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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으신다면한국 교회 교우님들께 드리는 류상태의 주일편지 - 2013년 3월 3일
류상태  |  sham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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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03월 02일 (토) 10:53:48
최종편집 : 2013년 03월 02일 (토) 20:00:43 [조회수 : 6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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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저에게 “왜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으신다면, 한 마디로 명쾌하기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기독교 입문 초창기인 대학시절과, 신학대학원 입학 이후 목회활동 초창기까지, 그리고 목사 안수를 받은 지 몇 년이 지난 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세 번에 걸쳐 저의 대답이 조금씩 달라졌을 뿐 아니라 세 번째 단계에 와 있는 지금이라고 해서 지난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에 담긴 의미를 버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 오늘은, 제가 지나왔던 신앙의 세 가지 단계를 교우님들과 나눔으로서 ‘바람직한 신앙과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1.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교우님들께 왜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구원받기 위해서”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과 그 외아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간다. 그래서 믿는다.”라는 것이 대부분의 우리 한국 교회 교우님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이유’입니다.

이 대답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간다는 보수적인 믿음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저 또한 그런 믿음을 갖고 있었으며 지금도 그 믿음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에게는 아이 둘이 있습니다. 지금은 다 큰 성년이 되었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제 목에 매달리며 잘 하던 말이 있습니다. “아빠, 난 아빠가 좋아.” 아이의 갑작스런 말에 “아빠가 왜 좋은데?”하고 물으면 아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씩씩하고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빠가 맛있는 거 사 주잖아. 아빠가 장난감 사 주잖아.”

아이의 말을 들으며 조금은 섭섭한 생각이 들어 볼을 잡고 흔들며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놈, 너 사실은 아빠보다, 맛있는 게 좋은 거구, 장난감이 좋은 거로구나.” 아이나 아빠나 다 어리고 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깊은 사랑보다 부모가 사주는 장난감, 맛있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어린아이다운 순수함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믿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신앙의 길로 들어선 초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보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그 무엇에 더 관심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엄마 아빠는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당연히 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린아이처럼, 기독교 신앙에 처음 눈을 뜨던 초창기에는 하나님께서 제가 원하는 모든 걸 당연히 들어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게 하나님을 믿는 이유였기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보다는 그저 제 욕심대로 기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는 교우님들이 잘 하시는 기도가 있습니다. “사업 탈 없이 잘되게 해 주시고, 딸 아들 대학 잘 들어가게 해 주세요...” 그리고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신앙생활 잘 하니까, 어쩌면 하나님께서 큰 복을 내려주실 지도 몰라.”라는 생각에 복권을 사 놓고 당첨되기를 기다리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진정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면, 열심히 기도한다고 해서 원하는 걸 모두 들어주시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7, 개역개정)고 약속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 앞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지만 동시에 ‘공평하고 정의로우신 하나님’으로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뿐 아니라 공평성과 정의가 함께 충족되려면, 적어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구별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떼를 쓰고 매달린다고 해서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들어주신다면 하나님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이런 식의 조건적이고 이기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기 어려워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않을 뿐 아니라 쉽게 흔들리게 됩니다. 저 역시 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동안 많이 흔들렸던 것 같습니다.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조급해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정말로 존재하시는 것인지 많이 의심하기도 하였습니다.


2. 올바로 잘 살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나는 왜 하나님을 믿는가?”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대해 제가 찾았던 다음 단계의 대답은 “잘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인생을 바로 살기 위해서는, 잘 살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식이 어렸을 때는 부모님에게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고 조르기만 합니다. 해 주면 좋아하고 안 해 주면 싫어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 아빠에 대한 이해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과자 사주고 장난감 사줘서 좋은 게 아니라, 엄마 아빠의 사랑과 보호 속에 산다는 것, 그리고 부모님의 애정 어린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가 철이 들수록 엄마 아빠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엄마 아빠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들입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아이는 부모 말씀을 따르는 것이 자기에게 보편적으로 유익하며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더욱 더 깨닫습니다. 저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을 하며 자라다 보니, 하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게 잘 사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할 때, 자동차를 만든 사람의 의도대로 운전합니다. 가고 싶으면 가속기를 밟고, 서고 싶으면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거꾸로 하면 큰일 납니다. 자동차의 매뉴얼대로 운전을 해야 자동차가 우리에게 유익을 줍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도, 프로그래머의 의도에 따라야 좋은 자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살려면, 세상을 존재하게 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몇 가지 매뉴얼을 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이라는 매뉴얼, 양심이라는 매뉴얼, 그리고 성서라는 매뉴얼입니다.

자연의 흐름과 이치를 살펴보며 하나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저 자신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자 애쓰며 어느덧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서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고자 애쓰고 노력할 때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저 자신의 삶도 행복해진다는 것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자라다가 어느 순간에 부모의 보호와 가르침이 간섭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듯이,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자라다 보니, 하나님을 믿으며 순종하는 삶이 저의 자유로운 삶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저의 삶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는 것임을 순간순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참으로 잘 살기 위해서는, 사람답게 살고, 행복하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삶 속에서 체험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며 하나님과의 밀월을 즐겼던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3. 당연한 도리라 생각하기에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두번째 단계를 넘어서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잘 살기 위해서, 의미있게 살기 위해서, 무엇무엇을 위해서’ 등의 모든 조건들을 넘어, 그냥 “하나님을 믿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기에 믿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고 섬기는데 무슨 조건이 필요하겠습니까? 부모가 잘 해주시건 못해 주시건,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건 당연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라도 제 부모에게 효도할 줄 모르면 불효자식이듯이, 저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므로, 생명주신 하늘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은 모든 조건을 넘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부르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하나님’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자식이 생명주신 부모님께 조건 없이 효도하는 게 당연하듯이, “나를 구원해 주시니까, 영생을 주시니까, 천국 보내 주시니까, 혹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내가 잘 되니까...” 그런 모든 조건을 넘어 그냥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 아버지를 공경하며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그것이 지금 제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이유입니다.

어린 아이가 어리기에 “엄마 이거 해 줘, 아빠 저거 해 줘” 하고 매달리는 건 예쁘고 귀엽습니다. 그러나 성년이 되어서도 “부모님이 뭐 해 주시려나?”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으면 슬픈 일입니다. 성년이 되면 생각도 걸맞게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살아야 부모님께서 기뻐하실까?”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신앙도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의 신앙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의 신앙으로 바뀌어야 우리 한국 교회도 살고 교우님들도 더욱 행복해질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빛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물음과 고민이 우리 신앙의 주된 관심사가 될 때, 우리 한국 교회는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고 존경받는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날이 속히 오기를 빌며,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믿음으로 온전한 삶을 살아가시는 교우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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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mail-x (36.38.194.181)
2013-03-10 08:25:52
연역적, 귀납적 이 따위 단어를 쓰려는 개독님들께 드리는 충고
.



연역적, 귀납적, 가설, 테제, 과학, 논리, 이성, 합리성, 생물학 등의 단어는 개독들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개독들이 이런 단어를 말할 때는 99.9% 전혀 개념을 이해하지 못 하는 상황에서 쓰는 것입니다.

전에도 썼지만 인간이 어떤 단어나 어휘를 쓴다는 것(글을 쓴다든지 말을 한다든지 복수의 사람이 관계된 상황)은 상대와 개념이 같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같지 않다면 대화 자체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개독들은 정상인들과 개념이 다릅니다. 대개 기독교에 대해서 좀 공부하기 시작하고 신학을 좀 알고 이런 분들이 자신들이 논리적 우위성을 갖추었다는 생각에 개독들을 계몽하고자 개독들과 대화와 소통을 시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신이 아는 지식을 통해 상세히 설명하며 개독이 자신의 글에 어떤 답변을 하면 그 답변이 어떤 논리적 결함이나 문제가 있는지 또 다시 자세히 풀어줍니다. 하지만 한 번도 개독과는 소통된다거나 대화가 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 하며 ‘시지프스의 돌굴리기’나 ‘뫼비우스의 띠’에 영원히 갇혀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실은, 우리 이전의 위인들과 선현들이 ‘개독’들에 대해 평가한 기록을 보면 다양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같이 ‘개독들’과 이성을 가지고 대화나 소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준엄한 평가입니다. 그 분들도 개독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셨을 것이며 그들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 역시 단 한 명도 개독들과 소통한 분은 안 계십니다. 선현들 중 “나는 그래도 한 번은 개독과 소통한 적이 있다”라고 고백하신 분은 한 분 도 안 계십니다.

'이해 불가능한 명제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조롱뿐이다. 이성이 작용할 수 있으려면 먼저 개념이 정확해야한다. 교인들 누구도 명확한 삼위일체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자칭 예수의 사제라는 협잡꾼들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기독교는 인류가 갈고 닦은 것 중에서 가장 타락한 시스템이다."
'우리 기관에 신학 교수직을 두어서는 안 된다."

-토머스 제퍼슨-

다른 분들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지만 제퍼슨은 우리 정상인들이 개독과 대화나 소통을 하려는 노력은 왜 무의미 한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통’ 혹은 ‘대화’라는 메커니즘이 성립하려면 먼저 이 때 쓰는 도구들의 개념이 일치해야 합니다. 인간은 언어로 소통하고 대화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개독들이 인간과 같은 사고능력이나 개념체계를 가지고 있을거라고 먼저 전제합니다. 이것이 바로 연역적 사고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당연하게 전제하는 것이지요. 같은 눈과 코 귀 입을 가졌기에 그 모습을 보고 같은 정상인이라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독들은 그저 겉보기에는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뿐 그리고 같은 언어와 글을 쓰고 있지만 그들이 쓰는 언어는 우리 정상인에 속하는 인간과는 전혀 다른 개념과 가치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중증 ‘정신병’ 환자나 ‘치매’환자 같은 경우입니다. 이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또 인간의 언어를 쓰고 있지만 이들과 대화와 소통을 하지 못 합니다. 이들의 뇌 속에서 형성되는 단어나 어휘의 개념이나 사고체계는 완전히 인간의 속성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치료해야 할 대상이지 소통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인간들은 ‘개독’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이들을 이해시키려 노력합니다. 그것을 보는 저는 짠합니다. 왜냐하면 그래도 우리 정상인들은 인간성을 저버리지 못 했구나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T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들은 어떤 방법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좀비가 되듯이 ‘J 바이러스’* 에 뇌 속의 유전자가 손상된 자들은 어떤 이성, 합리, 과학, 논리 등의 방법으로도 인간으로 정상복귀 시키지 못 합니다. 좀비와 같이 폐기처분 해야 할 대상일 뿐이죠. 그래서 제퍼슨은 개독들에게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조롱’뿐이라고 한 것입니다. 실제 남달리 풍부한 동정심과 인간성을 가지고 또한 오랜 끈기와 참을성을 가진 어떤 인간 분들은 “설마 그럴 리가?” 하면서 온갖 노력을 기울여보지만 결론은 항상 실패로 끝납니다. 인간으로서 개독과 소통에 성공했다는 기록은 역사 이래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혹시 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면 제게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이들은 개독과 소통하려다가 참담하고 허망한 상처를 가슴에 무수히 남기고서야 “아, 개독에 대한 선현들 특히, 제퍼슨의 말이 진리구나”하고 깨닫습니다. 착한 성품을 가진 인간이 개독과의 관계 속에서 겪어야 할 어쩌면 운명 같은 것이지요.

임빌립을 비롯한 개독들의 주장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좀 살펴보지요. ‘신’은 아주 많습니다. 우리가 한 번 쯤은 들어 본 그리스의 신이나 북유럽의 토르 혹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믿는 신들 그리고 심지어 인도나 일본의 신들은 몇 십만이 됩니다. 그런데 이들 신의 존재에 대한 가부에 대한 주장을 임빌립이나 박창진 같이 존재에 대한 증명도 비존재에 대한 증명도 불가능하니 증명하지 못하는 한 실재하는 것이며 이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한다면 얼마나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겠습니까? 누군가 어떤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면 이 어떤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인간들은 일일이 증명해야 합니다. 수백만의 신들에 대해서 각기 말입니다. 따라서 어떤 신의 존재에 대한 입증 책임은 그래서 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지는 것이지 있을 확률도 있고 없을 확률도 있으니 어차피 입증을 서로 못한다면 내가 믿는 신은 존재하는 것이고 이것은 진리라고 하는 주장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주장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임빌립, 박창진을 비롯한 개독들은 다른 수백만의 신들 역시 존재하지 않음을 밝혀야죠. 야훼 녀석은 자신이 유일신이라고 했으니까요. 다른 신들의 존재에 대한 부정을 확정하지 못하면 유일신이 아닌 것이죠.

‘연역적’ ‘귀납적’ 이라는 단어를 요즘 자주 쓰는데 이것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저는 예를 드는 것을 좋아하니 한 번 봅시다.

1. 아담은 야훼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다.
2. 아담은 자신의 몸에 ‘자지’를 가지고 있다.
3. 그러므로 야훼는 ‘자지’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3단 논법입니다. 어떠한 논리적 결함도 없지요.
여기서 우리 정상인들은 몇 가지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첫째, 야훼는 자신의 ‘자지’를 어떤 용도로 썼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정상인들 그리고 심지어 개독들도 자신의 ‘자지’를 대개 두 가지로 씁니다. ‘섹스’와 ‘요도’의 기능입니다. 물론 개독들은 정상인들보다 특히 먹사들은 ‘요도’의 기능보다는 ‘섹스’의 기능에 충실하다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말입니다.

만약, 야훼가 인간과 같은 용도로 쓴다면 섹스를 하려면 대상이 필요하니까 ‘여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훼도 오줌을 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아... 물론 개독들은 발끈하겠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개독들의 논리에 따르면 어차피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니 나로서는 야훼가 여신과 섹스하고 오줌도 누는 존재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지요. 하지만 사실이고 실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개독의 논리는 사실 우리 정상인들이 가져와 쓰기에 너무 편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나는 개독들의 논리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개독들의 허구성과 망상을 별다른 노력 없이도 밝힐 수가 있거든요. 단지 그들의 주장을 이용해서 말입니다.

좀 더 확장해보면 야훼가 여신과 떡을 친다는 사실은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과 함께 야훼가 유일신이 아니라는 강력한 반증입니다. 또한 야훼가 오줌을 눈다는 것은 뭔가 인간처럼 물이든 뭐든 마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약간 더 유추한다면 야훼가 인간처럼 똥도 눌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아담’은 똥구멍도 가지고 있으니까요.
여하튼 이처럼 우리는 개독경 구절을 하나 붙잡고 여러 가지 과학적이며 논리적인 유추를 하고 또한 부수적으로는 개독들의 주장을 이용하여 개독경이나 야훼 혹은 예수의 숨겨진 사실을 밝혀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멋진 예가 있습니다.
예수의 젊은 시절에 관한 것인데 아직 지구상 그 누구도 예수에 대해 이런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지요. 오직 나 도끼만의 사상이니까요.
후대 사가들은 아마도 ‘도끼설’이라고 이름 붙이겠지요.

이 예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재미와 교양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리고 예수가 어떤 젊은 시절을 보냈는지에 대해서도 단서를 제공합니다.
원하는 분들이 계시면 또 전해드리기로 하지요.

그럼...





.

























































































뱀발 : * J 바이러스 - jesus virus

교회에서 세상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내뿜는 바이러스

이 바이러스의 특징은 감염되어도 숙주의 외향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오직 숙주의 뇌 속 신경세포만 점령

하여 숙주를 조종한다.


감염된 숙주는 또 다른 숙주를 감염시키기 위해 활동하며

이 과정에서 폭력과 협박 거짓과 공갈, 전쟁 등의 방식을

자주 선호하기도 한다.


'j 바이러스'는 감염되면 특히 인간의 대뇌피질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며 이성과 합리성의 영역을 완전히 망가뜨린다.

그러나 반면에 '변연계'의 활성화를 이끌며 그 중 특히

온화, 온유, 공감, 사랑 등의 감정은 억제시키고 파괴, 반목,

질시, 분노, 폭력성 등의 기전은 무척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치료제는 없으며 인류는 2000년 동안

치료제 개발에 애써 왔으나 성공한 예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평소에 뇌 운동-이성, 지성,

합리성, 과학성, 윤리, 도덕 등의 사고를 강화시켜서 바이러스가 활동

할 수 없는 면역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일단 감염되면 치료방법이 현재로서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바이러스를 영화의 좀비바이러스에 비유하기도 한다.

.
리플달기
1 12
익명 (24.141.4.52)
2013-03-11 12:12:42
이 메세지는 3일 후에 삭제하겠습니다.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리플달기
0 0
돌아온 도끼 (112.222.123.131)
2013-03-11 23:02:31
시간 되면 메일 드립니다.
.

지우셔도 됩니다.

.
리플달기
0 0
Philip Im (66.138.28.106)
2013-03-10 12:49:46
‘소통’ 혹은 ‘대화’라는 메커니즘이 성립하려면 먼저 이 때 쓰는 도구들의 개념이 일치해야 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고 제대로 사용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예를 들어 보자면 이스마엘도끼(?)님은 다음의 예를 들었습니다.
"1. 아담은 야훼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다.
2. 아담은 자신의 몸에 ‘**’를 가지고 있다.
3. 그러므로 야훼는 ‘**’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3단 논법입니다. 어떠한 논리적 결함도 없지요."

먼저 이논리가 전혀 결함이 없다고 했지만 착각입니다.
아주 기본입니다.
2는 야훼는 **을 가자고 있다.
3은 따라서 아담은 **을 가지고 있다라고 해야 합니다.

물론 이 논리도 형식적으로는 바른지 몰라도 내용은 잘못된 것입니다.

먼저 야훼가 어떤 분인지에 대하여 개념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야훼는 성경에 나오는 분입니다. 따라서 올바른 개념을 성경에서 찾아야지 자기 머리 속에서 상상한 것을 찾아서는 안되지요.

둘째 형상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 입니다.성경에서는 A라는 개념으로 말하고 있는데 B라는 개념으로 자기 마음대로 정하고서는 논리를 펼치니 어떻게 내용이 바르며 대화가 가능한지요?

도구의 개념이 일치해야 한다고 말하고서는 다른 개념으로 조롱하는 것은 어떤 수사법인지 모르겠으나 참 한심함을 지나 두심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리플달기
2 1
Philip Im (70.62.49.64)
2013-03-09 05:05:45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것이 대기업은 갑이고 하청업체는 을입니다.
그 하청업체가 때로는 대기업 지가 뭔데 내가 갖고 있는 좋은 물건 주지 않으면 어떻게 물건 만들어 하고 소리칩니다. 그런데 막상 물건 납품하러 가면 그런 소리 하기가 힘듭니다. 실제로 하청업체의 그 물건이 아니면 안되는 경우도 있어 대기업에서 다른 소리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보아 하청업체는 을입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 앞에서 구원에 관하여 경우의 수가 둘이다. 내가 하나님과 계약을 맺거나 맺지 않거나 하는 두 가지 경우라고 주장합니다.

이 경우 우리가 생각할 것은 구원과 관련하여 계약을 맺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위의 주장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기로 했는데
사람인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인 내가 갑이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런가요?

내 스스로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구원의 조건에 대하여 내가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조건에 대하여 내가 받아들이건 아니건 관계없이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만 구원을 허락하신다는 하나의 경우의 수 밖에 없습니다.
그점에 대하여 인간은 인간의 측면에서 여러 경우의 수를 갖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생각일 뿐입니다.

어떤 교단에서는 인간의 노력을 상당히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기 때문에 구원이 가능함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구원의 갈을 닫아버리시면 아무리 내가 구원을 얻겠다고 하여도 불가능합니다.

경우의 수는 둘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관점에서 나온 것이지요.
구원은 하나님께서 베푸십니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 구원을 가지겠다고 해도 구원에 관하여는 경우의 수가 하나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전제로 하고서 내가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따라 경우의 수가 둘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관점일 따름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그 결과에 대한 경우는 '내가 믿는다'는 것이지 '내가 안 믿는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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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mail-x (112.222.123.131)
2013-03-08 13:47:54
아니죠, 경우의 수는 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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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의 수는 하나입니다.
1. 어떤 일에 대하여 경우의 수를 따질 때 제대로 다 열거하지를 못합니다. 인간의 한계입니다. 생각지 못한 경우의 수로 낭패를 당하기도 합니다.

☞ 다 열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든지...

2. 이번 WBC게임에서 한국이 첫번째 게임에서 패한 후 2차전에 갈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리고 2차전에 갈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몇 가지 있었지만 결국 탈락했습니다.

☞ 글쎄... 별로 관계없는 이야기 같은데?...

3. 반대로 제가 여기 댓글 다시는 분 가운데 만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몇개일까요? 다 따지기 힘들 겁니다.

☞ 수학적으로 말씀하셔야지요. 당신의 망상 속의 경우의 수 말고...

4. 그러나 복잡하게 보이지만 사실 경우의 수는 단 한가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로 약속하면 다른 경우의 수는 필요없습니다.

☞ 왜 만나야 하는데요?^^

5. 인간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해서 이 조건 저 조건 갖다 붙이고 하나님은 이 몇가지 조건에서만 행해야하니 전지전능하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다고 했는데 당신은 오해하지 않고 100% 다 이해한다는 건가요? 99%의 이해나 1%의 이해나 100%가 아니라면 같은 결과라는 것을 알고 있나요? 당신의 말은 당신을 포함한 사람(글자 그대로 ‘호모 사피엔스’의 의미)들이 하나임의 말씀을 오해할 수 있다는 건가요? 아니면 당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만이 오해한다는 건가요? 만약, 후자라면 어떤 이유로 당신만은 제외된다는 건가요? 혹은 사람(호모 사피엔스)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다면 당신은 사람이 아닌 신과 사람 사이의 어떤 특수한 존재라는 뜻인가요?

6. 일단 인간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인간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이야기는 진전할 수 없습니다.

☞ 뭐, 좋습니다. 그렇게 인정하고 진행합시다.^^

7. 그 다음 단계는 인간이 구원의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의 조건을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지요.

☞ 이것도 맞습니다. 인정합니다.^^

8. 제가 댓글 다시는 분 가운데 한 분과 약속하고서 제가 지키지 않거나 어떤 분이 지키지 않으면 서로 만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 옳습니다.

9. 이 지점에서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 경우의 수를 열심히 머리 굴려 생각하고 그 경우의 수 가운데 하나를 자기가 선택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 저는 참... 이런 대목에서 웃음보가 터지고 맙니다 그려.^^ 개독들은 흔히 말하기를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진리가 아닙니다”라고 하는데 이처럼 우스운 말이 어디 있습니까? 누군가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라고 이야기 하려면 반드시 전제가 필요합니다. 이미 이 문장 자체에서 이 문장을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이라는 존재의 사고방식이나 속성을 다 이해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만약 1%가 부족한 99%를 이해한다고 해도 성립할 수 없는 명제가 됩니다. 지금 내가 말하는 이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생각하는데 당신들 머리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 나쁜 돌머리들 굴리지 마시고 그냥 논리학 강사나 선생에게 물어보세요. 왜 100%가 아니면 성립 불가능한지 말입니다. 말하자면 글쓴이는 ‘야훼’의 행동양식을 훤히 꿰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거 얼마나 황당한 주장입니까? 야훼는 입빌립에게 자신의 방식은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 한 적도 없고 또 임빌립에게 자신의 방식이 이러하고 저러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라고 명한 적도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야훼는 임빌립이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라고 주장한 것에 대하여 어떤 상관도 한 적이 없으며 어떤 긍정도 한 적이 없습니다.

10. 아 물론 그렇게 하겠다는 분을 누가 말리겠습니까? 존중합니다.

