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악단?!
보천보전자음악단이나 왕재산경음악단 정도는 혹시 들어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마도 모란봉악단은 다들 생소하지 않을까 한다. 당연하다. 모란봉악단은 최근에 조직된 음악연주악단으로 아직 정식으로 창단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조선에서는 그 명성이 드높다고 한다. 최근 조선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하 위원장)의 지도 하에 모란봉악단의 시험공연을 대대적으로 개최하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중앙텔레비전을 통해 이 악단의 공연이 방송될 때 거리마저 한산했을 정도로 큰 인기와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이 악단이 큰 관심을 끄는 이유는 조직과 구성, 연주방법, 악기사용, 창법과 의상, 무대매너 등에서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전자음악은 종종 조선에서 활용되기는 하지만 모란봉 악단에는 일렉트릭 바이올린과 일렉트릭 첼로가 가세하였다. 또 성악 파트를 담당하는 가수가 다섯 명이 있는데 이들의 의상은 사회주의적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적으로 보인다. 번쩍번쩍하는 의상을 차려 입고 간간히 몸동작도 선보인다. 한국의 소녀시대까지는 아니더라도 과거 바니걸스나 무슨무슨 시스터즈 같은 스타일로 노래를 부르는데 연령은 소녀시대보다는 조금 높아 보이고 한국의 테크노뽕짝이나 댄스풍 트로트 걸그룹을 보는 느낌까지 든다. 관심이 생겨서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하여 감상하니... @_@! 게다가 레퍼토리는 조선의 철천지 원쑤라고도 할 수 있는 미국의 노래들이 끼워져 있었다. 마이 웨이, 영화 록키의 주제가 등이 자연스럽게 연주되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파격적이라는 단어가 제일 적절하다.
모란봉악단에 대한 분석은 분분하다. 해외에서 유학하고 온 김정은 위원장이 청소년 시절에 접한 자본주의적 대중문화를 접합시켰다는 해석도 있고 한호석 같은 재미학자는 조선의 문화를 수용하라고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를 담은 악단이라고 해석한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조선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의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자본주의 진영에서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는 장마당에 관한 것도 많은 의미를 시사한다. 원래 장마당에 나와 장사를 할 수 있는 공식적인 연령은 50세 이상이었다고 하다. 그러나 최근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하면서 이 연령제한을 40세 이상으로 조정했다. 물론 조선 인민들의 반응은 뜨겁다. 게다가 이런 저런 명목으로 걷어가던 각종 성금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고 한다. 이처럼 인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조치들을 취하자 김정은에 대한 인민 차원의 인기는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조치들이 김정은 체제를 안착시키기 위한 일시적인 조치이거나 혹은 국가의 배급체제가 무너지고 국가의 재정이 바닥을 친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국민들의 자급적 구조를 유도하기 위해 허용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조선을 여행하는 관광상품이 한국에서의 추측과는 달리 매우 활발하게 거래되는 것으로 보인다. 나 역시 지난 2011년 10월 평양을 방문하였을 매우 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게다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관광객들을 칠골교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자동차를 직접 타고 중국에서 국경을 넘어 나진 선봉 지역을 관광하는 상품, 여객선을 타고 조선 동부 해안을 관람하는 상품도 출시되었다고 한다. 또 2-30달러에 나선지역 민가에 들러 민박을 하는 상품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생각처럼 그렇게 꽉 막힌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하다. 최근에는 또 조선 인력이 중국변경지역의 공장으로 수출되고 있다고 한다. 단둥이나 심양, 장춘 쪽에서는 수만 명 단위의 북한 인력을 수용하기 위한 기숙사 공사를 속속 진행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서로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멱살잡이를 한다는 소식도 일간지를 통해서 접했다. 이들은 외화벌이에 동원되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소유를 보장 받기도 하기 때문에 지원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조선 노동자들은 중국에서 받는 월급의 일부로 자본주의적 상업에 투자하거나 혹은 직접 뛰어들기도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직업의 분화가 이뤄진다. 예를 들어 주차장 사업이나 세차요원, 발레파킹 등의 직업군이 그렇다.

