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곡리는 꼭 삼태기 같이 생겼다. 가장 깊숙한 곳에 교회까지 스물 다섯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삼태기 안쪽에서 밖으로 나오는 길은 가운데로 여느 시골길처럼 꼬불꼬불하다. 길 양쪽으로 작은 골짜기들이 마주 보면서 가슴을 열고 우리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으로 작은 터골, 그 아래로 도댕이,도댕이 아래가 운골이다. 왼쪽으로는 작은 터골 맞은편에 터골, 그 아래 서낭당 있던 자리에 서당골, 그 아래 작은 서당골, 그리고 핀두골이 있다. 여기가 우리의 삶의 터전이다. 골짜기에서 나오는 도랑에서 물고를 틀어 댈 수 있는 땅은 논 삼았고, 그렇지 않은 데는 밭으로 알뜰하게 일구어 왔다.

마을은 작기도 하지만 한군데 모여있어 1구 2구로 나눌 것도 없이 그냥 지곡리 하면, 반상회를 해도 한 방에 다 둘러 앉을 수 있다. 이장은 누구 누가 한다고 투표할 것도 없이 연장자 순으로 마을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의견을 모아 박수치고 웃으면 결정된다. 올해는 이화영 권사님이 처음으로 이장이 되셨다. 이권사님 전에는 이용열 성도님이 10년을 하셨다. 그 이전에도 양준석 성도님이 또 그렇게 하셨다. 이 마을에서 오래 사신 분이라면 이장 한번 안하신 분은 드물 정도다.

이권사님이 이장이 되시고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라면 마을 방송을 시작할 때 흘러 나오는 음악이 바뀐 것이다. 마을 가운데 언덕인 황소 말랭이에 세워둔 마을 스피커에서 은은한 복음성가가 울려 퍼진다음 “주민 여러분께 안내말씀 드리겠읍니다. 알려드릴 말씀은···” 하고 이어진다. 이것은 이 권사님이 마을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또 들려오는 복음성가를 듣기 싫어하지 않는다. 마을에 처음 온 사람은 교회에서 예배 시간을 알리는 것인지 마을에서 이장이 알리는 것인지 어리둥절 할 것이다. 지곡 식구들은 음악 소리를 듣고 구분한다. 교회에서 예배 시간을 알리는 음악은 차임벨이기 때문이다.

이 권사님은 이장에 되기 전부터도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마을을 사랑하며 아껴왔고, 이제는 노인이 되어서 농사일에 힘들어하시는 마을 어른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기도하면서 도움을 주려고 애쓰고 있다. 올해 우리 마을 농사는 힘겹게 시작 되었다. 지곡이야기(지곡교회 주보, 편집자 註)는 이렇게 안타까워했다.

          개 방 앞 둔  농 한 기

새해 연두 기자 회견에서 대통령은

농어촌 발전위원회를 청와대 내에 두겠단다.

보조금을 매년 1조 5천억원 마련하겠단다.

이를 위해 목적세를 신설한단다.

각 지역마다 특수경쟁 품목을 설정한단다.

그런데도 추위도 추위답지 않은 겨울이

오히려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한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던

소한 추위도 대한민국에 찾아 왔다가

우루과이 라운드보고 놀라 주눅이 들어 풀렸나보다.

눅은 날씨에 밭걷이를 해봐도 힘이 안난다.

빈 외양간에 송아지 몇마리를 사넣어도 이뻐뵈지 않는다.

장구채를 잡고 징방망이를 들어도 신명이 나지 않는다.

산 목구멍에 거미줄이야 치겠냐지만,

뭐를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모르겠다.

하나님은 농부이신데(요15:1)···

마을 어른들은 이제 다 늙은 몸이 농사를 짓는데 그냥저냥 낫으로 두렁 깍고,지게로 저나르고 말지 지금에야 뭣하러 기계를 사느냐고들 한다. 그런데 요즘 농사일이 어디 그런가? 옛날에는 예산장을 걸어서도 다니고 나뭇짐을 져다 팔기도 했지만, 지금은 세월이 바뀌어서 경운기 타고 갔다오기도 어려운 시대가 되었는데 말이다. 쌀금 좋을 때 이야기지 지금은 쌀이 보리 보다도 싸고 밀가루 보다도 더 싸졌으니 옛날 식으로 농사지었다가는 그야말로 입에 거미줄이라도 쳐야할 판이다. 이 권사님은 보다 능률적으로 일하려고 경운기는 물론 이앙기와 콤바인을 들여 놓고 얼마 전에는 고추와 벼를 말리는 기계도 들여 놓으셨다. 될 수 있으면 이 기계로 마을의 일을 모두 도와가며 하려 애쓰신다. 모내기 할 때는 전 마을의 모내기를 계획하고 요즈음 같이 추수할 때는 마을의 추수를 걱정하신다. 교회의 목표가 “전 마을의 복음화”인 만큼 마을 식구들의 농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곡 식구들도 눈코뜰 새 없이 일한다. 죽을래야 죽을 시간도 없단다. 평생을 이렇게 일해 온 분도 있다. 지곡이야기도 안타까워 한다.

