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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진리를 독점할 수는 없다한국 교회 교우님들께 드리는 류상태의 주일편지 - 2013년 2월 17일
류상태  |  sham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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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02월 16일 (토) 05:16:36
최종편집 : 2013년 02월 16일 (토) 17:33:51 [조회수 : 4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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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은 잘 지내셨는지요. ‘교회는 차례와 제사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제목으로 보내드린 저의 지난 주일편지로 인해 불편을 느끼신 교우님들이 더러 계셨던 것 같습니다. 저의 견해에 동의하고 격려해주신 교우님들께 감사드리며, 또한 동의하지 않는 교우님들의 신앙과 진정성도 존중하고 싶습니다.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해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은 신앙과 종교의 영역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사순절 첫째주일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 40일 동안 우리 주님께서 겪으신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며 동참하는 기간입니다. 그래야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에 올바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오늘은 주님께서 들려주신 탕자의 비유, 즉 집 떠난 둘째 아들을 간절히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비유를 함께 나누며 ‘오늘의 우리 한국 교회, 이대로 좋은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1.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시는 아버지

누가복음 15장에 나타난 이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에 내용을 잘 모르시는 교우님을 위해 요점만 간략히 정리하겠습니다.

어느 날 가출을 결심한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졸라 상속받을 재산 중 절반을 받아내 집을 떠났습니다.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모두 탕진한 아들은 뒤늦은 후회와 함께 그리운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아버지께서 다시 받아주실지 확신하지 못한 탕자는 고심 끝에 종으로라도 일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던 아버지는 멀리서 그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맨 발로 뛰어나가 끌어안으며 성대한 잔치로 환영해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우리 한국 교회 강단에서 가장 많이 선포되는 말씀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탕자의 비유’라고 알려져 있지만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라고 해야 더 적절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저도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라는 표현이 본문의 뜻을 이해하는데 더욱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을 가려내자면, 둘째 아들을 주인공으로 보기보다 두 아들을 무한히 기다리고 용서하시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탕자의 비유’로만 이해하면 둘째 아들과 아버지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고, 큰아들은 조연의 역할로 그치게 되며 이야기를 듣는 분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기다리는 아버지’로 이해하고 읽으면 작은 아들보다 오히려 큰 아들이 갖고 있는 문제가 더욱 심각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았던 이야기가 큰 아들의 불평과 항의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성경에 기록된 큰 아들의 항의 내용입니다.

밭에 나가 있던 큰아들이 돌아오다가 집 가까이에서 음악 소리와 춤추며 떠드는 소리를 듣고 하인 하나를 불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하인이 “아우님이 돌아왔습니다. 그분이 무사히 돌아오셨다고 주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서 달랬으나 그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창녀들한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그 아이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주시다니요!” 하고 투덜거렸다. (누가복음 15:25~30, 공동번역)

큰 아들의 항의를 받은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그를 달래주었습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5:31~32)

듣기에 따라 공평하지 못한 아버지의 궁색한 변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아버지의 이 말씀이 우리 기독교 복음을 한 마디로 정리한 명쾌한 선언문처럼 들립니다. “하나님은 선인이나 악인이나 가리지 않고 햇볕과 비를 내려주신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절대무한의 사랑과 용서를 나타내는 간단명료하면서도 완벽한 선언으로 저에게는 다가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큰아들의 반응이 나타나지 않은 채로 이야기가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아들의 가출 문제는 그의 몸과 마음이 다 돌아옴으로 해결되었지만, 큰 아들은 몸만 아버지와 함께 있을 뿐 마음은 아버지를 떠나있는데 그의 마음이 어디로 향할 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기다리는 아버지는 오래 참고 기다려서 작은 아들을 되찾았으나 이제는 큰 아들이 돌아오기를 다시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큰아들은 결국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될까요? 저와 함께 주일편지를 나누며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시는 교우님들이 계시기에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믿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2. 큰 아들의 가출

그러면 왜 큰아들은 동생의 돌아옴을 아버지와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주지 못했을까요? 그가 보기에는, 아버지의 처사가 매우 불공평했기 때문입니다.

큰아들은 가출한 적도 없고 아버지의 재산을 팔아먹는 짓도 하지 않았으며, 아버지 말씀을 거역하지 않기 위해 애썼습니다. 반면에 동생은 재산의 절반을 가지고 가출한 문제아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신에게 해 준 것이 별로 없는데 반해 재산을 날리고 거지꼴로 돌아온 동생에게는 지난 잘못은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환대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이야기에서 큰아들을 등장시킨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쩌면 예수께서 이 비유 말씀을 하시면서 진정으로 새겨듣기를 원하는 대상은 둘째 아들보다 큰아들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 그러니까 겉으로는 성실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으나 안에는 용서 없는 이기심으로 가득 찬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아니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했고, 거룩한 삶을 사는 자기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총애를 받기에 합당한 선택된 사람들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며, 하나님을 떠나 제멋대로 살아가는 죄인들과 이방인들은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과 가르침은 그들의 신앙을 송두리째 뒤흔들었습니다. 여인들과 이방인, 죄인 가릴 것 없이 아무하고나 어울리고, 죄에 찌든 그들이 오히려 자기들보다 더 옳고 하나님 나라에 가깝다고 독설을 퍼붓는 예수님을 그들은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기들은 평생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왔는데, 실컷 죄 짓고 살다가 뒤늦게 회개한답시고 예수와 어울리는 파렴치한 사람들도 용서할 수 없지만, 그들과 어울려 희희락락하는 예수는 더더욱 용서할 수 없는 악독한 자요 유대 공동체 신앙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단자라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를 중시하는 사람들과 조건 없이 모든 생명을 하늘 아버지의 존귀한 딸 아들로 품으시는 예수님의 시각 차이는 그토록 컸고 매우기 어려운 골이 되었습니다.



3. 큰아들과 한국교회

그러면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교우님들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며, 다음으로는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하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목사는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께 헌신하겠다고 서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 섬기듯 교우님들을 섬기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교우님을 섬기기보다 스스로 군림하여 교우님들께 맹목적 순종을 강요하는 목사들이 있으며, 심지어 교회를 사유재산처럼 생각하여 자식에게 세습하는 일부 대형교회 목사도 있습니다. 교회의 내실을 다지기보다 건물짓기 경쟁으로 교우님들께 과도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고, 세상에 평화를 심기는커녕 갈등과 분란을 일으키는 교회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물론 한국 교회가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교우님 섬기기를 주님 섬기듯 하며, 세상에 평화를 심기 위해 온갖 고초를 마다하지 않는 진실한 목사님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 분들에게는 진실로 머리 숙여 존경심을 표하고 싶습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예수께서 들려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둘째 아들을 받아주는 대가로 그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었던가요? 탕진했던 돈을 되찾아 오라고 하셨던가요? 냄새나는 옷을 벗어버리고 깨끗이 목욕하고 몸단장한 다음에 오라고 하셨던가요?