☞ 뭐, 하든지 말든지 ㅋㅋㅋ...

11. 하나님께서는 단 하나의 경우의 수(? 이것은 인생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확률 100%입니다.)만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아주 쉽게.

☞ 그건 니 생각이구요.....^^

12.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쉽다고 쉬운 것이 아님을 스스로 느끼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렵지요.

☞ 사실 나는 니가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 더 신기하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려울 수 밖에요...

13.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행16:3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10:9)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4:11,12)
이상의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죽기 10분 전에 믿든 태어나면서부터 믿든 상관 없습니다.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습니다.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 여기도 얼마든지 반박 가능하지만 안 합니다. 귀찮기도 하고 인정을 해도 내 삶은 별로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10분 전에 믿어도 된다고 인정을 하니 참 기쁘기는 하네요.^^

13. 다만 의도적으로 죽기 10분 전에 믿어 구원받아야지 왜 일찍 믿어 그 고생하는가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데(그 말의 진정성을 떠나서) 그럴 기회를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베푸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나는 여러분 개독님들과 달리 구원의 칼자루는 야훼가 아닌 내가 쥐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야훼가 내게 뭘 베풀고 할 위치에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예를 든다면 결국 ‘구원’이란 ‘도끼’라는 ‘갑’과 ‘야훼’라는 ‘을’ 사이의 계약(deal)입니다. 같은 계약을 두고 나 도끼는 자신이 ‘야훼’에 대해 ‘갑’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고 여러분 개독들은 ‘을’의 위치에 있다고 여기는 것 뿐이죠.

☞ 여러분 개독님들은 야훼에 대해서 머리를 조아리고 숭배하고 찬양하고 하는 것들을 통해서 스스로 ‘을’의 위치로 내려가겠다는 것이고 나는 야훼에 대해서 당당하게 ‘갑’의 위치에 서겠다는 것입니다. 개독 여러분들이 나처럼 그러지 못 한다고 나를 비난해서는 안 되죠. 자신들의 무능을 탓해야 옳은 것입니다.

☞ 야훼는 우리에게 제시만 할 수 있지 어디까지나 결정은 우리가 하는 겁니다. 아무리 진귀한 물건이라도 팔아야 남는 것이지 팔지 못하면 돌덩이나 마찬가지죠. 이처럼 야훼는 그가 가진 ‘구원’이라는 상품을 고객에게 잘 보여야 겨우 팔 수 있을까 말까 하는 것인데 얼마든지 내가 ‘슈퍼갑’ 노릇을 할 수 있는데 바보같이 머리를 조아리고 ‘을’의 위치에 굳이 서겠다는 어리석은 자들이 넘쳐납니다 그려...

☞ 야훼에게 구원을 구입하겠다는 자들은 오직 그런 물건을 야훼만 가지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있기 때문에 야훼에게 꼼짝 못하고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야훼는 사실 지가 직접 팔지도 않아요. 항상 중개인이나 대리인인 사제나 목사 등을 통해서 팔죠. 그런데 진짜 웃긴 것은 그 상품을 팔아서 생긴 돈은 단 돈 10원이나 1%도 야훼 자신은 갖지 못하죠. 중개인인 사제나 먹사들이 다 해 처먹거든요. 정작 가장 주인이라고 말만 하고 항상 숭배의 대상이 되는 자신은 아무것도 가져 갈 수가 없어요. 이것을 경영학에서는 ‘주인-대리인 문제’라고 합니다.

☞ 그런데 진짜 심각한 문제는 이 중개인이나 대리인들이 원래 야훼가 내준 상품인 ‘구원’이 아닌 가짜 구원을 팔면서 진짜라고 고객을 속이는 것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로마트, 감리마트, 성결마트, 순복음마트 등에서 다양하게 포장해서 파는 ‘구원’이라는 상품은 정작 애초 야훼가 중개인들에게 팔아달라고 준 그 물건이 아니거든요. 이름만 ‘구원’이라고 같지 실은 전부 다른 상품입니다. 가짜 참기름, 가짜 계란, 가짜 가방 등 뭐 그런 것 들과 같지요. 그런데 자기네가 진짜라고 그러고 원조라고 그러죠.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야훼 입장에서는 황당하고 팔짝 뛸 노릇이지만 야훼로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실은, 중개인들과 대리인들은 원 주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뇌사상태의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마음대로 상품 가격을 받고 독점하고 상점마다 카르텔을 형성해도 어느 누구도 제지할 방도가 없지요. 심지어는 ‘구원’이라는 상품을 미끼로 여성고객을 성폭행하고 성추행하고 자신의 욕구의 배설구로 여기는 중개인 대리인까지 수 없이 생겨났지만 각 마트에서는 중개인들을 어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데 ‘장로마트’ ‘사밀지역’의 ‘전봉욱’이라는 중개인은 사설로 고객들을 끌어 모은 뒤 상품을 잘 파는 법이 담긴 책까지 여러 권 내어 이 계통에서는 아주 인기 있는 중개인이었지만 알고 보니 오랜 기간 여성고객들을 자신의 욕망의 배설구로 유린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이 분노로 들끓었지만 결국 어떤 책임도지지 않은 채 다른 마트로 가 버렸습니다. 이 중개인은 그 마트를 그만 두고 다른 마트를 차리면 그만이었거든요. 뭐, 이 중개인 말고 다른 중개인들 역시 수두룩하게 돈과 여성고객을 자신의 욕망대로 취했지만 마트들은 아무런 자정 능력을 보여주지 못 했습니다. 실제 야훼는 중개인들의 악행도 어쩌지도 못하고 정작 상품을 판 돈의 0.000001%도 가져 가지 못 합니다. 여러분 야훼가 돈 10원 가져갔다는 이야기 들어 본 적 있습니까?


경우의 수는 하나입니다.

☞ 아니죠. 바보가 아닌 이상 계산은 똑바로 해야죠. 둘이죠.
내가 야훼랑 계약을 하는 경우와 하지 않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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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8
Philip Im (70.62.49.64)
2013-03-08 08:20:58
경우의 수는 하나입니다.
어떤 일에 대하여 경우의 수를 따질 때 제대로 다 열거하지를 못합니다.
인간의 한계입니다. 생각지 못한 경우의 수로 낭패를 당하기도 합니다.

이번 WBC게임에서 한국이 첫번째 게임에서 패한 후 2차전에 갈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리고 2차전에 갈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몇 가지 있었지만 결국 탈락했습니다.

반대로 제가 여기 댓글 다시는 분 가운데 만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몇개일까요? 다 따지기 힘들 겁니다.

그러나 복잡하게 보이지만 사실 경우의 수는 단 한가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로 약속하면 다른 경우의 수는 필요없습니다.

인간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해서 이 조건 저 조건 갖다 붙이고 하나님은 이 몇가지 조건에서만 행해야하니 전지전능하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일단 인간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인간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이야기는 진전할 수 없습니다.

그 다음 단계는 인간이 구원의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의 조건을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지요.
제가 댓글 다시는 분 가운데 한 분과 약속하고서 제가 지키지 않거나 어떤 분이 지키지 않으면 서로 만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 지점에서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 경우의 수를 열심히 머리 굴려 생각하고 그 경우의 수 가운데 하나를 자기가 선택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아 물론 그렇게 하겠다는 분을 누가 말리겠습니까? 존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하나의 경우의 수(? 이것은 인생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확률 100%입니다.)만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아주 쉽게.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쉽다고 쉬운 것이 아님을 스스로 느끼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렵지요.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행16:3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10:9)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4:11,12)

이상의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죽기 10분 전에 믿든 태어나면서부터 믿든 상관 없습니다.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습니다.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다만 의도적으로 죽기 10분 전에 믿어 구원받아야지 왜 일찍 믿어 그 고생하는가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데(그 말의 진정성을 떠나서) 그럴 기회를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베푸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경우의 수는 하나입니다.
리플달기
0 4
Ismail-x (112.222.123.131)
2013-03-07 10:22:50
어느 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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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도 임빌립의 의견에 100% 찬성입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 나가지 않고 마음대로 술 처마시고 계집질 하고 담배 피고 도박 하고 개독들 때리고 조롱하다가 죽기 10분 전(너무 시간이 빡빡하면 한 두 세 시간 전에 하면 되겠네요) 4영리로 예수님 영접하고 구원받으려는 것입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교리 중 하나가 ‘절대주권주의’입니다.
자, 살펴볼까요?^^


1.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에베소서 1:4~6>

2.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로마서 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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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나 도끼 (112.222.123.131)
2013-03-07 10:29:06
금기어가 뭔지 좀 가르쳐 주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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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할 수 있는 추리를 하나 해 봅시다.

개독경 구절에서 ‘절대주권주의’ 교리를 받침 하는 구절이 있지만 일단 저 두 구절들을 놓고 봅시다.

1. 도끼가 죽기 10분 전이나 하루 전 쯤에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여 그리스도인이 된다.
2. 임빌립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에 나가서 돈 바치고(혹시 먹사라면 돈을 따 먹겠네요. 부럽다) 시간 투자하고 노동력 제공하고 온갖 잡일을 다 한다.

자, 이 둘 중 어느 쪽이 구원 받을까요?

제 주장이 아닌 100% 임빌립의 주장으로 구성하겠습니다.
임빌립이 말하길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받는 경우의 수를 수학적으로 나타내면 이렇게 됩니다.

1번만 구원 받는다.
2번만 구원 받는다.
1번과 2번 둘 다 구원 받는다.
1번과 2번 둘 다 구원 받지 못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피조물인 우리는 어느 누구도 위 4가지 경우 중 어느 쪽으로 결정이 날지 전혀 알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설사 ‘흰수염 영감’이라 할 지라도 그가 위의 4가지 경우를 벗어난 선택은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슬프게도 개독들이 주장하는 교리 몇 개가 모순이 생겨서 깨지는군요. 뭐 버려야겠지요. 그게 뭐냐하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다’라는 것과 ‘인간은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다’ 등의 교리들은 바로 폐기처분해야 할 운명입니다. 이 교리들은 ‘도끼는 흰수염 영감이 4가지 경우 내에서만 구원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라는 명백한 사실과 그만 모순을 일으켜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 도끼의 주장은 명백한 사실이라 지구의 인간 어느 누구가 봐도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진리거든요. 그렇다면 모순되는 두 가지 주장이 있는데 한 가지가 완벽하다면 다른 한 쪽은 자연히 그리고 당연히 폐기되어야합니다. 그게 정상이죠. 설사 어느 헤까닥 한 넘들이 폐기하지 않고 가지고 있겠다고 질할해도 이미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무너져 버린 교리들이라 별 쓸모가 없어요. 물론 뭐... 개독 평신도들이야 뇌가 없으니 사실 전혀 쓸모 없는 건 아니겠지요. 여하튼 건투를 빕니다.

개독들은 여호와의 생각을 읽지 못한다고 두려워 할지 모르나 나 도끼는 여호와의 생각을 다 볼 수 있습니다. 완벽하지는 못 하지만 적어도 어느 범위 내에서 ‘흰수염 영감’이 결정하거나 선택할지는 뻔하거든요. 내 눈에는 ‘흰수염 영감’의 카드패가 뻔히 보이는데 도무지 개독들은 짐작조차 못 하나 봅니다. 그러니 내 눈에 개독들이 얼마나 한심해 보이겠습니까?


구원을 받을 쪽이 어느 쪽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임빌립이나 개독들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바보 같은 일 아닙니까? 개인의 노력이나 도덕 윤리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살아계신 우리 주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데 교회 나가고 헌금하고 착하게 산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지요. 저는 술 마시고 도박하고 계집질하고 개독들 조롱하고 살 겁니다. 왜냐하면 내 행동이나 도덕, 윤리 등은 이미 하나님이 택정하신 구원과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거든요. 로마서는 이야기 합니다. 주님께서 야곱과 에서를 통해 택정하심은 선악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입니다. 에베소서도 말하지요. 창세 전에 택정하셨는데 창세 후에 태어난 어떤 인간들의 선악의 행위와 구원이 상관있을리 없지요.

그래서 저는 교회 다니고 헌금하고 착하게 산다고 개구라 치시는 여러분들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그 저... 뭐냐? 여러분이 믿는 그 믿음, 신앙을 전하고 싶어 미치겠지요? 저도 미치겠습니다. 이렇게 쉽게 편하게 구원받을 길이 있는데 왜 그토록 가시밭길을 스스로 걸어가시는 겁니까? 저와 여러분 사이에 구원을 받을 확률은 전혀 차이 없이 완벽하게 똑같은데 말입니다. 그냥 경제학 이론으로 볼 때 너무 비효율적 비능률적 삶을 사시는 것 같아 안타까워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도끼의 믿음과 여러분 개독님의 믿음을 경영학적으로 분석해보겠습니다. 다른 대학은 모르겠지만 제가 다닌 대학에서는 3학년 때 ‘금융투자론’을 배웁니다. 뭐, 한 번쯤은 들어보셨겠지만, 포트폴리오, 선물, 스왑, 옵션 등의 이론을 배우죠. 근데 금융투자의 기본은 ‘수익률 창출’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입니다. 그런데 임빌립의 주장에 의해 이론적으로 도끼와 여러분 개독님들의 ‘리스크’는 같습니다. 리스크도 같지만 수익도 같습니다. 50:50 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투자를 가장 적게 하는 사람이 이득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10억이라면 개독님들은 5억을 투자하시는 것이고 저는 5백원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독님들은 굳이 5억을 투자하겠다는 것이고 저는 어차피 결과는 똑같으니 5백원만 투자하겠다는 것입니다. 당당뉴스 보는 사람 중에 경영학 전공자도 분명히 있을텐데 무슨 말인지 아실겁니다.


사실 구원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만 해도 되지만 확인사살을 하는 의미에서 개독경 구절 두 세 개 더 공부하죠.^^

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여러분 개독들이 아무리 교회 나가고 일주일 내내 거기서 노예처럼 살고 십일조 및 각종 헌금으로 다 갖다 바치고 훌륭하신 어느 목사님 말씀대로 여성도들은 빤스 내리고 성도들은 집문서 땅문서 갖다 바쳐도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아니면 전부 지옥행입니다. 옥한음 목사도 생전에 고백했었지만 자신들은 지금까지 잘못된 복음을 전했다고 고백하고 회개했었죠. 그런데 문제는 그 고백 이후에도 여전히 잘못된 복음을 바꾸지 않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 개신교는 99.9% 가짜 기독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나 나나 뭐 아니지 이렇게 본다면 오히려 내가 천국에 갈 확률이 높겠군요. 좀 부러우시죠?^^

2.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브리서 12:14>

우리나라 사회는 개독들이 모이는 곳이나 개독들이 관여하는 것은 거의 부정부패, 공금횡령, 성폭행, 성추행, 공갈, 협박, 사기, 반목, 질시, 파괴 등의 범죄가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내각에 임명된 사람의 대부분이 부정부패로 얼룩져 있는데 또 절대 다수가 기독교인들이죠. 참 멋진 조합 아닙니까?

개신교인이 관여 되는 곳이라면 항상 분열과 반목과 사회혼란을 가져오니 이는 우리나라 개독들이 결코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지 않는다는 강력한 방증이고 결론적으로 아무도 주를 볼 수 없다는 준엄한 주님의 말씀으로 볼 때 천국 갈 놈들 거의 없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3.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로마서 11:22>

사회에서는 아무리 부정부패해도 한 기업이나 한 학교의 CEO가 성문제를 일으키면 물러나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나 도끼의 삶처럼 마음대로 간음하고 여성도들을 유린해도 나중에 들켜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내가 그랬었다. 다윗도 실수 했다’고 말하면 용서받습니다. 이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항상 세상 사람들이 어쩌고 저쩌고 불신자들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비판하고 정죄하던 개독들은 막상 자신들의 참담한 범죄에는 눈을 감거나 못 본체 하고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사단 마귀로 몰아갑니다. 뭐 특히 성문제는 개독 목사들 전매특허라 말 할 필요가 없지만 최근에 ‘사밀교회 전뱅욱’건만 봐도 명백합니다. 목사들 뿐만 아니라 이런 목사들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개독들이 정말 수없이 많습니다.

저는 아무리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여러분 개독님들보다 제가 더 천국에 갈 확률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확신합니다만 증명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개독 형제님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뇌’를 주셨을 때는 생각하고 판단하고 사고하고 의문 나는 것이 있으면 질문도 하고 지혜롭게 사용하는 기관으로 만들어주셨는데 여러분은 어찌하여 이것을 그저 인체 무게 중심을 잡는 하나의 부속기관으로 사용만 하십니까? 저는 개독 여러분들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뇌’는 도대체 의학생리 상 어떤 기능을 하는지 사실 참 궁금합니다.
아무리 봐도 우리 같은 정상인 종족처럼 ‘사고’ ‘사유’ ‘판단’ ‘이해’ ‘공감’ 등의 기능을 하는데 쓰는 것 같지는 도무지 않고... ‘파괴’ ‘반목’ ‘질시’ ‘전쟁’ 등의 기능은 아주 훌륭히 작동하는 것으로 보아 에베소서에서 말씀하신 주님의 택정에 의해 뇌의 기능이 완전히 이분화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곧 주님께서 말하시는 택정이란 ‘뇌’의 기능을 개독화 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항상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따뜻한 어느 봄날, 창조주이신 우리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에게도 한 분 한 분 적셔주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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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07.210.3.147)
2013-03-07 12:20:55
금기어
저도 금기어 때문에 고생을 했었는데요.

저의 경우 아마도 다음의 두가지 경우에 발생하지 않나 추측합니다.

1. 영어를 이상하게 사용하거나 문장처음에 " 이나 '과 같은 부호를 쓰거나

2. 글을 워드나 노트패드로 쓰고서 카피로 이곳에 옮기려고 할때 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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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3-07 03:45:46
마태복음 20장에 대한 오해
마20:1-16에 대하여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 비유의 앞뒤 문장에서 해석의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될 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할 당시에
먼저된 자란 말씀을 먼저 받은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며
나중된 자란 그 후 복음을 받게된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이 말씀을 적용하면 먼저 믿는 성도와 나중 믿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핵심은
그러므로 먼저 믿었다 하여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원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겠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좀더 즐기다가 죽기 10분 전에 "믿~쉽네다"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25:1-13입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슬기로운 처녀는 미리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을 맞이하였으나
미련한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으므로 하여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죽기 10분 전에 믿습니다라고 말할 여유가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어리석은 자만이 그런 생각을 할 뿐입니다. 물론 자신은 굉장히 영리하다고 할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약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12:20절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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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그 도끼 (112.222.123.131)
2013-03-07 10:52:54
왜 성도들을 신천지에 빼앗기냐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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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빌립 당신같이 초등학교 저학년들도 웃을 성경구절 해석을

하기 때문이죠.

이런 것도 해석이라고 합니까?^^

하긴 뭐...


내가 만나 본 먹사들 수준이 다 그랬지만...


당신들 신천지랑 교리 상 붙어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소?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성도들이 들어봐도 신천지 교리가

훨씬 세련되고 낫다 이 말이오.


무슨 이 따이 거지같은 글 가져와서 ...


신천지 애들이 웃습니다.


이러니 우리한테 애들 뺏기지 하면서...


.


당신들 죽었다 깨어나도 신천지 못 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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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그 도끼 (112.222.123.131)
2013-03-07 10:54:17
박창진 당신도 마찬가지요.
.

성경해석 수준하고는...

그러니까 교인들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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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mail-x (112.222.123.131)
2013-03-06 15:06:36
저는요,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의 실재를 부정하는 것을 딱 한 가지 때문에 망설입니다.
.


저 역시 인간입니다.

아무리 개독을 조롱하고 놀려도 저 역시 저 깊은 무의식

저 깊은 내면에서 주님의 존재를 인정하려는 작은 속삭임이

있음을 부정하지 못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니...



저는 당신들 개독님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다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습니다.


저는 박창진, 임필립, 개혁본부 같은 개독님들이 누군가 만들지

않고 스스로 생겨났다는 사실을 아무리 인정하려고 해도

못 하겠습니다.


어느 누군가 어떤 인간 보다 더 나은 존재가 악의를 가지지 않았다면

도저히 만들 수가 없겠지요.



어떻게 임빌립, 박창진, 개혁본부가 자연발생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저는 이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다는 사실을 도무지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진화론에 대해서 안고 있는, 고민하고 있는 유일한

모순이라고 할까요?


'세상에 악마 같은 건 없어~!' 라고 자신있게 이야기 하지

못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모순을 제 스스로 극복하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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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mail-x (112.222.123.131)
2013-03-06 12:29:50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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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TV에서 악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구형이 터무니 없이
약하거나 무죄로 풀어주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사람들의 법감정과 실제 법적용이 차이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라고 생각되는 범죄도 그 범죄에 대한
법조항이 없으면 죄를 물을 수 없습니다.

'죄형 법정주의'라는 것이 그런거죠.

화가 나고 미칠 노릇이지만 그게 법이니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법을 잘 알고 그 법망의 허술함을 꿰뚫고 자신의 이익을
탐한 것 뿐입니다. 감정적으로는 밉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요.


마찬가지로 어리거나 젊을 때부터 교회 나가고 십일조를 비롯한
헌금을 바치고 시간과 노력을 바쳐서 구원받고 천국 가는 것이나

저처럼 개독들 조롱하고 조소하고 비난하고 맘대로 살다가 죽기 전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구원받고 천국가는 것이나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아마도 여러분 개독님들의 뇌 속에서는 너무나 황당하고 억울하고

뭔가 그럴리는 없다고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어쩝니까?

님들의 경전이자 법전인 <개독경>에서 그렇다고 하는데는 도리가 없지요.

여러분들 입장에서야 자신들과 악마 같은 도끼가 같은 천국에 간다는
사실을 도저히 기분학상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그게 교리니까요.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온 자들이 와서 더 받는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 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뜾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뜾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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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임필립, 박창진, 개혁본부 같은 개독님들은 포도원에서 아침부터 저녁 끝날 때까지 허리 한 번 못 펴고 졸라 빡시게 삽질했는데 이스마엘의 도끼는 일 마치기 10분 전에 와서 삽 한 번 뜨고 "이제 끝~!" 이라고 외치는데도 포도원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똑같은 품삯을 주십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따질 권한도 권리도 없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포도원 주인 마음대로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 개독들은 응당 그 몫을 받은 것이고 이스마엘의 도끼의 품삯은

당신들이 생각할 때 터무니 없다고 여길지 몰라도 포도원의 주인은

그렇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독교에서 합법적이며 경제적인 방법으로 같은 품삯을 받는 것이지 부정부패나 속임수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품삯을 받을 때 지혜롭지 못한 당신들의 나쁜 머리를 탓해야 하는 것이지 저를 탓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구절까지 보여 주었는데도 여전히 저를 비난한다면 당신들은

정말 머리만 나쁠 뿐 아니라 예수의 참 뜻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단 마귀들일 뿐입니다.

.


자...


그럼 어떤 삶을 선택하실지는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


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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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mail-x (112.222.123.131)
2013-03-06 11:04:08
와... 3월 2일 같은 날 개업했는데 박창진 선생 가게는 파리만 날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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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천지는 왜 성장하는가(2) >


이건 박창진 선생이 쓴 글인데 손님이 단 한 명도 없네요.

반면에 류상태 선생님이 쓴 이 글에는 손님이 많아서

왁자지껄 하니까 괜한 심통이 나신 우리의 귀염둥이 박창진은

남의 가게에 와서 훼방을 놓고 있군요.


사실...

글쓴이의 입장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자신의 글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것이지요.


박창진 선생!

