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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의 자식들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저 역시 돈으로 표를 매수하는 선거풍토로 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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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년 10월 11일 (목) 01:17:02
최종편집 : 2012년 10월 11일 (목) 19:59:34 [조회수 : 20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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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누가복음 3장 7절~14절)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

3절~7절 요한이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요한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다. 세례가 전하는 의미는 욕심에 이끌려 살던 옛자아가 죽고 하나님의 말씀을 쫓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살겠노라는 결단이다. 구약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는 세례를 예표한다. 패괘한 세상은 물로 수장 되고 말씀을 준행한 노아의 방주는 물 위로 떠올라 새로운 세상이 여는 비전을 증거한다. 세례는 새로운 창조, 거듭남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이었다. 세례의 대상자는 요즘으로 말하자면 불신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자부하던 신앙인들이였다. 다시말해, 모세의 율법의 따라 이미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이다.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이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요한에게 또 세례를 받아야 했을까?>

세례요한이 말하고 있는 ‘장차 올 진노'란 미래적인 종말과 동시에 현재적인 종말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미래적인 종말이란, 개인적인 죽음과 더불어 역사적 종말을 말한다. 다시말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우리의 중심을 판가름 하시는 심판의 날이다. 이러한 미래적인 종말론의 메시지는 마지막 날을 생각하며 오늘을 더 의미있게 살아가라는 종말론적인 경고를 담고 있다. 이와 달리 현재적인 종말이란, 죽음 이후가 아니라 삶에서 만나는 ‘비가오고 창수가 나는 날’을 말한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 만나는 위기, 곧 절대절명의 순간을 말한다. 유대인들이 지금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요단강으로 몰려든 이유는 전자보다 후자의 이유가 더 강했다. 유대인들은 지금 ‘로마제국의 탄압’라는 문제를 당면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믿고 따랐던 모세의 율법과 규례의 준수만으로는 물질과 힘을 앞세운 로마제국의 압제 라는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깊은 절망을 경험했다.

 

   
오늘날 현대인들도 로마의 압제와 같은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문제들을 겪으며 살아간다. 2010년을 기준으로 자영업자들 가운데 하루에 약300명, 일년에 10만명이 파산하는 극심한 경기침체와 경제위기를 살고 있다. ‘이태백’,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살인적인 취업난을 겪는다. 하루에 42.6명, 일년에 15,56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율 1위라는 실로 전쟁 같은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실로 ‘비가 오고 창수가 나는 날’과 같은 현실의 문제들 앞에서 우리의 믿음이 아무 것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것 같은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유대인들이 요한세례를 받으러 온 까닭은 지금까지 해오던 자신들의 종교생활로는 더 이상 삶에서 만나는 극심한 위기와 엄청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으로 충분했다면 이미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이 요단강의 물세례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들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을 요한의 세례를 통해서 회복하길 간절히 소망했다. 그렇다면, 요한이 증거한 ‘세상을 이기는 새로운 믿음의 길’은 과연 무엇이 였을까? 이 질문이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가 있다. 어쩌면 그것은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문제와 신앙의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회개인가, 회심인가

 

