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류상태칼럼
하나님은 기독교인에게 특혜를 베푸시지 않습니다한국 교회 교우님들께 드리는 류상태의 주일편지 - 2013년 7월 14일
류상태  |  sham57@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3년 07월 13일 (토) 07:23:50
최종편집 : 2013년 07월 14일 (일) 04:30:38 [조회수 : 4747]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장마가 반도를 오르내리며 많은 비를 뿌려 곳곳에 크고 작은 피해를 내고 있습니다. 교우님 가정에는 피해가 없는지요. 지난주에는 항공기 사고 소식으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승무원들의 침착한 대처로, 또한 승객들의 질서정연한 협조로 사망자가 많이 나오지 않아 불행 중 다행입니다. 최선을 다한 승무원들에게, 또한 승무원과 함께 다른 승객의 대피를 도운 아름다운 분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이런 불행한 일들을 겪으면서 우리 예수사람들이 냉철하게 인식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햇빛과 비가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고 내리듯이, 사고와 재해 역시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지 않고, 또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종교인과 비종교인을 구별하지 않고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이런 재해문제와 관련하여 교우님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1. 하나님은 ‘선택된 자녀’에게 특혜를 베푸시는가?

 
먼저 오늘의 주제와 관련하여 가슴 아팠던 기억을 하나 나누고 싶습니다. 그날은 며칠 전부터 중부지방에 내린 폭우로 낮은 지대에 있는 건물들이 물에 잠기는 피해를 보았습니다. 설교를 맡은 목사님 동네에도 피해가 있었나봅니다. 목사님은 주변의 건물이 모두 물에 잠겼지만 자신의 집에는 물이 들어오지 않았다며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진 목사님의 설교는 택하신 자녀들을 돌보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피해를 본 이웃들에 대해 언급하거나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자는 제안은 없었습니다. 이웃들은 홍수로 피해를 보았는데 자신의 집은 피해를 면하게 해주셨기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한다는 설교를 청중들도 별 다른 거부감 없이 듣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택하신 자녀들에게 특혜 베풀어주시기를 바라는 신앙은 우리 한국 교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입시철이 되면 새벽기도회는 부흥기를 맞이합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의 마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식을 위해 기도한다면,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고,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건강을 잃지 않도록, 그리고 노력한 만큼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하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새벽기도회에 참여하시는 부모님들 중에는 그런 당연하고 미지근한(?) 기도로는 만족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여 대학 이름을 명시해가며 그 대학에 꼭 합격시켜 달라고 기도하시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학입시가 공부가 아닌 기도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부모님의 그 간절한 기도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자녀가 합격하려면 정당하게 노력한 누군가가 대신 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2. 슬픈 추억
 
1980년대 후반, 서울의 어느 여자중학교에서 교목으로 일할 때였습니다. 저는 작은 승용차를 이용하여 안양 외곽에서 서울 중심부로 출퇴근하였습니다. 그때는 안전띠 착용이 법적으로 의무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갑갑하다는 이유로 안전띠를 매지 않았고 동승자가 매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운전할 때마다 늘 안전띠를 맸고 동승자에게도 매도록 자주 권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오래 전의 일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때 겪었던 슬픈 일이 지금까지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수업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장로로 시무하시는 선배 선생님 한 분을 방향이 같아 모시고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늘 그랬듯이 안전띠를 맨 다음 선생님께도 매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목사님! 목사님께서 운전하시는데요.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뭐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은 종일 슬펐습니다. 선생님은 매우 순박한 믿음을 갖고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많은 교우님들이 그러신 것처럼 ‘목사는 하나님의 거룩한 종’이기에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서 특별한 관심과 사랑으로 지켜주실 것이라는 그 믿음 말입니다.
 
목회자를 하나님과 교우 사이에 존재하는 신성한 인물로 받아들이는 한국 교회 교우님들의 순박한 믿음으로 인해 당시 서른 전후의 젊은 교목이었던 저도 많은 특혜(?)를 누렸습니다. 부모님 연배 되시는 선생님들로부터도 늘 존댓말을 들었으며 깍듯이 예우를 받았습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물론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늘 교장 교감 선생님과 함께 상석에 앉는 불편(?)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목사라는 이유로 특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도 목사와 평신도를 구분하고 차별(?)하신다면, 저는 하나님을 공평하고 정의로우신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없음은 물론, 사랑의 하나님으로도 고백할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생명이 소중하여 운전할 때마다 돌보아주시는 하나님이라면 누가 운전해도 똑같이 돌보아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불꽃같은 눈으로 당신의 자녀들을 지켜주시는 분이라면, 목사만이 아니라,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생명들을 똑같이 사랑하시고 지켜주셔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만유의 근원이시고 존재하는 모든 것의 어버이이시니까요.
 
하지만 만일,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들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세세하게 돌보아주시는 분이라면, 또한 어떤 일도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면,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사고나 재해가 닥치지 않도록 지켜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아무리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는 분이라 하더라도 교통사고나 질병 또는 자연재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3. 택함 받지 못한 자에게 징벌을 내리시는 하나님?

 
우리 기독교에 스며든 왜곡된 신앙은 ‘택하신 자녀에게 특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넘어 ‘택함 받지 못한 자에게 징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으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재작년 봄에 이웃나라 일본이 지진해일로 큰 재난을 겪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지각변동에 의해 발생한 자연재해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런 벌을 내리셨을까?”라는 질문을 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우리 세상사에 일일이 관여하셔서 무슨 일이든, 어떤 일이든, 다 하나님께서 일일이 지휘하시는 가운데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들 중에도 이런 신앙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당시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은 설교시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 국민이 신앙적으로 볼 때는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우리 한국은 일본을 봐서 물리적인 지진보다 거룩한 영적 지진이 일어나야 될 때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한겨레신문, 2011년 3월 14일).
 
우리가 지금까지 교회에서 배운 바에 의하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며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또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섭리하고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성서의 예수님도 “공중을 나는 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심으로 우리의 이런 믿음이 옳다고 지지해주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믿음이 좋은 훌륭한 목사님이나 교우님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든가, 혹은 불치병에 걸려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렸지만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하게 된 경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믿고 고백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으십니까? 그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편히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요?
 
태풍이나 지진해일이 하나님께서 직접 일으키셨거나 하나님의 허락 하에 발생한 것이라면, 우리가 과연 그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해도 되는 것일까요? 정말로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주관하시고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보살펴주시는 분이라면, 그런 자연재해로 세상을 떠난 수많은 사람들의 고귀한 생명에 대해,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셔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지난 2004년 동남아에 지진해일이 발생했을 때, 어느 유명한 목사님은 그 곳에 무슬림이 많아서 하나님께서 징계하신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사실 이슬람교가 악한 종교라는 생각은 무서운 편견에 불과하지만, 혹 그 목사님의 신앙관이 옳다고 가정하더라도, 이슬람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까지 쓸어버린 행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 지진해일로 죽은 사람이 거의 30만 명에 달하는데 그 중에 독실한 기독교인은 하나도 없었을까요? 그 많은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징계로 갑자기 죽어야 할 만큼 악한 사람들이었을까요? 만일 이교도를 쓸어없애기 위해 기독교인이나 다른 죄없는 사람들이 함께 희생된 것이라면,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으로 고백해야 하는 걸까요?
 