가게 장사 잘 하려면 뭔가 새로운 메뉴, 참신한 메뉴,

맛있는 메뉴를 개발해야죠.


이건 뭐...

365일 같은 메뉴에 같은 양념에...

식상합니다.


그렇다고 도끼처럼 논리적으로, 재미있게, 웃기게 쓸 수도 없으니

화가 날 만도 하지요.

이해는 합니다만 내가 뭔가 부족하다 생각하면 노력을 해야죠.

전에 내가 말했잖아요.


글을 잘 쓰려면

1. 다독

2. 다상량

3. 다작


을 해야 한다고


당신은 1, 2 번은 개무시하고

3번만 하니까 안 되는 겁니다.

당신이 무식하고 말이 안 통하는 줄 아니까 다들 사람들이 그 가게로

안 가는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소.


나처럼 재미있게 써 보시오.

사람들이 안 찾을 수 없소.

여기 당당뉴스 입장에서도 내 글이 자신들의 편집방향과 그다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냥 두는 것은

내가 하는 말이 과격한 부분이 있지만 틀린 것이 없고 또한

재미있는 글은 클릭 수를 높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어서요.



아...

생각해 보시오.

내가 여자에게 매력이 부족해서 여자들이 날 찾지 않으면

여자들 원망하고 환경을 원망하거나 다른 남자와 여자가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와서 행패를 부릴 것이 아니라


왜 여자들이 날 찾지 않는지, 왜 나는 혼자인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스스로 공부해서 갖추어 나가야 할 것이

아니오?


경영학 관점에서 보면 당신은 정말 매력과 메리트가 없는 상품이오.

당신의 노력에 따라서 당신의 가게가 번창할 수 있소.


찾지 않는 손님 수준 운운하지 말고 손님의 고객의

needs와 wants를 정확히 파악해서 마케팅 해 보시오.

노력하고 기도하시오.


주님!

왜 저의 가게에는 손님이 안 오고 파리만 날리나이까?

저에게 지혜를 주세요.


이렇게라도 기도하시오.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평신도들에게 기도하면 다 들어준다고

개구라 치면서 정작 당신들은 기도 같은 건 안 하지.^^


.
























뱀발 : 나는 4년제 국립대학 경영학 전공자요.


박창진 당신 같은 상품은 세상에 쓸모가 없소.

고객의 구미를 전혀 자극하지 않거든...


그래서인지 솔직히...


절라 불쌍해 보이기도 해...


.


잘 좀 연구해 보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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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5
Ismail-x (112.222.123.131)
2013-03-06 10:40:45
난 솔직히...
.


신학대학 간 그 머리로 '창조'나 '진화' 같은 단어를

이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히 고신은 더욱 더...

.

.







































뱀발 : 거, 제대로 알지도 못 하는 '창조'니 '진화'니 이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국어 공부나 좀 더 하시지요?^^


박창진씨.

나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당신에게 '난독증' 환자라고

수없이 이야기 했지만 소용이 없었소.

'마이클 *' 선생하고도 얼마나 질할을 해 댔소?

개독들이 서로 싸우면 답이 나오나요?

난독증 환자들끼리 치고 받고 싸워서 승리한 들 뭐가

달라지나요?


.






글 쓰다 보니 생각난 건데...

어차피 죽기 전에 회개하면 천국 갈건데 뭐하러 교회 다니고

돈 갖다 바치고 하냐고?


참...

개독들은 경제학을 몰라...

.
리플달기
4 6
박창진 (121.144.123.177)
2013-03-06 10:21:37
누가 정신병자일까나?
기사로 올리겠지만...

창조와 진화를 생각해보자.
창조를 증명했는가? 전혀 아니다.
진화론자들이 창조를 증명하지 못했으니 진화가 증명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전혀 아니다.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해 스스로 증명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제대로 된 진화론자라면 창조를 증명하지 못했기에 진화가 증명된 것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이라면 참으로 어설픈 과학자이거나 정신병자일 것이다.

이 경우를 생각하면 도끼는 어디에 해당될까나?
명약관화한데 도끼에게는 명약관화하지 않을 것이다.
리플달기
2 7
Ismail-x (112.222.123.131)
2013-03-06 10:10:09
누가 이 개독을 모르시나요?...
.


증명은 없다???

뭘 증명하여야 한다는 것인가? 하나님. 그렇다면 증명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신존재 증명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개독들은 정신 이상자다’라고 이야기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문장에서 시작된다.

A=B
B=C
A≠C

위의 공식은 수학적, 논리적으로 옳지 않다.

박창진과 같은 개독들은

1. 하나님의 존재 증명은 불가능하다.
2. 하나님은 실재하신다.

1번과 2번을 동시에 주장한다. 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인가? 증명할 수 없는 존재가 실재한다니... 증명할 수 없다면 실재한다고 하면 안 되고 실재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이것이 옳은 주장이다. 증명할 수 없는데 실재한다는 것은 ‘흰색인데 검은색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저 황당할 수 밖에...

나는 개독들은 정신병자들이라고 주장해왔다. 내가 어렵게 증거를 제시하지 않아도 박창진이 보여주지 않는가?


그렇다면 *신존재가 잘못된 것인가? 전혀 아니다. 신부재 또한 증명 불가능하다.

☞ [신의 존재는 불가능한 것인가? 아니다.] 라고 썼다면 그 다음에는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 설명이 신의 부재에 대한 증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설명이 아니다.


신존재를 증명하지 못했기에 **신부재가 되는 것인가? 전혀 아니다. 신부재를 주장하려면 자신들의 주장 자체에 대해서 증명하여야 한다.

☞ ‘입증책임’은 있다고 하는 쪽에서 지는 것이지 없다고 하는 쪽에서 지는 것이 아니다. 검사가 피의자의 범죄 사실을 입증해서 구형을 하는 것이지 피의자가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검사가 ‘네가 범죄 사실이 없다는 것을 입증해봐. 못 하면 넌 징역이야’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런 일은 없다. 어디까지나 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입증하는 것이다.

☞ 어느 개독 마을에 ‘박창진’ 이라는 개독이 하나 살고 있었다. 이 개독은 자신이 100억 원 짜리 ‘금 두꺼비’를 가지고 있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이 개독은 자신이 가진 ‘금 두꺼비’ 얼마나 아름답고 영험한지 누구든지 이 금두꺼비 앞에서 소원을 빌면 못 이루는 것이 없고 아무리 아픈 병자라도 금두꺼비 앞에서 기도하면 다 낫는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말했다. “창진이 네가 가진 금두꺼비를 좀 보자” 그러자 창진이가 말했다. “금두꺼비? 난 못 보여줘” 사람들이 말했다. “볼 수도 없는 금두꺼비 앞에서 어떻게 기도를 하냐?” 창진이가 말했다. “우리 집에 모셔져 있으니 우리 집 대문 앞에서 기도하면 돼” 사람들이 말했다. “네가 금두꺼비를 가졌다는 것을 어떻게 믿냐? 네가 가졌다는 것을 증명해 봐” 그러자 창진이가 말했다. “내가 금두꺼비를 안 가졌다는 것을 증명해 봐.” “내가 금두꺼비를 가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너희가 그것을 입증해야 해”
사람들은 모두들 황당했다. 박창진이 증명해야 할 존재를 보지도 못한 자신들에게 없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적반하장으로 말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그런데 도끼가 신부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전혀 아니다. 그래서 그의 주장이 같잖다는 것이다. 신존재를 증명하지 못했기에 신부재가 옳은 것인양 생각하는 그 사고의 유치함 말이다.

☞ 신의 부재가 사실이라고 이야기 한 적이 없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얼마든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개독경의 구절로 알 수 있다. 이것은 나중에 보여줄게. 기다려라. 솔직히 귀찮다. 한 두 가지냐?


신에 대해서는 존재나 부재나 모두 증명 불가능하다. 증명의 사안이 아닌 것이다.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 신의 존재나 부재는 이성을 초월하는 영역이 아니다. 누가 그런 엉터리 주장을 하는가?
사람들은 신의 존재나 부재가 이성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특히 개독들) 엄청난 착각이다. 이런 것을 좀 초등학교 논리 시간에 가르쳐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증명의 사안이 아니라면 역시 실재한다고 말해서도 안 되며 전도나 선교를 해서도 안 된다. 그냥 혼자서 믿으면 된다. 증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을 혼자 믿겠다면 어쩔 수 없다. 그건 정말 개인의 선택이니 말이다. 하지만 증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실재한다며 믿으라고 전하는 것은 폭력이고 횡포다.

☞ 거미줄보다 가벼운 비단으로 만든 옷이 있으니 사라고 하는 박창진이라고 하는 상인이 있었다. 이 비단은 영험한 힘이 있어 입으면 건강해지고 만복이 굴러들어온다고 했다. 그리고 이 비단은 눈에는 보이지 않아 안 입은 것 같이 느껴지니 꼭 구입하라고 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그 비단을 구입하려고 했다. 그런데 박창진은 사람들에게 허공에서 무언가 꺼내는 시늉을 하더니 사람들에게 옷을 입어 보라고 했다.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는 옷을 어떻게 입냐고 물었다. “옷이 안 보이는데 이 옷이 존재하는지 어떻게 증명합니까?” 그러자 박창진이 말했다. “이 옷이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실재합니다. 이 옷은 확실히 존재하므로 이 옷을 입을지 말지는 개인의 수용과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저를 의심하는 분들은 제 옷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증명하십시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신이 인간에게 찾아오시는 것이고 그분을 수용하느냐 수용하지 않느냐의 개인적인 선택이 있을 뿐이다.

☞ 박창진은 참 개독경을 읽어도 이렇게 생각 없이 읽는다. 창세기부터 다시 공부해야 할 것 같다. 수용의 가부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개독들이 머리가 나쁜 것은 신학을 이해하는데도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신학도 머리가 좋은 놈이 해야지 머리가 나쁜 놈은 몇 십년을 공부해도 항상 제자리다.

수용한 사람은 신자로서 그 삶에서 개인적으로 신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 이런 것은 아무 쓸모없는 이야기다.

그 ***살아감의 양상이 다양하고 어떤 경우에는 이 사회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도록 하는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 신을 경험하는데 사회에 부정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이 신은 참된 신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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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 *신존재
**신부재
***살아감

위의 세 단어는 국어사전에 없다.
개독의 특징은 ‘난독증’과 ‘조어’에 있다.
첫째 개독들은 타인이 하는 말과 글을 결코 이해하지 못 하며 웃기는 것은 자신들끼리도 이해하지 못 한다. 개독들이 이해하지 못 하는 글을 보면 사실 초등학교 5~6학년만 되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다. 성인 개독들 100마리와 초등학생들 100명을 A와 B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해 보라. 어떤 사건에 대한 기술을 해 놓은 글을 읽고 과연 어느 그룹이 정확하게 이 사건을 이해하고 있는지 말이다. 지금 내 글을 보는 사람은 ‘설마?’라고 생각하겠지만 결과를 보면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둘째 개독들은 박창진과 같이 국어사전에는 없는 단어, 세상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단어를 스스로 만들어 내서 쓴다. 당당뉴스나 뉴스엔조이 같은 곳에서 쓰는 글은 시, 수필, 소설과 같은 글이 아니므로 정확한 단어나 어휘를 써야 한다. 어쩌면 이것은 능력일 수 있다. 국어사전의 단어 수 만해도 몇 만개는 되는데 이 단어들을 모두 피해가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을 만들어 쓰는 능력은 우리 같은 정상적인 뇌를 가진 종족으로서는 도무지 하기 어려운 고난도 테크닉이다. 내가 겪어 본 개독들은 뭐 거의 다 비슷했다.

정확한 단어를 쓰지 못 한다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알지 못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역시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흐름은 개념과 개념의 인식 속에서 형태를 이루어 판단을 하게 되는데 문제는 개독들이 너무나 모호하고 애매한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단어를 써서 소통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더 문제는 개독들 자기들끼리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개독 A가 어떤 주장을 한다면 이 주장은 정상인 뿐 아니라 실은 같은 개독들인 B, C, D, E 등도 이해를 할 수 없다. 그래서 결국 개독들은 전 세계적으로 교파가 30,000개가 넘고 우리나라의 경우 장로교만 200개가 훨씬 넘는 것이다. 이처럼 한 개독
박창진의 글은 박창진의 뇌 속의 내용물과 변화를 그대로 우리에게 노출시킨다.

누군가 글을 모호하게 쓰는 것은 실은 쓰는 사람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개념이 명확하고 분명하다면 단어 선택 역시 검증된 단어로 적정한 단어로 쓸 수 밖에 없다. 자신이 무슨 단어를 쓰는지도 모르는 종족은 타인에게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다들 뭔가 비장한 모습으로 진리를 전한다고 하는데 전하는 넘들 모두 모아서 물어보면 전부 전하는 것이 다르다. 이들이 바로 개독이다.

그래서 개독과의 대화는 애초 불가능한 것이라고 누차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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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3-06 12:53:50
☞ ‘입증책임’은 있다고 하는 쪽에서 지는 것이지 없다고 하는 쪽에서 지는 것이 아니다. 검사가 피의자의 범죄 사실을 입증해서 구형을 하는 것이지 피의자가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검사가 ‘네가 범죄 사실이 없다는 것을 입증해봐. 못 하면 넌 징역이야’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런 일은 없다. 어디까지나 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입증하는 것이다.

-----피의자는 죄를 지었다. 그런데 피의자는 발뺌을 한다. 그래서 검사는 피의자가 죄를 지었음을 입증한다.
-----검사가 피의자가 죄를 지었음을 입증한다. 그런데 피의자는(사실 피의자라고 하지만 일단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죄를 짓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이것이 법정 싸움 아닌가요? 서로 간에 죄를 지었다 ,짓지 않았다 하고서 입증하는 것이지요.
적법한 예가 아닌 것같습니다.

☞그런데 도끼가 신부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전혀 아니다. 그래서 그의 주장이 같잖다는 것이다. 신존재를 증명하지 못했기에 신부재가 옳은 것인양 생각하는 그 사고의 유치함 말이다.
-----혹시, “신부재를 증명하지 못했기에 신존재가 옳은 것인양 생각하는 그 사고의 유치함 말이다.”가 아닌가요?

☞ 흠. 이 말은 완전히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님의 말씀대로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갖추어진 가정에서는 어느 정도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보통의 가정에서는 100이면 100 다 분열이 일어나고 반목이 생깁니다. 종교는 부모 자식도 없고 형제 자매도 없습니다. 현실적으로는 100 가정이 있다고 하면 이런 신앙적 충돌로 문제가 없는 가정은 한 가정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 가정 그런 부모형제를 보셨습니까? “100이면 100 다”라는 것은 100%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확신은 어디서 나왔지요? 대개 그런 류의 글들을 통하여 님이 확신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가정이 많습니다.
님이 읽는 글들이 님에게 그런 확신을 준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서 확신을 가집니다. 물론 이런 확신도 님이 그런 글들을 읽고 나름대로 이성적인 추론을 한다고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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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도끼 (112.222.123.131)
2013-03-06 13:24:32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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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이라는 건 이성적일 필요도 없고 어떤 근거가 없어도 되는 겁니다.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요.

저도 실은 매일 개독들 까면서도 교리에 흥미가 많답니다.

여차하면 개독에 편입하려구요.

죽기 전에 회개하면 천국보내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파스칼 말대로(물론 개인적으로는 파스칼은 돌대가리라고 생각하지만)

죽어서 천국이나 지옥이 있으면 너무 당황스럽잖아요?^^


저 역시 죽기 10분 전에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합니다.

저는 사실 님의 삶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제 삶도 존중합니다.


임빌립 선생님이 종교적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사는 것처럼

저 역시 종교적 확신으로 제 삶을 삽니다.


다만 저는 님과 다르게 다양한 경험과 체험을 원하는 것 뿐이지요.

저는 술도 원하고 여자도 원하고 쾌락을 원합니다.

저의 바람대로 성품대로 살아갈 뿐이죠.


그리고는 나이들어 어느덧 죽음에 이르렀을 때 주님을 영접하려 합니다.

저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품에 안기려고 합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꼭 어떤 개독님들은 자신이 심판자가 되는 것처럼 저를 정죄하는 분들이 계신데 참 안타깝습니다.

주님은 그 어떤 피조물에게도 다른 피조물을 정죄하거나 심판할 권한을
준 적이 없는데도 말이지요.

예수님이 준 적이 없다면 그 권한은 누구에게서 받은 것일까요?

언뜻 제 머리 속에는 '사단' '마귀'가 떠오릅니다.


예수님은 99마리의 흰 양보다 집 나간 한 마리의 검은 양을 찾고 계십니다. 아마도 여러분 개독님들이 보기에는 여러분 자신은 흰 양이고 나 도끼는 검은 양이겠지요.

하지만 주님은 여러분보다 저를 더 사랑하십니다.
제가 죽기 전에 회개하고 천국 가려는 얍삽한 생각으로 사는데도 말입니다.

주님은 적어도 주의 이름을 팔면서 범죄하고 주의 이름을 팔면서 돈을 벌고 주의 이름으로 타인을 겁박하고 횡포를 부리는 흰 양 보다는 저를 더 사랑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물론 이 믿음은 증명할 수 없지만 실재합니다.

임빌립 형제님...

주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참된 지혜와 깨달음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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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참빛 (24.141.4.52)
2013-03-06 14:14:51
주님은 적어도 주의 이름을 팔면서 범죄하고 주의 이름을 팔면서 돈을 벌고 주의 이름으로 타인을 겁박하고 횡포를 부리는 흰 양 보다는 저를 더 사랑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물론 이 믿음은 증명할 수 없지만 실재합니다. ㅋㅋ

'증명할 수 없지만 실재합니다' 라는 말
요즈음 들어 이곳에서 무척 많이 듣고 있는 말이네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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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3-06 14:06:20
아, 진짜 ~ ㅎㅎㅎ
영어로 Pun이라고 하죠. 말가지고 노는 것.. ㅋㅋㅋ
장난이 아니라 진짜로 웃기거든요.
한동안 웃음없이 살았었는데
요즈음 도끼님 원맨쇼 때문에 끝없이 웃어댑니다.
코메디쇼는 저리가라로 웃겨요. 진짜로요.. ㅎㅎㅎ

또 satire 라고 하죠. 말로 놀려 먹는 것..
신기할 정도입니다.
근본주의자들 놀려먹는 일 대단합니다.
그것도 반박 못하게 기독교 교리의 헛점을 이용해서리~

그러면서 얄미울 정도로 하고싶은 말을 다해요...

도끼님 뭐하러 여기서 개독들과 각개전투 하며 시간낭비 하시는지.
방송타시면 대한민국 전체가 배꼽잡고 뒤집어 질판인데..

아무리 머리가 좋다 하더라도
이런건 천부적으로 타고나지 않으면 누구나 함부로 해보겠다고 다 되는게 아닌데?!
한국에 태어난 Shakespeare의 환신인가요?

하여간.. 인물 났습니다.
큰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헛헛허헛허허헛허허헛헛헛허허허헣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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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42.82.105.143)
2013-03-06 08:10:59
증명은 없다???
뭘 증명하여야 한다는 것인가? 하나님.
그렇다면 증명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신존재 증명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존재가 잘못된 것인가? 전혀 아니다.
신부재 또한 증명 불가능하다.
신존재를 증명하지 못했기에 신부재가 되는 것인가? 전혀 아니다.
신부재를 주장하려면 자신들의 주장 자체에 대해서 증명하여야 한다.

그런데 도끼가 신부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전혀 아니다.
그래서 그의 주장이 같잖다는 것이다.
신존재를 증명하지 못했기에 신부재가 옳은 것인양 생각하는 그 사고의 유치함 말이다.

신에 대해서는 존재나 부재나 모두 증명 불가능하다.
증명의 사안이 아닌 것이다.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에게 찾아오시는 것이고 그분을 수용하느냐 수용하지 않느냐의 개인적인 선택이 있을 뿐이다.
수용한 사람은 신자로서 그 삶에서 개인적으로 신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그 살아감의 양상이 다양하고 어떤 경우에는 이 사회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도록 하는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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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3
Philip Im (70.62.49.64)
2013-03-06 05:32:53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각각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각각 다른 것을 묶어보면 결국 둘로 나뉘어집니다.
그 둘로 나누는 기준은 물론 성경입니다. 이 성경에 대하여 어떤 관점을 갖느냐에 따라 둘로 나뉘어지는 것입니다.

첫째는 삼위일체 하나님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 믿음의 테두리 안에서 여러 가지 신학적인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심을 신화로 여기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고 성경으로 말씀하셨고 마지막 예수님을 통하여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사람이 지어낸 것이라면 도데체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결국 인간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낸 신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고 조롱하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신으로 믿지 않는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곧 하나님(신)이신데 예수님을 우리가 본받을 도덕적인 선각자 정도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본인을 가리켜”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부류는 일위 하나님 혹은 신화 속에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혹은 하나님은 타종교에서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신이라고 믿는 믿음도 있습니다.

비록 성경을 들고 그 속에 담긴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이라 부르지만 실상은 종교적 타자로서의 어떤 존재를 가정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것이 껍데기 하나님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이 아니기에 껍데기 하나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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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친딸을 성폭행한 것이 상식에 맞지 않다고 할 때 물리적으로는 당연히 있을 수 있고 도덕적으로는 비상식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상식적인 것도 시대나 지역에 따라 그리고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말합니다.
이런 혼란이 왜 일어날까요?

그것은 지금의 사람들이 모두 정상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버지와 딸의 관계이지만 물리적으로는 남녀 관계이기 때문에 정상적이요 상식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성 없는 짐승같은 판단이지요. 짐승들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이다라고 판단할 때 물리적인 것만 고려하지 않지요.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비록 물리적으로는 그럴 수 있을지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상식을 넘어(이점이 중요합니다. 상식도 인간이 정한 것이라 시대마다 다릅니다. 인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도덕적인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완전한 도덕을 행할 수 없지만 도덕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비록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지만 도덕을 추구한다는 것은 희미하나마 인간은 도덕적인 존재였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동물은 도덕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제대로 도덕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뭔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그것에 대하여 많은 철학자들이 답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최초의 인간이 범죄한 것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표준의 원리를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대표성의 원리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사람들 가운데 자기 머리로 판단하여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성경에 대하여도 그렇습니다. 명쾌하게 밝힌 것을 신화 속에서 사람이 지어낸 것이라 결국 믿지 못하겠다는 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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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3
참빛 (24.141.4.52)
2013-03-06 14:30:07
답답...
성경 전체가 다 신화라는 말이 아니라..
그 안에는 역사, 문학, 문화, 법률, 예언 등이 있고
님이 듣고자 하는 계시도 물론 들어 있고요
또한 창세기와 같은 신화도 있는 거지요.

명쾌하게 밝힌 것을 신화라 한다?
태초의 인간이 범죄해요?
태초의 인간을 직접 보셨기나 했수?
신화가 아니면 그럼 뭐요?

아담은 실존했던 사람인가요? 물리적으로?
6000천년 전에??
그럼 타임머시인이 있다고 한다면 그 타임머시인 타고 과거로 돌아 가면
태초인간 아담을 진짜 만나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일만 이천년 전부터 벌써 융성하였던 고대 문명들은 그럼 어떻게 된일인가?? 누군가 사기친 건가?

신화가 역사가 되는 것이고 역사는 현실로 현실은 미래가 된다고 피키님이 말씀하시던데, 난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오.

잠에서 다들 깨어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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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66.138.28.106)
2013-03-06 14:53:36
제가 언제 인류의 역사가 6000년이라고 했던가요?
근본주의자라고 말씀 드린 적도 없는데 지레짐작을 하십니다 그려.

