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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목회세미나] 한인철 교수 발제 '역사적 예수의 목회적 함의'역사적 예수를 따르는 부담스러운 목회, 그러나 이제는 고민해야 할 때
방현섭  |  racer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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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02월 19일 (화) 10:28:23
최종편집 : 2013년 02월 27일 (수) 12:52:54 [조회수 : 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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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연구소제공 영상 

니케아회의 이전이 예수라는 한 인간이 그리스도가 되는 과정이었다면 회의 이후는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의 시소게임이 이어지던 때였다. 신앙의 기초에는 역사적 예수의 관점에서 예수의 길을 따라 그 길을 가는 방식이 하나 있고, 신앙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는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고 구원 받아 천당 가는 것이다. 어디에 기독교의 기초를 놓느냐에 따라 그 양상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과연 예수가 본래 의도했던 것, 목회자가 가야 할 바람직한 길은 어떤 길일까?

 

   


4세기 초반 알렉산드리아에서 예수의 지위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당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체제를 통일한 후에 정신적 통합을 위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였다. 그리고 니케아 회의에서의 논쟁을 보고 이 문제를 통일적으로 해결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예수가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라는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로비가 있었고 황제는 로비에 넘어가 회의장소를 니케아로 변경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의 입장을 세우기 위해 권력을 사용하였다. 이렇게 예수는 신, 하나님 자신으로 등극하였다. 즉 예수가 하나님이 된 사건은 정치적인 개입을 통해서였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으며 이 교리가 정통이 되었다. 이후 이 문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항상 소수자였고 이단으로 정죄 받기에 이르렀다. 이 교리로 인해 우리가 예수의 길을 따를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역사에서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기 위한 노력이 세 차례 있었다. 계몽적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 19세기에 이르러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예수에 관한 전기가 300여권 가까이 나왔는데 결국 역사적 예수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 기간 동안의 연구는 예수가 살아있는 동안 인간 안에 감춰진 완벽한 도덕성을 살아냈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1960년대에 불트만 학파를 통해 다시 역사적 예수 연구가 시도되었다. 이 시기에는 ‘아무리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한 사도전승이 중요하다해도 예수가 그리스도로 고백된 저변에 예수의 삶의 과정이 갖는 의미를 모른 채 하는 고백은 가현설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후 1982년부터 시작된 예수세미나가 역사적 예수 3기를 열게 된다. 이 때에는 예수의 삶의 비전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핵심이다. 3기에 걸친 역사적 예수연구의 공통점은 역사적 예수에 기독교의 기초를 놓아야만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길을 따라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는데 있다. 이것이 예수가 제자들에게 원했던 길이라는 말이다.

기독교의 주류는 신앙의 그리스도(하나님)를 기초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교인, 목회자, 신학자, 정치인들의 합작이다. 신앙의 그리스도를 따를 때 우선 목회자는 자신이 예수를 따라야 하는 부담에서 자유롭게 된다. 신학교육을 하다보면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것은 좋지만 예수처럼 살아야 하는 부담감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경험을 한다. 그런데 신앙의 그리스도는 이런 부담감을 자연스럽게 해소해준다. 또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역사적 예수를 가장 부담스럽게 여기는 그룹은 목회자들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목회자가 큰 교회의 부자들 앞에서 설교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큰 교회의 경우 신앙의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정부의 협조도 받기 쉽다.

평신도의 경우, 신앙의 그리스도로 가야 목회자가 평신도들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다. 평신도는 목회자에게 ‘목사는 목회나 열심히 하라, 사업은 내가 한다’고 말한다. 정부는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 같이 역사적 예수를 추종하는 그룹보다는 예수 믿고 천당에 가라고 가르치는, 신앙의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이들에게 관대하다. 왜냐하면 역사적 예수는 정치적으로 반항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은 역사적 예수를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는 결론을 내버린다.

