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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미래의 운명을 예언하지 않았다한국 교회 교우님들께 드리는 류상태의 주일편지 - 2013년 7월 21일
류상태  |  sham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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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07월 20일 (토) 10:35:38
최종편집 : 2013년 07월 20일 (토) 12:09:41 [조회수 : 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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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잘 알려진 영화 이야기로 주일편지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천삼백만 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하여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괴물>이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교우님께 소개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성서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1. 영화 <괴물>

   
영화는 용산 미군기지를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화학약품 병에 담긴 내용물이 하수구에 버려집니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포름알데히드입니다. “이걸 여기다 그냥 버려도 되는 겁니까?” 한국인 과학자의 물음에 상급자인 듯한 백인이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합니다. “한강은 매우 넓은 하천이요.” “그래도 이건 매우 위험한 독극물인데...” 한국인 과학자의 항변에 상급자는 쐐기를 박습니다. “당신은 그냥 명령대로 하면 돼!”

몇 년이 지났을까요. 한강에 이상한 물체가 떠다니고, 공원에서 놀이를 즐기던 시민들이 호기심에 몰려듭니다. 먹이도 주고 깡통도 던져주고... 이윽고 녀석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덩치에 비해 동작이 재빠른 녀석의 머리는 물고기를 닮았으나 몸체는 거대한 공룡을 닮았습니다. 마침내 수면 위로 솟구친 괴물이 한강시민공원에 착륙하여 닥치는대로 사람을 공격합니다.

박강두(송강호 분)는 중학 1년생인 딸 현서의 손을 잡고 정신없이 뜁니다. 한강변에서 간이매점을 운영하는 강두에게 이 시간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딸을 보호하는 것. 정신없이 달리다가는 넘어지고 또다시 일어나 달리기를 반복하던 강두는 자신의 손에 잡힌 아이가 현서가 아니라 또래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눈이 뒤집힙니다.

현서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괴물에게 돌진하는 강두. 평상시라면 결코 들어올릴 수 없을 콘크리트 구조물을 들고 녀석과 맞서 혈투를 벌입니다. 다행히 백인 청년 한 명이 합세하여 괴물을 한강으로 다시 쫓아내기는 하는데... 한참 후 저 멀리 사라지는 괴물에 물려가는 현서의 모습이 보입니다.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합동장례식이 벌어지고, 당국은 전염병의 발생을 경고하며 슬픔에 젖은 유가족들을 격리합니다. 현장에서 괴물과 사투를 벌여 녀석의 피를 뒤집어썼던 강두는 슈퍼바이러스 일급 보균자로 지정되어 격리 수용됩니다.

강두에게는 다음날까지 금식 명령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건장한 체격의 이 사내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골뱅이(?) 통조림을 몰래 따서 손가락으로 내용물을 휘감아 입에 몰아넣습니다. 통조림 안에 잔뜩 들어있는 내용물이 괴물의 모습을 많이 닮았습니다. 괴물은 한강에 살고있던 골뱅이 종류가 일으킨 돌연변이체였을까요?

얌전히 조사를 받던 강두의 핸드폰이 울립니다. 이어지는 다급한 목소리. 현서의 음성이 분명합니다. 아이가 너무 흥분한 탓인지 내용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어쨌든 현서는 한강변 하수구 어딘가에 살아있습니다. 강두는 죽은 줄 알았던 딸의 전화를 받고 아버지와 남동생, 양궁선수인 여동생과 함께 극적으로 수용소를 탈출하여 괴물사냥에 나섭니다.

그러나 녀석은 강합니다. 괴물이니까요. 심부름센터와 고물상을 뒤져 겨우 손에 넣은 낡은 엽총 몇 자루로 괴물사냥에 나서지만 아버지가 희생되고 강두는 다시 당국에 체포되어 치료(?)를 받게 됩니다. 이미 미국은 첨단 의학과 과학시스템을 동원하여 사건에 개입해 있습니다. 바이러스를 퇴치한다는 명목으로 한강 주변에 뿌려대는 ‘에이전트 옐로우’는 저리 마구 살포해도 괜찮은 것일까요?

강두의 몸에서 바이러스를 추출해야 할 미국인 의사는 이미 바이러스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 당국이 슈퍼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언해 온 만큼 어떻게든 바이러스는 존재해야 했고, 또한 효과적으로 퇴치되었음이 증명되어야 했습니다. 미국인 의사와 통역관의 대화에서 ‘no virus’라는 단어를 알아들은 강두는 소리를 지릅니다. “바이러스 없어? 바이러스 없구나!”

강두는 존재하지도 않는 바이러스를 이용하여 병원 수용소를 탈출하기로 합니다. 주사기에 든 바이러스 배양액(사실은 맹물)을 뿌리며 간호사를 인질로 잡고 탈출에 성공한 강두는 두 동생과 함께 괴물과 사투를 벌입니다. 화학물질에 의해 탄생된 괴물답게 석유를 좋아하는 녀석은 한 노숙자가 부어준 석유를 맛있게 받아먹습니다. 마침내 괴물은 강두의 여동생 남주가 쏜 불화살 한 방에 속속들이 타들어가는 처절한 파멸을 맞습니다.


