려고 (못잡으면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하니까) 뛰고 또 뛰다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 있는, 우리의 부모 형제, 또는 친구들일수도 있습니다.


3. ‘느림’이 주는 자유와 행복에 대하여

걷건 뛰건, 길을 가는 사람이 앞을 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눈을 감고 길을 걸을 수는 없지요. 그러나 저는 앞만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늦더라도, 가끔은 위를 쳐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씩 위를 쳐다보는 사람은, 앞만 보고 내달리는 사람보다 빨리 달리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빨리 달리지는 못할지라도, 위를 보는 사람은, 아름다운 많은 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구름이 흘러가는 것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청명한 하늘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새들이 지저귀며 날아가는 것도 볼 수 있겠지요.

그런 사람은,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경쟁에서의 승자가 되지는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과 함께 어깨동무하며, 작은 빵 나눠먹기를 기뻐하는, 겸손하고 소박한 삶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삶이 주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우리 주님은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날에 심판이 있을 터인데, 오른 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 (마태복음 25:34~36, 공동번역).

그 때, 그 사람들이 대답합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또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으며, 언제 주님께서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저희가 찾아가 뵈었습니까?” (25장 37~39절).

다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25장 40절).

주님의 이 말씀은, 예수사람들의 삶의 방향이 어디여야 하는지, 그리고 신앙인의 참다운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얼마나 유능한 사람으로 살았느냐, 얼마나 많이 소유하였고, 얼마나 많이 성취하며 살았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살았느냐,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을 주님 섬기듯 섬기며 살았느냐에 있습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뒤쳐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쫓겨 앞뒤좌우 돌아볼 겨를도 없이 너무들 빨리 달리려 합니다. 그 속도에 치여 다치고 희생되는 사람들도 많고 동물들도 많습니다. 우리 예수사람들이라도 좀 천천히, 주변도 충분히 살펴보고, 우리 자신도 자주 돌아보면서, 느리게 살기로 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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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196.234.24)
2013-08-11 07:49:39
"천천히, 느리게 살면 어떨까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한국문화에서 길들어 진 습관이
쉽게 바꿔지지가 않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상이
"빨리빨리" 입니다. 실제로 "빨리빨리" 를 한국인들의 별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외국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우리문화를 좋고 나쁨의 이분법적 논리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빨리빨리 기질 때문에 한국이 최 단 기일 내에
세계 11 번 째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한인교포들이 타 민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기반을 빨리 잡을 수도 있었고요.

요즘들어 삼성을 비롯한 한국기업들이
컴퓨터, 전화, 전자, 인테넷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악착같은 빨리빨리 문화 덕분이라고 생각됩니다.

대부분 외국 이민자들이 미국에 대한 첫 번째 인상은
미국인들이 "스피드 광증에 걸려있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포들의 눈에는 미국인들의 일하는 모습이
너무 답답하게 느려보입니다.
한국인들은 매사를 초특급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SUPER RUSH 병에 걸려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저도 그 예외는 아닙니다.

마음의 속도는 편리합니다. 하지만 스피드한 자동차처럼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많습니다.
속도에서 오는 긴장과 스트레스, 그리고 위험부담이
그 좋은 예지요.

그래서 대부분 현대 미국인들은 정신병수준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으로 시달리고 있는 듯 합니다.
물질적 풍요를 위해서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강제세금같은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명상록을 쓴 파스칼은 인간들의 모든 불행은
바쁜 서두름 속에서 비롯된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더 노력해야 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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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0
Ismail-x (112.222.123.131)
2013-08-14 01:05:02
삶도 느리게 글도 천천히 자신의 글을 다시 살피면서 쓰자
.

1. 일반적으로 요한계시록은 교회가 해석하기에 정말 어려운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내용들이 이야기되는 현실은 그 반증이다.