예수는 믿되 예수처럼 살지는 않는다는 것이 현재 기독교의 현실이다. 바른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하고 그 길을 따라 살아야 한다. 역사적 예수의 함의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역사적 예수에 대해 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이 길을 알리고 이 길을 가자고 권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를 신뢰하고 함께 나서자고 해야 한다. 이제는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 평신도들도 많이 알고 있고 또 역사적 예수의 길을 따르는 교회를 찾는 교인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예수를 기초로 놓고 목회를 할 때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이 길은 국가권력과 충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감수해야 한다. 니케아 회의를 통해 예수가 신으로 높여지는 과정에서 황제의 역할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예수목회가 목회자가 가야할, 피할 수 없는 바른 길이라고 믿는다. 이 길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이제는 이 길을 우리가 가야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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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129.105.63.211)
2013-02-21 05:25:19
결국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의 문제가 아닌가 싶네요. 학문적이고 이성적인 논의를 통해 어느 접근이 더 바른 이해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어느 한 면 만을 강조하면 극단으로 치닫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선입견으로는 너무 신성만 강조한다면 역사적 예수님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부분을 놓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며 너무 인성만 강조한다면 예수님이 훌륭한 한 사람의 교훈으로만 전락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의 존재를 믿는다면 그 말씀 또한 믿어야 하겠지요. 개인적인 신과의 교제를 통해 믿음이 주어지는 것임을 체험하지만 또 그 말씀을 따르는 나의 행위를 통해 믿음을 말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신이라는 것은 내 개인적 체험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따름은 나의 삶의 고백입니다. 이 둘이 항상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고 연결의 공식은 제가 이해 못할 지라도 둘을 떼 놓을 수는 없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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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먹고살다. (218.39.77.67)
2013-02-21 05:20:12
다들말만해 실천하는 사람은 없음. 시간이더 지나면 식당에서 일해야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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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때 (218.39.77.67)
2013-02-21 05:26:49
병자호란때 국상을 팔개월로 해야할지십이개월로 해야할지박터지게 싸우고 있었다지. 피난가면서도 싸웠다지. 쓸데없는주제로 싸우는건 우리민족의숙명인가? 열심히 일하고 기도하고 헌금하는 성도들 에게 감사할것 쓸데없는 논쟁을하면서도 밥먹을수있도록 지탱해주는 성도들에게 감사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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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69.150.65.190)
2013-02-20 14:40:23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승격시킨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님이심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곧 성경을 통하여 재확인한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이 이루어진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더욱 명확해집니다.
역사적 예수와 그리스도는 분리할 수도 없으며 중용으로 어정쩡하게 감쌀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역사적 예수를 가르쳐야 바른 생활을 할 수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이신 예수를 믿는 믿음이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 혁명을 일으키시다가 잡혀 십자가에 돌아가신 분이십니까?
그러므로 오늘 날도 정부에 저항을 해야 바른 예수따르미가 되는 것입니까?
그러면 굳이 예수를 따를 것이 무엇입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시던 예수는 누구십니까?
그분은 역사적 예수가 아니시던가요?
순순히 잡히시던 능력의 예수님
그래서 지신 십자가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자 지신 것이지 혁명의 죄를 뒤집어 쓰고 지신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 예수를 말해야만 꼭 그대로 따른다는 보장이 없음은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참된 믿음이 어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수님을 따르게하며 그 계명을 지키며 이웃을 사랑하게 합니다.
나눌 수 없는 역사적예수님과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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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5
Picky (76.23.169.116)
2013-02-20 23:08:56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승격시킨 것이 아니라????
역사고 사실이고를 무시하고 자기 좋을대로 해석하면 그만이죠.

예수 사후 300년 동안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이어진 유대인 크리스찬들은 예수를 신이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거든요.

그들에게는 오직 여호아만 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예수를 여호와가 택한 지도자 정도로 여겼다구요.

유대인에게 메시아란 신이 될 수 없는 거라구요.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정신 좀 차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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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8
Philip Im (69.150.65.190)
2013-02-21 00:04:54
마11:15-17말씀의 비유풀이를 듣고 싶군요.. 잠언의 풀이는 일전에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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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Philip Im (69.150.65.190)
2013-02-20 23:59:57
물론 유대인에게는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베드로의고백은 (주는 그리스도) 메시아로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곧 신으로 믿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당연히 그들의 개념 속에는 메시아란 정치적인 것이므로 신으로 보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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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
참빛 (24.141.4.52)
2013-02-21 03:51:42
초기기독교의 형성과정,
성경은 어떻게 쓰여졌는가,
유대인으로서의 예수 등의 내용을 다루는
서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한 배경을 꾀뚤고 있는 Picky님과
논쟁하시는 것을 옆에서 뵈오니 조금 무리함이 보입니다.
논쟁은 믿음으로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선 그런 객관적이고 학문적인 내용의 책들을 접해 보심이 좋겠네요
임빌립님께서도 학문을 무시하는 분은 아니실 거라고 믿고요.

원하신다면, 몇가지 좋은 책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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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hilip Im (70.62.49.64)
2013-02-21 04:57:34
님께서 말씀하시는 서적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어쨌든 님께서는 그 서적의 내용들을 신뢰하시는군요.

저는 성경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신 분들의 글들 가운데 성경적인 것을 신뢰합니다.

그것이 옳은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신다면 님께서 인문학의 글들을 읽고 신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좀더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셔서 알게 하십니다.

사실 Picky님과 논쟁할 수준이 될지 아닐지는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관점과 저의 관점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제가 모르는 독일어 같은 언어를 사용하실 때는 논쟁할 수조차 없지요.

또한 Picky님 본인의 말마따나 저명한 학자들이 대수입니까?
세상 학문 많이 안들 성경의 말씀을 제대로 알겠습니까?
성경의 배경에 대하여 꿰뚫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껍데기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꿰뚫어 알고 있는 그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성경을 보느냐 보지 않느냐 차이가 Picky님의 말처럼 평행선을 긋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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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07.210.3.147)
2013-02-21 05:38:54
생각 좀 해 보셔요.
음~
일부는 맞고요.
일부는 틀립니다.

"그 서적의 내용들을 신뢰하시는군요. 저는 성경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신 분들의 글들 가운데 성경적인 것을 신뢰합니다" 라고 하셨는데 성경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학문과 과학을 신뢰하지 않으면 무엇을 신뢰합니까?
신학은 학문아닙니까?
성경공부는 일종의 학문 아닙니까?
저도 성경을 신뢰합니다.
그러나 바르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전제가 따라야 하는 것이구요.

