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가 이념의 문제이다. 한국전쟁 이전부터 좌우의 이념대립이 극에 달했던 한민족은 결국 좌차 이념을 따른 조선과 우파 이념을 따른 한국으로 나눠지게 되었고 동족상잔의 비극으로까지 치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간 극한 대립은 벌써 6-70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것이 없는 실정이다. 때마다 돌아오는 각종 선거는 색깔논쟁으로 채워졌고 한쪽은 상대방을 빨간색으로 칠하지 못해 안달을 했고 다른 한쪽은 수세적으로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이런 현상은 정치인들이 정책적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단지 이념논쟁으로 표를 얻고자 하는 얄팍한 속셈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튼 한민족, 한국사회에 있어 이념의 대립은 심각한 수준을 넘어 국가의 존폐 위기로까지 커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심각하고 암울한 상황 가운데 햇살 같은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보수우파 정당인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박근혜 후보가 좌파적 인사로 분류되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이 있는 봉하마을을 찾아 참배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수십년간 한국 정권을 독점했던 우파가 지난 10년 동안 좌파에 정권을 내주면서 한 소리가 '잃어버린 10년'이었다. 그 잃어버린 10년의 중심에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파의 고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공세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집요하고 악착같았다. 우파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적대세력의 우두머리로 보고 생을 마감한 이후까지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우파의 핵이자 대통령 후보이고 과거 장기독재 시대의 잔존세력이라 할 수 있는 박근혜 후보가 적진의 수장과 같은 존재의 무덤을 찾아 참배하겠다고 하니 이는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또 진보세력에서도 감히 하지 못한 매우 의미심장하고 파격적인 행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선언의 진심이 무엇인지 무엇을 노리고 하는 행보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수십년을 망령처럼 떠돌면서 한국을 옧죄던 이념의 대립을 넘어서고자 하는 박근혜 후보의 결단 자체에는 칭찬과 박수를 아낄 이유가 없다. 그동안 아무도 하지 않았고 하지 못했던 이념 대립의 경계를 넘고자 하는 것은 한국사에 길이 남아야 할 사건이다. 이 행보에 대한 시시비비가 있고 호불호가 있겠지만 나는 어쨌건 이 행보는 매우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의 행보가 좌우 이념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화해와 대통합의 발걸음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진정성이 담겨있지 않다면 그것은 국민에 대한 매우 심각한 기만이며 표를 얻기 위한 얄팍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통합을 위한 진정성이 담긴 행보라면 높이 평가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만약 얄팍한 속임수라 한다면 민주주의의 후퇴요, 국민에 대한 사기행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박근혜 후보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단순하게 묘역을 참배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과거사에 대한 사과 혹은 인정의 단계까지 가지 못한다면 국민들의 마음을 켤코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동서고금, 좌파우파를 떠나서 군인이 군사력으로 합법적정권을 전복시키고 자신이 권력을 쟁취한 쿠데타는 결코 인정받을 수 없는 범죄이다. 성공한 쿠데타라 해서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의 정권찬탈이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쳤으며 정당하지 못한 일이었음을 시인하지 않고 오히려 정치인이 평가할 수 없는 일이며 국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뇌이고 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해도 범죄는 범죄이고 민주주의를 저해한 것도 사실이 아닌가!


좌우를 뛰어 넘는 긍정적 행보라 하더라도 그의 마음 속에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없고 쿠데타 세력에 대한 정죄가 없다면 그 행보는 그저 사기행각, 표를 얻기 위한 제스쳐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적 심성이나 아버지를 존경하는 딸로서의 심정은 이해하나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기 위한 자격을 충분히 채우는 조건은 되지 못한다. 참배를 수백 번 한다 해도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고 국민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당위가 없다면 때마다 마지 못해 흉내만 내는 일본의 대 한국 사과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아버지의 통치 시대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탄압을 당했고 정치적 사형선고뿐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사형선고를 받아 형장의 이슬로 스러져간 이들도 부지기수이다. 최근에는 고 장준하 선생의 죽음과 관련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미 조사가 끝났다는 식으로 넘기는 발상으로는 안 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다 해도 그의 죽음이 결국 정치적 타살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고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결단에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그저 개인적인 죽음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며 고 노 대통령을 향한 이들의 가슴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하나 더 남기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신약성서 사도행전에 보면 박근혜 후보가 새겨 들어야 할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의 제자 사도 빌립이 전도를 할때 많은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다. 그런데 그 기적을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 중에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있었다. 시몬은 세례를 받고 빌립을 따르면서 빌립이 행하는 기적을 자기도 일으키고 싶어 빌립에게 돈을 줄테니 자기도 그런 능력을 갖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한 빌립의 대답은 "그대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고 생각하였으니, 그대는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오. 그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우리의 일에 그대가 차지할 자리도 몫도 없소. 그러므로 그대는 이 악한 생각을 회개하고, 주님께 기도하시오. 그러면 행여나 그대는 그대 마음 속의 나쁜 생각을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오. 내가 보니, 그대는 악의가 가득하며, 불의에 얽매여 있소." 였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아니라 기적에 관심이 있었던 시몬은 결국 크게 꾸지람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후보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도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꼼수라면 국민들의 꾸지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의 결단과 행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의 봉하마을 방문은 이념의 좌우를 떠나서 인간에 대한 예의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예의이다. 쉽지 않았을 결정이었겠지만 좌우 이념대립이 극심한 현 한국사회에 매우 중요한 화해의 몸짓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한국사회를 이런 대립의 도탄에 빠드린 것 역시 정치인들의 얄팍한 처신과 민심 챙기기용 쑈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박 후보는 진심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예의를 지켜주고 좌우의 화해와 상호적 성장을 위해 올바른 결단을 해주기를 바란다. 얄팍한 술수와 쑈를 통해 대통령이 된다면 그 자신과 한국을 위해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