2. 영화 <괴물>과 성서의 묵시문학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내용을 조금 상세히 소개해 보았습니다. 혹 순서나 내용이 조금 틀리는 부분이 있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화에서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과 군대 등 국가기관들은 슬프게도 미국 방역팀의 하수인 역할을 하기에 바빴습니다. 하지만 강두네 가족을 도와 용감하게 괴물 퇴치에 나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괴물의 입에 석유를 부은 노숙자와, 강두의 석방을 외치는 대학생들, 그리고 시민단체 회원 등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가 다분히 묵시문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묵시’란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개념을 감추어 표현한다.”는 뜻입니다. 그 옛날, 그리스나 로마 등 강대국의 침략에 저항하여 “역경의 세월을 잘 이기고 믿음을 지키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고자 하는 말을 사실 그대로 말했다가는 자신도 체포되고 글도 검열에 걸려 유통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전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와 언어를 감추어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묵시문학’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성서에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두 권의 묵시문학이 전해집니다. 다니엘서의 저자는, 기원전 2세기 그리스 알렉산더 대제의 후예인 시리아의 독재자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치하에서 고난받는 유대인들에게 희망의 멧세지를 전하기 위해 여러 짐승을 등장시켜 강대국의 횡포를 묘사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로마제국을 짐승으로, 황제를 ‘666’이라는 사탄의 수로 묘사하며 절망에 빠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고 믿음을 지킬 것을 호소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세계를 유린하는 초강대국의 횡포를 ‘괴물’의 이미지에 묵시문학적으로 담아내는 솜씨를 보였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묵시문학’을 알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그의 천재성이 빛을 발하여 우연히 묵시문학적인 구도를 만들어낸 것일까요? 그도 아니면 제가 ‘오버’한 것일까요?

미국은 괴물의 탄생을 주도했으면서도 오히려 녀석을 제거하고 사태를 가라앉힐 적임자로 등장합니다. 첨단장비를 갖추고 구세주처럼 나타나는 세련된 ‘지구마을 지키미’의 화려한 등장을 대한민국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슈퍼바이러스 설을 퍼뜨려 초기에 사태를 제압하려는 초강대국과 ‘주권국가 대한민국’의 초라한 모습이 대비됩니다.

그래도 미국인 의사와 통역관의 결코 짧지 않은 대화 가운데 핵심 단어를 알아들고는 “no virus? 바이러스 없구나!”를 외치는 강두의 말에 관중은 폭소를 터뜨렸지만,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확언하며 이라크를 침공했던 미국의 오판과 뻔뻔스러움을 패러디한 그 한마디는, 마냥 웃기만 할 수도, 목놓아 울 수도 없는 슬픈 코미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너무나도 묵시문학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장면은, 노숙자가 부어주는 석유를 맛있게 받아먹는 괴물의 모습이 정지화면처럼 클로즈업되었을 때입니다. 괴물과 석유. 이 영화가 초강대국의 횡포를 “감추어 표현했다”는 이보다 더한 물증이 있을까요?

‘화학물질’로 탄생하여 ‘석유’를 먹고 석유로 인해 자멸하는 이 생명체에 대한 영화가 ‘묵시문학’ 아니 ‘묵시영화’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미국은 이라크에 ‘화학무기’가 있다고 단언하여 침략을 정당화했지만, 사실은 당시 대통령 부시 일가가 개입되어 있고 미국의 국익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무리한 침략을 했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묵시문학에서 반드시 들어가는, 또한 들어가야만 하는 요소가 있다면, 그건 평화를 해치는 악마적 세력의 괴멸과 그 이후에 찾아오는 궁극적 평화, 즉 ‘구원’의 문제입니다.

영화에서 괴물은 몸 속 깊숙이 배어들어간 석유로 인해 총체적인 파멸을 맞습니다. 그런데 소심한(?) 혹은 섬세한(?)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이렇게 변명하는 듯합니다. “나는 미국을 고발하는 것이지, 미국인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내용이 어디 나오냐구요? 영화를 보신 교우님은 강두와 함께 괴물과 처절한 혈투를 벌이다 희생된 백인 청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한 명의 시민이라도 구하려고 괴물에게 몸을 던지는 백인. 봉준호 감독은 왜 굳이 이 백인(아마도 미국인?) 청년을 등장시켰을까요? 포름알데히드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수구에 부어버리는 과학자, 존재하지 않는 슈퍼바이러스를 기어코 입증시키려는 의사와는 대비되는 ‘한 미국인’을 영화에 집어넣어야만 그의 마음이 편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제가 많이 오버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왕 오버한 김에 좀 더 진도를 나가 보고 싶습니다. 이 영화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적 힘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두네 가족과 힘없는 소수자들이 뭉쳐 거대한 조직과 그에 의해 이루어지는 기막힌 현실세계에 맞서 싸웁니다.

영화에서 가장 약한 사람을 대표하는 설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강두네 가족이 그렇게도 지켜내고자 애썼던 현서에 의해 끝까지 보호된 어린 꼬마 아이가 아닐까요? 감독은 울어주고 묻어줄 가족이 있는 현서를 희생시킨 대신, 부모 없는 꼬마 아이를 살려 강두가 차려주는 밥상을 배불리 먹는 가족의 울타리에 넣어 주었습니다. 감독은 이 부분에서 우리에게 “구원이란 무엇인지”를 묵시적으로 말하는 듯합니다.