근본주의가 외치는 것은 모두 성경적인가요?
한국 먹사들이 강압하는 교리적인 내용이 성경적인가요?
뭐를 두고 성경적이라 합니까?

성경도 누군가가 다 해석하여 놓은 내용들을
목사들이 보고 어쩌고 하는것 이거나
지기가 해석하기로는 이렇다 하는 것이고요.

대중들은 공부할 시간이나 그럴 여력이 없으니까
목사들 말만 듣고 그대로를 다 믿으려 하는 거고요.

제 경험으로는 공부하지 않는 목사 일수록
전반적으로 기복적인 근본주의자가 많습디다.

저는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평범한 일반 교인입니다.
여기서 잘난채 할 이유는 전혀 없고요,
마구잡이인 저 보다도 성경이나 신학을 모르는
먹사님들을 마안하지만 무수히 만나 보았습니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공부를 하였길래
말도 안되는 말만 뇌까리고 있는지...

혹시 공부 많이하면 비성경적으로 된다고 하는
이상한 편견을 가지신 것은 아니겠지요?

신학은 철학이고요 철학은 또 학문이고요.
신학적 노력에 의해 교리가 생긴것이지
교리나 해석이 팩스밀리 수신 하는 식으로
신이 우리에게 '옛다 여기있다 보거라' 하며
내려준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제 님께서도 알고 계시잖습니까.

물론 많이 배우고 안배우고가 인간의 됨됨이를 가르는
그 어떤 기준도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님을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셔요.
님께서 아시는 성경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꿈속에서 알려 주셨나요?
아니잖습니까.
어디에선가 언제쯤 누구를 통해서
듣고 배우신 것 아닌가요?
공부(탐구)하신 것 아니냐구요.

한번 생각 좀 해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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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7
익명 (207.210.3.147)
2013-02-21 05:29:45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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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2-21 06:02:28
1.제임스 패커의 성령론은 안 받아들입니다. 현재까지는 존 스토트 목사님의 성령론을 가장 따릅니다.
마찬가지로 님도 인문학의 어떤 글은 받아들이지만 어떤 글은 버릴 것입니다. 과학 가운데 신뢰할 것이 있고 신뢰하지 못할 것이 있다는 것쯤은 자 아실텐데요?

2.부족하여 대중 속에 저가 포함될 수도 있지만 님이 생각하는 대중과는 거리가 멉니다.목사들 가운데 멋대로 해석하는 자들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그런가? 하면서 듣고 말씀을 살펴봅니다.

3.저는 근본주의자가 아닐 뿐 아니라 강압적인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물론 아더 핑크의 말씀은 좋아하지요.

4.제가 아는 성경의 내용은 어쩌면 님께서는 교리라고 하실런지 모르겠지만 누구를 통해서 듣고 배운 것 맞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되풀이 되지만 누가 전한다 하여 그대로 다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올바로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고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님께서 과학책을 읽고 모든 것을 그대로 받들이지 않듯이.

5.되묻습니다.님께서 성경을 신뢰한다 하셨는데 그 신뢰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싸잡아 목사들이 해석한 것은 다 잘못된 것이라 하신다면 어떤 해석이 바른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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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4.141.4.52)
2013-02-21 03: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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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170.20.186.188)
2013-02-21 01:59:04
참 답답한 양반이로군요
믿는다는 단어의 정의가 현 개신교에서는 이천년전의 예수의 실존과 그의 부활, 그리고 신의 아들과 같은 것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만 그것조차 근본주의 기독교에 국한된 정의일 뿐입니다.

기독교에서도 오래전에는 믿음이라는 개념이 많이 달랐고 지금처럼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님이 말한 베드로의 고백은 님이 다니고 있는 교회의 목사가 자기도 그렇게 신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가르치는 것 뿐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했을 때의 '그리스도'란 단지 하나님에게 선택받아 기름부음 받았다는 의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당시에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지니는 의미와 지금 그리스도라는 단어의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 정도 납니다. 지금은 그리스도라고 하면 예수 한 사람을 떠 올리지만 당시에는 '기름부은 자'라는 개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유대사회에서는 선지자나 예언자적 영적 권위를 사람들이 인정하면 모두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베드로의 고백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메시아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의 기독교가 말하는 메시아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메시아 사상이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있었습니다. 유대교의 신학자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어떤 학자도 구약에서 말하는 메시아 사상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류를 구원하는 그런 신적 존재로서의 메시아를 그리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정통주의 신학은 예외가 되겠지요.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유대인이 말하는 메시아란 유대인의 해방을 이끌 지도자를 말하고 있지 무슨 신적 존재가 나타나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유대인이 기독교가 말하는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신적 존재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유대교는 철저하게 유일신 사상입니다. 삼위일체니 예수가 신의 아들이니 하는 소리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무시하는 근거는 그들의 유대교 경전 즉, 구약에 있습니다.

유대교가 구약을 더 잘 압니까 아니면 기독교가 구약을 더 잘 압니까?

