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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노예’인가, ‘하나님의 자녀’인가'고개숙인 재벌의 아들', 경제 대통령 그리고 '우리 곁에 왔다 간 성자', 영등포의 슈바이처의 삶
김명섭  |  onthewaychurch@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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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년 09월 06일 (목) 11:32:01
최종편집 : 2012년 09월 27일 (목) 02:26:20 [조회수 : 9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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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백

“ 3절 그 모든 일에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이 글을 쓰는 나는 대한민국의 동쪽 변방 강릉에서 작은 교회를 섬기는 올해 42세의 감리교 목회자다. 나는 십자가만 세우면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던 한국교회의 성장기였던 1971년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주일학교에서 보냈다. 교회의 어른과 어린이의 비율이 같았던 한국교회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에 교회학교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수평이동 외에는 교회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던 한국교회의 정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1990년도에 신학교에 입학해서 1999년도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그 십년 동안 여러 교회들에서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청년사역을 하며 한국교회의 실상과 감소를 직접 목격 했다.

그리고 수많은 기독교인들 교회를 등지고 떠나가던 한국교회의 본격적인 쇠퇴기가 시작되던 2003년에 강원도 강릉에서 작은 교회를 개척해서 지난 십년 간 담임목회를 하고 있다. 지난 40년이 한국교회에서 나고 자란 한 사람의 목사로 성장하는 배움의 과정이 였다면, 이제 남은 30년은 그 배움으로 한국교회의 극심한 쇠퇴기를 감당해야 하는 사명일지도 모른다. 그 사명이란, 교회의 타락과 자본주의에 첨단을 걷는 박해로 인해 다른 복음을 찾아 떠나 간 수많은 데오빌로들에게 기독교의 참된 복음을 변증하고, 그것이 절망적인 세상을 이기는 참된 진리임을 증거 하는 일이라 여긴다.


‘굿뉴스(Good News)’

어린 시절 여름성경학교에서 함께 찬양하고 율동하던 주일학교 친구들... 학창시절 여름수련회에서 함께 눈물로 기도하던 교회학교 친구들은 이제 더 이상 교회에 남아 있지 않다.

열에 하나는 아직도 교회에 적을 두고 권사님이나 집사님이 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그 중 아홉은 교회를 떠났다. 화음에 맞춰 합창을 부르던 성가대원들은 지금은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고 술에 취해 유행가를 부르고 있다. ‘문학의 밤’에서 시를 읊조리던 친구들은 이제 수시로 급변하는 코스피(KOSPI), 코스닥(KOSDAQ)지수에 한숨 짓는다.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거리마다 물결치듯 민주화의 함성을 외쳤던 젊은이들은 이제 로또복권의 대박을 꿈꾸며 한 주간을 보낸다. 역사와 민족, 정의와 평화를 논하던 민주 청년들은 이제 자녀들의 성적과 입시, 요동치는 전세값과 내집마련의 꿈에 인생을 걸고, 매달 어김없이 돌아오는 카드값 걱정에 시름하는 소시민이 되버렸다.

그때 그 시절, 세상은 변화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세상은 변한게 없는데 우리는 너무 많이 변했다. 나의 사명은 그때 그 시절의 친구들에게 우리가 함께 교회에서 배우고, 노래했던 ‘기독교의 복음’, 우리가 한동안 까맣게 잊고 살아왔던 ‘영원한 가치들’이 오늘 우리가 겪는 고단한 삶을 이겨내고 참된 행복을 회복시켜 줄 변함없는 ‘굿뉴스(Good News)’라고 그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 필사성경



“차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오늘날 입 달린 사람이면 누구나 ‘교회개혁’을 말한다. 하지만 선언적인 비판만으로 교회는 한치도 새롭게 되지 않는다. 앞서 소개한 <교회 밖에 세상, 세상 속에 교회>의 저자인 김두식님은 한국교회의 회복과 희망은 '복음과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한다. 하지만,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하진 않는다. 내가 이 책을 기록하는 목적은 이 시대의 데오빌로인 김두식님과 같은 의식 있는 크리스천들의 고민에 대해 진지하게 응답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내가 한국교회 안에서 자라고 복음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배우고, 가르쳐 온 한명의 목회자로써 전하는 목회적 응답이다. 이 책은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약 3년에 걸쳐 강릉예향교회에서 교우들과 함께 나눈 설교말씀이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은‘성경을 해석 할 수 있는 권한’이 목회자들에게만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좋은 설교를 듣는 것을 신앙생활의 전부라고 여기며, 좋은 설교자를 만나는 것을 신앙생활의 핵심으로 여긴다. 이것은 성경에 대한 오해요, 한국교회와 교인들이 삶에서 말씀을 실천하고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주된 원인이다. 성경은 목회자의 설교용이나 신학자의 연구용이 아니라, 회중들이 직접 읽는 ‘회람용’이다. 단순한 성경통독의 차원을 말하는게 아니다.