☞ 요한계시록(이하 계시록)은 해석하기 쉽지 않은데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이 그 방증이다. / 반증( ☓ ), 방증 ( O )

2. 대표적인 것이 예수님의 재림을 말씀하는 책이라는 관점이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점에서 거의 2,0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루어지지 않은 일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바코드, 배리칩, 로마가톨릭, 유럽 연합, 3차 세계 대전 등을 말한다. 그중에 어느 것은 이미 지나갔고 어느 것은 미래와 연관되어 있어 지금도 유효하다고 본다. 많은 이들이 이 관점을 정통이라고 생각한다. 그 정통은 결코 틀리지 않다는 굳건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 계시록은 예수의 재림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의 사망 이후 2,0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바코드, 배리칩, 가톨릭, 유럽연합, 3차 세계 대전 등에 대해서도 증거하고 있으며 이들 중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도 계시록과 연관되어 있다. 이렇게 보는 관점이 정통에 속한다.

3. 요한계시록이 기록 당시의 로마에 대한 교회의 저항을 기술한 책이라는 것도 한 관점이다. 그 당시의 성도들에게 “로마의 권세는 잠깐이며, 영원한 통치자이신 그리스도께서 곧 그들을 몰아내시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므로, 모든 환난을 잘 참고 믿음으로 이겨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책이라는 것이다.

☞ 계시록이 예수 재세 시의 로마에 대한 교회의 저항을 기술했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당시 성도들에게 “로마의 권세는 잠깐이며, 영원한 통치자이신 그리스도께서 곧 그들을 몰아내시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므로, 모든 환난을 잘 참고 믿음으로 이겨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책이라는 것이다.

4. 과연 그런가? 짧게라도 한번 살펴보자.

☞ 이처럼, 계시록이 교회의 저항에 대한 기술이라는 주장이 옳은지 살펴본다.

5. 상징의 책인 요한계시록
먼저 요한계시록은 상징의 책이다. 계 1:1의 “~ 알게 하신 것이라”로 번역된 헬라어 ‘세마이노’는 “상징으로 표현하다” “상징으로 알게 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그랜드종합주석 16>, 680). 요한계시록은 사용된 물질 명사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기록된 글이다. 상징을 모르면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풀 수 없다.

☞ 상징의 책인 요한계시록
먼저, 요한계시록은 상징의 책이다. <계 1:1>의 “~ 알게 하신 것이라”로 번역된 헬라어 ‘세마이노’는 ‘상징으로 표현하다’ ‘상징으로 알게 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계시록은 추상적인 내용을 구체적인 물질명사로 나타내며,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상징을 모르면 계시록을 정확히 풀기 어렵다.

6. 계 6:12-13 “~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며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이전에 노우호 목사님의 성경 통독에 참여하였다. 마지막에 요한계시록을 읽고서는 모두 문자적으로 풀이를 하셨다. 해를 입은 여자를 그림으로 그려 보여주시면서 말이다. 그 이전의 내용에서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아멘이라고 외친다. 바른 것일까?

☞ <계 6:12, 13> ‘~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며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이 구절을 ‘노우호’ 목사는 모두 문자적으로 풀이했다. 해를 입은 여자를 그림으로 그려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리고 성도들은 아멘이라고 외친다. 이것이 옳은 것일까?