누가복음은 요한이 선포한 새로운 믿음의 핵심을 한마디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라고 증거한다. '죄사함'이란 무엇인가? 유대인들은 죄를 살인과 도둑질과 같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와 모세의 율법과 규례를 지키는 행위의 차원으로만 여겨왔다. 그래서, 살인과 도둑질을 안하고 율법과 규례를 준수하면 죄 없는 ‘의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죄에 대한 세례요한의 통찰은 달랐다. 세례요한에게 있어서 죄란 범죄행위를 넘어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이기적인 탐욕’이였다. 그래서, 비록 겉으로는 죄를 짓지 않았더라도 기회만 닿으면 언제든 죄를 지을 수 있는 탐욕을 품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여겼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잠언16장 2절) 하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내면에 숨겨진 죄를 감춘 채 겉으로 드러난 신앙의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를 의인이라 자부했다. 일명 ‘눈가리고 아웅하는 신앙생활’에 안주하고 있었다. 세례요한의 사명은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유대인들의 내면에 숨겨진 죄악의 본질을 폭로하는 일이였다. 이것이 바로 요한이 ‘세례’의 목적이었다.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는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개혁을 말하지만 한걸음도 변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회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새로운 삶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회개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회개하는 깊이 만큼 새롭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회개는 잘못한 행위를 고쳐서 돌이키는 차원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세례요한이 증거하는 회개란 '마음(중심)을 돌이키는 것' 곧 회심(回心)의 차원이다. 이기적인 탐욕에 붙들려 있는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 보다 '회심'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하나님의 보신다고 하는 인간의 ‘중심’이란 과연 무엇인가? 중심은 내면에 숨겨진 ‘동기’와 ‘목적’을 말한다. ‘동기(motive)’란, '무엇이 나의 삶을 이끌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고, ‘목적(purpose)’이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따라서, ‘회심’이란 지금까지 부와 명예, 성공과 번영을 추구하며, 세상의 자랑과 세상의 영광을 쫓던 옛 자아가 사랑과 진리, 겸손과 섬김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으로 전환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동기와 목적의 ‘회심’ 없이는 결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없다.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매주일 감동적인 예배를 드리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정작 삶에서는 늘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세례는 받았지만 그 중심(동기와 목적)이 근본적으로 회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술로 회개하면서도 여전히 나의 중심은 탐욕에 붙들려 세상적인 명예와 영광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

8절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

이기심과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삶인지, 아니면 진리와 사랑을 추구하는 삶인지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타인의 중심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래서, 거룩한 신앙행위나 말로 의롭다고 판단하거나 한번의 치명적인 실수로 정죄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거룩한 행위를 통해서도 명예욕과 사리사욕을 채울 만큼 간사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사랑과 섬김을 말하면서 속으로는 명예와 권세를 추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처럼 숨겨진 중심, 곧 동기와 목적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마지막 날,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서 숨겨진 중심이 낱낱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우리의 삶에서 숨겨진 본심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음을 가르쳐 주신다. 그것은 바로 '비가 오고 창수가 나는 날', 삶에서 만나는 위기의 순간에 비로소 자기도 모르던 중심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솔로몬에게 한 아이를 데리고 두 여인이 찾아 왔을 때, 그들의 눈물과 말로는 누가 진짜 어머니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를 죽여 둘로 나누라는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서 비로소 감춰진 진실과 숨겨진 본심은 드러났다. 진짜 어미는 아이의 생명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했지만, 가짜 어미는 아기의 생명을 희생시켜서 라도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 했다.

따라서, 참된 회심의 여부는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나타난다. 세례요한은 이것을 '회개의 합당한 열매'라고 표현했다. 삶의 변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중심이 죄사함의 세례를 받고 중심이 변화되어야 한다. 쉽게 말하자면, 진정으로 마음을 고쳐먹을때 행동은 달라질 수 있다. 회개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변화가 없다면 그 이유는 분명하다. 중심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의 탈을 쓴 이리'

세례요한은 유대인들을 향해서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고 꾸짖는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 받은 백성이라고 자부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고 율법과 규례를 지키며 절기와 제사를 드렸다. 이것으로 충분히 의롭기에 더 이상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의 중심에는 이기적인 탐욕이 자신의 삶을 이끌고 있었다. 세례요한은 혈통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의 정체를 '독사의 자식'이란 한마디로 말로 폭로한다.