님은 어떤 글을 읽으시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쉽게 말해서 내 마음에 든다이겠죠?
뭐 어렵게 말할 것 없습니다.
아담이 범죄했다는 글이 제 마음에 듭니다.
어떤 분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지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이 제 마음에 들고 참빛님도 피키님도 만드셨다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믿음을 주셔야 그 모든 것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도 마음에 꼭 듭니다.

성경의 어떤 것이 신화라는 것을 님이 마음에 들어하듯이
창세기의 말씀이 사실이고 신화가 아니라는 것이 저에게 꼭 와닿습니다.
어떤 이의 말이 님에게 진실로 들리듯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저에게 진리로 들립니다.

어떤 이의 말이 진실인 것을 님은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나는 성경 말씀이 진리인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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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
참빛 (24.141.4.52)
2013-03-06 15:16:51
애고~
내 말을 못알아 들으시네요 또~
왜 말돌리기를 시도하시는가요?
더 알아 듣기 쉽개 풀어서 올리리다.

저의 질문은

1. 아담이 실존인물이냐 하는 것 (Yes/No)

2. 만약 No 를 선택했다면 창세기는 신화이지 실재는 아니라는 것 (Y/N)

3. 2번에 답을 No로 택했다면 그럼 뭐냐는 것

그리고 성경어디에 아담이 실재로 존재했던 사람이라고 합니까? (실제로 라는 말에 주의 하시길 부탁...)

저의 질문에나 답하세요.

그리고 님의 그러한 신념은 정말 존경하고요. 전에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사실 어떨때는 님이 부러울 떄도 있어요. ^^

저도 나름대로 믿음의 지평이 있습니다. 물론 님의 것과 다를 뿐이지만요.
신념은 개인적이예요. 결코 객관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죠?

사실세계와 믿음의 세계를 혼돈하지 말아 주셔요. 만약 그러면 대화가 않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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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66.138.28.106)
2013-03-06 18:56:33
그러고 보니 내가 신화의 인물과 지금까지 대화했군.
너누구리?
실제로 참빛은 살아있다?
중요한 실제로가 빠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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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참빛 (207.210.3.147)
2013-03-07 05:36:54
말귀를 몬알아 묵어서 내 풀어서 yes no로 답해 달라는데
왜 자꾸 딴소리를 허시나유~
궁지에 몰리니까 이제는 '너'라는 말까지 튀어나오는군요 ㅎㅎㅎ
슬슬 개독의 본색을 드러내시려 시작하는군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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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Ismail-x (112.222.123.131)
2013-03-05 15:37:15
내가 사실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


6. 우리의 상식과 어긋나기 때문에 혹은 우리의 이성에 반하기 때문에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인정할 수 없고 그래서 형이상학적인 차원에 하나님을 두고 종교적인 의미만 끄집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껍데기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지요.

☞ 그게 왜 껍데기죠? 이해가 안 되네. 이민족을 도륙하고 이교도를 참살하고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을 믿어야 내용이 꽉 찬 하나님이 되는 건가?


7. 지금 제가 드리는 말씀이 이성에 반한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지극히 이성적인 추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아... 물론 정상인의 이성에는 반하는 것이죠. 단지 임빌립 당신의 뇌 속 망상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이성적인 추론이겠지요. 그건 인정합니다.

8. 과거의 사실이기 때문에 추론할 수 밖에 없지만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그 역사적 사실을 알게하시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당신 같은 무식한 개도그님이 기독교 고전을 읽었을 리가 만무하지만 한 가지만 예를 들죠.
토마스아켐피스가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주님을 증거하기보다 내 믿음을 행사하겠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또한 초대 교부 중 하나인 터툴리안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믿어야 한다’라고 말하지요. 루터는 하나님 앞에서는 ‘이성’을 없애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거스틴도 <참회록>에서 자신의 믿음을 밝히려고 했지 증거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역사 상 인류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믿음을 말 한 적은 있어도 그 믿음을 객관적으로 증명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 뿐만 아니라 칼뱅도 <기독교강요>에서 자신의 신학이론을 전개하지만 나 도끼가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주장은 있지만 객관적 증명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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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4.141.4.52)
2013-03-05 16:07:39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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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도끼 (112.222.123.131)
2013-03-05 18:21:10
신학 나부랑이 보지 마시고
.

언어학 공부를 해보세요.

.

한 가지 더 ...

피키 선생님 글 스크랩해서 프린트하고 주의 깊게 읽어보세요.
리플달기
3 3
참빛 (24.141.4.52)
2013-03-05 22:45:27
그렇지 않아도 피키님의 몇 글을 이미 스크랩해서 정독했습니다. ^^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더러 있기도 하지만 무지하게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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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mail-x (112.222.123.131)
2013-03-05 15:30:57
사실과 망상은 구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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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분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난 기적적인 내용은 신앙고백적 문학적 수사학적인표현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유는 인간 상식에 어긋난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 당연히 그렇습니다.

2. 그런데 지금 이 땅 위에서는 인간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모씨가 여자를 죽이고 300여조각으로 나누며 아버지가 자기 친딸을 성폭행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 상식으로 왜 이해 못할 일인가요? 당연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 일들은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일 뿐이지 일어나지 못할 일은 아닙니다. 임빌립씨의 착각은 물리적 사건과 도덕적 사건을 같은 범주에 넣고 이해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고 범위입니다.

좀 더 쉽게 예를 들어볼까요? 오 모씨가 여자를 죽이고 3,000,000,000,000,000,000,000 조각으로 나누었다면 비상식적이죠. 300조각으로 나눈 것은 상식적인 일입니다. 아버지가 친 딸을 성폭행 한 것도 상식적이죠. 아버지가 친 딸을 물 위로 걷게 했다면 비상식적이겠지요.

3. 이성있는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이성있는 인간이라면 먼 훗날 이 일은 꾸민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 일을 하지않는 사람을 비정상적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 물론 이런 사건에 대하여 여러 가지 조건들을 말할 수 있겠지만 제 말의 핵심은 비상식적인 일이라 해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어떤 사람 A가 말하길 “나 어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친 딸을 성폭행 해서 구속되는 것을 봤어” 라고 말했고 어떤 사람 B는 “나 어제 예수라는 사람이 물 위를 걷고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것을 보았어” 라고 한다면 이 중 비상식적인 경우는 B입니다.

이것도 예를 들죠.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서 나무 십자가를 불쏘시개로 쓰거나 성경책을 라면 받침대로 쓴다면 비상식적인 일이겠지요. 하지만 안 믿는 사람이 그러는 것은 상식적인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개도그가 유서 깊은 절의 불상을 파괴하고 단군상의 목을 치는 것은 보통 개도그들에게는 상식적인 일이지만 정상인들에게는 비상식적이고 비윤리 비도덕적인 일입니다.

윤리나 도덕 그리고 사회적 상식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남존여비’는 100년 전에는 상식이었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1세기 우리나라에서는 비상식적인 일이지요. 교회에서 찬송가 부를 때 예전에는 키보드 쓰고 드럼치고 하는 것들이 비성경적인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죽으면 매장하는 것이 상식이었는데 지금은 화장이 상식이 되어가고 있지요. 외국에서는 여자가 결혼하면 남편 성을 쓰는 것이 상식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비도덕 비윤리적인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지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비상식적인 일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개도그들만 빼고 말입니다. 친 딸을 성폭행 한 아버지의 사건이 도덕적으로는 비상식적일지 몰라도 물리적으로는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왜 개도그들은 도덕적 문제와 물리적 문제를 구분 못 하고 가치명제와 사실명제를 구분 하지 못 하는 것일까요? 정상인이라면 이 두 가지를 구분 못 할 수가 없습니다. 즉, 개도그들은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뇌구조’를 갖추지 못 했다는 강력한 증거죠.

이처럼 일빌립씨가 예를 들고 있는 도덕이나 윤리의 문제는 명제로 본다면 ‘가치명제’이고 물리적 사건은 ‘사실명제’입니다. 내가 항상 말 하지만 개도그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은 넘들이 별로 없어서 이 기본적인 명제 차이를 구분 못 합니다. 사실 이것을 구분하면 개도그일 리가 없지요.

사실 임빌립씨의 주장은 임빌립씨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개도그의 사고수준이나 교육수준을 보여주는 정확한 ‘바로메타’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임빌립씨의 주장은 정말 허무맹랑한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요. 하지만 개도그들만 모릅니다. 그것을 아는 순간 이미 개도그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때문에 개도그들의 사고수준은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을 도무지 넘기가 어렵습니다. 간혹 아주 드물게 초등학교 3~4학년 수준의 개도그를 볼 때면 좀 놀라기도 합니다. 좀처럼 보기 어렵기 때문이죠. 정말 운이 좋다면 5~6학년 수준의 개도그를 만날 때도 있는데 이런 날은 정말 수첩에 기록해 둬야할 날이죠. 우담바라 꽃이 피는 것을 직접 목격하는 것보다 희귀한 일이니까요.


4. 다음 성경 구절을 보시지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상식과는 어긋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과는 관계없이 이 일은 일어났다고 여러 이성적인 추론을 통하여 알고 믿는 것입니다.

☞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개도그들’의 ‘이성’과 정상인의 ‘이성’은 개념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단어가 같다고 내용이 같지는 않습니다. 정상인의 ‘이성’은 사전적 의미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도그의 ‘이성’은 사전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새로운 신비한 괴이한 개념이지요.

곧, 어느 개도그가 ‘이성적인 추론’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논리학>이나 <수사학> 등에서 쓰는 그런 우리들 정상인들 사이에서 소통되는 개념이 절대 아닙니다. 이 ‘이성적인 추론’은 개도그들만의 독특한 개념이며 심지어는 사실... 자기들끼리도 절대 이해 못 하며 알아듣지 못 하는 개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개도그가 ‘이성적인 추론’ 어쩌고 저쩌고 한다면 이것은 자신의 뇌 속에서 뇌신경 뉴런 사이에 연결되는 어떤 망상과 정신병적 사고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5. 그 반대로 어떤 분들은 이것은 신화라고 말합니다. 혹은 사람이 지어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신과 다를 바 없는 존재입니다.

☞ 아. 당연히 그렇죠. 잘 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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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4.141.4.52)
2013-03-05 16: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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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어 때문에 이게 뭔가... (112.222.123.131)
2013-03-05 15:45:13
아 졸라 불편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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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빌립 님 보다 100배는 똑똑한 교부들과 신학자들이 뭐 능력이 없어서 증명을 못 한 것이 아닙니다. 증명할 방법이 없기에 증명하기보다 내 믿음을 행사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임빌립 님은 자신의 주장을 사실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실이라면 증명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사실 난... 개도그님들이 이런 주장을 할 때면 기쁩니다. 지난 기독교 2,000년 사를 볼 때 단 한 사람도 믿음을 사실로 증명한 자가 없었는데 그 역사를 깨뜨릴 사람이 정말 나오는 것인가 하면서 말입니다. 사실... 개도그들 중에서 자신의 주장을 사실이라고 말하는 맛간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왜? 무슨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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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금기어가 싫어 (112.222.123.131)
2013-03-05 15:45:54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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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당신의 뇌 속 마앙상에서는 사실이 될 수 있지만 당신의 뇌 속을 벗어나면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어느 사람이 “예수는 로마의 병사가 마리아를 강제로 범해서 낳은 자다”라고 주장하며 “이것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다” 라고 말한다면 임빌립 당신은 이 주장을 인정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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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mail-x (112.222.123.131)
2013-03-05 14:55:40
무지는 순수가 아니라 죄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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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의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저의 의도를 오해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애서 저의 소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선 당당뉴스에 대한 견해를 말씀드리지요.

저는 뉴욕 이목사님을 통해서 당당뉴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다른 곳에서 접할 수 없는 아주 훌륭한 칼럼, 댓글들을 읽으며 지적, 신앙적으로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 당당뉴스나 뉴스엔조이는 보수주의 기독교와는 수준이 다릅니다.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데 많은 도움이 되셨을 겁니다.


알다싶이 미국이고 한국이고 신문사는 광고수입으로 운영되고 유지됩니다. 솔직히 당당뉴스가 재정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기업을 하고 있는 저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 아무래도 어렵겠지요. 당당이나 뉴조 같은 곳은...

심자득 목사를 비롯한 편집인, 기자들이 자신들의 어려운 주머니를 털어 넣고 무보수봉사로 간신히 운영되는 걸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다들 고생하면서 만들겁니다.

신앙적인 사명감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런면에서 구독료를 내지 않는 공짜 신문을 읽으면서 늘 빚진마음, 죄스런 마음을 갖곤 합니다. 이 기회에 진심으로 존경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 저두요...

저는 이같이 훌륭한 종교적 열린신문이 재정상 이유나 주위의 압력때문에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 저도 그것을 바라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게다가 교계에 입바른 소리를 하는 당당이나 뉴조는 눈에 가시라 오래 버틸 수 있을지...


2. 전통적신앙문제
저는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가 전통적기독교육이나 근본주의 신앙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앙 이전에 우선 인간성의 문제, 인격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흠... 이것은 선생님께서 잘못 생각하시는 겁니다. 이런 경우는 특수성을 봐서는 안 되고 보편성을 살펴봐야 합니다. 부정부패, 성폭행, 성추행, 공금횡령, 폭력, 파괴 등의 범죄를 기독교인이 유난히 많이 저지르는 것은 개인의 인간성이나 인격의 문제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원래 태생적으로 타인들보다 성품이 더 잔인하고 난폭하다는 이야기 밖에 안 됩니다.

☞ 박평일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인간성이나 인격에 문제가 있는 기독교인이 자기 교회에 가서도 그렇게 할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자기 교회에서는 인자한 집사이자 웃음 띤 장로이자 신실한 전도사이자 목사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박 선생님이 참 순진하고 순수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탈레반 청년들이 자기 몸에 폭탄을 감고 테러를 할 때 그들이 원래 난폭하고 거친 사람일 것 같습니까? 그들도 집에서는 착한 아들이요, 믿음직한 아버지요,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상, 종교입니다. 멀쩡한 착한 아들과 아버지를 사람의 목숨 쯤은 파리처럼 여기게 만드는 바로 그 종교 그 교리가 문제인 것입니다.


저의 처와 아들은 저와는 달리 아주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는 성경일자익획을 그대로 믿는 근본주의 신앙인이고 아들은 결혼 전에는 성관계를 갖지 않겠다는 서원의 반지를 25살까지 끼고 다니는 보수적인 신앙인입니다.

☞ 흠, 그렇군요. 님의 처와 아들이 바로 탈레반으로 바뀔 수 있는 인자를 가지고 있군요. 박 선생님의 아들은 님이 보기에 착해만 보이겠지만 제가 볼 때는 탈레반 청년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제 말은 님의 아드님이 탈레반이란 소리가 아니라 탈레반 청년이랑 님의 아드님이랑 그 의식이나 사고의 근원은 같다는 것입니다. 로버트 브라우닝은 ‘무지는 순수가 아니라 죄악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그가 왜 했는지 이유를 알아보십시오.


가끔 현실문제 해결을 두고 서로 신앙적 의견충돌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신앙적 견해가 가족간의 사랑에 영향을 주거나 앙금의 요소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 흠. 이 말은 완전히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님의 말씀대로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갖추어진 가정에서는 어느 정도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보통의 가정에서는 100이면 100 다 분열이 일어나고 반목이 생깁니다. 종교는 부모 자식도 없고 형제 자매도 없습니다. 현실적으로는 100 가정이 있다고 하면 이런 신앙적 충돌로 문제가 없는 가정은 한 가정도 찾기 어렵습니다.

서로 다름의 자유을 인정하고, 서로의 인격을 믿고, 존경하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 저는 님의 이 말은 전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근본주의자가 서로 다름의 자유를 인정하고 서로의 인격을 믿고 존경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은 근본주의자가 아닙니다. 마치 님의 말은 근본주의자면서 다원주의자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이 누군가 ‘나는 근본주의자면서 다원주의자다’라고 주장한다면 이 둘은 양립불가능합니다. 쉽게 말해 양립불가능한 명제죠. 물이 수증기이면서 얼음일 수는 없습니다. 물은 반드시 3가지 형태 중 하나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 제가 볼 때 박 선생님은 근본주의자나 다원주의자 와 같은 단어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시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사랑의 실천이나 봉사면에서는 처와 아들이 나보다 수십배 수백배 순수하고 헌신적입니다. 저는 예수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신앙적가치를 몸소 실천하는 근본주의적 신앙인들을 존경합니다.

☞ 흠. 님의 말을 100% 신뢰한다면 님의 처나 아들은 근본주의자가 아닙니다. 근본주의자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기 때문에 반드시 폭력적인 모습도 같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폭력을 부추기는 구절이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님의 처나 아들이 비폭력적이라면 근본주의자가 아닙니다.


3. 서로 다른 신앙적인 견해
저는 인간은 단 한 사람도 똑같은 사람은 없다고 믿고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도그 분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더군요.


제 주위에 하나님의 음성를 매일아침 기도때 마다 듣는 다는 사람, 하나님을 직접 만났 다는 사람, 하늘에서 설령의 불이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는 사람, 세상을 사는 데 성경밖에 필요한 것이 없다는 사람... 별별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들의 신앙에 대해서 의문을 갖지도, 비판도 하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증명할 수도 없고,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분들만의 사생활이기 때문입니다..

☞ 아... 이게 맞는 이야기긴 한데 대신에 조건이 붙습니다. 나에게 고통을 가하거나 불편을 주거나 방해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는다면 님의 주장이 옳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들이 어디 혼자서 조용히 믿던가요? 반드시 100% 주위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합니다. 자신들은 확신에 찬 행동이지만 타인들은 고통을 받게 됩니다. 박 선생님도 평생 봐 오셨잖아요? 님이 예를 든 별의 별 사람 중 정말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생활하는 사람 본 적 있습니까? 저는 없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삼는 것입니다.


4. 내가 당당뉴스 댓글을 읽으며 놀라고 실망한 이유;

서로 다른 신앙적견해의 차이나 다름때문이 아닙니다. 서로다른 견해는 오히려 저에게 새로운 배움의 기회가 됩니다.

☞ 그렇겠지요.

정작 이유는 신앙과는 관계없는 무차별한 개인적인 인신공격, 무지막지한 인격살인행위 때문입니다.

☞ 이런 행위는 개신교-기독교인의 전매특허죠.


칼럼을 쓰는 필자든, 댓글을 쓰는 분이든, 독자든.. , 모두를 신앙인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어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아들딸들입니다. 직업적으로는 교수, 목사, 신앙인들, 사업가, 언론인, 정치인, 존경받은 사회 지도자... 모두들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귀한 인격자들입니다.

☞ 당연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고귀한 인격을 짓밟힐 의무는 없습니다.
또, 하나님으로부터, 혹은 법적으로 신앙의 이름으로 남의 인격을 짓밟을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 그렇죠. 하지만 개도그님들은 타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님이 말씀하신 것은 사회법이고 개도그님들은 자신의 전도를 위해서라면 교회법이 우선이라 믿고 있지요. 기독교인들은 타인의 신앙과 문화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교리 때문이지요. 사실 님이 정상이 아닌겁니다.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타인의 문화와 종교를 멸시하고 개종해야 할 상대로 생각하지 존중하고 관용을 베풀어야 할 상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리가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답니다.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목사필자을 향해 머리를 깍으라고 욕설을 퍼붓고, 신앙관이 다르다고 목사직업을 바꾸라고 협박을 하고, 나이가 드신 듯한 노장로님을 향해 술에 취한 할방이라고 공개적인 언어폭력을 휘두르고 ....

☞ 흠. 놀라셨나 보네요. 박 선생님이 보시기에 ‘개혁본부’같은 사람이 놀라운 모양인데 이런 정도는 아주 약과입니다. 온건한 사람이에요.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는 개도그님들의 목불인견의 행태는 님이 무슨 상상을 하시든 그 상상을 넘어섭니다. 님이 아직 겪어 보지 않으셔서 그렇습니다. 이것은 제가 볼 때 그저 시간이 해결하고 박 선생님이 더 오래 겪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인격모독, 인격살인행위가 신앙토론이나 근본주의 신앙관과 관계가 되는 일입니까?

☞ 죄송한데, 관계 있습니다. 그것도 절대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되신다면, 정말 개인적인 부탁입니다만 선생님 연배 정도 되시면 인맥이 충분할테니 기독교를 믿지 않는 심리학자나 종교학자 분에게 자문을 구해 보십시오. 선생님께서 고등학교만 졸업하신 분이라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저도 당당뉴스 덕분에 머리털이 나고 처음으로 직업에 관계된 인신공격을 받았습니다.
감히 내 아들에게도 할 수 없는 언어폭력이지요..

☞ 아... 많이 속상하셨겠네요. 진심입니다.
☞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제가 개도그님들에게 받은 인신공격이나 욕설을 보여드린다면 정말 자살충동을 느끼시겠군요. 제가 볼 때 선생님이 받으신 인신공격 정도는 애교입니다. 오해를 하지 말 것은 별 것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개도그님들의 패악질은 선생님이 상상을 하시는 그 어떤 상상보다 더 악질이라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개도그님들의 패악질을 10단계로 나누어 보면 이제 1~2단계의 패악질을 겪으신 것에 불과합니다.

5. 당당함에 대해서
제가 댓글을 쓰면서 굳이 실명을 고집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나에게 당당하기 위해서 입니다.
설령 익명이나 가명을 사용한다 하더라고 이에대한 신앙적 면책권을 갖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 앞에 떨리는 마음으로 글과 댓글을 써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더구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 훌륭한 말씀이긴 한데 이것은 상대도 선생님과 같은 룰을 지킬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상대가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죠. 대화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불행이도 개도그들에게는 규칙, 룰, 정정당당 이런 개념이 뇌 속에 장착되어 있지 않습니다. 빨리 이 사실을 아셔야 대처방안이 나오겠네요.

6. 당당뉴스에게 법적대응을 건의한 이유

저는 당당뉴스는 나름데로 숭고한 신앙적사명과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기사와 글의 선택과 편집, 그리고 댓글레 대한 규제는 당당뉴스의 고유한 법적권한입니다. 당당뉴스를 파괴하고 없애려고 하는 음모나 공작으로 부터 보호해 주고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당당뉴스를 아끼고 사랑하는 한 독자의 충정이었습니다..

☞ 네. 충분히 이해됩니다. 순수하기도 한 것 같구요... 다만 뭐랄까...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신앙을 하신 것 같네요. 문제는 ‘개혁본부’와 같은 개도기들은 수도 없이 많고 또 ‘개혁본부’는 상당히 온건한 편에 속한다는 겁니다. 훨씬 더 세고 악랄한 놈들이 많이 튀어나와 선생님을 물어뜯으려 덤빌텐데 이 때는 어찌하시렵니까?




다른 한 가지는 당당뉴스에 기고를 하는 글이나, 장문의 댓글들은 필자들의 평생연구결과나 신앙적인 체험에서 나온 귀한 글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필자들은 참기 어려운 개인적인 인신공격과 비난을 묵묵히 참고 견디어 내고 있습니다. 이런 필자들의 명예와 인격을 보호해 주고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 박 선생님... 당당 편집자 분에게 이메일 하셔서 한 번 물어보십시오. 정말 어떤 인간들이 편집자나 관리자들을 가장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지 말입니다.

돈은 잃으면 다시 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명예는 한번 잃으면 쉽게 되찾을 수가 없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없는 어둠으로 부터 공격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선량한 분들이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려야 합니까?

