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분, 2시간 38분, 이 시간에 인생과 종교, 선과 악, 죄와 구원, 법과 사랑, 뭐 이런 무거운 주제들을 다 다룰 수 있을까? 그렇다. 감히 영화 <레미제라블>은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것도 영화의 대부분이 대화로 된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노래로 짜인 뮤지컬 영화에서 말이다. 아마 빅토르 위고의 고전 <레미제라블>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장발장’이란 이름은 들어 보았으리라. 바로 그 장발장(휴 잭맨 분) 이야기가 영화화 한 것이다.

▲ 영화 <레미제라블> 포스터

▲ 판틴이 죽었으므로 좀 늦긴 했지만 그녀의 딸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 분)를 딸로 키우며 자신을 속죄하는 장발장, 그는 자베르 같은 인간에 의해 조종 받지 않는다.

끝도 없는 독설들이 교회 강단에서 울려 퍼진다. 대개는 너무 유명하여 이름을 대면 다 아는 교계인사들이다. 의견을 같이 하지 않으면 무찔러야 하는 적이다. 이들의 말은 극도로 폐쇄적이다. 폐쇄언어는 들으면 들을수록 반대의견을 가진 이들을 분노하게 만든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폐쇄언어는 버려야 한다. 그 말이 나오는 언어적 사고가 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닫힌 마음에서 폐쇄언어가 나온다. 이는 종교적 바리케이드다. 그렇게 높은 담을 쌓아놓고 누구를 구원한단 말이냐. 누구에게 죄인이 어떻고 저떻고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이냐.

종교적 바리케이드를 치고 나오지 못하는 자베르 경감, 그가 한국교회에 득실거린다. 장발장은 무서운 놈이고, 죄인이고, 잡아 처넣어야 할 놈이고, 적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거기에 쏟아 붓는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장발장을 좇는 데 인생을 건다. 그게 법이기 때문이란다.

가끔 나는 끔찍한 전도를 받을 때가 있다. 그들의 슬로건은 섬뜩하다 못해 밤에 가위 눌릴까 걱정이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펄펄 끓는 지옥, 활활 타는 지옥” 지옥을 강조하는 전도구호다. 충격요법으로 사람을 구원하겠다는 심사가 깔려 있는 걸 왜 모르랴? 그러나 그렇게 하여 예수님의 품 안에 안기는 이들보다는 영화의 신부나, 장발장 같은 이들의 헌신적이며 변화된 삶을 본받아 예수님 품으로 오는 이가 더 많으리라. 종교적 바리케이드는 빨리 거두는 게 현명하다.

자살로 끝난 종교적 신념

자베르 경감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의 바리케이드를 굳건히 세우고 충성을 다했던 사람이다. 오늘날 강단에 대형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언어적 도발을 불사하는 교계인사들이라고 다르랴. 대단한 확신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게 확실하다고 본다. 영원한 신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잔혹한 현실은 한밤중에 천둥소리를 내며 들이닥쳤다’는 판틴(앤 헤서웨이 분)의 노래, ‘I Dreamed A Dream’에 자베르 같은 종교적 신념주의자가 어떤 힘을 줄 수 있으랴?

판틴이 죽었으므로 좀 늦긴 했지만 그녀의 딸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 분)를 딸로 키우며 자신을 속죄하는 장발장, 그는 자베르 같은 인간에 의해 조종 받지 않는다. 차라리 자신에게 촛대까지 내어주며 선물이라고 했던 신부의 하나님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죽일 수 있는 기회에서도 장발장은 자베르를 살려 놓는다. 그게 바로 그가 배운 종교다. 그가 배운 사랑이다. 그가 배운 신앙이다. 오늘날 교회도 그렇게 가르친다. 그러나 자베르가 더 판을 치니 한심하다.

프랑스 혁명기의 혼란함에도 불구하고 장발장의 종교적 삶의 기저에 깔린 사랑과 용서의 가치는 암울해서 더욱 가치를 발한다.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죽음도 종류가 있지 않을까. 더더욱 신앙인의 죽음은. 종교적 신념이 탁월한 자베르 경감의 자살은 극도로 극화된 인위적 면면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자명하다. 그래도 자베르에게 점수를 주고픈 것은 그가 고민한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고민은커녕 자신의 종교적 신념의 구덩이에 빠져, 바리케이드를 더욱 드높이는 인간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지 않는가.

▲ 혁명가 마리우스(에디 레드메인 분)를 사랑하는 판틴,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농익을 즈음, 형명가들의 바리케이드는 가로를 뒤덮는다.

바리케이드 위에서라도 합창을

혁명가 마리우스(에디 레드메인 분)를 사랑하는 판틴,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농익을 즈음, 형명가들의 바리케이드는 가로를 뒤덮는다. 그들이 바리케이드 위해서 부르는 ‘민중의 노랫소리가 들리는가’(Do you hear the people sing)는 혁명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대미를 장식할 만하다. 그 바리케이드가 종교적 신념하고는 무관하기에. 차라리 나라 사랑의 열정이기에. 혁명의 성공 여하를 떠나 그들의 열정은 장발장이 가진 진리의 가치와 맞먹는다. 정부군과 혁명군이 함께 부르는 노래, 프랑스국기와 혁명군기가 같이 나부끼는 바리케이드 위에서 그들은 하나가 된다.

세계 최고의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무르익어 영화화 되었다. 역시 그 스펙터클한 장면은 뮤지컬이 흉내 내지 못할 듯. <킹스 스피치>의 톰 후퍼 감독과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가 만나며 웅장한 스케일의 영화 <레미제라블>이 탄생했다. 뮤지컬 영화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은 라이브가 전개되면서 현실감이 되살아난다.

뮤지컬과 영화의 만남, 바리케이드가 여전히 쳐져 있지만 그 위에서 함께 부르는 합창, 사상과 생각과 종교와 정치를 아우르는 함성, 그런 걸 우리에게서도 기대해도 될지. 뮤지컬이 영화를 만나듯, 더 웅장한 스케일로 바리케이드 위에서 합창을 부르고 싶다. 한 편이 자살로 끝나는 그런 영화 말고, 그저 손에 손을 잡고 진리를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희망인 그런 노랠 부르고 싶다. 바리케이드가 사라진다면 금상첨화고, 그렇게 아니 되어도 하나인 노래를 부르고 싶다.

감독 탐 후퍼, 휴 잭맨, 러셀 크로우 주연, UPI 코리아 배급, 상영시간 158분, 2012. 12. 18.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