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설교 40호(20120617)

본문 : 에스겔 37:1-10, 사도행전 2:43-47
제목 : 바람아, 이 사람들 위에 불어와서…


■ 바람

풀과 나무 같은 식물이 자라는 데는 햇빛과 공기가 필요합니다. 또 물과 흙, 흙 속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영양소들이 필요합니다. 햇빛과 공기 같은 것들이 하늘에서 오는 것이라면 물과 여러 영양소들은 땅으로부터 오는 것이지요. 초목은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아 자랍니다. 생명은 하늘과 땅의 조화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하늘과 땅의 에너지를 초목이 받아서 자라게 하는 데는 ‘바람’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가만히 있는 나무를 바람이 흔들어 주어서 순환을 원활하게 해준다는 말이지요. 바람은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을 움직이게(動) 도와줍니다. 그러고 보면, 봄에 매서운 바람이 불어서 나뭇가지를 흔들어 대는 것은, 그게 나무를 귀찮고 성가시게 하는 게 아니라, 나무를 일깨워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별로 소용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 이철수, ‘소리’-바람 부는 날, 나뭇잎 들, 1992년

바람이 몹시 분다. 옷자락을 날리고, 나무를 뒤흔든다.
그러나, 어디를 둘러보아도 바람은 없다. 보이지 않는다.
그래, 이 시대 -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 실증(實證)의 포로가 되어버린 시대의 비참이여!
바람은 자유다.
존재는 눈에 보여야 한다는 통념을 세차게 흔들어대는 자유의 바람이다.
바람은 없으나 나뭇잎이 눈앞에 날린다.
휘날리는 나뭇잎으로 바람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생명으로 꿈틀거리는 세상을 통해 하나님을 보는 눈은 이미 밝은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람은 하늘의 구름을 움직이게 하고, 그래서 비와 눈이 내리게 합니다. 바람은 나무를 흔들어서 동하게 할 뿐 아니라 흙을 계속 실어 날라서 땅을 움직이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바람을 가늠하면서 일했습니다. 농사를 짓는 데 바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배를 타는 사람들에게 바람은 더 말할 것이 없이 중요하지요. 전쟁에서도 바람을 읽는 일이 승패를 가르기도 했습니다. 어디 옛날뿐입니까? 오늘날에도 기상이변 때문에 바람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일이 참으로 어렵고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서에서도 ‘바람’이라는 말이 아주 중요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흔히 성서에서 ‘성령’, ‘영’이라고 번역한 말은 본디 ‘바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령 또는 영이 하는 일도 바람이 하는 일과 같습니다. 영은 항상 무엇을 움직이게 하고, 어떤 사건을 일으킵니다. 바람처럼 말입니다.


■ 사람을 사람답게

▲ 아담의 창조, 1174년경, 몬레알레 대성당, 시칠리아, 모자이크

우선 성령은 구약성서에서 히브리말로 ‘루아흐’인데, 곧 바람입니다. 창조 이야기에서는 태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의 ‘바람’이 물 위에 움직이고 있었다고 말하지요. 하나님의 바람이 먼저 동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하나님의 창조의 바탕이었다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바람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영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에 먼저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십니다. 그러나 아직 그것은 진정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양, 그 겉모습은 사람이었지만 그 내용, 그 속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흙으로 빚어 만든 사람의 코에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십니다. 여기 이 숨, 바람이 곧 영입니다. 생명의 기운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바람을 받고서야 그는 비로소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참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아가면서 가끔 정말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을 만납니다. 그런 사람에게 “너도 사람이냐?”하고 말하지요.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특히 성령을 받았다고 떠벌이는 자들 중에 얼마나 사람답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까? 성령을 받은 사람, 하나님의 숨을 받아 쉬는 사람은 사람다운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숨을 받았다는 것은 단지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들숨 날숨을 호흡하고 있다는 뜻 그 이상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도록 지키고 도와주는 영입니다. 성령운동이란, 그런 뜻을 새겨 보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운동입니다.


