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시내에서 버스를 탄다. 가율분교(분교장 송두섭) 가느냐고 운전수에게 물었다. 안성시내에서 15분 정도 걸리는 곳에 버스가 선다. 가율분교다. 졸업식 전에 두어 시간 눈이 내렸다. 눈이 하얗게 조금 깔린 교정을 밟으니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오늘(22일) 박수연양이 졸업하는 날인 줄 하늘도 알았을까. 

교무실이다. 한명이 졸업하든 100명이 졸업하든 교사들 마음이 분주한 건 똑같은 듯. 마침 종업식과 겹쳐 교사들은 민첩하게 움직인다. 안내문 챙기는 교사, 상장 챙기는 교사, 메모지 챙기는 교사 등.

▲ⓒ 안성 가율분교 박수영양 1명 졸업식장에 웃음폭탄이 터졌다. 재학생 축하동영상이 상영되자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눈물나도록 웃었다.

졸업식장 앞에서 만난 가율분교 아이들. 처음엔 누군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안녕하세요”란다. 시골학생다운 순수함인 듯. 그러더니 한 녀석이 “야, 오늘 수연이 누나 인터뷰하러 온 기자 아저씨 같다”란다. 아마 내 카메라를 본 모양이다. “저 인터뷰 좀 해줘요.”라며 말을 건넨다. 그 녀석 참 당돌하고 귀엽다. 

졸업식장에 들어선다. 10평 남짓. 아담한 공간이다. 평소엔 도서관이고, 오늘은 졸업식장이다. 학생용 의자 16개가 중앙에 앉아 있다. 교사용 의자와 내빈용 의자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학생용 의자 맨 앞에 한 자리, 그긴 오늘만큼은 ‘VIP'석이다. 

졸업식 순서지를 받아보는 순간 웃음보가 터졌다. 7가지 각종 대외상의 수상자가 한 사람 이름이다. 5가지 각종 장학금 수상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오늘의 주인공 ‘박수연’. 알고는 왔지만, 막상 보니 오늘 졸업식 풍경이 대충 눈에 그려져 웃음만 나온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졸업장 수여를 시작으로 상장을 받고, 받고, 또 받고. 장학금도 받고, 받고 또 받고. 계속 시상하던 전병호 교장(가율분교의 본교 보개초등학교)이 말한다. “수연아 뭘 들어가 번거롭게. 그냥 서서 계속 받어. 허허허허” 사실 학생 자리 속에서 웃음이 조금씩 새어나오긴 했지만, 교장의 한마디에 공인받은 듯 순간 장내엔 웃음 폭탄이 터진다. 수연 양도 손을 가려가며 웃는다. 

“위의 학생은 타의 모범이 되어~~~어쩌구~저쩌구~”라고 읽는 비슷비슷한 상장문구에도 수연 양을 질릴 새가 없다. 모두가 자신 하나만을 쳐다보아서다. 거기다가 장학금이나 부상이 따르니 말이다. 

수연양에게 표창하고 장학금 주는 단체들. 지역의 우유대리점, 시민단체, 농협, 문구점, 그리고 면사무소 등이다. 지역의 한 사찰에선 수연양에게 중학교 교복을 맞춰 입도록 선물했다. 수연양은 혼자서 독상 받는 기분이 어떨까. 

사전에 촬영한 재학생의 축하동영상을 보는 시간이다. “수연이 누나”또는 “수연이 언니”로 시작하는 동영상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영화 해리포터를 보는 것보다 더 빠져든다. 제각기 우스운 말과 포즈로 졸업을 축하한다. 그 영상은 거기를 또 한 번 웃음바다로 만든다. 한 번 터진 웃음보는 걷잡을 수 없다. 어떤 아이는 너무 웃다가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교사들도 학부형도 내빈들도 피해갈 수 없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더 웃겨서 웃는다. 

전에 내가 언니 집에 갔는데 미리 마중 나와 줘서 고마웠다는 둥, 공부 잘 가르쳐줘서 고마웠다는 둥, 이제 누나를 보고 싶어 어쩌느냐는 둥. 졸업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건 꼭 가족이별 공간인 듯. 

드디어 졸업식의 하이라이트 순간이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16명의 재학생(고학년만 16명, 전교생은 34명)이 우렁차게 부른다. 답가시간이다. 2절은 1명의 졸업생이 답가로 부른다.

▲ⓒ 좀 전에 흐느꼈던 이들은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던 듯. 왼쪽부터 담임 조은아교사, 수연양, 수연양 엄마다. 마치 학교의 맏언니를 중학교로 시집 보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란 첫 소절이 끝나기도 전 수연양의 목이 미어진다. 그전 까지 실감나지 않았던 수연양이 그 가사에 그만 울음보가 터진다. 겨우 노래를 이어간다. 1절을 부를 때만도 씩씩하던 아이들도 하나둘 눈물이 터진다. 남아들이야 씩씩하게 부른다지만, 여아들이 흐느낀다. 사실 울컥하는 마음을 참느라 이를 악문 게 나였다는 건 아무도 모를 거다. 

졸업축가도 끝나고 졸업식도 끝났다. 끝났는데도, 아직 아이들에겐 울음이 남아 있다.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왜 울어. 어, 선생님도 우시네”란다. 그렇게 ‘웃음 반 눈물 반’ 졸업식이 끝났다. 

담임 조은아 교사는 “여기가 사실 초임지인데, 수연이를 보니 나도 울컥했다. 지나간 추억도 생각나고 해서........”라며 말을 잇지 못한다. “가만히 보니, 졸업식이 아니라 맏언니를 시집보내는 거 같다”란 나의 말에 “그런 거 같다”며 담임도 인정한다. 

졸업식 끝나고 학생들의 뒤풀이 시간. 특별 메뉴다. 시골아이들에게 맛난 햄버거 잔치다. 아이들은 언제 울었냐는 듯 만면의 미소가 가득하다. 햄버거를 먹으며 시간 상 미처 못 다본 재학생축하 동영상을 본다. 햄버거도 입에 가득, 아이들 웃음도 입에 가득. 언제나 그렇듯 본행사보다 뒤풀이가 재밌다. 아이들은 다시 보고 웃고, 또 보고 웃고. 울다가 웃으면 어디 어디 털 난다고 했는데. 하하하하. 

그렇게 웃음폭탄이 터진 그곳을 뒤로 하고 교정으로 나왔다. 신기하게 눈들이 논 녹듯 사라졌다. 하늘에 해님이 떠서 교정을 비추고 있다. 이때 드는 나의 생각, ‘아니, 날씨 너도 혹시’. 속으로 웃으며 교정을 빠져나왔다.

가율분교 676-40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