독사의 자식들아! 뱀은 전통적으로 사단을 의미한다.(the serpent in the Garden of Eden) 독사의 자식이란, 하나님의 자녀와 대비되는 말이다. 곧 사단의 자녀요, 세상의 자녀요, 탐욕의 자녀란 말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도 본문의 유대인들처럼 교인의 의무를 다하면 구원은 따논 당상으로 여긴다. 주일성수와 헌금생활, 교회의 직분과 봉사활동으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세례요한은 동기와 목적이 변화되는 세례 받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자녀일 수 없다고 증거하고 있다. 이기적인 탐욕과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면 결코 하나님의 자녀일 수 없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에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하는 영원한 가치를 추구(목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통해서 사랑과 평화, 기쁨과 감사와 같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가치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삶의 열매가 나타나게 된다. 그들은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 다툼이 있는 곳에 평화,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만들어 낸다. 무엇보다, 비가 오고 창수가 나는 위기의 순간에도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고도 남는 지혜와 능력을 발휘한다. 반면에 독사의 자식들은 이기적인 탐욕으로 오류와 다툼, 미움과 절망만이 가득하다.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0절~14절 무리가 물어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지난 2007년, 한국교회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기념했다. 평양대부흥운동은 원산의 하디선교사와 길선주장로가 눈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교회는 대규모집회를 열어 너나 할 것 없이 회개를 쏟아냈다. 그 무렵 감리교회도 부산에서 영남선교대회를 열어 회개의 대열에 동참했다. 이날 감리교회 최고의 지도자 신경하감독회장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삼만여명 감리교인들 앞에서 공개적인 회개를 선언했다. “저 역시 돈을 주고 표를 매수하는 감리교회의 선거풍토로 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주님 앞에 회개합니다.” 실로 용기 있는 고백이었다. 하지만, 그분의 회개는 단순한 ‘립써비스’일 뿐이었다.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까닭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진심어린 회개였다면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나거나, 새로운 선거풍토를 위한 제도를 마련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분을 비롯한 모든 감리교회의 공동체는 입술의 회개는 있었지만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맺지 않았다. 겉으로는 회개를 말했지만 여전히 중심은 명예욕, 권력욕, 물욕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오늘날까지 감리교회의 감독선거는 금권타락선거로 더욱 혼탁해져서 마침내 120년 선교역사에 먹칠을 하며 4년간 감독회장을 선출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남 얘기 할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자신의 삶에서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나길 원한다면, 죄사함을 얻게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사람들은 세례요한에게 물었다.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세례요한의 답변은 아주 심플했다. 옷 두벌 있는 자는 하나를 없는 자에게 나누어 주라, 군인들과 세리들은 권력을 남용하지 마라. 이것은 구약 레위기의 말씀으로 그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대단한 일이 아니라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이였다. 무엇보다, 여러가지 복잡한 요구가 아니라 오직 단 한 가지 뿐이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이다. 많은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이다. 네가 믿는대로, 네가 고백한 대로, 네가 배운대로 실천하라. 네가 말한대로 행동하라. 한마디로 ‘말씀을 적용하라’는 것이다. 새로운 삶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례요한을 통해서 분명하게 증거하신다. 너희가 듣고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며 살아가라. 작은 일부터 구체적으로 실천하라. 끊임없이 계속하라. 온전하게 변화될 때 까지...


독사의 자식들과 하나님의 아들

21절~22절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쌔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누가복음은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베풀었던 세례의 마지막 부분에 예수께서 세례 받으시는 장면을 기록한다. 세례가 행해지는 장소는 '요단강'이요 세례를 베푸는 사람은 '세례요한'이다.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사람들에게, 동일한 세례를 베푼다. 하지만, 세례를 받는 유대인들과 예수님 사이에 엄청난 차이를 기록하고 있다. 세례요한은 유대인들에게는 '독사의 자식들아', '사단의 자녀들아', '세상의 자녀들아'라고 비판했지만,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늘의 음성이 들려왔다.

누가복음은 ‘독사의 자식들’과 ‘하나님의 아들’을 요단강에서 펼쳐지는 세례를 통해서 아주 드라마틱 하게 대비 시키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동일한 시대,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성경을 가지고 동일한 하나님을 믿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이기적인 탐욕을 쫓아 '독사의 자식'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아들'로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둘의 차이는 삶의 위기의 순간에 확실하게 드러나서 만천하에 공개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누가복음은 바로 그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기록된 책이다.