아버지는 아무 조건 없이 둘째 아들을 맞아주셨습니다. 그러나 교리적 시각에 사로잡힌 설교자들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왔다는 바로 그것 때문에 아버지께서 용서하신 것이다. 집을 떠난 탕자는 비참한 거지신세였고 그것은 구원받지 못한 상태를 뜻한다. 아버지께로,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탕자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비로소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용서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집에 있을 때나 집을 떠난 후에나 아버지의 사랑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달라진 상황은 단지 아들이 선택한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나 방탕한 삶을 산 것도, 그래서 괴롭고 외로웠던 것도 모두 아들의 선택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만약 아들이 집에 돌아가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독립하여 살아가면서 아버지와 관계를 회복하였다면 그것 또한 해피엔딩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집을 나갔다, 또는 집으로 돌아왔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마음이 떠났다가 돌아왔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버지와 집을 늘 동일선상에 놓고 본문을 해석하는 데 있습니다. 집을 떠난 것은 곧 아버지를 떠난 것이고, 집으로 돌아와야만 아버지께로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치명적인 결함이고 병입니다.

교리주의자들에게 본문에서의 집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떠나면 하나님을 떠난 것이고 교회로 돌아와야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라고 그들은 해석합니다. 이런 해석의 결과로 50년 전까지도 천주교는 “가톨릭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금 천주교는 개신교를 형제로 포용하고 있지만 목사들 중에는 여전히 가톨릭은 사탄이며 그곳엔 구원이 없다고 가르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형제를 정죄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어떤 마음으로 내려다보고 계실까요?



4. 하나님의 은총은 천하 만물에 차별 없이 적용됩니다.

저는, 오늘날 하나님의 은총은 차별 없이 만민에게 적용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만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고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선하고 바르게 살아가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독선과 배타야말로 큰아들의 심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여전히 큰아들의 신앙, 큰아들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 자기 신앙에 대한 확신으로 너무 쉽게 이웃을 판단하고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는지요? 자기와 같은 방식, 자기와 같은 신앙, 자기와 같은 종교가 아니면 다 잘못된 것이며, 지옥불에 떨어질 불쌍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신앙인이 아직도 우리 한국 교회에는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셨습니다. 혹 문제가 있더라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셨습니다. 아니, 예외가 있기는 있었습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어서는 안된다고, 특정 종교조직 안에 들어와서 수련을 쌓아야만, 종교의식과 의무를 다해야만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존중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교리를 배우기 전에, 우리 예수님처럼,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독점하려는 무모한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우리 기독교는 끊임없이 우리 사회와 지구마을에 갈등을 양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구원을 받아야할 대상은 교회 밖에 있는 분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한국 교회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기독교 뿐 아니라 역사상 지구마을에 꽃핀 수많은 아름다운 종교들, 아름다운 문화들을 통해서도 당신을 충분히 나타내셨고, 그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고자 애쓰는 모든 지구마을 이웃들에게 아무 차별 없이, 아무 전제도 없이,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작은 아들이 돌아왔으나 큰아들의 가출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집안에 있지만 아버지를 떠난 큰아들은 언제나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될까요? 교회 안에 있지만 하나님을 떠난 교회지도자들과, 그들의 가르침에 세뇌되어 배타 교리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과 혼동하는 가엾고 순진한 한국 교회의 많은 교우님들은 언제나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될까요?



[참고] 사순절의 의미에 대해 알고 싶은 교우님은 아래 글을 읽어주십시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사순절은 부활절 전 40일 동안 우리 주님께서 겪으신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며 동참하는 기간입니다. 그래야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에 올바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의 부활절은 3월 31일인데, 날짜가 매해 바뀌는 이유는 부활절을 ‘춘분이 지난 후 첫 만월이 뜬 다음 주일’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춘분(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아지는 기준점으로 양력 3월 21일경) 이후 첫 보름달이 뜨는 날은 3월 26일(음력 2월 15일)이기에, 부활절은 그 다음 주일인 3월 31일이 됩니다.

이렇게 부활절이 결정되면 그 날로부터 40일을 거슬러 올라가 사순절이 시작되는데, 그 첫날은 항상 수요일이 됩니다. 부활절을 기준으로 엿새 여섯 주(6*6=36)를 거슬러 올라간 후 다시 4일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일은 글자 그대로 ‘주님의 날’을 의미하기에 날짜 계산에서 제외합니다.) 이 날은 지난 모든 과오를 돌아보며 재를 쓰고 회개한다는 의미로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라고 하는데, 바로 지난 2월 13일이 고난주간이 시작된 재의 수요일이었습니다.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는 관습은 구약시대부터 이어져온 것으로, 회개기도를 드릴 때 우리의 모든 잘못을 태워 없앤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듯 사순절은 우리 주님의 가르침과 몸소 겪으신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고 동참하며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고 바른 신앙과 삶으로 부활절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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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67.66.69.99)
2013-02-17 12:54:33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2서 1:10)

예전에 어떤 목사가 눅15장의 말씀을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아버지는 목사 자신이고 큰 아들은 교회에 남은 자이며 작은 아들은 교회에 분란을 일키고 떠난 자들이다. 우리는 이제 용서하는 마음을 갖고 작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도하자."고 말했습니다.