또 한가지 유대교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예수가 구약에 나타나는 메시아가 될 수 없는 이유는 혈통적 문제입니다. 예수는 유다지파 출신인데 어떻게 동시에 왕과 제사장이 될 수 있는지요?

예수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율법이 존속했는데 따라서 왕족과 제사장족의 구분이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서를 보아도 예수를 영적인 왕으로 표현하는 내용은 있어도 제사장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에 제자들을 포함한 유대인들이 예수를 메시아라고 일컬었을 때에 그들이 말하는 메시아라는 단어가 현대의 기독교에서 말하는 메시아라는 단어의 개념과 동일하였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기독교에서는 이런 저런 번명을 가지고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만일 그것이 설득력이 있는 해결책이라면 유대인은 왜 받아들이지 않죠? 그들은 그냥 고집만 부리는 걸까요? 초기에 기독교가 형성될 때에 정통주의자들이 얼마나 반유대적인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요리조리 자의적으로 해석했는지 아십니까? 반유대주의는 그 뿌리에 기독교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지요. 더군다나 루터나 칼빈은 지독한 반유대주의자였구요. 그리고 루터의 기독교 사상을 떠받들고 민족주의와 차별주의를 강조한게 히틀러입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반유대주의는 기독교에 의해 유럽에 뿌리를 내렸구요. 서구인들이 유대인을 좋아하지 않는 역사적 이유가 바로 기독교때문이라는 것쯤은 알고 계셔야지요.


베드로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할 때에 그가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문자 그대로 생물학적 인간이 아니라 초월적인 신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건 상식에 속하는 문제예요. 당시의 유대인들은 뛰어난 영적 지도자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로 표현했습니다. 모세나 다윗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매우 정상적인 표현인 것이죠.

현대를 사는 우리도 이런 표현에 익숙합니다.

흔히 듣는 표현 중에 '야구의 신'과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이런 표현을 들을 때에 누구도 인간 이상의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당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만 가지고 자신들의 신관과 세계관을 정립한 유대인들에게 여호와 외에 어떤 다른 신이 있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할 일입니다.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는 어리석음이 님과 같은 불쌍한 교인들을 무더기로 낳은 것이죠.

님은 어직도 논리라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당연히 그들의 개념 속에는 메시아란 정치적인 것이므로 신으로 보지 않지요"라는 문장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유대인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예수를 신으로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에게는 예수는 신이 될 수 있는 조건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예수를 정치적인 개혁가나 뛰어난 랍비 정도로만 보는 것이죠.

"유대인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라는 말을 할 때에는 그들이 왜 믿지를 않는지에 대하여 먼저 자세히 알아보시고 님의 주장을 펼치세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는다'는 말이 우선 그들에게는 적용이 될 수 없다는 것쯤은 아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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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5
Philip Im (70.62.49.64)
2013-02-21 02:50:38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이라 하는 것은 님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가 신이 될 수 있는 조건이 하나도 없다"고 믿는 유대인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저들이 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혹은 하나님과 같은 분으로 보지 않았을깡?
님의 논리 속에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신으로 인정할 수 없어 정치인 정도로 취급하니 우리도 그렇게 보아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님은 유대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처럼 저는 성경이 어떤 말씀을 하시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이 단순히 기름부음 받은 자로만 해석하여 예수도 그런 자 중에 하나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동안의 성경 속의 기름부음 받은 자들이란 하나의 예표에 불과함을 아실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라 지칭하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메시아, 인간을 죄,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분만 가리키고 있습니다.그 분은 역사상에 실존하신 분이시기에 역사적 예수이기도 합니다.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는 분은 제가 아니라 님이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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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
Picky (170.20.186.188)
2013-02-21 03:56:31
그 예표라는 단어
도대체 그 예표라는 단어와 개념을 누가 님의 머리에 주입시켰죠?

초기 기독교인이 마가복음을 읽으면서 님과 같은 예표라는 개념을 마가복음에서 찾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구약시대의 사람들이 구약을 읽으면서 예수같은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이사야를 읽으면서 처녀가 잉태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가 메시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님에게 주입된 기독교의 사상을 다 지어버리고 다시 성경을 읽어보세요. 지금 님이 지닌 생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요.


저도 어렸을 때에는 북한군은 늑대처럼 생긴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무슨 말인줄 아세요?


약도 없이 구약만 가지고 읽을 때에 그 예표라는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눈꼽만큼이라도 있나요?

칼빈의 예정론이 심어놓은 지독한 불평등주의 - 나만 선택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은혜를 받았으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안 믿는 사람은 왜 은혜가 없지요? 이처럼 지독한 불평등이 어디 있나요?

님은 그런 신을 하나님이라고 부릅니까?

유대인이 예수를 믿지 않는 이유가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에서 그리스도라 지칭하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고요?



님은 번역된 한글 성경만 가지고 기독교를 이해하고 예수를 이해합니까?


그렇다면 얘기는 여기서 끝이네요.

다윗도 그리스도이고 모세도 그리스도라니까요. 무슨 말인줄 아세요? 요새로 말하면 장로도 목사도 다 그리스도라구요.

