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들어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공(功)과 과(過)’이다. 세상의 모든 일에 양지와 음지가 있듯이 공과 과는 어쩌면 당연한 이치이자 순리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말이 최근 들어 세간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유는 아마도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와 관련해서 이다. 즉 이번 선거에서 특히(사실은 항상 그래왔다) 쟁점으로 떠오른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한 평가 때문이라는 말이다.
박근혜라는 인물이 실제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별로 드러나지도 않았고 또한 그 자신도 나타낸 적이 없지 않은가 싶다. 그 이유는 그의 아버지인 박정희라는 인물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지금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배경 역시 그 아버지 박정희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사례들을 조명하는 것이 이번 대선에서의 핵심 키워드라고 보는 것은 일부 맞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공과 과를 굳이 따지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 |
 |
|
|
나의 입장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서는 일일이 다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박정희라는 인물은 한국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논쟁적인 존재이다. 만주국 관동군 출신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으며 민주화의 열망으로 들불처럼 일어선 4.19혁명을 밟고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찬탈하였으며 국회를 해산시키고 유신헌법을 통해 장기집권을 꿈꾸다가 측근에 의해 살해되었다. 독재와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동안에 많은 국민들이 억압과 압제를 받았으며 심한 경우에는 형장의 이슬로 허무하게 사라져 가기도 하였다. 요즘 한참 말이 많은 인혁당 사건이나 부일장학회 같은 것이 대표적인 에일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과가 공보다 더 크지 않은가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박 전 대통령의 공은 무엇일까? 박 대통령이 총탄에 스러져간 것은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당시 국장을 치르면서 구청에 빈소를 마련하고 학생들을 동원하여 분향하게 하였는데 나는 당시 반장이어서 앞에 나가 대표로 분향을 했다. 며칠 동안 똑같이 돌아가는 텔레비전의 박 대통령 관련 업적 방송을 본데다가 대표로 나가 분향을 하게 되는 경험을 하다 보니 나는 영정 앞에서 오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슬펐던 것인지 아니면 분위기에 압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로 인해 한국이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는데 그런 소중한 존재를 잃었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마음에 피어올랐다는 것이다. 어린 나에게도 박 전 대통령의 공은 경제발전이었다.
박근혜 후보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꼽는 박 전 대통령의 공은 단연 경제발전이다. 아니, 그것이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중공업을 육성하였으며 새마을 운동을 벌여 단기간에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룬 이른바 ‘한강의 기적’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이해한다. 한반도전쟁 이후 보릿고개를 보내며 근근이 어렵게 살아가던 한국을 밥 먹고 살 수 있는 나라, 수출액 몇 억불로 끌어올린 나라로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현재의 경제상황을 볼 때 이런 능력은 매우 호감이 가는 것이며 과거의 발전상황을 미소를 지으며 추억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그래서인지 독재라는 과보다는 경제발전이라는 공을 더 많이 떠올리며 박 전 대통령을 추억하는 것 같다. 심지어는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독재나 장기집권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을 넘어 오히려 경제만 잘 돌아가게 만들어 준다면 독재를 해도 좋다는 방식으로까지 진행되고 있다. 그만큼 경제발전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공은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의 논쟁일지도 모르겠지만 지난 시기 한국의 경제발전, 한강의 기적의 꼭지점에 있는 것이 정말 박정희인가 하는 것이다. 한민족의 민족성을 우습게 보고 그저 분열이나 일삼는 불평분자들이라고 치부하는 친일식민지사관에 경도된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한민족의 성품을 지도자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바보 천치로 보는 입장에 반대한다. 물론 좋은 지도자가 이끌어 주는 좋겠지만 그것은 그저 하나의 충분조건일 따름이지 필수조건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상과 통치능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통치를 밑받침 해주는 고급 노동력의 원천 국민이 없다면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침 일찍 일이나 마당을 쓰는 것으로부터 하루를 시작하던 근면한 민족성의 국민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경제발전을 이루었겠는가!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헤아리는 지혜로운 국민, 배우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교육열을 불태우고 자녀교육에 열 올리던 국민이 없었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노력은 허공에서 부서질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 경제발전에 대한 치하의 80% 이상은 국민에게 돌려져야 한다. 게다가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 투입된 재정은 결국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이 아니었던가!