만일 제 추측이 맞다면, 이 영화는 봉감독이 ‘묵시문학’에 대해 알았건 몰랐건 철저하게 ‘묵시문학적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봉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시스템이 개인을 구원할 수 없다는 비관론이 내게 있는 것 같다. 독극물로 괴물이 생기고 그 괴물에게 더 큰 독극물인 독가스가 뿌려지는 악순환의 은유로 사회 모순을 그리고 싶었다. 자신도 약자인 사람들이 더 약자인 떠돌이 어린이를 지켜내는 결말에선 희망을 담고 싶었다.”

봉준호 감독은 “반미영화냐?”고 물은 기자의 질문에 “사회의 여러 모순 가운데 하나로 미국과의 관계를 설정했을 뿐 반미영화는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다니엘서의 저자에게 “반그리스적인 글이냐?”고 묻는다면, 또는 요한계시록 기자에게 “로마제국에 저항하는 글이냐?”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었을까요? 감독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용한 묵시적 기호와 상징이 너무나 뚜렷하다고 생각되는 건 단지 제 삐딱한 성향 때문일까요?


3. 묵시란 무엇인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묵시라는 단어 ‘아포칼룹시스’는 ‘중요한 진리를 감추어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말 ‘계시’로도 번역되는 ‘묵시’는 미래의 운명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그때 당시의 하나님의 뜻을 같은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도입된 독특한 문학적 방식입니다.

구약성서의 대표적 묵시문학인 다니엘서는 서기전 2세기에 기록되었습니다. 매우 보수적인 신학자는 서기전 6세기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다니엘서의 저자는 알렉산더 대제의 친구이며 부하였던 시리아의 셀류코스 가문이 유다를 지배하던 시대에 살았습니다.

유대인의 종교를 멸시했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라는 별칭은 ‘세상에 나타난 신’이라는 뜻)는 유대인의 성경읽기를 금지시켰습니다. 성경을 읽다 발각되면 가차 없이 처형했으며, 할례를 행하면 그 아이와 아버지, 집행한 제사장까지 사형에 처했습니다. 그는 성경이 부정한 짐승으로 분류한 돼지를 성전에서 잡아 그 피를 성소에 뿌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백성들의 동향은 주로 세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시리아의 정책에 타협한 사람들은 후에 사두개파를 형성했습니다. 끝까지 버티거나 항거하여 게릴라전을 펼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후에 바리새파를 형성했습니다. 속세를 떠나 은둔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악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살기를 단념하고 사해지방으로 은둔한 사람들은 ‘쿰란공동체’를 이루었으며 이 사람들은 후에 엣세네파를 이루었습니다.

야훼신앙이 붕괴될 위기에 처한 그때, 거룩한 공동체를 지키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글의 힘을 잘 알고 있던 그는,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독한 대가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 앞에 곧 거꾸러질 것이며 모든 악의 세력이 종식되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백성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사실대로 쓸 경우 저자는 체포되어 사형을 당할 것이고 책은 수거되어 폐기 처분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사실을 ‘묵시’로, 즉 ‘중요한 진리를 감추어 표현’하기로 하였습니다. 하여 그는 다니엘이라는 서기전 6세기의 위장인물을 등장시켰습니다.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모든 것이 4백년이나 흘러간 먼 과거에 기록된 것으로 위장시켜 글을 쓴 것입니다. 그것이 곧 ‘다니엘서’라는 묵시문학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성서의 문자에 갇혀있는 일부 보수적인 교회지도자들은 다니엘서를 당대의 불의와 핍박에 저항하는 묵시문학이 아니라 먼 미래를 예언하는 예언서로 보고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서는 결코 미래의 운명을 예언한 책이 아니며, 그것은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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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본부 (72.196.234.24)
2013-07-23 22:37:14
나는 요한계시록을 단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첫째로 무슨 말인지 내 머리와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의 신앙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두번째는 확실한 현재를 제처두고 불확실 한
미래에 얽매여 불안 걱정 속에서 살고 싶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손에 있는 새 한 마리가 하늘을 나르는 수 천 마리
새보다 소중합니다. 내 손 안에 쥔 떡은 나의 당장 배고품을
해결할 수 있지만 미래의 떡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헛것이지요.

미래는 하나님 것이 아닙니까? 가이사 것은 가이사 것
하나님 것은 하나님 것인 것처럼
그래서 예수님이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현재나 즐기라" 고 말씀하셨겠지요.
그것도 분명히 성경책에 나온 하나님 말씀입니다.

나의 지난 체험으로 분명히 깨달은 사실이
하나있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교회를 다니며
유명목사들, 신학자들의 성경에 기초한 미래에 대한 예언이
단 하나도 맞아 떨어진 것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점쟁이들이나 무당들의 예언보다 못 했습니다.


돈이 필요하면 열심히 일을 하십시요.
미래를 팔아 먹고사는 무당들의 말에 더이상 현혹되지 말고.

나는 기업인들 중에 기도만으로 부자가 됐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또, 학교공부도 하지 않고 성경공부를 해서
일류대입학시험에 합격한 신앙인들은 단 한 사람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대학입시준비를 위해 성경공부를 시키는
입시학원을 단 한 개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적어도 자신들의 양심은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삽시다.
정직이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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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6
포이멘 (183.109.98.59)
2013-07-24 12:14:05
요한계시록 몇 번 읽어 보았습니다.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누가 적그리스도인지는 알겠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들은 둘째 사망에서 건져지지 못한다고 써 있었습니다.
정직하다는 것이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겠고 사랑하는 것이겠지요.