요즈음은 개나 소나 안수받으면 다 그리스도라구요.

가여운 분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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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2-21 04:14:27
"다윗도 그리스도이고 모세도 그리스도라니까요."
정말 그런가요? 이것이 문자적인 해석이지요.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마22: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막12:37)
다윗이 그리스도인가요? 다윗은 그리스도 즉 예수님을 주라 불렀습니다.
이것이 문자적인 해석인가요?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그 함축된 의미를 찾아서 풀이한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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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76.23.169.116)
2013-02-21 04:38:26
다윗이 성경 어디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칭했나요? 시편? 사무엘서? 아니면 어디?

다윗이 예수보다 몇년 전에 태어났죠? 마가나 마태나 지금 말하려는 내용이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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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2-21 05:17:27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은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110:1) 입니다.

에수님께서 마22:41-46절에 이 말씀을 인용하신 바 그것은 문자적으로 다윗의 혈통에서 나온 자가 메시아인 것만 아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다윗이 예수보다 몇년 전에 태어났느냐고 물으시는 의도도 결국 문자적으로만 성경을 해석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다를바 없지요.

비록 혈통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이지만 영적으로 주가 되시며 나아가 인성 뿐만 아니라 신성을 지니신 분이심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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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76.23.169.116)
2013-02-21 07:11:32
뭐든지 자기 편할대로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불리할 것 같으면 은유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또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이로울 것 같으면 문자적으로...

하여튼 세상 참 편하게 사시네요.

그게 바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겁니다.

어떤 목사 밑에서 배웠는지 참 기가 막힙니다.

다윗의 혈통에서 나온 자만 메시아라고 생각한 것은 유대의 종교지도자뿐만 아니라 마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주가 된다는 생각은 초기의 정통주의자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고 나중에 기독교 신학에서 해석을 하면서 집어넣은 것이구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뭔가를 보여주시나보죠?

그렇다면 조용기, 김홍도, 오정현, 전병욱, 김성광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 안 믿나요? 이 사람들은 왜 그렇개 개판이 된 건가요?

미국의 예를 들어볼까요?

존 파이퍼과 존 맥아더가 믿는 하나님은 릭 워렌이 믿는 하나님과 다른 존재인가요? 아니라면 왜 앞으 두 사람은 릭 워렌을 비난하죠? 그리고 왜 전혀 다른 방향에서 성경을 이해할까요?

댈러스 신학대학의 대니스 월레스는 복음주의자 아닌가요? 그 사람은 성경에 많은 오류가 있음을 알고도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와 유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바트 에어만은 기독교를 떠난 학자구요. 왜 이렇게 다르죠?

님이 지닌 생각만이 옳을까요?

수년전에 많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뉴욕의 타임 스퀘어 처치의 데이빗 윌커슨 목사가 뉴욕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동북부 지역에 큰 환란이 올거라고 에언을 했습니다. 평소에 그를 따르던 한인 목사들 가운데 그 얘기를 교인들에게 그대로 전하고 한인 교인 가운데 그 소식을 접한 맹신도들은 생필품을 사재기했지요.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그냥 아무일 없이 자나갔습니다.

아이작 뉴턴도 40년 동안이나 성경을 연구하고는 2060년 이후에 종말이 온다고 했습니다. 아직은 2060년이 안되었으니 그의 예언이 맞는다고 하실 껀가요?


조용기 목사도 2000년에 종말이 온다고 했지요?


얼마전에 병 고친다고 애들 죽인 목사부부 사건이 있었죠?

그들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했길래 그들이 그런 미친짓을 했을까요?


지금까지 열거한 이 모든 사람들은 예수 안믿고 하나님 안 믿었나요?


역사상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예언한 그 어떤 것이 예언과 적중했나요?

도대체 님이 성경을 읽을 때에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나요?

님은 한마디로 맹신 그 자체입니다.

예수에 대하여는 이 세상에 신약 빼고는 그 어떤 기록도 없어요. 그래서 정통주의자들이 성경에 신성을 부여한 것이구요.

예수가 인간의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왔다구요? 그럼 그 죄라는 것은 이 세상에 누가 던져주었나요?

아담의 범죄함으로 인해 들어왔다구요? 그럼 아담 이전부터 죄라는 것은 왜 존재하였죠?

도대체 누가 죄라는 것을 만들어놓었냐는 것에 대해서 말좀 해 보세요.

결국 당신이 믿는 하나님 아니던가요? 그런데 당신들은 삼위일체를 믿죠? 그 얘기는 예수도 그 죄를 만드는데 동참한 공범이 되는 것이구요.

자기가 죄라는 것을 만들어서 인간들을 올무에 걸리게 해 놓고는 그 죄를 사하려고 세상에 왔다구요?

이게 말이나 됩니까?

도대체 당신들이 믿는 그 야훼는 인간을 왜 만들어놓고는 지지고 볶고 왜 지들 마음대로 인간들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인가요? 그냥 지들끼리 오손 도손 살면될 것을.

무슨 말좀 해보세요.

기독교에 이에 대한 문제에 어떤 답도 내놓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부인하려 하십니까?