그 목사님은 다음 해 허리케인이 미국 동부지역을 강타했을 때도 그 지역에 동성애자가 많아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시려고 허리케인을 보낸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허리케인으로 생명을 잃거나 다치고 집을 잃은 사람들은 모두 동성애자였을까요? 죽은 사람 가운데는 어린아이와 갓난아기도 있었는데 그들은 장차 동성애자가 될 아이들이었을까요?
 
그런 식의 무모한 설교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인격적이시며, 세상의 모든 것을 섭리하고 주관하신다.”는, 또한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는 기독교의 전통 교리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한 언제든 재발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리에 매이지 말고 일어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진해일이나 태풍이 발생하는 것은 하나님이 누군가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일으킨 사건이 아니라 그냥 자연현상일 뿐입니다. 운전하다 교통사고가 나는 것 또한 신앙적인 죄와 관련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개 부주의와 관련해서 일어납니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을 의학적으로 찾지 않고 신앙의 부족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4. ‘자기중심의 신앙’을 넘어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리가 가르치는 그대로 믿어온 하나님은 ‘이천 년 전에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인식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인식한 하나님을 지금도 그대로 믿는 것은, 지난 이천 년 동안의 지식과 과학의 발전을 모두 무시하고 그 옛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기중심의 신앙’을 넘어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으로 만들어 믿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의 뜻을 정해 놓고 그 뜻에 맞추어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써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우리 인생을 맞추어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TV를 볼 때 우리가 정한 채널에 맞추어 방송을 보내달라고 방송국에 요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에서 KBS1-TV를 보려면 채널 9에, MBC-TV를 보려면 채널 11에 맞추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채널 3으로 MBC를 볼 테니 우리 집으로는 채널 3으로 보내 달라.”고 MBC에 요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의 광고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암을 이겨낸 기적보다 암을 예방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교우님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건강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기도만 열심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세계, 즉 자연의 순리를 따라 사셔야 합니다. 과식을 절제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며, 욕심을 다스리고, 마음을 편하게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 즉 순리는 이미 정해져 있으며 어느 누구도 그것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맞추는 마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과 세상에 부여하신 뜻을 우리가 찾고 거기에 우리의 채널을 맞추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누구나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깨어 관찰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질서를 잘 이해하고 하나님의 순리에 우리 자신을 맞추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개인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이웃들과 더불어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아무리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도 오염된 세상에서는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요인이 주변에 산재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들과 함께, 때로는 사회가 힘을 모아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밝고 정의로우며 깨끗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환경보호운동이나 사회정의를 위한 활동, 이런 일들은 우리 기독교신앙과 무관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유지하고 가꾸는 일, 즉 창조질서를 회복하고 보존하는 일이므로 우리의 신앙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지구마을 모든 이웃들과 더불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교회에 출석하거나 기도하는 일 못지않게 이런 일들도 해야 합니다.

류상태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100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57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박창진 (42.82.71.52)
2013-07-19 11:20:33
사과를 드립니다
전 지나가다가 님과 이스마엘 엑스가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태도가 같았기에 글의 논조도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계속적으로 사이트를 방문하여 글을 읽은 이들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지나가다가 님의 댓글에 대해 누군인지를 알겠다는 내용을 적고난 후에 이스마엘 엑스가 다시 글을 적었습니다.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도록 하기 위한 등장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만희의 영생, 성경적인 근거가 있다면'이라는 기사에 다는 댓글들을 보면서 안티 기독인이라는 면에서는 같지만 글의 논조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나가다가 님은 참빛님의 질문과 같이 피키님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합니다.

서로 다른 인물을 동일인으로 치부하였던 것을 사과드립니다.
서로 다른 인물을 동일인으로 치부하여 뭉텅그려서 대응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를 드립니다.
리플달기
0 0
참빛 (24.141.4.52)
2013-07-19 12:16:04
본인이 밝히지 않는 이상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겠지만, 제가 볼 때에 지나가다가 님과 피키님은 서로 다른 분들 같습니다. 다만 두분 모두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임에는 틀림없어 보이고, 논리가 매우 정연하며 이성적인 분들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저도 지나가다가 님이 참 궁금합니다. ^^
리플달기
0 0
익명 (112.222.123.131)
2013-07-18 12:27:15
네 박창진 목사님 그럼 수고하세요.^^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리플달기
3 12
박창진 (42.82.71.52)
2013-07-19 11:41:45
열심히 사는 것은 보기에 좋네요
그런데 그려면 뭐해요? 신학이 엉망인데요.
여기선 신학에 관한 내용으로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고요.
과학도 신학과의 연관성 안에서 논하는 것이고요.

내가 읽는 책이 거의 대부분 신학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고요.
고고학이든지 고대 근동의 문화이든지 과학이든지 간에요.
지극히 당연한 것을.

물론 인문학 책도 두루 섭렵하면 좋다고 생각하는데, 손이 잘 안 가네요.
내 전공과 관련된 것만 해도 벅차서리.

그래도 열심히 사는 모습이라 여겨져서 보기는 좋네요.
무지한 신학 문제가 가지고 신학을 아주 열심히 연구한 사람에게 달려들지 말고요.
쪽 파는 것 밖에 얻는 게 없을테니까요.
리플달기
0 1
박창진 (1.220.135.107)
2013-07-17 14:18:27
이스마엘에게 미리 말해주자면
너와 같은 사고로는 절대로 나와의 논쟁에서 이기지 못한단다.
대들어봐야 결국 최종 결론은 돌아 돌아 ~ 돌아가 되지.
이제까지와 같이.

난 네 주장 중에서 옳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바로 인정하거든.
네 주장 중에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서 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태클을 거는 것이고.

그런데 넌 마구잡이로 달려들거든.
보수신학을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틀을 가지고서.

그런데 어쩌나, 제대로 된 보수신학에는 옳은 부분이 상당하며 그것은 세계적인 석학들의 깊은 연구 결과이거든.
그것을 제대로 모르는 보수신앙인들이 엉뚱한 소리를 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서구에서 보수신앙인이지만 비난과 조소가 아니라 역사와 과학과 시대를 통찰하며 본이 되는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단다.

네 눈이 좀 넓어지면 좋으련만...
리플달기
0 1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18 11:24:34
보수신학의 옳은 부분이 석학들의 깊은 연구 결과란다
이 말을 듣고 어찌 웃지 않을쏘냐?

세상에 보수/진보 신학을 따지는 곳이 어느 나라인가? 한국과 미국 외에는 사실 없다고 보아야 한다.

보수신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자체가 어린 아이 수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는 증거다.

보수신학이 도대체 뭔지 나는 그것부터가 궁금하다.

근본주의나 복음주의는 들어본 적이 있어도 보수신학이라는 것은 신학에서 무엇을 말하는지...

