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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예수' 세미나를 마치며 - 전영철 (새기운)
최덕효  |  vinov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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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년 06월 21일 (목) 13:52:59
최종편집 : 2012년 06월 22일 (금) 00:11:57 [조회수 : 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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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예수’(Jesus for the Non-Religious) 세미나를 마치며

                                                                                                        전 영 철 (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 대표)
                                                       
1. 동서의 만남

생애를 거의 마무리짓는 스퐁에게 새롭게 동터온 비전은 전통적 기독교가 아니다. 유대교나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과 같은 유신론적 종교가 아니라, 그 종교 너머, 확대된 인간의 맨 끝에서 만나는 생명, 사랑 및 존재의 체험이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었다. 평생을 몸바친 기독교를 통해서 시작된 스퐁의 이같은 말년의 깨달음은 기독교의 경계를 훨씬 넘어, 종교에서 해방된 또 하나의 세계다. 이것은 유신론적 종교가 아닌, 궁극적 깨달음의 세계다. 이런 기독교는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을 불문하고 널리 알려져 있는 재래의 기독교와는 다르다. 결국 기독교가 유대교의 줄기에서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듯이, 스퐁이 말하는 새로운 기독교는 장차 기독교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스퐁은 그가 도달한 새로운 비전이 총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이름을 명명하기 전에, 그가 드디어 ‘종교에서 해방된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스퐁은 평생에 걸친 기독교에 헌신해온 긴 여정 끝에, 그 기독교에서 풀려나는 해방을 맛본 것이다. 그는 유신론적 인격신에 대한 ‘신앙’을 잃은 대신, 궁극적인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는 기독교로부터 시작하여 어떤 의미에서 보리수아래 득도한 인도의 싯다르타와 유사하게, 자신의 전 존재를 내어준 십자가위의 예수를 통하여 이같은 깨달음의 법열을 얻은 것 같다.

그는 이 책에서 기독교의 오랜 유신론적 전통에서 유신론을 해체하고 그 잔재를 철저히 제거했다. 그 과정에서 스퐁은 그의 탐구가 불교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도달한 것은 처음부터 유신론을 전제하지 않으며 깨달음에 중심을 두었던 원시불교의 출발점에 도달하는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큰 산의 서쪽 입구로부터 파들어 가기 시작한 세계가 동쪽 입구로부터 파들어온 또 하나의 다른 세계와 마주쳐 마침내 서쪽과 동쪽의 두 세계를 잇는 하나의 큰 터널이 관통되는 장관을 눈앞에 보는 듯하다.


2. 예수는 무엇에 대한 도전자였는가.

스퐁은 철저하게 복음서까지도 예수가 예배용으로 재해석된 것이었음을 밝혔다. 따라서 목격자들의 진술, 민중의 원래의 체험, 나아가서 예수자신의 체험을 재구성하는 데는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서는 그 한계를 극복하고 예수의 또 다른 면목을 밝혀낼 수도 있는 일이다. 스퐁은 ‘예수의 원래 이미지 탐구’(12장)에서 ‘나는 성서도, 신조도, 교리도, 교의도 그리고 심지어 종교자체도 초월하여 예수를 탐구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 생명의 신비, 사랑의 신비 및 존재의 신만을 응시하게 될 것이다’ 라 밝힘으로써, 그의 주요관심사가 ‘신비’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그의 의도대로 기독교와 성서에서 유신론을 해체하고 분리하여 새로운 신비를 드러낸 것은 그가 이룬 큰 성과라고 평가하고 싶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예수는 종교적인 ‘신비가’였던 것만이 아니라, 현실에 대해서도 도전한 총체적인 ‘도전자’였던 것을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같은 동료 신학자 중에서도 도미닉 크로산은 이미 20세기 말에 발표한 ‘예수, 사회적 혁명가의 전기’(Jesus A Revolutionary Biography, 1991)나, 최근의 저서 ‘비유의 위력’(The Power of Parable, 2012)에서 ‘도전자 예수’의 모습을 심도있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크로산은 2천년전 파국의 한 가운데서 로마제국과 유대교라는 거대한 양대 정치종교체제에 맞서 외롭게 도전했던 예수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스퐁은 평생의 과제였던 유신론의 해체를 통하여 본서에서 불교적 영성과 견줄 수 있는 기독교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점에서 높이 평가되는 반면, 그의 저서 제목이 시사하는 ‘비종교인을 위한 예수’에 대한 목표를 부분적으로 성취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 하면 그는 ‘유신론’을 해체하기는 했지만 역시 ‘신비’ 종교의 세계에 머무는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비종교인을 위한 예수’를 완성하는 길은 사랑의 신비종교만이 아닌, 냉혹하고 무자비한 세속의 체제에 대해서도 정면 도전하여 정의를 구현할 때일 것이다.

묻건대 스퐁은 처음부터 예수는 세속적인 체제와는 무관하게 종교적인 체제에만 도전했던 혁명가로 보았던 것일까. 다시 말해서 예수는 종교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 종교적인 체제에만 도전했던 사람이었을까. 예수는 보다 크고 근원적인 뜻에서라고는 하나, 역시, 종교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던 인물일까. 아니면, 크로산의 생각처럼, 정치 군사적 혁명가들보다 훨씬 급진적이며 영구적인 사회적 혁명을 실천한 사회적 혁명가였는가. 2천년전의 예수 당시 이상으로 파국을 향해 굴러내리는 비탈 위에 있는 오늘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긴급하고도 절실한 것으로 보인다.


* * 이글은 지난 6월 19일 2012년 1학기 예수학당 (교재: 존 쉘비 스퐁,『만들어진 예수, 참사람 예수』한국기독교연구소 간) 마지막 시간에 발표된 것이다.

 

[글쓴이 소개] 전 영 철

   

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새기운) 대표, 우석대학 명예교수(영문학), 마음사랑교회 목사.
전영철은 2011년 5월, 인류의 역사에서 제국주의 기독교의 시발점이 된 1차 니케아공의회(325년)를 현지 답사차, 공의회가 열렸던 오늘날의 터어키 이즈닉(Iznik)을 방문했다. 전영철은 니케아공의회에서 비롯된 종교적·정치적 야합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종교간 적대를 극복하기 위해 진보적인 기독교인·무슬림·유대교인들과의 진솔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으며, 이를 위해 2011년 11월에는 메카 순례(Hajji)에도 참가하는 등 국내외 무슬림과도 직접 대화를 진행 중이다. 아울러, 불교에서 세상을 보는 관점인 인드라망 정신을 변혁적인 원형의 예수정신과 연계하여, 가난한 이웃들이 스스로 그 사회의 주체로 성찰하고 네트워크화 할 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보고, 이에 부합하는 새로운 사회운동과 참된 종교운동의 하나됨을 제안하고 있다.


새로운기독교운동연대 (새기운)
http://newchristianity21.org/
http://cafe.daum.net/VoiceOfNew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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