성경의 기록목적은 독자들이 성경을 읽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가슴을 치며 새로운 삶으로 변화시키는 책이다. 이렇게 확신하는 까닭은 나의 체험에 근거한다. 나는 군대시절 요한복음의 말씀을 읽고 쓰고, 한 단어 한 문장 그 뜻을 묵상하는 가운데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면 삶이 변화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다. 성경은 ‘종교예식용’이 아니라 ‘삶에 사용하는 실전용’이다. 성경은 예수의 참된 가르침은 무엇이며, 참된 삶을 실현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책이며, 거대한 세상의 흐름 속에서 여전히 진리를 고민하며 씨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적용되고 실행에 옮겨지기 위해서 기록된 책이다. 문제는 오늘의 크리스천들은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 북한의 필사성경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누가복음의 주제는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가, 진짜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참된 행복’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다. 누가복음은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탐욕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존귀한 삶의 방식으로 초대하고 있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이나 모세가 전해 준 할례와 같은 형식적인 율법준수를 통해서 스스로 충분한 ‘하나님의 자녀’ 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누가복음은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야 말로 참된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언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모태신앙과 세례, 주일성수와 직분 감당하면 스스로 충분한 ‘하나님의 자녀’ 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누가복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결코 몇 가지 종교행위와 혈통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 곧 동기와 목적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증거한다.

앞으로 함께 살펴 볼 누가복음의 주제를 미리 간단하게 요약해 보자면,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하신 말씀’, 곧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누가복음의 핵심주제이자 복음이다. 그렇다면, ‘영원한 가치’란 무엇인가? 그것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친히 삶으로 증거하신 사랑과 희생, 섬김과 나눔 같은 ‘불멸하는 가치’들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 목적을 ‘영원한 가치를 실현’하는데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와 달리 탐욕의 노예는 매사에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하며 물욕과 명예욕, 성취욕과 권력욕으로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는 이들을 말한다.

“어떤 존재로 사는가”의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그 삶의 열매가 반드시 자력 처럼 삶에서 따라오는 까닭이다. (성령을 쫓아 희생과 사랑, 섬김과 나눔, 용서와 화해를 추구하면 일치와 평화, 기쁨과 하나님 나라를 열매로 거둔다. 하지만 이와 달리, 탐욕을 쫓아 명예욕과 권력욕, 물욕과 정욕, 쾌락을 추구하면 경쟁과 시기, 질투과 다툼, 분쟁을 열매로 거두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심는대로 거두는 법칙이다.)

 

   
▲ 진시황제의 동상

 

진시황과 예수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어린시절 주일학교에서 즐겨 부르던 찬양 속에 복음의 진수가 담겨 있다. 돈으로 힘으로 벼슬로 천국을 이루려던 사람이 있었다. 중국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 양정이다. 그는 아방궁을 짓고 온갖 부와 화려함을 누리며 불로초를 구해서 불로장생을 꿈꿨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인 만리장성을 쌓아 국가의 안보와 개인의 안전을 추구했고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건설하는 위대한 업적을 쌓았다. 인생의 성공과 성취 라는 차원에서 보면 감히 그와 견줄 사람이 없을 만큼 실로 위대하다. 이와 달리, 예수의 삶은 인생의 성공과 성취 라는 측면에서 보면 세상에서 가장 실패한 사람 처럼 보인다. 불로장생은 커녕 30대에 객사했고 아방궁은 커녕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둥지가 있건만 머리 둘 곳 조차 없었다. 제자들에게 마져 배신을 당해서 대역죄인(大逆罪人)이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십자가에서 수치스럽게 처형 당했다. 실로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별 볼 일 없는 인생이 였다. 하지만, 이것이 그분의 삶에 종착역이 아니였다. 바로 여기에 복음의 비밀이 있다.