불쌍한 양반...
리플달기
2 1
익명 (112.222.123.131)
2013-07-17 13:26:36
얼마 전에 나와 같이 일하는 여성도와 이야기를 잠시...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리플달기
2 8
익명 (211.211.101.185)
2013-07-17 23:20:56
거두절미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리플달기
5 2
그럴 마음이... (112.222.123.131)
2013-07-18 15:02:53
없는데?^^
.
리플달기
1 0
박창진 (1.220.135.107)
2013-07-17 14:04:07
돌아 돌아 ~ 돌아...
기독교인들의 행태가 다 옳다고 하지 않지.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하여야 하고 그렇게 하지.

그런데도 그것을 지적하는 너를 돌아 돌아 라고 부르는 이유는 뭘까요?
.
.
.




그것을 지적하니까 기분이 나빠서. 땡.
그것과 그것과 달리 잘못이 아닌 것을 구별하지 못하여서. 딩동댕.

"특히 '마이클 송' 선생에게조차 '난독증' 타이틀을 얻은 당신~!"
이런 글 적으면 네 주장이 옳다고 생각되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스스로 돌아 돌아 라는 말을 듣는 이유가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하고.
네가 네 사고에 맞지 않으면 네 마음대로 평가하는 것과 똑같은 모습인데 그것을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근거로 삼고 있으니...
원래 닮은꼴이라고 당연하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리플달기
0 1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17 14:46:00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 사랑 고히 간직하소서...



그러면 삶이 편안해질 것입니다.



정신 차리세요 (원하신다면)

내가 오랜 동안 당신의 글도 읽어보고 댓글도 읽어보았지만 당신은 그저 당신의 생각을 세상이 받아주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광기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이클 송과 이스마엘 엑스의 문제는 당신이 낄 정도의 문제가 아니고 당신은 툭하면 사고라는 말하는 것은 당신과는 걸맞지 않은 단어라고요.

먹사라면 최소한 류 목사 정도의 고민 정도는 하면서 열린 생각을 통해 세상과 예수를 보란 말이죠.

부러우면 진거라니까...
리플달기
2 4
익명 (112.222.123.131)
2013-07-17 12:42:15
어떤 개독이 과학에 대해서 말하기를...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리플달기
1 1
박창진 (1.220.135.107)
2013-07-17 13:58:16
신학을 모르는 인간이 신학을 말하는 것은 괜찮고...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지.
그게 옳다고 생각하진 않지. 당근.

그런데 아는 만큼 말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
근거가 제대로 제시되기만 한다면 문제 삼을 것이 없지.

우주와 생명의 시초에 대한 그 어떤 증명도 없는데,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

그냥 답변을 못하면 인정하면 돼.
그렇게 개긴다고 헛소리가 수용되는 것이 아니거든.
너같은 인생들이 함께 노는 곳에서야 지지를 받겠지만 말이야.

신학을 모르는 인간이라고 했지만 난 네가 읽은 신학책의 테두리 안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을 이해혀.
그런데 네가 모르는 내용까지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동을 거는 것이란다.
모르면 그냥 조용히 있으라고.
아는 사람이 그딴 소리 듣고 있으려면 피곤하거든.
리플달기
0 1
박창진 (42.82.71.52)
2013-07-17 10:59:00
정말 진짜 신기하기만 해요.
자신의 주장을 단 한번도 증명하지 못하면서 그것이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말입니다.

이 우주가 저절로 생겨났다네요. 가설만 있고 증명된 적이 한번도 없지요.
무에서 생명체가 생겨났고 사람까지 생겨나게 되었다네요.
무에서 어떻게 생명체가 생겨날 수 있는지 단 한번도 증명된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과학이라네요.
과학은 증명을 통해 확증된 사안을 다루는 학문인데, 가설만 있고 증명된 적이라고는 단 한번도 없는 주장을 과학이라고 하니...

정말 진짜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신앙일 뿐인데도 그 사실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지요.
그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왜 그 정도도 인지하지 못할까요?
하나님 없는 사람들에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정말 진짜 신기하기만 합니다.
리플달기
0 2
Philip Im (70.62.49.64)
2013-07-17 09:43:05
성도의 죽음에 대하여
사건 사고로 성도가 죽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이 계시다면
혹은 그 성도를 사랑한다면
왜 사고로 죽게 하느냐고
때로는 격앙된 어조로 말을 합니다.

그러면 성도들에게는 늙어 자연사하게 하는 것
아니 아예 죽지 않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까?

성도의 죽음에 대하여 딱 한가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그 성도의 역할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죽음이 마지막 역할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때에 그 성도를 부르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특혜입니다.

에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다 이루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직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이 땅위의 삶만 두고 보면
하나님의 주권적인 다스림을 생각지 않으면
사고로 성도가 죽는 것이 하나님이 특혜를 베풀지 않는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지요.


덧붙여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특혜를 베풀지 않는 근거로
사건 사고 같은 경우에도 성도의 죽음이 피할 수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히 대한다고 합니다.
다시말하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과연 모든 사람이 평등합니까?
NO!
하나님 앞에는 양과 염소가 구별되며
의인과 악인이 구별됩니다.
그 중간도 없고 모두가 의인도 아닙니다.
리플달기
0 4
Philip Im (70.62.49.64)
2013-07-16 07:07:23
무엇이 하나님의 특혜인가?
"하나님은 기독교인에게 특혜를 베푸시지 않는다"는 말은 일견 바른 말이다.
비와 햇빛이 모든 이들에게 차별없이 내리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아는가?
모든 이에게 내리는 햇빛이 사실 어떤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혜택이 아닌 것을.

그렇기 때문에 비와 햇빛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일반(?)혜택이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 비를 내리는 것은 그에게만 베푸는 특별(?)혜택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인(명목상의 기독교인이 아닌 실질상의 기독교인. 자기 스스로 기독교인이라 말하는 자가 아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가독교인)은 선택이라는 하나님의 혜택을 받은 존재이다.

하나님의 혜택이란 구원의 대열에 초대받고 동참하는 것이다.
이는 어느 누구나 누릴 수 잇는 것이 아니다.
그래야만 혜택이 아니겠는가?

혜택을 누린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속이는 자는
나중에 백보좌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다음과 같은 준엄한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리플달기
1 8
박창진 (42.82.71.52)
2013-07-16 08:58:48
문맥과 정황에 맞는 글을 쓰세요
위 글과 구원의 대열에 초대받고 동참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라는 것입니까?
거기에다가 심판 구절이라니요?
상대방의 글 내용이 어떠하든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댓글로 적을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글 내용에 부합되는 내용으로 찬성을 표하든지 아니면 반박을 하든지 하시기를 바랍니다.
리플달기
5 3
Philip Im (70.62.49.64)
2013-07-16 10:07:37
여전하시군요
박 목사님 글 읽는 솜씨

그 누군가가
"박창진군 글을 제대로 읽어라"고 충고한 것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의 특혜에 초점을 맞추고
진정한 특혜에 대해 정리했으며

본문을 잘 읽어보시면 알시겠지만
글쓴이는 확실히 종교다원적인 관점에서 인간 모두가 구원받는다고 주장하지요?
나는 진정한 하나님의 특혜를 받은 자만이 구원받고
누구나 구원받는다고 떠벌리는 자들이 주님 앞에 서서
주의 일을 했다고 하여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 뿐입니다.
리플달기
1 5
박창진 (1.220.135.107)
2013-07-16 15:47:06
위 글에 인간 모두가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있다고요?
어디에 말씀입니까?
제가 제 눈에 안경을 쓰고 읽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러한 내용을 못찾겠는데요.
혹시나 님이 님 눈에 안경을 쓰고서 읽어서 그렇게 읽힌 것은 아닌지요?
리플달기
2 1
Philip Im (70.62.49.64)
2013-07-17 01:59:47
글을 읽을 때
문자의 해석도 필요합니다. 기본이지요.
구절의 풀이도 필요하고 문맥에 따른 해석도 필수입니다.
목사님께서 성경의 어떤 구절을 음미하실 때 이 모든 것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 더 더하는 것이 글쓴이의 배경입니다.
환경적, 사상적 배경이지요.
성경 본문이 쓰여질 때 문화적 배경이나 글쓴이의 사상적 배경 같은 것 말이지요.