☞ 근데... 불행이도 개도기들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은 멈출 수가 없답니다. 그것을 멈추는 순간 이미 기독교인이 아니니까요. 그들에게는 상대가 상처를 받거나 마음을 다치거나 피해를 입는 것은 자신들이 알 바 아닙니다. 그저 그들에게는 진리의 선포(케리그마)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런 그들을 막을 방법을 현실적으로 찾기 어렵습니다.

나의 손톱에 박힌 가시는 아파도 남의 심장에 박힌 대못의 아픔을 못 느끼는 것이 인간들의 본성입니다.

☞ 특히 기독교인들이 심하지요. 기독교인도 타고 날 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 놈의 마귀 같은 교리가 인간을 악마로 만들지요.


몇 해 전에 뉴욕의 한인대형교회 목사가 여러명의 신도들과 간음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이 알려지자 그 목사가 신도들 앞에서 사실을 고백을 했습니다. 그 고백을 들은 신도들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할렐루야 를 외치며 박수를 치고 환영했습니다. 내가 그분들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당신들의 배후자들이 몇 년간 간음을 한 후 들통이 나자 당신들에게 사실을 고백한다면 그때도 할렐루야 를 외치며 박수를 치고 환영할 수 있느냐고?"

☞ 뭐, 이것이 기독교의 수준이고 현실입니다. 절대 다수가 이런 모습이지요.


우리들 모두, 무책임한 댓글로 부터 상처를 받은 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흠. 이것은 님의 바람이고 우리의 바람이지만 불행이도 개도기들은 님의 바람을 콧등으로도 안 들을 것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 관용, 이해가 아니라 그저 내가 가진 진리를 타인에게 선포(케리그마)하는 것 뿐이지요.


저는 당당뉴스와 어떠한 이해관계도 없는 평범한 독자 중 한 사람입니다. 어떠한 조치를 요구를 할 수 있는 아무런 법적권한도 없습니다. 다만 이런 유익하고 훌륭한 신문과 당당뉴스를 통해서 만났던 소중한 인연들과의 관계가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죄송합니다.

☞ 님의 순수한 마음은 충분히 알았습니다. 하지만 박평일 선생님께서 상처받지 않으시려면 이곳은 선생님의 바람과는 정확히 반대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 곳이라는 것을 먼저 인지하셔야 합니다.

☞ 기독교인에게 관용, 양보, 이해, 공감 등의 개념은 애초 성립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인정을 하면 바로 다원주의자로 몰리죠. 근본주의자는 이런 인간애를 가질 수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님의 아드님이 인격적으로 훌륭하다면 그는 근본주의자가 아닙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지만 절대 이 둘은 양립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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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196.234.24)
2013-03-05 23:25:49
무지는 순수가 아니라 죄악입니다.

구절구절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붓다도 무지를 모든 고통의 원인으로 보았지요.
.
저는 어린이들의 순진함을 무지에서 나온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수함은 온갖 세상사를
경험한 후 그 어린이들의 순진함으로 다시 돌아가는
성숙한 순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나오지요.
읽는 사람에 따라서 각기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저는 강도를 만났던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곤 합니다.
그 가련한 여행자는 목숨을 구해주고
보살펴 준 사마리아 상인의 선행의 모적이나
동기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이나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또, 그 사마리아인이 같은 신을 믿은 신앙인이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성경지식의 정도,
신분, 학력여부에 해서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안도 마찬가지 였지요.
두사람 사이에 선행만 주고 받았습니다.

저도 가끔 타이어가 빵꾸나던지 기계적 문제로
자동차가 길가에 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지나가는 사람들로 부터 도움을 받을 때가 종종있습니다.
저도 그분도 상대가 어떤 인종인지, 기독인지, 모슬람신도인지,
아니면 무종교인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져 두사람간에 베품과 감사의 마음만 오고 갔을
뿐입니다.

저는 그런 마음을 순진하고 순수한
어린이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기의 직접체험을 거치지 않는
성경적지식은 개인적인 스트레스 해소용, 혹은
자기과시용 심심풀이 땅콩정도로 생각합니다.
편리하고 재미있지요. 그러나 그런 지식은 인터넷이나 책,
설교를 통해서 얼마든지 쉽게 접할 수가 있습니다.
죽어있는 지식이고 정보지요.
.
예를 들어 베드로가 예수를 따라
물위를 걷다가 물에 빠진 사건이 신약성경에
나옵니다. 예수가 믿음이 부족한 탓이라고
질책을 했고, 대부분 신앙인들이 그리 가르치고
또, 믿고 있지요.
"믿음으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믿음만 있으면 물위도 걸을 수도 있고
산도 옮길 수 있다.

그러나 인류역사상 여지껏 믿음으로 물위를 걸었던 사람이나
산을 옮겼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믿음을 강조하고 강조해도 그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가 없지요.

몇 해 전에 미국서부에 있는 가장 오래되고
큰 교회가 십여년 이상을 교회건물을 두고
싸우고 다투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서로 법정에 고소를 하고 경찰들이 몇 차례 예배를
봉쇠하는 사건까지 발생했지요.
.
그 문제해결을 두고 제가 잘 알고 있는
경제학박사 장로 문인 한 분이 "교회에 사랑이
부족해서 그렇다" 내용의 글을 신문에 실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아주 지당한 말이지요.

그래서 제가 신문에 아래와같은 댓글을 썼습니다.

교회가 사랑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내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고 지난 이천년 동안
예배때마다 사랑을 강조해 오지 않았느냐?.

내생각으로는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네 이웃를 내몸처럼 사랑하라"라는
예수가르침을 몰라서도 아닐 것이다.

문제는 네 이웃은 너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문제의 해결은 아주 간단하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반대편 사람도 나처럼 교회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서로 인정하라.
그러면 문제가 옳고 그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좋아함과 싫어함의 견해차이에서
비롯됬다는 사실은 깨닫게 될 것이다.

거기에서 부터 시작해서 줄다리기식 타협과협상을
시작하라.
모든 세상사는 곡예사의 줄타기와 같다.
한 쪽으로 기울면 다른 한 쪽으로 체중을 옮겨서
균형을 이루는 변증법적 운동이 바로 우리들의
인생이고 삶이다.

아주 재미있는 이런 에피소드가 있지요.
예배시간에 목사가 오른 빰을 치면 왼빰을
내놓으라는 설교를 한참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한 신도가 강대상에 올라가서
목사의 오른 쪽 뺨을 후려쳤습니다..
"어디 다른 왼쪽 뺨을 내놓는가 보자" 하면서
그러자 목사가 다른 왼쪽 뺨을 치라고 내놓았습니다.
그 신도는 목사의 왼쪽 빰도 후려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신도가 강대상에서 막 내려오려는
순간, 목사가 달려들어 그 신도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두 발로 마구 짖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신도가 이것은 당신이 가르치는 성경에
나오는 사랑과는 다르지 않느냐고 소리쳤습니다.
그런자 그 목사가
" 이자식아! 성경에는 오른쪽 빰을
치면 왼쪽뺨을 내놓으라고만 기록되어 있지
그 다음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그러니 그 다음 행동은 내마음대로 할 수가 있다"
하고 말했습니다.

승객을 가득 채운 버스를 운전하는 미친 운전수를
뒤에서 지켜보며
"이것이냐 저것이냐" 의 선택을 두고
고민했 던 독일의 본훼퍼,
그리고 예수를 세번 씩이나 부인하고
예수를 다시 찾아갔 던 베드로의 고민,

이런 것들이 깨어있는 기독교인들의 공통된
고민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나의 눈 속에 들어 있는 대들보는 보이지 않아도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은 크게 보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하고
고백을 하지요.
.
유익한 조언과 대화 고맙습니다.
리플달기
3 0
참빛 (24.141.4.52)
2013-03-06 00:02:11
또 한번의 좋은 레슨을 받습니다.
감사~ 꾸우~벅
리플달기
0 0
박평일 (72.196.234.24)
2013-03-06 07:13:00
부끄럽습니다. 몰라서 지껄여 대는
헛소리들이지요.

참 선생님은 현재 어디에서 거주하고 계십니까? .
저는 워싱톤 디시 근교 버지니아 주에서
살고있습니다. 교회는 이번에 미래창조부 장관으로
내정되었다가 도중에 하차 한 로버트 김과 같은 미국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유태인 목사입니다.
로보트 김의 도중 하차를 두고 많은 분들이 아쉬워 하고
있지만 저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교포 1.5 세들이
한국의 정치판에 적응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좋은 언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독자들의 성원과 도움으로
만들어 지지요. .

1970년 대 초에 동아일보광고사태가 있었지요.
참 어려운 시대였지요. 저도 생업을 제쳐놓고 몇 차려
동아일보를 살리기 위해서 모금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정보부사람들이 지키고 있더군요.
몇 년전에 한국 KBS 사장을 지내셨던 정연주씨가
그 때 퇴직기자로 부인이 행상까지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지요.
미국 텍사스 주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르 받은 후
한겨레신문 미국특파원으로 잠시 계셨습니다..
소신이 뚜렸하고 아주 정직한 분이지요.

저는 미국에서 발행되는 한국판 신문들을
오랫 동안 구독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신문에 차지하고 있는 종교란의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이지요.
종교라는 것은 평소에 공기나 물처럼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인 정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워신톤 포스트의 경우 일주일에 한 두 페이지 정도지요.
한국신문들은 60% 이상이 교회소식이지요.

구독료를 내고 보는 신문들 이라서
독자로써 몇차례 시정을 요구했지요.
그러나 운영을 교회광고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 하다고 하더군요.
따라서 교회문제에 대한 공정한 보도가 어렵지요..
.
그런면에서 당당뉴스는 참으로 소신이
분명한 열린신문이라는 생각입디다.
개인적으로 도울 수 있으면 돕고 싶습니다.

솔직히 당당뉴스는 아직은 몇 사람의
희생과 봉사로 겨우 유지되어 가고 있는
구멍가개 수준의 신문이지요.
.
그분들이 눈물과 땀으로 차려놓은 찬치상에
맨손 불청객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 우리 독자들이고요.

그러면서 독자들이 반찬투정을 하고 음식맛을
비판하는 것은 아주 부당한 처사라는 생각입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갖어야지요.
물론 메뉴나 음식맛에 대한 당당한 의견교환은
서로 나눌 수 있겠지요.
그것이 당당뉴스 당국의 본래 의도일 테고.
.
그러나 초대받지 않는 불청객들이 .
메뉴를 바꾸라고 밥상을 뒤업거나,
주인더러 물러나라고 요구할 권한은 없지요.
황야의 무법자나 조폭들이 아니고 서야.

밥상메뉴가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 불청객들은
마음에 든 음식들로 가득차 있는 다른 잔치상을
찾아가면 되겠지요.
그곳에서는 아무런 저항이 없이
마음껏 개혁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런 경우를 유류상종이라고 합니까.
.
그런 의도였지 다른 뜻은 전혀 없었습니다.
..
고맙습니다.
리플달기
0 0
익명 (24.141.4.52)
2013-03-06 15:55:48
정식으로 인사 올립니다.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리플달기
0 0
박평일 (72.196.234.24)
2013-03-07 02:18:58
그렇군요. 저는 케나다를 아직 여행해 본 적이 없습니다.
미국, 한국, 일본 밖에 가 본 곳이 없는 촌놈입니다.

참, 케나다에 비교종교학계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신
"예수는 없다" 의 저자 오강남교수가 살고 계시지요.
그분의 저서와 번역서적을 여러권 읽고
제가 연락을 해서 이메일도 여러차례 의견교환했습니다.
몇 년전에 제가 이곳에 초대했는 데 한국에 머물고 계시더군요.
언제 기회가 되면 케나다로 직접 찾아 뵈올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저도 당당뉴스를 아주 즐깁니다. 고등학교, 대학동창회,
기타 문인들 웹싸이트도 전혀 들어가지 않고, 글도 쓰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학연이나 지연들이
바탕으로 한 인연들이 헛되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한국인들의 편협한 편가르기식문화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가끔 글을 통해서 훌륭한 분들을 만나면 친구로
지내자고 내가 먼저 연락을 취합니다.
미국, 일본, 월남, 티벳트, 인도,중국, 중동, 아프리카
.. 다양하게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종교는 신교기독교인지만 가끔 불교스님들. 신부,
여호화증인, 힌두, 유태교, 모슬람,몰몬, 퀘이커 신도들과
종종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특히 퀘이커는 학창시절에 담시 고함석헌 선생님이 인도하시는
서대문 봉원동 친우회 모임에 나갔습니다.
미국에서도 가끔 퀘이커모임에 나갑니다.

저는 목사님들의 설교내용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3년 동안 직접 들으며 살았던
제자들도 별 볼일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는 개인적이 체험이지 타인으로부터 빌려온
지식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당당뉴스 김기석 목사님 설교는
일요일 아침에 가끔 처와함께 듣곤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 성경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자기가 체험하지 못하면 울리는 꽹가리소리에 불과하다는
사도 바올의 고백에 많은 공감을 합니다.
저의 처는 내가 나가는 메클린 바이블 처치 론 솔로몬 목사의
설교을 시간만나면 아침저녁으로 라디오를 통해서
듣습니다. 저도 그분의 설교를 좋아합니다.
그분은 정통 유태인으로 로스케롤라니아 대학을 졸업하고
신교로 개종을 하신 분입니다. 유태역사와 전통에 아주
전통한 분이지요. 그런데 한국목사님들과는 구약해석이 극과극으로
다릅니다.
좋은 예로 그분은 모세의 십계명은 모세시대 율법일 뿐
요즈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재정일치시대의 율법인 십일조는
각종 세금을 내고있는 요즈음 시대에는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만약 헌금을 내기 전에 주위에 정말 돕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헌금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새신도들에게는 우리교회를 나오지 말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에 나가서 봉사하라고 권합니다.
다른교회에서 방문 온 신도들에게는 우리교회에 헌금을 내지말고
자신들의 교회에 가서 내라고도 합니다.

부활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특별헌금 같은 것은
아예없습니다. 헌급봉투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아주 특이한 점은 그런 연휴에는 교회도 참석하지
않고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분은 가족이 교회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도들이 만오천명이 넘을 것입니다. 그분은 라디오에서
설교를 하지만 자기가 시무하고 있는 교회소개는 일체
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가까운 동네교회에
나가라고 권유하지요.
.
그리고 가끔 평신도, 운동선수, 배우, 경찰관, 정치인,소방관등
다양한 분들에게 설교기회를 줍니다.

그 분 설교의 핵심과 결론은 한마디로
"so what?" 입니다. 당신이 지금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기존교회에 실망한 젊은 신도들이 자꾸 몰려들고
있습니다. 새신도들을 도저히 수용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럴 때마다 본교회 증축대신 다른 지역에 지교회를 지어
단임목회자에게 일임하곤 합니다.

한국신도들 숫자도 1,500여명 이상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80 여개국 다른 인종, 국가사람들이 함께 드리는 인터네셔날
예배모임이지요.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예수,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정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저의 기독교신앙인들에 대한 상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인
"수고하고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의 멍에를 짊어지고 너를 편히 쉬게 하리라"
입니다.
창녀든, 죄인이든, 강도든, 배운자 못배운자, 갖은 자,
못 가진자... 누구나 편하게 마음을 털어 놓고 친구처럼
의지할 수 있는 따뜻한 인간들..

그러면 굳이 전도한다며 자기도 체험하지 못한
성경구절을 지껄일 필요도 없고, 자기만의
구원의 확신을 보검처럼 휘두를 필요도 없지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천국에서 누가 큰상을 받을 것은 예수 자기자신도
모르는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일이라고,
그런데 왜 인간들의 비판과 정죄가 필요합니까?
그런 행위야 말로 성경에 나오는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성령 모독죄가 아닙니까?.
저는 그런 비판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천부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탄압이나
박해에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거대한 정치권력과
목슴을 걸고 싸운 경험도 있습니다.. .

인도의 성자로 알려진 힌두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산다 싱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령이란 "내가 아사 직전에 빵 한 덩이를
받았다. 그 작은 빵 한덩이를 옆에 있는
같은 처지의 친구와 반으로 나누는 것이 성령이다"

예수님의 물 한컵을 목마른 나그네에게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던 말씀과 비슷한 말이 아닙니까?
사랑은 율법도,성경구절도,말도 아니지요.

산 다싱은 맨말로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내리며
전도를 하다가 이름도 종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입니다.
그에 대한 이런 일화가 전해 옵니다.
산타 싱이 다른 동료 한명과 눈보라을 헤치며
허기와 추위에 떨며 히말라야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도중에 눈더미에 묻혀있는 한 나그네를 발견했습니다..
완전히 죽지 않고 따뜻한 체온이 아직 남아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는 이미 거의 죽어가는 사람이니
그냥 놔두고 둘이나 살자고 했습니다. 이 사람을 구하려다는
우리 둘다 얼어죽는다는 말을 남겨두고 혼자서 먼저 길을 떠났습니다.
싼다 싱은 그 사람을 등에 업고 땀을 흘리며
눈보라를 헤치고 동네를 찾아갔습니다.
길 도중에 먼저 길을 떠났던 친구가 똥꽁얼어
길바닥에 죽어있었습니다.

산다 싱과 등에 업힌 나그네는 두사람이 서로나눈
체온 때문에 살아 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 것이 바로 체험적신앙이지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입이 달려있는 컴퓨터에
불과하지요.
아마도 자신들이 아니라 입과 컴퓨터가
대신 천국에 갈겁니다..

고맙습니다.
리플달기
0 0
참빛 (24.141.4.52)
2013-03-07 04:50:24
오강남 선생님을 그분의 책으로 익히 알고 있으나
아직 만나 뵙지는 못했습니다.
토론토나 벤쿠버 그리고 서울에 계시는 것 같습니다.

대단한 상상가와 종교학자 이신데..
몇몇군데만 뺴고는 한국교회 그 어디에도 가실떄가 없으신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고행에서 냉대를 받으셨던 것이
그 분을 보면 생각나곤 합니다.

오 선생님의 표층적 심층적 종교에 대한 말씀을 읽고
많은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가끔 도올 김용옥 선생님도 같은 맥락의 말씀을 하시던데
그 분은 대승 기독교 소승 기독교로 표현을 합니다.
기독교인은 그저 주문외우듯이 주여 주여 하며 구원받으려 하지 말고
철저한 자기 반성과 자기부정을 통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죠.

모든 종교는 표층적으로 보면 너무나 심각하게 다른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깊고 깊은 심층으로 가면 동일한 가치와 동일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는 것으로
그래서 우리는 종교의 표층에서 둥둥 떠있지만 말고 심층적 부분까지 내려가
다다라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독선적인 자기주장으로 부터 해방되어 포용하고 존경해주고
함께가는 종교가 되는 것이지요.
더이상 타종교라는 인식이 없어지고 나의 이웃이 되는 것이겠지요.
이것이 예수가 말했던 참평화가 이루어지는 것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구원을 받지 않는다 했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기독교 진영이 아니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암시를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으로 해석될 수 있는 제사장 (먹사들)과 유대인 (개독교인)들은
강도당하고 피흘리는 사람 (일반 사람)을 모두 모르는체 지나갔지만
사마리아인 (타종교인)은 그를 구제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가 너희의 이웃(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냐 라고
물으시면서 너도 그렇게 하라 하셨습니다.

저는 이론적으로는 이해하지만
아직까지는 다원주의사상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태는 아닙니다.

전통적인 교리에 붙잡혀 죄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한국교회를 향한 안타까움.
황당한 주장과 행동들을 서슴치 않고 있는 한국 먹사와 개독들에 대한 분노를.

저는 이 두가지 안타까움과 분노 사이를 오가며,
이곳 당당에서 한사람이라도 바르고 믿음 갖도록
협력해 드리고자 그저 노력하는 것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리플달기
1 0
박평일 (72.196.234.24)
2013-03-07 06:11:40
그런 것이 인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요
당당뉴스에 도의 세계로 보는 성경이라는
글이 실리더군요. 이런 것들이 놀라운 변화라면
변화겠지요.
물의 흐름은 아무리 막으려해도 막을 수가 없지요.
역사의 흐름도 마찬가겠지요..
.
얼마전에 picky 라는 분이 제가 30여년 전에
중고등부 성경공부를 인도할 때 자주 사용했 던
말을 하시더군요.

자기자신의 예수의 삶으로 흘러 넘칠 때
자동적으로 세상이 변하되고 복음은 이루어진다.
강물은 흘러넘쳐야 주위 대지를 적시고
생명을 키우고 길러 낼 수 있지요.

오강남 교수의 노자사상에 대한 저서,
예수 하바드에 오다, 탁닛 한 의 번역서도
읽어 보았습니다.
물론 저도 그분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지요.
도올도 그렇지만 학자들의 한계는 지나치게
이성, 논리를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이성이나 논리도 일종의 우상이지요.

삶은 논리나 이성 속에서 이루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예수, 붓다,노장자는 이성과 논리의
세계를 초월한 분들이라고 저는 믿고있습니다.그러니 이해또한
초월적인 깨달음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초월세계자체를
부인하지요 이성이나 논리로 설명이 불가능 한
세계이기 때문이지요.
.
그래서 학자들과 대화를 나누면
컴퓨터와 대화하는 것 같이 생명력을
못 느낍니다.
근본주의 신앙인들과 비슷하지요.

바다에서 막 잡아올린 생선처럼
펄펄 뛰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살아있는 존재로써 진리지요.

그래서 살아있는 진리는 책 속에
담을 수가 없다고 하는 거겠지요
예수의 진리도 살아있는 존재이고
삶이지요. 그러니 문자로 성경 속에
담을 수가 없지요.
책에 담을 수 있다면
우상이거나 이미 죽은 진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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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Philip Im (70.62.49.64)
2013-03-06 08:47:11
박평일님께
님께서 제기하셨던 운영원칙에 어긋난 글에 대한 님의 생각에 대하여
두 번에 걸쳐 그 이유를 밝히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민주 사회에서 자기 생각과 다를 때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방법이 상대를 최대한 존중하였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님의 글을 보면 그런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고 봅니다. 동의합니다.
그러나 님은 한 면만 보신 것 같습니다.

개혁**님께서 당당뉴스에 요구하는 것이(님은 남의 잔치상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으로 보신 것 같습니다) 그분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하신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그분의 표현 방식이 옳다고 두둔하는 것은 아닙니다.다만 제가 볼 때 그 정도이면 참을만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당뉴스는 그분의 요구가 편집 방향과 다를 경우 정중하게 대답하시고 차후 다른 조치를 하셨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입니다.

그러나 개혁**님보다 더 수준 낮은 표현을 쓰시는 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다는 것이 제가 볼 때 한 면에만 치우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당뉴스가 잔치상을 차리고 무료로 손님을 부르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클릭 수가 많은 것이 곧 장사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되도 않는 감을 내어놓으라고 큰 소리치는 분이 있기에 좀더 관심을 갖고 보게 되는 것이 현재 인터넷 신문의 이익을 창출하는 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한편 저희들은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 아니라 자유롭게 쇼핑하는 귀한 손님입니다. 물건이 마음에 안들면 주인에게 건의를 할 수 있는 권리도 있다고 봅니다.

고맙습니다.
리플달기
0 0
박평일 (72.196.234.24)
2013-03-06 12:20:11
충고 고맙습니다.
목사님이시 군요. 저는 성경지식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선경에 대한 논쟁에는 좀처럼 꺼어들지 않습니다.
그럴 실력도 없고요.

저도 그런 제안을하기 전에 수십차례 망설이고
주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그러다가 용기를 낸 것은 필자 류목사님
그리고 이사야 라는 분에 대한 그분의
비난의 정도가 상식적인 도를 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일은 아니지만
무언의 약자들을 보호해 주고 싶었습니다.