 

   
     

<뜻으로 읽는 누가복음, LUCAS> 중에서

‘Lucas’ is the Latin form of the Greek first name Loukas (Λουκᾶς)
This name is given to honor Luke the Evange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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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교인 (183.78.236.178)
2012-10-11 22:22:28
회개의 합당한 열매...
세례가 이렇게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줄 미쳐 몰랐습니다. 큰 배움을 얻었습니다.세례를 받고 교인이 된지 참 오래되었는데 부끄럽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에서 뭘 배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의 글을 읽고나면 지루루하게 느껴지던 성서가 이렇게 무궁무진한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갑자기 성서를 읽고 싶어집니다. 매주 이렇게 성경의 깊은 속뜻을 깨우쳐주는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교인들은 참 행복하겠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외국사람들의 예화는 이젠 정말 지겹습니다.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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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
최인규 (116.40.242.158)
2012-10-23 09:42:28
우리는 누구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가?
성경에도 바리새인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했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증거되기 위해서 전파 되리니 그렇게 되면 세상이 끝이 온다 했다.이 세상이 끝나는 것은 지구가 없어지는 것이나 불신자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종교의 종말을 말씀했다.예수님당시 씨를 뿌린 것이 있는데 짐승의 씨를 뿌렸으니 누가 뿌렸는가?
그 때 당시 바리새인들을 통해서 짐승의 씨를 뿌리게 된 것이다.
그 두가지씨는 한 밭에 추수 때까지 자라게 된 것이다.큰 밭이라고 친다면 지구촌이다.적게 치면 교회다.
두가지씨가 자라왔다 하나님의 씨 마귀의 씨다 그것이 예수님 이후 오늘날까지 한 곳에서 자라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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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8
나누기 (1.221.230.66)
2012-10-17 09:33:21
2천년 전 예수님이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호통쳤던 사람들이 그 시대의 유대교 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면,
오늘날 뱀과 독사같은 자들이 누구일까요?

흔히들 이단을 양의 탈을 쓴 이리라고 하는데... 이리는 오히려 우리 가까이에 있는 다수의 목사님들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뱀들이나 독사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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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8
익명 (218.39.77.67)
2012-11-11 18:46:27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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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0
의견나눔 (218.148.114.189)
2012-10-12 09:16:32
위의 사진을 보고
회개한다고 바닥에 무릎꿇은 분들...방석 없이 그냥 무릎 꿇지 못한 이유가 뭔가요? 양복이 더러질까봐? 무릎이 아플까봐? 회개보다 더 우선하는 것들이 있는 한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제가 십자가 행진한다면서 십자가 밑에 바퀴를 달고 굴리며 행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회개는 퍼포먼스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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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0
개혁본부 (211.247.45.134)
2012-10-11 23:53:38
김 명섭 목사님 오랫만 입니다.
제가 사람을 잘못 보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열심을 다 하시는 모습에 정말... 기도 가 나옵니다.

"독사의 자식들" 이 할머님 권사님들 열심이 품팔아 주님께 바친 "헌금"
해외경비 로 쓰고 어떤넘은 수십억씩 축내고... 이상한 단체 부담금으로
지들이 무슨 감리교 대표 라고 "지출" 하고...

그래도 한넘도 책임 지는넘 없네요~~~쩝!

"독사의자식들" 이 감리교 통째로 말아먹기 전에!!!!
이젠 목사님도... "재산분할신청", " 독사의자식들" 과 헤어지는
수순밟기 에 동참 하시고... 특히 "본부부담금 거절" 운동도...
해야지 되는 ...그런 뜻에 기도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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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27
옳은말인데 (218.39.77.67)
2012-10-18 12:16:03
왜반대를누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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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1
황병혁 (116.124.1.31)
2012-10-11 18:07:29
생명력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말씀으로 깨우치심을 감사드립니다.
소통케 하심도 감사드립니다.
저부터 회심하여 올바로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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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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