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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최초 한인 목사가 본 ‘한국교회 위기’는?
이병왕  |  wangle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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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04월 30일 (화) 12:03:26
최종편집 : 2013년 05월 01일 (수) 01:23:14 [조회수 : 4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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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명동 청어람에서의 ‘교회2.0목회자운동 정기포럼’ 모습
프란시스 쉐퍼의 제자이자 국제장로교(IPC) 소속 영국 최초 한인 목사로 1978년부터 2000년까지 런던한인교회를 담임하고, 다시 2004년까지 레딩한인교회를 담임한 후 국내에 들어와 4년간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총장을 역임, 다시 영국에 건너가 사역했던 김북경 목사.

그의 눈에는 국내에서 사역하는 목회자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잘 보인다. 마치 바둑의 훈수꾼에게 수가 더 잘 보이는 것처럼. 그의 눈에 비친 한국교회는 △유교문화 영향에서 비롯된 비(非) 성령민주주의적인 교회운영과 △이원론적 신앙행태로 흔들리고 있는 위기의 모습 그것이다.

비(非)성령민주적 운영으로 교회 내 '갈등'

‘교회2.0목회자운동’은 29일 오전 서울 명동 청어람에서 정기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는 김북경 목사(서울교회. 75)가 자신의 눈에 비친 한국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나의 목회와 한국교회’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김 목사는 자신의 눈에 비친 한국교회의 문제를 ‘제도적 관점’과 ‘신학적 관점’으로 구분해서 설명했다.

김 목사는 제도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교회의 문제로, 교회 정치 형태와 관련 가장 민주적인 장로제를 채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교의 위계질서 탓에 비민주적으로 교회가 운영되는 점을 꼽았다.

목사와 장로가 다 동등한 장로로서 복수 지도체제 목회를 한다면 한국교회의 안녕에 도움이 될 텐데 그렇지 못하고 목사와 장로의 차별화로 목사와 장로 간의 갈등이 권력 다툼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김 목사는 유교의 위계질서 탓에 언론의 자유가 교회 내에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지적했다.

‘성령은 믿는 모든 자에게 임하시며 말씀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성령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서로의 의견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의견의 합의를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비단 이러한 문제가 교회만이 아닌 목회자를 길러내는 신학교에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어서 설상가상이라는 입장도 피력했다.

교수라는 경직성 권위로 인해 교실서 토론 수업이 이뤄지지 못해 토론문화라는 것을 기대할 수 없고, 이러한 상황에서 배우고 자란 신학생들이 목회현장에서도 그와 같이 경직된 위계질서적 분위기로 말씀을 전하고 교회를 운영한다는 것이다.

이원론적 사고에 따른 신앙행태 ‘심각’

제도적 문제에 이은 신학적 문제로서 김 목사는 이원론 곧 △성(聖)과 속(俗) △영(靈)과 물질(物質) △특별은총과 일반은총의 잘못된 구분으로 인해 그릇된 신앙행태가 나타나는 점을 지적했다.

성과 속의 구분과 관련해서 김 목사는 “영국 한인교회 사역 당시, 예배시간 아닐 때는 교회 장의자를 치워 운동이나 회의 또는 교제 공간으로 활용하려고 제안했더니 ‘거룩한 곳을 어떻게’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심지어 예배당에서 윷놀이를 한다고 ‘이단’소리까지 들은 적이 있는데 한국교회의 모습이 이와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고 하는 일종의 영지주의적 이원론이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유교는 일종의 현세주의 종교인데 유교 문화의 영향이 강한 한국교회가 어떻게 물질을 악하게 보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김 목사는 한국교회가 성결 차원에서가 아닌 배타적 성격 탓에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원인을 특별은총과 일반은총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찾았다. 일반은총은 ‘세상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교회는 마태복음 28장의 선교명령만 생각했지 창세기 1장의 문화명령은 생각지 않다보니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전도의 대상으로만 본다”며 “그 결과 상대방으로부터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문화명령이란 단순히 기독교 문화 창조만을 얘기하는 게 아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는데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지 않으면서 전도만 하려고 하니 욕을 먹는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이에 “성경의 가르침은 문화명령 곧 ‘삶’에서, ‘삶’을 통해서 전도명령을 지키는 것”이라며 “한국교회는 이 두 기둥을 잘 잡고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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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196.234.24)
2013-05-01 12:51:51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하지요.

하나님은 인간들을 너만 볼 수 있는
두 눈을 가진 동물로 창조하셨습니다.

너를 통해서만 나를 볼 수 있게 하려는
하나님의 사려깊은 섭리였지요.

이 하나님의 뜻을 처음으로 알아보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인간들이 알아듣기 쉽게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들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것이 너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연구연구 끝에 발명한 것이
자신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거울이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자마자
인간들은 실망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이렇게 못 생겼을까 ?
적어도 너보다는 수백배 더 아름다울 줄 알았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핕코 너보다는 더 아름답게 만들겠다."
굳은 결심을 하고 발명해 낸 것이 화장품이었습니다.