이현령비현령이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글 또한 비슷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큰 아들은 아버지 집에 있어서 아버지를 독점한 듯 보이지만 그의 마음은 떠나있는 상태이니 전혀 독점한 것이 아닙니다.
그와 마찬 가지로 오늘날 교회에 있다하여 진리를 독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들이 독점한 듯 말하지만 실상 하나님을 떠났다면 진리의 영이 함께 하지 않으니 어찌 진리를 독점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초점은 내가 죄인인 것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만이 하나님께서 기뻐 맞이하신다는 것입니다.(그 아들이 진리를 독점한다는 말보다는 진리를 온전히 누린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기독교가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는 제목의 의미를 좀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까?
"기독교가 구원의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모든 종교는 구원의 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각 종교가 내세우는 구원이 무엇인가요?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과 같은 내용입니까? 아니지요.
그리고 각 종교가 말하는 구원이 서로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기독교가 구원의 진리를 독점한다는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 논리는 모든 종교가 구원의 진리를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각 종교가 각자 구원의 진리를 가지고 나가고 있는데 기독교가 마치 진리를 독점한 양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하면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부인하려는 것이,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는 양 말하는 것이 "이 교훈(하나님의 말씀)가지지 않고 우리에게 나아오는 자"와 같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은 진리를 독점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 진리를 함께 나누기를 원하는 것입니다.그래서 그 진리를 온전히 누림으로 하늘의 평강을 이 땅에서 미리 조금이라도 맛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리플달기
7 2
포이멘 (183.109.98.59)
2013-02-18 14:06:05
그렇다면 지금의 기독교는 진리가 아닌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진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믿는
기독교가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은
지금의 기독교가 진리가 아님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진리에서
모든 것이 나옵니다.
진리가 아닌 종교와 에큐메니칼을 이야기 하는 것은
스스로가 진리가 아닌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가 아닌 종교와 대상에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 그들과 통합하고 그들을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것은 목사님들이나 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리플달기
2 3
박평일 (72.196.234.24)
2013-02-19 00:13:48
그러면 "칼로 선자은 칼로 망한다" 고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선생님의 논리로는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이유가 인간들에게 검을 줘서
모두 망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까?
그리고 예수님이 탄생하신던 날 새벽
하늘에서 들려왔던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라는 노랫소리는
천사들의 잠꼬대였습니까?
아니면 사탄들의 목소리였습니까?
리플달기
2 23
은혜로 (75.136.112.226)
2013-02-19 04:40:29
님의 글을 때때로 읽곤합니다.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일하고 계시는데 그것은 인간적인 것으로 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던 주님의 말씀과 같은 맥락일 것이라 사료됩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죽으셔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인간적인 판단으로 그것을 칼로 막아보려는 베드로의 어리석은을 꾸짖고 있는 말씀이 아닐까요. 그리고 주님의 오실때 들려졌던 천사들의 노래 땅에서는 평화라는 것도 이 땅이 평화로 가득찬다는 말이 아니라 이 땅위에 평화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말씀이 아닐까요? 그분이 오심으로 땅에 평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분 때문에 수 많은 아기들이 죽었거든요.
저는 이런 갈등과 긴장은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그것이 창세기 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성경 전체의 흐름이 아닙니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참 진리인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들은 다른 진리를 가진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의 말이 곧 영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서로가 다른 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다른데 같은 척 하는 것도 인간들이 쌓는 바벨탑이고 종교적인 위선 같아 보입니다. 다만 저는 그리스도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도 여전히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과 은혜에 문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향한 인간적인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로 다른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의 배려가 필요합니다.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이 땅에 평화를 주려 온 줄로 아느냐 검을 주려 왔다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저는 이런 갈등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기에 그저 은혜 받은 저리에서 열심히 살아갔으면 합시다. 평안을 빕니다
리플달기
1 2
박평일 (72.196.234.24)
2013-02-19 11:07:05
친절한 댓글 감사합니다.

이렇게 성경 한 구절을 가지고 해석이 극과 극으로
다릅니다. 저는 이를 아주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개인적인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 .

이 세상에 똑같은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난성 쌍둥이도 성격이나 모습이 각기 다릅니다.
저는 이런 다양성을 하나님의 우주창조원리로 이해하고
또, 믿고있습니다.
지구,태양,달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처럼 자신과 같은
신앙은 이세상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저는 혈통적으로 한국인입니다. 법적으로는
미국시민입니다. 두나라가 인종,풍습,역사와 전통, 문화...가
너무 다릅니다. 저는 그다름를 옳고 그름의 단순한 흑백논리로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좋고 그름으로는 받아드립니다.

당당뉴스에 댓글을 자주 쓰시는 한 분은
젊은 시절에 잠시 불교에 입문했다가 예수를
만나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은 평생 보수적인 기독교신앙인에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진보적인 신앙인로 변했다고 합니다.
아주 당연한 현상입니다.

세계 도처에 하루에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불교신도로, 또는
모슬람, 힌두교신도로 개종하고, 또 반대로 다른 종교의
신앙인들이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불교인구가 이천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기독교
전통을 가지고 있는 불란서는 불교인구가 기독교인구보다
많다고 합니다.
100% 기독교인이었던 중세유럽의 암흑시대를 경험한 나라일 수록
눈에 띄게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간들의 삶과 인류의 역사는 변증법으로 작동합니다..
한 종교에서 실망은 다른 종교로 개종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에서
기독교와 모슬람이 서로 뺏고 빼앗기며 벌이고 있는
종교전쟁의 실상입니다.

똑같은 종교가 나에게 선을 행하고 도움이 되면 선한 종교로
나에게 악을 행하고 피해를 주면 나쁜 종교로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들의 본성이고 인류의 지난 역사였습니다.

바로 지난 토요일 오후에 저에게 일어난 개인적 체험입니다.
.
직업상 60세 정도의 베트남계 여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2층, 지하실 벽과 테이블이 온통 붓다의 사진들과
동상들로 법벅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독실한 불교신도였습니다.

내가 "집을 팔고 어디로 이사를 가느냐? " 고 물었습니다.
"암에 걸려서 앞으로 자기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마땅히 갈 곳도 없다 " 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기독교인이냐 ?" 하며
죽음을 눈앞에 둔 자기에게 충고 하나만 해 줄 수 없느냐" 고
물었습니다.

갑자기 나의 가슴이 그녀에 대한 사랑과 연민으로
아파왔습니다.