평양에 10만호의 살림집을 건설하는 현장도 멀리서나마 직접 목도하였다. 북측 인사의 설명에 의하면 모란봉 구역에 건설되는 고층 아파트 수동은 이틀에 한 층씩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8월에 방문하였을 때는 3-4층에 불과하던 건설공사 현장은 10월에 방문하였을 당시에는 40층 가까이 올라가 있었다. 그런데 북한 전문가에 의하면 이 살림집에 들어가는 입주권을 사고 파는 매매가 비록 불법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거래를 위한 부동산 중개인이 등장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독특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남북 간 왕래의 조짐도 새로운 변화를 반영하는 것 같다. 조선을 탈출했다가 중국 당국에 의해 북송되었던 박인숙씨는 다시 재탈북을 하였다가 한국으로 왔지만 최근 다시 조선으로 돌아갔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현상만을 놓고 볼 때 이제 드디어 남북 간의 자유왕래가 실현된 것인가 하는 착각에 빠져들 정도이다. 방법이야 어쨌건 분명한 것은 남과 북을 수시로 드나드는 경우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중국의 입장도 고려해볼만하다. 중국은 탈북자를 인정하지 않고 단순 월경자라고 주장하고 북송한다. 조-중 간 국경이라는 것이 한국과 조선의 경우와는 다르게 느슨한데 식량난으로 중국으로 월경했다가 미처 되돌아가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주장인데 이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변경지역의 조선 주민들은 수시로 강을 건너 중국으로 와서 식량을 구해 갖고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단순 월경자와 탈북자를 구분할 필요가 있음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탈북 혹은 월경이 의외로 쉬워 보인다는 것이다. 탈북 했다 북송된 이가 다시 탈북을 감행하고 한국에 왔다가는 다시 조선으로 귀환한다. 이런 상황은 조선 당국이 탈북 혹은 월경에 대해 대응할 능력이 전혀 없거나 관대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물론 여전히 식량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평양은 날로 번성하고 있으나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상황이 좋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평양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다 배를 곯는 것은 아니란다. 전체 국민의 30% 정도가 취약계층인데 이들은 하루에 한 끼 먹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물론 30%가 적은 비율은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인민이 다 찢어지게 가난한 상황도 아니라는 말이다. 단지 상위 30%와 중위 40%가 하위 30%를 부양할 능력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식량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현재 조선은 민간교류, 인도지원단체를 포함한 한국과의 대화채널을 완전히 닫고 있지만 간혹 비공식적 루트로 조선 측 인사들을 만나본 이들의 말에 의하면 그들 방식을 기본으로 한 변화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했단다. 우리가 말하는 방식으로 개혁이니 개방이니 하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겠지만 내용면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으며 그런 움직임이 감지되고 또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아무튼 조선은 지금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조선의 변화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선의 붕괴의 조짐이라든가 조선이 결국은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나오게 된 것이라고 판단한다. 즉 자기들의 관점에서 조선을 판단하고자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관점은 결국 원하건 원하지 않건 자기중심적인 해석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에 따라 자기중심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대책을 마련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그게 현재 이명박 정권의 실수이자 실패의 원인이다. 그들의 변화는 그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언어로 이해하고 그것을 우리의 언어와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명박 정권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의 언어를 기계적으로 우리의 언어로 바꾸려고 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책이라고 내 놓은 것이 비핵개방3000이니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실수와 실패를 만회하고 바로잡기 위해서는 바로 이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맞다. 조선은 변하고 있다. 어떤 방식인지 정확하게 짚을 수는 없겠지만 변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나머지 반쪽인 한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 변화의 내용과 이유, 방향과 크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저 이념적으로 붕괴니 세습안착을 위한 정치쑈니 하는 식으로 이념적으로만 대할 것이 아니다. 편향되고 편협하며 이념지향적인 전제가 있으면 제대로 보기 어렵고 대책을 마련하기 어렵다. 이제는 한국도 달라져야 하고 변화되어야 할 때이다.

2012년은 한국의 대선이 있는 해이다. 조선도 최근 지도자가 교체되었으며 원수 칭호도 받았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출발선상에 서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반도 문제에 지대한 관심과 영향력을 가진 미국과 중국 역시 세대교체, 정권교체 혹은 대선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의 잘잘못을 따질 것이 아니라 새판을 짜고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기 위한 준비와 협의를 해야 할 때이다. 조선은 이렇게 변화의 물결을 탔는데 한국은 여전히 기득권에만 머물러 경제력 11위라는 것에 안주하면서 여전히 목에 힘만 주고 있을 것인가? 이제 선택해야 한다. 변화를 따라 한반도의 새 틀, 평화의 미래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조선의 변화로 인한 상호발전의 기회를 또다시 발로 뻥 차버릴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