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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산다.나는 아내에게 모성애는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허종  |  paulhu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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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01월 28일 (월) 17:56:22
최종편집 : 2013년 01월 28일 (월) 19:30:39 [조회수 : 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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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아침 일찍 대전으로 갔다.

피곤해서 일어나지 못하는 아내를 깨웠다.

그리고 순천역에 나가 배웅을 했다.

아내는 며칠 전 부터 코피났다.

사는게 고된 모양이다.

'병원에 가 봐.'

'알았어.'

아내를 보내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아내와 함께 먹다 남은 아침을 혼자 먹으며 '왜 사는 거지?'라고 물었다.

나는 살면서 수없이 하는 질문이다.

<왜 사니?>

 

사랑의 길을 걷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었다.

그런데 텅 빈 방 안에서 혼자 아내와 먹다 남은 아침을 먹고있다.

 

사형수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사람을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들을 만났다.

그리고 집행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들의 모습을 보며 인생을 생각했다.

사형수 중에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윤 찬재

19살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친구다.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알 수 없는 분노로 방황하다 사람을 죽였다.

사형언도를 받고 공포에 떨며 울부짖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나요?"

 

집행장으로 가기 전 날 나에게 부탁했다.

"청소년들에게 꼭 예수를 믿으라고 해주세요.

제가 일찍 예수를 믿었다면 제가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꺼에요."

찬재는 집행을 당하기 전 유언을 했다.

사후에 눈을 기증하겠다고...

집행장에 다녀오신 목사님께서 찬재가 눈을 기증하고 편하게 죽었다고 했다.

그 때 찬재의 나이가 열아홉살이었다.

나는 사형수들이 예수를 믿고 좋은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나의 변회되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를 믿으면 새사람이 된다는 성경말씀을 마음에 새겼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목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을 했다.

 

군대를 제대하자 미국에 계신 부모님께서 미국으로 이민을 오라고 전화를 하셨다.

그리고 이민허가증과 이민가는 비용을 보내주셨다.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미국으로 이민을 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민가는 비용으로 신학교에 등록을 하고 신학교를 다녔다.

하나님께서 미국에 가는 것을 막으시고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게 하셨다.

그때부터 나는 가난을 경험하게 되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기숙사에서 살 수가 없게 되었다.

방학을 하면 기숙사 문을 닫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갔기 때문에 갈 곳이 없었다.

추운 겨울날을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많은 시간 교회 예배당 안에서 잠을 자거나 교회 골방에서 잠을 잤다.

그리고 밥은 여기저기 다니며 얻어 먹거나 돈이 생기면 밥을 사먹었다.

그래서 가게 된 곳이 재활원이다.

나의 사정을 안 육촌 형님이 재활원을 소개하셨다.

먹고 잘 수 있는 것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도움의 손길을 다 끊으시고 오직 기도로 살게 하셨다.

 

갈 곳이 없어 방황하던 나의 모습이 떠 올랐다.

추운 겨울날 추워서 예배당 장의자에 쭈구리고 누워자던 모습도 보인다.

나는 사랑으로 산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았다.

무소유의 삶을 살겠다고 고백하고 자발적 가난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때문이었다.

 

'왜 사니? 하나님의 사랑때문에 살지.

그리고 사랑하며 사는 거지.'

아침을 먹으면서 나와 대화를 한다.

재활원에서 장애인들을 만났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사는 인생들도 있구나.

그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산 인생은 사치였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들과 재활원에서 4년을 살았다.

처음 장애인을 만나고 예배드린 날 한 장애인이 나의 숙소로 찾아왔다.

처음 온 나에게 '언제 떠날 꺼냐?'고 물었다.

자기가 재활원에 사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왔다 떠났다는 것이다.

하루 만에 떠난 사람도 있고 한 달만에 일면 먼에 떠난 사람도 있는데

2년 동안 20명 정도 재활원에 왔다갔다는 것이다.

나는 그 장애인에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대답을 하고

혼자 기도하면서 '장애인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을 때 떠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가 1979년 12월 겨울이었다.

장애가 있고 가난해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장애인들...

때어날 때 부터 갈 곳이 없어 버려졌던 장애인들이었다.

희망도 없었다. 증오와 분노만 그들의 가슴에 있었다.

1년 동안 그들의 증오와 분노를 받아주며 살았다.

그리고 1년 후 <작은 사람들의 공연>이라는 합창과 연극공연을 장애인들과 인천돌체소극장에서 했다.

그리고 다시 1년 후 1981년 4월에 인천미문장애인교회를 개척했다.

1981년 10월 3일 아내와 재활원 강당에서 결혼을 했다.

아내는 평생 무소유의 삶을 살면서 장애인들과 살겠다는 나와 결혼을 한 것이다.

