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김명섭 칼럼
역사는 왜 '예수이전(B.C)'과 '예수이후(A.D)'로 나뉘는가?선지자 ‘말라기’에서 제사장 ‘사가랴’까지, ‘Before Christ’에서‘Anno Domini’까지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2년 09월 08일 (토) 11:00:40
최종편집 : 2012년 10월 03일 (수) 19:01:51 [조회수 : 25562]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내 단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도다...”(말라기1:6~10)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없이 행하더라...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누가복음1장 5절~23절) 

말라기에서 사가랴까지

누가복음이 오늘 우리에게 증거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에서 누가복음에 이르는 역사적인 배경을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소위 '신구약중간기'라고 일컫는 약 400여년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아주 화려하고 유명한 시대였다. 아시리아와 바벨론제국, 페르시아제국, 알렉산더제국, 로마제국으로 이어지는 고대 열강들의 패권다툼이 치열하던 격동의 시대였다. 페르시아의 키루스와 크세르크세스, 세계최대영토를 이룩했던 알렉산더대왕(Alexander the Great)과 로마의 영웅 줄리어스시이저(Julius Caesar)와 같은 위대한 영웅들의 시대였다. 하지만, 신정국가 이스라엘은 주변의 열강과 영웅들에 의해 무참하게 멸망을 당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고대 열강들의 힘과 권력 앞에 압제를 당해야 했던 참람한 절망의 시기였다. 그들은 강력한 힘과 군대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성전을 유린하고 황금과 폭력으로 천하를 호령했다. 무너진 성전과 함께 하나님에 대한 절대신앙도 같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약 400년 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었다. 누가복음은 바로 이러한 절망의 시대에 두 아이의 탄생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선포한다. 
 

   

아시리아제국과 신바벨론제국, 페르시아제국과 알렉산더제국

이스라엘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던 솔로몬대왕이 죽은 후 B.C 926년경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단되어 쇄락의 길로 접어든다. B.C 722년경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제국(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하고 말았다. 친앗수르정책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남유다는 앗수르가 또 다른 중동의 강자 바벨론(新바벨론제국)에 의해서 멸망하자, B.C 587년경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버렸다. B.C 538년 바벨론은 또 다른 중동의 강자로 떠오른 바사(페르시아제국)에게 고대근동지방의 패권을 넘겨준다. 페르시아의 고레스(키루스)는 포로민들에게 고국으로의 귀환과 예루살렘성전을 재건 할 것을 명령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국으로 돌아와서 무너졌던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했다.

한편, BC 338년경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는 그리스를 통일하고 이어서 이집트와 페르시아까지 정벌하고 마침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자랑하는 ‘알렉산더대제국’을 건설한다. 하지만, BC 323년 알렉산더가 3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제국은 그리스지역, 메소포타미아지역, 이집트지역, 페르시아지역의 4개의 영토로 갈라지고 만다. 결국, 이스라엘은 B.C 323년 부터 알렉산더의 휘하 장군이 였던 프톨레미우스가 이집트에 세운 ‘프톨레미우스왕조’의 식민지가 되었고, B.C 198년에는 알렉산더의 또 다른 장군이었던 셀레우코스가 세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셀레우코스왕조’의 통치 아래 놓이는 신세가 된다.

그 후 문화와 종교의 혼합주의를 표방한 헬레니즘으로 인해 B.C 167년경 예루살렘성전 안에 제우스의 제단이 세워 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율법과 종교적인 순수성을 추구하는 하시딤운동이 일어났고 B.C 165년경 마카베오는 유대독립전쟁을 통해 B.C 152년경에 마침내 유대 독립국 ‘하스몬왕조’를 세우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독립국가의 꿈은 오래가지 못하고 B.C 63년 또 다른 근동의 패권자로 떠오른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정복하면서 이스라엘은 다시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B.C 37년경 로마는 ‘이두메의 왕’이였던 헤롯을 유대의 분봉 왕으로 세워서 로마인의 협력자이자 대리인으로 승인했다. 바로 이 무렵 로마제국이 온 세계를 통치하던 시기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다.


