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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생태공동체마을이다 !기독교 환경선교에 대한 실천과 그 비전
류기석  |  yoogise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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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06월 13일 (목) 15:49:11
최종편집 : 2013년 06월 13일 (목) 22:07:13 [조회수 : 3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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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생태공동체적 삶인가?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복음의 결과로 이 땅에 허락하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모델이며, 신앙인의 근본적인 삶은 예수 그리스도 화해의 십자가를 근거로 성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동체적인 삶입니다.”

   
▲ 경기포천 소홀읍에 자리한 사랑방공동체는 교회와 생활공동체 그리고 학교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며 위의 말씀을 약속으로 지키고 있다

우리사회는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자본화로 인한 개인과 집단 공동체성이 급속히 약해졌다. 더욱이 한국사회는 짧은 시간동안 많은 변화를 겪어오면서 무엇이든 차분히 생각하고 실험해 볼 틈도 없이 더 빨리, 더 편한 생활을 뒤따라 가다보니 아름다운 전통과 정신 그리고 문화를 잃고 물질문명에 휩쓸리게 되었다.

이러한 물질문명 즉, 자본주의는 이익추구를 기본으로 하는 기업중심의 문화로 기업은 많은 물품을 생산하여 많은 이익을 남기려는 가운데 인간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시스템 속의 한 부품과 같은 역할로 자리 메김 되어 기업이 가지게 되는 이윤 중 일부를 받아 가정경제를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 흙과 물, 공기 등의 오염으로 인한 생태환경의 위기(자연)

 

   
▲ 정치경제와 가치관 부재에 의한 공동체의 위기(사람)

이러한 흐름의 사회적 시스템은 많은 물품을 생산하기 위해 많은 자원을 이용하게 되고 그에 따라 지구의 환경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치게 되어 환경오염이라는 위기를 넘어 지구온난화와 기후붕괴를 낳았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경제체제이자 삶의 문화(패턴)다.

이런 문화는 누구나 새로운 상품과 더 많은 재화를 가지기 위해 경쟁하고 또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쓰게 된다. 인간이 무한 경쟁 속에 노출되어 자신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재화나 물질이라는 것이 인간내면의 정신적, 영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지는 못하는 것이 시대의 아픔인 것이다.

   
▲ 대량생산과 소비, 첨단기술 등에 의한 도시의 위기(문화)

 

   
▲ 첨단기술에 의한 발명품(식품과 음료 등)들에 의한 문명의 위기

그러므로 전 세계가 자본으로 운영되는 경제운영체제는 부적절한 논리로 지구는 더 이상 이 논리를 감당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있다. 인간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재화는 '돈'이 아니다. 돈은 그저 경제운용을 쉽게 하기 위해 약속으로 정한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에서 나오는 자원과 환경, 또는 인간의 순수한 노동력이 실제적인 행복이자 경제다.

지구는 경제활동을 이루어주는 원천이지만, 이제 한계에 왔다고 우리에게 자꾸 말하고 있다. ‘이제 나를 그만 괴롭히고 그만 좀 써라. 바닥이 났으니 좀 기다려라. 쓰레기 좀 그만 버려라 감당이 안 된다.’ 등으로 말이다.

   
▲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은 지구의 모든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지역공동체의 위기는 편리하고 안락한 생활의 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르는 증기기관차처럼 계속해서 레일 없는 낭떨어지를 향해 질주를 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에 대안은 지금껏 살아왔던 삶의 형태와 경제운영패턴을 바꾸려는 움직임으로 '생태공동체적 삶'을 둘 수 있다.

   
▲ 환경파괴로 인한 공동체의 위기

이러한 삶은 인간이 생각하는 만큼 많은 물질은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 소박한 집에서 건강한 먹을거리를 재배하여 먹고, 간편하면서 정갈한 옷이면 충분한 것이다.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마음의 나눔과 정신적 풍요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에 대하여 깊이 사유하는 것이다.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통한 삶과 죽음의 근원적인 의미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 2004년 경북영덕 생태적 농사에 의한 공동체마을의 실험

이런 삶을 굳이 복잡하거나 거대한 도시 속에 자리할 필요가 없다. 개인 또는 가족이 필요한 음식과 물품을 생산하고, 더 나아가 마을과 지역이 공동의 노동과 생산력으로 효율적으로 서로의 자원이나 물품을 공유하는 생활방식인 것이다. 필요이상의 생산과 소비를 하지 않는 생활방식 말이다.

당연히 주변의 자연과 환경은 무작정 파괴하여 사용하는 대상이 아닌 인간과 공존하는 대상으로서 소중히 다뤄지면서 삶은 더욱 여유 있고 노동을 신성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생태공동체적 삶이란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형태를 완전히 바꾸자는 것인데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공동체보다는 자유에 대한 근원적인 갈망이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통제를 받거나 규칙이나 규율을 따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보여주는 측면으로 공동체의 삶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반영하는 문화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해하면 해소가 될 것이다. 집단주의와 공동체적인 삶은 차원이 다르며 성숙한 인간의 삶의 모습이라 생각하면 된다.

   
▲ 생태공동체마을의 오래된 미래, 중국 구이저우 오지 속에 숨어 있는 이족마을

 

   
▲ 생태공동체마을의 오래된 미래, 태국 끄라비 꼬 피피 이슬람공동체마을

 

   
▲ 생태공동체마을의 오래된 미래, 라오스 오지의 몽족마을

쉽게 생각하면 혼자 사는 사람보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삶을 잘 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삶은 지금 인간이 가진 삶의 한계와 지구가 가진 환경과 자원의 한계를 풀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여기서 기독교생태공동체마을은 죽어서만 갈수 있는 하늘나라가 아닌 이 땅에서 감격 있는 공동체생활로 천국을 간접 경험하는 선교의 장으로서 이제까지 단절과 경쟁의 삶에서 화합과 소통으로 향해가는 생활신앙인의 삶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곳이자 동시에 나의 내면에 더 많은 시간과 가치를 부여하면서 주변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연과 소통하는 삶을 이루는 장소가 될 것이다.

   
▲ 라오스 왕위엥에서 생태적 삶을 위한 'SAELAOS PROJECT'를 벌이고 있는 젊이들

 

   
▲ 호주북부 진진마을의 쿠카불라 생태공동체+공원마을 풍경

그럼으로 환경선교에 대한 실천과 그 비전으로 기독교생태공동체마을은 기존 선교를 넘어 새로운 선교적인 삶으로 생태와 공동체 그리고 영적인 회복의 선교방식을 제안한다.

그것은 기복신앙이 아닌 진실한 깊이의 선교적 삶을 되돌아보고, 돈을 기반으로 하는 선교방식과 내 야망과 욕망을 이루려는 혼잡함과 조급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는 것이다.

   
▲ 방글라데시 묵다가차 윤연섭 선교사의 친환경유기농업에 의한 공동체마을의 회복
또한 늘 뭔가 부족하고 새로워야 된다는 생각을 멀리하고, 사물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야를 확장, 고갈된 영적 풍요를 회복하는 삶을 일구는 것은 물론 혼란과 스트레스가 적은 삶의 유익을 찾아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 선교에 앞서 가까운 가족과 이웃을 돌보는 삶, 창조적인 생각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벌여나가는 삶, 하나님이 주신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한 식생활을 즐기도록 협력하는 삶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을 즐겁게 기다리는 인내와 가족과 이웃에게 상처를 주고받은 것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회계하는 삶이 기독교생태공동체마을의 선교적인 삶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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