그리고 32년의 세월이 흘렀다.

(후배목사 그 많은 세월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라고 하고

아내도 글을 쓴다면서 왜 쓰지 않느냐고 짜증을 냈다. 

어느 집사님이 지금까지 쓴 글을 모아 책으로 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다.)

 

1982년 2월에 신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인천미문장애인교회를 개척했지만  교회 파송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인천미문장애인교회가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파송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선교부 총무가 교회개척을 허락하고 지방 감리사가 와서 개척설립예배를 드렸는데

지방 실행위원부 회의에서 교회설립허가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학교를 졸업한 나를 전도사로 파송을 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주안지방에서 50명의 장애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장애인교회를 교회로 인정을 하지 않았다.

그 때부터 나는 교회개혁을 꿈꾸기 기작했다.

그리고 교회개혁을 위해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목회를 했다.

버리고 떠나기를 수없이 하면서 살았다.

단 한 번도 목회성공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오직 교회개혁을 생각하고 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다.

 

오늘 아침 내가 나에게 물었다.

"왜 사니?"

나의 대답은 분명했다.

"사랑하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서"

10년전 딸들이 사준 설교노트 첫 장에 '가장 약한 자를 위하여'라고 써 있었다.

 

사랑으로 산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기도와 설교이다.

그래서 아내가 알바를 시작했다.

아내가 올해 환갑이라 순천에서는 알바자리를 구하기 힘들어 대전에 가서 알바를 한다.

신기하게도 아내는 나를 믿는다.

그리고 두 딸도 아빠를 믿는다.

그리고 나를 믿어주시는 분들이 있다.

나는 나를 믿어주는 분들의 사랑으로 산다.

아침을 먹고 머리가 자라서 이발소에 가서 이발을 했다.

이발비를 지불하면서 나는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낸다고 생각했다.

나를 믿고 후원하시는 분들이 보내주신 돈으로 살기 때문이다.

 

아내는 딸들을 위해 일을 한다.

나는 아내에게 모성애는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모성애는 동물도 갖고 있는 본능이라고,

사랑은 모성애 그 이상이라고 아내에게 말한다.

그런데 그 모성애라는 것이 대단하다.

아내는 코피를 흘리면서도 아침 일찍 일어나 알바를 하기 위해 대전으로 갔다.

아내는 나를 믿는다.

남편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어제가 하종교회가 개척된지 18년이 되는 주일이었다.

아내와 둘이서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과 함께 가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18년 동안 한명씩만 전도를 했어도 교인이 열 여덟명이 있었을 텐데...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내가 하나도 기가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내와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얼마나 힘있게 설교를 했는지 모른다.

하종교회에서 목회한 지 2년이 지나고 3년째가 된다.

그런데 교인이 한 명도 없다.

순천에는 아직 하종교회의 기초가 되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나는 처음 하종교회에 와서 <교회의 기초가 되는 사람들이 오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었다.

그런데 아직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

 

나는 아직도 교회개혁을 꿈꾸고 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 임하는 꿈을 꾸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랑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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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183.109.98.59)
2013-01-30 19:54:51
허종목자님 사랑합니다.
허종 목사님,
목사님이란 허물을 벗어버리세요.
허종 형제님,
이제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이런 말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지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목사님이면
그 지역에서 존경을 받을텐데
아마 허종 형제님이 그 지역에서 존경을 받을 것 같습니다.
아마 허종 형제님의 성품은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것 같습니다.
우리들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 말입니다.
십일조를 내지 않아도, 성전건축헌금을 내지 않아도,
새벽기도회에 나오지 않아도
김**목사처럼 저주하지 않고
우리들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 말입니다.
사랑합니다. 허종형제님
허종형제님을 바라보는
이 땅의 삯꾼목사들은 한없이 형제님이 부러울겁니다.
형제님이 바로 목자입니다.
양들을 사랑하는 바로 목자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랑합니다.
리플달기
8 2
참빛 (24.141.4.52)
2013-02-06 01:52:33
허종 목사님만 같은 목사 대한민국에 10%만 있어도 기독교는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텐데요..

그런데, 왜 이런 목사님은 안풀리시는가?
가짜 목사들은 노련하게 교인들 속여 등쳐먹고 있는데...
리플달기
1 2
새날 (121.131.116.48)
2013-01-29 07:06:42
황기+닭
코피를 흘리는 아내를 위해, 중간 크기의 닭 한마리를 사고, 황기라는 약재도 사서, 닭을 푹 삶아 먹게 하고, 그 물에 황기를 고아 마시게 하세요. 그러면 코피는 나지 않을 겁니다.

사랑은 감정 + 실천입니다.
리플달기
6 2

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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