윗글을 쓰신 분이 누구입니까?
왜 제목이 '하나님은 기독교인에게 특혜를 베푸시지 않습니다'라고 했을까요?
단순히 평등을 말하고 있는가요?
물론 일상 생활 가운데서 기독교인에게만 특혜 베풀듯이 하나님께서 다스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날 때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같은 결과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구원에 있어서 특혜(이것이 하나님의 선택이겠지요)를 받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위글 전체는 무엇을 말하려고 합니까?
기독교인이 특혜를 받는다는 생각에서 환경운동이나 사회정의를 행하지 않나요?
이런 결론은 우리의 신앙을 속이는 말입니다.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요?
리플달기
0 5
박창진 (42.82.71.52)
2013-07-17 10:27:06
말은 많은데 주장의 근거는 없네요
"본문을 잘 읽어보시면 알시겠지만
글쓴이는 확실히 종교다원적인 관점에서 인간 모두가 구원받는다고 주장하지요?"
이 주장에 대한 근거는 님의 추측일 뿐이네요.
글쓴이가 그런 사람이니 그의 글은 언제나 그럴 것이라는 추측 말입니다.
조심하세요.
그런 태도는 사람 잡기 딱 좋은 태도이니까요.
리플달기
3 1
포이멘 (183.109.98.59)
2013-07-15 13:23:51
북한에 50만의 기독교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북한의 기독교인에 대해서도 특혜를 베푸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세 천주교에 의해 어거스틴의 교리를 따르지 않는다고
5000만 이상이 학살 당했던 초대교회의 전통을 따르던
기독교인에 대해서도 특혜를 베푸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기독교인에게 특혜를 베푸시지 않는다는 말이 맞습니다.
.
그러나 북한의 50만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북한을 찬양하여야 합니까?
과거 초대교회를 따르던 기독교인 5000만 이상을 학살한 천주교를 찬양하고
그들과 우리가 연합할 수 있습니까?

적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습니까?
적그리스도가 누구입니까? 바로 니골라당이 아닙니까?
세상을 계급화하여 착취하는 자들이 아닙니까?

이들을 찬양하고 이들과 연합할 수 없습니다.

북한의 체계는 종교와 권력이 합쳐진 천주교 체계의 변형입니다.
리플달기
3 1
삼청교육대 (210.96.84.241)
2013-07-15 11:48:54
상태형
6월달 갑자기 왠 뜬금없는 북한 찬양 발언 해서 사람들에게 분열을 일으키더니 오늘은 칼럼은 제 정신으로 돌아왔네 나도 상태형 발언에 동감하는데 다만 마지막에 환경보호운동이나 사회정의 활동을 해라고 하는데
형 그러면 예를 들어서 일부 진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4대강은 미친짓거리라고 하는데(상태형 성향으로 봐서 분명 4대강 반대할것은 뻔해)

요즘 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에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리잖아 그런데 이걸 가지고 시비거는 예수쟁이들은 못봤어 만약에 도로뚫기위해 멀쩡한 산을 파괴해야 하는것은 자연보호에 어긋난다 외치면 그놈 정신병자 아닌가 하는 세상이잖아
나는 솔직히 산을 파괴하는데에 반대하지만 지금 시대가 멀쩡산 산도 폭탄터트려서 없애는 시대인데 강에 시멘트 좀 발랐다고 4대강 욕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그네들에게는 4대강이 좋은지 나쁜지 친환경적인지 지랄인지는 상관없이 무조건 명바기가 하니까 특정세력이 하니까
싫은거야 사회정의 이딴게 필요없고

상태형이 이야기하는 환경보호나 사회정의라는것도 상태형 보기에
이게 환경보호가 아니라면 환경보호가 아니고 사회정의가 아니라면
사회정의가 아니라게 맞는말 아닐까

상태형 난 6월달 이후 형에 대한 기대를 접었어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면서 통렬한 자기반성 회개를 외쳤던
상태형은 사실 자기기준대로 자기생각대로 아무런 근거없이 지멋대로
예수를 이름을 팔아서 한국교회를 제멋대로 배설한 찌질난 남자라는게
내 생각이야

상태형

제발 정신차려

상태형은 대광고 종교의 자유를 외친 강의석을 두둔했지만 그후
공개적으로 나는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고 말했던 강의석을 향해서
강의석은 종교의 자유를 외친 숭고한 뜻을 배반하다
충고 한적이 있었는지
아니 그럴 용기조차도 없었겠지 어차피 상태형 마음속으로는 오만과
나만이 한국교회와 종교의 자유를 비판할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얻은뜻 마음속에 이미 자기만의 독선만 가득했는데 그속에서 다른
사람의 걱정어린 충고따위는 개소리로 들리겠지

상태형 제발 예수의 품으로 돌아와 나도 예수의 품이 어떤
느낌인지 모르지만
리플달기
1 4
박창진 (42.82.71.52)
2013-07-16 09:04:49
그렇게 사고가 굴러갈 수도 있네요
"지금 시대가 멀쩡산 산도 폭탄터트려서 없애는 시대인데 강에 시멘트 좀 발랐다고 4대강 욕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그네들에게는 4대강이 좋은지 나쁜지 친환경적인지 지랄인지는 상관없이 무조건 명바기가 하니까 특정세력이 하니까 싫은거야 사회정의 이딴게 필요없고"

이런 단견으로 살면 즐겁긴 하겠네요. 자기 생각에 빠져서 자기 만족 가운데 살테니까요.

4대강 반대자들이 개발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자들이라고 생각하는 근거가 무엇이지요?
난 4대강 반대자이지만 그런 사람이 아닌데요.
정말 산을 없애는 것이 꼭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것은 그것이 꼭 필요한 개발이 아니라 개악이기 때문이고요.
산을 없애는 것도 개악이라면 당연히 반대할 것이고요.