하나님께 거짓말하지말고
타인에게 거짓말하지 말고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말기를

성령님이 함께하시면 거짓말하지 않고 가난한 삶을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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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개혁본부 (72.196.234.24)
2013-07-24 01:54:11
컴퓨터 를 사람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
말을 행동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
컨닝으로 흠쳐낸 지식으로 학위를 따는 사람들,
예수라는 단어를 진리로 믿고 숭배하는 사람들,
자기 양심을 속이며 사기로 천국가겠다는 사람들,

그렇게 악착같이 구원받아
자기밖에 없는 텅빈 천국에 가면 무엇합니까?
기도하면 그런 못 되고 악한 생각들만 떠오릅니까?

수고를 덜기위해 반대표 하나 더 추가 합니다.
나도 컴퓨터가 사무실에 20대 이상 있습니다.
더 도와주고 싶지만 부정선거는 싫어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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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박창진 (42.82.71.52)
2013-07-23 11:59:20
미래의 운명 예언이라고 하면
일단 개인적인 사안으로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는 요한계시록이 전하는 바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렇지만 요한계시록이 미래에 발생할 일을 기술하였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단 기록 시점에서 미래이다.
지금의 시점에서는 과거에 이루어졌다.
배도하고 새 언약의 교회를 핍박하여 죽이기까지 한 옛 언약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예수님께서 감람산 강화(마 24장)에서 말씀한 성전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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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23 13:47:17
당신 시인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새 언약의 교회를 누가 핍박하고 누가 죽이기까지 했는데? 그리고 심판은 무슨 심판?

계시록이 쓰여질 당시에 무슨 핍박이 있고 무슨 신판이 있었단 말이냐고? 옛 언약의 백성이 언제 새 언약의 교회를 핍박하고 그리스도인을 죽였냐고요?

차라리 있지도 않은 역사를 써라.










시를 쓰려거든 문단에 등단을 먼저 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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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박창진 (1.220.135.107)
2013-07-24 12:12:35
무식하면 용감하다니깐...
공부 좀 하시요.
요한계시록에 대해.
할 마음이 있으면 자료는 알려줄테니깐요.
공부하지도 않을 인간에게 미리 알려줄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여겨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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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24 21:37:14
그저 잘난 척 하기는
자기 머리속에 있는 게 전부인줄 안다니까.

공부?

먹사들이 하는 게 공부라고?

웃긴다. 정말.


하여튼 보수라는 넘들은 지성에 관한한 도무지 정직함이 없어요. 그냥 지들이 지닌 쓰레기만 옳다고 주구장창 우겨대는거지.

그래서 걔들하고는 대화가 안되는거야.

그러니 비아냥과 조소만 나올 수밖에.

자료?

지들끼리 옳소! 옳소! 하려고 만든 자료를 자료라고?

이건 완전 공산당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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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3
박창진 (1.220.135.107)
2013-07-25 14:34:17
참 신기해요
대체 어느 정도 공부를 하였는지 모르겠지만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를 공부하고서
고대의 자료를 살피면서 연구하여
그 결과를 내어놓는 제대로 된 신학자들보다
자기가 더 똑똑하고 더 잘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지...

인간이 겸손이라는 말을 제대로 알고서 자신에게 적용시키면 결코 그렇게 살지 못할텐데...
답은 하나이지. 무식하여 용감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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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박창진 (1.220.135.107)
2013-07-25 14:04:39
글고 지속적인 그 헛소리도 조금 있다가 깨우쳐주지...
자신 안의 순환 논리는 옳고 기독교의 순환 논리는 잘못이라는 그 말도 안되는 헛소리 말이지.
이게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는 인생을 향한 자비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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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박창진 (1.220.135.107)
2013-07-25 13:49:23
머리 나쁜 인간과의 논쟁은 참 피곤해...
자신이 주장하는 바는...
그것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데...
요한계시록에 대한 자기 주장은 자료가 아니고 절대적인 것이여...
공부 좀 하라고.
글 읽기 공부, 글 쓰기 공부...
그냥 현재 자기 머리 속에 있는 것을 쏟아내지만 말고.
유치하기 그지없구만.
자기만 또는 동급인 몇 사람들에게만 대단한 것인양 착각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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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22 15:02:55
다니엘서와 계시록 제대로 해석할 줄 아는 먹사 있으면
나와보라고해.

몇줄도 해석할 줄 모르는 넘들이 뭔 말들이 많아.

주석책을 봐도 말도 안되는 해석으로 범벅된 게 계시록이고 다니엘서야. 주석책에서 해석한 부분도 '~듯싶다' '~인것 같다' 라는 식으로 때려 맞추기 식의 해석일 뿐이라고.

계시록 4장부터 마지막 장 가운데 최소한 열 구절 이상 끊임 없이 해석할 수 있는 먹사있나? 없어.

칼뱅도 그래서 앞에만 찔끔 찔끔 해석하는 척하다가 말았다고.

계시록의 상징들 가운데 수정 같은 유리 바다, 이십사 장로, 봉해진 책, 일곱 뿔 일곱 눈, 네 생물, 거문고, 만만 천천과 같은 상징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먹사들 있나?

