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우연히 국민일보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한 목사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목사는 자신이 장애인이고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목회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장애인들의 복지와 편의, 그리고 생존권과 행복권을 위해서 열심히 목회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기사 내용에 따르면 이 목사는 원래 장애가 있었던 것은 아니란다. 장애인에 대해서 별다른 감정이나 관심이 없었는데 교통사고인가를 당해서 자신이 장애인이 되어 보니까 장애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가를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의 목회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기사를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역시 그 자신이 그 입장에 처해보지 않으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겠다는 것이다. 원래 장애인들에 별 관심도 없었는데 그 자신이 장애를 갖게 되자 그제서야 장애인들의 힘겨운 삶이 보이게 되었다는 말은 비단 그 목사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목회라는 것 역시 목회자 삶의 바운더리에 따라 그 지평이 넓어지거나 협소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나 탤런트가 목사보다도 더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한 사람이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자신이 타인의 입장에 서보거나 그런 처지가 되는 것이다. 영어 숙어에도 'put yourself on one's place'라는 말이 있다. 해석 그대로 누군가를 그 자리에 세워보라는 말로 그 입장이 되어보면 대상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목사들은 비록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더라도 안수를 받은 이후부터는 목사라는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대접을 받는 생활이 일상이 된다. 그러다보니 어려운 사람이나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기는 하지만 그들의 마음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목사라는 직업군 자체가 갖는 보수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삶은 보수적인 삶으로 규정되는 경우 또한 흔하다.


이야기가 잠시 샛길로 빠졌다. 이 글은 목사의 삶의 행태를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자리에 자신을 대입해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거리로 나와 장애인들의 인권과 복지, 이동권 등을 보장하라고 시위를 한다고 치자. 그걸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바쁘게 출근을 하거나 지친 몸을 안고 집으로 가서 편하게 쉴 생각에 잠겨 퇴근을 하는데 장애인들의 집회를 하여 교통이 정체되는 상황을 본다면 대부분이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자리에서 집회하는 장애인 중 한 사람이 자신의 남편, 아내, 자녀, 잘 아는 지인이라면 어떨까? 아마도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타에서 내려 그들의 옆자리를 지켜주지 않겠는가! 요즘은 사고나 질환, 고령화 등으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이 많아서 네 집에 한 명 꼴이 된다고 한다. 사실 장애인의 문제는 더 이상 타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이 다투는 경우는 대부분 이익에 관련된 문제이거나 서로에 대한 이해 없이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여 생기는 오해이다. 사실 이익과 관련된 다툼이라는 것도 자신의 이익을 중심에 놓고 타인의 이익을 무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차원에서 결국 모든 다툼은 자기중심적인 삶의 방식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자신의 입장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자리에 서서 타인의 입장을 잠시만 고려해본다면, 타인이 자신의 가족이거나 지인이라는 가정을 잠시만이라도 해본다면 사실 다툼은 깊어지지 않는다. 예수의 사역이 바로 그런 사역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가난해서 안식일에도 일을 하지 않으면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유대교는 일방적으로 죄인이라는 굴레를 씌워 공동체의 비난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예수는 가난한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유대인, 유대교를 비판하실 수 있었다. 이런 유형의 이해는 간음한 여인이나 세금공무원 등 다양한 존재들에게 반영되었다. 그런 연유로 예수는 평화의 주로 고백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과 미국, 조선이 엄청나게 험악한 말들을 쏟아내면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조선은 불바다니 전쟁이니 하는 말로 위협하고 있고 한국과 미국은 할테면 해봐라, 북한은 전쟁 능력도 없다고 맞서고 있다. 정치적인 수사로 시작된 말싸움은 이제 자존심 대결로 확대되었고 아주 작은 실수로도 큰 참화로 번질 위험을 안은 상태까지 되었다. 그런데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를 가만히 살펴보면 두 진영이 각자 서로의 자리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은 이 사태가 조선의 위성발사와 핵실험이라고 고집스럽게 몰아붙이고 있지만 조선은 위성발사가 왜 유엔 안보리 제재대상이냐며 억울한 마음을 피력한다. 그리고 핵강국인 미국이 자신들을 위협하기 때문에 자신들도 핵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변한다. 이것이 피상적인 출발점이다. 그러나 북핵 사태 2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경수로 건설, 핵포기 선언 번복, 핵실험, 키리졸브와 독수리 훈련, 연평도 사태, 천안함 사태, 개성공단, 영변 핵시설 공격 시나리오, 북한 급변사태를 상정한 작전계획... 수도 없이 많은 변수들이 20년 동안 존재해왔고 이 변수들이 뒤엉켜 있는 상황에서 일방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사실 무의미해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전후를 따져보고 서로의 입장에 서보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상대방에게 떠넘기기 급급하니 사태가 진정되기는커녕 더욱 악화일로를 걷는 것이다.


대화의 전제조건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인정이다. 이해와 인정은 자신의 자리에서 나와 상대방의 입장에 잠시나마 서보는 것으로 출발한다. 사실 한국은 왜 조선이 저렇게까지 독하게 마음 먹고 죽자고 덤비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다. 바로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벼량 끝에 서있다고 판단한 조선이 이번에는 제대로 밀어붙여 보겠다고 덤비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물론 조선도 미국이나 한국이 왜 이처럼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맞장구를 치는지 다 알 것이다. 그런데 결국 그 모든 피해는 한반도가 떠안아야 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 않은가! 한국과 조선은 서로가 서로를 불쌍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맞다.
사람이 타인에 대해 측은한 마음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이면서 동양의 주요한 덕목 중 하나이다. 측은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단순한 연민과 동정의 마음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 그리고 다시 이해는 항상 입장 바꿔 생각해보는 과정을 요청한다. 만약 한국과 조선이 서로의 입장에 잠시나마 서서 서로를 이해하고 측은한 마음을 갖는다면 지금과 같은 악화일로 대결의 길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신뢰프로세스의 정체일 것이다. 문제는 누가 먼저 자신의 자리에서 나와 상대방의 자리에 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누가 할 것인가?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쪽인가, 아니면 맞은 편에 서 있는 쪽인가? 조금의 상식만 있다면 이 문제에 대한 답이 이미 있을 것이다.


정말로 한반도가 전쟁위기, 불바다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원한다면 더 이상 미룰 필요가 없다. 과연 이 기나긴 줄다리기를 통해 얻게 될 이익이 그 기간 동안 가슴 졸이며 위기의식을 느끼며 잃는 것보다 클까? 내가 보기에는 전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이 먼저 조선의 입장에 한 번 서보기를 권한다. 그때 진정성 있는 대회제의가 나올 것이고 조선도 그 진정성을 받아들일 것이다. 한국이 스스로 큰 나라라고 생각하고 한반도의 맏형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제 통 큰 발상을 해야 할 때이다. put South Korea on North Korea's pl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