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완형, 유난히 매서웠던 겨울도 이제는 작별인사를 할 때가 되었나봅니다. 봄을 재촉하는 비 치고는 꽤 많은 비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는 이 시간에 여러 가지 상념에 사로 잡혀 몇 자 끄적여 봅니다.

형님 말씀대로 감리교회가 똥통에 빠진 게 벌써 5년이나 되었나봅니다. 뭔지도 잘 모르고 막연한 정의감에 불타 안산제1대학 감리교 총회 장소를 찾아갔던 게 벌써 그렇게 되었다니! 얼떨결에 갔다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온갖 험한 꼴을 다 당하고 분에 못 이겨 며칠 밤을 씩씩거렸던 기억이 새롭네요. 그러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고 했던가요, 울화가 치밀어 오르던 그 밤들도 이제는 그저 담담한 눈으로 이 사태가 더욱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느낌입니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감리교회 정상화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요. 재판도 수없이 했고 여전히 재판이 걸려 있는 상황입니다. 전감목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지고 그 단체가 다시 다른 이름으로 변신하고, 평신도 단체들도 이런 저런 명분을 걸고 깃발을 들었고, 소송단이라는 모임도 만들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무 것도 달라진 건 없다는 생각에 황망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감리교회가 엉망이 된 이 사태를 가만히 지켜보니까 참으로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은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고 해서 그런가, 그저 목소리 높여 악악대는 이들이 전면에 나타나지만 아무리 봐도 그저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감독회장 선거라는 주제를 놓고 대략적으로 두 파벌이 맞짱을 뜨고 있는 형국이지만 사실 대다수는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아예 안구 오염을 피해 일부러 외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쪽은 감리교회가 개혁이 되어야 한다고 악을 쓰면서 달려들고 다른 한 쪽은 개인의 탐욕을 개혁으로 포장하지 말라고 대꺼리를 합니다. 이런 상황이 고스란히 감리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드러납니다. 그렇지만 자유게시판을 통해서 악을 쓰고 또 거기에 항변하는 댓글을 쓰고... 무슨 단체를 만들어서 소송을 걸거나 단체행동을 꾀하는 이들... 모두 합쳐 봐야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마치 이 두 세력이 감리교회를 대표하고 감리교회의 주도세력인 양 싸우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요? 아닙니다. 침묵하는 다수가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정의라고 주장하든 개혁을 주장하든 옆에서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그저 권력을 지향하는 이전투구처럼 밖에 안 보입니다. 왜냐하면 감독회장이라는 직책의 선거를 중심에 놓고 벌이는 싸움인데다, 이 싸움에 뛰어든 이들이 대부분 감리사급 혹은 감독후보자와 그 측근, 감독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있는 세대와 교회 사이즈, 소위 말 좀 한다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득권자, 기득권 진입예정자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싸움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는 왜 감리교회 정상화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그런 ‘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마 저도 그런 ‘급’이었다면 지금 한창 성명서도 쓰고 몸싸움도 하고 재판정에도 따라다니고 그랬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싸움에 끼어들지 않거나 끼어들지 못하는,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의 의견과 목소리는 전혀 무시된 채로, 나름대로 세력을 갖춘 두 모둠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감독회장이라는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이기도 한) 직책을 놓고 벌이는 싸움은 결코 감리교회 전체의 개혁과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침묵하는 다수의 대변인은 아니지만 제 생각도 그 중 한 의견일 수 있겠지요. 솔직히 감독회장이 누가 되든 그게 감리교회의 미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감독회장 없이도 5년을 지내왔습니다. 그것도 아주 잘! 감독회장이 없어서 아쉬운 이들은 누구일까요? 감독회장을 한 번 하고 싶은데 은퇴연한이 얼마 안 남은 목사들, 가까이 지내는 목사가 감독회장이 되면 이런저런 떡고물을 얻어먹을 수 있는 목사와 평신도들, 이런저런 공적사업을 하면서 필요한 지출에 대해 권한자의 서명을 받아야 할 사람들 정도 아닐까요? 온 감리교회을 다 혼란에 빠뜨려릴만큼 엄중한 문제도 아닌 감독회장 선거가 왜 이처럼 시끄럽게, 망신이란 망신은 다 당해가면서 5년이라는 시간을 끌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장정이나 제대로 된 법으로 만들든지!

