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철지난 영화 이준익 감독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보면서 ‘5·16’과 ‘12·12’가 저절로 떠오른다.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고, ‘실패한 쿠데타는 반란’이라는 설도 이미 퇴화된 이즈음, 아직도 그렇게 혁명과 반란을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는 여럿 있다. 아니 판을 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들은 이 영화를 좀 봤으면 좋겠다. 강추! 강추!

‘정변, 반란, 난’ 모두 같은 말이다

사전을 뒤져봤다. <두산 백과>는 ‘5·16 군사정변’을 이렇게 적고 있다.

▲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포스터

또, <위키 백과>는 ‘12·12 군사반란’을 이렇게 적고 있다.

“‘12·12 사태’라고도 하며,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정병주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등을 체포한 사건이다.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 소장은 12.12 군사 반란으로 군부 권력을 장악하고 정치적인 실세로 등장했다. 이후 1980년 5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는 5·17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사실상 장악했고, 5·17 쿠데타에 항거한 5.18 광주민중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전두환은 8월 22일에 육군 대장으로 예편했고 1980년 9월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이 됐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소재인 ‘이몽학의 난’은 <두산 백과>가 이렇게 말한다.

“1596년(선조 29) 충청도 홍산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란.1596년(선조 29) 7월 종실(宗室)의 후예로서 속모관(粟募官) 한현의 선봉장인 이몽학은, 그가 조직한 동갑계 회원 700명을 사주하여 임진왜란 후의 대기근으로 굶주린 농민을 선동해서 홍산에서 반란을 일으켜 현감을 가두고 이어 임천을 함락하였다. 농민은 '왜적의 재침을 막고 나라를 바로잡겠다'는 반란 명분에 크게 호응하여 삽시에 수천의 무리를 이루어 정산·청양·대흥을 휩쓸고 서울로 향하던 도중에 홍주를 공격하였다. 홍주목사 홍가신은 민병을 동원해서 이를 반격하는 한편, 이몽학의 목에 현상금을 걸어 반란군의 분열을 꾀하였다. 이몽학의 부하 김경창과 임억명은 전세가 불리함을 느끼고 이몽학의 목을 베어 항복하였으며, 면천에서 형세를 살피던 배후의 인물 한현도 체포되어, 1개월이 못 되어 반란은 평정되었다.”

‘5·16군사정변’이 ‘혁명’이라는 공영방송

위 두 사건은 근자에 일어난 성공한 반란에 대한 내용이고, 뒤의 하나는 한참 전 이야기로 성공하지 못한 반란의 이야기다. 내가 보기엔 ‘5·16 군사정변’이든, ‘12·12 군사반란’이든, ‘이몽학의 난’과 전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나름 대전제가 있었다. 혼란한 정국과 부패한 정부, 무능한 정권, 사리분별 못하고 정쟁과 사리사욕에 얽혀 있는 정치인들, 뭐 이런 게 그런 반란을 일으키는 빌미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그럴 듯한 반란의 이유가 되는지는 몰라도, 이런 빌미들이 전혀 반란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설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도 나라를 위하여 일어난 구국의 혁명이었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사설(邪說)로 국민을 현혹하는 무리들이 꽤 많다. MBC는 지난달 20일 박근혜 당선인의 소식을 전하면서, 고 박정희 전 대통령 곁에 있는 당선인을 비추면서 바탕화면으로 ‘5·16 군사혁명’이란 글자가 선명한 탱크로 가득 메운 서울의 거리 사진을 깔았다. ‘5·16 군사정변’이 정론이거늘 어찌 공영방송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 MBC는 지난달 20일 박근혜 당선인의 소식을 전하면서, 고 박정희 전 대통령 곁에 있는 당선인을 비추면서 바탕화면으로 ‘5·16 군사혁명’이란 글자가 선명한 탱크로 가득 메운 서울의 거리 사진을 깔았다.(MBC 화면 갈무리)

‘내 편’이냐, ‘네 편’이냐, 그것만 문제?

난 그들의 얼굴에서 오늘날 정치한다는 이들의 면면이 겹쳐지는 것을 애써 외면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다.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원회에 든 사람 중에 거친 입을 가진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똑 같은 사람인데 이렇게 다르다.