와! 거울에 비친 화장한 자기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옳거니! 이것 이제 부터 나의 본모습이다.
이 모습으로 세상을 마음껏 속여보자!

왠지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자신의 양심은 쉽게 속여지지가 안았기
때문이었지요.
.
고심끝에 모조품 양심을 하나 더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 모조양심이 바로 위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이제는 마음 놓고 세상뿐 아니라 자신의
눈까지 속일 수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가끔씩 양심의 숨통을
조여오는 것이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이었습니다.

하님은 눈은 도저히 속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귀라도 속여보자
그렇게 해서 고안해 낸 작품이 립써비스였습니다.

세상이 요란하게 꽹과리를 치며
립써비스 로 하나님의 귀라도 속여보자.

지어낸 내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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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
포이멘 (183.109.98.59)
2013-05-01 11:24:30
독단의 목회에서 공동의 목회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목사의 전횡과 성도에 대한 가렴주구가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대언자임을 내세우며 설교단 위에서
성도들을 지옥에 간다고 겁박하고
돈 많이 벌어서 교회에 바친 사람을 찬양하며
돈 많이 바치면 돈을 더 많이 번다고 맘몬의 신을 찬양하면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당회, 구역회, 모든 회의는
이미 자신이 정한 사항을 통과 시킬뿐 형식적이며
이에 문제제기를 하면 은혜롭지 못하다고 정죄하고
성도들을 위해서 빠른 시간에 회의를 끝내야 한다며
회의를 일방적으로 몰아가고
장로들은 이러한 목사에게 거수기 역할을 맡아서
동의와 재청을 서두릅니다.

성도가 나서야 교회가 바뀝니다.
교회의 타락이 중세 천주교를 능가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를 개독교로 생각하는데 그들을 어떻게 전도합니까?
.
이제는 모든 성도가 루터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 킹제임스역에서 나타난 목사의 역할은 이제 끝났습니다.
목사들이 모여서 감독, 감독회장을 만들고
종교연합을 내세우며 아무 쓸데없는 연합회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더나가서는 교황을 만들 것입니다.
이들은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니골라당(교회의 지배세력)입니다.
신천지의 이만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민주화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프랑스의 대혁명, 영국의 권리장전, 미국의 독립,
대한민국의 민주화, 중동의 민주화를 이끌어 냈습니다.
앞으로 중국과 북한의 민주화도 이루어 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민주적이어야할 교회공동체가
목사의 독재에 의하여
성도들이 제대로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목사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모든 언로가 막혀있고
가슴이 답답해도 성도들은 감히 말할 수도 없습니다.
교회 내에서 왕따가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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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
참빛 (24.141.4.52)
2013-05-01 12:05:35
동감합니다. 그런데요
포이멘님.

포이멘님이 말씀하는 일이 실질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목사의 독재..
문제는 목사들이 아니고요 백성들에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로선 교회 민주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봐요.

무지한 백성이 독재자의 독재를 독재로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종이니, 목자니, 어쩌구 하며 목샨님~ 목쌴님~ 해대며
온갖 선물공세에다 신격으로 추앙하고 추종하는
무지한 백성들 때문에 민주화가 않되는 것이라구요.

