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에 버스를 타고 오면서 스마트폰 뉴스앱을 통해 한 기사를 보고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한겨레의 기사로 제목은 ‘VIP·상(上)·어른…이명박 대통령 지칭’이었다. 내용은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칭할 때 VIP, 어른, 어르신, 주군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방통대군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 말은 청와대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전제군주 시대의 임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며 청와대가 스스로를 왕실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군이라는 호칭은 왕위를 세습하지 않는 왕의 아들을 지칭하는 말이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특징을 한 단어로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불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 같다. 아무리 국민들이 여론을 형성해서 대통령에게 말해도 도무지 들어 먹지를 않았고 마지못해 듣는 척을 해도 머지않아 전혀 듣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청와대가 혹은 스스로가 대통령이 아니라 임금으로 위치를 규정했기 때문이었다고 추측할 수가 있다.


민주주의국가에서 대통령은 전제군주국가의 임금, 왕과는 매우 다르다. 민주주의의 대통령은 국민의 투표에 의해 선출되는 직위로 영구적이지도 않고 또 독단적일 수도 없다. 반면 왕은 법 위에 군림하면서 그 자신이 법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굳이 백성의 요구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고 소통할 필요도 없다. 대통령은 국가수반이기는 하지만 공무원으로서 국민의 종복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절대권력이 있을 수 없고 국민에 의한 위임을 전제한다. 이런 전이해를 바탕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공직자들을 바라보면 분명 그들은 대한민국을 민주주의국가가 아니라 전제군주국가 정도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대통령이 국민 위의 어른일 수 있으며 국가기관의 장이 대군일 수 있겠는가? 물론 국가의 수반이기에 국민들이 보내는 존경과 인정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입이나 자기 측근의 입을 통해 발설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목사들이 자신의 직위를 영어로 쓸 때 종종 ‘Rev.(Reverend)’ 라는 표기를 쓴다. 이는 ‘숭배할만한’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자기가 자기를 ‘존경할만한’ 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소개한다면 그게 얼마나 민망하고 웃기는 일인가! 그래서 스스로를 소개할 때는 ‘Pastor’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타인이 존경심을 담아 목사를 부를 경우에만 ‘Rev.’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청와대는 이런 민망한 일을 스스럼없이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VIP라는 호칭도 문제가 있다. 이미 몇 차례 언론을 통해 장관이나 청와대 직원들이 대통령을 VIP 혹은 VVIP로 지칭하였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매우 중요한 혹은 매우매우 중요한 인물로 불려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대통령, 좋은 청와대의 직원들이라면 대통령이 VIP 혹은 VVIP가 아니라 국민을 VIP 혹은 VVIP로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대한민국을 전제주의국가의 왕과 왕실로 자기규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이 대통령이 보여준 국민 위에 군림하고,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였던 행보가 인정은 못하겠지만 이해는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직원들에게 충성서약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충성서약이라고 하니 더욱 기가 막힌다. 국무총리실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모든 직원이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겠다”는 충성서약을 작성해 제출하였다고 한다. 정치권에서 사용되는 충성이라는 단어의 느낌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목숨 걸고 라인 혹은 정당의 주장에 따르는 것”이다. 그러니 직원들의 충성서약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양심을 배제하고 4대강 사업이 옳건 그르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정당하건 그렇지 않건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으로 발현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전제군주 시대로 돌아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무슨 사무라이 정신도 아니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스스로를 임금이나 왕으로 규정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 마냥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여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역시 이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올해 연초에 출판된 책 중에 전여옥 전 의원의 책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박근혜 후보와 관련된 내용을 보면서 이 역시 스스로를 공주나 여왕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아주 사소한 일조차도 다른 누군가가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관련기사를 발췌한다.

“경상북도 대구에서 있던 행사로 기억된다. 그날 앞쪽에는 박근혜 당시 대표가 앉아 있었고 바로 뒷줄에는 나와 대구 경북 지역의 의원들이 줄줄이 앉아있었다. 그런데 비가 주르륵 내리기 시작했다. (중략) 옆에 있던 김태환, 이해봉 의원이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전 대변인 뭐하고 있나? 대표님 머리 씌워드려야지’. 순간 나는 당황했다. 아니, 자기 우비의 모자는 자기가 쓰면 되는 것 아닌가? (중략) 박근혜는 내가 씌워주기를 기다렸다. (중략) 나는 박근혜 대표 커다란 올림머리가 비에 젖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우비모자를 씌워주었다. 박근혜 대표는 여전히 한마디도, 미동도 없었다.”

이 외에도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햄버거를 먹는데 먹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포크와 나이프를 갖다 주니 그제서야 먹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그렇다.


박근혜 후보에게는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으니 공주, 여왕이다. 수첩공주, 그네공주 등등이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에게 공주라는 호칭을 붙이는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통령 후보도 텔레비전 토론에 나와서 박 후보를 여왕이라고 지칭했다. 물론 호사가나 반대파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단어이기는 하지만 그 호칭에 대해 대두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박근혜 후보에 대해 여당에서조차 불만스럽게 나오는 말이 ‘불통’이라는 것이다.

전 전의원의 책에는 이런 대목도 나온다고 한다.

“김무성 의원도, 진영 의원도 친박의 울타리를 떠났다. 이 두 사람은 박 전 대표에게는 매우 중요한 그리고 가까운 인물들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김무성 원내대표는 ‘2인자’를 두지 않는 박 대표와의 미묘한 갈등 속에서 떠났다. 진영 의원도 ‘친박으로서 충성도 부족’이라는 질타를 견디지 못해 떠났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박근혜 의원을 신격화해도 모자라는데 우습게 본 사람들’이란 다른 친박 의원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결별선언을 했다.”

박근혜 후보 역시 충성이라는 봉건주의적 이념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일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와 충성이라는 단어를 매칭하니 다까끼 마사오의 충성서약이 떠오른다. 박 후보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대통령이 일본군대에 들어가며 혈서를 써 충성서약을 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충성서약은 피로써 충성맹세를 했던 아버지를 둔 박 후보에게도 역시 중요한 덕목일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의 공통점이 세 가지가 생겼다. 전제군주 시대의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과 불통, 그리고 충성요구! 불행하게도 이 세 가지는 민주주의의 반대개념이다. 민주주의는 전제주의와 봉건주의라는 구세대적 산물을 극복하고 봉건영주, 전제군주와 피 흘려가며 싸워 얻은 인류의 가치이다. 그런데 그런 가치들이 오늘 대한민국의 중심 한 가운데서 활개를 치고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좌지우지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이명박, 박근혜, 새누리당을 수구보수세력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이 이미 그들의 삶, 그들을 둘러싼 이들의 삶의 태도에서 너무나 극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자에게 결론은 자명하다. 과거로 회귀하여 충성맹세를 하면서 임금을 모실 것인가, 아니면 보편적 인류가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할 것인가? 귀 있는 자는 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