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을 지키는 것은 필요한가?’ 답은 당연히 ‘필요하다’이다. 그러나 ‘원칙은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엔 조금 당황할 수도 있다. 그럼, ‘인간관계가 깨지고 더 나은 가치가 무너질 때도 원칙은 지켜야 하는가?’ 이쯤 되면, 아마도 ‘아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원칙이란 법일 수도 있고, 규칙일 수도 있고, 종교적 가치나 도덕적 가치일 수도 있다. 사회적 통념으로 세운 기대일 수도 있고, 개인적 신념에서 비롯된 가치일 수도 있다. 어쨌든 원칙이나 규범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지키다가는 더 큰 손해와 사회적 변형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원칙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여 절대로 뒤로 물러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 그게 개인적 신념일 뿐인데도 말이다. 이럴 때 사회적으로 ‘고집불통’이란 말이나 ‘보수 꼴통’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한 동안은 그게 법칙이요 원칙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아니면 사회 구성원이 바뀌면서, 더 이상 원칙으로 인정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사회 구성원의 요청으로 그 원칙을 바꾸면 되니까.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어도 원칙이 그대로 맞는 가치일 때는 어째야 할까? 원칙을 지키면 된다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원칙을 지키는 게 더 큰 희생과 사회적 균열을 초래할 수도 있을 때는 결단이 필요하다.

이때 등장하는 사회적 합의가 바로 ‘타협’이라는 장치다. 실은 정치는 원칙과 타협의 기묘한 줄다리기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선진국은 여야가 이 줄다리기를 예술적으로 하는 나라다. 원칙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때론 타협함으로 더 큰 기대효과와 사회적 안정을 지켜낼 수 있다. 타협한다고 불법을 저지르는 건 아니다.

바울이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리는 문제가 있었다. 그건 이미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논의를 거쳐 받지 않아도 되는 할례와 율법을 지키는 문제였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바울이 율법을 무시한다고 여겨 정죄했다. 야고보의 중재로 바울일행은 결례를 행하고 들어가는 비용까지 계산한다.

이미 공의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할례가 아니라 세례만 받아도 된다는 원칙이 세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야고보의 제안을 따라 결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임을 드러낸다. 한마디로 바울은 원칙을 깬 것이다. 더군다나 그 원칙의 선봉에 있던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 야고보는 바울더러 그 원칙을 잠깐 깨라고 지시한 것이다.

원칙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자신이 고집과 주장만으로 사회가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대의를 위해 자신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은 무조건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보다 사회를 더 밝게 만들 수 있다. 원칙과 타협, 하나님의 사람은 천국을 실현하기 위해 이 둘의 관계 속에서 익어가는 ‘ 샬롬’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