                  다친 손가락

최예순 성도님은 작년 여름에 다친 손가락이 도졌단다.

힘 좀 던다고 리어카를 잡고 경운기를 탔다가

경운기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잡고가던 손잡이에 치여

오른손 장지 첫째마디와 둘째마디 사이가 부러졌었다.

혼자하는 농사일이 바빠 닷세는 지나 병원에 갔더니

부러진 곳이 덧났다며 치료하고는 며칠 쓰지 말랬단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추수 때에

제대로 아물 여가를 눈 감았다 해도 줄 수 없었다.

두번째 병원에 간 것은 손 전체가 붓고,

온 몸이 쑤셔서 일을 못하게 되어서 였다.

일 할 욕심과 돈 아까운 생각에 임시치료만 하고

낫겠거니 하고 겨울을 났다.

새로 농사철이 되어 바쁘게 일하려니

어김없이 다친 손가락이 아파오는 거다.

치료하나 잘라내나 걸리는 시간은 같단다고

쑥떡 잘라내면 속이라도 시원하겠단다.

우리는 이렇게 결사적으로 농사를 짓는데,

농산물 협상은 왜 질질 끌려 다니는지!

그러고도 국민은 왜 속이는지!

들통나면 장관 갈고 사과성명 내면 그만인지!

하나님은 우리 마음 아시려나!

올여름은 더위와 가뭄으로 벼보다 이른 곡식은 능이 현상으로 별 재미가 없었다. 고추는 늦은 비 맞고야 가지 뻗어 붉을 햇빛이 적었고, 콩도 예같지 않게 빈깍지가 많았다. 그래도 나은 벼 바심이 시작 되었다. 콤바인 타고 논바닥을 돌면서도 이 권사님의 얼굴은 맑지만은 않다. 지곡이야기가 심경을 슬프게 노래했다.

            쌀

논농사는 농사 중의 농사다.

｢農者天下之大本也｣ 도 여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쌀이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힘겨운 한 해 농사.

경운기로 갈고 또 썰고

이앙기로 심어도,

삽으로 논둑 붙이고

낫으로 두렁 깍고

두렁에 제초제부터 시작해서

여름내 몸에 베이도록 농약쳐도,

한 마지기에 산골 논에서 두 섬 반 봐서

열 마지기레야 설흔 섬 안쪽인데,

세 식구 하루 양식 쌀 한되가 싼 커피 한 잔에 날아가고,

쌀 한 섬을 수표로 어린이가 백화점에서 장난감 사가고,

열 섬 값을 가벼운 팁으로 던져주고,

하늘이 낸다는 만석을 부정으로 건네니,

헛김 빠질 노릇이다.

먹고 살자는 쌀농사가

굶기 좋은 노릇이 되었으니,

죽 쒀서 개 주는 세상이 아니고 뭔가.

농사일도 일이려니와 이 권사님은 예배를 드리기에도 소홀하지 않으신다. “전 가정의 인가귀도, 전 마을의 복음화”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마을의 주일성수를 위하여 애쓰신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주일 만큼은 지키신다. 마을의 일군이 쉬시니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들이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전 성도의 귀감이 되어 곧 마을 전체가 주일에는 모두 예배드리는 복된 마을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새벽예배를 거르지 않으신다. 모심기 할 때나 요즈음 같이 거두어 들이느라고 힘들고 바쁜 계절에도 새벽 4시 반이면 어김없이 나와 기도하고, 그날에 주시는 말씀으로 영의 양식을 삼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 권사님 가정에서 가정예배를 드릴라 치면 이쪽 도랑골이 찬송소리로 가득찬다. 이 권사님의 어머니 권사님과 유 속장님 그리고 아이들 셋까지 합하면 이동네서는 가장 큰 대가족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모두 찬송부르는데는 선수들이다.

오늘의 새벽예배 성경 말씀은 순서에 따라 요한일서 4장이었다.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자‘는 말씀이다. 크지도 않은 작은 삼태기 같은 마을에서 우리끼리 서로 사랑하고 돌보고 위해주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아픔은 우리 모두의 아픔이요, 기쁨은 우리 모두의 기쁨이다. 아픔을 같이 나누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기쁨을 나누어 갖는 것이 천국이다. 작은 마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천국을 만들어 살고자 애쓰는 곳이 지곡리다. 이 일에 이 권사님은 오늘도 맨 앞장 서서 살아가신다.      푸른언덕      김충권(지곡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