■ 살아나는 백성

그런데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바람은 한 개인을 생기 가득한 참 사람으로 일으키고 변화시킬 뿐 아니라 한 집단, 한 공동체를 새롭게 일으킵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환상은 한 민족 공동체를 새롭게 일으키는(창조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민족 공동체를 새롭게 일으키는 분이 바로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바람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을 골짜기로 데리고 갑니다. 뼈들이 뒤엉켜 널브러진 골짜기, 이미 죽어 말라버려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절망의 골짜기를 보게 합니다. 희망 없는 현실을 직시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에스겔은 환상을 보는 게 아니라 현실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를 환상적인 무아지경에 마취시킨 것이 아니라 고통스런 현실에 통감하게 했습니다. 거기 에스겔 골짜기에 사방으로 많은 뼈들이 뒤엉켜 한가득 널려 있었습니다. 그 뼈들은 이미 오래되어 말라 있었습니다. 얼마나 끔찍한 광경입니까? 얼마나 참담하고 절망적입니까? 그런데 이 뼈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민족, 아무런 꿈도 보이지 않는 공동체, 이미 죽어버린 역사입니다.
그 뼈들을 보고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사람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묻는 물음입니다. 그러나 또한 사람이 하나님께 던지는 절규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스스로 한숨짓는 탄식이기도 합니다. 하늘의 질문이요 사람의 부르짖음이요 우리의 탄식입니다.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 도대체 희망이 있을까, 정말 변할 수 있는 것일까? 이 뒤엉킴(혼돈)과 어둠(흑암) 속에도 빛이 비쳐올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 죽어 널브러진 마른 뼈들 위로 바람이 불어옵니다. 하나님의 바람입니다. 마치 태초의 혼돈과 흑암 위에 하나님의 바람이, 하나님의 영이 움직였던 것처럼, 하나님의 영이 마른 뼈들 위로 불어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움직임이 생깁니다. 봄바람에 죽었던 것 같았던 나뭇가지에 생기가 돌듯이 뼈들에게도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뼈들이 널브러진 골짜기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보니 뼈들이 이어지는 소리입니다. 흩어져 널브러졌던 뼈들이 제 자리를 찾아 이어지는 요란한 소리입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 뼈들 위로 힘줄이 뻗치고 살이 오릅니다. 살 위로 살갗이 덮입니다.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갖춘 것이지요. 마른 뼈가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들은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 속에 아직 ‘생기’(숨, 바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흙으로 빚어 만들었던 첫 사람처럼 아직 하나님의 숨이 거기 없었습니다. 이제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렇지요. 하나님의 바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입니다.

에스겔은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바람아, 사방에서부터 불어와서 이 살해당한 사람들에게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에스겔 37:9) 마침내 하나님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불어오자 그들은 곧 살아나서 제 발로 일어섭니다. 움직이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살아났고 일어났고 엄청나게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공동체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민족이 다시 일어선 것입니다. 역사가 다시 생동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은 한 개인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일으킬 뿐 아니라 한 민족을 다시 새 희망으로 일으켜 세웁니다.

■ 일어난 사람들/교회

이렇게 하나님의 영은 사람을 사람답게 일으키고, 공동체를 새롭게 일으키는 영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무엇보다 교회의 영입니다.

교회란 무엇일까요?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바람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건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약속하셨던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것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물론 여기서 ‘성령’이란 ‘바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령강림의 결과로 맺은 열매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바람을 따라 일어난 ‘사람들’이지요. 움직이게 된 사람들입니다. 다시 살아나서 일어선 사람들입니다. 성령은 새 성전을 세운 것이 아니라 새 사람들을 일으켰습니다.