자연 보호 = 개발 반대
이것은 님의 도식이지 4대강 반대론자들의 도식이 아니랍니다.
리플달기
2 1
삼청교육대 (210.96.84.241)
2013-07-16 09:44:25
창친님 이렇게 사는게 즐겁습니다
저는 인간의 오만함 때문에 언제가는 큰 죄값을 받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지구 46억중에 인간이 지배했던 시대는 고작 하루도 안되는데 그 오만한 인간들이 그 장구한 오랜세월동안 이룩한 자연의 업적을 아무 생각없이 개발논리 돈 논리에 의해서 파괴하는 것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인간의 필요악때문에 자연을 이용하는것이 아니라 자연파괴를 위한 파괴입니다 지금은 그런데요 4대강 외치는 사람들은 90% 이상 왜 4대강이 나쁜지 그 이유조차 모르고 명바기 X 새끼 하면 자기배설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노무현이 했다면 보수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 인간생활에서 왜 개발은 안되느냐 오히려 반대논리를 펴서 노무현을 지지했을거에요 누무현이 좋다 명바기가 좋다 이게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인간의 대한 오만함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진보를 외치는 자들은 기본적인 철학없이 자기의 분노감을 인터넷에 배설하고 씨부리고 그런것밖엔 하지 않습니다
상태형을 한때 존경했으나 알고보니 그딴 부류라는게 마음이 아프죠
리플달기
3 4
평화롭기를 (121.129.19.162)
2013-07-17 23:20:32
측 은 지 심
그대가 누굴 존중하겠나....그냥 자신에게 충실하게나
리플달기
0 0
참빛 (24.141.4.52)
2013-07-16 21:30:39
잠깐 끼어들죠 ^^
진보를 외치는 자들은 기본적인 철학없이 자기의 분노감을 인터넷에 배설하고 씨부리고 그런것밖엔 하지 않습니다
-> 이건 진~~짜 아니다 싶은데요!!

내가 만약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면 어찌하겠습니까??
보수를 외치는 자들은 기본적인 이성없이 자기의 두개골을 열러 두뇌를 빼어내서 바닦에 뭉개 버리고 그런것밖엔 하지 않습니다.


삼청교육대님 참 바른 말씀만 하시길래 너무도 좋게 보았는데 오늘보니 편견과 아집으로 꾸왁 들어차 있구료~ 내 말이 심했나요?
리플달기
0 0
삼청교육대 (210.96.84.241)
2013-07-17 09:41:58
존경하는 참빛님
사실 박평일과 참빛님을 글을 매우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화록 개방문제를 아무 문제없다고 하시는것을 보고 놀랬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본 만큼 생각하고 판단하다고 합니다 저는 솔직히 합리적인 진보를 보지를 못했습니다 오프라인이나 온라인나
어디서던지 예를 들어서 4대강이 왜 나쁘냐 하면 갑자기 욕설을 하는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진보를 외치면서 돈에 노예가 되는 사람들도 너무 많았고요
보수는 대표적으로 돈에 매우 집착합니다 그런데요 저는 침묵하면서 돈에 집착하고 이중적인 보수도 많이 봤고 아무근거없이 내주장만 옳다고 하면서
토론하자고 하면서 안되면 거의 반말 배설을 하는 자칭 진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습니다 언제던지 자기의견은 이렇지만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던지 제말을 취소할 여유는 가지고 있습니다
리플달기
1 1
참빛 (24.141.4.52)
2013-07-17 12:15:13
고맙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삼청교육대님의 이런 진솔한 면이 무척 좋습니다.
저는 사실 진보도 보수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판단합니다. 한정된 분들께서 저에게 진보라고 몰아 부쳐서 어쩔수 없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지요. 맞습니다. 자기가 본 만큼 생각하고 판단하지요. 저도 예외는 아니고요. 그리고 상식선의 진보를 만나면 언제든지 하신말을 취소하겠다는 용기를 높이 삽니다. 앞으로 그런 분들 많이 많이 만나시게 될 겁니다. ^^
리플달기
0 0
박창진 (1.220.135.107)
2013-07-16 15:53:25
정황을 조금만 제대로 파악하였다면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을텐데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그분은 진보의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은 것이 아니랍니다.
파병 반대 등등 수많은 반대에 부딪쳤고 그렇게 힘이 약화되어 그가 구상한 국정도 제대로 펼쳐내지 못하였지요.
진보 진영의 사람들을 너무 우습게 생각하고 계시네요.
진보 진영의 사람들의 행태가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매도당할 정도는 아니랍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하지도 않겠지만 했다면 진보 진영은 파병 반대에서와 같이 그분에게서 등을 돌렸을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지지는 아예 없었을 것입니다.
리플달기
0 0
개혁본부 (72.196.234.24)
2013-07-16 10:56:25
개명을 하고도 여전하군요. 정치가 예수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펄펄 뛸 때는 언제고.
농촌생활 권장도 빈말이었구먼. 갑자기 상태형를
존경하고 있었다는 말은?

내가 당분간 옛 이름 빌려갑니다. 고맙소.
리플달기
1 0
삼청교육대 (210.96.84.241)
2013-07-16 12:42:19
개혁본부님
제가 지식이 부족해서 이말밖엔 할말이 없습니다
"약은 제대로 먹고 있습니까"
솔직히 말같은 소리를 해야 제가 뭐라도 이야기하죠
리플달기
0 0
Philip Im (70.62.49.64)
2013-07-15 08:48:33
단순함=순전함?
집에 전기가 나갔을 때 그냥 전기가 나갔구나 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두꺼비 집을 살펴보고 주변의 집들을 살펴봅니다.
그래서 불이 들어오지 않은 것을 보고 변전소에 문제가 있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맙니다.

그런데요. 심각한 경우 원자력 발전소가 문제가 생겼다고 합시다.
그것도 테러에 의해서 폭발하였다면 그저 테러에 의해서 폭발했다고만 생각합니까?
저 너머, 우리집 불이 나간 저 너머 어떤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테러가 있었구나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현상을 규명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인정하고 다스리심을 인정한다면 자연현상 너머
하나님의 뜻이 작동함을 인정할 것입니다.

어제 기사에 난 것입니다.
벼락맞은 일가족이 모두 다행히도 고막 정도가 파손되고 임산부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아버지는 "확실히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믿지 않는 자도 이런 현상 가운데 어떤 존재가 지켜줌을 인정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단순한 자연 현상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리플달기
0 2
박창진 (42.82.71.52)
2013-07-15 09:55:05
자연 현상으로만 치부?
그것을 자연 현상이라고 보지 않으면 어떻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위에 언급된 어떤 목사의 말처럼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인가요?

우주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허락하심이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곧 우주의 어떤 일이 자연법칙을 따라 발생한다는 것을 거부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위의 글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물론 이 부분에서도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일을 겪은 어떤 그리스도인은 엄청난 피해를 당하여 죽기도 하고 다른 그리스도인은 큰 피해를 당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하나님의 지켜주심이라는 잣대에 비추어서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참으로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리플달기
2 0
지니가다가 (71.234.154.98)
2013-07-15 14:52:03
우주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허락하심이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야훼가 뭘 허락하고 말고 해야는 그런 존재로 보이는가 보지요?

그 정도의 신을 섬기는게 바로 우상을 섬기는 거라고요.

허락한다는 것은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럼 허락하지 못할 일은 누가 계획하였다는 말인고? 우주에서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것도 야훼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그 런 우주를 창조했다고?

야훼가 그 정도 밖에 안되나?