   



로마제국의 출현

B.C 270년경 도시국가 였던 로마는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고, 무려 100년 동안 계속되던 카르타고와의 포에니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지중해의 유일한 지배자로 떠올랐다. 당시 로마는 세 명의 실력자가 통치했는데 이를 소위 ‘삼두정치’(폼페이, 크라수스, 케이사르)라고 한다. 이후 ‘케이사르’(갈리아지역)가 ‘폼페이’(지중해와 이집트지역)와 ‘크라수스’(페르시아지역)를 모두 제압하고 로마제국의 유일한 통치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율리우스 케이사르(Julius Caesar), 그가 바로 ‘줄리어스 시저’다. 하지만, 케이사르의 절대 권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암살로 최후를 맡는다. 로마는 또 다시 세 명의 실력자(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옥타비아누스)에 의해서 통치되는데 이를 ‘제2차 삼두정치’라고 부른다. 이들 가운데 케이사르의 후계자를 자처했던 ‘옥타비아누스’는 다른 세력을 제압하고 B.C 27년경 ‘아우구스투스’(아구스도, 존엄한 자) 추앙 받으며 로마제국의 첫 번째 황제 '케이사르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로 등극한다. 그가 바로 누가복음에 기록된 ‘가이사 아우구스도’이다. 로마제국의 초대황제 ‘가이사’는 돈과 권력으로 천하를 호령하며 팍스로마나(Pax Romana)로 불리는 로마제국의 전성기를 열었다. 바로 이 시대에 로마제국의 속국, 분봉왕 헤롯이 통치하던 유대 땅의 베들레헴에서 훗날 사랑과 평화의 새 세상을 열어 갈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다. 그 후 로마제국은 약 12명의 황제에 의한 통치가 이어지는데, 5번째 황제인 네로황제(A.D 53년~68년)와 도미티안황제(A.D 70년~91년)때에 기독교는 가장 극심한 박해를 당했다. 학자들은 누가복음이 기록된 시기를 이 때로 본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200년 후 A.D 311년경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마침내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하기에 이른다.

 

   

 

‘왜 역사는 예수이전과 이후로 나뉘는가?’

서양의 역사는 곧 ‘기독교의 역사’ 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구의 역사는 크게 주전과 주후로 구분한다. 주전을 나타내는 ‘B.C’는 잘 알려진 대로 ‘Before Christ’의 약자이며, ‘A.D’는 라틴어 ‘Anno Domini’의 약자다. ‘Anno Domini’란, '그리스도의 해' 라는 뜻이다. 다시말해, 예수 그리스도(왕)의 새 역사가 시작되는 출발점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서구의 역사를 '예수 이전'과 '예수 이후'로 구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한 시대적 구분이 아니다.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앞서 살펴 본대로 예수 이전의 세상을 다스리던 고대 열강들은 하나같이 황금(돈)과 군대(힘)와 권력으로 세상을 통치했다. 이와 달리 예수 그리스도(왕)의 탄생으로 시작된 세상은 폭력과 야만이 통치하던 세상과 구별되는 사랑과 평화가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의미한다. 누가복음은 두 아이의 탄생을 통해서 ‘B.C’와 ‘A.D’가 단순한 역사의 구분점이 아니라, 이전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또 다른 세상의 열리게 되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주전(예수 이전)과 주후(예수 이후)는 바로 폭력과 물질이 다스리던 역사가 종결되고, 사랑과 평화가 다스리는 예수 그리스도(왕)가 통치하는 새세상의 시작을 선포하는 구분인 것이다. 
 

 

   

세계여행가이며 베스트셀러작가로 유명한 바람의 딸, 한비야씨는 몇해 전 기독교청년들을 위해 열린 강연회에서 청중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은 세상을 다스리는 원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한비야씨는 자신의 인생을 '40세 이전'과 '40세 이후'로 구분하면서 변화된 자신의 세계관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저는 40세 이전에 세계 구석구석을 발바닥으로 누비며 다녔습니다. 그 속에서 제가 발견한 세상을 다스리는 한 가지 원리는 ‘약육강식’ 곧 ‘정글의 법칙’이었습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삼키고 빼앗는 마치 짐승들의 세계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40세 이후 저는 기독교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으로 세계의 기아와 재해현장을 뛰어 다니면서 세상을 다스리는 또 다른 거대한 한 가지 원리가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은혜와 사랑의 법칙’이었습니다. 강한 자가 약자를 섬기고, 가진 자들이 자신의 것을 나눔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삶의 원리였습니다.”