없어.

주석가?

없어.

신학자?

없어.

신천지? 이제 막 시작했는데 걔네들은 그냥 지들끼리 놀게 당분간은 그냥 놔두고. 걔들도 본전은 뽑아야지.



다니엘서?

다니엘서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가 상징하는 의미를 이해하는 먹사 있어?




뭐 좀 알고서 떠들라고.

먹사들 다니엘서 가지고 설교할 때에 대부분 세 친구 이야기나 앞부분만 가지고 이야기 하지?

그리고 나머지는 평생을 가도 설교는 커녕 성경공부 때도 가르치지 않지. 신학교에서도 안 가르쳐. 다니엘의 꿈 해몽이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 목사들이 가르치는 것 봤어? 그 꿈 해몽도 모두 상징적인 의미들이 들어있는데 왜 그것을 말하지 않지? 모르니까.

다니엘서의 기자가 꿈을 기록하고 다니엘의 해몽을 기록했으면 문제와 답을 모두 가르쳐 준거잖아. 그럼 문제를 풀어서 다니엘과 동일한 답이 나올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사실 신학교에서는 성경을 원래부터 안 가르치지기도 하고 걔네들이 가르치는 것은 목회학 쪽이지 성경이 아니야. 지들 기득권을 이어 나갈 먹사들만 키워 내보내면 그만이야. 그리고 교수라는 넘들도 성경을 가르치고 싶어도 지들이 아는 게 없기도 하고 가르칠 필요를 못느껴.

한국의 보수 신학교 교수들 강의하는 것 보면 에라이~~


정말 신학 좀 한다고 하는 외국의 신학교에 가서 보면 한국의 신학교는 학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어.

도마복음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을 때 한국의 한 신학대학원장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이건 학자가 아니라 보수기독교의 꼬붕이 하기에도 챙피한 소리를 하더라고.






계시록도 마찬가지고.

왜 그런지 알아? 그 내용을 해석을 못 하니까.

그리고는 다니엘서가 어쩌고 계시록이 어쩌고 잘 아는 척 떠들지.

웃기지 말아.

어디 다니엘서와 계시록뿐인가.

이사야, 예레미야 그리고 에스겔을 봐봐. 몇몇 구절만 가지고 설교는 해고 그 안에 상징으로 가득한 부분은 입 밖에 꺼내지도 않아. 모르니까.


오경은 어떻고?


그러면서 뭐라고?


웃기고들 있네.


계시록은 교회에서 가르친대로 겁먹지 말고 당시의 상황에 자신을 투영해서 잘 생각하면서 읽어보라고. 단어 하나하나의 상징을 몰라도 그 단어에 어떤 상징이 들어있을 것이라는 것만 상상하면서 읽어도 최소한 느낌은 온단말이지.

계시록의 저자가 이야기를 끔찍하게 써서 무섭게 들릴지 몰라도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동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연상하면서 읽으면 전혀 무서운 책이 아니거든.

계시록에 심판과 종말이 있다고?

웃기지 말라고 해.

구약을 보면 심판이나 종말에 관하여는 파리 똥만큼의 단서도 찾을 수 없다고.

그런데 구약의 사상을 이어오는 신약시대의 유대인 기자가 종말과 심판을 이야기해?

미친 넘들.

신약에는 희랍철학의 이원론적 사고 때문에 구약의 세계관과는 다른 해석이 깊게 기독교의 철학적 배경을 형성했다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어?

미래, 예언?

앵무새 놀이 하려면 수준이 통할만한 동네에 가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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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8
박창진 (42.82.71.52)
2013-07-23 11:54:31
안쓰러워스리...
요한계시록 풀이에 대한 얼마나 읽었다고 위의 글을 저렇게 자신있게 쓰는 것인지...
아무리 교회가 요한계시록 풀이에 있어서 잘못된 전제와 방향으로 엉뚱하게 풀이한 면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그런 중에 옥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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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23 13:41:42
옥이 있다고?
그래? 그럼 그 옥이 뭔데?

옥이 있다면 인간에게 무슨 유익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무슨 유익이 있었지?

기득권을 잡고 있는 기독교에서 사람들에게 공포심이나 조장하는 목적으로 사용된 것 밖에 뭐 다른 유익이 있었나?

세상에는 종말이 올테고 그 종말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니 예수믿으라는 협박 용으로 계시록을 사용한 게 옥이라고?

계시록이 없어도 착하게 살 사람은 얼마든지 착하게 살 수 있는게 이 세상이라고요. 그런 사람들 겁주면서 욕망을 채우는 종교 장사꾼들이 바로 당신같은 먹사라고요.

종말적 사상은 계시록이 있든 없든 언제나 인류와 함께 있었거든?

그런 종말론적 사상에 계시록을 들이대는 것은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으면서 마치 내가 차려놓은 밥상처럼 자랑을 늘어놓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입만 열면 한다는 소리가...

구체적인 사실은 하나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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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4
최Ray (211.55.117.85)
2013-07-22 15:13:58
목사님들은 성경 해석을 못해서

년 52주마다 52개 같은 설교를

해년마다 반복하고 은퇴 하시는구나.^^

심심하면 정치이야기 신문기사이야기 군대 이야기 집안 이야기

이제야 주일설교 말씀 이해가 됐어요.

