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제도라는 것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하다 못해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경우에도 차선, 교통법이라는 제도와 법이 없다면 일대 혼란을 겪을 것이고 생명과 재산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 법이라는 것은 분명 다수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법과 제도라는 것은 항상 새로운 위법사항을 야기한다. 법에서 어떤 행위와 상태를 범죄로 규정하는 순간 그 특정한 행위 외에는 준법이 되는 이상한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법의 이런 상태는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바울도 성서에서 언급하기를 율법이라는 것이 생김으로 죄가 인간에게 들어왔다는 취지의 말한다. 율법이 없으면 죄도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법의 사회적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종종 필요악으로 규정된다.

이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감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사형제도, 사형법이다. 한국은 최근 수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실제적 사형제 폐지국가인가 뭐 그렇게 분류된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사형제를 폐지하느냐 마느냐로 논쟁이 많지만 한국은 사형제가 남용되거나 종종 시행되는 국가는 아닌가보다.
최근에 한 대통령 후보가 성폭력 피해자가 복수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를 보고 사형제도를 언급했다고 한다. 대통령 후보자가 사형제(폐지가 아니라 실제적 부활)를 언급하다보니 정략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적지 않은 비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국가의 수반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사형제데 대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 것이 합당한가의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후보를 가장 긍정적으로 지지하는 집단인 종교, 그 중에서도 개신교 집단의 마인드 역시 진지하게 성찰해 봐야 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엽기적이고 흉악한 범죄가 가끔 일어나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이런 사건에 대해,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 사형을 주어 이 땅에 발을 못 붙이게 하고 일벌백계의 예로 삼고자 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선 사형이라는 것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그 선이 일직선이라기보다는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매우 복잡한 파도문양이 된다. 좋을 때도 있지만 나쁠 때도 있다. 좋을 때야 상관이 없지만 나쁠 때에는 정도를 넘어서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끔찍한 경우라면 처벌을 피할 수 없겠다. 그러나 사회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삶에서 본다면 법적인 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생 후회를 남길만한 과오를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그의 인생이 그걸로 끝이 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과오에 대해 참회하며 새로운 출발을 할 수도 있다. 개인의 문제를 사회로 확대시켜 본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회적인 범죄를 저질렀지만 일정한 처벌을 받는 동안 재기하고 회심할 수 있는 기회가 올지 안 올지에 대한 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조금 과장하면 그런 사람이 크게 변화되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좋은 시민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 심성의 변화를 완전히 차단하는 사형제도는 일단 검토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보수적 입장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개신교일 것이다. 개신교가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매우 궁금하다. 개신교 교리 자체가 사형을 찬성하게 하는 어떤 교리가 존재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교리는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신의 멸절명령에 기초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전멸시켜야 하는 명령이 내려진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 지역에 정착하면서 신은 이방민족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심지어는 짐승까지도 남김없이 죽여 없애라는 명령을 내린다. 또 이스라엘 공동체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풍기문란범에 대해서도 무자비한 사형을 선고한다. 예를 들어 동성연애자에 대한 투석사형제도 같은 것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조항들은 개신교의 중요한 교리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사형의 명령들은 기독교가 아닌 유대교의 중요경전이라 할 수 있는 토라(오경)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구약보다는 주로 신약에 신학과 신앙의 기본을 두고 있다. 무자비한 심판이 아니라 자비로운 용납과 용서, 회개의 기회를 원초적인 교리의 근본으로 삼는다. 간통죄로 끌려온 여인을 향해 불타는 적개심을 보이는 군중을 향해 예수는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고 말씀하신다. 기독교의 교리, 예수의 사상은 죽임이 아니라 살림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성서는, 구약이건 신약이건 끊임없이 주어지는 회개의 기회를 강조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배신에 대해 분노하시지만 그럼에도 기회를 주신다. 예언자들이 대언하는 하나님 말씀의 중심은 ‘지금이라도 돌아오라’는 것이다. 신은 지금 당장 몽땅 쓸어버릴 것 같은 분노를 쏟아내지만 사실 그 분노는 돌아오라는 메시지이다. 신이 그렇게 수천 년을 참고 회심의 기회를 여지로 남겨두었다는 것이 사실 분노보다 선행하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이다.

그런데 왜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기독교 신앙의 정수인 회개의 기회를 부정할까?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지금 여기’만을 전제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지은 범죄가 그 사람의 생사를 좌우할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에 등록을 하지 않은 교인들 가족이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목사들은 그 사람을 찾아가서 죽기 전에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마음에 모실 것을 권면한다. 만약 죽음을 앞둔 사람이 임종 직전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만 하면, 그동안의 모든 죄는 다 용서가 되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목사의 선언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은 평범한 한 사람이나 사회적으로 끔찍한 죄를 지은 흉악범 사형수에게나 다 똑같이 적용되는 원리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회심의 기회가 있는 사람을 인위적인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은 신이 부여한 기회를 인간이 박탈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기독교인이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것은 매우 엄청난 교만이다. 사회적인 범법행위를 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이 원죄의 교리이다. 그리고 그 죄는 사회적인 살인죄나 흉악범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마땅히 죽어 없어져야 할 죄이다. 왜냐하면 그 범죄의 대상이 창조주 하나님, 조물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죄를 무효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역설이 있다. 그 자신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죄인이었고 천만다행으로 신에게 용서를 받을 기회를 얻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범죄에 대해 연민이 아니라 분노하며 당연히 사형을 시켜서 이 땅에서 없애버려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주장하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어리석음이며 교만이다. 기독교인이 함부로 사형제도에 대해서 찬성하지 말아야 할 신앙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사형제도는, 다른 법조항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악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결정적인 오점이 있다. 특히 한국은 이 오점에 관한 선례를 수없이 만들어냈던 역사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혁당재건위 사건이다.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고 가족들도 통보받지 못한 상황에서 불과 수시간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법정은 이 사건과 판결에 대하여 재심을 하였고 그들이 억울한 국가권력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목숨들이 되었다.
민주화가 많이 진척되면서 또다시 이런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안도감은 있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의 역사는 계속 반복한다. 짐승에서 인간으로, 다시 짐승으로 변하는 것이 사실이다. 실수인지 실수를 가장한 고의인지가 문제가 아니라 실수로 인해 천하와도 바꾸지 못할 생명이 죽어 없어지는 아주 작은 가능성조차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형제도의 폐지이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사람이 사형제를 스스럼없이 그 입에 올리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설령 그것이 사회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대통령은 자국의 모범적인 국민들만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일탈적이며 심지어는 범죄를 저지른 국민들까지도 포용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국민은 선택할 수 없는 출생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부여받는 권리이자 의무이다. 대통령이 국민 전체를 그 통치와 봉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것 역시 대통령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대통령은 모범적인 국민들, 다시 말해 자신에게 호의적인 일부의 국민들만을 자국민으로 인정하여 나머지 부류에 속한 이들을 적으로 간주하게 될 것이다. 이게 분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형제 폐지에 대한 주장은 단순한 이상주의자들의 망상과 따지, 아집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그리고 이웃에 대한, 결국엔 자기 자신의 생명에 최소한의 존중이다. 내가 신의 은총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면 어느 누군가도 분명 그 은총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 그 은총이 오늘 필요할지 내일 필요할지 아니면 몇 년 후에 필요할지는 내가 결정할 것이 아니라 신이 결정할 몫이다. 사형제도, 함부로 말하지 말라. 대통령 후보나 기독교인은 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