비슷한 예가 있겠다. 박정희 시대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는 대기업 재벌들의 그룹 경영이 그렇다. 삼성, 현대니 엘지니 하는 대기업을 만든 창업자 혹은 사주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물론 나도 정주영 같은 이는 대단한 능력과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동의한다. 그러나 마찬가지이다. 과연 그에게 그 회사를 위해 불철주야 야근을 마다지 않고 동분서주 근면하게 일했던 근면하고 고급스러운 노동력이 없었다면 과연 오늘날처럼 굴지의 대기업이 될 수 있었을까? 결단코 아니다!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면 안다. 사주가 구체적인 사업방침을 정하는 예는 별로 없다. 이런저런 기획과 업계 동향을 직원들이 올리면 경영자는 그에 대한 추진을 지시할 뿐이다. 때로는 큰 방향에 대해서 지시하기도 하지만 업계의 전망과 사업방향에 대한 제안 역시 연구원이라는 이름의 노동자들이 한다. 물론 사업비 지출은 경영자가 승인해야 하지만 실제적인 기술개발은 노동자들이 한다. 자기 사업이 망하지 않고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어느 누구나 비슷한 선택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업성공의 실제적인 기여는 누가 하는가? 말할 필요도 없다. 노동자, 국민이다.
저개발국가의 저임금이라는 경제상황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이지 기업총수가 경영을 잘 해서 한국의 기업들이 성장했다는 일방적인 생각이야말로 착각이고 오만이다. 지금도 대기업은 임금이 싼 해외노동력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는 것과 저임금을 강요하기 위해 비정규직 일자리를 줄이지 않고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그럼에도 대기업은 마치 총수가 경영자가 다 잘해서 그런 성공을 이루어 냈다는 착각을 마치 진실인양 선정하고 있다. 기업의 경우에도 성공의 공은 최대 70% 이상 노동자들에게 돌려지는 것이 맞다.
만약 박정희가 경제발전의 필수조건이라면 박정희 사망 이후 한국의 경제는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퇴보했어야 맞다. 그러나 알다시피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통치 당시에도 꾸준하고 괄목할만하게 성장했다. 88년에는 올림픽까지 유치할 정도로 컸다. 그리고 지금도 경제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단지 과거에 비해 세계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기에 국제적 경제난의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다 시장의 수요가 포화상태라는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성장률은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장의 가장 직접적인 동력이 통치자가 아니라 노동을 제공하는 국민들이라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결론이 나온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박 전 대통령의 공은 국민들에게 애국주의적 선동을 하여 적당한 동기를 부여하고 가능한 외국의 자본이나 차관을 빌려오는 정도 이상으로는 생각하기 어렵지 않을까? 사실 바보가 아니라면 어느 누구라도 그런 정책을 폈을 것이다. 한민족의 다른 반쪽 역시 비슷한 길을 걸어왔고 당대에는 남쪽 보다 더 큰 성공을 경험한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그의 공에 대한 과대포장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다면 매우 심각한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국가발전이나 경제발전의 핵심은 국민들의 노동과 노동력인데 과연 박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공로를 인정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박정희는 경제발전의 공로자를 국민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자기의 능력과 자기와 손을 잡은 기업인들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노동의 주체인 국민들을 그처럼 억압하고 탄압할 수 있었겠는가! 결론은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공이 아닌 것을 자신의 공으로 갈취하였고 심지어는 그 공로의 주인공에게 폭압을 행사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보니 남의 공과 재산을 가로채고 마치 자신의 업적, 자신의 재산인양 하는 모양새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 정수장학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면 지난 역사에서 이룬 경제발전의 공로는 마땅히 노동자인 국민에게 돌려져야 한다. 국민들은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정치적인 탄압까지 감수해왔다. 그런데 지금 어떤 사람이 그 공로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자신의 아버지 것인 양하고 있다. 지금가지의 잘못을 반성하는 뜻에서라도 더 이상 자기의 자산이라고 우겨서는 안 된다. 정수장확회건 경제발전의 공로이건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맞다. 국민이야말로 한국 현대사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주인공이자 담지자로 제대로 인정 받아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