'지나가다'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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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박창진 (1.220.135.107)
2013-07-22 13:13:43
한번 삐딱선을 타면 대책이 없습니다.
내리 고고만을 외치면서 나아가니요.

글을 기록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에게 그 글에 대해 배운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자신들이 배운 바에 대해 기록한 것이 있고 교회 역사를 통하여 전승되는 것에 대한 의식이 없으니
지금 이 시점에서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앞세워 소설을 쓰게 되는 것이지요.

과거의 사람들은 과학적 지식에 있어서 지금의 사람들과 차이가 나는 것일 뿐이거늘 그들이 듣고 배운 바를 기록하는 것에도 무슨 대단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몰아가면서 말입니다.

서울 가보지 않은 놈이 더 큰소리 치는 격이지요.

그 시대 사람들이 직접 경험한 바에 대한 기록을 완전히 무시하고서 글을 적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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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3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22 14:20:00
뭔소리 하는겨?
교회 역사를 통해 전승된 것에 대한 의식?

교회의 역사가 어떤 건지 알고나 하는 소린겨?

무식하기는...

그 시대 사람들이 직접 경험한 바에 대한 기록이라고?

웃기고 있네.

뭘 경험해? 용이 지하에서 용트림하고 올라오는 것을 경험했단 말여?

이건 한 마디로정신병자의 소리여.

한번 삐딱선을 타면 대책이 없다고?

맞아.

그러니 이 천년 동안 삐딱선을 탔으니 대책이 없는건 누구겠냐고요?

교회의 역사? 그리고 전승?





먹사다운 발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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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3
삼청교육대 (210.96.84.241)
2013-07-22 10:37:27
상태형
상태형 왜 이래 약먹었어 갑자기 괴물 이야기를 꺼내면서 반미와 영화이론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더니 갑자기 묵시문학이야기를 꺼내면서
성경은 미래에 대한 운명을 예언하지 않았다는로 끝을 맺는데
최소한 내가 무식한지는 몰라도
좀더 쉽게 설명해 줘야지 영화평론 괴물을 단순하게 반미 어쩌고 하더니
끝에 뭐 소리를 하는지 이해못하게 끝을 맺잖아

상태형 요즘 정말 왜 이래
솔직히 무당될려고 신이 내린사람같아
앞뒤 두서가 없이 뭔 소리를 할려는것인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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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6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22 14:21:23
당신도
뭔소리 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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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삼청교육대 (210.96.84.241)
2013-07-22 15:15:05
지나가다가
자니가다님 싸가지는 옥션이나 중고나라에 팔아먹었나요 말 싸가지 업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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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22 05:25:31
댓글을 보니
당당뉴스에는 똥파리떼가 군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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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이사야 (121.129.19.162)
2013-07-22 20:45:15
심심하나봐......유...삼청에 다녀오면
맞아요 또라이 똥파리가 군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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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Philip Im (70.62.49.64)
2013-07-21 08:22:24
오늘날에는 더 이상 예언이 없습니다.
주어진 예언이 성취되는 일만 남았습니다.
지금도 예언한다면서 떠드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도 자신들의 예언이 20%정도 맞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예언하는데 20%정도라니요!
아마도 미혹의 영이 준 예언일 것입니다.

묵시의 의미를 윗글에 나온대로 살펴볼 때
"중요한 진리를 감추어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중요한 진리'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묵시문학이
"기록된 그때 당시의 하나님의 뜻을 같은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도입된 독특한 문학적 방식"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묵시문학에 대한 또다른 견해로서
그 뿌리를 구약의 예언운동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 예언 운동이 발전하여 종말론을 형성하였다고 봅니다.
포로 후기 공동체에서 그것을 급진적으로 변형시켜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서 새로운 해답을 주려고 한 것이 묵시문학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이 포로 후기 시대에 여호와 신앙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긴장과 대립과 투쟁의 역사로 간주되는데
여기서 시작된 묵시문학은 그 당시 신앙인들에게 현재에 대한 그들의 행위와 결단에 따라 장차 임할 여호와의 미래적 구원에 관해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심판, 대파국의 시기를 말합니다.
이로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여호와 신앙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하는 하나님의 우주적 구조 속에서 비로소 이해된다고 말합니다.

이런 묵시문학은 미래가 현재와는 상관 없는 전혀 다른 마지막 때를 선언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시야를 넓게하여 보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종말을 준비하는 현재의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한다면
묵시문학은 단순히 당대의 불의에 저항하는 글이 아니라
그 글에서 제시하는 결국이 대심판이요 구원임을 알 것입니다.

우리의 현대시 가운데 저항시를 보면
당대의 불의에 저항하고 있지만
그 불의는 형태의 변이를 거쳐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저항시의 내용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혹 불의의 끝을 제시하였다면
그 언젠가 대심판이 있으리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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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0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22 14:22:30
당신은
낄 자리가 아니라고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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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2
최Ray (220.118.20.85)
2013-07-21 12:52:32
사도인 요한은 요한게시록 기록 했다.

선지자는 사명을 어떻게 감당 할까?

더 이상 예언은 없다는 생각은 위험 합니다.