사도행전 2장 43-47절은 이렇게 성령의 강림으로 일어난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교회의 원형입니다. 본문은 첫 교회의 모습을 담담하고 소박하게 그리고 있지요. 우선 맨 앞의 43절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도행전에서 신앙인을 가리키는 중요한 표현입니다. 하늘을 두려워하는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교만한 마음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늘 아래 땅 위에 산다는 것을 아는 겸허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47절에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였다고 말합니다. 굳이 가르자면,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신앙의 외피와 같습니다. 첫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적으로 표현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의 삶, 그 신앙 실천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 내용이 알갱이처럼 44절에서 46절까지 소개됩니다. 그들의 신앙의 실천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먼저 함께 지내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습니다. 공동으로 소유하며 필요한 대로 나누었습니다. 다음으로 그들은 함께 떡을 떼고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함께 소유하고 함께 떡을 떼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도대체 함께 소유하고 함께 떡을 떼는 것이 신앙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우선 처음 교회는 함께 더불어 살며 공동으로 소유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의 세상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길이었습니다. 성령의 강림으로 처음 교회가 일어났을 때는 로마 시대였습니다. 로마가 지배하는 세계는 어떤 세상이었습니까? 그 시대의 핵심을 말하라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로마 세계는 ‘소유’가 중심인 시대였습니다. 로마의 길을 따라 형성된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사적 소유를 축적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로마 세계는 소유의 신 맘몬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지요. 돈이 있으면 노예도 자유민이 되고 귀족 신분도 살 수 있었습니다. 고관이 되는 데는 많은 돈이 들기는 하지만, 그게 성사되면 투자한 것보다 훨씬 더 남길 수 있는 장사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유가 중심인 세상에서 자기 소유를 내놓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왜 그들을 자기 소유를 내놓았습니까?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바람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은 로마시대의 맘몬의 광풍에 맞서는 바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처음 교회가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한 것은 시대의 우상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신앙의 실천이었습니다.

▲ 에밀 놀데, 최후의 만찬, 1909년, 86×107cm,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그림 출처 : 서경식, 고뇌의 원근법, 2009년, 돌베개 (그림 설명은 맨 뒤에)

다음으로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신앙의 실천은 함께 떡을 떼고 함께 음식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로마가 교회를 박해하기 위하여 교회 안에 첩자를 몰래 들여보내 조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교회가 모여서 행한 이상한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모여서 함께 떡을 떼고 함께 먹었다는 것입니다. 함께 모여 떡을 떼고 함께 먹는 사람들, 그들은 왜 그렇게 모이기만 하면 먹어대는 것일까요? 적어도 이상한 종교 집단이라면 무슨 자기들만의 비밀 제의라도 벌여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모여서 함께 떡을 떼고 함께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참으로 비밀스러운 제의가 맞습니다. 함께 떡을 떼고 함께 먹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예배였습니다. 예배의 혁명입니다.

우선 그들은 어디에 모였습니까? 그들은 성전에도 모이고 집에서도 모였다고 하지요. 그런데 여기서 성전에 모였다는 것은 실제라기보다는 상징적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체포되고 십자가에 처형당했지요. 십자가 처형으로 제자들은 모두 흩어졌고 도망쳤는데, 그들이 다시 성전에서 모인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사도행전이 기록될 때에는 이미 성전이 파괴되고 사라진 때였지요.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집에서 모였습니다. 집이 예배의 장소가 된 것입니다.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성전이 없이도 집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신전에 가야만 그 신전 안에 포박되어 있는 신을 배알할 수 있는 종교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집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장소가 된 것이요, 먹고 마시는 일상이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먹음으로써 예배가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떡을 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떡을 ‘떼었다’는 말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클라오’라는 그리스말은 ‘떼다’, ‘쪼개다’는 뜻인데,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했던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광야에서 굶주린 무리들에게 예수는 떡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고 ‘떼어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마지막 식사를 할 때에 예수는 떡을 들어 감사드리고 ‘떼어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누가 22:19) 부활하신 후에도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떡을 들어 축사하고 ‘떼어서’ 주었습니다.(누가 24:30) 그런데 예수는 마지막 식탁에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누가 22:19)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빵을 함께 ‘떼는’ 것은 예수가 명한 것이고, 그것은 예수를 기념하는 행위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강림으로 교회가 탄생했을 때, 교회가 행한 일 중의 하나가 바로 함께 떡을 ‘떼는’ 일이었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모여서 떡을 떼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7절에는 이렇게 보도합니다. “주간의 첫날에, 우리는 떡을 떼려고 모였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일정한 날을 정해 모였는데, 그 모이는 목적이 떡을 떼는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떡을 떼는 것이 모임의 알짬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힘써 행한 일 중의 하나가 떡을 떼는 일이었습니다.(사도행전 2:42) 바울이 체포되어 로마로 항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서 배가 침몰할 위기를 당한 일이 있었지요. 그 급박한 위기상황에서도 바울을 떡을 들어 감사드리고 떡을 떼었습니다. 이렇게 떡을 떼는 것은 도대체 어떤 행위이겠습니까? 그 행위가 예수가 행한 것이고, 예수가 명한 것이고, 예수를 기념하는 것이라면, 또, 그것을 행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모였다면, 그것은 바로 제사/예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참 큰 의문이 생깁니다. 함께 모여 떡을 떼어 먹는 제사/예배,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왜 예수는 이런 제사/예배를 명했고, 그리스도인들을 이런 제사/예배를 드리면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함께 모여 떡을 떼는 것이 단지 주린 배를 채우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함께 떡을 떼는 이 예배는 예배의 근원적인 혁신입니다.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특정하게 구별한 성소로부터 일상의 자리로 예배의 장소를 옮겼다고 했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장소의 변화를 넘어 예배의 그 속 알짬, 그 내용이 완전히 뒤집어집니다. ‘제사’하면 무엇보다 제물이 있어야지요. 성전 제단에 제물을 드리는 게 제사 아닙니까? 그것이 당시 제사/예배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그 제물은 누가 누구에게 드립니까? 인간이 신에게 드리지요. 인간은 제물을 드리고 신은 그 제물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명한 제사/예배에서는 제물을 드리는 자와 받는 자가 뒤바뀝니다. 이 예배에서는 예수 자신이 자신의 몸을 제물로 내어놓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제물을 내어놓은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자신이 제물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물을 사람에게 ‘떼어’ 주는 것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제물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그리스도인의 예배입니다. 우리 예배의 고향입니다.