님과는 시초부터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혹시라도 제 글을 읽는 사람 가운데 좀 깊이 고민하려는 사람이 있을까봐 지금까지 논쟁 아닌 논쟁을 한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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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2-21 08:26:25
영적으로 주가 된다는 생각은 초기의 정통주의자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고 나중에 기독교 신학에서 해석을 하면서 집어넣은 것이구요.
예수님께서 마22;41-46에 인용하신 것은 이미 본인이 주이심을 말씀하신 것이지 후대신학자들이 해석해서 집어 넣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마태는 유대인들과 달리 예수님께서 주 돠시고 메시아(유대인들의 메시아관과는 다른)이심을 기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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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76.23.169.116)
2013-02-21 09:02:18
정말로 그럴까요?
마태가 예수 당시의 사람인가요? 마태는 무엇을 근거로 복음서를 썼을까요? 예수의 음성도 들어보지 못한 마태가 무엇을 근거로 예수가 주가 된다는 생각을 하였나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은 마태가 마가복음을 읽어보고는 혹 Q복음서를 읽어보고는 왜 자신도 복음서를 쓰려고 했을까요?

예수가 주라고 생각해서?

마태가 말하는 주라는 말이 지금 님과 같은 기독교인이 말하는 주라는 개념과 같다고 생각하나요?

천만에요.

제가 누누히 말하지요.


해석은 그 당시의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적 이해를 가지고 그 시대로 돌아가서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리고 적용은 다시 지금 세대로 돌아와서 이 시대의 문화적 사상적 시대배경을 고려해서 하라구요.

그런데 왜들 거꾸로 하는거죠?

메시아라는 단어도 지금 기독교에서 말하는 메시아와 성경의 기자들이 말하는 메시아와는 다르다니까요.

주가 된다는 말 영어로 Lord라는 말부터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 지금은 없어요. 그 이유는 노예제도가 존속하던 시대의 사회구조에 바탕이된 개념을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복원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무슨 말인줄 아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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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2-21 09:25:41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이론(異論)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異論)은 그렇게 연구한 사람들의 결과물이지요.

메시아의 의미가 지금과 그 때가 어떻게 다르지요?그리고 주의 개념을 왜 이해하지 못하지요?
이 말씀은 자가당착인 것이 "해석은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적 이해를 가지고 그 시대로 돌아가서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하라는 것은 가능한가요? 더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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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76.23.169.116)
2013-02-21 10:26:43
마태가 예수의 제자라...
그것과 마태복음의 저자와 무슨 상관이죠? 설마 정말로 마태복음의 저자가 예수의 제자 마태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여기서또 님과 다른 의견은 무시하는 버릇이 나오는군요.

당시의 유대인들이 지니고 있던 메시아의 의미가 지금의 기독교에서 말하는 메시아의 의미와 어떻게 다르냐고요?

모르시면 공부하세요.

성경의 해석이 당시의 문화와 당시의 사람들의 사고체계를 가지고 해야 하는 것이 가능하냐고요?

그럼 고고학자나 성서학자들은 지금 헛수고를 하고 있단 말인가요?

지금까지 님이 배운 성경과 기독교에 관한 모든 지식들이 그냥 하나님이 학자들에게 팩스로 보내주어서 학자들이 줄줄 외워서 가르친 것인줄 아세요?

도대체 님은 누구한테 성경에 대하여 배웠나요? 세상에 이 정도로 답답한 양반은 80먹은 교회 권사님들 빼놓고는 본 적이 없네요.

아니 당시 사람들이 예수를 어떻게 이해하였는지 알려는 노력도 없이 어떻게 이천년 전의 문서에 대하여 감히 해석을 한다고 하는지 원.

세상 참 편하게 사십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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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66.138.19.14)
2013-02-21 23:52:11
님이 하신 말씀을 잘 보십시오
" 해석은 그 당시의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적 이해를 가지고 그 시대로 돌아가서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주가 된다는 말 영어로 Lord라는 말부터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 지금은 없어요. 그 이유는 노예제도가 존속하던 시대의 사회구조의 바탕이된 개념을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복원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주'라는 단어도 그 시대 문화적 산물입니다. 그래서 해석할 때 그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적 이해를 가지고 해석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님은 이런 사실을 주장하면서
님은 '주'라는 단어의 개념을 지금 이해할 수 인간이 없다. 왜냐하면 그 시대 사회 구조의 바탕이 된 개념이기 때문에 복원할 수 없기 때문이라 하시니
모순되는 말이므로 내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참 (행하기) 어려운 말씀하신다고 한 것입니다.

님이 그 당시의 문화적 배경을 고려해야한다는 말 맞습니다.
그러면 하나 질문드립니다.
다음 글은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마태복음16장13절부터 17절까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해석을 차용하지 마시고 순수히 님의 지금까지 공력을 바탕으로 해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문화적 배경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다른 사람의 해석을 차용하시지 말라고 부탁드린 이유는 저의 모든 말들은 마치 남에게 배운 것을 앵무새처럼 되뇌이는 것으로 말씀하시니 님은 얼마나 독창적이신지 가늠해 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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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2-21 08:16:01
님이 지닌 생각만이 옳을까요?
물론 제가 지닌 생각만이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피키님이 지닌 생각만이 옳은 것이 아니지요.
저는 저의 믿음과 아는 대로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피키님은 님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다 하여 "님이 지닌 생각만이 옳으냐"고 하실 것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구나 정도여야 하지 않을까요?