그녀의 고백대로 오늘날 세상에는 이러한 두 가지 삶의 원리가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공존하고 있다. 누가복음은 두 아이의 탄생을 통해서 힘과 권력으로 통치하던 야만의 시대가 끝나고 은혜와 사랑으로 통치하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비장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에 의해 정의된 '축의 시대(Axial age)'는 대략 B.C 900년~B.C 200년 까지 세계의 주요 종교와 철학이 탄생한 인류사의 가장 경이로운 시대를 가리킨다. 중국에서는 공자, 묵자, 노자가 활동했고, 인도에서는 고타마싯다르타가 등장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엘리야, 예레미야, 이사야가 등장해서 메시아를 예언했고,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이 활동했다. 축의 시대는 내용적으로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서 철학과 종교적인 각성의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절망’ 중에 드리는 ‘예배와 기도’

7절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배경을 통해서 살펴 볼 때,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실존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불임가정의 얘기가 아니다.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없다’는 것은 그들의 삶에 더 이상 아무런 희망과 미래를 기대 할 수 없는 아주 깊은 절망을 의미한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실존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는 이스라엘 민족의 암울한 역사적 현실과 시대적인 절망을 대표하고 있다. 곰과 사자(바벨로니아, 페르시아 등), 황금독수리(로마)로 이어지는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한 수백 년에 걸친 압제 아래 살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내일의 희망이란 없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절망스러운 사건은 바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였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상징하는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제국의 군화발 앞에 무참히 무너지는 순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을 경험해야만 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지금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가?, 하나님 잘 믿어봐야 아무 소용없구나. 이제 까지 믿어왔던 믿음과 신념이 황금과 군사력을 앞세운 세속적인 권력에 의해 무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많은 신앙인들은 이제껏 믿어왔던 하나님을 버리고, 또 다른 하나님(로마의 황제, 제국의 질서)을 섬기는 ‘배교’를 기꺼이 선택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순교’를 선택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마디로 사가랴의 시대는 바벨론제국에서 페르시아제국으로, 알렉산더제국에서 로마제국으로 이어지는 통치 아래에서 ‘배교’와 ‘순교’가 뒤섞여 있던 끝없는 절망의 시대 였다.

5절~6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하지만 깊은 절망의 시대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은 남아 있었다. 그는 제사장 ‘사가랴’ 였다. 솔로몬 이후 구약의 예언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증거한 메시지는 ‘예배의 타락에 대한 경고’ 였다. 이스라엘의 성공은 ‘예배의 성공’ 이요, 이스라엘의 실패는 ‘예배의 실패’ 였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가장 선명한 바로미터(Barometer)는 예배 였다. 예배생활이 신앙생활의 척도라는 건 오늘날 신앙인들에도 여전히 해당된다. 구약성서 ‘사무엘서’로 부터 ‘역대기’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타락은 ‘예배의 타락’ 이였고 ‘이스라엘의 실패’는 ‘예배의 실패’였다고 끈임없이 증거하고 있다. 위대한 이스라엘의 임금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나라의 언약이 파기된 원인은 물질적인 풍요와 사치로 타락한 솔로몬의 ‘우상숭배’ 였고, 그 결과가 바로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열왕기상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며 이 전이 높을지라도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놀라며 비웃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전에 이 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저희가 자기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부종하여 그를 숭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저희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였더라. (열왕기상 9장 4절~9절) 

'번영과 형통'의 우상숭배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내 단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도다...”(말라기1:6~10)

구약의 마지막 예언서 말라기는 성전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얼마나 타락을 고발했다. 예배의 타락은 종교의 혼합주의를 표방한 헬레니즘으로 인해 B.C 167년경 예루살렘 성전 안에 제우스의 제단이 세워 지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이러한 타락에 종교적인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저항 했던 하시딤운동(훗날 바리새파로 이어진다)은 마침내 ‘하스몬왕조’ 라는 유대독립국가를 세우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B.C 63년경 또 다른 패권자인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정복하면서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따라서, 사가랴의 시대 제사는 종교의 형식적인 의무는 감당했지만, 그 실제적인 능력은 부인하고 있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이 만연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말라기 시대의 타락한 예배의 행태는 사가랴의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사가랴의 시대에 이와 같이 예배가 타락했던 이유는 ‘하나님 믿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더라’, 세상의 주관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열강을 통치하는 제국들의 물욕과 권력욕과 명예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도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는' 제사장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사가랴는 새시대를 여는 아직 꺼지지 않은 제단의 등불 같은 존재였다.