당당뉴스는 한 사어버공간 교회입니다.
목사님이 시무하고 계시는 교회내에서
만약 신도들이 목사님을 그정도 공격하신다면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목사님이 체면상 참고 있더라도 누군가가
해결의 총대를 매야하지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문제는 신앙관차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천부의 인권에 관한 문제라고 나는 믿고있습니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는 쉽게 충고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자신이 피해의 당사자가 되면
태도가 180도로 변합니다..

당당뉴스에 실인 오고가는 댓글들의 예만 보아도
그렇지 않습니까? 조그만한 비판에도 분노하고
공격의 수위는 수배로 높지요.
그것이 인간들은 일반적인 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돈을 빌려가고 갚지 않는 사람들이
간혹있습니다. 사정을 고려해서 탕감해 주곤 합니다. .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사실은
그런분들 일 수록 남에게 단돈 10불이라도
받을 것이 있으면 인정사정을 보지않고
악착같이 받아내지요. 나쁜 놈, 죽일놈 하면서
.
저는 주변에 목사친구들이 여러명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가끔 나의 교회생활경험에서 얻은
이런 충고를 하곤 합니다.

"신도들 중에 아부가 지나친 사람, 성경지식이 많고
주장이 강한 사람, 과격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신도들을
항상 경계하라.. 나의 지난 경험으로 비추어 볼때
목사를 쫒겨내고 교회분란을 일으키는 신도들이 대부분
그런 신앙인들이다"

저는 교회에 나가는 원칙이 종파를 초월해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교회에 나갑니다.
목사설교나 목사를 이유로 교회를 선택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교회에 가면 설교보다는 신도들간에 나누는
따뜻한 정, 화평하고 행복한 분위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는 편입니다. 그래서
일생동안 단 한 차례도 교회분쟁에 직접 휘말리거나
가담해 본적이 없습니다.
.
내가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는 장로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분은 목사자를 찾아서
아마 30 차례 이상 교회를 옮겨다녔을 것입니다.
명분은 항상 교회개혁이었지요,
아주 이상한 것은 그분의 가까운 지인들 중에
그분을 인간적으로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분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중부 도시에 가까운 친구가 한명
살고 있습니다. 독립유공훈장까지 받은 목사님의
아들로 아주 마음이 착하고 순수한 신앙인입니다..
그분이 나가고 있는 교회가 10년 이상을
교회건물, 목사때문에 심한 분쟁을 겪고 있었습니다..
저도 여행 중에 한두차례 들려 예배를 함께 본 적이 있습니다.
6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체육관까지 갖춘
아주 아름다운 교회건물이었습니다.

그동안 단임목사가 20차례 이상은 바뀌었고
내가 방문할 때는 일년이상 단임목사가 아예 없었습니다..

그 친구는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교회에 대한 불평을
나에게 늘어놓곤 했습니다.
한 번은 교회분쟁에 사용하기위해서 신도들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들 나에게 보내며 수정을 부탁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글을 읽어보지도 않고 쓰래기 통에 버렸습니다.

대신 전화를 해서 단도직입적으로
" 교회에 나가면 행복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다른 신도들이 꼴도 보기 싫어
행복은 커녕 분통만 터진다" 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왜 그 교회에 나가느냐" 고 물었습니다.

" 우리들이 어떤 고생을 해서 장만한
교회인데 그러느냐. 도저히 저 나쁜놈들에게
넘겨주고 주고 나갈 수가 없다" 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팔면 당신에게 얼마만한
돈이 돌아오느냐" 고 물었습니다.

" 나에게는 돌아오는 돈은 한푼도 없다" 고
대답했습니다.
..
"그렇다면 당신소유는 아무 것도 없는데 왜 망설이느냐.
당장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교회를 찾아 옮기라" 고
권유을 했습니다.
.
그리고 나서도 서로 박이 떠지는 몇년간 싸움이
계속되었습니다.
.
며칠전에 드디어
"나의 충고를 따라서 마음이 맞은 몇명의 신도들과 함께
그 교회에서 나와서 가정집에서 새로운 교회를 시작했다.
지금은 아주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만 해도 500여개에 가까운
한인교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꼭 현상을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의니 불의니,성서적이니 비성성적이니,
옳고 그름의 이유로 서로 싸우고 다투는 것
보다는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행복한 교회생활을
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이 자기자신이 아니라 남을 향한 비판의 화살로 변할 때
정작 자신은 증오와 미움의 화염 속에 휩싸이게 됩니다.

빈데를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지요.

저는 출퇴근길에 아주 작고 아담한 교회에
붙어잇는 "기쁨의 교회" 라는 간판을 볼때마다
갑자기 마음이 환해지고 행복감에 젖곤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당당뉴스의 사이버 교회도
그랬으면 하는 나의 바렘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래소 ㅇ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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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196.234.24)
2013-03-05 13:58:05
선생님들의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저의 의도를 오해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애서 저의 소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선 당당뉴스에 대한 견해를 말씀드리지요.

저는 뉴욕 이목사님을 통해서 당당뉴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다른 곳에서 접할 수 없는
아주 훌륭한 칼럼, 댓글들을 읽으며
지적, 신앙적으로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알다싶이 미국이고 한국이고 신문사는 광고수입으로 운영되고
유지됩니다.
솔직히 당당뉴스가 재정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기업을 하고 있는 저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심자득 목사를 비롯한 편집인, 기자들이
자신들의 어려운 주머니를 털어 넣고.
무보수봉사로 간신히 운영되는 걸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신앙적인 사명감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런면에서 구독료를 내지 않는
공짜 신문을 읽으면서 늘 빚진마음, 죄스런 마음을
갖곤 합니다.
이 기회에 진심으로 존경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저는 이같이 훌륭한 종교적 열린신문이
재정상 이유나 주위의 압력때문에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2. 전통적신앙문제
저는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가 전통적기독교육이나
근본주의 신앙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앙 이전에 우선 인간성의 문제,
인격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저의 처와 아들은 저와는 달리 아주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는 성경일자익획을 그대로 믿는 근본주의 신앙인이고
아들은 결혼 전에는 성관계를 갖지 않겠다는 서원의
반지를 25살까지 끼고 다니는 보수적인 신앙인입니다.

가끔 현실문제 해결을 두고 서로
신앙적 의견충돌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신앙적 견해가 가족간의 사랑에
영향을 주거나 앙금의 요소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름의 자유을 인정하고,
서로의 인격을 믿고, 존경하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사랑의 실천이나 봉사면에서는 처와 아들이
나보다 수십배 수백배 순수하고 헌신적입니다.
저는 예수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신앙적가치를
몸소 실천하는 근본주의적 신앙인들을 존경합니다.

3. 서로 다른 신앙적인 견해
저는 인간은 단 한 사람도 똑같은 사람은 없다고
믿고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주위에 하나님의 음성를 매일아침 기도때 마다 듣는 다는 사람,
하나님을 직접 만났 다는 사람, 하늘에서 설령의 불이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는 사람, 세상을 사는 데 성경밖에 필요한 것이 없다는
사람...
별별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들의 신앙에 대해서
의문을 갖지도, 비판도 하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증명할 수도 없고,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분들만의 사생활이기 때문입니다..

4. 내가 당당뉴스 댓글을 읽으며 놀라고 실망한 이유;

서로 다른 신앙적견해의 차이나
다름때문이 아닙니다. 서로다른 견해는 오히려 저에게
새로운 배움의 기회가 됩니다.

정작 이유는
신앙과는 관계없는 무차별한 개인적인 인신공격,
무지막지한 인격살인행위때문입니다.

칼럼을 쓰는 필자든, 댓글을 쓰는 분이든, 독자든.. ,
모두를 신앙인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어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아들딸들 입니다.
직업적으로는 교수, 목사, 신앙인들, 사업가, 언론인, 정치인,
존경받은 사회 지도자...
모두들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귀한 인격자들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고귀한 인격을 짓밟힐 의무는 없습니다.
또, 하나님으로부터, 혹은 법적으로 신앙의 이름으로
남의 인격을 짓밟을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목사필자을 향해
머리를 깍으라고 욕설을 퍼붓고, 신앙관이 다르다고
목사직업을 바꾸라고 협박을 하고,
나이가 드신 듯한 노장로님을 향해 술에 취한 할방이라고
공개적인 언어폭력을 휘두르고 ....

이런 인격모독, 인격살인행위가 신앙토론이나
근본주의 신앙관과 관계가 되는 일입니까?

저도 당당뉴스 덕분에 머리털이 나고 처음으로
직업에 관계된 인신공격을 받았습니다.
감히 내 아들에게도 할 수 없는 언어폭력이지요..

5. 당당함에 대해서
제가 댓글을 쓰면서 굳이 실명을 고집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나에게 당당하기 위해서 입니다.
설령 익명이나 가명을 사용한다 하더라고
이에대한 신앙적 면책권을 갖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 앞에 떨리는 마음으로
글과 댓글을 써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더구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6. 당당뉴스에게 법적대응을 건의한 이유

저는 당당뉴스는 나름데로 숭고한 신앙적사명과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기사와 글의 선택과 편집, 그리고 댓글레 대한
규제는 당당뉴스의 고유한 법적권한입니다.

당당뉴스를 파괴하고 없애려고 하는
음모나 공작으로 부터 보호해 주고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당당뉴스를 아끼고 사랑하는 한 독자의 충정이었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당당뉴스에 기고를 하는 글이나, 장문의 댓글들은
필자들의 평생연구결과나 신앙적인 체험에서
나온 귀한 글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필자들은
참기 어려운 개인적인 인신공격과 비난을
묵묵히 참고 견디어 내고 있습니다.
이런 필자들의 명예와 인격을 보호해 주고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돈은 잃으면 다시 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명예는
한번 잃으면 쉽게 되찾을 수가 없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없는 어둠으로 부터 공격때문에
얼마나 많은 선량한 분들이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려야 합니까?
나의 손톱에 박힌 가시는 아파도 남의 심장에 박힌
대못의 아픔을 못 느끼는 것이 인간들의 본성입니다.

몇 해 전에 뉴욕의 한인대형교회 목사가
여러명의 신도들과 간음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이 알려지자 그 목사가 신도들 앞에서
사실을 고백을 했습니다.
그 고백을 들은 신도들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할렐루야 를 외치며 박수를 치고 환영했습니다.

내가 그분들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당신들의 배우자들이 몇 년간
간음을 한 후 들통이 나자
당신들에게 사실을 고백한다면
그때도 할렐루야 를 외치며 박수를 치고
환영할 수 있느냐고? "

우리들 모두, 무책임한 댓글로 부터 상처를 받은 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당뉴스와 어떠한 이해관계도 없는 평범한
독자 중 한 사람입니다.
어떠한 조치를 요구를 할 수 있는 아무런 법적권한도
없습니다.

다만 이런 유익하고 훌륭한 신문과
당당뉴스를 통해서 만났던 소중한 인연들과의
관계가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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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방현섭 (121.160.87.21)
2013-03-06 11:42:52
긴 머리카락의 목사필자...
아마도 저를 말씀하신 것 같네요. ㅋㅋ 최근에 머리를 잘랐습니다. 단정하게요! 감사합니다. 매우 공감하는 바이며 당당뉴스는 '세상과 교회의 다리'라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당당의 입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다른 입장을 피력하는 것을 보장해주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도 객원기자로서 박선생님의 관심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성원,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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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mail-x (112.222.123.131)
2013-03-05 09:13:16
주여! 누가 개혁본부를 만들었나이까?...
.


.

뉴조에 비하면 이곳은 피키님 말씀대로 심심한 곳이죠. 개혁본부를 능가하는 사람이 뉴조에는 더 많았죠. 참빛 선생 말씀대로 개혁본부는 글 쓰는 경향으로 볼 때 폭력적인 사람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기 사람들 아마도 보통 개독들이 인터넷 상에서 무슨 짓들을 하는지 잘 몰라서 그럴 겁니다. 상대적으로 개혁본부는 아주 온건파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개혁본부는 자기가 배운대로 행할 뿐입니다. 우리나라 교회 중에서 정통과 이단을 불문하고 개혁본부가 배운 것과 다르게 가르치는 곳이 과연 몇 군데나 되겠습니까?

나는 고신 계통의 교회에 다녔었는데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평범한 평신도들이 부시의 침공은 하나님의 뜻이며 이를 계기로 이라크에 복음이 전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나로서는 아연실색할 반응이었지만 전국의 교회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럼 뭐 이들이 평소에 폭력적이고 전투적이냐? 그게 아니죠. 아주 평범하고 심지어는 쑥맥들도 많습니다. 그저 조용하고 어찌보면 순진한 사람들이죠. 이런 사람들 입에서 폭력과 전쟁을 당연시 하는 말이 나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나는 무슬림 탈레반들이 그다지 머리가 좋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내가 탈레반이었다면 개신교인들을 잡았을 때 청산가리나 복어독을 먹였을 겁니다. 개신교인들은 성경 말씀이 일점 일획 틀린 것이 없다고 믿고 있으니까요. 탈레반들은 돌대가리들이라서 세상에 무슬림의 권위가 기독교의 권위보다 낫다는 그리고 성경의 주장이 엉터리라는 것을 얼마든지 증명할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믿는 자는 독을 마셔도 죽지 않고 뱀을 만져도 죽지 않는다고 하니 한 방울만 마셔도 죽는 독을 주고 스치기만 해도 죽는 맹독사에게 물리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나 같으면 할 수만 있다면 조*기, 김*도, 전*욱, 정*지, 오*현 같은 목사 놈들 데려다가 탈레반에게 넘기겠습니다. 이 놈들 맹독사로 가득 찬 방에 집어 놓고 과연 살 수 있는지 전 세계에 인터넷으로 생방송 하겠습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묻습니다. 여기 계신 기독교인들 중에서 자신이 개혁적이든 보수적이든 진정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중에서 복어독을 마실 분이 계십니까? 저는 그 분이 진정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같으면요... 그런 실험 다 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 실은 성경 말씀 믿지 않지 않습니까? 그저 자신에게 필요한 구절만 가져와서 써 먹고 지켜야 할 신의와 정직과 사랑은 전혀 행하지 않지 않습니까?

나는 혹시나 이곳 한국에 있는 무슬림 중에서 탈레반 출신이 있어서 제 글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는다면 충분히 그들이라면 이런 실험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도 무슬림 국가에서 전도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니 탈레반이 마음만 먹으면 샘플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인들로서도 손해 볼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정말 성경말씀이 옳다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닙니까? 성경 말씀을 일점 일획 빠지지 않고 그대로 믿는 자들이 90%가 훨씬 넘을 테니 말입니다.

나는 기독교인들이 제 글을 폭력적이라거나 비인간적으로 몰아가는 것에도 솔직히 분노를 느낍니다. 만약 자신들이 떳떳하거나 믿음이 확실하다면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분명한데도 이런 좋은 방법, 제안을 거절한다는 것은 실은 그 누구도 성경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개신교인 중에서 입만 열면 순교가 꿈이라고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실제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도 이런 전도사가 있었습니다. 전국에 이런 꿈을 가진 분들 모아서 탈레반에게 올립시다. 그들은 탈레반에게 담대히 예수의 복음을 전해서 좋고 탈레반이 개종하면 더욱 좋고, 설사 탈레반이 그들을 참수할지라도 이것은 위대한 순교가 아닙니까? 그들이 원하던 죽음이 될터이니 자신들에게도 탈레반들에게도 좋은 것이지요.

실은 믿음이나 신앙, 종교라는 것이 아무리 주관적이라 할 지라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개신교는 단 한 번도 이런 실험에 참여한 적이 없습니다.


개독들은 입만 열면 ‘성경’으로 돌아가자. ‘성경적’인 해석을 해야한다. ‘성경적’이 되어야 한다. 라며 게거품을 뭅니다. 그럼 도대체 ‘성경적’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개독들은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삼으려 하는 것일까요?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모두 ‘성경적’이라는 단어를 쓰고 자신의 주장을 성경적이라고 합니다. 나는 ‘성경적’이라는 단어를 쓰는 개독들을 보면 참 웃긴다는 생각이 듭니다.

1. 당당 고등학교에서 키가 180cm 이상인 학생
2. 당당헬스 클럽 회원 중 몸무게가 70kg 이상인 여자
3. 우리나라에서 1,000m 가 넘는 산
4. 당당 초등학교 1학년 중 안경을 쓴 학생
5. 2012년 개봉한 영화 중 재미있는 영화
6. 당당 꽃 가게에서 아름다운 꽃
7. 당당백화점에서 예쁜 옷
8. 당당슈퍼마켓에서 맛있는 과자
9. 우리나라 교파 중에서 성경적인 교파
10. 당당뉴스 이용자 중 성경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
11. 당당교회 성도 중 성령을 받은 사람
12. 당당교회 성도 중 은사를 받은 사람
13. 조용귀, 김흥도, 윤석준, 소광석, 장호희, 이천수, 전벙욱, 오정연, 신자득, 이동언, 이만의, 박억수, 정사지, 방인송, 류상대, 박창쥔 중에서 성경적인 내용을 전하는 사람


위의 13가지 경우 중에서 ‘수학적 집합’(개념을 정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은 어느 것인가? 이런 구별은 지금은 아마 초등학교에서 배울 것이다.
어떤 꽃이 예쁘다고 하면 다른 꽃은 예쁘지 않기 때문에 그 기준이 있어야 하고 또 있어도 명확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주장, 행위, 글, 가르침 등이 ‘성경적’이라면 그것을 보는 100명이면 100명, 1000명이면 1000명 모두 이의가 없어야 한다. A가 성경적이라고 주장한 것이 B가 보기에는 아니라던지 C는 반쯤 수긍하는데 D는 이단으로 본다든지 하면 이것은 성경적이 될 수 없다. 그냥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어떤 개독이 자신의 주장의 근거는 ‘성경’ 혹은 자신의 주장이 ‘성경적’이라고 할 때는 이 개독은 미친 것이 확실하다. 미치지 않고서야 자신의 주장이 ‘성경적’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장, 글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느 누가 보더라도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단 한사람이라도 수긍하지 못한다면 이 명제는 성립할 수 없다.

한국에서 ‘1m’의 길이는 영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미국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똑같다. ‘1kg’ 의 질량도 마찬가지다. 부산에서 1kg의 질량이 서울, 대전, 도쿄, 뉴욕 등에서 달라지지 않는다. 단 한 곳,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똑같다. 만약 길이나 무게가 장소나 재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면 그것은 기준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나는 개독들이 그 누구건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성경적’이라는 것은 주장이 아니라 당연한 한 사람의 예외가 없는 개념정립이 되어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서 개독들이 많이 쓰는 단어나 표현이 들어간 문장은 “나는 ~라고 본다” “나는 ~라고 생각한다”라는 문장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어느 개독 넘도 자신의 주장이 성경적이라고 게거품을 물지만 실은 어느 누구도 다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마엘의 도끼’는 성령을 받은 사람이다.- 라는 주장을 한다면 이 주장의 진위는 무엇으로 밝힐 수 있겠는가? 여기 개독들 중 정확하게 이 주장의 옳고 그름을 성경적으로 밝힐 수 있는 넘들이 있는가?

혹시 어떤 개독 넘께서 이 문장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나는 정확히 ‘성경적’임을 보여주겠다.

누군가 자신이 있다면 도전해 보라. 자신이 성경적인 개독이라고 믿는 자가 여기 당당에 수두룩할텐데 뭐 손해 보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원글 쓰고 댓글 달고 하는 개독분들 다 성경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닌가? 성경 구절 가져와서 게거품 물고 내 말이 옳으니 니 말은 그르니 하는 이 행태들 말이다.

특히 나 ‘이스마엘의 도끼’의 글에 반대표를 열심히 클릭한 당신 개독님~! 한 번 도전해 보시죠. 내가 ‘성경적’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무의미하고 망상적인 개념인지 금방 보여드리리다.

그리고 개독들과 대화(?)는 초등학교 이상의 수준은 필요 없다. 우리나라 개신교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절대 다수의 기독교는 말이다. 개독과의 대화에서 중학교 이상의 개념을 가져오고 수준을 설정하는 것은 마치 바퀴벌레 잡으면서 박격포를 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차피 개독들의 99% 이상은 정상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도 못할뿐더러 초등학교 수준을 벗어나는 어떤 것도 낭비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성경’이 너희 개독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주장하는데 이거 진짜 웃기는 건지 알지? 내가 성경책 살 때 니들이 돈을 보태줬냐? 차비를 보태줬냐? 내게 성경책은 그저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인 다른 책과 같을 뿐이다. 너희들이 성경책으로 전도할 권리가 있다면 나는 성경책으로 바퀴벌레를 잡을 권리가 있고 라면 받침대로 쓸 권리가 있으며 추울 때 불쏘시개로 쓸 권리가 있다.

너희들이 타인의 종교, 타인의 사상, 타인의 문화를 적대시하고 배척하고 파괴하고 너희들의 종교를 그 위에 전하고 세우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도 너희들이 신성시 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멸시하고 조롱하고 너희 두목 예수와 야훼를 조롱할 권리가 있다. 너희들이 교리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교리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예수는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희들 개독들을 뭘로 보고 판단하겠느냐? 너희들이 부정부패, 공금횡령, 땅투기, 성폭행, 성추행, 각종 이권개입, 타 문화 파괴와 말살 등의 사회악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너희를 판단할 뿐이다. 우리는 너희들의 모습에서 예수를 본다. 적어도 너희들을 통해 우리 눈에 비친 예수는 성도착자, 범죄자, 사이코패스 일 뿐이다. 우리는 예수를 오직 너희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예수는 나무이고 너희는 열매다.

너희는 뻔뻔하게도 ‘사람을 보지 말고 예수를 보라’고 주장한다. 이게 얼마나 황당하고 거짓된 주장인가? 예수는 열매를 보라고 했는데 너희는 열매를 보지 말라고 한다. 이 얼마나 참담하고 거짓된 주장인가? 너희가 무엇을 주장하든 우리는 너희를 통해 예수와 야훼를 본다. 우리에겐 너희가 예수고 너희가 야훼다.

어떤 아이들이 본드 빨고 담배피고 여학생 따먹고 돈 훔치고 오토바이 타고 날치기 하고 이렇게 살아가는데 이것을 본 사람들이 “쯔쯔쯔... 너희 부모는 어떤 사람들이길래 너희가 이런 짓을 하도록 둔단 말이냐? 정말 너희 부모들이 한심하구나!” 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 아이들은 “우리를 보지 말고 우리의 행동을 보지 말고 오직 우리 부모가 선한 분임을 바로 보세요”라고 주장했다.

자... 개독님들아...

언제까지 ‘사람을 보지 말고 예수만 바라보라’는 거짓을 외칠텐가?
언제까지 ‘열매로 나무를 안다’는 예수의 말을 거역할텐가?
언제까지 사회의 암세포, 해충, 쓰레기 같은 짓을 하면서 도리어 자신들은 선하다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망상적인 주장을 계속 할텐가?

도대체...

언제까지?.........


.


.
리플달기
3 5
Philip Im (70.62.49.64)
2013-03-05 12:11:50
"우리는 예수를 오직 너희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예수는 나무이고 너희는 열매다."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 말에 대하여 심각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참으로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면서 판단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예수님이 구세주인지를 의심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보지 말고 예수를 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이며 예수님께만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리플달기
0 2
참빛 (207.210.3.147)
2013-03-05 09:45:20
도끼님은 이야기 보따리를 푸실줄 아는 달변가이시군요.
은근히 유모스러우면서도 할 말은 다 하시니까요.
정곡을 찌르는 말들만 어쩌면 저렇게 딱 골라서 하시나..
놀랍습니다.