님께서는 하나님이 죄를 만드셨다고 보시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간단히 말씀드리지요.

보들레르가 만약 하나님이 계신다면 악마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님의 견해와 같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잔인하고 그 사람들을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님도 사람을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제가 답변을 계속할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심을 믿으신다면 사람이 어떻게 타락하고 죄가 어떻게 이 땅에 들어왔는지도 아시겠군요.

그렇습니다.
현 상태의 사람들이 원래 창조된 상태라며는 하나님이 죄를 만드셨고 악한 분이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래 사람을 만드실 때 자기의 형상대로 선하게 만드셨습니다.그런데 첫사람 아담이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 죄입니다.
따라서 죄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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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76.23.169.116)
2013-02-21 09:10:32
이건 떼거지도 아니고
하나님이 원래 사람을 만들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본 따서 만들었는데 그 사람이라는 존재가 죄를 지었으면 그 죄라는 것도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 아니냐구요.

아담의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당신같은 분들은 가정과 추측으로 아예 성을 쌓지요.

당신들 기독교인들은 흔히 말하지요. 하나님도 죄를 지을 수 있는 분이지만 죄를 짓지 않는 분이라고.


그럼 그 죄라는게 어디서부터 왔냐구요.

어거지 부리지 마세요.

죄고 뭐고 간에 인간은 왜 지었느냐구요.

고등학생들이 흔히 하는 얘기로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은 예수 믿지 않아서 지옥에 갔나요?


천주교에서는 연옥이라는 말로 얼버무리죠? 그런데 개신교는 아예 변명조차 못하지요. 그나마 양심이 있는 목사는 모르쇠로 일관하지만요.

왜 인간의 짧은 생각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일을 이 우주를 만든 창조주가 해야 하냐구요.


그리고 아담이 최초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한 님을 맹신에서 구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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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2-21 09:45:49
당신들 기독교인들은 흔히 말하지요. 하나님도 죄를 지을 수 있는 분이지만 죄를 짓지 않는 분이라고.
누가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죄를 지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전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으나 하나님의 거룩성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지요.

저의 관심은 이순신 장군이 지옥 갔느냐 천국 갔느냐가 아닙니다. 저의 능력 밖이고요.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세대들이 구원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당신들 기독교인이라--- 흠~~님의 마음 잘 알겠습니다.

인간을 왜 지었는지에 대하여 물으신 이유는 그만큼 고뇌하고 계심을 나타내시는 것이라 짐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고 심히 좋아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이 왜 오늘날 서로를 바라보며서 괴로워하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이 사람을 왜 만들었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전에 왜 오늘날 괴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는지를 생각하시며 그 해결책을 찾으시는 것이 좋을 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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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76.23.169.116)
2013-02-21 10:35:06
쯧쯧
기초적인 근본주의 교리마저도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 분이군요.

제가 하나님이 인간을 왜 만들었는지 원망하는 걸로 보이세요?

ㅎㅎㅎ

이제는 그만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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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170.20.186.188)
2013-02-20 05:09:10
중용의 미라....
저는 이 문제에 대하여는 중용이라는 단어가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역사적 예수는 사실을 그려가고 있지만 믿음의 예수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예수입니다.

이 두 가지는 조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것을 착각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 개념은 완전히 분리되어야 하지요. 그리고 서로 충돌하고 부딪치며 어느 한 가지는 깨져나가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중용이라는 단어로 좋게 좋게 넘어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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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07.210.3.147)
2013-02-20 06:12:16
저는 두 가지의 부류중 그 어느 한쪽도
상대쪽의 장점을 수용하지 않고서는
온전해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믿음의 예수는
몰트만이 '희망의 신학'과 '오시는 하나님'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장차 다가올 새하늘과 새땅 즉 신과 인간의 궁극적이고 감격적 만남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희망을 주게 되고 내세에 대한 기대감을 주고
이땅을 살아가는 목적의식을 갖게 한다고 말합니다.

이 첫번째 부류의 단점이라면
인간을 죄가운데 매이게 하여
인간의 가능성을 아애 부인하고
구원의 문제를 전적으로 신에 담당시킨다는 것이죠.

두번째 역사적 예수는
겉옷을 원하면 속옷까지 내어주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함께 가라는
파격적이고도 불편한 예수의 말씀과 함께
그의 고난의 삶, 권력과 압제에 항거하는 삶, 생명을 살리는 삶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예수가 살았던 삶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두번째 부류의 단점은
사람에게 지나친 기대를 한다는 점이지요.
구원의 문제를 단지 현세에만 한정시키려는 경향도 보이고요.
크로산과 보거스를 중심으로 하는 현대신학의
예수세미나를 통해 나타난 결과물들이 제시하는 바와 같이
예수의 신성을 부인한 채로
예수를 현자로서만 이해하려 한다는데 있다고 봅니다.