 

   

 

오늘날에도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참된 삶을 증거 해야 할 목회자들이 물질주의를 대변하는 ‘성장복음’과 ‘형통복음’의 전도사로 전락해 버렸다. 예배란 본디 하나님 앞에 자기를 부인하는 것인데 그 본질을 잃어버린 채, 오히려 예배를 통해 이기적인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고백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예배자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하나님이 아니라 물질(세상적인 축복)을 간구한다. 기도를 생활언어로 바꾸면, '추구'와 '의뢰'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추구하고, 힘과 권력을 의뢰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에 믿을 것은 돈밖에 없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제사장 ‘사가랴’의 시대는 구약 사무엘상에 등장하는 사무엘의 시대와 매우 유사하다.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홈니와 비느하스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이를 낳지 못했던 한나와 그의 아들 사무엘의 탄생을 통해서 새 시대를 열어 가셨다. 하나님께서는 절망의 시대 마다 세상과 짝하지 않고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는’ 사가랴와 같은 일꾼을 남겨 두신다. 그리고 오늘도 그들을 통해서 새 역사를 열어가고 계신다.

세례요한의 세 가지 사명

14절~17절 주 앞에서 큰 자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리라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절망의 시대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전심으로 경외했던 제사장 사가랴에게 어느 날 주의 천사는 한줄기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영문성경은 이 대목을 이렇게 기록한다. ‘a vision in the Temple’, 늘상 반복하던 예배의 자리에서 벌어진 사건이란 말이다. 세례요한의 출생을 통해서 천사가 전한 복음의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너도 기뻐하고 남들도 기뻐하게 되리라.

교회는 세상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래서,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복음은 참된 복음일 수 없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창12장 12절) 복음의 본질은 나를 통해서 가정이 변화되고, 나를 통해서 이웃들에게 기쁨이 넘치게 하는 ‘널리 인간을 복되게 하는 것’임을 증거한다. 오늘날, 개인적인 출세와 성공 자체가 진정한 복음일 수 없는 이유는 혼자 잘 먹고 잘사는 이기적인 행복에 그치는 까닭이다. 남이야 어떻게 되건 말건 자기 혼자 승승장구 하는 행복은 기독교가 전하는 복음이 결코 아니다. 해서, 타인의 희생을 강요함으로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축적은 결코 하나님이 베푸시는 축복이라고 말할 수 없다.

둘째, 성령충만으로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리라.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성령’을 매우 강조한다. ‘성령충만’이라는 단어를 요한복음에서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표현한다. 바울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흔히 사용하는 ‘성령충만’이란, 한마디로 ‘말씀충만’을 일컫는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이 가득차고 넘치는 상태를 말한다. 곧 진리 충만, 은혜 충만, 사랑 충만, 믿음 충만, 기쁨 충만, 희생 충만, 섬김 충만 등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성령이란, 본디 우리가 체험하는 하나님이시다. 곧 우리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영원하신 말씀이 증거하는 사랑과 희생, 평화와 같은 거룩한 가치들이다.해서, ‘성령충만’의 반대는 '탐욕충만'이다. 당시의 패권주의자들은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으로 물욕, 명예욕, 권력욕과 같은 사리사욕을 앞세운 탐욕으로 충만한 시대를 살았다. 오늘날도 욕심충만, 물질충만, 쾌락충만의 이기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속도, 경쟁, 개발에 광분한다. 타인을 희생시켜서 라도 자신의 욕구를 관철시키려 한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전쟁과 갈등, 불균형과 경쟁, 불평과 원망의 연속이다. 참된 복음은 세상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사랑과 기쁨, 평화와 공정이 실현되는 지속가능한 공존의 시대를 여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행했던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는 바로 마음의 중심을 돌이키는 회심의 복음이요, 탐욕에서 사랑으로 삶을 돌이키는 회개의 복음이였다.

셋째,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백성을 예비하리라.