절대로란 단어는 부담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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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최Ray (220.118.20.85)
2013-07-21 21:42:52
2000년 전의 예수님 제자 사도들의 행전은

성경책에 기록은 안되지만

지금도 무명으로 동일하게 행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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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포이멘 (183.109.98.59)
2013-07-20 18:02:39
성경은 미래의 운명을 예언하지 않았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경륜이 민주화임을 압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로 나뉜 계급화가 아니고 일인에 의한 교회정치가 아니라
공동의 교회정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경제체제로 자본주의는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특히 맘몬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는 절대 아닙니다.
경제체제는 스페인 몬드라곤에서 이루어지는 협동조합을 생각합니다.

성령안에서의 민주주의와 협동조합의 하나님 나라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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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이런 똥자루 (121.170.246.98)
2013-07-20 16:19:51
말 같지도 않아서
이런 말 장난을 하느니 잡초나 하나 뽑으시오. 에라이. 당신이 잡초나 알어.... 책상에 앉아서 떠드는 것들 보면 화가 나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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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2
이사야 (121.129.19.162)
2013-07-24 03:41:15
류목사가 책상에 앉자서 떠드는 사람이라고........
그런 미친 소리를 하는 그대를보니...개독의 본질이요 가식과 위선이 가득한 자로다.........달밤에 삽질하는구나....그대는 머리로 입으로 예수를 괴롭게하는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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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똥자루에게 (108.198.225.141)
2013-07-21 00:20:22
썩은 먹사들이 젠체하며 던져주는 설교들이나 개가 똥 쳐먹듯이 앗있게 삼키는 너에게는 이런 제대로 된 말들이 장난으로 들리겠지. 한심한 눔. 니네 먹사에게 집문서난 니 와이프 몸뚱아리나 다 바칠 사람이구먼 너는... 더이상 속기전에 정신 차리는 것이 너에게 낮지 않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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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0
샛강 (211.187.2.91)
2013-07-21 10:16:48
이 사람 정신 병자 아니야?
댓글 단 사람이 어디 목사 얘기를 했습니까? 예언에 대해 반론한 것 같은데,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신경질을 내고 딴소리를 하고 있습니까? 먹사니 집문서니 와이프는 하는 것은 왜 나옵니까? 오늘날 교회가 문제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 전체가 문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 여기에서 안티기독교를 조장하고 있습니까? 교회를 비판하더라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비판하세요. 목사를 비판하더라도 목사가 회개하고 목사들이 바로 서기를 위해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세요. 사랑하는 마음도 없는 것은 비판할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잣대로 떠드는 것은 그저 교회를 분열시키고, 교회를 파괴하는 행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사람 아무래도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들어온 안티세력인듯 하며, 무례하게 하는 행위들을 과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아이피 주소로 달리는 댓글을 예의주시할 것임을 경고합니다. 너무 심하지 않나요? 자기 의견을 마음껏 개진할 수는 있어도 이런 식으로는 이 신문 자체가 불필요한 것입니다. 보수든 진보든 누구든지 들어와서 의견개진하고 통합을 이루어내기 위해 당당뉴스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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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
이사야 (121.129.19.162)
2013-07-20 20:36:58
말같지 않은 말은
대형교회 먹사들의 전유물이다......세습을준비하는 10군데가 넘는 대형교회먹사들이 자신을 합리화 하기위하여 말같지 않은 말을 할뿐이다...이땅에 타락한 1.2위가 정치인들이 차지하고있다 그네를포함..3 번째가 종교라는 사실을 그대는 아는가 그중 개독교가 약6.70%를 차지하고있음을 알아야 할것이다...똥자루님 회게 하십시요.그대가 마른잡초는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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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6
최Ray (220.118.20.85)
2013-07-20 20:52:53
'이런 똥자루'님하고 '이사야'님하고

같은 마음으로 글을 쓰시 것 같은데

'이사야'님은 왜 '이런똥자루'님에게 쓴소리를 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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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이사야 (121.129.19.162)
2013-07-22 20:50:23
똥자루에게...와
이런똥자루.........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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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최Ray (220.118.20.85)
2013-07-20 17:34:32
잡초.!!!

아무도 찾지않는 바람부는 언덕에
이름모를 잡초야 한송이 꽃이라면

향기라도 있을텐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네

발이라도 있으면은 님 찾아갈텐데
손이라도 있으면은 님 부를텐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가진게 없네
아무것도 가진게 없네

아무도 찾지않는 바람부는 언덕에
이름모를 잡초야 한송이 꽃이라면

향기라도 있을텐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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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
포이멘 (183.109.98.59)
2013-07-24 12:05:11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잡초도
예수님께서는 부르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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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참빛 (24.141.4.52)
2013-07-20 14:09:43
할렐루야~~ 입니다.
류목사님과 저는 말없이도 무엇인가 통하는 것이 확실히 있는가 봅니다. ^^

묵시문학에 대한 오해가 너무커지고 있는 것 같아서
최근 박창진 목사님 컬럼에서 댓글을 통해 계시록 묵시문학을 언급하면서
이는 사실이 아니라 진실을 말할 뿐이고
로마제국의 핍박에 대한 당시 어느 한 그리스도인의 저항시라고 했었습니다.

묵시문학이 그렇습니다.
감추어진 상징적이고 풍유적 비유적인 표현을 써도 아는 사람들 끼리는 그게 무슨 말인지를 다 아는 그런 기법을 묵시문학에서 사용하는 것이죠.
자기들끼리만 알 수 있게끔 하여,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제국의 몰락을 꿈꾸며 인내하라 하는 내용이지요.
그러나 미래에 대한 예언은 결코 아니었죠.