그 입 거친 장본인 윤창중 대변인이 지난 달 17일자 칼럼 ‘더러운 야합 문철수 이‧심 나눠먹기 정권’에서는 "정말 더러운 시궁창 세력"이라며 야권진영을 맹비난했다. 다른 칼럼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후보에 대해 "종북좌파 특유의 가증스러운, 저 구역질나게 하는 표정들, 예의라고는 십 원어치도 없는 몰예의, 거침없이 쏟아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레토릭(수사학)"이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반면 대선 직후인 21일자 칼럼 ‘대통령 박근혜를 말한다’에서 박근혜 당선인을 "국민에게 ‘박정희+육영수의 합성사진’을 연상키시고도 남을 만큼 대쪽 같은 원칙과 책임의 정치, 그러면서도 차고 넘치지 않는 정치를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내 편은 무조건 ‘Yes, Ok!’ 네 편은 무조건 ‘시궁창’이니, ‘가증스런’이니, ‘구역질’이니 하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해댄다. 이런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변인이다. 내 편이면 ‘반란’이 ‘혁명’이 된다. 정변을 일으킨 자가 원칙과 책임의 정치를 한 대쪽 같은 애국자가 된다.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그런데 이게 대다수 국민의 눈에는 다 보이는데 왜 정작 같은 편은 보이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그놈의 꿈이 문제다

▲ 결국 견자는 왕이 버리고 떠난 텅 빈 궁궐에서 이몽학과 맞닥뜨리고 둘이는 칼싸움에 돌입한다. 일단 그 장면이 시원하다.

그러나 이몽학은 왕이 되려는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로 결심하고, 반대하는 황정학과 결별한다. 물론 오랜 연인인 백지(한지혜 분)도 버린다. 꿈을 위하여, 야망을 위하여, 분연히 일어나 궁궐을 향해 질주한다. 가로막는 자는 즉시 처단한다. 세도가 한신균 일가를 몰살시키면서 파죽지세로 세를 불리고 무장을 하고 야망을 위하여 거침없이 전진한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한신균의 서자 견자(백성현 분)는 이몽학의 친구였지만 꿈이 달라 헤어진 황정학과 한 팀이 되어 이몽학을 추격한다. 그러다 기생인 이몽학의 연인 백지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의 말이 견자의 마음을 찢는다. 견자는 이몽학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면서 던진 말, “넌 꿈이 없잖아!” 이 말은 아버지로부터 어릴 때 자주 들었던 말이다.

왜구의 침입과 지독한 파벌 싸움으로 국운이 기울어가던 16세기 조선의 왕좌를 노리는 게 꿈이라? 뭐, 꿈이라면 꿈이다. 그런데 그 꿈이 없어 이몽학을 이기지 못 할 거라는 거다. 그 말에 영화를 보는 내가 다 화가 났다. 그 개인의 꿈 때문에 벌어진 오욕의 역사를 바르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 세상에서 같이 살고 있는 국민이니 말이다.

몇 명이나 더 그놈의 왕이 되고자 하는 개인적 야망 때문에 이 나라가 핏빛으로 물 들어야 한단 말인가? 대한민국 수림 후 둘도 모자라서 이제는 그런 인물들을 미화하며 더 많은 검은 군화발자국을 사모해야 한단 말인가. 그들의 꿈 때문에. 나는? 너는? 어찌 되어도 좋단 말인가? 은근히 꿈 없는 견자가 무엇을 해주길 바랐다.

결국 견자는 왕이 버리고 떠난 텅 빈 궁궐에서 이몽학과 맞닥뜨리고 둘이는 칼싸움에 돌입한다. 일단 그 장면이 시원하다. 그놈의 잘난 꿈쟁이와 그런 꿈이 없는 이가 대결한 것이니까. 누가 이기고 지고는 그리 문제될 게 없다. 누가 먼저 죽고 나중 죽느냐의 차이만 있을 터이니까. 굳이 편을 들라면 당연 왕 될 꿈이 없는 견자 편이다. 그리고 ‘구르믈 버서난 달’인 이몽학은 견자의 칼에 졸렬하게 죽는다. 이어 견자도 일본군의 조총을 맞고 쓰러진다. 정말 장렬하다.

1996년 '대한민국 만화문화대상 저작상', 2004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의 책 100' 등에 선정 되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은 박흥용 화백의 원작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 이렇게 시원한 액션과 함께 그런 개꿈을 꿔보지 않는 대다수 국민들의 가슴에 얼음냉수를 제공한다.

감독 이준익/ 황정민, 차승원 주연/ (주)아침, (주)타이거 픽쳐스 제작/ SK 텔레콤(주) 배급/ 상영시간 111분/ 2010. 4. 28.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