" 당신도 나도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을 본따
사랑으로 창조한 인간이다. 비록 우리들이 서로 다른 종교적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우리들을 향한 사랑에는 다름이 없다.
내가 예수를 통해서 알고 있는 하나님은 당신이나 나를
아무런 차별이 없이 자기자신처럼 사랑하고 계신다". 하고
말했습니다.
.
그녀가 갑자기 내손을 잡고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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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183.109.98.59)
2013-02-22 01:23:35
박평일님의 댓글을 읽고 매번 웁니다.
평생을 기독교인으로 살아왔지만.
진정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은 최근 몇년이 아닐까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한다고 하면 신비주의자로 몰릴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기독교인들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믿는 자마다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길 원하십니다.
예수님 외에는 진정한 중보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바로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천지 이만희, 대형교회 목사, 천주교의 교황 이하...
이슬람의 ... 불교의... 무당....
이러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중보자라고 주장하고 자신을 따르라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독교가 진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진리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선교의 대상이 됩니다.
그들과 싸우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들과 사상과 철학을 통합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하나님과 나의 사랑의 대상이 됩니다.
박평일님의 사랑과도 하나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중보자라 하는 자들
또는 중보자인 척 하며 이를 통해 자신을 생계를 유지하는 자들
자신이 소경이면서 선한 양들을 이끌려는 자들
예수님을 전하는 척하면서 방해하는 자들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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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72.196.234.24)
2013-02-19 10: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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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72.196.234.24)
2013-02-19 10: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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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4.141.4.52)
2013-02-19 04:4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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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75.136.112.226)
2013-02-19 06:55:42
성경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세뇌라는 말을 아무데나 쓰시는 것을 보니 그대의 마음이 세뇌되어 세뇌로 가득차 있는 것 같군요 나는 그것을 은혜라고 부르지요 진리는 하나이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어두움이 그 진리를 진리로 깨닫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것이지요. 참으로 자유한 자는 상대방의 반대의 논리에 그렇게 옹졸한 태도를 보이지 않지요. 자유가 아니라 어떤 것에 묶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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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2-18 15:13:44
포이멘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잘 압니다.

그런데 냉정해 지셔야 돼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사실 아무래도 불편하지요.

제 생각에 본문의 취지는
기독교는 진리가 아니다 라는 것은 결코 아니구요

다른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하고
자기만 뭔가를 가지고 있다는
기독교에 만연한 그런 우월감과
또 그로인해 발생하는 무례함 등의
병폐를 비꼬는 글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부터 반성하자 차원의 글이겠구요.
예수님의 사랑으로 타종교 (우리의 이웃)를
존경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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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루 (183.97.106.217)
2013-02-18 11:33:41
아버지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인간세상에서 아버지의 사랑과 같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해주는 것으로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자기민족 이스라엘만 사랑하신다는 민족주의 선민의식을 가진 유대인들의 생각을 고치시기 위한 설교였다는 생각이고요. 기독교도 마친가지로 하나님은 기독교인만 사랑하신다는 독선적인 교리에서 벗어나야 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기독교가 유대교나 진배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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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본부 (203.226.199.22)
2013-02-18 13:00:31
해석도 가지가지 하네요ㆍ
결론적으로 기존 정통신앙을 율법으로 얽메 이면서 자기들이 그런것을
발견하고 성찰하고 있다는 한뼘 뇌 의 현실 입니다ㆍ

불교 역사를 훑어보면 예수님이 부처의 제자였다는 실 도있을만큼
확실한 문서도 있죠 예수니이 물위를 걸으셨다는것 만큼 그보다먼저 그쪽에서
물위를 걷는 기적을 묘사한 장면의 기록도 있지요ㆍ

내가 땡중들의 번쩍거리는이마를 후려갈기면서 답 을 했쒸다!
야! 국어책에 나오는 "철수 ㆍ 영희" 가 세상에 한두명 이냐!
꿈깨고 가부좌틀고 고생이나 해라 이넘들아ㅡㅡㅡ

그런데ᆢ 확정적인 주니의사건들을 신화로 받이들이고
내세는 죽어봐야 알지! 요딴 머리 굴리기나 하는짓 은 영락없는
마귀 의 짓 임을 우린 알아야 합니다 ㆍ

기독교 의 어느매체이든 당신들과공동 토론 프로그램
잡을 용의 있으니 ㅡ토론장 으로 나와보슈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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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개혁본부 (203.226.199.22)
2013-02-18 13:03:30
주니 /예수니 ㅡㅡㅡ> 주님 / 예수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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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61.33.27.221)
2013-02-18 11:07:15
정체를...
당당뉴스의 정체가 뭔가?
아주 아주 은밀히 암약하는 안티 크리스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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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72)
2013-02-17 20:37:27
류상태 목사님
목사님이 성경을 해석하는 말씀을 보면은 진리 안에서 자유함이 보임니다...오로지 말씀으로 강제하고 협박하고 목회를 위한 목회를 목표로하는 적지않음 먹사들과는 그차원이 틀리며 예수님의 심중을 제대로 알려주시니 감사 합니다....기독교라는 종교를 통해
자유는 커녕 종속적 삶으로 자신의 영혼을 저당 잡히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드리고싶은 말씀은 예수는 3 년간만
믿고 이후에는 예수가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길에 이르도록 도와주시는 목사님께 감사를 전하며 건강하시고
글을 지속적으로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이순간 이글하나로 주님의 말씀이 배부름니다..배부름을 나누겠습니다..평화가 함께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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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75.136.112.226)
2013-02-19 03: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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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본부 (203.226.199.22)
2013-02-18 13:06:01
나무아미 타불 천태산종 이다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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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137)
2013-02-18 20:45:07
개악본부는 무뇌아요 고문관이다
어느 먹사에게 길드려졌길래 이모양인가...나는 그대를 한번 만나고싶고 어느 개독교회 교인이며 어떤 먹사에게 길드려졌는지 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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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75.136.112.226)
2013-02-19 03:16:11
안타깝지만 이사야님의 언어속에서 베부른 자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참으로배부른 자는 님 처럼 반응하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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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138)
2013-02-20 02:38:16
예수를 장사하는자들
그대는 예수를 믿었고 평생 믿기만 할뿐이다...그러나 나는 예수를 믿었지만 지금은 예수의 삶을 살려 애쓰며 고통을 당하는자니다
듣는데길드려지고 맹신적 언어에 함몰돼있는 이땅에 개독교인들 정신좀 차렸으면 조케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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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2-17 15:48:17
입빌립 님께
그동안 임빌립 님의 글을 꾸준히 읽어보고 생각을 좀 해보았습니다.
오늘 글을 읽고서 몇가지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진심어린 마음으로 이렇게 몇자 적어 올리기를 소원합니다.

우선 님께서는 정말 순전한 믿음을 지니셨습니다.
때묻지 않은 그런 순수한 믿음말입니다.
사실 부럽기도 합니다. ^^

아마 목사님들이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람이지요.
정통(주류) 기독교 즉 한국의 근본주의적 가르침을 그대로 받으시고,
그대로 믿으시고 또 그렇게 살아 보려고 무척 애쓰시고 계시니까 말입니다.