천사가 사가랴에게 전해 준 복음의 핵심이다. 세례 요한이 구약의 엘리야가 했던 역할을 감당하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모세와 더불어 구약 최고의 '영웅'이었던 엘리야의 사명은 바알로 통칭되는 우상숭배자들과 자웅을 겨루었던 ‘갈멜산의 전투’ 였다. 바알은 물질과 풍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우상이다. 바알의 또 다른 이름인 ‘맘몬’(Mammon)은 인간의 정욕과 탐심이 형상화된 탐욕의 아이콘이다. 엘리야의 시대는 바알을 하나님으로 섬기던 물신숭배의 시대였다. 그 시대에 엘리야는 바알이 하나님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임을 온 몸으로 증거하는 고독한 전투를 수행했다. 오늘 우리시대는 엘리야의 때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더 많이 소유하면 행복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까닭이다. 심지어 복음의 증인들 마저 '더 빨리, 더 높이, 더 크게'의 신화를 따라 살아가고 있다. 소유의 넉넉함이 행복과 성공의 기준으로 여기며 살고 있는 물질과 탐욕으로 충만한 이 시대를 향해서 누가복음은 천사의 음성을 통해서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한 두 아이의 탄생을 통해서 앞으로 펼쳐질 성령으로 충만한 새로운 세상에 펼쳐질 복음을 예고하고 있다.

   



* 당신은 지금 '성령충만'인가, 아니면, '탐욕충만'인가?

* 당신은 사랑과 평화의 원리 가운데 살아가는가? 아니면, 돈과 폭력의 원리에 이끌려 사는가? 


<뜻으로 읽는 누가복음, LUCAS> 중에서

‘Lucas’ is the Latin form of the Greek first name Loukas (Λουκᾶς)
This name is given to honor Luke the Evangelist.

다음편 - 소녀 마리아(눅1:25~45) 
 

[관련기사]

김명섭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714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5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수수 깨끼 (39.125.64.197)
2021-04-13 23:49:17
https://bigbluebook.org/ko/122/2/
예수의 탄생과 유아 시절
2. 엘리자벳에게 나타난 가브리엘
122:2.1

유란시아에서의 예수의 필생의 과업은 세례자 요한에 의해 실제로 시작되었다.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리아는 유대인 제사장 지파에 속해 있었고, 그의 어머니인 엘리자벳은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속해 있는, 대가족으로 번영한 지파의 일원이었다. 사가리아와 엘리자벳은 결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자식이 없었다.
122:2.2

어느 날 한낮에 가브리엘이 엘리자벳에게 나타난 것은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한 지 약 3개월 후인 기원전 8년 6월말이었는데, 나중에 자신의 현존을 마리아에게 알려준 것과 똑같았다. 가브리엘은 이렇게 말하였다:
122:2.3

“네 남편 사가리아가 예루살렘에 있는 제단 앞에 서 있고,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해방자의 도래를 염원하고 있는 이때에, 나 가브리엘은 곧 신성한 교사의 선구자가 될 아들을 네가 곧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과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어야 할 것임을 알려 주려고 왔다. 그 아이가 자라게 되면 너희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전념하게 될 것이며, 장성한 후에는 네 가슴을 기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많은 혼들을 주(主)께로 인도할 것이며 또한 네 민족의 혼을 치료해 주고 모든 인류의 영(靈)을 해방시켜 줄 그의 도래를 선포할 것이기 때문이다. 네 친족인 마리아가, 약속된 이 아이의 어머니가 될 것이며, 나는 그녀에게도 나타날 것이다.”
122:2.4

이 환상은 엘리자벳을 매우 놀라게 하였다. 가브리엘이 떠난 후, 그녀는 이 체험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였고, 장엄한 모습의 그 방문자가 말한 것들을 오랫동안 숙고하면서, 다음 해 2월초에 마리아에게도 가브리엘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남편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122:2.5

아무튼, 엘리자벳은 남편에게조차도 다섯 달 동안이나 비밀로 간직하였다. 가브리엘의 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사가리아는 매우 회의적으로 수 주 동안이나 모든 체험들을 의심했으며,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어서야 비로소 아내에 대한 가브리엘의 방문을 반신반의하는 정도가 되었다. 사가리아는 엘리자벳의 임신에 관하여 매우 당황하였으나, 자신의 나이가 고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고결한-순수성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사가리아는 요한이 태어나기 약 6주전이 되었을 때에야, 인상적인 꿈을 꾸게 된 결과로, 엘리자벳이 운명적인 한 아들, 메시아가 도래할 길을 준비하는 자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확신하게 되었다.
122:2.6