먹사들 생각이 아무리 짧아도 이정도로 짧아서야...
리플달기
2 0
박창진 (42.82.71.52)
2013-07-16 08:53:18
먹통들이 나대기 좋은 세상이지요
참새 하나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며 성경의 진술이지요.
참새가 활에 맞아 땅에 떨어지거나 기운이 빠져 땅에 떨어지거나 그것은 하나님의 허용이라는 것입니다.
허용과 허락은 같은 말이고요.

여기에 '그 정도밖에'라고 말할 내용이 어디에 있다는 것이지요.

먹통들이 되도 않은 반론을 반론이라고 마음대로 제기할 수 있는 세상이긴 하지요.
리플달기
0 0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16 12:43:29
글쎄 이렇다니까
참새를 가지고 말한 예수의 말은 왜 상징적 해석을 하지 않는거지?
그럼 자살도 하나님이 허락을 내려서 자살하는건가?

신약을 가지고 이 천년 동안 기독교가 울궈먹었지만 아직도 통일된 해석이 없는데 누가 먹통이라고 하는지 원.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하는건가? 그럼 박 먹사의 꼴통 같은 소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한다는 얘긴데.

그럼 이게 뭐야? 왜 이딴 짓거리들을 모두 하락하는거지?

추주를 창조한 신이 할 일이 없어서 이런 짓거리들을 하락한다고? 웃긴다 정말.

인간에게 이성이 주어지고 이성에 따라 행위가 나타나면 그것에 다햐여 책임을 지는 상식적인 법칙이 있는데 하나님이 뭣하려 허락을 하고 말고 하나?

분명하긴 뭐가 분명해 내가 보기에는 하나님은 그딴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더구만.

자연재해가 나는 것을 하나님의 왜 허락을 하냐고요. 공연히 사람만 수십만명씩 죽게 하는 그런 자연재해를. 그냥 우연히 발생한 것이지.

하여튼 목사들 수준은 책에서 읽은 것을 넘어서지 못한다니까. 그것도 말도 안되는 신학책 나부랭이만 읽고서 말이지.

그러니 요즈음에 목사가 TV에 나와도 오락프로에나 나오지.
리플달기
2 0
박창진 (1.220.135.107)
2013-07-16 16:01:07
언제나 그 수준이니 이거야 원...
자연 법칙을 정하시고 그 법칙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 내지는 허용의 결과라는 말이 그렇게도 어려울까나...
하나님께서 그 자연법칙을 거스르고자 하신다면 자연법칙을 따라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이 그렇게 어려우세요.

우연히. 그것은 그대의 생각이고.
예수님은 그것을 우연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으며 나 또한 마찬가지라오.

목사 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대도 마찬가지라오.
자신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신학책 나부랭이.
신학책 읽어보기나 했을까?
읽어보기나 하고서 그딴 식으로 글을 적는다면 그 사고가 어떤 상태에서 이루어지는지 몸으로 보여주는 것일테고.

오락 프로에나 나오는 목사가 있지만 그게 목사 전체에 대한 평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그 사고에서 웬만하면 벗어나시옵소서.
상대방을 피곤하게 만드는 잘못에서 벗어나야지요.
아니 자신을 위해서라도.
리플달기
1 1
지나가랴고 했는데 (71.234.154.98)
2013-07-17 03:32:04
상대할 수준이 아니군
자연법칙을 하나님이 정했다 - 그걸 어떻게 단정하지? 그럼 그 자연법칙을 만든 하나님을 만든 또 다른 존재의 법칙은 왜 없을까?

자연의 현상이 법칙을 벗어나려고 하다가 하나님이 '이놈 하라는대로 해!'하면 허락을 못받았다고 생각해서 원래대로 돌아가는 모양이지? 법이 있다는 것은 법을 벗어날 가능성이 있기에 그 바운더리를 정한 것 아닌가? 그럼 이게 뭐야? 바운더리 밖의 것은 왜 필요한 건데? 자연도 자유의지가 있나? 먹사들의 생각은 항상 '왜?'라는 단어를 빼고 그저 배운대로만 생각하지. 신이 먹사들 머리 수준에서 놀아날 정도라면 그건 신도 아니지. 그냥 고무신 정도인게야. 그게 한국의 먹사들이 가르치는 신이고. 그런 신은 엿바뀌 먹으려 해도 엿장수가 받아주지도 않지.

그리고 자연에서 우연이란 것이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우연이라고 생각하는가 본데...

우연에 대하여 과학이 정의하는 것을 설명해도 못 알아먹을테니 그건 그만두고...

신학책을 읽어봤냐고? 내가 말하는 신학책 나부랭이는 박 먹사같은 사람들이나 배우는 그런 책을 말하는 게지. 신학이든 아니면 다른 학문이든 좀 제대로 공부를 하고 나면 이딴 소리는 못하지. 학문이란 원래 생각하는 이성을 기본으로 요구하고 생각하는 이성이란 의심으로 부터 시작하는건데 도무지 의심이란 게 없어요. 학교에서 배운게 전부인가? 웃긴다 정말. 그저 배운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이란...

오락프로에 나오는 목사를 말할 때에는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아 듣는 그런 사람들이나 이해할 말이니 그 머리에서는 목사전체를 평가하니 아니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게지.

좀 쉽게 설명을 하지. 통계적으로 표본은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지. 먹사 하나가 오락프로에 나왔다고 먹사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지 왜냐하면 표본의 수가 너무 적으니까. 하지만 먹사가 오락프로에 나오는 현실을 확대해서 들여다 보면 한국 사회가 개독교 먹사에게 드리우고 있는 평가를 보면 답이 나온다는 말씀이야. 요즈음에 먹사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면 앞에서는 '네~ 그러세요?' 라고 점잖하게 말하지만 뒤돌아서는 뭐라고 생각하는지 몰라서 그래? '저 사람 목사래' '그래? 어쩐지 겉으로는 겸손학 척 하면서 아는 체는 더럽게 하더라. 아휴 재수없어~' 이게 보편적인 한국 사회의 모습이거든? 상대방을 피곤하게 만든느게 바로 먹사들이라고. 내가 당신을 피곤하게 하는 게 아니고. 당신 보기에 피곤하면 외면하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자꾸 대꾸하는 이유는 뭐야? 지적 우월감, 도덕적 우월감 때문이지.

자기들 똥 바가지 같은 머리속에 있는게 최고인줄 알지. 그런데 세상을 보면 먹사들 입에서 나오는 소리하고는 다르게 돌아가거든? 그러니 세상이 피곤하지.

당신 정말 피곤한 인간이야~~~~~

인간 사회에는 일반적으로 소유에 관련된 세 가지 우월감이 존재하는데 첫번째는 뮬질의 소유이고 두 번째는 지식의 소유이고 세 번째는 도덕성의 소유이지. 첫 번째는 먹사들이 속으로만 숨겨놓고 드러내지 않는 것 뿐이고 두 번째는 박 먹사 같은 사람들이 말로는 겸손한 척 하면서 남들 앞에 과시하는 것이지. 그리고 세 번째는 아주 꼴불견인데 이게 먹사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무뇌아 개독들이 보여주는 양상이야. 신에게 은총을 받아 도덕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게지. 류상태 목사가 말하는 게 바로 이런 원리 때문이야.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고? 그래서 사랑 받기 위해 타어난 존재라고? 뭔 개 풀뜯어 먹는 소리. 그렇게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를 거대한 파도가 삼키게 놔두고 폭탄이 터저서 사지가 잘려나가도록 놔두는 이유는 뭔데?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그렇다고?

