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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이유를 망각한 한국교회-건물도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한다.
김택규  |  petertk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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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년 12월 03일 (월) 18:25:11
최종편집 : 2017년 11월 11일 (토) 21:00:10 [조회수 : 5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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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터넷에서 ‘우리나라 교회들’이란 제목으로 실린, 한국의 몇 대형교회 건물들 사진을 보았다. 산을 깎고 대지를 조성해 세웠다는 분당 할렐루야교회는 반(半)계란 형태의 ‘돔’(dome) 비슷한 스타일로 웅장하게 지었는데, 교회건축 역사에 남을 하나의 기념비적 건물로 보인다. 언덕위 주위에 녹색 조경이 멋있게 펼처저있다. 내부공간의 화려함도 대단한 모습이다. 이런 현대식 교회건물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것 같다.

2천백억 이라는 현대 세계 최고의 건축비로 지었다는 서초동 사랑의교회 건물은 이미 유명해저있다. 지하철 입구가 교회입구로 개조될 정도로 교회 ‘파워’가 대단한 것 같다.

100억 원대의 녹산교회 건물은 전면에 약 20층에 가까운 거대한 ‘타워’스타일과 그 안에 ‘계란’형태의 건물이 조합된 특별한 건축 양식이다. 사회적으로 소외된자, 가난한자들을 위해 시작된, ‘구세군’의 ‘전도쎈터’건물도 놀랍다. 지상 17층, 지하 6층의 고층 건물인데, 구세군 건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충현교회는 외부가 석재로 된 웅장하게 보이는 전통적 교회건물인데 양측에 ‘고딕’식 첨탑이 하늘높이 올라가 있어 마치 중세교회 건물을 보는듯하다.

#2. 미 캘리포니아 주, 리버모어(Livermore) 시에 유명한 ‘Cornerstone Fellowship' 교회(담임목사, Steve Madson)가 있다. 매주 수천 명이 모이는 이교회는 평범한 단층의 ’사무실 건물‘(office building)형태다. (미국교회는 주일예배 천명 이상이 모이면 대형교회(mega church)라고 부른다.) 그 교회 주위에는 많은 사무실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데, Cornerstone 교회 건물은 그런 주위의 사무실 건물과 별로 다르지 않게 지었다. 외부에 종탑이나 십자가 타워 같은 높은 형태의 부설건물은 하나도 없다.

로스에인젤러스 남쪽 오렌지 카운티에 (한국 목회자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저 유명한 '쌔들백‘(Saddle Back)교회가 있다. 현재 미국 개신교회중 대표적 교회이다. 4년전 대선에서 오바마와 맥케인 후보가 이 교회를 방문하고, 교회 내에서 공식 대통령후보 ’토론‘(debate)을 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교회다. 한데 그 교회 건물은 전혀 웅장하거나 특별하지가 않은 단층 건물이다. 내부도 수수하고 특별한 장식이 없다. 천정은 철골(鐵骨)이 그대로 들어나 있다.

현재 미국에서 제일 큰 교회는 휴스턴의 Joel Osteen 목사의 Lakewood 교회이다. 미국 제일의 교회이지만 한국교회처럼 그 건물이 전혀 웅장하거나 높지 않다. 수만명의 사람을 수용해야하는 ‘체육관’(stadium) 스타일이다.

#3. 왜 한국교회들은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여 교회건물을 크게, 웅장하게, 화려하게, 멋있게 짓는 것일까? 교회들이 돈이 너무 많아서 그런 대형 건물을 짓는 것인가? 금융권에서 발표되는 통계에 의하면 한국교회의 총 부채는 무려 약 9조원에 이른다. 이를 위해 매달 지급하는 이자만도 약 450억 원이라고 한다. 과연 그런 부채를 안고서도 왜 서로 경쟁하듯 웅장한 건물을 건축하는 것인가? 야망에 차있는 건축사들이 어떤 ’기념비적’ 작품을 남기기 위해서 그렇게 설계를 하기 때문인가? 그러나 그 건축사들이 ‘교회건축학’을 제대로 공부하거나 연구한 사람들인지는 모르겠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잘살게 되고, 서울시내에 고층 대형건물, 화려하고 멋을 낸 아름답게 설계된 건물들이 많으므로 교회도 그런 사회적 물량주의 추세를 따라가는 것인가?

#4. 내가 서울 근교의 어떤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교회 주변에는 대체로 서민들이 사는 가난한 동네다. 일반 주택들은 대부분 낡은 작은 집들로 보인다. 한데 골목을 비집고 들어가면 거기 웅장하고 멋있게 지은 교회건물이 들어서 있다. 내부는 대리석 등 고급자재를 썻고, 퍽 화려하게 보였다.

서로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기회가 있어서 한 장로님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이 교회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 살고, 집들도 모두 작은데, 교회만 이렇게 크고 멋있고 화려하면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거나 싫어하지 않을까요?” 이에 대한 그 장로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니오. 오히려 우리 동네에 저렇게 멋있는 교회가 있다는데 대하여 자부심을 갖지요. 교인들도 ‘하나님의 집은 웅장하게 멋있게 지어야 한다’, 또 ‘내가 다니는 교회가 한국에서 ‘제일’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원하므로 오히려 더 좋아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었다.

옛날 중세 시대에는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크게, 높게, 웅장하게, 최고급으로, 화려하게 지어야 한다’는 믿음 아래, 지금 우리가 유럽에서 볼수있는 그런 건축학적으로 아름답고 웅장한 교회건물들이 지어졌었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가 높은데서 군림하며 낮은 세속 세상을 다스리는 ‘권위적’ 상징성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는 ‘높은데서 통치하던 권위주의 체제가 사라진, ‘민주화’된, 자유, 평등의 시대다. 위에서 ‘군림’하는듯하는 형태는 좋아하지 않는다. 해서 현대인들은 건물 형태도 더 이상 웅장하고 화려하고 ‘권위적’인 왕궁 같은 건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건물 앞에서는 자연히 마음에 무언가 위압감, 혹은 위축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의 교회당은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편하게, ‘쉽게’ 드나들 수 있는 형태의 건물이어야 한다.

