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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뱁티스트 친구들과의 대화 (새기운)
최덕효  |  vinov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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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01월 11일 (금) 20:19:29
최종편집 : 2013년 01월 11일 (금) 23:20:18 [조회수 : 2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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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글] 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새기운) 전영철 대표는 2012년부터 재세례파 교회인 예수촌교회(춘천시 후평동 소재)와 온·오프라인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나뱁티스트(Anabaptist)는 흔히 '재세례파'로 알려진 급진적인 기독교 개혁파의 하나로, 16세기 이래 초기교회의 삶을 이상으로 삼으며 박해 속에 비폭력 평화주의 운동을 해온 소수 교파이다. 전 대표는 특히 재세례파가 국가의 강요나 국가의 법에 지배 받지 않는 신자들이 구성원이 되는 공동체 지향성을 갖고 있는데 주목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 1월 7일자 당당뉴스에 실린 『아나뱁티스트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2012 송년사)』(재세례파 교회 게재)에 대한 그곳 교인과의 대화이다. 새기운 전영철 대표는 ’새기운‘으로 아나뱁티스트 000님은 ’아나뱁‘으로 표기한다. 

아나뱁티스트 친구들과의 대화 

[새기운]

신앙을 밑뿌리로부터 뒤흔들 수 있는 이 같은 나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삶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오랜 시간 뒤에, 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에 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일찍 나의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근본적인 도전입니다. 예수 안에는, 바울과 그 후계자들이 발전시킨 기독교라는 종교적 요소가 전혀 없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는, 기독교라는 종교만으로 다 채울 수 없는 또 다른 가능성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기독교에 큰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는 기독교에 크게 감사하면서 그 기독교마저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 의무가 주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적 영성과 사회적 변혁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삶의 길을, 이것이 내가 몸담고 있는 <새기운>에서 <영성과 혁명이 하나되는 운동>이라 표현하고 있지만, 오늘의 세계에 빛을 던질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다시 처음교회이전의 예수에게서 찾을 수는 없을까요?

이 글은 2013년의 새해를 맞으면서 드리는 아니, 어쩌면 내가 아나뱁티스트를 만나서 드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도전>의 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만날지, 이것으로 끊어질지 모르는 아나벱티스트 형제자매님들 위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관련 최근 추천 도서:
* Christianity After Religion: The End of Church and the Birth of a New Spiritual Awakening / Diana Butler Bass /  February 14, 2012  / HarperOne.
*예수를 교회로부터 구출하라 / 로빈 마이어스 지음 / 김준우 옮김 / 2012년 12월 20일 / 한국기독교연구소

 

[아나뱁]

글 감사합니다... 처음 예수(의 운동)을 따르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목표이겠지요... 그 처음 예수 운동을 어떻게 그려내느냐가 중요할 텐데요... 거기서 다른 입장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역사나 전통이 주는 부정적인 면도 많지만, 실제로 저희가 신앙을 갖게 된 길을 따라가 보면 사실 역사와 전통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고 봅니다...

다이아나 버틀러 바스나 로빈 마이어스의 책이 말하려고 하는 것이 결국 복음서나 바울의 서신들 마저도 이미 예수를 종교화 시킨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신뢰할 만한 자료들은 비기독교권에서 쓰여진 것들만이 유의미한 자료들이 되지 않을까요...?

정성드려 쓰신 글에 긴 답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일단 답변을 짧게라도 드려야 할 것 같아 짧은 생각을 먼저 올립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주신 질문을 내면에 묵히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새기운]