제가 중용을 언급했을 때 그 단어가
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취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단어가 대중적이라 판단하였지요.

처음 예수를 믿는 신앙인은 대개 첫번째로 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영적 나이가 자라고 성숙해 감에 따라
점점 첫번째를 넘어서려는 노력과 시도를 하게되고
두번째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일단 두번째 단계로 넘어선 이후에는...
그 이후에는..

다시 첫번째로 반드시 돌아와서
첫번째와 두번째를 모두 아우르는 사람이
참다운 꺠달음에 이른 자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느낀 신앙의 여정에 대한 생각을 간략하게 나마 적어 보았습니다. ^^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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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Picky (76.23.169.116)
2013-02-20 11:58:55
그러나
우선 저는 몰트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의 신학은 한국의 기독교인에게는 상당히 듣기 좋은 소위 말하는 은혜스러운 얘기로 들리지만 하나 하나 뜯어보면 뜬구름 잡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길게 말할 것 없이 기독교가 보여주는 예수, 즉 님이 말하는 믿음의 예수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에 대하여 아무런 답을 내어주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이 현실의 세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대답도 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역사적 예수는 최소한 나와 같은 뼈와 살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 예수가 지녔던 고민에 대하여 나도 인간으로서 동일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보여줍니다.

이 두개가 조화한다는 것은 듣기 좋은 말이고 그럴싸한 말이지만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이야기하시지만 깨달음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고민하던 문제의 답이 떠올라 '유레카'라고 외친들 그 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고민이 그 자리를 메웁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고통은 또 다른 고통을 불러오는 것이 인생의 이치이며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는 작업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들 또 다른 해답을 찾으려고 고민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깨달음이 무슨 소용이며 깨달음을 구하는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
그래서 차라리 그것을 잊고 살든지 아니면 그것을 원래부터 모르고 사는게 자신에게 유익인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 세상에 아예 태어나지 않았기를 바랬고 어미의 태에서 낙태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고통인 것이죠. 교회에서는 물론 이런 문제에 대하여 답을 주지도 못할 뿐더러 이런 고민조차 용납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창조의 이유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느니 아니면 인간은 하나님께 사랑 받기위해 타어났다느니 하는 사탕발림 소리만 하면서 집단최면으로 몰아가는 것이죠.

예수나 공자나 석가모니나 다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그것에 대한 해답도 동일하게 내놓았습니다. 물론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무슨 신의 아들이니 메시아니 하는 포장지를 씌워서 인간들에게 판매하는 종교적 상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의 고민에 대한 답이 성경에 있는지도 모르죠.

믿음의 예수요?

우선 믿음이란 것이 무엇인지부터 명확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믿음이 뭔가요? 언제부터 기독교에서 믿음이란 단어를 그렇게 강조했지요? 그리고 그렇게 중요한 믿음이란 것을 우리는 어떻게 확인하고 어떻게 측정하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요?

믿음의 예수란 결국은 자신의 신념속에만 가두어두는 예수를 말한다고 생각하시지 않나요?

실체도 없고 그 가치고 자신만이 어렴풋이 지니고 있다고 착각하는 그것이 믿음이라는 생각이 안 드세요?

도대체 믿음이 뭡니까? 그리고 믿음의 예수란 또 뭡니까?

교회에서 가르친 안개같은 개념들을 다 걷어치우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최소한 역사적 예수란 이 천년전에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적 혹 역사적 존재라는 것 정도는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믿음의 예수란 누구를 말하는 거죠? 내 머리속에만 있는, 그러나 누구에게도 이렇다고 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존재 아니던가요? 그런 예수마저도 내가 이해한다기 보다는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회에서 암묵적인 강요하에 주입받은 그런 헝크러진 실타래 같은 개념으로 그려진 예수가 아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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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2-20 13:37:31
철학적인 고민을 요구하는 내용이네요.
피키님의 믿음이 무엇인가 하는 화두에 대한 저의 나름대로의 소견을
장문으로 쓰고 올리는 중에 '금지된 단어를 사용하였다'는 메시지가 뜨고
장문에 다 날라가 버렸어요.

다시쓰려하니 짜증이 좀 나네요...

이 부분은 다음 기회로 밀기로 하고요..
언젠가는 꼭 짚어보고 가야할 내용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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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76.23.169.116)
2013-02-20 23:04:24
금지단어
저도 금지단어 때문에 고생을 한 적이 한 두번 있습니다. 정확치는 않지만 영어 단어가 좀 요상하게 들어가면 금지단어로 인식합니다. 이메일 주소 같은 것이 그 한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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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2-20 02:54:20
믿음의 예수냐
역사적 예수냐
그것이 문제로다!

1. 예수 잘믿고 복받다가 죽어서 영생복락 천국으로 가련다

2. 예수가 보여준 해방의 길, 생명살림의 길을 따라 예수의 삶을 살련다

위의 두가지 명제 모두 다 나름대로의 득과 실이 있습니다.
이럴때 중용의 미를 발휘하여야 할것 같습니다.

어느것 하나 소홀히 여기지 않고
두가지 모두를 보듬고 가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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