7. 핼리혜성이라고 있다. 칠십년을 주기로 지구에 가까이 왔다고 멀어져 가는 혜성이다. 지구에 오는 시점이 되면 지구의 과학자들은 긴장한다. 지구와 부딪치지는 않을까. 혹시라도 부딪치면 어쩌나. 우리야 결코 부딪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편안한 마음을 가져도 되지만 만약 부딪친다면... 만약 부딪친다면 그것으로 지구는 끝이다. 지구는 공전 궤도에서 이탈하고 우리는 모두 우주 미아가 될 것이다. 이는 약간의 과학적 상식만 있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늘의 별들이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떨어져서 지구에 부딪친다면 어떻게 될까?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 이후의 지구란 없다. 지구 역사가 있을 수 없으며 사람도 당연히 없다. 요한계시록 6장 13절 이후란 있을 수가 없다. 그 구절은 문자로 풀이하면 안 되는 것인데도 부득부득 문자적으로 풀이하겠단다. 성도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 약 76.2년을 주기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헬리혜성’이나 그 정도의 크기를 가진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도 지구는 파괴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하늘의 별들이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떨어져서 지구에 부딪친다면 어떻게 될까?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 6장 13절 이후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단순히 문자로 풀면 안 되는 것인데도 그렇게 하고 있고, 성도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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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135)
2013-08-11 21:21:20
그날이 곧이르리니......천천히갑니다......감솨
제가 가장..귀담아들어야할 내용 입니다....열심히 일도 하지만 일을 신속하게 하는 측에 드는 사람입니다...물론 지금은 나이가 좀되다보니 자연스럽게 느려진것도 사실이지만...이나이 에도 여전히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것을 좋와하는 편입니다...앞만 보지말고 좌우도 보고 하늘도 보고 땅도보며 뒤도 돌아보며 사람과 자연속에 생명의 존귀함을 내면화 해야겠지요....성령의뜻에 마음을 기울이고 예수의 삶에 고민하며..우주자연 과 사람의 모든생명의 사랑과공의앞에<하느님>의 엄숙한 마음을갖는다면...느림이라는것 미학으로 다가오겠지요....목사님의 마음을 앍으며...그리살도록 애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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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포이멘 (183.109.98.59)
2013-08-11 15:53:15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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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박창진 (42.82.71.52)
2013-08-11 14:45:27
느림의 미학
동의하며 좋은 글에 감사를 드립니다.

진보 신학에 입각한 본문 주경의 글이 아니면 언제나 추천을 누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생각하여야 좋은 내용의 글을 지속적으로 올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밤잠을 설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게 되면 건강이나 생활에 어렴울 초래할 수도 있으니 유의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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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Philip Im (70.62.49.64)
2013-08-11 02:16:13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질 때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살아가는데 있어서 '빨리'나 '빠르기'가 문제입니까?
언뜻 보면 문제인 것 같으나 때로는 '빠르기'가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천하만사는 때가 있어서 빠르게 할 때가 있고 느리게 할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 때를 뒤바꾸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평소 차분하던 사람이 운전대만 잡으면 왜 난폭합니까?
빨리 달리는 현상이 문제가 아닙니다.

범죄하여 부패한 사람, 그 사람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여타 피조물도 고통받으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질 때
육신의 피곤함, 경제적 궁핍함, 사회적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비로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얻으며
바쁜 세상 일 가운데
(내가 바쁘게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여도 바쁜 세상은 우리를 가만 두지 않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이웃을 돌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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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
최Ray (220.118.20.85)
2013-08-10 23:00:57
신호등이 파란불에서 노란불로 바뀔 때

계속 가야 하나요? 아니면 급정거를 해야 하나요?

난 계속 갑니다.

이는 중립적인 사항 즉 판단하지 말아야 할 사항인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교통법규는 위반 사항인 줄 알면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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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6
Philip Im (70.62.49.64)
2013-08-11 12:34:34
사고 안 내면 됩니다.
경찰이 안 잡으면 됩니다.
사고내면 잘못된 것이고
경찰이 잡으면 잘못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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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
최Ray (220.118.20.85)
2013-08-11 12:59:19
노란불로 바뀔 때 급정거를 해봤는데

사고 날 뻔 했습니다.

노란불 때 자연스럽게 통과 하는게 맞는 것 같더라구요.^^

법을 알고 어겨서 회개 기도 하고, 묵상 해 봤는데

중립으로 깨달았어요.^^
리플달기
2 5
펠리페 (211.214.139.72)
2013-08-10 23:22:46
대체 뭐 하시는 분인지...?
글마다 뜬금없는 댓글로...점점 짜증을 선사하시는군요.

선생이 쓰신 글들을 좀 읽어 보세요.

누구 읽으라고 쓰시는 글이라면, 자신의 논리 수준을 돌아 보시고, 최소한 주술관계나 어법이라도 좀 신경시는게...

도저히 어려우시면 가까운 분들께 좀 손 봐달라고 해서 올리시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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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
최Ray (220.118.20.85)
2013-08-11 11:54:00
신호등의 빨강색과 녹색이 있는데

빨강색의 보색은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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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5
최Ray (220.118.20.85)
2013-08-11 05:55:40
짜증나게 해서 죄송합니다.^^

선생은 아니고요. 손 봐줄이도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세요.^^

무더위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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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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