가브리엘은 기원전 8년 11월 중순경에 마리아가 나사렛에 있는 자기 집에서 일하고 있을 때 그녀에게 나타났다. 그 일이 있은 다음, 마리아는 자신이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된 후, 예루살렘으로부터 서쪽으로 4마일 떨어진 유다의 성 언덕에 위치한 엘리자벳의 집을 방문할 수 있도록 요셉을 설득하였다. 가브리엘은 어머니가 될 두 여인들에게, 자신이 상대방에게도 출현할 것임을 알렸었다. 자연히, 그들은 서로 만나 각자의 체험들을 비교하고 자기 아들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였다. 마리아는 자신의 먼 친족이 되는 그 집에 3주 동안 머물렀다. 가브리엘을 만났던 환상에 대한 마리아의 신앙에 엘리자벳이 더욱 힘을 불어넣었고, 그래서 그녀는 운명의 아이의 어머니가 되는 부름에 더욱 충만하게 전념하려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그녀는 어떤 도움도 없는 아이, 영역의 평균적이고 보통인 갓난아이로서, 운명의 아이를 세상에 내놓았다
122:2.7

요한은 기원전 7년 3월 25일에 유다의 도시에서 출생하였다. 사가리아와 엘리자벳은 가브리엘이 약속한대로 아들이 생긴 것이 실현된 기쁨을 크게 향유하였으며,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 그들은 아이에게 할례를 베풀었고, 그들은 전에 지도 받았던 대로 요한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인 세례명으로 주었다. 사가리아의 조카가 이미 나사렛으로 길을 떠났는데, 엘리자벳이 아들을 낳았고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할 것이라는 그녀의 소식을 마리아에게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122:2.8

요한은 자신이 자라게 되면 영적 영도자가 되고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는 관념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조심스럽게 전수 받았다. 그리고 요한의 가슴 밭은 그러한 씨앗이 언제 뿌려지더라도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에도 그는 자기 아버지가 봉사하는 기간 동안 성전에서 자주 눈에 띄었고, 자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의 의의(意義)에 대해 크게 감동되곤 하였다.

◄ 122:1
예수의 탄생과 유아 시절
8. 예수의 탄생
122:8.1

밤새도록 마리아는 몸이 불편해서 그녀와 요셉은 거의 잠을 자지 못하였다. 해가 뜰 무렵 산통이 심해졌고, 기원전 7년 8월 21일 정오에, 다른 동료 여자 여행객들의 친절한 도움을 받아서, 마리아는 한 아들을 낳았다. 나사렛 예수가 세상에 태어났으며, 그는 마리아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가져온 옷에 싸여, 가까이에 있는 구유에 눕혀졌다.
122:8.2

그 전이나 그 후에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약속된 아기가 태어났으며; 팔 일째 되는 날에 유대의 실천 관행에 따라 할례를 받았고, 공식적으로 여호수아(예수)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122:8.3

예수가 태어나신 다음 날, 요셉은 인구조사에 등록했다. 그는 이틀 전에 여리고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남자는 여인숙에 머물고 있는 부유한 자기 친구에게 요셉을 데리고 갔으며, 그 친구는 나사렛에서 온 그 부부와 기꺼이 숙소를 바꾸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날 오후에 그들은 여인숙으로 방을 옮겼고, 요셉의 먼 친족 되는 집에 숙소를 얻기 전까지, 거의 3주간을 그곳에서 지냈다.
122:8.4

예수가 태어나신 지 이틀 후, 마리아는 엘리자벳에게 자기 아이가 태어났다는 전갈을 보냈으며, 요셉에게 예루살렘에 와서 사가리아와 함께 그들이 당면한 모든 관련사들에 대해 상의하자는 초청을 회답으로 받았다. 그 다음 주에 요셉은 사가리아와 상의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다. 사가리아와 엘리자벳은 예수가 진실로 유대인의 해방자, 메시아이시며, 자신들의 아들 요한은 조력자들의 우두머리로서 그의 오른팔 역할을 하도록 운명되었다는 것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 마리아도 똑같은 관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가 자라서 다윗의 뒤를 이어 온 이스라엘의 왕좌에 오를 수 있도록 다윗의 도시인 베들레헴에 자기들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별로 어렵지 않게 요셉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베들레헴에 일 년 이상을 머물러 있었으며, 요셉은 그 동안 목수 일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122:8.5