그런데 또 더욱 의문이 생깁니다. 참으로, 당시로서는, 아니 지금 우리에게도, 황당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예배는 또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신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이용하여 사람을 얽어매고 수탈하는 종교/정치 지배에 대한 근원적인 부정입니다. 사실, 종교에서 인간이 신에게 제물을 드린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 제물을 차지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사제와 지배자들 아닙니까? 신을 대신하는 자, 신의 아들이라는 황제가 모든 것의 소유주가 되는 것이 맘몬 종교의 실체입니다. 오늘날에도 벌건 대낮에 그렇게 차지한 재물을 세습하느라 참으로 추잡한 꼴을 다 드러내지 않습니까? 그런데 스스로 자기 몸을 제물로 내어 준 신이 있다고, 이 분이야말로, 아니, 이 분만이 참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신성한 황제 종교를 모독하는 반역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몸을 함께 받는다고 떠벌이는 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로마의 입장에서는,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불순분자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실제로 바울을 비롯하여 첫 그리스도인들은 ‘염병 같은 자요 세상을 소란케 하는 자’라고 고발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혐의는 순교로써 입증되었습니다.

이렇게 첫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공동으로 소유함으로써 로마 세계 지배의 핵심인 맘몬의 지배를 부정하였습니다. 또한 함께 떡을 뗌으로써 맘몬 종교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부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부정을 넘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찬양하며, 기쁜 마음으로 함께 소유하고 함께 떡을 떼는’ 공동체를 이루어 갔습니다. 그러자 이 공동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하나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습니다.(사도행전 2:47) 이 공동체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바람으로 일어난 사람들, 바로 교회입니다.

■ 작은 바람 - 뒤끝

바람 얘기로 시작했는데, 어쩌다보니 교회 이야기로 갔습니다. 본디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건 제 탓이 아니라 바람 탓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해마다 태풍 피해를 경험합니다. 태풍, 거센 바람입니다. 파괴하고 살해하는 바람이지요. 폭력으로 지배하는 바람입니다. 그런데 성서의 창조 이야기는 이런 폭풍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고 합니다. 창조 이야기는 바빌론의 창조신화를 맞상대하지요. 그런데 바빌론의 창조신 마르둑은 무엇보다도 폭풍의 신입니다. 강력한 폭풍으로 적을 거꾸러뜨리고 힘으로 지배하는 것입니다. 이런 폭풍에 맞서려면 얼마나 더 강력한 바람이어야 할까요?

▲ 호렙산의 엘리야, 지거 쾨더(Sieger Koder)