감독회장 없는 감리교회는 존재 가능하지만 감리교회 없는 감독회장은 존재가 불가능합니다. 결국 감독회장이라는 직책 혹은 직위는 매우 부차적인 것이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자리입니다. 그런데 왜 그걸 놓고 계속 싸워댑니까? 차라리 없애버리느니만 못한 거 아닙니까? 아니면 장로교회처럼 1년짜리 총회장 제도로 가든가요. 감독회장 때문에 학연으로 파벌로 나누어지는 이런 못된 현실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냥 없애버리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 하는 분은 별로 못 보았습니다. 지금 싸움에 끼어든 이들이 모두 이런 기득권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이들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것, 아니 아예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감리교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분들 중에는 가깝게 지내고 존경하는 목사님들도 많이 계시지만, 정말 죄송하게도 결국은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감리교회가 5천여 개 교회에 160만여 성도를 헤아립니다. 목회자 수는 8천 명 정도? 아마도 1만 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싸움에 끼어든 이들, 이렇게 저렇게 연루되어 있는 목회자의 수는 얼마나 될까요? 전감목이나 양측의 배후단체들까지 쳐서 넉넉하게 2천 명 정도 잡지요. 그럼 남은 목회자는 6-8천 명 정도 되겠네요. 평신도 중에서는 목숨 걸고 나서는 분들과 어느 정도 연루돼 있는 분들 수가 얼마나 될까요? 장로, 권사, 집사 모두 해서 1만 명이나 될까요? 그럼 지금 난리를 치고 있는 감독회장 선거의 문제는 160만여 명 감리교회 가족 들 중에 기껏 1만 명 정도나 관여하는, 매우 국지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도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이 무엇인지 묻거나 답하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너희는 왜 무관심하고 무책임하냐는 비아냥과 질책의 소리는 들어보았을 겁니다. 국지적인 문제를 전체의 문제인양 확대재생산해내는 능력을 보니 세속과 전혀 다름이 없습니다.

정치는 결국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표명하는 이들의 몫이라는 것은 압니다만 그건 옛날이야기 입니다. 세속 정치권에서 선거철마다 가장 큰 공을 들이는 대상은 부동층, 정치적으로 무관심하여 투표를 하지 않으려는 국민들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선거에 참여하게 하고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는데 교회는, 특히 감리교회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고 그저 일부가 전체인양 행세하는 능력만 강화된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지금 감독회장 선거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기를 쓰고 싸울 필요도 없는, 매우 주변적이고 부차적인 주제입니다. 그것으로 감리교회의 정의나 개혁을 평가하는 척도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우선 감독회장 문제로 더 이상 다툴 필요가 없는 구조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감독회장, 감독? 이런 거 다 없애고 연회장이나 총회장 제도로 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일부의 목사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목사들이 일평생 신께 충성할 것을 다짐하면서 물질과 권력, 인기와 성에 대한 집착을 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늘그막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 명예욕입니다. 그래서인지 감독이나 감독회장직에 더 악착같이 매달립니다. 그러니 명예욕을 부추기는 감독직책을 폐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국 감리교회의 모체인 UMC의 감독은 명예보다는 교구 내의 목회자 수급, 생활지원 등 실질적 업무를 담당하는 비중이 더 크다는데 그 자식뻘인 한국감리교회는 못된 것만 먼저 배운 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행정적 권력도 줄여야 할 겁니다.

그리고 의회제도, 총대제도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리교 사태에 가장 무관심한 세대는 아마도 젊은 세대일 겁니다. 세속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당연할 겁니다. 그러나 감리교회 젊은 목회자 평신도들이 감리교회 정치에 무관심한 정도는 세속의 젊은이들의 정도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왜일까요? 세속에서는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직접 선거를 하고 투표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지만 감리교회에는 젊은이들에게는 아예 기회조차 주고 있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이 나이를 먹어가고 생각이 고착되면 그때 즈음 연급에 의해 총대가 될 수 있지요.

