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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망한다 고로 존재한다.성금요일 아침에
허종  |  paulhu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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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03월 29일 (금) 16:03:14
최종편집 : 2013년 03월 29일 (금) 17:53:59 [조회수 : 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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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성금요일을 보내면서 내 머리에서 맴도는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조리한 세상을 보며 절망했었다.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더러운 세상에서 살면서 수없이 절망을 했었다.
그리고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고 죽음의 길을 선택했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목회의 길을 걷게 되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세계가 있었다.
그리고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며 절망하기 시작했다.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비난과 배신, 조롱과 치욕과 수치, 고통과 괴로움, 절망과 죽음.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라고 하셨던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절규하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고난주간을 보내는데 선배목사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구 하나 오라고 하지 않았지만 혼자 기차를 타고 장례식장을 찾아가 문상을 했다.
나는 낯을 많이 가려 내가 아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다.
고인은 은퇴하신 목사님 중에서 내가 아는 유일하신 선배목사이시다.
그렇다고 고인과 많은 만남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멀리서 사시는 이야기를 듣는 정도였었다.
고인이 나를 아실지는 나도 확신은 없다.
그래도 나는 고인을 안다고 생각해서 장례식장에 갔다.

문상을 하고 아는 사람이 없어 혼자 밥을 먹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이다.
산 사람들이 문상을 와서 밥을 먹고 있다.
고인의 아들이 '오늘은 수요일이라 목사님들은 어제 문상을 다녀가셨다.'고 말을 전했다.
늦은 시간에 수요예배를 마친 후배목사들이 하나 둘 문상을 왔다.
고인의 살아 생전의 이야기를 나누고...
열명정도 남은 사람들과 하룻밤을 자고 화장장에서 고인과 작별을 했다.
상주들과 고인의 몇명 절친들은 유골을 가지고 대관령으로 떠나고
나는 기차를 타고 내가 사는 순천으로 돌아왔다.

성금요일을 보내면서 절망하는 나를 본다.
어린 시절에는 더러운 세상을 보며 절망을 했었는데
지금은 타락한 교회를 보며 절망을 한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는 <밥을 먹고 안 먹고>의 차이였다.
그랬다. 살아있으나 모두 실상은 죽은 자들이다.
나도 죽은 자이다.
교회가 죽었으니 교회에 속한 나도 죽은 것이다.
고인의 시신을 화장하는 동안 산 사람들은 화장장 식당에서 또 밥을 먹었다.

<나는 절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성금요일에 절망한다는 생각이 내 머리에서 계속 맴돌고 있다.
절망하면서도 아직 밥을 먹고 살아있다는 것은 할 일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할 일이 너무 많은데 무능력해서 나는 또 절망한다.
루터의 기도가 생각났다.
"나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여기 내가 서 있나이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
종교재판을 받으면서 한 루터의 기도를 생각하며서
<내가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그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나는 절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절망하는 순간 하나님만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 되셨다.
장례식장에서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고난주간에 선배목사님이 소천하신 뜻이 있었다.
더 많이 더 깊이 절망하라고...
성금요일을 보내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아직도 나는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성금요일을 보내며 내가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길을 찾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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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196.234.24)
2013-03-29 22:24:10
"나는 절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목사님은 무거운 신앙고백를 들으려
십자가고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맞습니다.
육적으로 십자가 죽음은 분명히 고난과 절망의 길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현재 걷고 계시는
절망과 고난의 길은 혼자서만 걷고 있는
외로운 길이 아닙니다.

지구 곳곳에서 수많은 깨어있는 무명의 의인들이
그 고난의 길을 함께 걷고 있습니다.

그 길은 패배를 향한 길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진리와 승리를 향한 유일한 좁은 길입니다.

이유는 명백합니다.
그 고난의 길에 하나님과 예수님이
함께 동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존재계에서
"너는 지옥이다" 라고 절망하는
존재들은 인간들 밖에 없습니다.

존재계에서 너는 지옥이 아니라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인간들도 본래의 너는
지옥으로 창조되지 않았습다.
천국으로 창조 되었습니다.

그 "천국인 너" 를 "지옥인 너"로
재창조 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 입니다.
인간들의 이기심과 탐욕이
너를 지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이기심과 탐욕이
성경에 나오는 원죄입니다.

원죄 때문에 인간들은
"지옥인 너" 를 "천국의 너" 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옥인 나" 를
"천국인 나 " 로 바꿀 수는 있습니다.

내가 천국으로 변하면
너는 나에게 천국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은 존제계를
내가 다가가는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오도록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숲을 지키고 있는 나무들은 인간들의 눈에
쓸모없고 못난 나무들입니다. 쓸모있는 나무들은
모두 베여져서 인간탐욕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인간들의 생명을 이 지구상에서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것은 현대과학물질문명이 아닙니다.
아마존밀림, 오대주에 걸쳐 버려져 자라고 있는
쓸모없는 나무들과 그 나무들이 자라는 숲입니다.

그 숲과 나무들이 내품은 산소들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숨을쉬며 지구에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나는 절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목사님같은
분들은 숲 속에서 자라고 있는 한 그루 나무들입니다.
주위에서 아무도 그 존재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고독하고 외롭고
힘든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예수님은 알고 계시고
"못난 종아" 하시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름도 빛도 없는 바로 그 의인들 때문에
하나님은 이 탐욕으로 가득 찬 지구를 파멸시키지 않고
인내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 분들이야 말로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성을
심판하기 전에 애타게 찾고 계셨던 의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금요일 아침, 목사님의 글을 읽고
잠시 십자가, 고난, 절망, 고통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은
자유함과 평강이 함께하는 승리의 길입니다.
어떠한 두려움이 잇을 수 없습니다.

목사님의 아름다운 부활절 멧세지 고맙습니다.
강건하시 길 빕니다.

버지니아 숲 속에서
박평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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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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