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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도에 교회가 세워지기까지[푸른언덕 61호] <푸른언덕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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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3월 25일 (토) 00:00:00 [조회수 :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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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가 이미 푸른언덕의 지면을 통해 소개된 바 있는터에 다시 한번 자세히 정리해서 두 번에 걸쳐 실었으면 좋겠다는 청을 받고 감히 거절할 수 없어서 지난 5년간을 돌이켜 보면서 이 글을 적어 본다.

이 땅에 소외된 사람을 위해 젊은 종으로서 헌신하겠다는 열의만 가지고 아무런 경험과 예비 지식도 없이 왔던 섬선교였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감사한 일 뿐이다.

이 세상 어느 교회나 그렇듯이 눈물과 피땀없이 세워질 수 없는 것이 교회라 생각한다. 국화도에도 교회가 세워지게 된 동기 속에는 여러 사람들의 오랜 기도와 헌신 노고가 숨겨져 있다. 먼저 형도교회 이동목 목사님의 기도와 선교열정을 빼 놓을 수가 없다. 낡은 선교호로 파도를 헤치며 교회가 없는 섬과 작은 섬교회를 방문하며 전도하는 목사님이시다. 10년이상 이 일을 하시면서 검게 탄 그 모습 속에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볼 때마다 존경심이 일어난다. 처음 뵙던 날 내 손을 잡으며 “7년동안 매일 기도하며 교회가 세워지기를 기다렸는데 젊은 전도사님이 와서 너무 기쁩니다.”라고 하신 것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세 시간 반이나 걸리는 뱃길을 2톤 남짓한 작은 배를 타고 전도하러 오셨던 많은 시간들을 생각하며 용기와 힘을 얻었다.

또 한 분은 명지대학 재학중에 군대를 제대하고 섬사람들과 함께 1년을 살면서 함께 일하며 선교의 밑거름이 되게 하셨던 사랑의 교회 심현섭 선생님이다. 대학졸업 후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전도사님이 되셨지만 당시 평신도로서 전도하며 모범적인 기독교인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교회개척에 큰 힘이 되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리라”는 찬송가의 한 구절처럼 사신 이 분들의 수고와 헌신이 교회가 세워지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교회부터 지어야 한다는 생각에 재정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이 건축을 전공하고 고등학교에서 건축을 가르치시는 사촌형님이신 민성식 집사님께 설계를 부탁했다. 기도로만 준비하던 때에 친구 전도사의 소개로 개척한 지 1년밖에 안된 우주선교교회에서 수요예배 설교를 했는데 목사님은 기도원에 가시고 뵙지도 못했다. 며칠 후 목사님께서 건축비를 전담해 주시겠다는 연락을 주셨다. 얼굴을 뵌 적도 없는 분이, 재정의 넉넉함이 있는 교회도 아닌터에 하나님의 응답만을 믿고 약속해 주신 것이다. 지금 은 도미니카 공화국에 선교사로 가 계신 전재덕 목사님이 바로 그분이셨고 전 목사님과의 만남을 통해 건축이 시작될 수 있었다.

삽과 곡괭이만으로 비탈진 언덕 땅과 두달여 간의 전쟁아닌 전쟁이 시작되었다. 눈으로 볼 때는 평평한 땅이 수평을 재어보면 매번 한쪽이 높은 것이다. 육지에서라면 기계장비로 한나절이면 될 일을 두달여를 혼자서 파다보니 원망과 불평이 든다. 너무나 힘든 일에 흑인처럼 검게 그을리고 움푹패인 눈을 보면서 동정심이 들었는지 마을 사람들이 아침 저녁으로 도와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어떤 분은 내가 땅을 파다가 그 자리가 내 무덤자리가 될 것 같아서 교회는 안나가더라도 도와주려고 왔다고 하시는 것이다. 원망하며 불평했던 내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이 일을 계기로 몇 분은 착실한 신자가 되셨으니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에 감탄할 뿐이다.

육지에서는 자재를 전화로 주문하고 돈만 주면 현장까지 곧장 도착하지만 섬에서는 돈이 있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고 몇 번에 걸쳐 나르는 운반의 고역을 감당해야 했다. 차에서 배로 옮겨 싣고 오면 다시 배에서 리어카로 날라서 교회 언덕 밑까지 와서 손으로 다시 현장까지 날라야 수송은 끝난다.

혼자서는 시멘트 열포대쯤 나르면 하루 일이 끝났을 것이다. 일을 하다가 자재가 부족하면 사올 일이 큰 걱정인데 그 때마다 친척이나 친구들이 밤을 통해 선창까지 날라주면 아침에 싣고 들어와서 어려움을 덜어주었다. 일손이 많이 필요한 때는 교회 청년부나 대학기독학생회, 우주선교교회 교우들이 적절하게 도움을 주러 오셨다. 봉사활동을 온 대학기독학생들을 마중하러 나갔다가 별명을 하나 얻었다. 마중을 나간 내가 검정 고무신에 새까만 얼굴을 하고 있으니 전도사로 보이지 않았는지 마중나온다던 전도사님이 어디계시냐고 묻는 것이다. 내가 그사람이라고 대답하고 농담삼아 아프리카에서 온 선교사라고 했더니 한국말을 너무 잘한다며 모두가 그냥 믿는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아프리카 선교사란 별명을 갖게 되었다.

성전을 짓는 몇달동안 많은 은혜를 체험하고 이들을 전도하는 길은 유창한 설교나 고상한 지식이 아닌 손바닥의 굳은 살과 겸손한 자세로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라는 깨우침을 얻게 되었다.


<다음 호에 국화교회가 세워진 후에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긴 사건들을 중심으로 국화교회 이야기 2회를 싣도록 하겠습니다.

국화교회를 취재하러 가서 이수기 전도사님과 함께 바닷가에 나가 주먹만한 게를 한 시간 동안에 2Kg 정도 잡고, 굴과 소라를 따고, 보너스로 아나고와 이름 모를 고기, 쭈꾸미와 낙지등을 잡아 솜씨 좋은 이선주 사모님의 솜씨를 곁들여 맛있게 먹어치우고 한 꾸러미 챙겨온 일은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겁니다. 이수기 전도사님이 마을 주민들과 뱃일을 하는 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사정상 포기해야만 했는데, 우리가 돌아오는 뱃편을 만들기 위해(국화도는 정기적인 뱃편이 없어서 몇 만원을 주고 배를 빌려야만 함) 이수기 전도사님은 배를 가지고 있는 분의 배로 우리를 먼저 육지까지 태워주는 댓가로 함께 바다에 나가 김 양식일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바다에서 일하는 모습은 사진으로 담지 못하고 작업복을 입은 이수기 전도사님의 사진만 담아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사진은 다음 호에서 공개하겠습니다.>                   푸른언덕

          <푸른언덕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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