우주를 창조한 신이라면 신이 보기에 인간이 존재한다고 생각이나 하겠나?

박 먹사 당신은 이 세가지 우월감을 인정받지 못해서 앙탈을 부리는 전형적인 개독 먹사라니까.

그냥 예수처럼 살아. 그러다 보면 남들이 존경하거든.

입만 나부라지 말고. 하기야 알면 그런 짓 하겠나?

에이 먹사들! 재수 없어. (죄송 - 몇명은 빼고요.)
리플달기
2 6
박창진 (42.82.71.52)
2013-07-17 11:09:31
불쌍하지만 안쓰럽기도 하네요.
"그렇게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를 거대한 파도가 삼키게 놔두고 폭탄이 터저서 사지가 잘려나가도록 놔두는 이유는 뭔데?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그렇다고?"

그게 자연법칙의 결과란다.
전자의 경우는 인간의 무지나 과욕의 결과이고.
후자의 경우는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결과이지.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고가 비뚤어진 것이 안쓰럽고 그런 사고를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도 안쓰럽고 그 사실을 알려주어도 이미 굳어진 지성으로 인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안쓰럽네.
리플달기
0 1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17 11:27:50
그게 자연법칙이라고?
개가 웃는다.

안쓰럽다고 혀를 차는 당신의 모습이 바로 도덕적 우월주의자의 모습이지.

당신이 사람들 앞에서는 겸손한 척 하면서 이런 공간에서는 교만이 하늘을 찌르니 당신에게는 먹사가 딱 알맞은 직업이 아닐꺼나.

당신 같은 사람을 보고 누가 예수를 믿겠나?
리플달기
1 0
박창진 (1.220.135.107)
2013-07-17 15:17:50
당연히 개는 짓지. 그게 웃는 것이든지 우는 것이든지.
안쓰러운 것을 안쓰럽다고 하는 것은 도덕적 우월주의가 아니라 인간다운 당연한 모습이지.

사람들 앞에서는 겸손한 척. 어떤 근거를 가지고 하는 주장일까?
그대 같이 헛소리 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내 주장을 펼치는 것이 겸손한 척인가?

이런 공간에서 그대 같은 인생들에게만 내가 지금과 같이 대하지.

당신은 당연히 안 믿겠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아니거든.
난 네게 맞는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일 뿐이란다. 알겠니?
리플달기
1 0
박창진 (42.82.71.52)
2013-07-17 10:47:06
에고 에고 불쌍해...
기독교인들의 소통의 장에 와서 기독교인들에게 지극히 당연하게 통용되는 사안을 부정하며 헛소리를 남발하고 있으니...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잠 15:23).

이런 말씀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머리에서 이해되지도 않겠지만 불쌍한 인생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서리.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고 그 우주가 파멸되지 않고 유지되는 원칙을 정하셨단다.
자연적으로 그것이 생겨났다고. 멍~
증명해보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를.
넌 증명 못해. 백프로 확실하지. 그냥 너의 신앙일 뿐이거든.
넌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고.

난 나의 신앙, 넌 너의 신앙인데 그게 대립될 뿐이란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정하신 자연법칙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간섭하지 않으시지.
그래서 자연법칙대로 움직이는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법칙을 넘어서는 일을 하시지.
예수님이 물 위를 걷는 것과 일이 그런 것에 해당되지.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 하리라"(마 10:29).
예수님의 말씀이란다.
물론 넌 아무 근거도 없이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 글을 쓴 이가 지으낸 것이라고 하겠지. 안봐도 비디오거든.
이 말씀은 이런 것이란다.
이 참새가 사람이 쏜 새총에 맞아 하늘에서 떨어져서 사람들 사이에서 거래되는 것이라고 하자.
그 시간에 그곳에 참새가 있었고 그 시간에 그곳에 새총으로 참새를 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지.
이는 자연법칙을 따라 자신들의 의지로 그렇게 된 일이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참새가 그 시점에 그곳에 있지 않게 하실 수 있고 그 사람이 그 시점에 그곳에 있지 않게 하실 수도 있었단다.
사람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만 하였더라도 그렇게 되었겠지.
그런데 그런 일이 없이 참새와 그 사람이 그곳에 있게 되었고 사람이 새총을 쏘아 참새를 맞혔고 참새는 사람들 사이에서 팔렸다는 것이야.
이것을 예수님은 하나님의 허락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란다.

글쓰는 모양새를 보니 누군인지 감이 오는데, 불쌍한 인간아, 불쌍한 인간아.
언제까지 그렇게 살거니.
웬만하면 개과천선하거라.
남을 피곤하게 하는 삶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리플달기
0 2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17 11:31:12
박수!!!!
역시 개독 먹사다운 말을 하니...

계속 떠들어도 이제 세상은 기독교와 결별을 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자~~알 해 봐라.

장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천년 전에 속히 오겠다던 예수 붙잡고 장사하면서 뭣 좀 팔았다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예수는 절대 안 온다.

당신 같은 멍청이들 때문에 오기 싫대~~
리플달기
1 1
박창진 (1.220.135.107)
2013-07-17 15:10:17
이천년 속히 오겠다던 예수님이 이미 오셨다는데...
하긴 요한계시록 해석의 여러 유형을 어찌 다 알리요.

논리가 딸리면 개독 먹사라는 표현을 뭉기적거리며 넘기면 자신이 옳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사는 그대 같은 인생을 대하는 피곤함...
리플달기
0 0
Philip Im (70.62.49.64)
2013-07-16 08:33:18
하나님의 허락하심
하나님의 허락하심이나 허락하지 않으심은 하나님의 주권을 의미합니다.
어쩔 수 없어 허락하신다면 주권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곧 우상입니다.

나뭇잎 하나 지금 떨어져라. 너는 안돼. 10분 후야.
이런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허락하심과 허락하지 않으심은 하나님의 의지에 달린 것입니다.
허락하지 못한다는 것은 의지를 거스리는 것인데
하나님의 의지를 거스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리플달기
0 4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16 12:44:11
당신은
그냥 입다물고 있는게 나을듯 싶은데
리플달기
4 0
Philip Im (68.91.26.248)
2013-07-16 13:58:56
그냥 지나가시지
동네방네 다 참견하십니까?
리플달기
0 0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16 14:13:56
당신들이나 참견하지 마세요~
그냥 교회에서 조용히 기도나 하며 천국 갈 날이 며칠이나 남았나 계산이나 하면서 지내면 누가 뭐라카나?

온갖 세상 일 다 참견하면서 지 뜻대로 안되면 성경에 그렇게 쓰여있다느니 아니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라느니 어쩌구 저쩌구...

