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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일기 - 행복해진 지연이와 엄마활짝 핀 벚꽃처럼 웃는 지연이와 우연히 만난 그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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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3월 24일 (금) 00:00:00 [조회수 : 21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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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2일 전학해 온 4학년 2반의 제자 강지연 양은 몸이 야윈 편인데다 길고 헐렁한 옷을 걸치고 다녀 가뜩이나 얼굴에 핏기가 없어 창백해 보였는데, 자신감이 없어 슬금슬금 눈치를 보곤 했다. 같은 날 입학한 최유빈이 너무 자신감에 넘쳐 목소리를 절제하지 못하고 방방 뛰는 것 하고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사건건 지연이 주변에는 친구들과 말다툼이 일어나고, 피해의식 때문에 그 아이가 핏대를 올리며 항의하는 일이 목격되었다. 하루는 급식실에서 급식할 때 김성철이 국물을 지연이 옷에 튀기는 사건을 계기로, 지연이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성철이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지연이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 대로 이야기를 해 드렸지만, 지연이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고, 전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아무 갈등도 없었다며 딸을 두둔하셨다. 대부분 학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를 두둔하는 경향이지만, 객관적으로 교사가 정황을 이야기하고, 지연이에게 피해 의식이 있어 친구들과 다툼이 잦다는 지적은 듣지 않으려고 하셨다. 이해하지 못하는 학부모에게 아이들 일로 시비를 가리려고 하기보다는, 그 엄마의 이야기를 일단 수용해 주고 더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지연이의 피해 의식과 언쟁하는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피구 게임을 할 때도 지연이만 판정마다 불복을 일삼고, 눈을 흘기거나 불만을 토로하며 토라지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용돈으로 주전부리를 하여 책상 주변이 군것질한 음식물 찌끼나 껍질로 너저분했다. 자주 지적해도 버릇이 깊이 든 분야였다.
그렇지만 일일이 잘못을 따지거나 대응하지 않았다. 어떨 때는 잘못도 눈감아 주고, 오히려 자신감을 갖도록 칭찬도 많이 해 주었다. 가능한 지연이에게 잔심부름도 시켜주는 등 관심을 베풀어 주었다. 그랬더니 지연이의 원망에 찬 듯한 눈동자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문제끼가 있는 아이들에게는 잘못을 혼내거나 매보다는 감화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학년말에는 친구들과 다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잘한 구슬을 실로 꿰어 목걸이로 만드는 일을 잘 해, 그것을 무작정 금지시키지 않고 잘 한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랬더니 다른 여자 동무들도 너도나도 지연이에게 그 방법을 묻고 따라 하기 시작하였다. 구슬이 바닥에 나뒹구는 문제는 있지만, 지연이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눈감아 준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과 흔연히 어울리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 3월에는 지연이가 5학년으로 진급하고 나는 2학년 담임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연이가 공부를 마치고 방송실 청소 당번 일을 하러 왔다가 마치 활짝 핀 벚꽃 같은 얼굴로 우리 반 문을 열고 들어와 인사를 한다. 지연이가 일 년간 내 진심을 알아 준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지연이는 남자 동생이 며칠 전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 뼈가 부러진 이야기도 해 주는 등, 반이 바뀌고 나서 더 눈에 띄게 마음을 열어 준다. 그런데 어제는 글을 쓰다 약간 늦게 후문으로 나가는데, 어느 아줌마가 나를 보고 반색을 하는 것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누구 엄마라고 하는 소리를 잘 못 들었는데, 바로 그분이 지연이 엄마였다. 그 엄마 역시 딸의 바뀐 표정만큼이나 환한 얼굴로 내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다.
담임일 적에 대면하고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겉돌기만 하시던 그분이 먼저 날 알아보고 인사를 하시다니, 고맙기도 하고 놀라웠다. 내게도 마음을 열어 주시다니! 마침 다친 지연이 동생을 데리고 병원에 가시는 길이었다. 그 아이가 지연에게서 다쳤다는 말을 듣고, 들은 즉시 그 아이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 주었는데, 주님이 감화하게 해 주신 모양이다. 지연이 동생도 만나 보니 반가웠다. 이 글을 쓰기 얼마 전에 지연이가 그 동생을 교실로 데리고 와서 사탕을 주고 둘 다를 칭찬하고 이뻐해 주었다. 지연이는 내 친구 박병화 목사가 돌보는 상동21세기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아이라 더 사랑스럽다. 그 엄마도 지연이가 그 교회에 기특하게 빠지지 않는다고 자랑하셨다. 횡단보도까지 같이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진작 이렇게 아이들에 대해 대화하고 지냈더라면 하고 아쉬웠다. 한 달간 독감을 몸에 달고 다니면서 몸은 많이 지쳤지만, 선생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고, 내 교육 방침을 이해해 주시는 부형들이 늘어날 뿐 아니라, 한 아이나 한 학부모라도 나 때문에 상처 받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는 결실을 보게 되니 정말 발걸음이 가벼웠다.
문제가 없던 대부분의 평범한 아이들도 자주 나를 찾아오지만, 누구보다도 나는 지연이가 해맑은 미소로 매일 다가와 인사하는 걸 보면 대견하다. 언제라도 커서 대한민국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될 나의 사랑스런 제자들, 그 중에서도 왕따를 당할 위험에 있던 아이들이 친구들과 행복하게 어울리며 자신 있게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2006-12-24(금)
이일배 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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