반항도 않하고 어떤말을 해도 아멘으로 받고요.
정말 모범생 같으신 분이라고 봅니다.

사실 지금 님의 믿음에 대해 본인께서는 전혀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님처럼 순전하게 믿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습니다.
지식적으로 통달한 사람보다도 빌립님처럼 순수하고 순전한 분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더 당당한 사람일 수도 모릅니다.

다만, 한가지는요.
기독교인 중에는 현재의 한국 기독교에서 가르치고 행하고 있는 작태를
참아주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 부류에 속한 사람일 거구요.

저도 언젠가 말씀드렸다시피 매우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가정과 교회에서 성장했고
임빌립님 처럼 그러한 믿음을 품고 살아 왔었죠.

근데 이성이라는 눈을 뜨고 여러 사상과 신학서적을 대하고 난 후에
그렇게 완벽하다고 믿어왔던 성경이 사람에 의해 쓰여졌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이전에는 성경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100%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계시라고 철떡같이 믿었었죠.

저에게는 궁금한 것이 너무도 많았어요.
예를들자면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왜 그렇게도 잔인하시냐는 것이죠.
그런 질문을 목사님께 하면 궁색한 변명이나 늘어 놓으시고 말돌리기식의
대답만 나오고 진짜 그 누구도 그런 부분을 설명 못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인문학적 성서비판을 알고 보니까
과거에 이해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다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구약은 이스라엘 족속의 역사라는 것.
구약에는 문학가 시와 묵시와 법, 역사 등 모두 인문학적인 글이라는 것.
물론 그 안에 하나님의 계시가 있다는 것도 알지만..
(이 부분은 우선 접어두고요)

제 경험으로 또 한가지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은 어느 한 족속에만
집착하는 편견적인 분이 아닌 그야말로 범인류적이고 우주적인 신이다 라는
깨달음을 얻게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지무지 크시기 때문에 편견따위는 있을수가 없는 것이지요.
선인과 악인 누구에게라도 비를 내리시는 분이잖습니까.
기독교인들만 사랑하는 그런 편견적인 하나님이라면
왜 악인에게도 동일한 비를 계속 내리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분은 구차하게 매사건건을 관여하시지는 않습니다.
너무 넓으시고 공평하시고 우주적이시니까요.

이런 차원에 다다르고 난 후에는 하나님은 기독교의 하나님 그 이상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또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편협적이었던 생각의 경지가 넓어지고 마음이 활짝 열리고요.
타민족을 타민족으로만 대하지 않고 같은 인간으로 대하게 되고요.
타종교도 더이상 타종교가 아닌 우리의 이웃으로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임빌립께서도 제가 만났던 더 넓고 보편적이신
하나님을 찾으시고 만나시기 희망합니다.
그 분은 새롭고 보편적이시며 질투하시지도 않고
만인을 사랑하시며 전우주를 품으시는 분이십니다.
아~, 이 얼마나 기쁩니까!!
이것이 복음 바로 GOOD NEWS가 아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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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2-19 10:46:03
참빛님
저에게 관신을 가져주신데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물론 이런 관심이 사랑의 발로라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진리도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냉혹하다 하였는데 그것 때문에 기독교의 진리가 욕을 먹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근본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속마음의 욕심을 숨기고 예수를 빙자하여 이웃을 괴롭힌 것이 빌미를 제공했고 지금도 사실 근본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 이중적인 모습으로 인하여 기독교가 욕을 먹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저도 잘하고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참된 기독교의 진리가 왜곡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진리 아닌 것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목욕물이 더럽다고 어린 아이까지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잘못하고 있고 가르치는 목회자들이 잘못 가르치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진리 없는 사랑은 감상적이요 타협적이라 하였는데 그것 때문에 또한 기독교의 진리가 왜곡되고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할 수 없는구약의 잔인한 기사는 인간의 작품이요 인간의 바램을 표현한 것이지 하나님이 하신 것은 아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잔인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중에는 참빛님과 같이 온순한 분도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에 비하면 우리의 의는 헌누더기보다도 더 못한 것임을 잘 아실 것입니다. 비록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사람들이 죄악으로 인하여 스스로 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람 뿐만 아니라 자연 만물이 모두 부패하여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으며 사람의 죄악과 왜곡된 자연이 상호 연결되어 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일들은 크고 넓게보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좁게 보면 사람이 악하여 벌을 자초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사랑의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셨건만 어떤 이들은 구세주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정신대로 살라고만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가요?
님은 인문학적 성서비판을 읽으시고 성서에 대하여 많이 아신 것으로 말씀하셨는데 결국 님께서는 성경보다는 인문학적인 글에 더 신뢰를 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느 것을 더 신뢰하느냐 이것 또한 믿음의 문제 아닐까요? 물론 인문학적인 글이 더 이성적 논리적이고 성서는 신화를 비롯하여 이성으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인문학적인 글을 더 신뢰하는 것이 맞지않느냐고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성경 또한 우리의 이성으로 얼마든지 신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성적 논리적으로 더 어느 것을 더 신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성경은 이성적으로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으로 알 수 없는 믿음의 세계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인문학적 성서비판은 그야말로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입니다.
하나님은 무지 크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성경을 통하여 여러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일부를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인문학적 성서비판으로 다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나아가 하나님께서 계시하지 않으셨는데 인간은 스스로 진리를 깨닫겠다고 면벽부좌한들 하나님이 주시는 진리를 알 수 없지요.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것은 맞지만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처럼 여러 선지자를 주셔서 외치지만 사람들은 외면하고 자기 스스로 진리를 터득하고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을 박차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다만 우리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하지만 일부 아니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으로 다가서지 못하니 안타깝고 미안합니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을 실천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보여주어야하며 세상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그리스도인들을 평가할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나아가 세상사람들은 예수가 과연 구세주 그리스도인지 평가할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구구절절히 옳은 말씀이라고 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욕하고 심지어 그리스도 예수를 부정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행위에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예수의 정신을 외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이점에서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에 대해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더라도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의 믿음과 행위로 보응받을 것입니다. 구원은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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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 (24.141.4.52)
2013-02-20 13:48:07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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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은혜로 (75.136.112.226)
2013-02-18 06:23:44
죄송합니다만 진리밖에서 방황하시다가 사단(뱀의 말, 왜곡된 진리)에 붙들리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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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7
참빛 (24.141.4.52)
2013-02-18 12:18:25
죄송합니다만 개독에 세뇌되어 막말적인 악담을 하는 꼴을 보니 근본주의 광신자이시구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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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6
은혜로 (75.136.112.226)
2013-02-19 03:42:51
님이 만났다는 더 넓고 보편적인 하나님도 댓글을 보니 특별히 다른 것 같지가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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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
참빛 (24.141.4.52)
2013-02-19 04:26:37
그대와 같은 개독인 근본주의 추종자가
어찌 특별한 하나님을 이해할 수나 있겠는가?
일차원적 사고체계외는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우물안 개골이 수준이니..