만일 이것이 예수의 마지막이 였다면, 사도바울의 말대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우리들처럼 불쌍한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한 푼의 돈도 한 평의 부동산도 없었다. 장수도 누리 못했고 내세울 업적도 없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오직 한 가지에서 완벽한 성공을 거두셨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온전히 구현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전생애를 '한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하나님의 아들'로 사셨다.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를 사망 가운데 승리하게 하셨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높여 주셨다.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고, 세상의 모든 권세가 그분의 발 아래에 경배 할 만큼 존귀하게 하셨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십자가와 부활신앙이다.

   
▲ 만리장성

 


온갖 불로초를 정성껏 섭취 했던 진시황은 그의 나이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불로초가 그에게 영원한 삶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의 우편에서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영원한 삶을 누리고 계신다. 진시황의 아방궁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지만, 예수님의 몸된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원한 성전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북쪽의 흉노족을 막기 위해 쌓았던 만리장성은 그의 나라를 지켜주지 못하고 진시황의 사후 8년만에 외적이 아닌 내란에 의해 멸망했다. 하지만, 예수께서 말씀으로 세우신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 세상이 마침내 종말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사랑과 평화를 꿈꾸는 그의 백성들을 통해 영원토록 왕성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길이 아니라 진시황의 길을 쫓아 살아간다. 아니, 예수를 바라보면서 진시황의 길을 따라 걷는다. 그 이유는 물질적인 부요와 인생의 성공, 육체의 건강이 참된 행복을 안겨주리 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돈과 성공, 명예와 건강은 인생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필요조건”들이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될 순 없다. 왜냐하면, 돈과 성공, 건강과 인기는 인생에 없어서 안될 필요한 것들이지만, 그것에 붙들려 탐욕에 이끌려 살면 그보다 더 중요한 생명(삶, Life)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리기 때문이다. (*‘필요조건’이란, 필요는 물질적이며 동시에 영적인 인간의 삶에 반드시 있어야 할 조건들이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탐욕은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는 죄와 사망의 씨앗이다. 예컨대, 의식주를 구하는 것은 필요의 영역이지만 부동산 투기를 위해 두 채 이상의 집과 필요 이상의 사치스런 의복,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평생을 다해도 사용하지 못할 만큼의 천용 또는 만용 할 양식을 추구하는 탐욕은 반드시 인간의 영혼과 삶을 무참하게 타락 시키기 때문이다.)



우리 곁에 왔다 간 성자

   
▲ 선우경식원장

지난 2008년 4월 한겨레신문 1면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회장직 사퇴소식이 대문짝만 하게 보도 되었다. 그날 신문의 한 구석에 작은 박스 기사로 '영등포 쪽방촌의 슈바이쳐' 라고 불리던 ‘의사 선우경식 성요셉의원장의 죽음’도 나란히 보도됐다. 동시대를 살았던, 동연배들인 이들의 삶은 놀라울 만큼 유사한 공통점과 극명한 차이점으로 대비 된다. 낯선 이름의 선우경식 성요셉의원장은 87년부터 20년간 영등포 쪽빵촌에서 도시빈민과 노숙인, 외국인 노동자등 무려 43만명을 무료진료를 행하며 살았다.

 

그는 의사로서의 출세, 명예와 돈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했다. 독신으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40년 전 선친이 물려주신 작은 집에서 평생을 살다가 63세의 나이에 지병인 암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선우경식 원장의 행적이 살아 있는 동안 세상 사람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평생 취재를 거부하고 그져 자신의 소명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당했기 때문이다. 한 언론은 그의 삶을 가리켜 ‘우리 곁에 왔다 간 성자’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성자(Saint)라는 용어는 종교적 가치를 완전히 구현한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로마카톨릭에서 주로 사용하는 이 단어를 성경적인 언어로 바꾸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이다. 비판적인 언론으로 대표되는 한겨레신문은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보도하며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팽창하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영혼은 메마르고, 높아지는 부의 바벨탑 아래서 가난과 질병의 고통이 더 깊어지는 이 시대에, 이 천년 전 예수가 간 길을 따라 걸었으니 그는 참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짧지만 영원한 가치를 추구했던 그의 삶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칭송을 받았다.