미국 연합감리교회에서 유명한 예배학교수 제임스 화이트 박사는 “현대 교회 건물은 오피스 빌딩(office building) 건물이나 동네 이웃에 있는 ‘그로서리 상점’(grocery store,식품상점)같은 형태로 낮게 단순하게 지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친밀감’을 갖고, 부담감 없이 교회당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라고 그의 ‘예배학’책에서 주장하였다.

교회는 본디 높은 곳이 아니라, 세상 ‘낮은데’로 내려와, 섬기는(serving) 공동체이다. 따라서 교회건물도 ‘낮아지고’ 겸손해저야 한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지나간 권위주의 시대나, 중세기시대에 건축되었던 유럽의 웅장한 교회 건물을 흉내 내서는 안 된다. ‘백성’들의 수준, ‘백성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 백성들과 거리가 멀었던 유럽의, 오만하게 높게 지어진, 웅장한 건물들은 오늘날 어떻게 되었는가? 텅텅 비거나 박물관으로 전용되거나 심지어 술집에 팔린 건물들도 있다.

한스 큉 교수는 그의 ‘교회론’(The Church)에서, “교회는 ‘첫번 부활절’때부터 ‘파루시아’(Parousia,재림)때까지 서있는 ‘일시적, 종말론적(temporal, eschatological) 존재라고 말했다. 교회는 ’자체의 영광’을 위해서 영구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시적인 교회의 기간’(temporary period)에 교회는 오직 ‘세상을 위한(for the world)'사명을 수행해야 한다고 칼발트는 그의 교의학에서 주장하였다.

토론토에 유명한 ‘People's Church'가 있다. 그 교회는 오랫동안 일종의 가건물인 ’콘셋트‘ 건물을 사용해왔었다. 현재 전 세계에 약 500명의 선교사를 단독으로 지원하고 있는 그 교회의 현관문을 들어서면 바닥에 ’MISSION FIRST'(선교 제일, 먼저)이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막대한 돈을 들여 호화판 건물을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가 ‘먼저’(first)인 것이다.

그 웅장하고 화려한 교회건물들은 ‘누구를 위해’ 그렇게 건축한 것인가? ‘주님’을 위해서? 주님께서 과연 그런 궁전 같은 건물을 원하실까? ‘교인들을 위해서? 교인들이 그렇게 화려한 건물을 바란 것일까? 세상을 위해서? 세상 사람들은 그 건물을 보면서 조롱하거나 분노를 표출하고 있음을 모르는가? 최근 한 일간지(중앙일보) 오피니언 란에 실린 어떤 의사(MD)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유튜브를 통해서 사치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한국 교회당의 모습을 보면서 어안이 벙벙함을 넘어 분노마저 느꼈다. 이지구상에 그토록 화려한 왕실궁정같은 교회가 과연 몇 개나 있을까? 예수께서 지금 지상에 내려오신다면 그곳에 들어가실까?”

한스큉교수의 주장대로 교회는 ‘자체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선교’공동체이다. 교회 건물은 다만 부름 받은(be called) 하나님의 배성들의 ‘예배, 선교, 교육, 친교, 섬김’을 위하여 필요한 공간이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목회자들 자신부터, 그리고 ‘교회건물’에 이르기까지 더욱 낮아지고 겸손해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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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삶니다 (211.218.123.50)
2012-12-31 14:50:01
韓國敎會가 建物을 크게 짓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당신같은 신학을 가르지는 높은 학문과 이론을 갖인 분들의 머리에서 지어지는 건물 즉 마음의 고집 比判의 날센 공격적 즉 唯娥獨存的 사상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남을 피판하기전 나의 양심의 벽 (建築된思考)부터 허물고 말하시요 댱신은 남을 비판하기전 자신의 행위부터 알라 二重假戶籍을 不法으로 만들어서 여동생을 이중결혼 시킨 그런한자가 바로 김목사가 아닌가? 한국교회건축을 너무호화 스럽게 지었다고 비판 하다니 비판을 받지않으려면 남을 비판 하지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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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psoo (112.168.222.133)
2012-12-05 11:11:11
교회 비교가...
목사님께서 비교하신 교회들은 높지는 않지만... 엄청나게 넓지 않나요? 새들백은 3층 이상으로 짓지 않은 대신...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지 않나요?
대부분의 교회들이 한국의 비싼 땅값...그리고 비싼 땅값 대비 효율(?) 얻기 위해 교회를 높이 지을수 밖에 없는 구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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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
개혁본부 (211.247.45.93)
2012-12-03 23:24:02
교회의 세력이 크면클수록 좋지요~
교회 건물좀 크게 짓는게 죄입니까?

그러면 작은교회들/어려운교회들은 매년 그모양 그꼴로 가족에 두어분
예배보거나, 부흥되지않고 교인수가 줄거나 동결되어 예산쓰기 힘드는
그 운영들~ 그게 주님의 영광의 길 입니까?

한가지 아쉬운것은 서로 큰교회 작은교회 주님의 일 "연대" 할 방법들을 모색 하여야지...
흑백논리 잣대로 작은교회는 진리 고 큰교회 는 무조건 진리가 아니다?

열등감으로 사는게 신앙 은 아니지 않습니까?

본부! 뭐하냐! 이런글 보고도! 연봉 다 삭감하고 어려운교회 좀
도와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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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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