복어알 비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재미있습니다.
배꼽을 잡았습니다. ㅋㅋ

근데 말이지요.
그 '개독'이라는 말은 솔직히 듣기가 조금 거북하네요.
저는 '근본주의자'라는 말로 대신해서 쓰는데 다른 단어를 쓰시면 어떨까 싶네요.

고신측의 교회에 나가셨다고 하셨으니 잘 아시겠지만, 교회나가는 사람들 모두 다 그런 '개독'은 아닐 것 같은데요. ^^
리플달기
1 2
나는 도끼 (112.222.123.131)
2013-03-05 10:31:01
내가 달변가인 이유는...
.

1. 도끼가 달변가인 이유

제가 글을 쓸 때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시고 야훼께서 성령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즉, 저는 제 생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성령과 영감으로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저 도끼에게 '스토리텔러'의 사역을 명하셨습니다.

저는 원치 않았으나 그 분이 원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토기가 토기장이에게 왜 날 이렇게 만들었냐며 원망하거나

의문을 가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분은 창조주요, 저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스토리텔러'로 살 것을 원하셨습니다.

저는 겸손하게 그 분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할렐루야~~~!!!.


2. '개독' 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개독'이라는 단어는 제 '스토리텔러' 사역자로서 제 정체성을 표현하는

핵심단어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으로서 사역함에 있어 '개독'이라는 단어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독'이라는 단어는 '개신교 기독교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뜻으로도 쓰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종 저 도끼로서는 '개독'과 같은 이러한 '중의어'들을

크게 활용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기도 하지만 나 도끼 자신이 먼저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개독님들이 우리들을 '불신자'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하고 불편함을 가지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입니다.


살다보면 때로는 불편하고 좀 불쾌한 표현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역시

어쩌면 주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이처럼 우리가 항상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 분의 사역을

담당하시고 계십니다.


저 도끼는 그 분의 동역자이자 종으로서 본분을 다 할 뿐입니다.

저 도끼에게 '개독'이란 '애증'의 또다른 표현입니다.

그리고 '근본주의자'는 다섯 음절이고 '개독'은 두 음절입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일반인들은 '근본주의자'라는 표현보다 '개독'이라는

표현에 훨씬 더 익숙합니다.

저는 가끔...

'개독'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어린이들을 위해 율동을 하던 어느 개독

먹사님을 떠올립니다.

그 분은 "샤론의 꽃 보다 아름다운 우리 예수님..."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앙증맞고 우스꽝스럽게 개독다운 율동을 하면서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행복하게 하였습니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모두가 고통받는 이 때에 그 먹사님은 자신의 한

몸을 던져서 개그콘서트 외에는 그다지 웃을 일이 없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하신 것입니다.


'근본주의자'의 느낌은 냉혹하고 벽창호인 잔인한 느낌이지만

'개독'의 느낌은 귀엽고 어리석고 한심한 느낌입니다.


저는 여러분도 이 사랑스러운 단어를 좀 더 널리 쓰셔서 여러분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바랍니다.

.


참빛 선생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



























.





















뱀발 : 개독님들을 상대할 때 이성을 가지고 계시면 안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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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3-04 23:36:02
개혁본부는 정통기독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그대로 믿고 말한 죄 밖에 없습니다.
개혁본부 님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제가 판단하는 개혁본부.
그는 정통 기독교의 교리와 신념을 확실히 믿고 믿는대로 말로써 표현하는 분입니다.

개혁본부가 말하는 내용은 터무니 없는 개인적인 주장이 아니라
대다수의 한국 교회에서 그의 주장과 동일한 것들을 성도들에게 말하고 가르칩니다.

다들 앞뒤 재어가며 눈치만 보고 있거나 좀 젊잔은 척 하느라
주저주저하며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개혁본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성격이 괄괄하고 용기가 더 많아 실행으로 옮긴 것이지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고소를 운운할 정도의 심각한 상태는 없었다고 봅니다.
임빌닙 말씀처럼, 개혁본부가 고소대상이라면 저를 포함하여 고소당할 사람 많이 있습니다.

만약 그래도 고소를 하시겠다면,
사실 개혁본부가 상대가 아니라 그를 그렇게 믿고 행하게끔 만든
한국 기독교를 상대로 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최춘선 할아버님 기억하시죠?
하루도 거르지 않으시고 눈이 오나 비가오나 맨발로 걸으시며
남북통일 되면 그때가서 신발을 신으시겠다고 말하셨던 그 분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시며 노방전도를 하셨던 인자하신 거리의 천사..

그 분의 개인적 순수한 마음과 어린아이와 같은 확신적 믿음을 누가 무엇이라고 욕하겠습니까?
그의 열정이 거기에 있었고 거기에 그 분은 인생을 다 건 것이었죠.
인생은 선택입니다.
그 분은 그 길을 선택하신 것이었던 거죠. 당당하게요.

물론 저는 여기서 그런 것이 객관적인 눈으로나 사회적으로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진 교회의 가르침이 순수하고 착한 열정의 사람들을 얼마나 우매하게 만들어 버리는지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90% 이상의 소위 정통교라고 자칭하는 한국교회들이 예수천국과 불신지옥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들은 용기가 없어 나서지 못하고
대신... 개혁본부의 뒤에서 잘한다고 박수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럼 이제 개혁본부님께 부탁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님께서 주장하시는 내용은 다 이해하고 존중합니다.
당당뉴스에 요구하시는 내용도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대한 답은 당당뉴스의 몫입니다.
표현적인 면에서 앞으로는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Law 계통에 있어서, Civil Litigation을 수도없이 경험했습니다.
모든 사법시비는, 특히 명예회손 쪽은요, 끝에 가서보면
이긴자는 아무도 없고 모두 결국은 패자들로 남게되는 겁니다.

여기에 글을 써 주시는 류상태님과
댓글을 꾸준히 달아 주시는 임빌립님, 피키님, 박평일님, 이사야님 그리고 많은 여러분들과 개혁본부님께도 모두 감사하고요. 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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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mail-x (112.222.123.131)
2013-03-04 16:25:41
사실... 개혁본부는...
.


인터넷에서 가장 흔한 기독교인의 모습입니다.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도 교회 가면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하면서

악수하고 웃음짓고 때로는 찬송가 부르면서 눈물도 흘리죠.


이건 뭐 제 생각입니다만

고소는 좀 심하고 그냥 원칙에 따라 처리하거나

못 들어오게 하면 됩니다.


예전에 이런 문제로 뉴조가 좀 골치를 앓았는데

그 당시 '마*클 송' 선생이나 다른 분이 아이디 블락 당했습니다.

저와도 여러 번 글이 오고 가고 했는데 정작 저는 뭐 그다지 기분

나쁘거나 신경 안 썼는데 블락당했더군요.

물론 저 말고 다른 분과도 그 분이 좀 이런 저런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뭐 못 받아 들일 것은 없지요.

당당뉴스 관리자나 편집자 분도 아시겠지만 솔직히 종교 없는 사람은
잘 안 그러지만 믿는 사람들이 더 양보도 없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을 잘 알겁니다.

종교확신범들은 정말 어쩔 도리가 없지요.
종교확신범이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 보통 우리 주위에 흔한 평신도들이죠. 평범해 보이는 평신도들이 단지 어떤 촉매로 인해 어떤 상황으로 인해 테러범으로 변하는 건 한 순간이죠.


제 생각으로는 임필립 씨의 의견이 옳다고 봅니다.

여러분 미친 기독교인들 한 두 사람 보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당당이나 뉴조나 보면 안티보다는 오히려 미친 근본주의 개독들이

더 게시판을 어지럽히고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하는 것을 흔히 봅니다.


문제는 이 또라이들을 막을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다는 것인데 그래도
가장 나은 방법이 조용히 블락하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들은 교육이나 어떤 가르침으로 바뀔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평범하게 살아갈 수도 있는 이런 사람들을 광신자나
망상병자로 만든 것도 우리나라 기독교가 아니겠습니까?

포인트가 좀 벗어나긴 했는데...

류상태 선생님도 이런 인간 저런 인간 있다는 걸 잘 아실테니
그냥 블락하는 선에서 마무리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모르는 뭔가가 또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


제가 볼 때...

당당이나 뉴조가 안티 때문에 힘들거라는 생각은 안 합니다.
안티들은 '뇌'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뇌의 기능을 정지시켜 놓고 예수의 군병으로 자신이 보는 곳마다 테러를 가하는 저런 개독들 때문에 많이 힘드신 걸 압니다.



.


당당 편집자님 생각해 보세요.

이런 미친 개독이 저 넘 한 넘 뿐이라면 고소든 뭐든 상관없지만
저런 넘들은 기독교계에 널리고 널렸죠.

끊임없이 계속되는 시지프스의 돌굴리기를 해야할 당당은 좀 더 현명한 방법으로 대처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물론 뭐 저라면...

그런 넘 아가리에 복어독을 처 넣어버릴 겁니다.
성경에 이르길 믿는 자는 독을 먹어도 안 죽는다고 하니
지가 기독교인이라고 확신하면 안 처먹을 이유가 없겠지요.

하지만 당당은 그럴 수 없지 않습니까?

고진선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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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3-05 01:02:12
독을 먹어도 죽지 않는다?
신대원을 다니셨다니 깊은 말씀을 안드려도 저 보다도 더 잘 아시는 것이겠지만요...

도끼님께서 인용하신 '독을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성경의 말은 님께서 아마도 마가복음 16장 18절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마가복음 16장에 대한 여러 학설 중에 16장 전체가 나중에 수정첨가 되어진 부분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오래된 사본의 내용 즉 허무하기까지 하도록 갑작스레 끝나버리고 마는 마가의 16장의 짧은 내용을 2세기 쯤에 이르러 문학적으로 다듬고 첨가하고 수정보완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의 일점일획도 무오하고 기록된 모든 말씀이 완벽한 계시라고 주장하는 근본주의 기독교의 논리가 얼마나 엉터리이겠습니까? 저는 성경에는 분명 달고 오묘한 말씀이 많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을 꾸준히 읽고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는거지요. 그렇지만 성경에는 인간의 생각이나 사상이 즐비하게 들어있는 인간의 작품이라는 것도 우리는 동의해야 합니다. 목사들이 자기 비지니스를 위해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않고 성도들은 그저 목사들이 그렇다니까 그런가 보다 식의 맹종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독을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말은 성경에 쓰여있는 말씀이기는 하나 사람의 주장이지 하나님의 말씀(계시)은 분명하게 아닌것이죠. 그런데도 무지한 근본주의 자들은 문자 그대로를 믿으려고 달려드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렇게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렇 수 밖에 없겠지요.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살고 공부하는 성도라야 산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단편적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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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3-05 03:01:08
막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이 구절을 오해하시는 분들은 '믿는 자들'에 방점을 두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17절 이하 나타나는 표적들은 고전12장 28-30말씀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은사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은사는 똑같은 것을 믿는 자들 모두가 받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신대로 은사를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내가 어떤 사람이 갖고 있는 은사가 없다하여 나는 믿는 자인가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교단 내지 어떤 개인은 방언을 믿는 자라면 반드시 가져야 하는 은사로 보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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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3-05 03:49:30
무슨 말씀이신지?
고전 12장 28-30 절은 은사부분 특별히 방언에 대한 부분을 다루고 있는 것이고요

제가 말하는 막 16:18 절은 은사의 문제 그 이상의 것
즉 믿는 자들에게 초능력적 능력이 실제로 나타난다고 하는 말을 논하는 것입니다.

우선 님의 두 부분의 비교는 합당하거나 적절하지 않아 보이고요.
제 글을 확실히 이해하신 상태에서 말씀하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님의 논리대로라면, 은사이기 때문에, 독을 먹어도 다같이 믿는 사람들일찌라도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죽고 어떤 부류는 죽지 않는다는 논리입니까?

누구를 막론하고 독을 먹으면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도 독을 마시고 죽었어요.
이런건 논쟁할 여지도 없는 상식입니다.

그리고, 저의 댓글 취지는 단순히 그런 일차원적인 데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작품인 성경을 가지고서 성서무오설을 외쳐대는 저 무지한 근본주의 사람들에 대한 피판이자 비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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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3-05 05:16:05
1.고전 12장 28-30 절은 은사부분 특별히 방언에 대한 부분을 다루고 있는 것이고요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다 사도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이상의 본문 말씀을 보면 특별히 방언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같은 은사를 가지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2.제가 말하는 막 16:18 절은 은사의 문제 그 이상의 것
즉 믿는 자들에게 초능력적 능력이 실제로 나타난다고 하는 말을 논하는 것입니다.

----->은사에 의하여 다른 사람과 달리 재능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지만(이것이 대부분의 경우입니다.) 때로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은 그것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고(이는 교회를 설립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광 받으시려 하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능력의 은사를 가지고 행하시는 분들은 자기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3.님의 논리대로라면, 은사이기 때문에, 독을 먹어도 다같이 믿는 사람들일찌라도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죽고 어떤 부류는 죽지 않는다는 논리입니까?

----->독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하신 경우 즉 그 은사를 받은 자에 한해서 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는 어떤 목적이 있으십니다. 따라서 아무나 독을 먹고 죽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사도행전 28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독사에게 물렸으나 죽지 않은 사건이 나옵니다.

4.그리고, 저의 댓글 취지는 단순히 그런 일차원적인 데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작품인 성경을 가지고서 성서무오설을 외쳐대는 저 무지한 근본주의 사람들에 대한 피판이자 비꼼입니다.

----->저에게 누군가가 '당신이 그렇게 믿음이 좋다면 이 독을 먹어봐라.'라고 한다면 저는 먹지 않습니다. 죽으니까요.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건 상식에 속합니다. 그러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까?

님이 이문제에 대하여 해결하시는 방식은 인간의 작품인 성경이기 때문에 사람의 주장(이것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이므로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지요.성경 속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인간이 꾸며낸 말이라고 한다면 그 수많은 에수님의 말씀 가운데서 어느 것이 진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인가요? 분별하는 기준이 무엇인가요?

제가 해결하는 방식은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성경으로 성경을 푸는 것입니다. 독의 해를 받지 않는 은사를 받은 자만이 그렇습니다. 저는 그런 은사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사단이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우리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뛰어내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달라서 얼마든지 그렇게 하시고도 해를 입지 않을 수 있지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십니다.
오늘날 우리도 "믿는 자들은 독을 먹어도 해를 입지 않는다고 했으니 먹어보라"고 시험할 때 그 성경 구절은 인간의 말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성경적이겠습니까 아니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는 것이 성경적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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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07.210.3.147)
2013-03-05 05:58:18
자주 성경적이라 말씀하시는데 그럼 성경적이라는 기준이
이런식으로 상식을 떠나 있는 겁니까?

누구를 막론하고 독을 마시면 죽어요.
이건 상식입니다.
초능력이나 믿으시는 그런 분이셨나요?
예수 잘 믿으면 그리고 그 중에 또 은사로 받게되면 초능력을 보유하게 되나요?

차라리, Alice in Wonderland에서 알리스가 마술사 토끼를 만나서
놀고 대화하는 것을 믿는 것이 더 상식적일 것 같습니다요.
그런 초자연 적인 능력이란 없는 거예요.

성경에 나타난 기적적인 하나님의 간섭은 역사상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입니까?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아닙니다.
이는 신앙적 간증이고 문학적 시적 수사적 표현이지요.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추게 한 내용 그런 것 저는 믿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지금도 없고요 앞으로도 전혀 없을것 뻔하고요.
초자연적 능력같은 따위는 저에게는 아예 말씀하실 필요가 없고
입선생님이나 원하시면 열심히 믿으세요.

그리고 저의 취지를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누구를 시험하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라
도끼님의 복어알 먹고 죽나사나를 시험해 보라는 것은 성경의 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는 문자주의자들의 우매함에 항거하고자
해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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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3-05 09:46:33
성경에 나타난 기적적인 하나님의 간섭은 역사상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입니까?
어떤 분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난 기적적인 내용은 신앙고백적 문학적 수사학적인표현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유는 인간 상식에 어긋난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이 땅 위에서는 인간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모씨가 여자를 죽이고 300여조각으로 나누며 아버지가 자기 친딸을 성폭행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성있는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이성있는 인간이라면 먼 훗날 이 일은 꾸민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 일을 하지않는 사람을 비정상적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
물론 이런 사건에 대하여 여러 가지 조건들을 말할 수 있겠지만 제 말의 핵심은 비상식적인 일이라 해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음 성경 구절을 보시지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상식과는 어긋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과는 관계없이 이 일은 일어났다고 여러 이성적인 추론을 통하여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어떤 분들은 이것은 신화라고 말합니다. 혹은 사람이 지어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신과 다를 바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상식과 어긋나기 때문에 혹은 우리의 이성에 반하기 때문에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인정할 수 없고 그래서 형이상학적인 차원에 하나님을 두고 종교적인 의미만 끄집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껍데기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 제가 드리는 말씀이 이성에 반한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지극히 이성적인 추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사실이기 때문에 추론할 수 밖에 없지만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그 역사적 사실을 알게하시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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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3-05 14:06:36
님과 같은 분들은 우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늘상 말을 하시는지요?

이미 답을 다 알고 가지고 있어요, 그냥..
참 대단도 하시네요.
그래서 모르는 나는 이야기를 더 진행할 수가 없어요.

미안하지만, 님이 하시는 그런 상투적인 말은 이미 주일학교 때부터
익히 들어온 지겨운 소리에 불과합니다.

저도 그런 교리는 왠만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상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놈의 교리라는 것 때문에 기독교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확신하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외다. 그러니, 지난번에도 님께 부탁 올렸지만, 제발 앵무새처럼 교리가지고 들먹이지 말아 주세요.

나는 진리를 아주 조금밖에 모르고 있고
알면 알수록 더 모르는 것이 많아지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님은 도대체 무슨 수로 그렇게 다 통달한 사람처럼 말씀을 하시는지...
하나님이 가르쳐 주셨다고 할 건가요?

위의 도끼님의 댓글 '내가 달변가인 이유는' 를 좀 읽어 보세요.
뭐 느끼는게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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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66.138.28.106)
2013-03-05 15:10:23
이스마엘 엑스의 글에 대하여 느끼는 것이라.....
님이 달았던 댓글이 없어졌네요.
잘못 느끼셨습니까?
님의 댓글을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스마엘 엑스의 댓글에서 우리를 통하여 예수를 본다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고 큰 찔림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위의 저의 댓글은 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사고 속에서 논하고 있을 뿐입니다.
무엇이든 교리라고 갖다 붙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님은 주일학교 시절부터 상당히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신거 같아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참 민망스럽군요.
그렇다면 고전12:28-30말씀은 특별히 방언에 관한 것이 아닌 정도는 아시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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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66.138.28.106)
2013-03-04 16:04:58
왠 고소?
때 아닌 고소 논쟁입니까?
당당뉴스는 본사의 운영원칙을 따라 행하시면 될 줄로 생각합니다.
고소를 하여 누군가가 적어도 시간과 금전의 손해를 보게됩니다.
미리 삭제할 것을 삭제하면되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댓글에 대하여 불편하다고 하시는 분들의 반응도 너무 민감하신 것 같습니다.
사실 점잖게 말씀들을 하셔도 가재는 게편인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댓글에 대하여 가장 불편해 하실 분은 류상태씨일 것입니다.
그 분이 직접 고소하신다면 모르겠으나 남이 비용까지 대겠다는 둥 고소를 부추기는 것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볼 때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격입니다.
류상태씨께서 고소하시기 전에 당당뉴스에서 먼저 댓글을 삭제하시는 것으로 하셔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참고로 제가 보기에는 그리 심각한 댓글은 없다고 봅니다.
개혁본부의 글이 고소감이라면 고소당할 글들 많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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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211.214.139.72)
2013-03-04 18:24:19
짧은 소견으로 이해 안되는 것은...
절도죄는 절도를 저지른 자, 살인죄는 살인을 저지른 자를 처벌하는 것인데...

명예나 평판은 정보제공자가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받은 3자들이 결정하는 것인데, 명예훼손죄는 왜 정보제공자를 처벌하는 것인지? 그 정보가 허위사실이 아니라면...

고소고발이야말로 말하자면 실력대결을 해보자는 것인데...변호사와 상의해서 법적조치를 하겠다는 건 그 실력으로 상대를 억압하겠다는 의도가 아니신지...?

정말 박선생님과 심목사님의 태도를 이해하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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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211.214.139.72)
2013-03-04 17:23:24
고소? 개혁본부는 그나마 좀 양호한 편인 것 같은데....
명예훼손, 모욕죄 고소 이런 거 좋아하는 양반들은 따로 있는 거 아닌가요? 당당뉴스 편집진과 박선생님께서 그런 말씀하시니까 왠지 어울려 보이지 않습니다.

개혁본부가 허위사실을 얘기하거나, 심한 욕설을 한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데 고소한다고 하시면, 오히려 그것이 공갈 협박이 아닌지요?

어떻게 돌아 가는 건지 모르겠네요...여지껏 임필립님의 글에 한번도 공감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계속...동지가 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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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의 도끼 (112.222.123.131)
2013-03-04 16:33:13
좀 더 첨언하는데...
.

혹시 '개혁본부' 같은 류의 인간들이 어떤 교육이나 가르침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는 분들이 계시다면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중에서 종교심리학, 범죄학 공부해 보신 분들은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겁니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시는 분은 공중파에서 다룬 범죄학 다큐를 좀

보시던가요...


종교로 사람이 더 악해지는 경우는 흔하지만 정말 그 종교에서 주장하는

성화를 이루어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이 다니시는 교회 사람들 보시고

여러분 자신을 보세요.

.



과연 '성화'라는 것이 가능합니까?

제 경험으로는(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아직 본 적 없습니다.

주장은 많이 하지요.

간증도 졸라 하고...

다 구라인거 아시죠?


고민하지 말고 모르겠으면 기독교 안 믿는 심리학자나 범죄학

전문가에게 물어보세요.


답이 딱 나오지 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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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
이스마엘의 도끼 (112.222.123.131)
2013-03-04 17:17:28
동지같은 느낌으로 착각하면 좀 곤란한데요...
.


극히 일부분에서 서로 공감한 것일뿐이지요.

.

뭐 느낌 자체가 잘못 된 건 아니지만서도...

.
리플달기
2 3
개혁본부 (203.226.197.34)
2013-03-04 14:06:30
그리 가봅시다

주일에 절간 에가서 108번배 한 목사 를 이단 ㆍ악마 그리 불렀고 ㅡ
그런사람의 즉 소속교단이 분명치 않은 사람을
특히 성경은 신화다 ㆍ 기독교를 떠났다는 사람의 글을 감리교 서울연회 후원소속인
당당 은 왜? 이사람의 기고를 받느냐 는 답변을 하지 아니한체ㅡ

개혁본부 를 고소한다?
류상태 건은 법적으로 그가 직접 고소 하여야 하니 그리하시길
바랍니다 ㆍ 준비되어 있습니다ㆍ

당당뉴스 는 내가쓴 말만 복사해 노치말고 내가 그 뎃글을쓴
원인제공 의 글도 같이 조서 받을때 지참 하시기 바랍니다 ㆍ 왜?
내 컴퓨터 아이피를 막아서 나는 모바일로 밖에 들어와 글쓰기를
하다보니 복사할수없 습니다ㆍ

조사기관 조사받을시 관련된 글 전체를 같이 제출해 주시기 바라고
그것이 불충분의 조건이 될경우 또는 큰범죄 가 아닐경우 내쪽 변호사를
통하여 무고죄로 다 고소될 것 입니다 ㆍ

즉 신앙적 이고 객관적인 일반성도 의 격한질문 에
신앙적인 답변은 못해줄 망정 그 성도를 대상으로 목사들 이
고소하는 격이니 뉴스감 입니다ㆍ

조서 받을시 그쪽매체 내가 의뢰한매체 다 생방송 으로
중계해봅시다 ㆍ

목사대 성도 로 말이죠ㆍ
리플달기
4 4
참빛 (24.141.4.52)
2013-03-05 00:03:41
그런 일을 있지도 않을 것이고, 있어서는 아니될 일이지요.
댓글 올리시는 모든 분들이 이제부터는 조금만 더 신중해 지셨으면 좋겠습니다. ^^
리플달기
0 0
박평일 (72.196.234.24)
2013-03-04 02:18:37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
당당뉴스가 내세우고 있는 댓글에 대한 원칙입니다.
일전에도 이에대한 건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필자들의 이름과 신상,사진은 당당뉴스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당당뉴스에 글을 쓴다는 이유때문에 필자들이
신원도 알 수도 없는 어둠 속 익명의 독자들로 부터
인신공격, 명예회손성 공갈과 협박을 받을 의무는
전혀 없다고 저는 믿고있습니다.