이걸 어떻게 해결합니까?
백성을 계몽하여야 한다는 겁니다.
백성들만 깨이게 되면...
그깐 목사들은 다 스스로 물러 가고
성도들에 의한 성도들을 위한 성도들의 교회가 비로소 진정으로 탄생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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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
맞습니다. (218.39.77.67)
2013-05-02 07:32:56
그 구성원이 일단 저질이고 저급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무지하지 않은 사람들. 제대로된 사람들은 왜 적은지 아세요?
수능 반맞추는 신학대학 나온목사가 위에 말씀하신데로 제대로된 성도들이 보기에 수준이 한참 미달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저평가하는 부분이 진실성하고 도덕성입니다. 일단 그 부분에서 너무 저급하고 저질이기 때문에 목사들을 회피하는 겁니다. 알고는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백성들이 깨이다니..... 좀 우습네요. 목사님들의 수준이 그 예배당에서 어느정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미 스펙으로는 성도들과 비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최하위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그런 구별의 관점을 가지고 교회에 나온것이 아닙니다. 모두에게 민주적이고 싶은 성도들이 많습니다. 목사들은 그런사람을 미워하고 위에 몰지각한 사람들이 편하고 그냥 무조건 따라주니까. 그리고 제대로된 성도들은 본인들이 커버를 못하죠 본인들 수준이 너무 떨어지니까...이제 답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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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목사의 배출 (218.39.77.67)
2013-05-02 07:42:18
목사의 배출을 1/10로 줄여야 합니다. 문제만 일으키는 다수를 만들면 뭐합니까.
단 몇명이라도 좋으니 제대로된 사람들이 나와야 합니다. 영성도 없는 사람들이 목사라는 것을 합니다. 양아치 같습니다. 정말 웃음이 나옵니다. 어떤사람은 변사 같습니다. 어떤사람은 사기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벽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만사가 귀찮은 것 같습니다. 진실한 영성있는, 실천하는, 젯밥에 관심이 없는 순수한 목사는 아직 한명도 보질 못했습니다. 원래 그러라고 노동도 안하고 사는데 말입니다.
현재 배출량에서 1/10로 줄여야 합니다.전문대학에 낙방하고 10년간 교회에서 기타치고 무슨 선교회간다고 외국다니다가 담임목사가 추천해서 감리교신학대학원에 들어간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 사람은 의지박약자에다가 노동기피증환자입니다. 힘든일이라고느 체질적으로는 안하려는 사람입니다. 그사람이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뭔가하기는 하는데 지난 10년동안 교회에서 기타치고 선교여행다닌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한마디로 비용만 축낼뿐 사회에서 산전수전 다격는 성도들에게는 깃털로 간지르는 것만큼도 아무 의미가 없는 사역입니다. 전혀 느낌없고 전달되지 않는 그저 돈만 축내는 인생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목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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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박평일 (72.196.234.24)
2013-05-02 19:56:59
사람에 따라서 의견이 서로 다르겠지요.

목사수를 줄인다고 달러질까요? 저는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태인들의 지혜집인 탈무드에 황금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은 우수한 것과 열등한 것이 20 % 대
80 % 비율로 구성되어있다고 합니다.
동물세계의 경우 우수한 20 % 를 인위적으로
거세하고 나면 남은 것들 중에서 다시 20 % 대
80 % 비율로 재구성된다고 합니다.

성직자들의 세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교회가 혼탁스러워도 20% 의 훌륭한 목사들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평신도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저는 신학생들의 지적수준문제 보다는
기독교가 사변적인 신학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종교로 거듭나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불교, 힌두, 모슬람 경전을 읽고 그들의
신전에서 예배를 본다고 해서 예수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자신만 깨어있으면
어떠한 교회를 나가고 어떠한 목사를 만나도
별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신앙을 두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신앙이라고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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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박평일 (72.196.234.24)
2013-05-01 21:21:36
저도 공감합니다.
이제는 성직자들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먼저 자신들에게로 돌려야 합니다.

일전에 가나안 신도들에 대한 통계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와 멀리한 주된 이유가 목사들이었기
때문이었지요.
미국의 통계는 아주 달랐으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신앙의 주인이라는 주체의식의 결여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어떻게 주인이 스스로 종의 노예를 자원합니까?
논리적으로도 도데체 말이 되지 않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목사개인이나 설교때문에 교회를
선택해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에 나가는 것이 원칙이지요.
지난 몇 년 간은 외도를 하고 있지만.

그래서 그런지 자기 교회목회자들이 설교를 자랑하며
전도하는 사람들이나 말씀이 좋다는 이유로 교회를
선택하는 분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목사를 자기 신앙의 주인으로
섦기려는 노예근성으로 봅니다.

저는 한국 청파교회 목사님 설교를
인터넷 을 통해서 듣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느 유명목사들의 설교도 들을 수가 있지요.
그렇다고 해서 나의 신앙이 달라지지 않더군요.

열성신도들 처럼 남을 교육시키고
훈계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모를까. 하긴,
간첩을 색출해서 기소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공안검사들처럼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이 신앙인의 본분이라고
믿고계시는 분들도 주위에 생각보다 많더군여.

저는 기본적으로 성직자들을 존경하고
부러워합니다. 남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는 것이 멀마나 아릅답고 고귀한 삶입니까?

개인적인 목사친구들의 경우을 보면 처음에는
아주 순수한 신앙적이 열정에서 목회를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갈 수록 자신도 모르게
점점 변해 가더군요. 사랑을 받을줄만 알고
베풀줄은 모르는 인색하고,
말도 안되는 권위주의와 자존심으로
앞배가 나오기 시작하던군요.

자신들의 탓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종을 상전으로 모셔서 축복을 받으려는
신도들의 미신적이고 경쟁적인 아부 탓이 크지요.

내가 10년 가까이 나갔던 교회가 좋은 예가 될것입니다.
예배 후 신도들이 모여 교회 친교실에서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저도 일년에 몇 차례 예배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음식을 준비했기 때문에 사정을 조금은 압니다.

신도들이 줄을 서서 음식을 배급하는 데
가끔 음식이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학교후배되신 목사님이 나를 특별 예우하시느라고
목사와 사모의 별도 식사테이불에 나를
초대할 때도 있지요. 식탁에 음식이 흘러넘치더군요.