논쟁을 하기 원하면 정중히 하시고 논리적 담론을 펴시기 바라오.
함부로 한마디 던지며 누구는 어떻다 판단은 마시오.

선악의 판단히 그렇게 흑백논리로만 무우자르듯 되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쯤은 잘 아시고 계실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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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
은혜로 (75.136.112.226)
2013-02-19 06:11:04
선악과를 먹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안 자만이 생명의 열매 진리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모를리 없을 것 같은데. 동산에 있는 선악과와 생명나무가 같은 나무라는 것은 아시는지. 저하고 논쟁하려고 하지 마시고 당신이 기독교인 이라면 성경을 더 연구해 보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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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8
Philip Im (70.62.49.64)
2013-02-20 11:05:22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 나무는 같은 나무가 아닙니다.
논쟁을 하려 하지 말라고 하지 마시고 왜 같은 나무인지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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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이사야 (121.129.19.138)
2013-02-20 02:42:48
은혜핑게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자들
은혜 좋와하다 예수장사하며 팔아먹겠네...성경공부라.....제대로배우지도 못한 먹사들에게 길드려지는것 뿐이니라..예수를 살으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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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참빛 (207.210.3.147)
2013-02-19 08:01:18
ㅎㅎㅎㅎ
선악과고 뭐고 난 지금 그런데 관심이 없고
그대의 고얀 말버릇 좀 고쳐주십사 하는것 뿐이외다.

그대와 논쟁이라...
음~
뭘 아는 사람하고나 논쟁은 가능한것 아닌가??

그리고 성경 연구는 이미 늘 하고 있는 것이고..
연구는 그대가 많이 하여야 하실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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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박평일 (72.196.234.24)
2013-02-17 22:08:41
"기독교가 진리를 독점할 수는 없다"
저는 솔직히 이런 제목을 신선하게 느껴지는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누구도 "태양은 독점할 수 없다" 는 제목의
글은 쓰지 않지요.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이지요.

"대화의 목적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공존하기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대화는 서로를 자기견해로 설득하고
강요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다."

저는 처와 신앙관이 아주 다릅니다. 가끔 신앙적인
대화를 나눌 때마다 내가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말입니다.
그래도 대화를 끝내고 나면 서로 많이 섭섭해 합니다.

그녀와 나의 신앙적 차이라는 것이 별거가 아닙다.
그녀는 성경구절에 충실한 편이고,
나는 실제의 체험, 삶을 성경구절보다 더 중요시 합니다.
저는 베드로처럼 예수를 따라 물위를 걷는
모험을 시도 했다가 실패하면 그것은 인간의 한계로
받아들이지,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어지를 쓰거나 고집을 피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신앙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개인적이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신앙관이 다른 것은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녀에게 가끔 이런말을 하곤 합니다.

개인적인 신앙은 파도, 하나님은 바다다.
신앙생활은 부분적이고 잠시적인 파도가
완벽한 전체인 바다와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니 각자의 신앙적인 견해를 완벽하다고 믿고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완전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무시하고 모독하는 행위다.

또 한가지는 신앙은 자신의 육체적 중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약과같다. 자신의 생명을 살리는 약이라고 해서
남에게 똑같은 약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약이 죽음을 불러오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성경말씀은 자신의 골수를 빠개는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다. 그러나 그 칼날을 남을
향해 휘두를 때 무서운 폭력으로 변해버린다.
그래서 역사에 무시무시한 마녀사냥이라는 것이
나온 것이다.
실제로 신앙적인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아라. 마음 속이 사랑이나 평화가 아니라
미움과 증오로 가득차 있을 것이다.

그녀가 한 번은 나에게 히틀러의 유태인 집단살인사건을
신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내가 인용한 말이 크로닌 신부가 쓴
성채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 치셈 신부의
말이었습니다.

일차대전 중이었지요. 중국오지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치셈 신부 밑에 부 두분의 수녀가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한 수녀는 독일 출신, 한 수녀는 불라서 출신으로
매일아침마다 자기 나라가 전쟁에서 승리하게 기도를
하며 서로 불편한 관계로 지냈지요.
하루는 시셈 신부가 두 수녀를 앞에 불러 놓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느님은 독일편도 불란서 편도 들지 않는다'.
하나님은 어느편도 선택하시는 분이 아니다"

맞는 말씀이지요. 선택은 부분에서 나오지요.
그러데 전체인 하나님께서 어떻게 선택으로
인간들을 혼돈스럽게 하시겠어요.
그렇다면 이미 다른 종교는 모두 없어졌어야지요.

나의 개인적인 체험의 일부 입니다.
유익한 대화 고맙습니다.
리플달기
5 5
박평일 (72.196.234.24)
2013-02-17 11:24:20
회교도에게 아들을 잃은 한 힌두교도가
간디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회교도들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인 자들에게 대한 증오가
마음 속에 가득한데, 어떻게 하면 제가 다시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요?"

간디는 그 남자에게 고아가 된 적의 아들을 입양하여
자식처럼 키우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믿는 기독교인들이라면
사랑에 대해서 만큼은 어떠한 다른 종교인들 보다는
낮아야지요.

진리뿐 아니라 아무 것도
기독교인들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이세상에 존재하지 안습니다.
교회건물이라면 모를까.
리플달기
3 3
Picky (76.23.169.116)
2013-02-17 08:53:48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순절의 사십일의 의미와 함께 광야의 사십일의 의미도 동일선상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가 간 길을 나도 걷기로 작정했을 때에 다가오는 그 두려움을 사십일의 광야의 체험을 통해 떨쳐버리고 이 세상에서의 최후의 날들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순절 사십일의 체험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누구가 그리스도인이라 하겠습니까?

진리를 독점하려는 기독교

제목이 참 마음에 듭니다.