예수가 탄생한 날 정오에, 유란시아의 세라핌천사들이 지도자들 밑에 함께 모여 베들레헴의 구유 위에서 영광의 찬미를 불렀지만, 이 찬미의 소리들은 인간이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사가리아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보낸, 우르에서 온 어떤 사제(司祭)들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목동들은 물론 다른 어떤 필사 창조체들도 베들레헴의 아기에게 경의를 표하러 오지 않았다.
122:8.6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온 이 사제들은, 유대인들 가운데에서 “생명의 빛”이 아기의 모습으로 곧 나타날 것이라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자기 나라에 있는 기이한 종교 선생으로부터 얼마 전에 들었었다. 그래서 세 명의 이 선생들은 그 “생명의 빛”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찾아보려던 여러 주간의 수고가 허사로 끝난 후에, 그들이 막 우르로 돌아가려 할 때, 그들은 사가리아를 만나게 되었고, 그는 그들이 찾는 대상이 바로 예수임에 틀림없다는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으며,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냈고, 그곳에서 아기를 발견한 그들은 그의 육신적인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선물을 전해 주었다. 그들이 방문하였을 때, 아기는 태어난 지 3주 정도 되었다.
122:8.7

이 현자(賢者)들은 별을 따라서 베들레헴에 온 것이 아니었다. 베들레헴의 별에 대한 아름다운 전설은 다음과 같이 유래된 것이다: 예수는 기원전 7년 8월 21일 정오에 태어났다. 기원전 7년 5월 29일에 물고기 별자리 안에서 목성과 토성이 유례없이 겹쳐지는 현상이 있었다. 같은 해 9월 29일과 12월 5일에도 이와 비슷한 겹쳐지는 현상이 발생하였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천문학적 사실이다. 이러한 특수하지만 또 전적으로 자연적인 사건들에 대해, 선의(善意)를 가진 후세대의 열광적인 신자들은, 동방박사 세 사람이 베들레헴의 별을 따라 구유로 안내되었고 그곳에서 그 아기를 발견하여 경배를 드렸다는 흥미로운 신화를 만들어 내었다. 동양적이거나 근동의 마음을 지닌 자들은 요정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며, 그들은 종교 영도자들이나 정치적 영웅들의 삶에 관해 아름다운 신화들을 계속하여 지어낸다. 인쇄술이 없던 시절에는, 대부분의 인간들의 지식이 구전(口傳)으로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어졌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신화가 전통으로 바뀌고 또 그 전통이 결국에는 사실로 와전되기가 매우 쉬웠다.

◄ 122:7

122:9 ►
리플달기
0 0
성령충만 (211.253.82.235)
2012-09-12 12:37:49
성령충만인데요 탐욕을 성령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내 생각은 곧 하나님 생각 내계획은 곧 하나님 계획이에요.
저는 누구인가요?
리플달기
18 17
익명 (72.196.235.211)
2012-09-10 00:32:22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리플달기
7 16
일단은 (121.135.23.19)
2012-09-10 06:01:13
글쎄요.
박평일님의 글에 대한 독해력이 부족해서 인지.. 윗말하고 아래 퍼온 글하고 잘 연결이 안되네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세리를 높이시고, 바리새인을 낮추셨다는 말 맞지요?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왈가왈부 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는 철저하게 이 땅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예수께서 이 땅에 낭만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다가 가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의 마지막에 처참하게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두부나 무 자르듯이 나눌 수는 없지요. 밥과 똥이 언제나 뱃속에 있는 것처럼 한 개인이 그렇고, 역사가 그렇다는 건 당연하지요. 그러나 의도와 지향성에 있어서 만큼은 십자가로 갈 것인가? 자기 자신을 위해 달려갈 것인가? 가 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울 것이 없는 복음이 평일님에게 이 아침 부어 주시는 성령의 새로운 숨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리플달기
17 16
박평일 (72.196.235.211)
2012-09-10 07:23:31
맞습니다. 별로 관련이 없습니다. 그래서 삭제를 합니다.
리플달기
15 16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