그런데 이렇게 윗돌 빼서 아랫돌로 채우는 식으로 구성되는 총회는 너무나도 완강한 수구적 관례와 관습들이 버티고 있어서 개혁이나 변화 같은 주제를 논의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총회에도 뭐가 뭔지 모르면서 그저 관례에 따라 끌려다니는 총회원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알지도 못했던 때에 만들어진 관습 때문에요. 그러나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총회장에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겪은 십몇 년의 감리교회 모습으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비아냥거리듯 이야기하는 제 자신과 감리교회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아마도 20년 혹은 30년 후에는 교회는 서구교회처럼 게토가 될 것이 뻔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의회제도, 총대제도로는 미래를 대비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걱정하는 미래를 살아가게 될 사람들이 총회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미래에 살고 있지도 않을 사람들이 감리교회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젊은 목회자들은 목사라는 자부심과 자긍심도 갖지 못한 채 그저 부목사로, 3-4년마다 자리를 옮겨 다니며 소모품과 같이 하루하루를 소진해가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합니다.

그나마도 세 번 정도 자리를 옮길 수 있다면 다행입니다. 이동횟수를 채우고 나면 그때부터 교회나 본인이나 막막해지지요. 요즘 얘기를 들어보니 사직 후 갈 수 있는 임지도 없이 내팽겨쳐지는 부목사들도 적지 않은가 봅니다. 담임자라고 상황이 나은 것도 아니지요. 5천 교회 가운데 절반 가량이 미자립이라고 하는데 이 미자립교회 대부분이 젊은 목회자들인 것은 말 안 해도 다 아실 겁니다. 부목사 순환도 잘 안되고 저임금으로 경쟁력을 갖추어 치고 올라오는 수련목들과 대학원생들도 목회자 사이의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요인입니다.

수급이 안 되니 갈 곳이 없어 할머니 교인 한두 명을 놓고도(할머니 한두 분 있는 교회의 목회가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그저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 간판만 달렸어도 교회 담임하는 것 역시 기득권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는 판입니다. 아무튼 미래에 감리교회에서 (여전히 그런 직책이 존재한다면) 감독회장도 하고 감독도 하고 각국 총무도 해야 할 목회자들이 지금 어떻게 자긍심을 잃어가고 있는지는 아셔야 합니다. 물론 형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시겠지만요.

이야기가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지금 감리교회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기득권 가진 자기들끼리 벌이는 권력다툼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는 것, 아니 한 발 양보해서, 많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니 그런 일에 힘쓰고 정력 낭비할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침묵하는 감리교회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목회자들이 신나게 목회하고 평신도들이 행복하게 교회에 나올 수 있는 그런 방안들을 만들고 연구하고 그걸로 싸워야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아마도 정의의 부름에 떨쳐나서 싸우고 계신 선배 목사님들은 ‘그런 감리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지금 이렇게 싸운다’고 말씀하시겠지만 그게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나의 교만일까요, 아니면 선배님들의 무지일까요? 가슴을 울리지 못하는 감리교회라면 감독회장이 무슨 상관이고 미래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렇지만 권력을 갖지 못한 루저들의 무조건적인 비아냥이라거나 대안도 없이 무조건 중립에 서서 양비론이나 펼치는 소리라고 치부하지는 말아주세요...

필완형, 되지도 않는 잡설을 어리광하듯 늘어놔서 죄송합니다. 형님이 당당뉴스를 운영하실 때와는 또 달라진 것 같아서 약간은 아쉬운 마음이 있지만 그래도 감리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기나긴 시간 동안 투쟁해오셨고 남도에서 젊은이들과 많이 교제하신 것을 잘 알기에 이런 어리광을 부려봅니다. 세속도 그렇지만 감리교회에서도 젊은이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고 정치적 역할을 감당해야 할 텐데, 청년실업과 일자리 부족이 감리교회에도 동일한 현상이 되어 그들의 발목을 잡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교회인데 그들의 살림의 짐을 나누어 져주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저도 뭔가를 해야 할 텐데... 이런 냉소나 던지고 있는 제 모습에서 저 자신을 좀먹는 패배의식을 느낍니다. 힘을 내야겠지요. 그래도 형님들에게 오뚜기 같은 불굴의 의지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항상 건강 잘 챙기십시오. 그럼 이만 줄입니다. 이런 우울하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욕먹기에 충분한 글을 다시 쓰게 되지 않기를 빌어주십시오.

2013년 2월의 첫날, 빗소리를 들으며
동생 현섭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