 

   
▲ '영등포의 슈바이쳐' 선우경식 원장 장례미사

 



고개숙인 재벌의 아들

‘국민들께 머리숙여 사죄 드립니다’ 같은 날, 세계초일류기업이라 일컫는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특검을 통해서 차명계좌와 불법자금, 세금포탈과 편법증여 등의 혐의를 받다가 결국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으며 삼성그룹의 회장직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그날은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이던 그의 아버지 故이병철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던 87년 12월 이후 삼성그룹의 회장직을 물려 받은 20년 간의 ‘재벌의 아들’로 살았던 그의 삶이 평가 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87년은 선우경식원장이 성요셉의원을 시작한 그때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20년 간의 시간이 였다.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린 대한민국 최고 재벌의 뒷모습과 하나님의 아들로 무명의 봉사와 헌신을 살다간 한 사람의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자손만대 쓰고도 남을 만큼의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권세를 가지고도 그는 왜 그토록 고개숙여 사죄하는 부끄러운 길을 선택했을까? 그토록 많은 재산이 그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만일 그가 만족했다면 불법과 편법과 같은 부끄러운 짓거리를 해서 더 많은 재물을 모으려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고개숙인 재벌의 아들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진리 하나가 있다. 그것은 이기심과 탐욕에 붙들려 살아가는 인생은 제 아무리 막대한 부와 권세를 소유 할지라도 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은 선우경식원장과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삶 보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과 같은 재벌의 아들처럼 살기를 소망한다.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 재벌로 사는 이건희 삼성그룹회장과 하나님의 자녀로 살다간 선우경식원장 가운데 과연 누가 더 행복했을까? 누구도 단언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둘 가운데 누가 더 만족스런 삶을 살았는지는 분명히 말 할 수 있다. 한 사람은 불법과 탈법을 동원해서 라도 더 채우려고 했지만, 또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눠 줄 만큼 모자람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사는 동안에 어떤 존재로 살다 이 땅을 떠날 것인가?>

우리가 함께 읽게 될 누가복음은 바로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이다. ‘누가, 진짜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참된 행복’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다. 누가복음은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탐욕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존귀한 삶의 방식으로 초대하고 있다.


(다음... 선지자 '말라기'에서 제사장 '사가랴'까지)

*<뜻으로 읽는 누가복음, 루카스(LUCAS)>는 당당뉴스를 통하여 매주 2회(월요일, 목요일)에 연재합니다. 많은 성원과 관심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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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ver (1.236.119.253)
2012-09-11 14:32:47
영원한 말씀 곧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
목사님의 예리한 지적과 복음의 말씀이 나를 비롯해 이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챤들에게 자기를 성찰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샬롬
리플달기
13 17
그날이 오면 (220.117.20.136)
2012-09-07 17:59:11
삼성공화국과 그곳의 직원
삼성 이건희 회장은 기독인도 아닌걸로 알고 있고해서, 개인적으로는 선우원장님하고는 비교가 좀 거시기하다고 생각됩니다만..^^;

국내 굴지의 회사라고 언급되는 삼성이라는 회사에 '몸담고 계시는' 기독인이나 그곳에 '취업하려는' 기독 대학생에게는 더욱 와닿는 글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리플달기
8 22
감사해요. (211.207.89.198)
2012-09-07 13:27:43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
평소 글쓰시는 것이 예사롭지 않으시더니..
이런 내공을 갖고 계신 분이셨군요.
벌써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리플달기
23 21
김명섭 (125.179.213.78)
2012-09-07 15:30:13
'기대'에 감사 드립니다.
다소 서툴고 지루한 글에 성원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매주 2회 월요일과 목요일에 업로드 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리플달기
22 20
양창두 (183.97.192.53)
2012-09-07 17:36:58
조은글 정말감사합니다 때가가까왔다는 주님말습묵상하며 세속적이 아닌 말습 중심이 더 적극적으로 전파 되기를기도하며 카 발전기원 합니다 샬롬 빅토리.
리플달기
22 20
김명섭 (125.179.213.78)
2012-09-07 19:55:38
한 책의 사람
귀한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존 웨슬리는 성경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한 가지 사실, 곧 천국에 가는 길을 알고 싶다. 그 행복한 항구에 어떻게 안착할 수 있을지는 하나님 자신이 그 길을 가르치려고 내려 오셨다. 그는 그 길을 책에 기록하였다. 그 책을 나에게 달라 값에 구애없이 하나님의 책을 나에게 달라. 나는 그것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나를 위한 충분한 책이 담겨 있다. 나를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 되게 하라.”(John Wesley)
리플달기
23 20
hanna (112.150.148.20)
2012-09-19 13:02:32
목사님 궁금했어요 어떤분이신지 오늘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지난번 글에는신학자이신가했네요 목사님 글을 기대하며 한줄한줄 가슴조이며 터질듯한 아멘을 연발합니다 양약이되고 생수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다음호를 기대하며
리플달기
1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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