저는 이 글의 부제로 "그러나 예수의 고난은 외면하는 기독교"라고 하고 싶습니다.
리플달기
3 8
개혁본부 (203.226.222.171)
2013-02-17 03:32:30
맨위 세습 어쩌구저쩌구 떠드는 글 클릭수가
자그마치 3000클릭을 가쁜히 넘기고 달리고있는데ᆢ
이글의 클릭수는 그 글의 10/1 도 안됩니다 ㆍ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당당이 1천클 넘기기가 빠듯했는데 감리교사태 취재 덕에
특히 총회 생중계 를 기점으로 훌쩍 성장 했죠ㆍ

하지만 아직도 몆백클릭수를 못넘기는 글들이 있습니다
정치적인 글 특히 북한옹호글 과 신앙을 넘어 자기사상을
주장 하는글들 이 그러합니다ㆍ

왜? 일까요?
고요히 주님께 여쭈어 보셔요들~
리플달기
1 12
박평일 (72.196.234.24)
2013-02-18 04:30:56
저도 선생님 견해에 공감합니다. 인류역사상
불후의 문학작품들은 그 당시에는 외면된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당당뉴스에 실린 글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저에게는 좋은 글일 수록 읽는 분들의
숫자가 적더군요. 좋은 글은 투표나 숫자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그것이 요즈음 저널리즘의 일반적인
경향이지요.
신앙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교회 숫자나 신도들의 숫자로
평가할 수는 없지요.
좋은 예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본은 기독교인들이 1 % 되지 않지만
그 중에 참으로 훌륭한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기도에 대한 오해입니다.
세계에서 한국인들처럼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하는 나라는
그 예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사회가 디른 나라보다 기독교정신이
사회 속에서 실현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요.
저의 개인적인 체험이기도 합니다만
3.15 부정선거의 주법으로 사형을 당한 최인규나
박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차지철 씨는 새벽기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는 신앙인들이었지요.
저는 믿고 기도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체험을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부부사이 아주 사소한 문제도
신앙 안에서 해결하기가 어렵더군요.
신앙의 잣대를 부부가 서로 자신이 아니라
상대에게 겨누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교회를 다니면서 입으로 근본주의 신앙인들
일 수록 배후자들이나 자녀들로 부터 위선자라는 비난을
받는 분들이 많더군요. 선교부장일을 하면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
자녀들이나 배우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그리 대답했습니다.
신앙이 삶의 향기가 아니라 열등의식이나 죄의식에서
비롯된 자가합리화이기 때문이지요.

예수님도 그러시지 않았습나까 ? 더러운 것은 입으로
들어 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저도 사람들의 됨됨을 그리 평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자신을 숨기며 나오는
비난이나 욕설들은 예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요.
개인적인 스트레스 나 욕구불만 표현정도
받아들입니다.

오즉 다른 할일이 없으면 남의 글에 대한
크릿수나 세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겠습니까?
그리고 기도하는 것이 무슨 자랑거리가 됩니까?
예수님은 기도는 남의 눈에 띄지않게
은밀하게 하라고 권면하지 않았습니까?
또, 나도 새벽에 기도를 하는 사람이지만
기도중에 남을 욕하고 비난하라는
계시는 아직 단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사탄이 하나님 음성을 가장해서 그런 짓거리를 한다는
이야기는 여러번 들어 본 적은 있습니다..

유익한 댓글 고맙습니다.
리플달기
4 0
참빛 (24.141.4.52)
2013-02-18 12:27:21
정곡을 찌르셨네요.
박선생님의 그 정확한 관찰력과 혜안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
진정 인생의 선배이자 신앙의 귀감이 되십니다. (농담 아닙니다..)

"실제로 교회를 다니면서 입으로 근본주의 신앙인들
일 수록 배후자들이나 자녀들로 부터 위선자라는 비난을
받는 분들이 많더군요."

아멘~ 할렐루야!
리플달기
2 8
박평일 (72.196.234.24)
2013-02-18 23:29:34
제가 필요없는 소리를 한 것 같습니다.
댓글들을 읽으며 너무 답답해서 그랬습니다.

저는 서로 신앙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남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인종, 성별,연령,지위,신분,직업,학력,빈부.... 등으로
타인을 비난할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그것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전도여행을 보내시며 당부하셨던 전도방책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스스로 존재합니다. 빛과 같습니다..
어둠은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빛이 비추이면
스스로 사라지는 것이 어둠입니다..

저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님께서 삶으로 보여주신
사랑의 빛과 소금으로 존재할 때 복음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믿고있습니다.

이 세상에 비난이나 비판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은 미움과 증오밖에 없습니다.

전도는 타종교를 비난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불교, 힌두교, 모슬람 교인들을
욕하고, 박해하고,비난해서 단 한 사람의 영혼을
구해 본 경험이 있습니까?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서 오히려 모슬람 세력들이
급속도로 팽창했습니다.
이것이 전도에 대한 아주 좋은 역사적 교훈입니다.

100%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교회가
사랑과 평화를 나누는 행복의 복음터입니까?
아니, 100 %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우리 가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까?
아니지요.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요 현실입니다.
.
성 프란시시코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사랑을 실천하는 도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가는 곳 마다
사랑과 평화, 화해, 용서가 흘러넘치기를
기대했습니다..
성 프란시시코가 하나님 율법을 범했습니까?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예수님의 삶을 살 때
내가정, 내이웃이 그만큼 변하고 달라집니다.

저는 그런 예수님의 삶에대한 실천이
이 당당뉴스 댓글문화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고있습니다.의견이나 신념이 서로 다르더라도
댓글 속에서 사랑과 연민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익명이나 가명을 쓴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없어지지도 않고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남이 가난해 져야 내가 부자가 되고,
남이 불행해져야 내가 행복해 지는 것이
복음은 아니지요.
또, 땅따먹기나 편가르기 애들 싸움도 아니지요.
더구나 타인의 신앙적견해를 비판비난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면에서 저는 당당뉴스의 토론장을 아주 유익하고
귀하게 생각합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장막뒤 어둠 속에 숨기고
숨겨진 진실과 문제점들에 대해서
당당하게 의견교환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이세상에 아무것도 숨길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당당뉴스 이름처럼 기독교인들일 수록
매사에 당당해야지요.

감사합니다.
리플달기
2 0
참빛 (24.141.4.52)
2013-02-19 00:35:12
네, 맞습니다.
저도 의견교환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이곳 당당뉴스가 그래서 참 좋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도 드런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말 사회적으로 문제 많이 일으키는 사람들 보면은
근본주의자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 참 이상해요.

