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차드 도킨스의 책 <만들어진 신>에는 신존재를 증명하려는 기독교회의 여러 노력들에 대해 평가하는 내용이 있다. 그의 주장은 그 모든 논증들이 부실하며 신존재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의 주장과 같이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은 실패했다.
신 존재를 증명하지 못했기에 신 부재가 증명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신 부재는 신 존재 증명의 실패로 인해 자동적으로 증명되는 사안이 아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면 신 존재 증명의 실패 여부와 별개로 증명되어야 한다. 신 부재를 증명한다는 주장들을 별도로 다루지 않았지만 증명이라는 면에서는 존재 증명과 다르지 않다. 신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 부재도 증명할 수 없다.
왜 그런가? 신에 대한 증명이 존재이든지 부재이든지 간에 증명의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증명할 수 있는 영역은 한계가 있다. 인간이 존재하고 있는 우주 내부에 대해서만 증명 가능하다는 한계이다. 우주를 넘어서는 영역에 대해서는 인간 이성으로 증명이 불가능하다. 우주 바깥 영역에 대해서는 증명이 불가능한 것이다. 사후 세계로서의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증명할 수는 없다. 지옥이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도 마찬가지이다.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나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나 그것을 증명해낼 수는 없다. 인간의 사고로 증명 가능한 영역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영구적으로 녹이 슬지 않는 합금으로 가로 100m, 세로 100m, 높이 100m의 사각형 함을 이중으로 만들었다고 하자. 바깥쪽은 각각 5m 씩 더 크게 만들어 공간을 둔다. 사면은 미끄러워 그 면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위쪽에는 시간 장치를 한 발광체를 만들어 정해진 시간 간격으로 켜졌다가 꺼지도록 한다. 아래쪽에는 지구의 오대양 육대주를 축소한 것과 같이 공간을 20m의 높이 정도로 만든다. 아주 작은 식물들을 심고 미생물들도 살게 한다. 오늘날의 과학으로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지구에서의 자연 현상이 재현되도록 만들었다고 하자. 그곳에 개미를 살게 한다고 하자. 그 개미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진화한다.
세월이 흘러서 거의 불가능한 벽을 타고 오르면서 위쪽으로 가게 되었다. 땅 속으로 들어가서 바닥까지 도달하여 어떠한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개미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함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한정된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개미는 그 함 밖에 대해 알 수가 없다. 개미의 능력으로는 함 밖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함 밖을 알 수 있는 그 무엇도 개미에게 없기 때문이다. 함 밖에서 정보가 제공되기 전까지는 함 밖에 대해 알 수 없다. 개미끼리 함 밖의 무엇인가에 대한 증명을 운운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 함을 만든 인간에 대한 정보가 담긴 글을 발견하였다고 하자. 개미는 그 정보에 대해 수용하느냐 수용하지 않느냐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정보를 수용하는 개미에 대해 그것에 대해 증명하라고 한다고 증명하지는 못한다. 그 정보를 수용하지 않는 개미에 대해 그 입장에 대해 증명하라고 하면 역시나 증명하지 못한다. 개미의 한계로 인해 증명할 수가 없다.
신 존재나 부재에 대한 증명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신은 우주 안에 내재된 어떤 존재가 아니다. 우주를 초월하는 어떤 존재이다. 아무리 지성이 발달해도 인간의 지성은 우주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우주를 초월하는 존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증명할 수가 없다. 우주를 넘어서는 그 무엇에 대한 정보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외부로부터 주어질 뿐이다. 인간은 그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거나 선택을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인간의 자유이다.
기독교 내에서도 신 존재를 증명하겠다는 유혹을 떨쳐야 한다. 신 존재를 증명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은 없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많은 신자들이 신 존재를 증명하겠다며 다양한 논리를 제시하지만 불신자들에게 하나같이 반박을 당한다. 그 어떤 논리를 제시하든지 그것을 반박하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아주 특별하고 새로운 논리라고 하더라도 반박을 당하는 데에는 그렇게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신의 존재는 논리로 증명할 수 없으며 논리에 의해 수용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에서 이야기된 것으로 충분하다. 논리적으로 신 존재를 증명하려는 불필요한 노력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신존재를 증명하지 못했기에 신부재가 옳은 것인양 생각하는 유치원생들과 같은 사고를 하는 이들의 문제를 언급할 필요를 느낀다. 그 사고가 얼마나 유치한지를 알아야 하는데, 당사자들은 전혀 아니다. 신존재를 증명하지 못하였기에 신부재가 증명되기라도 한 양 생각한다. 자신들이 할 일은 하지 않고 아니 못하면서 남에게 기대어 자신의 주장이 확증된 것처럼 여기는 태도의 유치함이다.
과학을 생각해보자. 창조를 증명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진화가 증명된 것인가? 진화론자들이 창조를 증명하지 못했으니 진화가 증명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가? 전혀 아니다. 제대로 된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장 자체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이 성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성공할 수 없지만 그 태도 자체는 옳다. 자신들의 주장에 대해 스스로 증명하겠다는 태도 말이다.
신존재나 신부재나 모두 증명 불가능하다. 증명 불가능한 것을 근거로 무엇인가를 주장하려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인간에게 찾아오는 신에 대해 수용과 불용이 있을 뿐이다. 수용한 이들은 수용한 이로서 살아가는 것이고 불용한 이들은 불용한 이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수용한 이들이 수용한 이에게 요구되는 삶의 원리를 바르게 깨우치지 못하고서 신의 뜻에 반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시대에 요구되는 삶의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 원리에서 벗어나는 삶을 사는 것이 문제이다. 선이 아니라 악을 택하고 살아가는 문제를 해소하여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