'처음 예수(의 운동)을 따르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목표이며 그 처음 예수 운동을 어떻게 그려내느냐가 중요하다'는 님의 말에 공감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의지하며 몸담아왔던 가장 소중한 전통을 되돌아보며 행여 떨어 질까봐 꼭 붙들고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마워해도 부족한 데도, 오히려 그것을 경계하고 애써 허물며 그것도 모자라 대들보를 들어내고 주춧돌까지 파내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상대를 제거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배타적인 존재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소명으로 알고 헌신하고 있는 상반된 일을 통해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상보적인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다만 하나님 한 분을 제외하고는 궁극적으로 신뢰할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점에서 복음서나 바울서신도 예외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복음서나 바울서신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나아가서 비기독교권에서 쓰여진 것들만이 유의미한 것은 더욱 아니겠지요. 탐구자들이 해낸 성과란, ‘복음서나 바울서신까지도 절대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일 것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그동안 복음서나 바울서신이 너무 절대화되어왔다!’ ‘예수조차도 지나치게 절대화되어왔다!’는 것을 고발하고 증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진리보다 기독교의 교리가 우선한다고 믿고 고집하는 대신, 진리 앞에, 어느 누구보다 먼저 무릎 꿇고 고개 숙일 줄 아는 자, 그게 바로 그리스도인임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성전안 지성소에 모셔진 절대화된 수많은 우상들 때문에 정작 모셔야 할 하나님의 존전은 텅 비어 있다!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에 화석화된 허수아비에 불과하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기독교권 내외를 불문하고 진리탐구에 헌신한 모든 자료들은 중요하며 유의미합니다. 그중에서 복음서나 바울서신은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가 누구이든, 하나님 이외의 것을 절대화하고 우상화하는 일을 타파하고 하나님을 제자리에 모시는 일일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많은 무리들의 생각과는 달리, 예수는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막10:18; 눅18:19) 어느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이 깊이 새기고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24시간 불을 밝혀놓고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는, 결코 잠들지 않는 파수꾼이어야 한다고 말해도 될까요.

예수를 주체적으로 하나님처럼 믿고 따르는 믿음을 가지되 결코 공개적으로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양식을 가진 자, 그것은 밝아오는 새해에 지녀야 할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아나뱁]

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 이외의 것을 절대화하고 우상화하는 일을 타파하고 하나님을 제자리에 모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겠지요...

제 신앙에서 성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도구입니다... 결코 하나님과 대치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성서는 다른 자료들과는 비교우위를 갖는다고 믿습니다... 전통과 역사의 시험을 지나 온 신앙공동체의 고백이기 때문이지요... 그 성서를 통해 제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분이 누구신가를 구체적으로 알고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그 하나님을 계시하시는 완전한 계시요 그러한 완전한 계시가 가능한 것은 그 분이 하나님일 때 가능하다는 것이 계시의 법칙이라고 봅니다...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공개적으로 부르는 것과 남에게 강요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새기운]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앙,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어있는 분을, 또 한 사람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대화요, 불손하고 교만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 뿐이시요, 온전한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한쪽이 주장하면 '옳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는 그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라고 또 한 사람은 대꾸하기 마련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분, 자신이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 분은 결코 다른 분이 될 수 없는 거죠.

나는 언제부턴가 “사랑이란 상대편이 지니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계없이, 그가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을 나도 소중히 여기는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저의 무례한 이야기에 성실한 대답으로 대화에 응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도 님과의 대화는 여기까지이며, 저의 무례함에 분노하지 않고 대해주신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한 사람의 진정한 신앙고백에 시비를 걸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 데도 없습니다. 나는 끝까지 충실하신 님의 신앙고백에 경의를 표하고 존중하며 감동을 전합니다. 불충분한대로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끝까지 베풀어주신 님의 관용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나뱁]

부족한 사람과 말씀 나눠주신 것에 제가 오히려 감사를 드려야지요...

어떻게 하다보니 제 신앙고백이 되어버려 대화가 진전되기에는 어려움이 생겼네요... 어째 튼 거기까지가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신앙의 연계점인 것 같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다시 감사드립니다...