그냥 조용히 기도나 하세요. 죽는 날까지. 그게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이웃 사랑입니다. 알겠소?
리플달기
3 7
Philip Im (68.91.26.248)
2013-07-16 23:28:27
ㅉㅉㅉ
나는 본 글에 대하여
그리고 나에 대한 댓글에 대하여
나아가 성경 말씀에 대하여

'당신들'이라는 것 보니 여기 들어올 사람이 아닌것 같은데...
리플달기
0 0
지나가다가 (71.234.154.98)
2013-07-17 03:33:27
맞소
나는 여기에 들어올 만한 그런 사람이 아니오. 당신같은 사람과 말을 섞을 정도의 천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오. 됐소?
리플달기
2 7
익명 (211.211.101.185)
2013-07-14 22:39:04
인디언 전설에 의하면.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리플달기
4 2
참빛 (24.141.4.52)
2013-07-15 00:16:47
죄송하지만 한마다만 드리지요.
옛날에 남대문 옆에 사는 한 사람이 남대문에 대하여 이야기로만 들은 촌부의 주장을 꺽을 수가 없었답니다. ㅎㅎ
리플달기
4 0
박평일 (72.196.234.24)
2013-07-15 21:55:44
저는 두 분 다 서로 예화만 달랐을 뿐
신앙을 개인적인 체험으로 이해하고 계시는
점에서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세가지 형태의 바보가 있습니다.

첫번째 바보는 자기가 무지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바보들입니다.

두번째 바보는 무지하면서도
자기가 알고 있다고 믿고있는 바보들입니다.

세번째 바보는 자기가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하는 바보들입니다.

신앙도 세가지 형태의 바보들이 있습니다.

첫번째 바보들은
기도로 바다위를 걸을 수 있고
하늘을 날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맹신적인 신앙인들입니다.

두번째 바보들은
믿음이 성경지식이라고 믿고 있는
지적신앙인들입니다.
그들은 신앙적체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가 가장 싫어했던 외식하는 자,
곧 회칠한 무덤 속 위선자들이 이 부류에 속합니다.

세번째 바보들은
믿음이 체험이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체험이 개인에 따라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신앙인들입니다.

장님들이 코끼리부위를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자기가 만져 본 일부 부위가 코끼리라고
상상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바닷가에서 고기를 낚는
세 사람의 어부들과 같습니다.

한 사람은
종일 낚시를 하고도
한 마리 고기도 낚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바다에는 고기가
살고 있지 않다고 믿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종일 고등어 몇 마리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 바다에는
고등어만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종일 갈치 몇 마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 바다에는
갈치들만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세 사람이 바다에 대한 체험이
각기 다릅니다.
이 것이 체험적 신앙의 한계입니다.

성숙한 한 신앙은
개인적인 체험의 한계를 초월하는 신앙입니다.

그 출발은
이 세상에 자기와 똑같은 인간은 단 한사람,
자기자신밖에 없다는 창조의 섭리를 이해하는 데서
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창조원리는 획일이 아닙니다.
혼돈 속 조화입니다.

그럴 때 대화는
자기의 일방적인 옳음을 강요하는
폭력의 지옥이 아니라
서로 다른 아름다운 체험의 향기를 나누는
사랑의 천국으로 변하게 됩니다.


개인적 신앙체험은
부분적인 파도입니다. 전체인 바다가 아닙니다.

파도는 바다와 하나가 되었을 때만
완전한 전체의 일부가 됩니다.

모든 인류의 종교는 인간들의 두려움에서 부터
생겨났습니다. 인간들은 완전한 전체가 아니라
불완전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부분은 두려움입니다.

그러면에서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는
기도나 예배는 필요합니다.

신앙은 파도가 바다와 하나되어
두려움에서 벗어 나려는 도구입니다.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파도가 바다와 하나가 되는 순간
모든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종교도, 신앙도 사라집니다.

파도가 바다와 하나되고,
개체가 하나님과 하나되면,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축복의 선물라는 깨달음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자유, 사랑, 평화의 불꽃으로 타오릅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자유, 사랑,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는 예수가르침의 의미가
바로 그런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리플달기
5 0
참빛 (207.210.3.147)
2013-07-14 07:51:17
1.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맞추는 마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과 세상에 부여하신 뜻을 우리가 찾고 거기에 우리의 채널을 맞추는 것이다.

2. 무모한 설교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인격적이시며, 세상의 모든 것을 섭리하고 주관하신다.” 또한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는 기독교의 전통 교리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한 언제든 재발될 수 있다.

위 두 가지만 목사님들께서 먼저 깨달아 인정하고서 강대상에서 성도들에게 바르게 전한다면 한국의 기독교는 새 힘을 얻고 독수리 처럼 창공을 향해 올라갈 것입니다.


교리가 대체 무엇이길래 신주단지 모시듯 그렇게도 옹고집을 부리며 인간답지 않고 양심에 어긋나는 거짓말들을 강대상에서 마구 유창하게 떠들어 댄다는 말입니까? 예수를 입으로 믿어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재앙을 내리고 지옥에 떨어져 유황못에서 영원히.. 등등...

과거의 신학자나 목사들이 해 논 말들을 주어담아 자기의 고유한 말인양 착각하에 앵무새처럼 반복만 해대는 무모한 설교들.. 이제 지겹습니다. 정말로요.

천국은 이 땅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베푸시는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누구나에게 동일하게 말입니다.
제발 말장난일랑 접어두고, 받은대로 감사하며, 오늘을 그저 열심히 사십시다!

류목사님의 선지자적 권면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리플달기
6 7
길손 (211.211.101.185)
2013-07-14 15:43:21
지극히 상식적인 것에 빠지다....
오류냐 무오류냐 따지고 또 따지는 일군이 있습니다.
결국 <상식적>인 선에서 그저 오늘을 열심히 살기만하면 된다고 단언합니다.
그렇군요.
그저 열심히 욕심부리지 말고 착하고 열심히 살면 되는군요.
하나님은 교회를 가거나 말거나 감사헌금을 하거나 말거나 되는 대로 살아도 무슨 대수입니까?
다 자기 운수소관이요 타고난 팔자라 치부하면 되는 것입니다.
요컨데 이런 뜻으로 풀이하면 되는 것을 어렵게 말을 빙빙 돌리지 않는게 피차 이해하기 싶고 편하잖아요.
이렇게 무엇인가 비틀어지듯 꼬이는 어투로 전달되어 오는 것은 왠일일까요.
........
그래서 류목사님말씀이 선지자적 권위가 있다고 말장난하시는 분은 또 무슨 은혜로운 감격입니까?
아는 것 만 보이는 것인지, 아님 고만고만하게 보이기 때문에 모든것을 다 아는 척 하는 허튼소리로 강대상의 열심을내는 분들을 그렇게 싸잡아 빈정거려야 직성이 풀리십니까??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을 그렇게 가벼이 정의를 내리는 만용이 그렇게 자랑하고 싶어지셨나요?!
소위 진보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건 진지한 신앙의 선배들을 그렇게 간단히 싸질러 놓으니까 굉장히 높여지고ㅜ싶어졌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진짜 무엇인지 알기는 알고서 말을 하는 것인지요?
말꼬랑지나 잡아당기면서 줄다리기를 먼저 일삼고 횡행하던자가 누구였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함부로 정의하지마십시요..!
리플달기
32 6
참빛 (24.141.4.52)
2013-07-15 00:18:09
하나님의 사랑을 정의하지도 못하면서 믿는 님의 하나님은 누구입니까? ^^
리플달기
4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