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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텔리비전에서 했던 방송 중에 내 마음을 잡아 끈 프로그램이 있다. 힐링킴프라고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정치, 사회, 경제, 문화계의 지도층이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사를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으로 그 내용이 괜찮다는 평을 받고 있음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이 프로를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 축구선수 정대세를 인터뷰 했다는 것을 알고는 내 마음이 땡겼다. 일전에 케이블텔레비전 리모콘으로 무심히 채널을 넘겨가다가 우연히 스포츠 방송에서 정대세 선수를 인터뷰하는 것을 재미 있게 봤기 때문에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어떻게 나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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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힐링캠프의 한 장면 캡쳐 |
정대세! 이름이 대세라! 아무튼 이 사람은 매우 독특한 캐릭터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듣도보도 못한, 쫙 찢어진 눈매가 특이한 이 선수는 남아공 월드컵 경기에서 시작전에 국가가 울려나올 때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부부젤라 소리로 잘 들리지도 않던 조선의 국가(조선의 국가도 애국가이다)를 들으며 온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었던 그 청년 선수!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감동에 휩쓸려 같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경험을 기억한다. 국가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고 민족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나에게 던졌던 사람이다.
정대세라는 사람은 독특한 출신성분(?)을 갖고 있다. 재일교포3세로 아버지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함에 따라 자동적으로 한국인이 되었다. 그러나 민족학교(조선계열)를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도 조국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의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꿈을 키우며 자라왔다. 그리고 월드컵에 나가기 위해 조선의 여권을 만들어 조선의 국가대표선수가 되었다.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 국적자이지만 조선 여권을 가진 주선 국가대표 축구선수이다. 그리고 이제는 독일의 축구팀에 가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태어나고 자란 일본에 갈 때는 입국증을 내민다. 한국에 올 때는 임시여권을 매번 발급받아야 한다. 조선에 갈 때는 조선 여권을 사용한단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디에 살든지 분단된 조국을 가진 사람들의 처지가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쌍수를 들어 정대세를 환영하는 곳은 일본이나 한국, 조선, 그렇다고 독일도 아니다. 어디에 있든지 불편한 존재가 아닐까 한다. 오며가며 드나드는데도 필요한 절차가 많고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신분과 출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대세하 한민족의 처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라고 느낀다. 나라 잃은 망국민 신세였던 조선시대, 그리고 분단된 현실로 정작 이도 저도 아닌 이념의 다툼 한 가운데 내팽개쳐진 것과 같은 사람들의 삶, 스스로 환영하지도 못하고 환영 받지도 못하는 반쪽짜리 민족의 애환을 그의 삶에서 발견했다.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그의 삶은 정말 힘겨운 삶이었다. 조선인 출신으로 J리그에 들어가는 것은 기적과 같다는데 그 기적을 처음으로 이룬 것이 정대세라고 한다. 매 순간순간 어려운 일이 있고 어려운 처지에 놓이기도 하였지만 그는 대견스럽게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고 '무지개를 보려면 비를 견뎌야 한다'는 영어 속담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지난 월드컵에서 0:7로 대패한 것이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가슴 아파하는 모습이 어찌 보면 밉지 않게 너무 천연덕스럽기까지 하다. 진솔하면서도 신념에 차있고 격이 없으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그의 모습에 나는 매료되었다.
그가 거쳐온 인생여정에서 분단된 한민족의 노정을 보았다면 이제 미래 한민족의 통일 역시 그의 천연덕스러운 미소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상이니 좌우니 검증이니 하는 복잡한 이야기들이 넘쳐나서 죽이지 못해 살리고 살리기 싫어 죽이고 싶어 안달하는 지금의 남북상황의 해법은 정대세가 보여준 진실함, 그리고 순진함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통일은 젊은 세대의 몫이 돼버렸고 정대세 같이 마음은 공동체 사회에, 몸은 첨단 자본주의 사회에, 정신은 민족에 둔 이들이 짊어져야 할 과제가 된 것 같다. 어쩌면 그 자신이 한민족이 처한 상황을 가장 절실하게 몸으로 경험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통일이 나의 과업이고 내 자녀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라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정대세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과거의 세대는 더이상 통일을 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 같다. 오히려 통일의 에너지는 젊은 세대로부터 나와야 할 것 같다.
솔직히 나는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그냥 이 나라에 태어나졌다. 게다가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종교인으로서 국가는 걸림돌이라고 여긴다. 그렇다. 나는 솔직하게 말하면 하나님 나라라는 이상사회를 꿈꾸는 무정부주의자에 가까운 것 같다. 더군다나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증진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위에 군림하는 정부가 많았던 한국사회는 하나님 나라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대세 같은 사람은 조국, 민족이라는 말에 가슴을 설레고 국가에 눈물을 흘리고 하나된 단일팀을 꿈꾼다. 내가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대세의 모습에서 나는 갈증을 느낀다. 그리고 국가와 민족의 차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정대세로 인해 나의 국가관과 민족관은 흔들린다. 그러나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나의 모습이나 생각이 이미 낡은 것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튼 정대세라는 통일의 아이콘을 만나게 된 것은 내게 행운이라고 느껴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