여신도들이 경쟁적으로 음식을 가져다 다르기
때문이지요.
주의 종을 넘치게 대접하는 것이 신앙적으로 축복의
기름길이라고 믿고 있는 분들이지요.

그래서 성직자, 노인, 어린이 할 것 없이
줄서기는 제안했읍니다.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그 목사님도 신앙적으로 참 순수하고 훌륭한 분인데
과잉충성신도들이 그 분을 스포일시키고 있었지요.

그래서 서로 까놓고 솔직해 지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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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심마니 (121.159.86.137)
2013-05-01 14:27:22
문제는 백성들(신도들)
"문제는 신도들!!!" 참빛님의 그 말씀, 참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아무리 발전, 진보해도 지도자가 교활한 생각일변도로 가는데는, 그를 당할 수가 없지요.

참다운 이끎이(지도자)는 자신의 몫(재물과 색욕)을, 신도들 몫의 맨 끝자리에 두어야 참다운 지도자라 할 것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대부분 신도들의 교육, 교양 수준이 목사보다 높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양심이 철망처럼 거칠고 곱지 못한 사람에게는 가지 않는 게 상책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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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참빛 (207.210.3.147)
2013-05-01 09:31:35
요한계시록과 성속이원론의 연관성
.
저는 개인적으로 요한계시록의 해석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의 무차별적 해석은 그리스도인들을 성속이원론에 빠지도록 부채질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재림이 (30년 안에) 아주 임박하다는 절박한 심리적 상태에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세상을 모두 포기하고 죄악시하며 교회만이 선을 확보하고 있다는 당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을 계시록의 저자는 깊이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성속이원론의 지배하에 세상을 죄악시하고 교회만이 온전한 곳이며 선을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는 성스러움(교회)과 죄악됨(세상)을 명확히 분리하여 세상을 구제불능적인 악의 대상 곧 사탄의 철저한 소유와 통치, 조정하에 있는 악한 범주의 것으로 판단해 버리는 이원론적 사고입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신자들 모두가 실제로는 세상에서 태어나서 그 안에서 성장하며 배우고 일하고 살아가면서도 말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 계시록의 말세적 신학의 영향이 깔려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이원론적 관념으로 인하여 우리 한국교회는 세상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동기부여를 제공하여야 할 여지를 모두 상실한 채 그저 교회성장과 상업화 그리고 대형화에만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한국교회는 불행히도 사회로 부터 끊임없이 지탄을 받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지요.

물론 물질만능주위 쾌락주의 등으로 표현 할 수 있는 속된 삶을 멀리해야 하는 것은 기독인의 당연한 자세이겠습니다.
그러나 세상 그 자체를 멀리 하라는 것은 성경의 의도가 결코 아닙니다.
속되고 악한 삶은 멀리하되 세상과 어울려 살아야하고 세상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계시록의 해석에 대한 지나친 집착...
이것으로 부터 우선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의 내용들을 해석하려 시도하다가 본인들도 모르게 이단으로 빠져드는 사례들을 목격합니다.
아니 어쩌면 이단의 전부가 바로 요한계시록에 목매고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곧 작음교회", "세상이 곧 교회”, "세상으로 나아가는 교회” 라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이루어 지기를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어야 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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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참빛 (207.210.3.147)
2013-05-01 08:17:36
정확하게 보셨네요.
<한국교회가 성결 차원에서가 아닌 배타적 성격 탓에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원인을 특별은총과 일반은총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찾았다. 일반은총은 ‘세상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1 입니다. ^^


한국인의 교회의 문제의 근원을 정말 바르게 파악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다음과 같은 생각과 설교내용이 교회를 세상과 담을 쌓게 만들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1. 세상은 악하고 교회는 선하다

2. 세상은 공중잡은 권세에 묶여있다

3. 세상사람이 어떠한 바른 말을 해도 그 말은 바른 말이 아니고 성경에 있는 말을 믿는 사람이 말할 때에만 바른말이 된다



이렇게 외치는 사람들이나 이러한 내용으로 설교하는 목사들은 그럼 아애 세상에 거하지도 말고 어디 산속깊은 곳에 들어가 평생 수양이나 하시지 무엇하러 그토록 악이 넘치는 세상 가운데 아직도 남아 있는지..

왜 자기 자식들은 세상공부 더 잘 가르쳐 주려고 유학에다 비싼 개인과외까지 붙혀주고, 자기들은 최고의 세상음식을 먹으려 들고 세상을 통해 나온 좋은 자동차만 골라 타려 그 난리를 치는지...

말과 행동이 엇박자로 맞지 않잖습니까?

그런 (언행불일치)의 사람을 두고 "위선자"라고 부르는 것 아닙니까?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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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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