목사님들이 주일설교를 하실때
그의 설교는 어디까지나 그 교회 회중을 두고 하는 것이지
그 설교의 대상이 2천년 후에 있을 미래의 먼 후손들을 상대로
지금 하는것이 아닌것과 같습니다.

미래가 어쩌구 하면서 근거없는 온갖 상상과 점을 쳐대는 신천지를 비롯한 기독교의 수많은 형제 자매들이여!
이 글을 읽고서 묵시문학이 무엇인지를 이제 밝히 깨달으셨으면
계시록을 비롯한 다니엘과 에스겔을 당시 상황을 맞추어 보며 역사적인 눈으로 다시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보편적이고 상식이 통하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거듭나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언이니 하는 그런 쓸데없는 것에 이제 부터는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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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4
뭔소리 하는겨? (121.170.246.98)
2013-07-20 13:12:45
물론 미래의 운명을 결정짓지는 않았지.이 사람은 예언도 묵시도 모르는사람이구만...
예언은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도 하는 거야. 자식을 보면서 "너 그렇게 살면 망한다. 너 그렇게 하다가는 대학 떨어져. 너 그렇게 하다가는 인생 종치는 거야." 아직 미래는 오지 않았지만, 부모의 눈에는 스승의 눈에는 보이기 때문에 충고하는 그 충고가 바로 예언이야.....
다니엘도, 요한계시록도 감추어진 상징으로 이야기했지만, 심판이든, 절망이든, 희망이든 모두 미래에 대한 이야기 아니고 무엇인가? 물론 그 미래를 위해 현재 어떻게 살아야 하는 명확한 충고가 담겨져 있는 것이지.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무슨 소리야. 우리의 삶 자체가 현재와 미래와 과거가 다 묶여 있는데 왜 따로 분리해서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는게 뭔 소리여? 사람이 어찌 과거 없이 현재가 있으며, 현재 없이 어찌 미래가 있나? 다 관련이 있는 것이지.. 현재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그게 미래와 관련이 없는 게 아니고, 미래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현재와 무관한 것이 아닌데,,,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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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
교장 (211.55.117.85)
2013-07-22 09:57:40
'뭔소리 하는겨?'님은 목사가 아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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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22 05:30:13
뭔소리 하는거냐고?
알아들으면 그딴 소리는 안하지. 못 알아들으니 뭔소리 하느냐고 되묻는 것 아닌감?

다니엘과 계시록에 심판이 있다고?

이야 말로 뭔소리 하는겨?

심판?

뭔 놈의 심판? 야구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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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익명 (108.198.225.141)
2013-07-21 00:13:32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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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최Ray (220.118.20.85)
2013-07-20 23:05:28
이론으로 간접경험은 체험 할 수 있지요.

직접 체험하면 위 글을 내 세울 수 없지요.

내가 가르쳐 드리지요.

교회안에는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자, 목사, 교사가 있지요.(에베소서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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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최Ray (220.118.20.85)
2013-07-20 23:21:07
목사는 하나님 앞에 4번째 입니다.

첫번째로 생각하니

교회에서 문제가 발생 합니다.

정신 차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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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22 15:11:58
목사가 4번째라고?
그럼 장로나 집사보다 주일학교 교사가 높다고? 장로, 집사, 권사, 전도사 강도사는 아예 이름도 없네. 성가대장은 몇위인고?


목사가 4번째라고?

한글성경말고 헬라어 성경을 보면 목사라는 단어는 아예 없는데 그럼 그리스에서는 목사가 개취급 당하나?

설마~


하기야 개만 못할 수도 있지. 한국에서 하던 그딴 식으로 외국에서 먹사짓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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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최Ray (211.55.117.85)
2013-07-22 15:17:05
목사란 단어 목사님이 만드신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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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최Ray (211.55.117.85)
2013-07-22 15:30:03
정신이 혼미 할 때는

목자가 예수님 같고, 목사가 예수님 같고

주일 설교 무식하게 헷갈려.!!!

헷갈리게하는 것은 사탄의 장난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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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최Ray (211.55.117.85)
2013-07-22 16:21:02
'복음 전한 자' 가

목사보다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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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최Ray (211.55.117.85)
2013-07-22 16:31:12
목사님들이 '복음'이 뭔지는 알까?

이론으로는 100점 맞겠지.

그러나 복음을 모르고 설교 할 수 있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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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
최Ray (211.55.117.85)
2013-07-22 16:33:54
멋 모르고 교회 따라온 개구리가

'복음'이란 단어에 은혜 받아서

개구리의 사명 '복음'을 전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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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8
최Ray (211.55.117.85)
2013-07-22 16:52:51
결론은 '피차 겸손'하라는 겁니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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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
익명 (220.118.20.85)
2013-07-20 22:50:59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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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9
익명 (220.118.20.85)
2013-07-20 18:46:08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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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0
익명 (24.141.4.52)
2013-07-20 14: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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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Ray (220.118.20.85)
2013-07-20 12:26:03
지진, 화산 폭발, 지각이동, 마그마,

쓰나미, 수마, 장마, 태풍

산사태, 대륙 침하

이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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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상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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