자기네 들만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면
진리를 소유한 자들인 만큼
온유하고 겸손하여야 되는데

남을 비판하는 것까지는 좋은데요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또.. 사탄이니 지옥이니 이런 악다구리 험한 말까지
내뱉으며 저주하는 사람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진리를 소유했다고 하겠습니까?

선생님 말씀처럼 진짜 위선자들이 너무 많아요.
사회적으로 무리를 잃으키는 사람들
한국이나 미주나 한결같이 위선자 먹사들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강단에서는 자기가 최고로 거룩한 자인 것처럼
남들은 다 자기 아래에 있는 것처럼
믿지 않는자들은 모두 사탄의 영에 잡혀 있느니 뭐니 해대고
우월감과 거만함이 기름때 흐르듯 쫘르르르 흐르고요.

미국에서 가장 근본주의 노선에 있는
인디애나 주의 제일침례교회
당회장이었던 잭 쌉이라는 목사...
설교에 얼마나 카리스마가 넘쳐납니까.
달변에다가 깐깐하게 생겨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것 같은 빈틈없는 목사
세상을 넘보고도 남을 만큼의 그 자신감
미국남주비역의 최대교회 이루고
정말 신실한 목자인양 목회하더니만.

뒤에서는 호박씨 까고
미성년자 소녀를...
그것도 부모가 자기에게 카운셀러로 믿고 맡겨준 그 소녀를
범하고 연속적으로 성적 욕보이고..

대표적인 근본주의자 위선자이지요.
10년형 받고 지금 교도소에 있습니다.

진리를 소유했다면 왜 그럴까요?
전 그게 정말 정말 궁금합니다.
리플달기
2 0
박평일 (72.196.234.24)
2013-02-19 01:12:06
그런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한 때 유명했던 베이커도 성추행
공금휭령으로 감옥에 갔습니다.
미국신도들은 그런면에서는
비교적 정의롭고 용감하지요.

.
이 지역에서 여신도와 바람이 나서 도망간 목사,
하와이에서 건축헌금을 몽땅 챙겨 도망간 목사,
둘 모두 서부에서 떵떵거리며 주의 종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할 수 없지요. 이것이 한국신도들의 수준이니까.
주의 종을 섬겨야 물질적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 말입니다.
리플달기
2 0
참빛 (24.141.4.52)
2013-02-19 04:44:09
그러게나 말이예요.

문자주의 근본주의가 숭고한 기독교의 가치를 짓밟고
예수의 가르침은 뒷전에 모셔두고서
교세와 교리확장에만 급급해 하는 모습이 답답합니다.

참담합니다.
리플달기
0 0
개혁본부 (203.226.197.56)
2013-02-17 17:44:54
ㅋㅋ 뒷북 치는것은 여전들 합니다
당연히 감리교사태 가 몆년흘렀고 그당시 취재때부터
당당이 컷다는얘기를 한건데? ㅋ

내 댓글의 반대! 당당에서는 신경안씁니다 왜?
끼리끼리 놀자판 이기때문이죠ㆍ
흡족 하고있으니 걱정안하셔도 됩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개혁본부 라는애가 왜!
그러는지 낼 새벽기도 혹 하시면 여쭈어보세요ㆍ
잡소리가 창궐하는 낮에 말고 꼭! 새벽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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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3
남미에서 (201.250.95.201)
2013-02-16 18:50:40
예수님의 사랑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을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그 사랑에는 무한한 하나님의 용서가 기반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랑을 모르고 살아 간다는 것이고, 용서를 받을 생각을 아예 안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구원은 회개에서 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헷갈릴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요즘 하는 운동의 코치가 그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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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4
조창식 (59.21.228.116)
2013-02-16 14:03:27
고난주일이나 철저하게 지키자!
지금것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개신교회가 천주교 따라가면 곤란하져ㅎㅎ
필요하다면 초기에 선교사가 다 가르쳐 줬겠지만
안그런걸요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밑천 없으니까
가지고 들어온것 아닙니까?
복잡한 세상 단순하게 삽시당
고난주간 제대로 지키면 하나로서 족하죠
매주간 매일이 교회절기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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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3
개혁본부 (203.226.222.235)
2013-02-16 13:35:36
박식한지식 혜안의지혜 넓은가슴 ᆢ 그리 남들은 보겠지요
하지만 고요히 나의 내면을 잘 관찰하면 넓은 내자리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주님을 발견 하거나 아니면 있을자리가
아니시라서 벌써 내 시야 로는 찿을수 없을수도 있습니다ㆍ

나도 30대에는 스님 신부 사상가들 과 휩쓸리고 뒹굴렀습니다ㆍ
다 같다 라는 느낌에 행사도 같이 했습니다ㆍ

그런데ᆢ 그런데 말이죠 고요한 어느날새볔ㅡ
갑자기 주님이 내가슴을 아주세게 두드리시기에ㅡ
왜그러시냐고 여쭈어 봤더니ㅡ

문밖에 너무 오랫동안 서 계셔서 이젠 서계실 기력이 없으시다고ㅡ
내안에 손님이 너무많이 머물고 있어서 못들어 오시고 계시다고ㅡ

진정한 주님의 소리 잘 들으시고 모든시간을 문밖에 서 계신
주님을 위해 투자 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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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24
이사야 (121.129.19.72)
2013-02-17 20:24:31
면벽수도 라도 하셨는가
이사람 말이오직 말만 그렇다는거지요...과연 그리살아가며...그런 생각의 폭과 깊히가 있을까요....오직 맹박 오직 삼도<선 홍 국> 추종자이거늘
리플달기
10 13
개혁본부 (203.226.222.171)
2013-02-16 18:14:35
별말씀을요^^
류상태씨 에게 한말입니다
지금 가득찬것을 비우고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모시라고 말이죠ㆍ
리플달기
10 16
참빛 (24.141.4.52)
2013-02-16 16:27:38
좋습니다
오늘은 아주 나긋나긋 말씀하셔서
개혁본부내에 진짜 개혁이 일어났나 했습니다. ^^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내 방부터 깨끗하게 청소해야 하는 것이
우선순위 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는 방구석에만 앉아 있지말고
이웃집에도 다녀오고 해야 되겠죠.
그게 인생아니겠습니까?
리플달기
1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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