 

[새기운]

세상에는 아름답고 존경스런 일이 많지만, 신앙 문제에 서로 일치하지 않는 다른 생각,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공경하는 일만큼 아름다운 일도 드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다분히 감성적으로, 때로는 경험적으로 자리 잡게 된 신앙이 나아가서 지성에 의해서까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신앙의 길을 함께 가는 동료들일 겁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신앙이 온전하다고 자랑할 수 없고, 또 주장하려 하지 않는 도상의 나그네들입니다.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변화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 그 눈부신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중심에 불변하는 중심이 버티며 감싸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변화와 불변하는 중심, 우리는 그중의 어느 하나가 없어도 당장 숨 막혀 질식해버리겠지요.

급변하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  중심을 잃지 않는 일, 중심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 중심을 끊임없이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드러내는 일, 나만의 중심이 아니라 보다 많은 존재들, 모든 존재를 함께 아우르고 있는 우주의 중심! 실재하는 그 중심을 내 의식이 따라잡고 깨닫기 위하여!  나만의 작은 중심에서 벗어나 보다 넓고 큰 우주의 중심에 이르기 위하여! 지상의 더욱 많은 사람들이 함께 숨쉴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하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세워진 벽보다 더욱 완고한 자신의 벽을 넘어서 손에 손잡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아니 나부터 겹겹히 쌓인 나의 벽부터 허물어가는 새해가 되길 기도합니다.

무슬림과 그리스도인 사이를 가로 막으며 무수한 피바람을 몰고 오고 있는 장벽은 아랍인들을 둘러싸고 있는 가자지구의 안보의 장벽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시적인 장벽을 넘어, 서로간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종교상 신앙고백의 차이에 관계가 있습니다.

내가 만난 아랍인들마다 기독교의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보았습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그들의 하나님과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같다 하였습니다. 무슬림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사탄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섬기는 이상으로 마호멧을 높이 섬기고 있지만 그들은 결코 마호멧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엄격하게 신의 사도라 말합니다. 그들의 경전 쿠란은 예수를 무시하기는커녕 마호멧과 같은 서열로 존경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아나벱티스트가 부단히 추구해 마지않는 고귀한 <평화>의 노력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 우리가 믿으며 찬양하고 있는 하나님을 새롭게 이해하는 일이며, 무엇보다도 이 중심의 반경, 그 깊이, 그 높이를 새롭게 하는 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기독교인들만의 하나님인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인가. 예수 또한 기독교의 딱지가 붙은 기독교인들만의 전매품인가.

이제는 하나님을, 또한 예수를 기독교인들만의 성곽 안에, 소위 그들이 말하는 지성소 안에 더 이상 묶어두지 않고, 그에게 관심을 갖는 모든 이에게, 만인의 품에 돌려드려야 할 때가 이미 지나고도 남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2013년은 이제까지 우리가 섬겨왔던 하나님에게 충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에 다시 두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마치 처음 뵙는 하나님처럼, 이제까지 몰랐던, 하나님을 새로 만나는 경이로운 변화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글쓴이 소개] 전 영 철 
  

   
 

 

 

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새기운) 대표, 우석대학 명예교수(영문학), 마음사랑교회 목사. 
전영철은 2011년 5월, 인류의 역사에서 제국주의 기독교의 시발점이 된 1차 니케아공의회(325년)를 현지 답사차, 공의회가 열렸던 오늘날의 터어키 이즈닉(Iznik)을 방문했다. 전영철은 니케아공의회에서 비롯된 종교적·정치적 야합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종교간 적대를 극복하기 위해 진보적인 기독교인·무슬림·유대교인들과의 진솔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으며, 이를 위해 2011년 11월에는 메카 순례(Hajji)에도 참가하는 등 국내외 무슬림과도 직접 대화를 진행 중이다. 아울러, 불교에서 세상을 보는 관점인 인드라망 정신을 변혁적인 원형의 예수정신과 연계하여, 가난한 이웃들이 스스로 그 사회의 주체로 성찰하고 네트워크화 할 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보고, 이에 부합하는 새로운 사회운동과 참된 종교운동의 하나됨을 제안하고 있다. 

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 (새기운) 
http://newchristianity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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