한국의 통신보호법상 명예회손이나 인권침해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현재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전에 한국대통령선거의 경우로 비추어보아
일단 사법당국에 고발만 하면 수사대상이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실명이 아닌 무명으로 댓글을 쓰시는 분들에 대한
인신공격은 법적보호를 받을 수 없는 걸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명으로 댓글을 쓰신 분의 나이 직업등 신상을 들어
공갈협박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분이 당당뉴스와 독자들의 IP 정보를
공유하고 있던지 아니면 정보를 헤킹해 가지고 있는 정보계통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
제 생각으로는 당당뉴스측에서
경찰인터넷 법죄수시대에 고발조치를 해서
수사를 맡기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법적처벌은 못하더라고 최소한 그런 협박과 공갈을
상습적으로 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신분은 공개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
복음을 전하려면 얼굴을 떳떳하게 밝히고 해야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당간뉴스를 파괴하려는 정보계통이나 기존 이익집단의
조직적일 음모, 공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당당뉴스 가끔씩 댓글을 읽을 때마다
불쾌한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대부분 일반독자들도 저와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서로 다른 신앙적견해를 나누면서 상호이해의 폭을 넓히는
대화는 유익하고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런
미친대화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지요.

할방~
감게판 휘젓다가 밤이 깊으니 심심해졌어?

오늘은 날도 쌀쌀한데 저녁에 정종이라도
데워서 반주한잔 걸쳤어?

얼굴한번 본적없는 분들과 저번부터 자꾸 엮으면서
이미지 타기 시도 하는것이 술기운 인듯해~~~

할방 몸두좀 생각 하셔야지~~~
자꾸 마시면 간 나빠진데요 ㅡ 할방

.

필자나 댓글을 쓰시는 독자들이
이와같은 공갈과 협박을 굳이 받아야 합니까?

저는 필자나 독자들의 인권과 인격을 보호해 주고
지켜주는 것이 당당뉴스 신문사측의 의무 중 하나라고
믿고 있습니니다.

성의있는 법적조치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리플달기
5 3
박평일 (72.196.234.24)
2013-03-04 08:28:06
심 목사님,

감사합니다.
저는 신앙을 가장한 불법,불의,폭력에
눈을 감는 것은 진정한 신앙적관용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점이 미국사회와 한국사회가 다른 점이기도
할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자기자신들과 무관한 일이 더라도
불의와 불법, 부정을 목격하면 반드시 관계당국에
고발을 합니다.
가명이나 익명고발은 오히려 처벌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시민들의 고발정신이야 말로 미국의 법질서를
지탱해 주는 기둥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런 법치국가의 건설을
선거공약으로 내놓은 걸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근거가없는 악성비난들은 명예해손으로
사법당국에 고발조치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이 어느시대라고 당당뉴스, 필자, 독자들이
개혁본부로부터 법에도 없는 언론검열을 받아야 합니까?

개혁본부 (203.226.198.86)
2013-02-25 12:44:27

미안한 얘기지만 류상태를 비롯
그 류 에속한 동조자들 만 정신차려도 기독교는
바로섭니다ㆍ

류상태씨는 아직도 남의 교단에서
얼정거리고 있군ㆍ

인정해 주는데로 가서 안주 하시기 바랍니다
원래 미친놈들 치고 논리력이 없는 넘들이 없지만 ㅡ
상당히 미친글을 자기 잘난맛 에 쓰는 한뼘두뇌아들!
그리 살어라!
누가 말리겠니 ~
당당 이 이런애들 한테는 관대하니 어쩌나!
당당 감리교 소속 맞어?


이런 댓글들이 기도 중에 하나님으로 부터
직접 들은 말이라면 더이상 할 말은 없습니다.
그 단체의 신앙관이니 부인하고 비판할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설령 그단체가 하나님계시를 녹음해 놓았다고
주장해도 법적인증거로는 채택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번기회에 배후세력과 동기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꼭 밝혀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당당뉴스 의 성장과 발전에도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리플달기
3 3
이스마엘의 도끼 (112.222.123.131)
2013-03-04 16:54:54
생각해보니...
.

개혁본부 같은 자들이 개인적 플레이어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겠군요.

흠...

참 종교는 답이 없네요...


그저 한 숨만...


박평일 선생님...


기독교인들(보통의 흔한)의 모습을 보려면

안티사이트 들어가 보시면 압니다.

그 사람들 특별한 개독들 아닙니다.

자기 교회에서는 너무나 평범하고 순한 집사들이고 평신도들이며

전도사이며 목사들입니다.


개혁본부를 보고 화가 나시겠지만 실은 아주

뭐라고 할까 순한 개독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인터넷에서 어떤 짓들을 벌이고 어떤 행패를 부리는지

아신다면 개혁본부 정도는 웃으면서 넘길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요...

제 생각에 세상에 가장 참혹하고 끔찍한 인간의 모습을 배울 수

있는 곳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개혁본부와 같은 자가 끊임없이 나올 수 밖에 없지요.


박평일 선생님께서 인터넷에서 개혁본부보다 10배 100배는 더 악랄한 개독들의 행태를 경험하신다면 좀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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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이사야 (121.129.19.185)
2013-03-03 23:11:52
감리교에서는
김선도.김홍도;김국도 목사와.....개악본부 를 되출시켜야 합니다
..왜 예수님은 그시대 제사장과 교권주의자를 향하여 독사의새끼...가식과 위선자요 회칠한 무덤이라 저주성 발언을 했을까요

오늘 감리교가 이리고통 당하는 원인에는 세습의 원조 삼도 목사와 돈과 교권의 권력에 휘둘려 정신을 못차리고 예수의 뜻보다는 세속의 힘에 기대기 때문 입니다....감리교 목사님들 그리고 장로 권사 평교우들이여 다죽어가는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살려내십시요.......가슴에 손을 언고 지하골방 에서 기도하는 세리와 십자가를 생각하십시요...세상 논리에 종속 당하지 말고 예수를 사시므로 자유하십시요.........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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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
개혁본부 (203.226.222.229)
2013-03-04 00:34:08
할방~
감게판 휘젓다가 밤이 깊으니 심심해졌어?

오늘은 날도 쌀쌀한데 저녁에 정종이라도
데워서 반주한잔 걸쳤어?

얼굴한번 본적없는 분들과 저번부터 자꾸 엮으면서
이미지 타기 시도 하는것이 술기운 인듯해~~~

할방 몸두좀 생각 하셔야지~~~
자꾸 마시면 간 나빠진데요 ㅡ 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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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
머나먼 남쪽나라 (119.194.80.222)
2013-03-03 21:01:48
오히려 류목사님께 감사드려야 되는 것 아니겠어요?
큰 역경과 고난을 겪으신,
이렇게 귀한 류 목사님의 소중한 글이 당당에 실리고
또 여러분과 제가읽을 수 있게까지 되었음은
하느님의 큰 축복이요 인도하심 아니겠습니까?

개혁본부/님도 몇분도 정말 ㅈㄹ같으신 분들 같습니다!..죄송합니다!
사랑도 관용도 덮어줌도 안타까워함도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
여러분이야말로 여기를 제발 드나들지 말아 주십시오!

하느님께도 부끄럽기 짝이 없으며 ,
당당책임자께도 면목없고,
여기에 오시는 선의의 분들께도
교우로서 무슨 착한 표양을 보여주고 있기는 커녕,
악표양만 잔뜩 보여 주고 계시니...
제발 개혁본부/님! 님이야말로 다른 물에서 놀아 주십시오. 거듭 죄송하지만 님이 등장할 때마다 웩웩~~토악질이 나오곤 합니다.
제발 주님 정신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사람잡는 살인적이고 더러우며 쓰레기같은 소리는 제발 걷어 주십시오!
또 죄송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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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6
개혁본부 (203.226.222.229)
2013-03-03 22:41:09
보슈 물타기 그만하슈
기독교를 떠났다고 말한사람ㅡ
주일에 절 에가서 108번배 하는 사람 ㅡ

그런 잡탕을 추종하는 당신의 진정성에 과연!
주님이 존재할까요!

나는 구역질 정도가 아니고 그 썪은 심령의 송장내가
여기 까지 가득 하구료 ㅡ

신앙적체험 이나 있는 사람들은 절때 그따위글
못쓰죠ㆍ
버림받고 밖에서 시를 부득부득 갈아대는 반항 의 거친호흡
이외에 신앙적으로 다 위배되는 오물만 토해내고 있으니ㅡ
소위 말세의 징조 란 말 밖에 안나옵니다 그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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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
개혁본부 (203.226.222.229)
2013-03-03 22:43:00
시를 ㅡㅡㅡ 이를 로 수정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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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개혁본부 (203.226.222.229)
2013-03-03 13:54:43
당당에니 묻습니다 ㆍ
류상태는 기독교를 떠났다면 왜? "목사" 명칭을
붙여줍니까?

그리고 당당은 후원문제로 서울연회 소속지원 매체인
감리교 매체인데ᆢ

다른교단 또는 신분이 분명치 않은자를 격앙 시키면서 까지
더구나 기독교사상 을 가진자도 아닌 이단아를 왜?
여기에 기고 시키는것 입니까?
그 의도가 ㆍ그 신앙의 쟁점을 어떤시각의 목적으로 여기면서
여기에 글 을 올리는것 입니까?

아주! 매우! 궁금하며 이질문의 답 이 매우 중요하심을
주시 하시어 얘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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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4
익명 (211.214.139.72)
2013-03-03 15:55:43
이제 좀 쉬시는 게...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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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개혁본부 (203.226.222.229)
2013-03-03 16:33:08
ㅋㅋ 자기는 영등포역 에가서 중앙통로에
자리잡고있으면 내가 일부러 지나는척 하면서
고등어 찍어먹다남은 겨자 한방울 줌세ㅡ
리플달기
2 2
개혁본부 (203.226.222.229)
2013-03-03 13:58:44
당다에니 가 아니고 ㅡㅡㅡ 당당에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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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Philip Im (66.138.28.106)
2013-03-03 13:32:15
나는 지금 분명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기독교 신앙을 모두 잃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떠난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나는 지금 분명 기독교인이 아니다. 나는 이제 비로소 기독교로부터 자유롭다. 기독교에는 아무런 미련도 애정도 희망도 남아있는 것이 없다.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절망과 분노는 남아 있다. 그리고 기독교로 인해 벌어지는 해악을 막기 위해 해야 할 일도 남아있다. 나는 그 일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계속할 것이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것은 세상이 아름답게 되기를 바라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위 글을 님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글 전문을 읽으면서 한편 정말 솔직하고도 정직한 분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런 결단하기가 쉽지 않지요.
앞뒤 재고서 하시는 분도 있지만 님은 학교를 나오신 후 리어카 장사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나름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님을 바라볼 때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인용한 글에서 만큼은 기독교를 완전히 떠났을 뿐 아니라
기독교를 아예 없애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하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올린 글을 보면서
님께서 언제 다시 기독교로 돌아오셨는지 아니면 전략적으로 바뀌셨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동안 님의 글에서 “나는 기독교의 신앙을 되찾았다."고 하는 글을 읽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있다면 모르겠거니와 없다면 밝혀주시든지 아니시라면 예전의 정직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시든지 하는 것이 떳떳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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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참빛 (24.141.4.52)
2013-03-03 15:38:36
류상태 님에 대한
임빌립 님의 지금하신 말씀이
모두 사실이라면...

저도 그게 궁금해 지는군요.

'나는 지금 기독인이 아니다' 라는 말이
액면 그대로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기독교와는 완전무관한 남이 되었다는 뜻일까요?

또는, 독선적인 기독인으로 남아있기를 양심적으로 거부하고
배타적인 기독교 교리에 분노하며 항거하는 처절한 몸부림의 표현이었을까요?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아무나 알아 맞춰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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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
펠리페 (211.214.139.72)
2013-03-03 15:51:58
다른 해석의 여지없이 기독교와 완전 무관하다라고 했습니다.
만일 그 말이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면, 아마도, 법정스님도 이란의 호메이니도 사실은 다 기독교인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임필립님의 다른 댓글 어느 것도 공감하지 못하지만, 요 부분은 지지여부를 떠나서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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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참빛 (24.141.4.52)
2013-03-03 17:11:19
펠리페 님은 예리한 판단력을 소유하신 분이시군요.

그러나, 저는 이를 역설적으로 이해합니다.

구도자라면 누구나 반드시 만나게 되는
필사적이고 처절한 싸움의 한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했을때,
그가 액면 그대로 무신론을 주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의 악행과 악습 및 독선적 교리가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고 죄의 노예로 만들었다고 분석판단한 니체는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교회안에 더 이상
신이 남아 있을 수는 없다고 결론내렸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기독교를 공격한 것이지 신을 부인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니체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니체 역시 신학을 공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가 신을 부인했던 것이 아니라
교회의 악에 대하여 처절하게 저항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함이 좋을 것 같습니다.
리플달기
3 0
Philip Im (70.62.49.64)
2013-03-04 09:24:48
참빛님
우리 그리스도인은 구도자가 아닙니다.
구도자란 도를 찾는 자인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결국 그는 기독교를 공격한 것이지 신을 부인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나는 지금 기독인이 아니다' 라는 말이
액면 그대로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기독교와는 완전무관한 남이 되었다는 뜻일까요?"
님의 두 댓글은 무슨 뜻인가요?

그리고 부인하지 않은 신은 하나님인가요 아니면 그냥 신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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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참빛 (24.141.4.52)
2013-03-04 12:53:00
유유상종이란 말 있잖습니까..
사람은 자기가 주로 쓰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
사투리도 비슷하게 쓰는 사람들을
친근하고도 자연스럽게 받아드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나와 다른 억양이나 사투리를 사용하고
단어선택도 달리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경직되어 집니다.

이것을 선입견 또는 편견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모두에게 어느정도의 편견은 조금씩이라도 다 있습니다.

근데 임선생님은 다른 분들에 비해
타인들의 단어사용에 대한 편견이 조금 심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바다물 속에 풍덩 내던저져 버린 사람처럼
인생이라는 풍랑 가운데 빠져 허우적거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험란한 인생의 길에서 인간은 누구나 구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모든 인생은 구도자로 이 땅에 태어나게 되는 겁니다.
그냥 밥만 먹고 잠만 자도록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기독인은 하나님의 참뜻(도)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구도자이겠지요.

그러니 구도자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실 필요는 없다고 사료됩니다.
님도 저나 류상태님과 같은 구도자 중에 한 분이실테니까요.

그리고, 언젠가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저의 평생에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이었다고 말한적 있습니다.
물론 이제는 어느정도 희미하게 나마 무언가 잡히고 있는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확하게 그 분이 무엇(누구)이며 그 뜻이 어디에 있고 또 어떠한지는 아직도 확실히 모릅니다.

평생 이러다가 가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그 누구도 본적이 없고…
우리네 인생은 그를 결코 완전하게 알 수 없다가 모두 죽게되는 것입니다.

허나, 분명히 아는 것은,
나의 하나님은 어느 특정 종족이나 집단만을 보호하는 잡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우주적인 창조자로서 모두를 품으시고 사랑하시며
그 사랑이 다하여 소진되어질 때까지 그 누구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야말로 신중의 신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한 바로 절대자 하나님이십니다.

님께서 니체의 신이 어떤 신이냐 물으신것 같은데요.
정확히 무어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그가 말하는 죽었다는 신은 정통기독교에서 만들어 놓고 말하고 가르치는
그런 이기적이고 편협적인 신을 말함이었겠지요.

니체가 부인하지 않는 신은 아마도 끝없이 품으시는 완전하신 절대자 하나님을 말함일 것입니다.


이제 어느정도의 의문이 풀이셨는지요? ^^
리플달기
0 0
익명 (24.141.4.52)
2013-03-04 12:38:00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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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박평일 (72.196.234.24)
2013-03-04 00:15:34
저도 선생님 견해에 공감합니다.
말이나 글로, 또는 찬송가, 기도로 예수를 구세주라고
고백한다고 해서 예수제자로써 신앙인이 되는 것일까?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목터지게 소리치는 것이 하니님에 대한 사랑일까?
아니면 성경구절을 입으로 달달 외우고 다니는 것이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일까?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순진한 어린이들에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어 본다면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금방 얻을 수 있겠지요.

사랑은 말이나 훈계가 아니라는 것,
사랑한다는 말은 소리일 뿐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진실을..

왜? 니체는 "신은 죽었다" 고 말했을까?
언제가 제가 글 속에서 그 말은 한 "니체는 미쳤다" 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해학적 표현이었지요.
인간의 관념이 만들어 논 우상적이고 거짓된
신은 마땅히 죽고, 또 우리들이 죽여야지요.
그러나 실존하는 신은 결코 죽을 수가 없지요.
태어나지도 않는 신이 어찌 죽을 수가 있습니까?

기독교인인 니체가 "신은 죽었다" 고 한 의미는
"우상의 신이 인간들의 관념 속에서
진짜 신을 죽이고 있다 " 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니체는 춤추는 하나님만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죄와 벌, 빛과 어둠, 심판과 보복, 미움과 증오를 초월한
완전한 사랑으로써 하나님,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면서도 존재에 대한 사랑과 기쁨으로
춤출 수 있는 예수...,

그런 모습이 그가 믿고 있었던 하나님, 예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에대해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도바올의 신앙고백은
이렇지요.

천사보다 아름다운 말, 바위를 움직일 수
있는 믿음, 하늘을 훨훨 날을 수 있는 기적,
천국에 가겠다는 굳건한 소망,
밤낮없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
은혜로운 찬송가, 수입에 90 %을 교회에 바치는 헌금,
교회와 주의 종들에 대한 철저한 헌신과 봉사.............
그 수많은 것들이 사랑이 없다면
순간적으로 스쳐갔다가 사라지고 마는
꽹과리소리들에 불과하다고. .

우리 옛말에 백번을 귀로 듣는 것 보다 눈으로
한번 보는 것이 낮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듣는 것도 보는 것도 아니지요.
직접만져보고 느끼고, 피를 흘리고, 아파하며
행동하는 삶자체가 신앙이지요.

그리고 신앙의 열매는 자신에게도 이웃에게도
사랑의 향기로 나타나지요.
소경,벙어리,혈루병 환자, 앉은뱅이, 창녀,도둑,
부자, 가난한 사람, 문둥병자, 세리. 사두개인, 바리세인,
선한사람, 악한사람, 배운사람 못배운 사람....

그 누구나 듣고, 느끼고, 믿고, 안기고, 기댈 수 있는
예수님의 향기겠지요.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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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3-04 01:57:21
선생님의 말씀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저에게는 하늘의 소리로 들립니다.
놀라우신 지혜의 말씀에 감동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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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211.214.139.72)
2013-03-04 00:56:06
국어 사전에 기독교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교훈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류선생님은 분명 "나는 지금, 기독교 신앙을 모두 잃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떠난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나는 지금 분명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자신의 위선을 고백하고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그 글을 읽어 보셨는지요?

저는 류선생의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제는 부끄럼없이 정직하신 것인지, 아니면 그전처럼 현실적인 이유로 다시 기독교에 기대에 생계를 유지하고 계신 것인지..의심을 거둘 수 없네요.

한번 속인 사람이 반성하고도 또 다시 반복하는 일은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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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196.234.24)
2013-03-04 08:46:45
선생님처럼 초지일관한 신앙을 갖을 수
있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는 하루에도 수십번 씩 처지와 입장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예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지요. 베드로와 가롯 유다가
대표적인 예가 아닙니까? 또, 사도 바올은 한 때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처벌하는 선봉장이
아니었습니까?

저는 그것이 신앙의 변덕스런 본성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신앙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중요하지요.
그래서 일곱번 씩 일흔 일곱번 씩 용서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도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런 논쟁은 끝이 없지요. 개인적인
체험으로 설명할 수 밖에는.

저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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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113.216.76.41)
2013-03-04 09:28:20
고맙습니다
박선생님같은 분 때문에 제가 아직도 기독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은 언제나 양심과 기독교 신앙이 공존할 수 있을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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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본부 (203.226.197.34)
2013-03-04 01:19:25
올커니! 얼쑤!
할렐루야!

후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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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211.214.139.72)
2013-03-03 19:12:05
어쨋든 류선생님이 직접 답변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분명히 말씀해 주셔야 할 것은 류선생님이 스스로 기독교인인지 무슬렘인지 불자이신지 부두교인인지..아니면 이런 걸 통틀어서 다 기독교인이라고 하시는 건지...?

위에서서 언급하는 하나님이 야훼를 일컫는 건지 알라를 일컫는 건지 제우스를 말씀하시는 건지...아니면 그냥 우주의 섭리를 말씀하시는 건지...?

무엇보다도, 기독교를 완전히 떠났다고 커밍아웃하셨을 때와 지금 어떤 신념의 변화가 있으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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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본부 (203.226.197.34)
2013-03-04 01:23:53
절때 본인 이름으로 답변 안할겁니다 아니! 못할겁니다
필명으로 지지자 인냥 반격하다 놀다갈 확률이 많죠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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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211.214.139.72)
2013-03-03 15:26:25
좋은 글입니다만...진실한 글이 되기 위해선...
임필립님의 지적에 대해 정직하게 답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은 "감춘 이유는 학교와 교단에서 쫓겨나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을 주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본인이 스스로 생계를 위해서 신념과 다른 말을 하면서 살았노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임필립님의 지적에 대답하지 못하시면, 지금도 역시 생계 때문에 신념과 다르게 말씀하시는 것인지 의심할 수 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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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본부 (203.226.222.229)
2013-03-03 14:06:32
할렐루야!
정확한 지적 이십니다 ㆍ

원래 근본이 부실하면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그런자의 글 을 호도하고있는 당당의 의중 을
알수가 없네요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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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과 빛 (183.107.51.50)
2013-03-03 07:58:24
진리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가 주님의 자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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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 (173.66.13.82)
2013-03-03 06:56:36
감리교회에 본부개혁 같은 분들이 많이 계셔서 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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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본부 (203.226.197.10)
2013-03-02 20:50:52
류상태가 지금까지의글이 좀 걱정 스러웠나?
아주 유아적 상념의 초보적인 글 로 무마하려하나?

다시한번 묻습니다 ㆍ
여긴 감리교 입니다 ㆍ
본인의교단으로 가셔서 그쪽 매체에 글 쓰시기바랍니다 ㆍ
여긴 왜 자꾸 오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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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개혁 (218.235.58.13)
2013-03-02 23:13:21
감리교에 "개혁본부"님 같은 분이 계셔서 감리교인으로써 참 걱정입니다....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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